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인’ 문재인 두 가지 역할론

떠난지 얼마나 됐다고…대북 특사? 선거 등판?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지난 2020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어떤 대통령으로 남고 싶냐”는 기자의 질문에 “잊혀진 사람으로 남고 싶다”고 대답했다. 당시 언론과 평론가 등은 소박한 문 전 대통령의 성품이 드러난 발언이라며 임기 후에 꼭 그렇게 될 것이라 입을 모았다. 그러나 그의 ‘소박한’ 바람은 이뤄지지 않는 모양이다. 정치계 인사들은 아직 문 전 대통령을 잊을 생각이 없어 보인다. 야권, 여권을 막론하고 그의 행보에 대해 정계는 이런저런 예측을 하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역할론이 급부상한 시기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한국 방문이 다가올 쯤이었다. 문 전 대통령 측의 고위 관계자는 바이든 미 대통령의 방문 몇 주 전, 바이든 측이 문 전 대통령과의 만남을 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백악관 측이 현직 대통령과 만남을 한 뒤, 전직인 문 전 대통령도 만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전례 없는
전직 만남

일방적인 주장으로 치부됐던 ‘바이든·문재인 회동설’은 진보 스피커들에 의해 확대, 재생산됐다.

지난달 29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의 진행자 김어준씨는 “현직 미국 대통령이 우리나라 전직 대통령을 따로 만난다는 것은 한 번도 없던 일”이라며 “우리나라에서만 없던 일이 아니라 미국 대통령이 다른 나라 방문하는데 전직 대통령을 따로 만나겠다고 요청하는 일은 이례적인 일”이라 발언했다. 

이런저런 소문에 반신반의하고 있었던 대중은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의 발언으로 더욱 확신을 가지게 됐다.


문재인정부에서 국정상황실장을 역임했던 윤 의원은 지난 19일 MBC라디오에 출연해 “바이든 대통령이 보자고 연락 온 것은 확실한 사실”이라며 “분명한 것은 문 전 대통령은 가만히 계셨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둘의 만남이 가시화되자 정치계는 분주해졌다. 실제로 둘이 만나게 되는 건지, 만나게 된다면 어떤 목적으로 만나는 건지 여러 가지 해석들이 난무했다.

문 전 대통령 측은 단지 “친분 때문”이라는 이유를 덧붙였지만, 진보진영에서는 ‘윤 대통령에게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라는 해석을, 보수진영에서는 ‘말도 안 되는 낭설’이라는 논평을 잇따라 내보냈다.

결국 ‘바이든-문재인 회동’은 ‘10분간의 전화 통화’로 대체됐고, 그동안 떠돌던 해석들과 서로를 향한 날선 논평들은 잠시 일단락됐다.

그러나 이번엔 10분간 전화 통화에서의 주고받은 내용에 관심이 집중됐다. 회동설이 전화 대담으로 축소됐지만 ‘전화로라도’ 바이든 미 대통령이 문 전 대통령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지 않겠냐는 해석이 돌았기 때문이다.

전화 통화에 발맞춰 당초 제기됐던 ‘문재인 대북 특사설’이 힘을 받았다. 사실, 둘의 회동설이 떠돌 때 이미 바이든 대통령의 ‘대북 특사 권유’는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였다. 무산되기 전까지 정계 관계자들은 ‘바이든이 직접 만나려는 목적은 북한과의 연결 라인이 견고한 문 전 대통령의 힘을 빌리려는 것’이라는 예측을 내놨다.

발단은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의 제안이었다.


태 의원은 지난 12일 권영세 통일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대북 특사에 문재인 대통령도 고려해야 한다”며 “김정은과 제일 많이 만난 대통령”이란 표현을 썼다. 이에 권 장관은 “충분히 검토해볼만하다”고 화답하며 “(미국과)사전에 이미 교감이 있었다”고 발언해 주목을 받았다.

극에 달한 북 도발…주 1회꼴 발사
바이든-문재인 전화통화 내용 주목

이들의 청문회를 통해 ‘문재인 대북 특사설’은 처음 알려졌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문 전 대통령 측이 바이든 대통령과의 만남을 주장하니 ‘대북 특사설’은 힘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사실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전직 대통령의 대북 특사’는 매우 어색한 그림이었다.

그간 전임 대통령이 대북 특사를 간적이 없기 때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최초로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뒤, 북한과 본격적인 대화 물꼬를 튼 한국정부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 전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하며 남북 간의 관계는 이어졌다. 특히, 문 전 대통령은 유일하게 북한 지도자와 세 번 만나고 북미 정상 화담을 이끌어내는 등 한때 북한과의 관계를 가장 많이 발전시킨 공로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이는 모두 현직에 있을 때 이야기다. 김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은 퇴임 후 북한과의 관계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았고, 문 전 대통령도 아직은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 않다.

여기서 주목되는 게 미국 전직 대통령들의 과거 행보다. 미국은 여러 차례 전직 대통령을 북한에 보낸 전례가 있다. 미국은 북한과의 갈등이 심각해질 때마다 북한과 사이가 ‘나쁘지 않은’ 인사들을 북한으로 보내 대화로 갈등을 봉합하려 애썼다.

다만 미국의 전임 대통령이 대북 특사로 갈 때는 항상 북한의 ‘호감’과 ‘전례 없는 갈등 상황’이란 조건을 충족해야 했다. 그 첫 번째 주자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다. 카터 전 미 대통령은 북한이 좋아하는 미국 대통령 중 한 사람이었다.

그가 1976년 대선 선거 유세 때 주한 미군 철수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당시 박정희정부에 유화적이지 않았던 카터 대통령은 군비 증강이 지지부진한 이유를 들며 한국의 자주국방을 주장했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만난 1979년 6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내 개인적인 바람은 긴급조치 9호를 철회하고 재소자들을 가능한 많이 석방하는 것”이라며 “한국이 국민총생산(GNP)의 6%를 국방비에 쓰고 있는 반면, 북한은 GNP의 20%를 국방비에 쓰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때 북한이 가졌던 카터 전 대통령에 대한 호감은 퇴임 후에도 이어졌다. 클린턴 행정부가 카터 전 대통령을 대북 특사로 파견한 이유다. 

미국처럼
한국도?


1994년, 북한은 꽁꽁 숨기고 있던 핵개발 의지를 본격적으로 드러내며 세계의 지탄을 받았다. 세계가 북한 핵개발에 대한 의심을 품을 때마다 북한은 ‘절대’ 그럴 일 없을 거라며 수차례 거짓말을 해왔다. 북한은 강요받지도 않은 핵개발 과정을 스스로 공개했고 원자력발전소를 지을 목적이라 둘러대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랬던 북한이 결국 핵금지확산조약기구를 탈퇴하며 핵개발을 선언하자, 클린턴정부는 뒤통수를 맞았다고 판단했다. 미국은 ‘군사 움직임을 할 수 있다’고 북한 측에 계속해서 경고했다. 북한의 반응이 없자 말뿐이었던 경고는 행동으로 옮겨졌다.

미국은 동해에 항공모함 5척을 보내고, 한국에 군비를 증강하는 등 실제 군사 움직임을 보였다. 이에 북한은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특사 교환 실무회담에서 “전쟁나면 서울은 불바다가 될 것”이라 맞불을 놨다. 양국이 물러서지 않는 태도를 취하며 ‘한반도 전쟁 위기설’은 걷잡을 수 없는 형태가 됐다. 

카터 전 대통령은 본인의 자서전에서 “미국정부의 허가와 상관없이 북한에 갈 것을 결심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 밝혔다. 실제로 클린턴 대통령도 본인의 자서전에서 “이때 카터 대통령이 아니었으면 전쟁 준비를 멈추지 않았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우여곡절 끝에 북한에 간 카터 전 대통령은 유엔에서 추진하고 있던 대북 제재를 폐지하는 조건으로 북한의 핵개발을 동결시켰다. 최초로 북한에 간 전임 미국 대통령이 이뤄낸 유일무이한 성과였다. 그러나 후에 북한이 끝까지 핵개발을 포기하지 않으며 카터 전 대통령은 두 차례 더 북한을 방문해야 했다. 

이후 두 번째로 북한을 방문한 미국 대통령은 다름 아닌 빌 클린턴이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카터 전 대통령을 북한에 보낸 장본인이다.


이때도 북한의 ‘호감’과 ‘전례 없는 갈등’이란 조건이 충족됐다. 북한은 2009년 3월 북·중 접경지대서 탈북자 문제를 취재 중이던 미국 방송국 소속 로라 링과 유나 리 기자를 체포해 억류시켰다. 두 기자는 각각 중국계, 한국계 미국인이었다.

자국민의 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두고 있는 미국정부는 해당 사실이 알려지자마자 북한 주재 스웨덴 대사를 통해 둘을 석방할 것을 요구했다. 둘의 자존심 싸움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자국의 ‘폐쇄성’을 중요시하는 북한과 자국민의 ‘생명권’을 중요시하는 미국 사이에 양보할 수 없는 싸움이 시작됐다.

국경없는 기자회(RSF)는 즉각 석방을 요구하는 성명을 내며 이 문제를 전 세계에 알렸고, 미국정부는 지속해서 북한 정부와 협상에 임했다.

억류 3개월이 지난 6월경, 북한정부는 두 기자에게 노동 교화형 12년을 선고하며 미국의 입장을 더욱 난처하게 만들었다. 협상에 진정이 없던 중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백신 들고
핵 교감?

7월 중순 무렵 억류된 기자들이 가족들과의 통화에서 “북한 당국 측이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을 특사로 원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카터 전 대통령 특사 때 만들어놨던 인연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결국 클린턴 전 대통령은 양국의 풀 수 없던 난제를 직접 해결하러 북한에 갔다.

평양에 약 21시간 동안 체류한 것으로 알려진 클린턴 전 대통령은 정상 방문에 버금갈 정도로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1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면담했고, 각처 관료와 다섯 차례 면담 및 만찬을 이어갔다.

그의 노력 덕분에 두 기자는 억류된 지 약 140일 만에 고국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렇다면 문 전 대통령은 대북 특사의 조건을 충족할까. 우선 ‘전례 없는 위기’ 상황은 충족된다. 북한은 최근 뒤늦은 코로나 사태로 고통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에 면역이 없는 상태에서 바이러스의 침투를 받았기 때문이다. ‘고립된’ 북한에 코로나 백신이 있을 리도 만무하다.

폐쇄로만 일관하던 북한은 무방비 상태에서 방에 구멍이 뚫렸고, 코로나는 빠르게 북한 내부에 퍼지고 있다.

북한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에선 매일 10만명 이상의 코로나 환자가 나오고 있다. 이 발표를 그대로 믿는다면 누적 환자는 수백만명에 그친다. 그러나 북한 전문가들은 이 수치를 그대로 믿어선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한 북한 전문가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에서 “누적 환자가 1000만명은 될 것이라 가정해도 무방하다”며 “그동안 북한의 통계는 정확했던 적이 없다”고 전했다. 그가 주장한 최대 1000만명은 북한 전체 인구의 절반가량에 해당하는 수치다.

이 전문가는 “김정은이 실권을 쥐고 난 후 ‘전례 없던 혼돈’이 온 것”이라며 “코로나 사태로 인구가 줄고, 사회 전반에 혼돈이 오면 김정은 체제의 위기까지 염두에 둬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같은 움직임을 감안한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인도적 지원에 대해서는 남북 관계의 정치, 군사적 고려 없이 언제든 열어 놓겠다”며 “북한이 호응한다면 코로나 백신을 포함해 의약품, 의료기구, 보건 인력 등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제안한 바 있다.

선거 전후 당에 간접적인 영향?
정치권 인사들 발길 끊이지 않아

북한과의 외교에서 유화적이지 않을 것을 선언한 윤 대통령이지만, 북한의 코로나 문제에 대해선 최대한 지원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북한 측의 반응은 싸늘했다. 오히려 윤석열정부를 비난하기에 급급했다.

북한은 “희대의 부정부패 왕초이자 동족 대결광인 이명박의 사환꾼들, 이런 자들이 국민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5년 동안 주인 행세를 하겠다니 참으로 ‘망한민국’이 아닐 수 없다”고 조롱했다. 

전문가들은 문 전 대통령이 만일 특사로 간다면 코로나 ‘백신 전달이 우선 목적일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북한의 체제 위기까지 불러올 수 있는 코로나 사태를 봉합하려면 특사가 필요하고 그 적임자가 문 전 대통령이라는 주장이다. 

이 같은 문 전 대통령의 역할론이 여권에서 맴돌자 이번에는 야권에서 선거 틍판론이 제기됐다. 지난 대선 때 이낙연캠프를 도왔던 민주당 의원 측의 한 인사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문 전 대통령이 간접적으로라도 당에 도움 될만한 행보를 보였으면 한다”며 “현재 민주당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사람은 문 전 대통령뿐”이라 말했다.

그는 최근 민주당 이재명 인천 계양을 후보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자 민주당에 내분이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같이 말했다.

당초 민주당의 텃밭이라 불리던 인천 지역 보궐선거에 출마한 이 후보는 비교적 약세라 평가받는 국민의힘 윤형선 후보와 지지율 격차를 벌리지 못하고 있다. 이를 계기로 민주당에 위기가 찾아오며 계파 갈등이 다시금 불거졌다.

이 후보가 직접 전화해 데려왔다고 알려진 박지현 공동선대위원장도 지난 24일 독단적인 기자회견으로 민주당의 분열을 또 한 번 일으킨 바 있다. 그의 이날 호소에는 지난 민주당의 과오에 대한 반성과 앞으로의 성찰을 담았다. 이 호소를 계기로 계파 간의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계파 간의 평가가 엇갈린 탓이다.

“외부 비대위원장이 마땅히 할 만한 발언”이라는 이재명계 측의 평가와 “해당 행위에 버금가는 기행”이라는 이낙연계의 평가가 나왔다. 

계파 갈등
해결사로?

현재 문 전 대통령의 등판론은 일부 극성 ‘이낙연계’의 주장에 불과하지만, 한 정치 평론가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친문(친 문재인)과 친노(친 노무현)와 더불어 친명(친 이재명)계 까지 한 번에 품을 수 있는 인사는 현재 문 전 대통령밖에 없는 것은 사실”이라 말했다. 이어 “당의 분열이 계속된다면 낭설로 치부되는 주장이 현실이 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라 전했다.


<ingyu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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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바빠진 검찰의 두 얼굴

갑자기 바빠진 검찰의 두 얼굴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법조계와 정치권에서 검찰을 비판하기 바쁘다.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을 4년간 수사해 무혐의로 판단했는데 재수사에 들어가자, 주가조작 입증 정황 증거가 속속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또 내란 핵심 피의자에 대한 보석을 법원에 요청한 것에 대한 지적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두 사건 모두 특검과 연관돼 검찰이 특검을 견제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검찰이 정권이 바뀌자 미진했던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3대 특검과 관련된 김건희 여사의 주가조작에 대해 새로운 증거를 확보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검찰의 부실 수사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검찰이 특검과 주도권 경쟁을 하는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재수사하자 정황 증거 윤석열 전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재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검찰이 김 여사의 육성이 담긴 통화 녹음파일 수백개를 새롭게 확보한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김 여사를 무혐의 처분했을 때와 달리 김 여사가 주가조작 가능성을 인식한 정황이 담긴 증거를 확보한 것이다. 김 여사는 또 지난해 7월 초 검찰의 조사가 임박했을 당시 김주현 전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과도 30분 넘게 통화한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을 재수사하고 있는 서울고검 형사부(부장검사 차순길)는 최근 미래에셋증권을 압수수색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에 동원된 김 여사 명의 미래에셋증권 계좌 거래 경위를 확인하기 위한 압수수색으로, 검찰은 이 과정에서 김 여사가 미래에셋증권 계좌를 담당하던 직원과 2009년부터 약 3년 동안 통화한 녹음파일 수백개를 새로 확보했다고 한다. 이 시기는 2010년 말경부터 시작된 2차 주가조작 시기와 겹친다. 검찰이 해당 녹음파일들을 분석한 결과 김 여사가 ‘주가조작 일당에게 계좌를 맡기고 수익이 나면 그중 40%를 그 일당들에게 주기로 했다’ ‘그쪽에서 주가를 관리하고 있다‘는 취지로 말한 육성 녹음파일이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녹음파일에 등장하는 증권사 직원도 최근 검찰 조사에서 김 여사가 주식 매매 세력에 가담했다고 당시 생각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한다. 검찰은 김 여사가 본인 계좌가 주가조작에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김 여사 측은 “원래 일임매매하면 10~30% 수익은 보장해 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 사건을 2020년부터 4년 넘게 맡았던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같은 증권사를 압수수색하면서도 해당 통화 녹음을 확보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걸로 파악돼 ‘부실 수사’ 논란이 일고 있다. 수사팀은 김 여사 미래에셋 계좌에서는 2010년 11월 3일~12월 3일 사이 주가조작이 의심되는 거래가 발생했는데, 전화 주문을 한 게 아니라 홈트레이딩시스템(HTS)으로 이뤄진 거래여서 김 여사가 증권사 직원과 통화한 내용은 수사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김 여사 육성 수백개 녹취파일 이제야? 계좌 로그인 기록엔 블랙펄 IP 주소도 당시 수사팀은 전화 주문 방식으로 거래된 다른 증권사 5곳(신한·DS·DB금융·한화·대신)에서는 김 여사가 통화한 녹음파일을 모두 확보해 분석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또 재수사를 통해 블랙펄인베스트먼트(이하 블랙펄)와 김 여사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정황도 파악했다. 김 여사 명의의 주식 계좌에 여러 차례 접속한 IP 주소가 블랙펄 사무실로 확인된 것이다. 이전 수사팀은 김 여사 계좌에서 주식 매매 시점에 HTS에 접속해 있던 IP 주소들만 분석했는데, 재수사팀은 HTS 프로그램에 로그인하는 시점에 사용된 IP 주소들까지 미래에셋증권에 추가 요구한 끝에 해당 흔적을 찾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재수사팀은 블랙펄 측이 IP 주소를 숨기기 위해 김 여사 아이디로 HTS를 이용할 때 별도의 무선 인터넷 장비를 이용했지만, HTS 프로그램 로그인 시점에는 실수로 사무실 인터넷망을 몇 차례 이용했다고 추정하고 있다. 김 여사 계좌를 관리하며 주가조작을 주도했던 블랙펄의 IP가 없는 것이 김 여사 불기소 결정 이유 중 하나였지만 이마저도 뒤집힌 것이다.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김건희 여사의 주가조작 의혹 수사와 관련해 검찰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은 지난 19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검찰이 혐의 없다고 했다가 정권이 바뀌고 나서야 재수사에 들어가 파일을 찾아냈다”며 “정말 스스로 자폭한 일이다. 국민들이 보기엔 참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유 전 총장은 “미래에셋도 압수수색했다고는 하지만, 그 중요한 부분은 건드리지 않았다는 것 아니냐”며 “검찰이 그걸 알고 그랬든, 모르고 그랬든 지금 와서 보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이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인지 정황이 담긴 녹음파일을 언제 확보했는지 답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민주당 문금주 원내대변인은 지난 19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이 4년 전 압수수색을 하고도 확보하지 못했던 김건희 주가조작 증거가 정권이 바뀌자마자 검찰발로 쏟아지고 있다”면서 “주가조작의 ‘스모킹건’인 녹음파일을 검찰이 언제 확보했는지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변인은 “새롭게 공개된 육성 파일에는 김 여사가 맡긴 구체적 액수와 수익 배분 내용이 명확하게 담겨있다”면서 “검찰은 4년 동안 존재를 몰랐다가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곳에서 우연히 파일을 발견했다고 하는데, 이 말을 믿으라는 말이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지난 4년 동안 권력에 기생하며 선택적 수사로 김건희에게 면죄부를 줘왔던 검찰의 족적이 확연히 남아있는데 국민을 우롱하지 말라”고 지적했다. 뒤집히는 불기소 이유 문 대변인은 “김건희만이 아니라 검찰도 특검 대상”이라며 “민중기 특검은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뿐만 아니라 검찰 면죄부 수사의 진실도 철저히 수사해 책임자를 법의 심판대에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정청래 의원은 지난 18일 MBC 라디오 <권순표의 뉴스하이킥>에 출연해 “김건희에게 면죄부를 줬던 검사들을 당장 수사해야 하고, 당장 구속시켜야 한다”며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김건희 특검의 수사 대상”이라고 말했다. 부실 수사로 김씨를 무혐의 처분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취지다. 정 의원은 “같은 검사인데 그때 수사했던 검사는 왜 그걸(통화 녹취 파일) 발견 못했을까? 왜 지금 검사들은 이걸 발견했을까”라며 “국민들도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같은 당 박주민 의원도 이날 페이스북에 “검찰이 봐줬다는 것이 명백해지고 있다. 주가조작보다 더 심각한 범죄는 주가조작을 봐주는 것”이라며 “특검으로 낱낱이 밝혀야 한다. 김건희씨 주가조작을 봐준 사람들 모두 국민을 우롱한 죄까지 모아 최대한의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장경태 의원도 최소한 수사팀에 대한 감찰·감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장 의원은 19일 YTN 라디오 <뉴스파이팅 김영수입니다>와 인터뷰에서 “해당 검사와 수사관에 대한 최소한의 감사, 감찰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통화 녹취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파일 확보를) 안 했다면 왜 안 했는지 물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의원은 “(주가조작) 1~2차에 걸쳐 3개 계좌를 이용한 사람은 김건희씨밖에 없다”며 “‘공범 중에 왕공범’인 김건희씨만 왜 수사 안 했느냐는 의혹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특검이 출범하자 이제야 증거를 찾았다는 점에서 수사의 진정성보다는 수사의 주도권 다툼에 더 가까운 행보로 읽힌다”며 “특검이 제대로 수사하기 전에 검찰이 기소한다면 특검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에 대해서는 수사를 할 수 없고 공소 유지에만 관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다르다? 김 여사의 주가조작 외에도 검찰은 내란 핵심 피의자의 보석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내란 수사는 하지 않고 오히려 핵심 피의자를 풀어주는 데 일조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지난 1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재판장 지귀연)는 오는 26일 구속 기간 만료를 앞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 대해 조건부 보석을 결정했다. 재판부는 보석 허가 이유에 대해 “현행 형사소송법에 따른 1심의 구속 기간이 최장 6개월로 그 기간 내 심리를 마치는 게 어렵다”며 “구속 기간 만료를 앞두고 피고인 출석을 확보하고 증거인멸을 방지할 보석 조건을 부가하는 결정을 하는 것이 통상의 실무례라는 점을 고려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김 전 장관은 지난해 12월27일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 기간은 2개월이 원칙이며, 필요 시 2개월 단위로 2차례 갱신할 수 있다. 이에 법원은 지난 2월25일과 4월22일 김 전 장관의 구속 기간을 갱신했다. 검찰 측은 구속 기간 만료를 열흘가량 앞둔 상황에서 재판부에 보석 조건부 직권보석을 요청했고, 김 전 장관 측은 보석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구속 기간 만료 시에는 단순 석방되는 반면, 보석으로 풀려날 경우 여러 조건이 따라붙는 탓이다. 재판부는 보석 조건으로 ▲법원이 지정하는 일시와 장소에 출석할 것 ▲증거를 인멸하지 않을 것 ▲법원 허가 없이 외국으로 출국하지 않을 것 ▲사건과 관련된 피의자나 피고인, 참고인이나 증인 등과 연락을 주고받지 않을 것 ▲주거 제한 ▲보증금 1억원 납부 등을 명령했다. 김 전 장관이 이 같은 보석 조건을 어길 시에는 보석이 취소되고 보증금이 몰취되며,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되거나 20일 이내의 감치에 처하게 된다. 앞서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구속 기소된 조지호 경찰청장은 혈액암에 따른 건강악화를 이유로 보석 청구가 받아들여져 지난 1월 보증금 1억원 납부와 사건 관계인 등과 연락 금지 등을 조건으로 석방됐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 기소된 윤석열 전 대통령은 지난 3월 법원의 구속 취소 결정에 따라 석방됐다. 김 전 장관의 보석으로 인해 노상원 전 사령관,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 이진우 전 국군수도방위사령관,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 문상호 전 국군정보사령관 등 내란 핵심 피의자들도 보석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군 검찰은 최근 재판에서 이들에게 직권 보석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실 수사·내란 동조 등 비판 나와 “특검 시작하면 검찰은 할 게 없다” 다만 김 전 장관이 보증금 제출과 사건 관계자와 연락할 수 없는 조건이 붙은 이런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불복했으며 이로 인해 오는 26일 무조건 석방될 상황인 점을 고려하면, 다른 내란 핵심 피의자들도 보석 결정에 불복하고 석방을 노릴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과 군검찰은 구속 기간 만료로 석방돼 내란 핵심 피의자들이 다시 모이는 것을 방지하고자 조건부 보석을 요청했다는 입장이지만 ‘내란을 비호하는 행위’ ‘특검을 견제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특검에서 내란종사혐의로 내란 핵심 피의자들의 신병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조은석 특검은 이를 방지하기 위해 지난 18일 김 전 장관을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와 증거인멸교사 혐의로 추가 기소했다. 비상계엄 하루 전인 지난해 12월2일 대통령경호처를 속여 비화폰을 지급받아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에게 전달하고, 같은 달 5일엔 수행비서 역할을 한 민간인 양모씨에게 계엄 서류를 없애라고 한 혐의다. 이는 경찰청 비상계엄 특별수사단 수사로 새롭게 드러난 부분이다. 수사 기록을 넘겨받은 조 특검이 임명 6일 만에 곧장 수사에 돌입한 것은 김 전 장관의 신병 확보를 유지하기 위한 의지로 풀이된다. 내란 특검이 김 전 장관에게 새 혐의로 추가 기소한 데 이어 구속영장을 청구한다면 그의 구속 상태가 유지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김 전 장관이 윤 전 대통령 등 사건 관계자와 연락하거나 당시 상황에 대한 ‘말 맞추기’를 할 수 있다는 우려를 일정 부분 덜 수 있다. 특검 입장에서는 기존 수사에서 밝혀지지 않은 외환 의혹 수사를 위해서도 김 전 장관의 신병 확보를 수사의 ‘첫 단추’로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같은 이유로 내란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주요 군 장성들이 내란 특검 초기 수사의 주요 대상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특검 경험이 있는 한 변호사는 “특검 입장에서는 (주요 인물을) 그냥 풀려 나가게 둘 수 없다는 기조일 것”이라며 “(다른 사령관에 대해서도) 추가로 기소할 것을 찾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짚었다. 다만 김 전 장관 측은 특검의 기소를 두고 “수사 준비 기간 중에 있어 공소 제기할 권한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직권을 남용해 김 전 장관을 불법 기소했다”며 공소가 기각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특검이 수사 시작을 서둘러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특검이 수사를 시작하면 검찰에서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추가 기소 가능성은? 특검을 경험한 한 변호사는 “최근 검찰의 행보는 검찰개혁을 앞두고 특검과 힘겨루기를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며 “특검 임명 후 20일 동안 특검팀을 구성하는 동안 수사 실적으로 올리거나 해서 특검 내에서 검찰의 목소리를 더 키우기 위해 갑자기 새로운 증거를 갖고 오고 구속 만료를 앞둔 피의자들의 보석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이를 막기 위해서는 조은석 특검처럼 특검이 수사를 빨리 시작해 검찰이 사건에서 손을 뗄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이 우선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