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인’ 문재인 두 가지 역할론

떠난지 얼마나 됐다고…대북 특사? 선거 등판?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지난 2020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어떤 대통령으로 남고 싶냐”는 기자의 질문에 “잊혀진 사람으로 남고 싶다”고 대답했다. 당시 언론과 평론가 등은 소박한 문 전 대통령의 성품이 드러난 발언이라며 임기 후에 꼭 그렇게 될 것이라 입을 모았다. 그러나 그의 ‘소박한’ 바람은 이뤄지지 않는 모양이다. 정치계 인사들은 아직 문 전 대통령을 잊을 생각이 없어 보인다. 야권, 여권을 막론하고 그의 행보에 대해 정계는 이런저런 예측을 하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역할론이 급부상한 시기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한국 방문이 다가올 쯤이었다. 문 전 대통령 측의 고위 관계자는 바이든 미 대통령의 방문 몇 주 전, 바이든 측이 문 전 대통령과의 만남을 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백악관 측이 현직 대통령과 만남을 한 뒤, 전직인 문 전 대통령도 만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전례 없는
전직 만남

일방적인 주장으로 치부됐던 ‘바이든·문재인 회동설’은 진보 스피커들에 의해 확대, 재생산됐다.

지난달 29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의 진행자 김어준씨는 “현직 미국 대통령이 우리나라 전직 대통령을 따로 만난다는 것은 한 번도 없던 일”이라며 “우리나라에서만 없던 일이 아니라 미국 대통령이 다른 나라 방문하는데 전직 대통령을 따로 만나겠다고 요청하는 일은 이례적인 일”이라 발언했다. 

이런저런 소문에 반신반의하고 있었던 대중은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의 발언으로 더욱 확신을 가지게 됐다.


문재인정부에서 국정상황실장을 역임했던 윤 의원은 지난 19일 MBC라디오에 출연해 “바이든 대통령이 보자고 연락 온 것은 확실한 사실”이라며 “분명한 것은 문 전 대통령은 가만히 계셨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둘의 만남이 가시화되자 정치계는 분주해졌다. 실제로 둘이 만나게 되는 건지, 만나게 된다면 어떤 목적으로 만나는 건지 여러 가지 해석들이 난무했다.

문 전 대통령 측은 단지 “친분 때문”이라는 이유를 덧붙였지만, 진보진영에서는 ‘윤 대통령에게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라는 해석을, 보수진영에서는 ‘말도 안 되는 낭설’이라는 논평을 잇따라 내보냈다.

결국 ‘바이든-문재인 회동’은 ‘10분간의 전화 통화’로 대체됐고, 그동안 떠돌던 해석들과 서로를 향한 날선 논평들은 잠시 일단락됐다.

그러나 이번엔 10분간 전화 통화에서의 주고받은 내용에 관심이 집중됐다. 회동설이 전화 대담으로 축소됐지만 ‘전화로라도’ 바이든 미 대통령이 문 전 대통령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지 않겠냐는 해석이 돌았기 때문이다.

전화 통화에 발맞춰 당초 제기됐던 ‘문재인 대북 특사설’이 힘을 받았다. 사실, 둘의 회동설이 떠돌 때 이미 바이든 대통령의 ‘대북 특사 권유’는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였다. 무산되기 전까지 정계 관계자들은 ‘바이든이 직접 만나려는 목적은 북한과의 연결 라인이 견고한 문 전 대통령의 힘을 빌리려는 것’이라는 예측을 내놨다.

발단은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의 제안이었다.


태 의원은 지난 12일 권영세 통일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대북 특사에 문재인 대통령도 고려해야 한다”며 “김정은과 제일 많이 만난 대통령”이란 표현을 썼다. 이에 권 장관은 “충분히 검토해볼만하다”고 화답하며 “(미국과)사전에 이미 교감이 있었다”고 발언해 주목을 받았다.

극에 달한 북 도발…주 1회꼴 발사
바이든-문재인 전화통화 내용 주목

이들의 청문회를 통해 ‘문재인 대북 특사설’은 처음 알려졌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문 전 대통령 측이 바이든 대통령과의 만남을 주장하니 ‘대북 특사설’은 힘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사실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전직 대통령의 대북 특사’는 매우 어색한 그림이었다.

그간 전임 대통령이 대북 특사를 간적이 없기 때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최초로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뒤, 북한과 본격적인 대화 물꼬를 튼 한국정부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 전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하며 남북 간의 관계는 이어졌다. 특히, 문 전 대통령은 유일하게 북한 지도자와 세 번 만나고 북미 정상 화담을 이끌어내는 등 한때 북한과의 관계를 가장 많이 발전시킨 공로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이는 모두 현직에 있을 때 이야기다. 김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은 퇴임 후 북한과의 관계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았고, 문 전 대통령도 아직은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 않다.

여기서 주목되는 게 미국 전직 대통령들의 과거 행보다. 미국은 여러 차례 전직 대통령을 북한에 보낸 전례가 있다. 미국은 북한과의 갈등이 심각해질 때마다 북한과 사이가 ‘나쁘지 않은’ 인사들을 북한으로 보내 대화로 갈등을 봉합하려 애썼다.

다만 미국의 전임 대통령이 대북 특사로 갈 때는 항상 북한의 ‘호감’과 ‘전례 없는 갈등 상황’이란 조건을 충족해야 했다. 그 첫 번째 주자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다. 카터 전 미 대통령은 북한이 좋아하는 미국 대통령 중 한 사람이었다.

그가 1976년 대선 선거 유세 때 주한 미군 철수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당시 박정희정부에 유화적이지 않았던 카터 대통령은 군비 증강이 지지부진한 이유를 들며 한국의 자주국방을 주장했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만난 1979년 6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내 개인적인 바람은 긴급조치 9호를 철회하고 재소자들을 가능한 많이 석방하는 것”이라며 “한국이 국민총생산(GNP)의 6%를 국방비에 쓰고 있는 반면, 북한은 GNP의 20%를 국방비에 쓰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때 북한이 가졌던 카터 전 대통령에 대한 호감은 퇴임 후에도 이어졌다. 클린턴 행정부가 카터 전 대통령을 대북 특사로 파견한 이유다. 

미국처럼
한국도?


1994년, 북한은 꽁꽁 숨기고 있던 핵개발 의지를 본격적으로 드러내며 세계의 지탄을 받았다. 세계가 북한 핵개발에 대한 의심을 품을 때마다 북한은 ‘절대’ 그럴 일 없을 거라며 수차례 거짓말을 해왔다. 북한은 강요받지도 않은 핵개발 과정을 스스로 공개했고 원자력발전소를 지을 목적이라 둘러대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랬던 북한이 결국 핵금지확산조약기구를 탈퇴하며 핵개발을 선언하자, 클린턴정부는 뒤통수를 맞았다고 판단했다. 미국은 ‘군사 움직임을 할 수 있다’고 북한 측에 계속해서 경고했다. 북한의 반응이 없자 말뿐이었던 경고는 행동으로 옮겨졌다.

미국은 동해에 항공모함 5척을 보내고, 한국에 군비를 증강하는 등 실제 군사 움직임을 보였다. 이에 북한은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특사 교환 실무회담에서 “전쟁나면 서울은 불바다가 될 것”이라 맞불을 놨다. 양국이 물러서지 않는 태도를 취하며 ‘한반도 전쟁 위기설’은 걷잡을 수 없는 형태가 됐다. 

카터 전 대통령은 본인의 자서전에서 “미국정부의 허가와 상관없이 북한에 갈 것을 결심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 밝혔다. 실제로 클린턴 대통령도 본인의 자서전에서 “이때 카터 대통령이 아니었으면 전쟁 준비를 멈추지 않았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우여곡절 끝에 북한에 간 카터 전 대통령은 유엔에서 추진하고 있던 대북 제재를 폐지하는 조건으로 북한의 핵개발을 동결시켰다. 최초로 북한에 간 전임 미국 대통령이 이뤄낸 유일무이한 성과였다. 그러나 후에 북한이 끝까지 핵개발을 포기하지 않으며 카터 전 대통령은 두 차례 더 북한을 방문해야 했다. 

이후 두 번째로 북한을 방문한 미국 대통령은 다름 아닌 빌 클린턴이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카터 전 대통령을 북한에 보낸 장본인이다.


이때도 북한의 ‘호감’과 ‘전례 없는 갈등’이란 조건이 충족됐다. 북한은 2009년 3월 북·중 접경지대서 탈북자 문제를 취재 중이던 미국 방송국 소속 로라 링과 유나 리 기자를 체포해 억류시켰다. 두 기자는 각각 중국계, 한국계 미국인이었다.

자국민의 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두고 있는 미국정부는 해당 사실이 알려지자마자 북한 주재 스웨덴 대사를 통해 둘을 석방할 것을 요구했다. 둘의 자존심 싸움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자국의 ‘폐쇄성’을 중요시하는 북한과 자국민의 ‘생명권’을 중요시하는 미국 사이에 양보할 수 없는 싸움이 시작됐다.

국경없는 기자회(RSF)는 즉각 석방을 요구하는 성명을 내며 이 문제를 전 세계에 알렸고, 미국정부는 지속해서 북한 정부와 협상에 임했다.

억류 3개월이 지난 6월경, 북한정부는 두 기자에게 노동 교화형 12년을 선고하며 미국의 입장을 더욱 난처하게 만들었다. 협상에 진정이 없던 중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백신 들고
핵 교감?

7월 중순 무렵 억류된 기자들이 가족들과의 통화에서 “북한 당국 측이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을 특사로 원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카터 전 대통령 특사 때 만들어놨던 인연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결국 클린턴 전 대통령은 양국의 풀 수 없던 난제를 직접 해결하러 북한에 갔다.

평양에 약 21시간 동안 체류한 것으로 알려진 클린턴 전 대통령은 정상 방문에 버금갈 정도로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1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면담했고, 각처 관료와 다섯 차례 면담 및 만찬을 이어갔다.

그의 노력 덕분에 두 기자는 억류된 지 약 140일 만에 고국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렇다면 문 전 대통령은 대북 특사의 조건을 충족할까. 우선 ‘전례 없는 위기’ 상황은 충족된다. 북한은 최근 뒤늦은 코로나 사태로 고통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에 면역이 없는 상태에서 바이러스의 침투를 받았기 때문이다. ‘고립된’ 북한에 코로나 백신이 있을 리도 만무하다.

폐쇄로만 일관하던 북한은 무방비 상태에서 방에 구멍이 뚫렸고, 코로나는 빠르게 북한 내부에 퍼지고 있다.

북한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에선 매일 10만명 이상의 코로나 환자가 나오고 있다. 이 발표를 그대로 믿는다면 누적 환자는 수백만명에 그친다. 그러나 북한 전문가들은 이 수치를 그대로 믿어선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한 북한 전문가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에서 “누적 환자가 1000만명은 될 것이라 가정해도 무방하다”며 “그동안 북한의 통계는 정확했던 적이 없다”고 전했다. 그가 주장한 최대 1000만명은 북한 전체 인구의 절반가량에 해당하는 수치다.

이 전문가는 “김정은이 실권을 쥐고 난 후 ‘전례 없던 혼돈’이 온 것”이라며 “코로나 사태로 인구가 줄고, 사회 전반에 혼돈이 오면 김정은 체제의 위기까지 염두에 둬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같은 움직임을 감안한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인도적 지원에 대해서는 남북 관계의 정치, 군사적 고려 없이 언제든 열어 놓겠다”며 “북한이 호응한다면 코로나 백신을 포함해 의약품, 의료기구, 보건 인력 등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제안한 바 있다.

선거 전후 당에 간접적인 영향?
정치권 인사들 발길 끊이지 않아

북한과의 외교에서 유화적이지 않을 것을 선언한 윤 대통령이지만, 북한의 코로나 문제에 대해선 최대한 지원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북한 측의 반응은 싸늘했다. 오히려 윤석열정부를 비난하기에 급급했다.

북한은 “희대의 부정부패 왕초이자 동족 대결광인 이명박의 사환꾼들, 이런 자들이 국민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5년 동안 주인 행세를 하겠다니 참으로 ‘망한민국’이 아닐 수 없다”고 조롱했다. 

전문가들은 문 전 대통령이 만일 특사로 간다면 코로나 ‘백신 전달이 우선 목적일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북한의 체제 위기까지 불러올 수 있는 코로나 사태를 봉합하려면 특사가 필요하고 그 적임자가 문 전 대통령이라는 주장이다. 

이 같은 문 전 대통령의 역할론이 여권에서 맴돌자 이번에는 야권에서 선거 틍판론이 제기됐다. 지난 대선 때 이낙연캠프를 도왔던 민주당 의원 측의 한 인사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문 전 대통령이 간접적으로라도 당에 도움 될만한 행보를 보였으면 한다”며 “현재 민주당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사람은 문 전 대통령뿐”이라 말했다.

그는 최근 민주당 이재명 인천 계양을 후보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자 민주당에 내분이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같이 말했다.

당초 민주당의 텃밭이라 불리던 인천 지역 보궐선거에 출마한 이 후보는 비교적 약세라 평가받는 국민의힘 윤형선 후보와 지지율 격차를 벌리지 못하고 있다. 이를 계기로 민주당에 위기가 찾아오며 계파 갈등이 다시금 불거졌다.

이 후보가 직접 전화해 데려왔다고 알려진 박지현 공동선대위원장도 지난 24일 독단적인 기자회견으로 민주당의 분열을 또 한 번 일으킨 바 있다. 그의 이날 호소에는 지난 민주당의 과오에 대한 반성과 앞으로의 성찰을 담았다. 이 호소를 계기로 계파 간의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계파 간의 평가가 엇갈린 탓이다.

“외부 비대위원장이 마땅히 할 만한 발언”이라는 이재명계 측의 평가와 “해당 행위에 버금가는 기행”이라는 이낙연계의 평가가 나왔다. 

계파 갈등
해결사로?

현재 문 전 대통령의 등판론은 일부 극성 ‘이낙연계’의 주장에 불과하지만, 한 정치 평론가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친문(친 문재인)과 친노(친 노무현)와 더불어 친명(친 이재명)계 까지 한 번에 품을 수 있는 인사는 현재 문 전 대통령밖에 없는 것은 사실”이라 말했다. 이어 “당의 분열이 계속된다면 낭설로 치부되는 주장이 현실이 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라 전했다.


<ingyu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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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 오세훈 한강버스, 아라호 흑역사 오버랩

1000억 오세훈 한강버스, 아라호 흑역사 오버랩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시가 돛을 올린 한강버스가 고장 끝에 결국 멈췄다. 과거 ‘아라호 사업’도 재조명되고 있다. 아라호 사업은 2010년대 초반 경인 아라뱃길을 중심으로 관광 활성화와 교통난 해소를 위해 인천시와 공동으로 수백억원을 들여 기획한 수상 교통 프로젝트였다. 아라호는 시민들의 외면과 운영 적자로 인해 자취를 감췄다. ‘반면교사’로 삼았던 걸까? 서울시는 한강을 따라 운행되는 수상 교통수단으로, 서울 전역을 연결하는 새로운 교통망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으로 지난 18일 한강버스 운항을 시작했다. 여의도, 잠실, 뚝섬 등 주요 한강변 거점과 지하철역을 연계해 시민과 관광객 모두가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는 게 핵심이다. 관광이냐 출퇴근이냐 서울시는 한강버스를 통해 관광 교통수단을 넘어 서울을 ‘한강 중심의 스마트 모빌리티 도시’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그러나 정식 운항을 시작한 지 열흘 만에 운항이 중단됐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9일 오전 시청에서 열린 주택 공급 대책 관련 브리핑 도중 “한강버스 관련 입장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며 “시민 여러분께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열흘 정도 운행 통해 기계적·전기적 결함이 몇 번 발생하다 보니 시민들 사이에서 약간 불안감 생긴 것도 사실”이라며 “이번 기회에 (운항을) 중단하고 충분히 안정화시킬 수 있다면 그게 바람직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시는 이날부터 10월 말까지 한강버스 시민 탑승을 중단하고 성능 고도화와 안정화를 위한 무승객 시범 운항을 한다. 시는 국내 최초로 한강에 친환경 선박 한강버스를 도입해 지난 18일 정식 운항을 시작했다. 하지만 지난 22일에는 잠실행 한강버스가 운항 중 방향타 고장이 발생했고, 같은 날 마곡행도 운항 준비 중 전기 계통에 문제가 생겨 결항했다. 26일에도 운항 중 방향타 고장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운항 중단과 재개가 반복되자 운항 중단을 결정했다. 과거 아라호의 값비싼 교훈을 남겼지만, 실패 요인을 분석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해석되는 결과다. 한강버스 역시 또 하나의 혈세 낭비 사례가 될 수 있다. 서울시 한 관계자는 “아라호 사례를 철저히 분석해 이번에는 실질적인 시민 편익을 제공하고 지속 가능한 운영 모델을 구축하겠다”고 강조했다. 한강버스가 서울의 새로운 교통 패러다임으로 자릴 잡을지, 아라호의 전철을 밟을지는 향후 몇 년간의 운영 성과에 달려 있다. 서울시 아라호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첫 임기 때인 2010년 서울시가 예산 112억원을 들여 만든 2층 유람선으로 지난 2009년 5월부터 1년5개월을 들여 건조됐다. 오 시장의 지시로 건조된 아라호는 시민들에게 저렴한 요금으로 공연과 한강특화공원 관람이 동시에 가능한 선상문화체험 기회를 제공한다는 영리 목적보다 공공문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민자 유치 대신 재정이 투입된 사업이었다. 당초 아라호를 한강에서 인천 앞바다까지 운항하는 관광 크루즈선으로 활용하려 했으나 여덟 차례 시범 운항과 21회 시험 운항만 했을 뿐 사실상 사업은 중단됐다. 제작 당시부터 경제적 타당성이 부족하다는 논란을 빚었던 아라호는 정식 취항도 해보지 못한 채 팔렸다. 실제 운행이 어려운 상황에서 보험료와 유지비 등 관리 비용에만 연간 1억원이 들어간다는 점도 매각을 선택하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112억원 들여 29억원에 판 아라호 출항 나흘 만에 고장…오, 좌불안석 아라호가 정식 운항에 나서지 못했던 배경에는 서해뱃길 사업을 둘러싼 서울시와 시의회의 갈등도 있었다. 오 시장의 아라호 활용 계획에 당시 더불어민주당이 다수인 시의회가 이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지난 2011년 10월 고 박원순 전 시장이 취임 후 사업 타당성 문제로 매각을 결정하면서 오 시장의 한강 르네상스 사업이 백지화됐다. 결국 서울시는 아라호 매각을 결정한 후 지난 2013년 5월, 106억원의 예정 가격으로 매각 입찰에 나섰으나 응찰자가 없어 유찰됐다. 이후 2차 입찰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알만한 이들은 알겠지만, 선박 사업은 수요를 찾기 어려운 사업 중 하나다. 결국 서울시는 3차 매각 입찰에서 최초 예정 가격에서 10% 인하된 95억원으로 깎았지만 이마저도 입찰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후 같은 해 11월, 4차 매각에서 15% 인하된 90억원에 입찰을 시도했지만 응찰자가 없어 가격 인하의 효과는 전혀 없었다. 그러다 서울시는 지난 2016년 아라호를 매각하지 못하자 결국 임대 쪽으로 사업 방향을 틀었다. 아라호가 정식 운항도 못한 채 6년 넘게 여의도 한강공원 선착장에 방치되면서다. 서울시가 제시한 사업 기간은 연말까지 8개월이고 한 차례 1년간 계약을 연장할 수 있었다. 당시 최저 임대료는 2억6300만원이었다. 아라호는 임대 사업을 시작해 건조 6년 만에 빛을 봤지만, 운항이 종료되는 시점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한강의 애물단지로 전락했던 아라호는 지난 2016년 민간업체인 레츠고코리아가 임대사업권을 낙찰받아 3년간 운영하다가 2018년 이랜드그룹 계열사 이랜드크루즈로 사업권을 넘겨줬다. 이랜드크루즈가 사업권을 따낸 시점은 지난 2018년 3월이지만 실제 운영은 2019년 6월부터 시작됐다. 이전 사업자인 레츠고코리아가 서울시의 계약 위반을 주장하며 유람선과 시설물 반환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랜드크루즈는 1년간의 법정 공방 끝에 지난 2019년 6월부터 운영을 시작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수익성 악화로 아라호의 임대 운영 사업을 1년 만에 접어야 했다. 애물단지 전락하나 이랜드크루즈는 임대계약 갱신청구권(1년)마저 포기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무렵부터는 주식회사 수가 임대사업권을 이어받았다. 이후 마지막으로 인더라인25가 지난해 6월부터 올해 5월까지 사업하는 조건으로 서울시와 지난 2022년 12월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1년 단기 임대계약이 종료된 이후에도 인더라인25가 철거하지 않아 서울시는 골머리를 앓았다. 아라호 운항은 멈췄지만, 선착장을 한 달째 무단 점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더라인25는 계약 연장을 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서울시는 인더라인25를 상대로 명도소송, 점유 이전 금지 가처분, 행정 가처분 등 소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아라호가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수요 예측 실패와 운영비 부담이었다. 당시 서울시는 아라호가 연간 수십만명의 승객을 유치할 수 있다고 예상했으나, 실제 이용객은 예측치의 30%에도 미치지 못했다. 또 노선 설계가 시민들의 일상적인 통근이나 이동과 잘 맞지 않았고, 요금 역시 육상 교통수단에 비해 비쌌다. 결과적으로 관광객 유치에도 한계가 있었고,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아라호는 철수될 수밖에 없었다. 아라호는 건조한 지 15년 만에 민간에 팔렸다. 지난 1월 서울시 한강 유람선 아라호는 5차례 입찰 끝에 약 28억5780만원에 팔려 민간업체에 인도됐다. 2013년부터 총 9번의 입찰을 시도한 결과 3분의 1 가격에 달하는 헐값에 팔린 셈이다. 당시 서울시에 따르면 아라호는 2024년 11월 말 공개입찰을 진행한 뒤 지난달 주식회사 마이랜드와 매각 계약을 체결했다. 길이 58m에 688톤 규모의 아라호는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과 서강대교 남단을 오갔다. 승객은 총 310명까지 태울 수 있다. 음악회, 공연, 결혼식, 영화 상영을 위한 시설도 보유했다. 선착장에는 편의점, 치킨집 등 부대시설도 있었다. 아라호는 건조 후 15년 만에 매각되기까지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다. 후임 고 박원순 시장이 2012년 사업을 백지화하면서 5년간 방치됐다. 2013년 5월 처음으로 공개입찰에 넘겨졌다. 시는 같은 해에만 총 4번의 입찰을 추진했으나, 입찰자가 없어 매번 무산됐다. 실패했지만 이번엔 달라? 서울시는 수의계약 방식으로도 매각을 시도했으나, 매각사의 자금 동원 문제로 불발됐다. 이에 시는 2016년 아라호를 매각하는 대신 민간 위탁하는 방향을 택했고, 2017년부터 민간 위탁을 통해 운영했다. 하지만 임대계약이 만료되면서 지난해 5월 말부터 운항이 중단됐다. 그러자 시는 다시 매각을 시도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총 5차례의 입찰을 진행했고, 같은 해 11월 말 입찰자가 나와 12월 매각 계약을 맺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그간 아라호의 위탁 운영은 선박 운항이 아닌 선착장 내 치킨집 등 부대시설 위주로 돌아갔다”며 “자연스레 선박도 노후화되고, 전반적으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다시 매각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법적 분쟁으로 얼룩진 아라호를 통해 한강에 배 띄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경험했지만, 이번엔 다르다고 한다. 서울시는 이번 한강버스 사업에서 아라호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3가지 전략적 과제를 내세우고 있다. 먼저, 실제 수요 기반의 노선 설계를 강조했다. 또 관광 중심이 아닌, 출퇴근·생활 교통을 고려한 정류장 배치, 그리고 지하철·버스 환승과의 연계를 강화했다는 것이다. 합리적인 요금 체계를 내세우기도 했다. 기존 대중교통과의 환승 할인을 적용하고, 관광·레저용 프리미엄 서비스와 생활 교통 요금제의 이원화를 강조했다. 또 탄소 배출을 최소화한 전기·수소 하이브리드 선박을 도입했고, 실시간 교통 정보 제공 및 안전 관리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한다. 서울시가 한강버스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난해 들인 초기 사업비는 약 542억원으로 향후 발생할 총 사업비는 약 1500억~1750억원으로 예상된다. 아라호 사업비보다 10배가량 많은 혈세가 투입될 예정이다. 한강버스는 출·퇴근용 선박인 만큼 이용객을 충족하기 위해 여러 척의 선박이 필요하다. 지난해 3월 한강버스 운영사는 6척의 선박을 납품받는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현재는 첫 출항 이후 3척이 운항 중이며, 향후 6척의 선박이 모두 납품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밖에도 선착장 시설, 운영 시스템, 접근성 개선 등 다양하고 복합적인 요소가 포함돼 총사업비가 1000억원대 중반까지 증가한다. 묻지 마 10배로 베팅 6시에 나와야 9시 출근 아라호는 ‘유람선 제작’이 중심이고, 공연시설 등이 포함된 문화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의 선박이었다. 시설 설계가 크고 복잡한 부분이 있지만, 수량이 하나라 규모 면에서 제한적이기에 한강버스와 다르다는 결론이다. 반면, 한강버스는 여러 척의 선박을 건조해야 하고, 선착장 설치 또는 보수도 그만큼 갖춰져야 한다. 또 전기 또는 하이브리드 선박을 도입한 만큼, 유지비용도 클 뿐만 아니라 홍보, 안전, 시험 운항 등 여타 부대 비용에 민간투자금 및 보조금 등이 혼합돼있어 사업비 증액은 여러 원인으로 발생한다. 한강버스 사업비가 초기 대비 크게 증가한 이유로 업체 선정 과정에서 계약 조건, 예상보다 오래 걸린 공정률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를테면 선박 제작 능력이 있는 업체와 없는 업체 간의 차이를 분석했는데, 일부 업체는 인프라가 부족하거나 준비가 미흡했다는 평가를 받아 계약이 무산된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강버스는 대중교통 기능이 강조되면서 ‘출퇴근 수단’ ‘교통망 보완’ 등의 역할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따라서 초기 투자비가 크더라도 지속 운영을 통한 수요 확보가 전제된다. 하지만 계획 대비 수요가 예상만큼 확보될지, 운영비와 적자 보전 부담이 얼마나 될지는 논란 중이다. 한편, 한강버스는 정식 운항 나흘 만에 선박의 방향타 고장 등으로 잇따라 멈춰 승객들이 불편을 겪었다. 지난 23일 기준 누적 탑승객이 1만명을 돌파하는 등 시민들의 큰 관심을 받은 한강버스가 정시성 확보가 중요한 대중교통수단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을 지 의문이 커지고 있다. 매체에 따르면 지난 22일 오후 7시쯤 옥수선착장을 출발한 잠실행 한강버스가 강 한가운데서 20여분간 멈춰섰다. 결국 승객들은 종착지까지 가지도 못하고 도중에 내려야 했다. 한강버스 운영사는 고장 선박을 뚝섬 선착장에 접안한 뒤 승객들을 모두 하선시켰고, 뚝섬에서 잠실까지 구간의 운항을 취소했다. 지난 18일 정식 운항을 시작한 지 나흘 만에 발생한 일이다. 이 과정에서 제대로 된 안내 방송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 탑승객은 “20분이 넘게 서 있었고, 안내 방송이 안 나오고 승무원도 안 계시고…. (뚝섬 선착장) 도착하기 2~3분 전에 승무원이 ‘이 배 잠실까지 안 간다’고 뚝섬에 다 내리셔야 된다고…”라고 말했다. 이 사고와 별개로 같은 날 오후 7시30분에 잠실 선착장을 출발할 예정이었던 마곡행 한강버스는 선박 고장으로 아예 결항됐다. 그 바람에 강서 방향으로 이동하려던 시민들은 황급히 다른 교통수단을 찾는 등 불편을 겪어야 했다. 승부수? 무리수? 서울시는 두 선박 모두 전날 밤 안정화 조치를 거쳐 다음 날인 23일 운항에는 차질이 없다고 밝혔다. 또 선내 안내 방송이 없었다는 주장에 대해선 한강버스 운영사가 이상을 감지한 뒤 원인을 파악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려 안내에 일부 지연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현재 한강버스는 마곡-망원-여의도-압구정-옥수-뚝섬-잠실 28.9km 구간을 상하행 7회씩 총 14회(첫차 11시) 운항하고 있다. 소요 시간은 마곡에서 잠실까지 127분이다. 여의도에서 잠실까지는 80분이다. 추석 연휴 이후인 다음 달 10일부터는 출퇴근 시간 급행 노선(15분 간격)을 포함, 평일 기준 왕복 30회로 증편한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