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명지대 400억 위험한 땅 거래 내막

돈 급해 봐주고 눈 감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또 다시 파산 위기에 내몰린 명지학원. 알려진 채무만 해도 2200억원이 넘는다. 명지학원은 명지전문대학교 유휴용지를 매각·개발해 채무를 변제하겠다는 회생안을 내놨다. 구성원들은 실현 가능성을 따지기 전부터 불안한 마음이 앞선다. 앞서 명지대가 비슷한 절차를 졸속으로 밟다가 교육부로부터 ‘퇴짜’를 맞은 전례가 떠올라서다.

명지학원은 명지대학교와 명지전문대학, 명지초·중·고교 등을 운영하는 학교법인이다. 재학생이 3만명에 이를 정도로 법인 규모가 크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2조원대의 수익 사업체를 보유하며 안정적인 재정상태를 유지했지만, 무리한 부동산 개발과 전임 이사장의 재단 사유화 시도 등 여러 악재가 겹치면서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파산 위기
탈출구는?

이후 채권자들에게 파산신청 2번, 회생신청 1번을 당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어왔다.

서울회생법원이 이달 초 명지학원 회생절차(채권자인 서울보증보험(SGI)이 신청) 중단 결정을 내렸다. 잠시 잠잠했던 파산 위기설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명지학원은 지난 10일 입장문을 내고 “파산 수순을 밟는 것이 아니라 다음 달 회생을 재신청할 것”이라며 황급히 수습에 나섰다.

관련 법에 따르면 명지학원이 채무자 자격으로 회생을 다시 신청할 수 있다. 사실상 파산을 막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관측이 나온다.


교육계에서는 명지학원 회생안에 각종 수익용 재산과 더불어 명지전문대 부지를 매각, 총 1700억원을 우선 변제한다는 계획이 담길 것으로 보고 있다. 명지대와 명지전문대를 통합하고, 명지전문대 유휴용지에 아파트 등을 개발한다는 구상이다.

명지학원은 투자자문회사 측에 의뢰해 25억~50억원의 출자금으로 500억원 이상의 개발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결과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1700억원 변제 계획 중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다.

명지학원 구성원 일부는 이 같은 결정이 알려지자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명지학원이 이미 지난해 다른 유휴용지를 매각 시도하는 과정에서 교육부에 ‘퇴짜’를 맞은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당시 교육부는 오히려 먼저 나서서 유휴용지 매각을 권유·허가할 정도로 매각에 협조적이었다. 하지만 명지학원이 불법적 절차를 동원해 졸속 매각을 추진하자, 교육부가 매각허가를 다시 취소한 것으로 파악됐다.

명지학원은 2020년 교육용 기본재산 5건 매각을 추진했다. 당시 매물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동 582-3 등 16개 필지(면적 36만5273㎡)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남가좌동 12-1·12-13번지(면적 172㎡) 등이다. 이들은 모두 사용되지 않는 유휴용지였다.

재정 불안한데 대규모 공사 강행
‘급전’ 확보하려 불법 정황 포착

사립학교법에 따르면 교육에 직접 사용되는 재산인 교육용 기본재산은 유휴재산일 경우에만 처분할 수 있다.


교육부는 명지학원 측에 절세 및 교육 자금 마련을 이유로 유휴용지를 처분할 것을 권유했다. 교육 재산 처분에는 교육부 허가가 필요하므로, 매각허가 등의 제도적 지원도 뒷받침됐다.

명지학원으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명지학원은 이 매물들로 2020년 5월15일과 29일, 두 번에 걸쳐 일반 경쟁입찰을 진행했다. 하지만 매물들의 입지가 그다지 좋지 않아서 두 입찰 모두 유찰됐다.

명지학원은 경쟁입찰에서 수의계약으로 매각 방식을 변경했다. 기약 없는 기다림은 약 1년 동안 이어졌다. 지난해 봄이 돼서야 매수자가 나타났다.

명지학원과 개발사 A사는 지난해 5월13일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동 소재 15개 필지에 대한 토지매매계약을 체결했다. 매매 규모가 435억8000만원에 달하는 대형 계약이었다. A사는 계약 당일 매물들에 매매 예약 가등기를 걸었다.

그로부터 석 달 뒤, 양측은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쳤다. 그때까지 명지학원 측이 받은 돈이라고는 소유권이전 당시 받은 계약금 명목의 20억원이 전부였다. 소유권이전 당일, A사는 개인 2명에게 매매예약 가등기를 마쳤다. 명지학원 측에 건네야 할 매매대금이 415억8000만원 남은 상황이었다.

명지대학교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는 “400억원어치 땅을 20억원에 팔아넘겼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명지학원의 등기 이전 사실 은폐·매각 잔금 지불기일 임의 연장 등의 배임 의혹을 추가로 제기했다. 그해 11월24일에는 해당 의혹과 대학 위기 책임을 이유로 총장 퇴진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발등에 불
불법 동원

심지어 이 같은 거래 행태는 관련 법 위반이다. 교육부령인 사학기관 재무‧회계 규칙 제46조에는 ‘관할청의 허가를 받아 그 재산을 처분한 때는 처분대금을 완수하지 않고는 당해 재산의 소유권을 이전하지 못한다’고 명시돼있다.

또한 공대위에 따르면 명지학원은 교육 재산 처분 뒤 한 달 안에 그 결과를 교육부에 보고해야 한다는 규정도 준수하지 않았다.

당시 명지학원은 “담당 직원의 잘못된 판단과 행동으로 벌어진 일”이라며 총장‧법인 책임론을 일축했다. 이어 “현재 매각과 관련해 모든 민형사상 방법을 동원하고 있을 뿐 아니라, 상대편 관계자에 대한 압박과 협상을 시도하는 등 조속한 문제 해결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공대위는 즉각 반발했다. 공대위 관계자는 “400억원이 넘는 돈이 오가는 계약 과정을 총장과 이사장 등이 몰랐다고 해도 문제고, 알면서 묵인했어도 문제”라며 “구성원들이 정상화를 위해 기울여온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행동”이라고 규탄했다.

앞서 명지학원은 한 직원의 ‘실수’로 벌어진 일을 법인이 적극적인 법적 조치를 통해 되돌려놓겠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그런데 그 해명과 배치되는 사실이 <일요시사> 취재 과정에서 속속 포착됐다. 관련 정황들을 종합해보면, 지난해 명지학원에는 의도적으로 불법·졸속 절차를 밟을만한 동기가 분명히 존재했다.


당시 명지학원은 자금 마련이 시급했다. 재정 확보가 어려운 상황에서 대규모 개발을 강행했기 때문이다.

2019년 1월, 명지대학교는 인문캠퍼스에 새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명지대학교 관계자에 따르면 ‘교육복합관’이라고 명명된 이 건물을 짓는 데 500억원이 넘는 비용이 들어갔다. 명지대학교 홈페이지에도 “공사 도급액만 380억원에 달한다”고 적혀 있다.

교육복합관은 건축면적 1221평·건축 연면적 9277평 규모의 대형 건물로 지난해 8월 말에 완공됐다.

구성원들은 이 건물의 필요성을 문제 삼지 않는다. 인문 캠퍼스의 부족한 교육시설 보강을 위해 필요했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다만 건설 시점이 상당히 부적절했다는 설명이다. 명지학원의 재정상태는 이 건물의 첫삽을 뜨기 훨씬 전부터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해명 진위 논란
‘입 닫은’ 재단

그런 상황에서 대형 건물을 짓겠다고 하니, 구성원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것.


아니나 다를까, 명지학원은 이 건물이 지어지는 동안 채권자들에게 2번의 파산신청과 1번의 회생신청을 당하며 법정관리 체제에 돌입했다. 건물이 절반 정도 지어진 시점에 떨어진, 어쩌면 예정된 ‘날벼락’이었다. 명지대에 가해지는 자금 압박은 더욱 거세졌다.

공대위 관계자는 “원래 사립학교들이 건물을 지을 때는 교육부 산하 사학진흥재단에서 저금리 융자를 받는다”며 “그런데 법인이 회생절차에 들어가 그걸(융자를) 못 받게 되면서 남은 건설 비용을 학교 적립금으로 충당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씁쓸한 비보였다. 명지대는 재단의 재정적 지원에 기댈 수 없는 상황에서 주로 학생 등록금과 외부 발전 기금에 의존하고 있다. 하루 벌어 하루 살기도 힘든 와중에, 겨우 모아놨던 곳간이 털린 격이었다.

그간 답보상태였던 유휴용지 매각이 급물살을 탄 시점은 교육복합관 준공이 마무리되던 때와 겹친다. 돈이 가장 간절했을 때, 돈을 주겠다는 이가 등장한 셈이다. 심지어 금액 규모도 비슷했다. 공대위 관계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학교로서는 놓칠 수 없는 기회를 맞았다.

그는 뒤이어 “그동안 ‘애물단지’였던 유휴용지를 매각한다는 방침에 반대한 구성원은 없었다”면서도 “저렇게 급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자초한 걸 지지해줄 사람도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부동산 업계와 법조계에서는 ‘실수’로 포장된 소유권 이전 과정을 두고 “대규모 개발에서 종종 보이는 패턴”이라고 분석했다. 비슷한 규모의 거래 관행과 상당히 겹쳐 보인다는 지적이다.

논란 일자 ‘직원 실수’ 해명
교육부 반대에 결국 백지화?

김중훈 한유주택개발 대표는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규모가 있어서 일시에 토지대금을 지불하기 어려울 때 보이는 패턴”이라며 “이전받은 소유권으로 대출을 일으켜 잔금을 완납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사인 간 거래에서는 이 같은 소유권이전이 불법이 아니기에 가능한 일이다.

종합법률사무소 ‘법도’의 부동산 담당 변호사는 “잔금을 치르기 전에 소유권이전등기하는 행위는 거래 당사자 간에 이뤄지는 거래행위로 그 자체로는 법률상 하자 행위라 볼 수 없다”며 “위험성을 내포할 수 있는 여지가 거래를 제한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하지만 통상적으로 잔금이 완납되지 않은 소유권이전의 경우 제3자에 대한 재매도나 재산권 행사의 제한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교육부 역시 이 맥락에서 ‘잔금 완납 후 소유권이전’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아울러 적어도 ‘등기사항전부증명서’상에서는 명지학원 측이 취한 ‘법적 조치’ 흔적을 볼 수 없었다. <일요시사>는 관련 토지등기의 말소사항까지 모두 검토했다. 과거에 있었던 각종 신탁·가처분 등기들은 확인할 수 있었지만, 이번 소유권이전 이후에 갱신된 등기는 없었다.

소유권이 넘어간 지 6개월째. 명지학원은 아직도 잔금을 회수하지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각종 불법 행위를 인지한 교육부가 돌연 매각허가를 취소해버렸다. 매각 사업이 백지화될 위기에 놓인 것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지난해 11월에 열흘간 시행했던 명지대 종합 감사 과정에서 규정 위반 사실을 인지했다”며 “이에 12월29일 자로 ‘올해 안에 잔금을 회수하지 않으면 매각허가를 취소하겠다’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했다. 명지대가 잔금 회수에 실패하면서 매각허가는 올해 1월 1일부로 자동 취소됐다”고 밝혔다.

명지대는 허가 취소 사실을 시인했다. 명지대 관계자는 “올해 부로 해당 부지 매각허가가 취소된 것은 맞다”고 답했다.

다만 매각 계획이 백지화된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조만간 다시 매각 계획을 수립해 교육부에 전달할 예정”이라며 “일시적인 답보상태에 놓인 것은 맞지만 재개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당시 해명 진위에 대한 질문엔 “계약은 학교랑 한 게 맞지만, 전반적인 대응은 법인에서 진행해서 잘 모르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후 <일요시사>는 명지학원 측과 지속적으로 연락을 시도했지만 끝내 닿지 않았다. 최근 불거진 논란들 탓인지, 명지학원 사무실 문은 평일 오후 2시에도 굳게 잠겨있었다.

생사 기로서
반면교사로

돌아 나오는 길에 또 다른 명지대 관계자와 연락이 닿았다. 그는 이 일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회생안에도 유휴용지 매각 계획이 포함된다고 들었다. 그 일을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며 “이번 한 번만큼은 욕심과 불법 없이, 교육부 지침을 준수하면서 원활하게 매각했으면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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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