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방송대 총장 알박기? 교육부 이중잣대 추적

뭐가 그리 급해서 ‘후다닥’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국립대 총장 임명을 두고 교육부의 이중잣대가 도마에 올랐다. 비슷한 논란의 총장 후보자에 대해 서로 다른 판단을 내린 것. 대학-교육부-청와대로 이어지는 국립대 총장 인사시스템이 ‘보이지 않는 손’에 휘둘리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시스템에 대한 신뢰는 공정성과 일관성에서 나온다. 사안에 따라 달라지는 잣대는 불신의 시작이다. 특히 인사 과정에서 기준이 흔들리면 시스템 자체를 믿을 수 없게 된다. 의혹과 논란으로 얼룩진 인사는 그 꼬리표를 평생 떼어낼 수 없다. 

흔들리는
일관성

최근 한국방송통신대학교(이하 방송대) 총장 임명 과정에서 인사시스템과 관련한 논란이 불거졌다. 총장 후보자에 대한 교육부와 청와대의 검증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더 나아가 국립대 총장에 대한 검증 기준이 후보자에 따라 ‘널을 뛴다’는 의혹도 나왔다. 

1972년 3월9일 ‘한국방송통신대학설치령’에 근거해 개교한 방송대는 올해 개교 50주년을 맞았다. 지난해 설치령이 폐지되고 ‘한국방송통신대학교설립및운영에관한법률’에 따라 운영되고 있다. 

방송대는 국립대학이면서 국내로는 최초, 세계 기준으로는 영국 오픈 유니버시티에 이은 두 번째 원격대학이다. 학생 수와 규모 면에서 국내 원격대학 중 가장 인지도가 높다. 50년 동안 80만명이 넘는 동문을 배출했다.


1993년 3월1일 ‘한국방송통신대학’에서 ‘한국방송통신대학교’로 명칭을 변경하면서 학교의 수장이 ‘학장’에서 ‘총장’으로 바뀌었다. 앞서 6명의 학장이 이른바 방통대를 이끌었고, 이후 7명의 총장이 방송대의 선장 역할을 맡았다. 

지난 4일, 방송대 제8대 총장으로 고성환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취임했다. 고 신임 총장은 1985년 서울대 국문학과를 졸업한 후 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서강대 연구교수, 한국어세계화재단 수석연구원으로 활동했다. 

2003년부터 방송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교무부처장, 교양교육원장, 인문과학대학장, 통합인문학연구소장 등 방송대 주요 보직을 두루 거쳤다. 

총장 임명권이 이사장에게 있는 사립대학과 달리 국립대학은 총장 임명 때 교육부와 청와대의 결정이 중요하다. 대학에서 투표를 통해 선출된 1~2순위 총장 후보자를 교육부에서 검증한 후 교육부 인사위원회에서 가부를 정하면 교육부 장관이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을 요구하는 방식이다. 최종 임명 여부는 국무회의에서 결정된다.

국립대 총장 검증 논란
겸직·체납 의혹에도 취임

고 신임 총장은 방송대 총장 임용후보자 선거에 기호 2번으로 출마했다. 그는 ‘뉴노멀시대, 대학교육의 새로운 표준’이라는 비전을 바탕으로 ▲사용자 중심의 디지털 학습 환경으로 혁신 ▲교직원 처우 개선 ▲교원의 교육·연구 활동 지원 강화 등 8개 공약을 내세웠다.

지난해 11월24일 방송대 총장추천위원회가 실시한 선거에서 고 신임 총장은 결선투표 끝에 1순위 총장 후보자로 결정됐다.


문제는 고 신임 총장을 둘러싼 의혹들이다. 현재 그는 ▲겸직 위반 ▲세금 체납 ▲재산신고 누락 등의 의혹을 받고 있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교육부는 지난해 10월25일~11월5일 진행한 방송대 종합감사에서 총장 후보자 관련 의혹을 인지했다. 그럼에도 총장 임명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면서 방송대 안팎에서는 그 배경에 의구심을 드러내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고 신임 총장은 2007년 방송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2004년 5월 설립된 ㈜윌튼메이라는 회사의 이사, 대표이사, 사내이사 등을 지냈다. 윌튼메이는 분양대행업·부동산 컨설팅·부동산 연구 및 기획용역업·부동산 임대업 등을 하는 회사로 2017년 12월 해산됐다. 

국립대 교수는 공무원 신분이기 때문에 겸직을 위해서는 기관장 승인이 필요하다. 국가공무원법 제64조(영리 업무 및 겸직 금지) 제1항은 ‘공무원은 공무 외에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업무에 종사하지 못하며 소속 기관장의 허가 없이 다른 직무를 겸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선거 과정서
의혹 드러나

국가공무원 복무규정 제25조(영리업무 금지)에도 ▲공무원이 상업, 공업, 금융업 또는 그 밖의 영리적인 업무를 스스로 경영해 영리를 추구함이 뚜렷한 업무 ▲공무원이 상업, 공업, 금융업 또는 그 밖에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체의 이사, 감사 업무를 진행하는 무한책임사원, 지배인‧발기인 또는 그 밖의 임원이 되는 것을 막고 있다.

방송대 전임교원 임용계약서 5조(을의 의무) 역시 ”을은 교육공무원으로서 제 법령과 본교의 제 규정을 성실히 준수하고 최선을 다해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며 이를 위해 모든 역량과 기술을 최대한 발휘한다‘는 부분이 존재한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고 신임 총장은 윌튼메이 설립부터 해산에 이르기까지 약 13년(2004~2017년) 동안 교무부처장(2010년 9월~2016년 9월), 국어국문과장(2017년 1월~2018년 12월) 등의 보직을 맡았다. 고 신임 총장이 기관장의 승인 없이 최소 10년 이상 겸직한 사실은 총장 후보자 선거가 있기 전까지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더 큰 문제는 당시 윌튼메이의 회사 사정이다. 고 신임 총장이 깊숙이 관여해온 윌튼메이는 서울시 고액·상습 체납자 명단에도 이름을 올릴 정도로 자금 상황이 좋지 않았던 걸로 추정된다. 

2016년 10월17일 기준 서울시가 공개한 ‘기공개 고액‧상습체납자 명단(법인)’에는 고 신임 총장이 윌튼메이의 대표자로 올라있다. 윌튼메이는 2013년 7월에 서울시가 부과한 지방소득세 등 38건 총 4200만원의 세금을 체납했다.  

앞서 2014년에는 저축은행 대출 문제로 윌튼메이와 고 신임 총장 앞으로 5억원가량의 채무가 발생했다. <일요시사>가 단독으로 입수한 판결문에 따르면 ○○○○저축은행의 파산관재인 예금보험공사는 윌튼메이와 고 신임 총장을 상대로 대여금 소송을 제기했다. 

공주교대 27개월째 총장 공석
정부에 밉보이면 임명 안 된다?


윌튼메이는 2006년 12월 ○○○○저축은행과 연 이자율 13%, 지연배상금률 연 25%로 45억원에 대한 여신거래약정을 체결했다. 만료일은 6개월 뒤인 2007년 6월로 정했다. 이 과정에서 고 신임 총장이 윌튼메이 채무에 대한 연대보증을 섰다.

이후 2012년 3월 ○○○○저축은행이 파산하면서 예금보험공사가 파산관재인으로 선임됐다. 

당시 재판부는 윌튼메이와 고 신임 총장이 예금보험공사에 5억500만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선고했다. 여기에 2013년 11월12일부터 채무를 모두 변제하는 날까지 연 25%의 이자를 지급하라는 판결도 내렸다.

고 신임 총장의 항소는 ‘화해권고 결정’으로 마무리됐다. 고 신임 총장은 해당 채무를 최소 2018년까지 변제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2018년 예금보험공사가 고 신임 총장을 상대로 ‘채권압류 및 추심명령’을 진행할 당시 채무액은 10억원 이상으로 불어난 상태였다. 대여금 소송에서 지급하라고 선고한 5억500만원에 이자가 5억1000만원가량 붙었던 것.

방송대 관계자에 따르면 이 시기부터 고 신임 총장의 급여가 압류되기 시작했다. 방송대가 국립대학이다 보니 고 신임 총장의 채무에 있어 ‘대한민국’이 제3채무자로 지정됐기 때문. 다시 말하면 방송대는 최소 2018년부터 고 신임 총장의 채무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방송대 관계자에 따르면 압류는 지난해 12월에 이르러서야 해제됐다. 고 신임 총장이 1순위 총장 후보자로 선출된 이후다.

이 과정에서 고 신임 총장은 방송대 인문대학장(2020년 1월~2021년 9월) 보직을 맡았지만 채무사실 등 재산과 관련된 신고를 하지 않았다. 공직자윤리법 제3조에 따르면 교육공무원 중 총장과 부총장, 대학원장, 학장 등은 재산등록 의무자로 분류된다. 

2018년부터
급여 압류

이 같은 논란에도 교육부는 고 신임 총장에 대한 임명 제청을 청와대에 요구했고, 청와대 역시 최종 승인했다. 교육부 국립대학정책과 관계자는 “국립대 총장 임명은 교육부 인사위원회에서 가부를 결정한다. 인사위원회에서 오간 내용이나 구성 등에 대해서는 확인해줄 수 없다”고 답변했다.

또 방송대 종합감사 과정에서 고 신임 총장 관련 의혹을 인지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감사 내용에 대해서는 감사관실에 문의하라며 말을 아꼈다. 방송대 종합감사를 진행한 감사 관계자는 “감사 중인 사안에 대해서는 어떤 내용도 말할 수 없다”면서 “대학의 이의신청기간 등을 거쳐 6~7월쯤 돼야 최종 감사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방송대 관계자들은 “고 신임총장은 국가공무원법, 즉 실정법을 위반했다. 교육부가 종합감사 과정에서 이 부분을 인지했음에도 미온적으로 대처하면서 인사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망가뜨렸다”며 “또 문재인정부는 고위공직 후보자 임명 과정에서 세금 탈루를 7대 비리에 포함시켰다. 그럼에도 고 신임 총장에 대한 최종 승인이 이뤄진 점이 의아하다”고 지적했다. 

실제 문정부는 ‘7대 비리 관련 고위공직 후보자 인사검증 기준’에서 세금 탈루가 드러날 경우 임용을 원천 배제한다고 밝힌 바 있다. 고 신임 총장은 세금 탈루와 관련해 ▲본인 또는 배우자가 국세기본법 및 지방세기본법에 따라 고액‧상습 체납자로 명단이 공개된 경우에 해당된다는 주장이다.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고

방송대 총장 관련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고 신임 총장 임명과 동시에 여전히 진통을 겪고 있는 공주교대 총장 임명 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기 때문이다. 방송대와 마찬가지로 국립대학인 공주교대는 현재 2년3개월째 총장이 공석이다.

교육부가 1순위 총장 후보자 이명주 공주교대 교수에 대해 임용 제청을 거부한 것.

공주교대는 2019년 9월24일 직선제로 총장 선거를 실시했다. 이때 공주교대 출신 이 교수가 구성원의 지지를 받아 1순위 총장 후보자로 결정됐다. 하지만 2020년 2월 교육부가 이 교수에 대한 임용 제청을 거부하면서 상황이 틀어졌다.

이 교수는 즉시 소송을 제기했고 교육부로부터 임용 제청 거부 사유를 받았다.

이 교수가 받은 거부 사유는 ▲2004~2008년 대전교육감 출마 과정에서 받은 벌금형 ▲주정차 위반, 과속 등 과태료 지연 납부로 인한 압류 ▲대학에서 받은 경고·주의 등의 행정처분 등이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사안만 놓고 보면 공주교대 총장 후보자 관련 논란이 방송대에 비해 경미해 보인다. 비슷한 논란이라면 두 총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 결과가 같았어야 한다. 하지만 공주교대는 총장이 공석이고, 방송대는 무리 없이 총장을 앉혔다”며 “교육부의 잣대를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국립대 총장 임명 과정에서 청와대의 입김이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공주교대 사건 당시 교육부의 임명 제청 거부가 이 교수의 ‘정치 성향’ 때문이라는 의혹이 나온 바 있다. 이 교수가 박근혜정부 시절 ‘좌편향 검정교과서’를 비판한 점이 현 정부의 미움을 샀다는 주장이다. 

교육부 감사
미리 알았다?

방송대는 앞서 2014년 9월 이후 무려 40개월 동안 총장이 공석이었던 ‘흑역사’가 있다. 2018년 2월 류수노 총장이 취임하기까지 지리한 법정 공방을 벌였다. 하지만 고 신임 총장의 경우 문재인 대통령 임기를 불과 한 달 남긴 상황에서 발 빠르게 이뤄졌다. 방송대 관계자들은 “이것이야말로 ‘알박기’가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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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