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수석' 민정수석 잔혹사

나는 새도 떨어뜨려? 독 든 성배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문재인정부 들어서만 5명이 갈려 나갔다. 단 1명도 논란 없이 곱게 나가지 못했다. 사정 라인 정점에 자리한 청와대 민정수석 이야기다. 과거부터 이어진 민정수석 ‘수난사’가 문정부에서도 반복되고 있는 모양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수석비서관인 민정수석은 공직기강을 바로잡고 부패 척결, 법률 보좌 등의 역할을 한다. 검찰, 경찰, 감사원, 국세청 등의 사정기관을 아우르며 이 기관들이 생산하는 정보를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하는 직책이라 그 막강한 권한에 대한 비판이 있어왔다. 문재인 대통령도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민정수석으로 재임했다.

가족 리스크

‘나는 새도 떨어뜨릴 수 있는’ 권세의 상징, 대통령의 최측근, 실세 중에 실세로 불리던 민정수석 자리가 문재인정부 들어 ‘독이 든 성배’ 취급을 받고 있다. 문 대통령이 임명한 5명의 민정수석이 모두 불명예 퇴진했기 때문. 이 과정에서 문정부가 최우선으로 내세운 ‘공정’의 가치도 훼손됐다.

지난 21일 김진국 전 민정수석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아들 입사지원서 논란으로 사의를 표명한 지 하루 만이다. 박수현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브리핑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김진국 수석의 사의를 수용했다”고 밝혔다. 김진국 수석이 사실상 경질됐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국민이 민감하게 여기는 공정성 이슈가 터지자 서둘러 거취를 정리했다는 분석이다. 


김진국 전 수석의 아들은 최근 여러 기업에 낸 입사지원서에 ‘아버지가 민정수석’이라는 내용을 써낸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사실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면서 비판이 제기되자 김진국 전 수석은 다음 날 출근 직후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전날 언론에 “아들이 불안과 강박 증세 등으로 치료를 받아왔다”고 해명한 바 있다. 

김진국 전 수석이 임명 9개월 만에 물러나면서 문정부 민정수석 ‘잔혹사’가 반복되고 있다. 문정부 첫 민정수석인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 장관으로 내정되면서 사임했지만, 이후 가족비리 의혹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5명 중 3명 1년 못 버텨
논란 끝에 불명예 퇴진

김조원·김종호·신현수 전 수석 등 3명도 논란 속에서 사임한 데 이어 김진국 전 수석도 이 같은 공식을 피해가지 못했다. 

실제 문정부 민정수석 5명의 평균 재임 기간은 337일로 채 1년이 되지 않는다. 조 전 장관이 약 26개월(807일)로 2년 넘게 자리를 지켰고, 김조원 전 수석이 382일로 그나마 평균을 웃돌았다. 나머지 김종호 전 수석(143일), 신현수 전 수석(63일), 김진국 전 수석(293일)은 1년도 안 돼 사임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이후 조 전 장관을 민정수석으로 ‘파격 발탁’했다. 조 전 장관은 법무부 장관으로 영전하는 과정에서 자녀 입시비리 의혹, 사모펀드 의혹 등 각종 문제가 터지면서 몸살을 앓았다. 현재 자녀 입시 의혹 등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고, 부인 정경심씨는 구속 상태다.

김조원 전 수석은 ‘직보다 집’을 선택했다는 불명예를 안고 청와대를 떠났다. 집값이 폭등하면서 다주택자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퍼지자 청와대 참모진에 ‘1주택 보유’ 권고가 내려졌다. 서울 강남과 송파에 아파트 2채를 갖고 있던 김조원 전 수석은 이 중 한 채를 시세보다 비싸게 매물로 내놔 ‘꼼수’ 지적을 받다가 결국 교체됐다. 


문 대통령은 김조원 전 수석의 후임으로 감사원 사무총장 출신의 김종호 전 수석을 발탁했다. 김종호 전 수석은 이렇다 할 역할을 못한 채 4개월 만에 물러났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현 국민의힘 대선후보)과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의 갈등을 제대로 조율하지 못한 점, 또 윤 전 총장의 징계 과정에서 상황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한 점 등이 이유로 제기됐다. 

문정부 유일의 ‘검찰’ 출신 민정수석인 신현수 전 수석은 2개월 만에 자리에서 내려왔다. 신 전 수석은 검찰 인사 과정에서 ‘패싱’ 논란이 불거지면서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검찰 고위직 인사를 두고 박범계 법무부 장관과 갈등을 빚었고, 이 문제와 관련해 문 대통령에게 여러 차례 사의를 표명한 사실이 드러났다.

검찰 출신을 중용해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의 극심한 대립을 봉합해 보려는 시도였지만 철저하게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박근혜정부 때 판박이
임기 말 레임덕 가속화

이후 발탁된 인물이 바로 김진국 전 수석이다.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사법고시에 합격한 후 변호사로 활동하던 김진국 전 수석은 노무현정부에서 청와대 법무비서관을 지낸 뒤 문정부에서 감사원 감사위원을 지냈다. 민정수석 발탁 과정에서 가족, 측근 등과 관련해 별다른 문제가 감지되지 않았기에 문정부 마지막 민정수석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 바 있다.

민정수석을 중용하는 과정에서 이전 정부와 ‘다름’을 추구했던 문정부의 인사가 실패로 귀결되자 과거 사례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대표적인 인사가 박근혜정부 시절 우병우 전 수석, 곽상도 전 수석(전 국회의원) 등이다.

검찰 출신의 두 전 수석은 가족 문제 등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고, 우 전 수석은 구속 수감되기도 했다.

우 전 수석은 역대 최연소 민정수석이다. 20세에 사법고시에 합격해 엘리트 검사로 이름을 떨치던 그는 2013년 검사장 승진에서 고배를 마신 이후 다음 해 민정수석으로 발탁됐다. 승승장구하던 우 전 수석은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에 휩쓸리면서 검찰 수사선상에 올랐다.

동시에 강남역 인근 땅 고가 거래 의혹, 아들 운전병 특혜 의혹 등 가족 리스크도 불거졌다. 

우 전 수석은 2017년 12월 국가정보원을 동원해 공무원과 민간인에 대한 불법사찰을 벌인 혐의가 드러나면서 구속돼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이후 2019년 1월 구속기한 만료로 출소했다. 

박근혜정부 초대 민정수석인 곽 전 의원의 가족 리스크는 현재진행형이다. 곽 전 의원의 아들이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의 핵심인 화천대유로부터 퇴직금 50억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난 것. 그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개발업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아들을 통해 거액을 받은 게 아니냐는 논란이 불거졌다. 


공정성 훼손

김진국 전 수석의 퇴진으로 완성된(?) 민정수석 잔혹사는 임기를 5개월 앞둔 문정부의 레임덕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통령을 가장 가까이서 보좌하던 최측근 참모가 가족 리스크, 그것도 공정성 훼손을 이유로 물러났다는 점은 정부의 도덕성에 치명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문정부는 임기 말까지 공정성 이슈에서 벗어나지 못한 셈이 됐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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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사면’ 군불 때는 사람들

‘조국 사면’ 군불 때는 사람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풀어주느냐, 마느냐, 이재명 대통령이 깊은 고심에 빠졌다. 8·15 특별사면·복권 명단에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의 이름이 올라오면서다. 한때 아군이었던 조 전 대표의 정치 생명이 용산의 선택에 달렸다. 조국혁신당은 물론 문재인 전 대통령과 친문계까지 사면론에 힘을 싣고 있다. 지난 7일 이재명정부의 첫 특별사면을 준비하기 위한 법무부 사면심사위원회가 열렸다. 이날 특별사면 명단에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치권의 관심이 급상승했다. 사면심사위원회가 사면·복권 건의 대상자를 검토하면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이를 이재명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오는 12일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을 거쳐 최종 확정된다. 설에 부채질 조 전 대표는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혐의로 지난해 12월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 실형을 확정받았다. 조 전 대표의 만기 출소 예정일은 내년 12월15일이다. 이번 광복절 특별사면이 이뤄질 경우 출소 시기는 앞당겨질 수 있다. 혁신당은 조 전 대표의 기소 자체가 검찰의 무리한 시도였다고 보는 만큼 이번 정권에서 검찰개혁을 이뤄내고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보고 있다. 혁신당 신장식 의원은 지난 대선 정국서 “조 전 대표가 보고 싶지 않느냐”며 “(이재명 후보가) 그냥 이기는 게 아니라 크게 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이재명 후보의 당선이 곧 조 전 대표의 사면이라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전달한 것이다. 조 전 대표의 부인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 또한 비슷한 시기에 ‘더1찍 다시 만날 조국’이라는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이 후보의 당선과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동일시했다. 이렇듯 혁신당은 지난 총선과 대선 등에서 일궈낸 업적을 청구서 삼아 은근한 눈치를 보냈고, 최근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롯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내 친문(친문재인)까지 목소리를 키우면서 이 대통령을 전방위로 둘러쌌다. 지난달 30일 친문계인 민주당 고민정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조 전 대표와의 접견 사실을 알리며 “특유의 미소가 여전하고 세상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이 많을 법도 한데 오히려 긍정 에너지가 가득하다. 그래서인지 자꾸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고 마음의 빚을 지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적었다. 이어 “조국의 사면을 많은 이들이 바라는 이유는 검찰개혁을 요구했던 우리가 틀리지 않았음을 그의 사면을 통해 확인받고 싶은 마음 아닐까”라며 “야수의 시간과 같았던 지난 겨울 우리가 함께 외쳤던 검찰개혁이 틀리지 않았음을, 서로 생각은 달라도 통합과 연대라는 깃발 아래 모두가 함께 있었음을 확인받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국민통합 일환? 이 결정만 남아 친문계에 문까지 팔 걷어붙여 친명(친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민주당 김영진 의원 역시 한 라디오를 통해 “국민통합을 위한 측면에서 넓게 사면 복권에 관한 판단을 할 때가 되지 않았나란 생각이 든다”면서도 “이 문제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 대통령께서 판단할 문제라 보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문 전 대통령이 용산 측에 조 전 대표의 사면 의견을 직접 전달한 것으로도 전해진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 5일 경남 양산 평산마을을 찾은 우상호 정무수석을 만난 자리에서 이 같은 의견을 전달했고, 우 수석은 “뜻을 전달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김원기·임채정·정세균·문희상·박병석·김진표 등 민주당 출신인 전 국회의장도 가세했다. 이들은 입장문을 통해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책임을 수용한 이들에 대한 절제된 관용”이라며 “대통령께서 국민 통합의 뜻을 담아 조 전 대표에 대한 특별사면을 단행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한 개인의 구제가 아니라 극한 대립과 갈등의 시기를 겪어내며 상처 입은 우리 사회 공동체에 건네는 ‘공정한 매듭과 위로’의 손길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방에서 사면 요청이 쇄도하자 대통령실은 막판 고심에 빠졌다. 앞서 지난 5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사면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며 “사회적 약자와 민생 관련 사면에 대해 일차적으로 검증 및 검토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정치인 사면에 관해 다양한 의견들을 수렴 중”이라며“아직 최종적인 검토 내지는 결정에는 이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혁신당 내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조 전 대표가 수감 된 지 8개월이 지났는데 혁신당은 아직도 권한대행 체제다. 전당대회를 통해 새 대표를 뽑을 만도 한데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가 뭐겠느냐”며 “이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조 전 대표가 사면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조 전 대표가 돌아와서 혁신당이 이전 같은 명성을 되찾길 기다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혁신당 당헌·당규에 따르면 ‘당대표가 궐위된 때에는 최고위원 가운데 가장 많은 득표로 선출된 최고위원이 남은 임기 동안 당대표의 권한을 대행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김선민 권한대행이 내년 7월까지 조 전 대표의 임기를 대신해 자리를 지킬 의무가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당초 조 전 대표가 자신의 수감 생활을 예측하고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이러한 당헌·당규를 개정한 게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8개월째 대행 체제 혁신당 “확신” 믿을 구석 있었나 내년 지방 선거를 위해서라도 혁신당은 조 전 대표의 사면이 필요하다. 구심점이 없고 ‘조국’혁신당이라는 이름만 존재하는 지금으로서는 지난 보궐선거만큼의 역량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다. 민주당은 딜레마에 빠졌다. 국정 초기부터 자녀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으로 법의 심판을 받고 복역 중인 인사를 사면했다가는 ‘범죄자 프레임’에 함께 걸려들 수 있다. ‘조국 사태’에 거부감을 느낀 지지자들의 이탈도 고려해야 하는 지점이다. 반면 사면 요청을 거절할 경우 오히려 조 전 장관의 정치력을 키우는 등 일종의 서사를 부여할 수 있다. 조 전 대표는 본인의 사면에 대해 큰 뜻을 밝히지 않아 오히려 지지층 결집에 도움이 될 것이란 해석이다. 민주당에 있어 조 전 대표는 내년 지방선거의 ‘변수’다. 지난 총선서 호남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킨 혁신당이기에 조 전 대표가 정치권에 돌아온다면 진보진영 텃밭을 둘러싼 두 정당 간의 경쟁과 그로 인한 잡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단정하기는 이르지만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그의 행보를 예측하고 나섰다. ‘자유의 몸’이 될 경우 이른 시일 안에 전당대회를 치러 다시 한번 당대표직을 거머쥐고 내년 지방 선거를 진두지휘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일각에서는 조 전 대표가 부산 시장 등으로 직접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도 보고 있다. 어디로 튈까 민주당은 최종 사면 명단이 공개되기 전까지 별다르 입장을 내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 7일 문 전 대통령을 예방했지만, 이날 조 전 대표의 사면 논의는 나오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이제 공은 이 대통령에게 넘어왔다. 단 한 사람의 정치 인생이 걸린 문제지만 그의 복권은 정치 진영을 흔들기에 충분하다. 여러 가지 변수와 상수가 존재하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최종 선택에 이목이 쏠린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