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후폭풍> ③약발 안 먹힌 ‘윤핵관’ 승부수

‘한 끗 차이’ 이겨도 찝찝한 뒷맛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지방선거 당선자 명단을 살펴보면 국민의힘 인물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대승을 거뒀다. 4년 전 설욕을 완벽히 갚았다는 평가가 내려진다. 그러나 경기도지사 선거에서는 석패했다.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개운치 않은 승리일 수 있다. 경기도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후광 효과가 제대로 먹혀들지 않은 탓이다. 

경기도는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번갈아가며 탈환을 반복해오던 곳이다. 당선만 된다면 차기 대권주자로 떠오르며 존재감이 급상승한다. 민주당 간판 이재명 의원도 경기도지사를 역임한 뒤 대선에 도전했던 만큼 경기도지사의 위상은 정치권에서 큰 파급력을 가진다. 지방선거 전체를 놓고 볼 때는 국민의힘이 웃었지만 경기도지사는 민주당이 가까스로 지켜냈다. 

초접전 양상
막판 뒤집기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민주당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침묵뿐이었다. 반면 국민의힘 개표 상황실에서는 큰 함성과 박수가 터졌다. 출구조사 결과와 거의 비슷하게 지방선거가 국민의힘의 압승으로 끝났다. 9곳 이상 승리를 기대하던 국민의힘은 광역단체장 12곳을 말 그대로 빨간색으로 물들였다.

양당의 확연한 온도차가 느껴진 대목이다.

박빙으로 불리던 지역까지 국민의힘이 이길 것이라는 그동안의 분석과 별반 다를 게 없는 결과로 지난 총선 및 지방선거와는 반대로 뒤집힌 양상이다. 당시 민주당이 지방선거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머쥐고 총선까지 대승을 거두며 180석이라는 거대 여당까지 탄생시켰다. 문제는 거대 당이 탄생한 이후다.


연이은 민주당의 헛발질과 악재가 이어졌고 결국 민심이 등을 돌리며 국민의힘 손을 들어줬다. 이 같은 결과는 지난해 열린 4·7 재보궐선거 직후부터 드러나기 시작했다.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에서 민주당이 앞선 곳은 한 곳도 없었다. 

재보궐선거의 여파는 대선에서도 드러났다. 5년 만에 보수당에 패배하며 정권을 내주는 결과로 되돌아왔다. 정권교체 10년 주기설이 최초로 깨지며 정치 초보라 불리던 0선 정치인인 윤석열 대통령을 탄생시켰다. 

짜릿한 승리를 거머쥔 국민의힘은 현재 민주당에 내리 3연승을 기록 중이다. 대선에서 발휘된 윤풍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윤심이 투영된 후보가 곳곳에서 승전보를 울렸다. 대선에서도 윤 대통령을 택한 대표적인 지역인 충청도 역시 국민의힘 인물로 꽉 채워졌다. 

전남과 전북에서는 진보당을 제치고 국민의힘이 15% 넘는 지지를 받아 선거비를 보전받고, 민주당 다음으로 표를 많이 받은 당이 되는 결과까지 이끌어냈다. 

경기만…국힘 개운치 않은 승리
대통령 후광 효과 먹히지 않아

다만 윤풍이 경기도에서는 발휘되지 못한 모양새다.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을 압살하긴 했지만 전국에서 가장 많은 유권자를 가진 경기도지사직을 탈환하지는 못했다. 경기도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가장 중요하게 떠오른 지역이다. 

대선에서도 윤 대통령이 이재명 의원에게 패배를 기록한 곳이다. 1300만명의 유권자가 거주하고 있는 지역으로 2년 뒤 총선과 윤정부의 국정 동력을 감안했을 때도 국민의힘은 반드시 경기도를 탈환해야 할 필요가 절실했다. 


‘윤심 명심 대리전’이라고 불렸고 사실상 대선 2차전이라는 말까지 나오며 핫한 지역으로 떠올랐다. 국민의힘 경기도지사 후보 선정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유승민 전 의원이 정계 은퇴를 번복하면서 선거전에 뛰어들었지만 당심에 밀려 패배하며 김은혜 전 의원이 최종 후보로 결정됐다.  

마지막까지 초박빙의 승부를 이어가던 경기도지사 개표 결과는 동이 트기 직전 윤곽이 드러났다. 최종 개표 결과 김 전 의원은 김동연 경기도지사 당선인에게 0.14%p 차로 패배해 고배를 마셨다.

김 전 의원은 오전 7시경 결과에 승복하며 김 당선인에게 축하 인사를 전했다. 두 인물의 표 차이는 1만표가 채 되지 않았다(8193표). 새벽까지는 김 전 의원이 승기를 잡고 있었다. 

초반만 해도 두 인물의 표 차이는 제법 컸다. 시간이 지나고 김 전 의원 옆에는 당선 유력 자막까지 달려있었지만 점차 격차를 좁힌 김 당선인이 결국 승리를 거머쥐었다. 

국민의힘은 연일 경기도 탈환을 위해 공을 들여왔다. 특히 권성동 원내대표는 경기도 승리가 지방선거 승리라는 말까지 했을 정도다. 이런 탓에 지방선거에서 대승을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경기도의 패배는 국민의힘에게 뼈아플 수 있는 대목이다. 

빛바랜
윤심 프레임

유세 기간 동안 김기현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은 김 전 의원을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 중 윤핵관이라고 소개했을 만큼 윤 대통령과의 거리가 가깝다며 윤심 프레임을 씌웠지만 해당 전략은 먹혀들지 않은 모양새다.

지방선거에서 윤심 대표주자 중 한 명으로 분류된 인물이 김 전 의원이다. 대선 기간 윤심을 대표하며 자신의 몸집을 키워왔다. 경기도지사에 당선만 된다면 얻을 수 있는 게 많은 선거였다. 

윤핵관은 현재 윤 대통령을 등에 업은 실세 중 실세다. 국회 역시 윤 대통령 세력이 접수한 가운데 윤핵관으로 불리는 권성동 원내대표가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 이런 영향 덕에 김 전 의원 역시 경기도지사 선거에 출마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김 전 의원이 김 당선인보다 전문가 이미지가 다소 떨어진다는 점이다. 이런 탓에 일각에서는 차라리 유 전 의원이 나왔더라면 무난한 승리를 가져갔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유 전 의원은 경제 전문가 이미지를 가진 인물이다. 김 전 의원이 윤 대통령의 후광 효과를 가지고 나왔지만 역부족이었던 셈이다. 유 전 의원은 여론조사에서 선전했던 터라 민심은 이미 입증됐었다.

김 전 의원과 김 당선인과의 대결에서 전문가 이미지는 중요한 열쇠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유세 기간 내내 김 전 의원은 전문가 이미지가 강한 김 당선인을 향해 “실패한 문재인정부 관료”라고 타격했으나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는 데 실패했다.


김 당선인이 가진 전문가 이미지가 워낙 굳건했던 탓이다. 선거 막판 불거진 채용 청탁 의혹과 재산신고 축소도 김 전 의원의 발목을 잡았다는 분석이다. 해당 의혹은 무소속 강용석 후보가 띄웠는데 한시가 급했던 김 전 의원에게는 상당한 타격이 가해진 것으로 보인다. 

막판까지 강 후보와의 단일화가 이뤄지지 않았던 점도 김 전 의원이 패배한 요인 중 하나로 분석된다. 강 후보와 국민의힘 간 단일화 책임론 공방이 가열됐다. 강 후보는 극우 보수 성향으로 두 사람은 선거 막판 직전까지 단일화 밀당을 이어갔다.

당시 강 후보가 내세운 단일화 조건은 국민의힘으로의 복당이었으나 결국 무위에 그쳤다. 개표 결과 강 후보는 0.9%를 득표하며 5만여표를 가져갔다.

단일화
했다면?

만일 김 전 의원이 강 후보와 단일화했다면 충분히 당선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대목이다. 20대 대선에서 당시 윤석열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단일화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이 윤핵관이었지만 이번 지방선거에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두 인물 간 단일화에 대해서는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여러 논의가 나왔다. 그러나 이준석 대표가 “단일화는 필요없다”고 선을 그었고, 김 전 의원 역시 적극적인 액션을 취하지 않았다. 작은 표 차이로 당락이 갈리자 권성동 원내대표는 “단일화했다면 이길 수 있었다”며 경기도지사 패배 책임론에서 발을 뺐다.


김 전 의원 본인에게는 최초의 여성단체장이라는 타이틀과 윤심을 이어갈 차기 대권잠룡으로 분류될 수 있는 기회였고, 국민의힘이 민심을 한층 더 다질 수 있던 기회가 날아갔다. 

경기도 패배는 당내 핵심 세력인 윤핵관의 입지를 다소 흔들리게 할 수 있다. 지방 곳곳에 윤심이 자리하게 됐지만 수도권인 서울과 보수 텃밭인 대구를 놓고 보면 상황이 녹록지 않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홍준표 대구시장 당선인이 윤심이 아니라는 점에서다.

오 시장의 경우 이번만 4번째 서울시장 당선이다.

20대 총선에서 정세균 전 총리에게 패배해 입지가 줄었고, 2년 전 전당대회에서도 황교안 전 국무총리에게 당권을 빼앗긴 바 있다. 심지어 지난 총선에서는 초선인 고민정 의원에게 패배하면서 한동안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압도적 표 차이로 당선된 오 시장은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화려하게 재기에 성공했다. 국민의힘 입장에서 서울 시장 수성은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윤핵관 세력에게는 견제 대상이다. 

차라리 유승민 나왔으면 됐다?
“민심이 당정에 경고” 분석도

당내에서 오 시장은 윤핵관보다는 이 대표와 가깝다. 이 대표는 지난해 재보궐선거 당시에도 오 시장 캠프에 소속돼 지원하기도 했다.

2연승에 성공한 당 대표가 됐고, 오 시장이 4선에 성공한 이상 향후 대권까지 바라볼 수 있게 됐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보수 텃밭인 대구 역시 홍 시장이 쥐게 되면서 벌써부터 보수 표심을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홍 시장은 벌써부터 윤정부가 자신을 무시하지 못할 것이라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보수 텃밭에서 홍 시장이 일찌감치 세를 다져 놓는다면 윤핵관 세력은 불리할 수밖에 없다. 윤핵관은 극보수 성향의 유권자에게 배신자로 낙인 찍혀 있다.

이번 대선에서 윤 대통령을 뽑긴 했지만 정권교체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또 윤 대통령이 완전한 보수를 대표하는 아이콘도 아니다. 윤핵관 세력이 대구에서 표심을 다지지 못한다면 보수의 분열은 피할 수 없을뿐더러 국민의힘 내부 분열도 불가피하다. 

부동층과 중도 민심이 중요한데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이들이 고민거리로 다가온다. 대선에서도 남성층과 여성층의 표심은 극명하게 갈렸다. 정치권에서는 아직도 갈라치기 여파가 잔존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 전 의원이 경기맘을 띄우며 여성 표심 공략에 나섰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갈라치기 대선의 여파가 여전히 이어졌던 셈으로 이 문제는 여전히 국민의힘에게 남은 숙제다.

일각에선 민심이 벌써부터 경기도지사 선거 결과를 두고 윤정부를 향해 경고장을 날린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윤정부가 통합정부에 기조를 맞춘 이상 이를 극복해내지 못한다면 향후 총선에서 위기로 다가올 수 있다.

2년 뒤
성적표는?

유권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결코 국민의힘이 잘해서 뽑아준 게 아니다. 정권교체 열망이 높았고, 민주당에 비해 국민의힘이 조금이라도 여론을 읽었기 때문이다. 이 대표 역시 4년 무한 책임론을 강조하며 큰 승리를 경계하고 나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국민의힘이 크게 승리했지만 도취해서는 안 된다”며 “윤핵관이 더 큰 세를 다지기 위해선 2년 뒤 총선까지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제주도도 윤핵관 영향?

 

온통 빨간색으로 물들인 지방선거에서 전북과 전남을 제외하고 파란색 깃발을 꼽은 지역이 있다.

바로 제주도다. 제주도는 2002년 우근민 전 제주도지사가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된 이후 20년 만에 민주당이 탈환에 성공했다.

직전까지도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도지사로 있던 곳이다.

무소속이긴 하지만 제주도지사를 두 번했을 만큼 원 장관의 제주도 내 입지는 탄탄했다.

원 장관은 국민의힘 경선에서 윤 대통령에게 패배했지만 이후 국민의힘 내 새로운 실세로 떠올랐다.

국민의힘 선대위가 내홍을 겪는 과정에서 강판당했으나 선거대책본부에서 재차 정책본부장에 다시 임명된 바 있다.

윤 대통령의 승리로 대선이 끝난 뒤 현재는 윤정부 초대 국토교통부 장관으로 내정됐다.

그러나 새로운 윤핵관인 원 장관의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제주도지사와 제주도을 의원 자리를 민주당이 차지했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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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