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중학생들이 자동차를 훔쳐 달아났다가 붙잡혔던 사건이 발생했다. 이들 행동이 너무나 생경스러워야 마땅함에도 당혹스럽지 않았던 무엇이었을까. 그만큼 나이 어린 소년들의 일탈·비행·범행이 빈번하기 때문일 것이다.
2017년 7896건이던 촉법소년의 범죄건수가 지난해 1만2501건으로 58% 증가했다는 통계가 이를 뒷받침한다.
심각한 지탄을 받아야 함에도 단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죄에 상응한 처벌을 받지 않고, 이를 악용하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범죄를 저지른 학생이 “나 촉법인데요”라며 경찰에게 당당하게 군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죄에 상응한 처벌을 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 무언가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최근 ‘촉법소년’의 연령을 낮추자는 목소리가 대두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일단 기존의 법적 연령이 정해졌던 70여년 전에 비하면 소년의 신체적 성숙이나 사회환경의 변화를 고려할 때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에는 큰 잡음이 없다. 법은 사회의 변화를 반영하고 그 변화를 담아내야 하는 것이 지당한 일이기 때문이다.
서양에서는 이러한 소년범죄 현상에 대체로 두 가지 방향에서 그 대안을 찾고 있다.
첫째는 형사미성년이나 소년사법 대상 연령을 낮추는 것이다. 미국·영국·호주·프랑스 등의 국가가 형사미성년자 기준연령을 낮게는 6세에서 높게는 13세 사이에서 정하고 있는 것이 그런 추세의 반영이다.
두 번째는 범죄자보다는 범죄 행위와 범죄 내용, 또는 피해 정도 등을 중시해, 행위자의 연령에 무관하게 특정한 범죄 행위에 대해서는 판사로 하여금 최소한의 양형을 선고하도록 강제하는 소위 ‘강제최소양형제(Mandatory Minimum Sentencing)’를 도입하는 것이다.
물론 이 두 가지 대안은 보수적 강경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처벌만이 능사가 아니며, 그들은 처벌보다 보호와 교육의 대상이라고 반박하는 의견도 존재한다. 소년사법이 나라가 보호자를 대신한다는 ‘국친사상’에 근거하고 있음에 비추어, 국가가 보호자적 역할에 손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상반된 견해를 함께 담아낼 묘안은 없을까. 연령의 하향화를 통한 강력한 처벌만이 능사는 아니다. 반대로 보호만이 유일한 대안이나 해결책이 될 수 도 없다. 이 둘은 상호 배타적이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상호 보완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작용해야 한다.
독일의 사례는 우리에게 생각해볼 여지를 남긴다. 독일의 경우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이 처한 환경을 파악해 문제가 발생한 원인을 해결하는 데 주목한다. 문제 학생을 처리해야 하는 대상으로 분류하는 우리나라의 상황과는 조금 다른 방식이다.
결국 문제 학생을 보호하면서, 범법 행위를 억제하는 국가가 역할을 재정립하는 게 중요해진 시점이다. 마치 사법제도가 불구속을 원칙으로 하되, 필요한 경우 구속할 수도 있도록 한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사형제도가 아예 폐지된 것보다 존치는 하되 집행은 하지 않는 것이 더 억제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처럼, 소년법도 일정한 연령에 대해 처분이나 처벌을 할 수 없도록 강제하는 것보다는 형사미성년에게는 보호처분이, 촉법소년에게는 지금과 같이 처분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필요한 경우 처벌 할 수 있는 예외적 출구를 마련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적어도 막무가내로 “나 촉법인데요”라는 말하는 행동은 사라지지 않을까. 범죄와 처벌의 주요 요소인 ▲범죄 ▲피해 ▲피해자와의 관계 ▲범행의도 등과 무관하게 단순히 나이 하나만으로 형사 처벌 여부가 결정돼서는 안 되지 않을까.
[이윤호는?]
▲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
▲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