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도용 피해자의 한숨

얼굴 갖다 써도 처벌 못한다?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사진이 범죄에 활용됐다. 우여곡절 끝에 범인을 찾아도 형사처벌할 방법은 없다. 법적으로는 범인이 내 사진을 훔쳐 간 것도, 내 명예를 훼손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기껏 가능한 것이라고는 손해배상 소송뿐이니, 피해자들 속은 타들어만 간다.

다급히 링크를 눌러본 A씨는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지인이 ‘네가 사기꾼이 돼 있더라’며 보내준 링크 속에, 정말 자신의 사진이 올라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진 밑에서는 여러 사람이 A씨 신상을 수소문 중이었다. 이들은 모두 ‘A씨에게 사기를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허점

알고 보니 금융 사기범 일당이 A씨 사진을 도용해서 벌어진 일이었다. 이들은 A씨를 자신들의 투자회사 대표로 둔갑시켰다. 일당이 운영하는 사기용 홈페이지와 채팅방에는 지금도 A씨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걸려있다.

A씨는 “한 피해자가 내게 ‘대표가 본인과 가족사진을 내걸고 홍보하니 사기일 리 없다고 믿었다’고 털어놨다”며 “사기꾼들이 피해자들 신뢰를 얻으려고 내 사진을 범행도구로 쓴 셈”이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A씨가 당한 것처럼, 남의 사진을 도용해 사기를 저지르거나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범죄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


앞서 배우 이주빈, 가수 김준희 등 여러 연예인이 사진을 도용당했다고 알린 가운데, 최근에는 일반인들도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이주빈은 대본을 들고 있는 사진이 투자 수익 인증 사진으로 조작됐다. 김준희는 한 다이어트 제품 업체가 다이어트 전후 사진을 무단 도용했다.

일반인 중에서는 특히 젊은 여성들의 피해가 극심하다. 이들이 SNS에 게시한 사진 중 몸매가 두드러진 것들을 가져다 불법 도박 사이트·성매매 업소 홍보에 쓰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심지어 사진을 인화해 교도소 수감자에게 판매한 일당이 적발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박경수 법무법인 지름길 소속 변호사는 “딥페이크 기술을 필두로 사진 도용 수준이 점차 고도화되고, 범죄 악용 사례도 다양화되고 있다”고 짚었다.

절도·명예훼손 해당 안 돼
기껏 손해배상 소송만 가능

더 큰 문제는 피해자들이 공권력의 도움을 받기 어렵다는 점에 있다. A씨는 “즉시 경찰에 신고했지만 소용없었다”고 토로했다. 경찰은 “현행법상 사진 도용은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라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결국 A씨가 넣은 신고는 ‘반려’ 처리됐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이 같은 경찰 주장은 사실로 드러났다. 형법 전문가들에 따르면 사진 도용 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법은 부재한 상황이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 경우에는 민사소송을 제기해 초상권 침해와 정신적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게 최선으로 보인다”며 “심각한 문제인 것과 별개로 현행법상 형사처벌이 어려운 건 맞다”고 밝혔다.


이어 “사진 도용은 절도와 비슷하지만 사진 등 ‘데이터’ 복사는 절도로 볼 수 없다는 판례가 있어 절도죄 적용이 어렵다”며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사기죄·명예훼손죄 등을 따지기에도 구성요건이 충분하지 않다”고 전했다.

승 연구위원이 언급한 판례는 ‘대법원 ‘2002. 7. 12. 선고 2002도745 판결’이다.

대법원은 해당 판결문에서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는 ‘정보’ 그 자체는 유체물이라고 볼 수도 없고, 물질성을 가진 동력도 아니므로 재물이 될 수 없다 할 것이며, 또 이를 복사하거나 출력했다 할지라도 그 정보 자체가 감소하거나 피해자의 점유 및 이용 가능성을 감소시키는 것이 아니므로 그 복사나 출력 행위를 가지고 절도죄를 구성한다고 볼 수도 없다”고 판시했다.

형법상 절도는 타인의 재물을 ‘절취’하는 행위다. 법원은 실체가 없는 정보를 재물로 인정하지 않았고, 정보를 복제해도 원래 주인이 그 정보를 문제없이 쓸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정보 도용과 절도를 다른 개념으로 본 것이다.

사각지대 속 피해자 안절부절
‘컴퓨터등사용사기죄’ 돌아봐야

‘그나마 최선’이라는 손해배상 청구도 쉽지 않다. 익명성 뒤에 숨은 무단 도용자 신원을 특정한다는 것 자체가, 공권력의 개입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형사 고발할 방법이 없는 피해자로서는 이들이 사기·성매매 등 일명 ‘본업’에서 덜미를 잡힐 때까지 속절없이 기다려야만 한다.

전문가들은 시류에 따른 법률 제·개정을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승 연구위원은 “문제가 아무리 심각해도 관련 법이 없다면 처벌할 수 없다. 그것이 죄형법정주의 원칙”이라며 “사진 도용을 처벌할 수 있는 법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변호사도 비슷한 의견을 내놨다. 그는 “일단 입법부의 논의 과정을 지켜봐야겠지만 입법 필요성은 상당해 보인다”고 말했다.

또 전문가는 관련 법 도입 추진 과정에서 ‘컴퓨터등사용사기죄’의 선례를 참조할 것을 조언한다. 컴퓨터등사용사기죄란 컴퓨터 등 정보처리장치에 허위정보·부정한 명령 등을 입력해 부당 이익을 얻는 범죄행위를 일컫는다.

승 연구위원은 “컴퓨터등사용사기죄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ATM 등을 활용한 사기 범죄를 처벌하기 쉽지 않았다”며 “기계를 기망한다는 게 인정되지 않아 사기죄 적용이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기죄?

이어 “이 법은 정보화 시대에 들어서서 관련 행위 처벌 필요성이 제기되자 입법이 이루어진 것”이라며 “컴퓨터등사용사기죄가 형법 제347조의2(제347조는 사기죄)로 들어간 것처럼, 디지털 절취 개념을 담은 형법 제329조의2(제329조는 절도죄) 신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jeongun15@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사진 도용 처벌 경우의 수

법조계는 현행법상 사진 도용 피해에는 민사재판을 통한 손해배상 요구가 최선이라고 조언한다.

그런데 사진 도용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는지에 따라, 손해배상 요구 범위와 형사처벌 가능 여부가 달라져 세심하게 확인해야 한다.

우선 본 기사의 피해자들처럼 사진을 단순 도용당한 경우, ‘초상권 침해’에 대한 손해배상을 요구할 수 있다.

아울러 정신적 피해가 발생했다면, 그에 대한 보상도 요구할 수 있다.

또한 도용자가 해당 사진을 게시함으로써 내 명예를 훼손했을 때는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으로 형사처벌받을 수 있다.


만약 도용자가 사진을 자의적으로 합성·유포했다면 그 양상에 따라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허위사실)·모욕죄 등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참고로 온라인상에 게시된 내 사진을 두고 모욕, 명예훼손을 저지른 댓글에게도 같은 명목의 법적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

예컨대 범죄 현장의 범죄자 몸에 내 얼굴을 합성한 사진이 유포됐고, 여기에 범죄 현장에서 자신이 나를 목격했다는 댓글이 달렸다고 가정해보자.

이때 사진 유포자와 댓글 작성자를 형사고소하면, 이들은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에 의해 최대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선고받을 가능성이 생긴다.

동시에 민사소송을 통한 초상권 침해·정신적 피해 손해배상 요구도 가능하다.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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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