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포도의 맛' 정성윤

이율배반의 아이러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정성윤 작가는 기계 장치로 고정되지 않은 형태를 연구하며 재료가 가진 표면의 특성과 통제되지 않는 불확정적인 효과에 관심을 가져왔다. 서울 서초구 소재 페리지 갤러리가 정성윤의 개인전 ‘포도의 맛’을 준비했다. 

정성윤 작가는 우리 눈에 드러나지 않는 기계 내부 장치 프로세스에 관심을 갖고 있다. 기계의 구동 방식에 머무르지 않고 그 표면과 내부 장치 사이의 상호 관계에 주목한다. 이는 작품을 바라보는 관람객들과의 소통으로 연결된다. 

끈끈하고

정성윤이 관심을 보이는 기계의 표면은 장치가 만들어내는 결과물이 통제되지 못하고 비정형적인 형태가 일시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이다. 그의 작품이 우리가 인식하는 경직된 기계에 유연함을 부여하는 조각적 퍼포먼스로 보이는 이유다.

이번 전시 ‘포도의 맛’은 ‘두 개의 타원’ ‘뱀과 물’ ‘래빗’ ‘아말감’ 등 4개의 작품으로 구성돼있다. 전시 제목인 포도의 맛은 미끈한 포도 껍질이 가진 질감과 입에 넣고 벗겨냈을 때 과육의 맛, 냄새가 유발하는 감각들을 의미한다.

정성윤의 작업에 대한 은유다. 반면 영문 제목인 ‘a mucous membrane’은 끈끈하고 투명한 점막이라는 직접적인 의미를 드러낸다. 


통제되지 못한 상황에 관심
잠재적인 무언가 생산 행위

정성윤의 작품은 기계 장치가 드러나기도 하고 숨겨져 있기도 하며, 외양의 모습은 끊임없이 움직여 변하면서도 고요하다. 이 같은 움직임은 기계의 내부와 외부가 연결돼 상호 간의 균형을 잡는 과정에서 나타난다. 

기계에 의해 상호작용 되는 표면은 작가가 의도한 입력값이 수행되는 조작으로 발생한다. 정성윤은 작가의 의도에서 벗어나 완벽하게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에 관심을 갖는다. 이 같은 작가의 태도는 기계 장치를 통해 무엇인가를 재현하는 게 아니라 아직 나타나지 않은 잠재적인 무언가를 생산하기 위한 행위로 보인다.

작품의 결과물은 물질적인 표현으로 존재하지만 언제나 가변적이다. 

정성윤이 이야기하는 점막은 내부와 외부 사이에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굳어진 견고한 틀은 아니다. 점막은 하나의 기계와 나뿐만 아니라 수많은 대상이 서로 접속하고 분리하는 과정을 매개한다. 

가변적인 결과물
새로운 상상력 필요

이전까지의 작업이 어떤 상황을 유발하고 이를 사람들에게 관찰하고 인식하기를 유도했다면,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업은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사유를 위한 명상적 몰입의 시간을 요구한다. 


점막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유무형의 것이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시공간을 일시적으로 드러나게 한다. 정성윤이 만들어낸 시공간에 공감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몸과 마음이 내부와 외부를 가로지르며 사유할 수 있는 가벼운 상태가 돼야 한다. 

그가 만드는 장치로 인해 나타나는 점막은 수동적인 질료로 기능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는 유동적인 상태를 촉발하는 능동적인 도구다. 인간과 기계, 마음이라는 관념과 실재하는 몸, 외부와 내부, 통제와 오류 사이의 이율배반적인 아이러니를 횡단하는 자유로움을 통해 새로운 세상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투명한 점막

페리지 갤러리 관계자는 “정성윤은 하나의 특정한 세계에서 벗어나 넓고 수평적인 시선으로 나를 포함한 부분으로 기능하는 모든 다양한 층위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도록 우리를 사유의 시간으로 유도한다”면서 “이를 통해 그는 우리에게 인식적 전환을 위한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한 시기가 도래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8월7일까지.


<jsjang@ilyosisa.co.kr>

 

[정성윤은?]

1973년생

▲개인전

‘포도의 맛’ 페리지갤러리(2021)
‘thing’ 갤러리 조선(2018)
‘사소한 위협’ 김종영미술관(2016)
‘Heart-Less’ 토마스 파크(2015)
‘이클립스’ MMMG 이태원(2014)
‘무거운 점’ 갤러리 조선(2013)
‘Hello Motors’ 김진혜 갤러리(2009)
‘불가능한 미디어’ 아트 스페이스 휴(2007)

▲단체전

‘루트메탈리카’ 을지예술센터(2020)
관객의 재료‘ 블루메미술관(2020)
‘The Wider’ 아트센터화이트블럭(2020)
‘Emotion in Motion’ 부산현대미술관(2020)
‘웹-레트로’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2019)
‘미적 일상의 물리적 가능성’ 수애뇨339(2019)
‘UFEROPEN’ Uferhallen(2018)
‘키네틱 아트, 투데이’ 김종영미술관(2018)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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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사면’ 군불 때는 사람들

‘조국 사면’ 군불 때는 사람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풀어주느냐, 마느냐, 이재명 대통령이 깊은 고심에 빠졌다. 8·15 특별사면·복권 명단에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의 이름이 올라오면서다. 한때 아군이었던 조 전 대표의 정치 생명이 용산의 선택에 달렸다. 조국혁신당은 물론 문재인 전 대통령과 친문계까지 사면론에 힘을 싣고 있다. 지난 7일 이재명정부의 첫 특별사면을 준비하기 위한 법무부 사면심사위원회가 열렸다. 이날 특별사면 명단에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치권의 관심이 급상승했다. 사면심사위원회가 사면·복권 건의 대상자를 검토하면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이를 이재명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오는 12일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을 거쳐 최종 확정된다. 설에 부채질 조 전 대표는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혐의로 지난해 12월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 실형을 확정받았다. 조 전 대표의 만기 출소 예정일은 내년 12월15일이다. 이번 광복절 특별사면이 이뤄질 경우 출소 시기는 앞당겨질 수 있다. 혁신당은 조 전 대표의 기소 자체가 검찰의 무리한 시도였다고 보는 만큼 이번 정권에서 검찰개혁을 이뤄내고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보고 있다. 혁신당 신장식 의원은 지난 대선 정국서 “조 전 대표가 보고 싶지 않느냐”며 “(이재명 후보가) 그냥 이기는 게 아니라 크게 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이재명 후보의 당선이 곧 조 전 대표의 사면이라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전달한 것이다. 조 전 대표의 부인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 또한 비슷한 시기에 ‘더1찍 다시 만날 조국’이라는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이 후보의 당선과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동일시했다. 이렇듯 혁신당은 지난 총선과 대선 등에서 일궈낸 업적을 청구서 삼아 은근한 눈치를 보냈고, 최근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롯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내 친문(친문재인)까지 목소리를 키우면서 이 대통령을 전방위로 둘러쌌다. 지난달 30일 친문계인 민주당 고민정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조 전 대표와의 접견 사실을 알리며 “특유의 미소가 여전하고 세상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이 많을 법도 한데 오히려 긍정 에너지가 가득하다. 그래서인지 자꾸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고 마음의 빚을 지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적었다. 이어 “조국의 사면을 많은 이들이 바라는 이유는 검찰개혁을 요구했던 우리가 틀리지 않았음을 그의 사면을 통해 확인받고 싶은 마음 아닐까”라며 “야수의 시간과 같았던 지난 겨울 우리가 함께 외쳤던 검찰개혁이 틀리지 않았음을, 서로 생각은 달라도 통합과 연대라는 깃발 아래 모두가 함께 있었음을 확인받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국민통합 일환? 이 결정만 남아 친문계에 문까지 팔 걷어붙여 친명(친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민주당 김영진 의원 역시 한 라디오를 통해 “국민통합을 위한 측면에서 넓게 사면 복권에 관한 판단을 할 때가 되지 않았나란 생각이 든다”면서도 “이 문제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 대통령께서 판단할 문제라 보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문 전 대통령이 용산 측에 조 전 대표의 사면 의견을 직접 전달한 것으로도 전해진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 5일 경남 양산 평산마을을 찾은 우상호 정무수석을 만난 자리에서 이 같은 의견을 전달했고, 우 수석은 “뜻을 전달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김원기·임채정·정세균·문희상·박병석·김진표 등 민주당 출신인 전 국회의장도 가세했다. 이들은 입장문을 통해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책임을 수용한 이들에 대한 절제된 관용”이라며 “대통령께서 국민 통합의 뜻을 담아 조 전 대표에 대한 특별사면을 단행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한 개인의 구제가 아니라 극한 대립과 갈등의 시기를 겪어내며 상처 입은 우리 사회 공동체에 건네는 ‘공정한 매듭과 위로’의 손길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방에서 사면 요청이 쇄도하자 대통령실은 막판 고심에 빠졌다. 앞서 지난 5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사면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며 “사회적 약자와 민생 관련 사면에 대해 일차적으로 검증 및 검토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정치인 사면에 관해 다양한 의견들을 수렴 중”이라며“아직 최종적인 검토 내지는 결정에는 이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혁신당 내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조 전 대표가 수감 된 지 8개월이 지났는데 혁신당은 아직도 권한대행 체제다. 전당대회를 통해 새 대표를 뽑을 만도 한데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가 뭐겠느냐”며 “이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조 전 대표가 사면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조 전 대표가 돌아와서 혁신당이 이전 같은 명성을 되찾길 기다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혁신당 당헌·당규에 따르면 ‘당대표가 궐위된 때에는 최고위원 가운데 가장 많은 득표로 선출된 최고위원이 남은 임기 동안 당대표의 권한을 대행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김선민 권한대행이 내년 7월까지 조 전 대표의 임기를 대신해 자리를 지킬 의무가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당초 조 전 대표가 자신의 수감 생활을 예측하고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이러한 당헌·당규를 개정한 게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8개월째 대행 체제 혁신당 “확신” 믿을 구석 있었나 내년 지방 선거를 위해서라도 혁신당은 조 전 대표의 사면이 필요하다. 구심점이 없고 ‘조국’혁신당이라는 이름만 존재하는 지금으로서는 지난 보궐선거만큼의 역량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다. 민주당은 딜레마에 빠졌다. 국정 초기부터 자녀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으로 법의 심판을 받고 복역 중인 인사를 사면했다가는 ‘범죄자 프레임’에 함께 걸려들 수 있다. ‘조국 사태’에 거부감을 느낀 지지자들의 이탈도 고려해야 하는 지점이다. 반면 사면 요청을 거절할 경우 오히려 조 전 장관의 정치력을 키우는 등 일종의 서사를 부여할 수 있다. 조 전 대표는 본인의 사면에 대해 큰 뜻을 밝히지 않아 오히려 지지층 결집에 도움이 될 것이란 해석이다. 민주당에 있어 조 전 대표는 내년 지방선거의 ‘변수’다. 지난 총선서 호남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킨 혁신당이기에 조 전 대표가 정치권에 돌아온다면 진보진영 텃밭을 둘러싼 두 정당 간의 경쟁과 그로 인한 잡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단정하기는 이르지만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그의 행보를 예측하고 나섰다. ‘자유의 몸’이 될 경우 이른 시일 안에 전당대회를 치러 다시 한번 당대표직을 거머쥐고 내년 지방 선거를 진두지휘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일각에서는 조 전 대표가 부산 시장 등으로 직접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도 보고 있다. 어디로 튈까 민주당은 최종 사면 명단이 공개되기 전까지 별다르 입장을 내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 7일 문 전 대통령을 예방했지만, 이날 조 전 대표의 사면 논의는 나오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이제 공은 이 대통령에게 넘어왔다. 단 한 사람의 정치 인생이 걸린 문제지만 그의 복권은 정치 진영을 흔들기에 충분하다. 여러 가지 변수와 상수가 존재하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최종 선택에 이목이 쏠린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