‘이준석 vs 윤핵관’ 국민의힘 암투 2라운드

잔치는 끝났다 ‘여당 내전’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국민의힘은 분명 6·1 지방선거를 이겼는데도 개운치 않다. 내부에서 이준석 대표와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 세력이 지속적으로 충돌하고 있는 탓이다. 갈등이 아니라면서도 속으로는 내 세력을 일찍부터 심어 2년 뒤를 미리 준비하겠다는 심산으로 보인다. 누구든 패배하면 즉시 자신은 물론 자신의 세력도 몰락하게 된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대선과 지방선거 승리를 이끈 장본인이다. 여러 갈등 과정이 있었지만 대표로서 대선에서 승리를 쟁취했고, 지방선거에서는 압승을 거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국민의힘 내에서도 선거 결과에 대한 책임론을 들이대기란 어렵다. 

지선 잡고
자리 싸움

승리한 당 대표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음에도 최근 이 대표의 입지가 흔들리는 모양새다. 존재감도 예년에 비해 떨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런 탓에 지방선거가 끝나자마자 이 대표는 단숨에 우크라이나로 달려갔다.

민감한 외교 사안과 직결된 상황에도 우크라이나 방문을 밀어붙인 이유는 지방선거 이후 자신의 존재감을 재차 부각하기 위한 의도라고 해석된다. 다만 일각에선 우크라이나 방문을 두고 러시아를 자극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앞서 이 대표는 대선과 지방선거에 대한 역할은 충분히 해냈다. 이제는 그의 발언대로 선거가 끝난 뒤 평시 리더십을 평가받아야 할 차례다. 


우크라이나 방문도 자신의 당 대표 역할론을 부각시켜 이번 위기를 극복하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출국 전에는 곧바로 당 혁신위원회(이하 혁신위)를 출범시켰다. 쉴 틈도 없이 개혁에 매진하는 모습이다. 

그동안 이 대표는 당 대표답지 않게 모든 사안에 즉각적이고 감정적인 발언을 내놓으면서 구성원들의 불편을 사왔다. 또 선거에서 승리해 정당을 누구보다 잘 안다는 인식과 정치권을 개혁할 수 있다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뤄야 한다는 고집도 있다. 

하지만 현재 이 대표는 말 그대로 위기에 놓여있다. 여러 사건이 발목을 잡는 모양새가 그려져서다. 혁신위를 띄운 이유와 우크라이나행을 택한 것도 이런 위기를 돌파하기 위함이라는 시각이 파다하다.

이런 탓에 국민의힘은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연달아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와 윤핵관 세력 간 갈등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다. 윤핵관 세력은 이런 점을 들어 연일 이 대표를 향해 맹공을 퍼붓고 있다. 

특히 대표적인 친윤(친 윤석열) 인사로 분류된 정진석 의원과 권성동 원내대표가 이 대표를 흔드는 중이다. 정 의원은 이 대표의 우크라이나행을 두고 “이 대표가 자기 정치를 위한 선택이었다”고 비판했다. 

대선 전부터 이 대표와 정 의원의 사이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직에서 내려온 뒤 국민의힘 입당을 추진한 과정에서도 정 의원과 이 대표 사이에서 설전이 오갔던 바 있다.

정 의원은 윤 대통령의 대선 출마 때도 함께 자리했으며 윤 대통령의 부친이 충청이라는 점을 들어 충청 대망론을 띄운 인물이기도 하다.


혁신위발 공천권 전쟁
중진 입지 좁아져 반감

대선에 앞서 정 의원을 만나 국민의힘 입당에 대해 조언을 구했을 만큼 가까웠다. 윤심으로 불리는 정 의원은 최근 이 대표가 띄운 혁신위를 이준석 혁신위 같다며 대놓고 불만을 드러냈다. 혁신위는 공천 등 모호한 규정을 재정비하고, 예측 가능한 공천 시스템을 만들어 새로운 사람이 준비하고 들어올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당내 권력자의 일방적인 내려꽂기 공천과 이해할 수 없는 전략공천 등을 대비하기 위함이다. 한마디로 당협위원장의 추천만 믿고 했던 깜깜이 공천을 막겠다는 취지다.

위원은 9명으로 구성되며 위원장은 최재형 의원(초선, 전 감사원장)과 천하람 변호사가 맡았다. 최 의원과 천 변호사는 지방선거 당시의 공천 시스템에 문제를 느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황상무 전 KBS 앵커가 강원도지사 후보로 단수공천을 받았다가 김진태 강원도지사 당선인의 반발을 사 결국 경선 방식으로 바뀌었다. 황 전 앵커는 선거 때 토론팀장 등을 맡으면서 윤심에게 신뢰받는 인물이었다.

공천은 대통령의 의중이 알게 모르게 반영되기 마련이다. 공천관리위원회에서 이런 의중을 과도하게 살피다 보니 단수공천 과정에서 문제가 불거졌던 것으로 보인다. 강원도지사 후보 등 공천에 문제의식을 느낀 인사들이 혁신위를 꾸리기 위해 계획 중이었다는 것.

벌써부터 혁신위를 둘러싸고 당내에서는 정 의원을 비롯해 여러 인사들의 시각 차가 크다. 이 대표가 혁신위를 띄운 이유는 공천 시스템에 대한 폐단을 없애기 위해서다. 그러나 결국 공천 관련된 인물들은 이를 자신을 향한 공격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게 국민의힘 내부 관계자 설명이다. 

정 의원이 지속적으로 이 대표를 타격 중인 이유는 대표 임기 1년을 남긴 상황에서 윤핵관이 세를 다질 때 그가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인식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가 내년 6월 전당대회에 출마할 경우, 공천권을 갖게 되지만 현재로서는 재출마 가능성은 낮다.

당권 잡기 
권력 투쟁

국민의힘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이 대표의 혁신위에 반기를 드는 인사 대부분은 중진 의원들이다. 견제받는 입장에서는 이 대표가 띄운 혁신안이 그들의 입지를 좁힐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다. 공천에는 통상 관례라는 게 존재할 수밖에 없는데 혁신을 거부하는 세력들이 이 대표를 곱지 않게 볼 수밖에 없는 셈이다. 

반대편에서는 이 대표가 고삐를 강하게 쥐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기성 정치인으로서 다져놓은 입지를 빼앗길 수 도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 관계자는 “이 대표는 아직 30대 정치인으로 은퇴할 사람을 견제할 이유가 전혀 없다. 중진 의원을 견제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라며 “합리적 문제의식을 갖고 봐야 하는데 단편적, 지엽적인 것으로 담론을 덮으려 하는 옹색한 행동”이라고 평가절하했다.  


당 내부에서는 혁신위에 대한 반감과 함께 이 대표를 쳐내려는 이유가 차기 총선 공천권 때문이라는 해석도 많다. 대표적 윤핵관으로 불리는 권 원내대표도 “혁신위가 다소 다급한 면이 있다”고 비판 수위를 높였다.

앞서 권 원내대표는 대선 기간에도 장제원 의원과 함께 이 대표와 큰 갈등을 빚었던 인물이다. 당시 이 대표가 부산까지 찾아가 경고하자 한발 물러나며 갈등이 봉합되는 모양새가 연출됐다.

두 인물이 이 대표의 비판에 나선 이유는 윤심임을 내세워 당권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해 당권 다지기에 포석을 깔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표면상으로는 이 대표의 자기 정치와 다급함을 비판하고 나섰지만 내면에서는 지방선거 이후 당내 주도권을 잃지 않으려는 힘겨루기가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좀처럼 갈등이 풀리지 않자, 한발 물러난 쪽은 권 원내대표와 정 의원 측이다. 권 원내대표는 이 대표를 비판한지 하루 만에 “당 대표 임기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게 옳지 않다”며 발을 뺐다.

권 원내대표도 “권력 다툼은 억측”이라는 말로 진화에 나섰다. 정 의원 측 관계자도 “단순히 이 대표의 행보에 대해 단순히 우려 입장을 전달할 것뿐”이라고 언급했다.

정 의원 역시 수위를 낮춰 이 대표와의 관계에 문제가 없다는 식의 글을 올렸지만 이 대표는 심기가 불편한 모양새다. 부산 잠행과 비슷하게 정 의원의 과거 발언을 인용해 육모철퇴 게시물로 맞받아쳤다.


대세와 대표 
세력간 대결

내부 관계자는 이 대표가 쏴올린 혁신위가 실질적으론 도움이 되긴 어렵다고 보고 있다. 당장 내년에 선출될 당 대표가 공천권을 갖게 되고 혁신위를 통해 당헌·당규를 고칠 수 있는 까닭이다. 

지방선거가 끝나자마자 이 대표가 혁신위를 발족한 이유는 야당보다 당 혁신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어필하기 위함이라는 게 내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단순히 이 대표 체제의 어필을 위한 안전핀이 아니라는 것.

물론 이 대표 입장에서도 안심할 수 있는 상황만은 아니다. 성상납 의혹 사건에 대한 국민의힘 징계위원회에서 이달 말 결론이 내려질 예정인 까닭이다. 이 대표는 당 대표로서는 최초로 징계위에 회부됐다. 이달 말 이 대표의 소명을 듣고 징계 수위가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의혹에 대한 사실을 떠나 징계를 받느냐 마느냐다. 사실상 성상납 의혹은 공소시효 5년이 지났고 사실관계에 대한 입증이 어렵다. 증거은닉교사 의혹은 다소 구체적이다.

지난 4월 가로세로연구소 측에서 김철근 대표 정무실장이 성접대 관여를 주장한 A씨와의 녹취록을 공개했다. 가세연 측은 이를 토대로 이 대표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의혹은 고사하더라도 증거은닉교사, 당의 명예 실추 등이 인정될 경우 징계위 징계는 불가피해 보인다.

또 당원권 정지 이상의 징계가 이뤄질 경우, 대표직 및 당원 자격 상실은 물론 향후 정치 행보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번 징계위는 비공개로 진행될 예정이다. 이 대표의 징계 여부를 두고 당내에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의혹이 사실이 아니더라도 대표로서 당의 명예를 실추시킨 점이 문제라고 꼬집는다.

성상납 의혹 징계 여부에 운명 결정
이 대표 날아가면 국힘 위기 올 수도

성상납 의혹은 윤핵관이 이 대표를 향해 쓸 수 있는 카드로 당을 장악하기 위한 하나의 명분인 셈이다. 이 대표에게 징계 조치가 내려질 경우 조기 전당대회는 불가피하다. 당권을 노리는 주자들이 여럿 있는 만큼 징계위 결과가 변수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다만 새 당 대표가 선출된다고 해도 이미 친윤(친 윤석열) 세력이 당을 장악해버린 이상 차기 당 대표가 윤핵관 세력이 아닐 경우, 당 대표로서의 입지는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게다가 1년 여의 남은 임기만으로는 당내 세력을 다지기 힘들다.

반면 징계에 반대 인사들은 벌써 이 대표를 끌어내리는 것이 자해를 넘어 자살행위라며 퇴출시키면 안 된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현재 국민의힘의 정당 지지율은 50% 이상 나오고 있다. 이 대표는 보궐선거부터 이번 지방선거까지 3번을 내리 이겼다.

승장을 아무런 이유 없이 몰아낸다는 게 국민의힘 입장에서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 대표를 쫓아낼 명분도 없고, 같이 망하자는 꼴이기 때문에 당정의 국정동력도 함께 잃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이 대표의 등판 후 국민의힘은 전환점을 맞이했다. 청년층 중 특히 젊은 남성층들을 기존의 꼰대 색채가 짙다는 당으로 끌어들이며 당을 젊게 만들었다. 끊임없이 비판이 나와도 선거를 진두지휘하며 스스로 몸값도 높였다. 윤핵관 입장에서는 이 대표가 위협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는 셈이다. 

국민의힘에서도 이 대표를 잃는다면 중도층을 잃을 수 있다. 윤 대통령 역시 중도층 선택을 받아 대통령이 됐다. 이 대표는 “절대로 사퇴는 없다”며 일찌감치 강력하게 사퇴설에 선을 그었다. 

이대로
밀리면 끝

해당 논란에 대해 장성철 대구카톨릭대 특임교수는 “이 대표를 당 대표직에서 빨리 내려 보내고 전당대회를 통해서 당권을 잡기 위한 수순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당이 잘되는 것보다 기성 정치인들이 오히려 자기 정치를 하고 있는데 차기 총선에서 입지가 줄어드는 게 아니냐는 위기 때문”이라며 “대중적 평가는 관심도 없고, 차기 공천권을 행사할 때 윤심에 호소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긴다”고 전했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몸 푸는 차기 당권 주자들

국민의힘 당권을 잡기 위해 세를 다지고 나선 이들은 윤핵관뿐만 아니다.

최근 새로운 당 대표로 거론되는 인물들도 벌써부터 몸을 풀고 있는 모양새다. 

이 대표가 우크라이나 방문과 혁신위원회를 출범시켰다면 차기 당 대표를 노리는 이들도 국내에서 광폭적인 행보를 보이기 시작했다.

분당갑에서 당선되며 국민의힘 원내 인사가 된 안철수 의원의 경우 포럼 형식으로 당내 세를 다질 예정이다.

벌써부터 기후 관련 포럼, 연금개혁 논의 등이 줄줄이 계획돼있다.

안 의원은 현재까지 당권 도전설에 선을 긋고 있지만 당내에서는 출마설이 기정사실화된 분위기다. 

또 다른 윤심으로 불리는 김기현 전 원내대표는 지난 3일, 혁신24 새로운 미래라는 모임을 발족했다.

당내에서도 김 전 원내대표의 당권 도전을 공식적으로 받아들이는 모양새다.

김 전 원내대표는 대선 과정에서 윤 대통령과 이 대표 사이에서 중재한 인물로 당내 이미지 역시 긍정적 여론이 형성돼있다.

이 밖에 원외에서는 나경원 전 대표가 대표직에 재도전할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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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