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세계가 열광하는 국민배우 윤여정

어제, 오늘, 내일을 다르게 살다

[일요시사 취재1팀] 차철우 기자 = ‘윤며들다’는 “윤여정에게 스며들다”라는 신조어다. 그의 뛰어난 연기력이 아니라 인간적인 매력이 출중하다는 데서 비롯된 말이다. ‘윤며들고’ 있는 건 비단 한국뿐이 아니다. 미국 등 전 세계가 75세 배우 윤여정에게 열광 중이다. 윤여정은 27관왕(지난 3일 기준)의 새로운 역사를 쓰며 오스카상 수상까지 바라보고 있다. 배우 윤여정에 대해 하나하나 짚어봤다. 
 

▲ 배우 윤여정

“목소리가 별로라 배우 하기엔 글렀다.” 과거 TBC의 한 PD는 윤여정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실제로 윤여정은 목소리 때문에 과거에 비선호도 1위에 오른 적이 있다.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150개가 넘는 작품에 출연하며 지금까지도 연기에 대한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다.

순탄치 않은
여정의 여정

윤여정은 명문이라 꼽히는 이화여자고등학교에 다녔다. 어릴 적부터 몸이 약해 고등학교 1학년 때 위궤양을 앓았다. 시험을 못 볼 만큼 아팠는데, 그 영향으로 성적이 점점 떨어졌다고 한다.

꿈을 고민하던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윤여정을 배우의 세계로 끌어들인 TBC가 개국했다. 당시에는 배우가 신선한 직업이라 여겨 도전할 마음이 들었다. 배우를 해보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TBC에서 진행 도우미로 일하던 중, 스태프의 권유로 탤런트 시험을 보게 됐다. 그 결과, 1966년에 TBC 공채 3기 배우로 데뷔했다. 

TBC의 전속 배우를 뽑는 자리에서 탈락해 KBS로 가서 면접을 봤다. 윤여정은 ‘인사를 하지 않아 인격 수양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탈락했다. 예쁘게 보이기 위해 안경을 벗고 다닌 것이 인성 문제로 불거진 것이다. 시작부터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윤여정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은 김기영 감독에게 러브콜을 받은 때부터다. 1971년 김 감독의 <화녀>로 영화계에 데뷔한 윤여정은 더 큰 주목을 받았다.

윤여정은 처음에 김 감독을 매우 싫어했다고 한다. 감독은 윤여정에게 맨손으로 쥐를 잡게 하거나 내용을 알리지 않고 침대에 누워있는 그에게 쥐 떼를 떨어뜨리기도 했다.

윤여정은 <화녀>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앞으로 김 감독과 작품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심지어 당시 김 감독은 계약서에 윤여정이 매일 자신과 만나야 한다는 조항을 넣었다고 전해진다.

처음에는 도대체 나와 무엇을 하려고 이렇게까지 하나 의아하게 생각했으나, 김 감독은 윤여정을 매일 만나 그를 관찰했다. 평소 지었던 윤여정의 표정, 손짓, 몸짓을 연기할 때 활용했다.

영화 <미나리>서 인상 깊은 연기 
끝나지 않은 수상…27관왕 금자탑

윤여정은 자신과 수많은 대화를 나누며 영화 속 캐릭터를 위해 자신에 대해 연구하는 김 감독이 부담스러웠지만, 지금은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윤여정이 캐릭터를 끊임없이 연구하게 된 계기다. 윤여정은 <화녀>를 통해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잘나가던 윤여정은 갑자기 연기 생활을 쉬었다. 유명 스타와의 결혼 생활 때문이다. 유명 스타와의 결혼으로 미국으로 건너갔지만 그의 삶은 순탄치 못했다. 남편과 이혼 후 가진 돈도 없이 2명의 아이를 키우는 가장이 됐다.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윤여정은 그대로는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이혼 후 13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그의 나이는 40대였다. 촬영장 시스템은 바뀌었고, 그의 자리는 없었다. 할 수 있는 역할은 단역 뿐이었다.

생계를 위해서 연기 활동을 이어 나갈 수밖에 없었다. 윤여정은 그 시기에 연기가 빛을 발했다고 한다. “나는 배고파서 연기했는데 남들은 그 연기가 좋았다라고 한다”는 것.
 

▲ 죽여주는 여자 포스터 ⓒCGV아트하우스

윤여정은 다양한 작품을 통해 현실 감각을 보여주는 배우다. 배우의 경우 자아도취에 빠져 현실감각을 잃기도 하는데, 윤여정의 연기에서는 냉정한 현실감이 보인다. 그의 연기는 보편적인 인간을 자신의 방식으로 재탄생시킨다.

누군가의 평범한 엄마 역할이든, 이혼이나 불륜을 겪는 특별한 역할이든 윤여정은 자신만의 색감을 드러낸다.

남편과 자식들을 털어버리고 ‘공개 바람’을 선언하는 시어머니 홍병한(<바람난 가족>)이나,  재벌가 백씨 집안의 탐욕스러운 안주인 백금옥(<돈의 맛>)과 같은 독특한 역할을 맡을 때도 윤여정의 연기는 어딘가 보편성을 담보한다. 이 영화로 칸 국제영화제에 입성했다.

살아있는
현실감각

<죽여주는 여자>에서는 ‘박카스 할머니’를 연기해 사람들에게 충격을 선사했고, <여배우들>에서는 사람과 배우의 간극을 정확히 표현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윤여정은 제20회 몬트리올 판타지아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과 제10회 아시아 태평양 스크린 어워즈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다.

윤여정의 연기는 전형성을 탈피한다. 항상 연기에 자신의 색감을 입힌다. 윤여정이 파격의 대명사가 된 이유다. 윤여정은 영화 <미나리> 기자회견에서 “전형적인 엄마, 할머니 연기는 하기 싫었다”고 말했다.

윤여정은 자신의 역할에 대해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를 연기로 선보인다. 그는 “정해진 역할을 배우가 어떻게 해석하냐에 따라서 평범한 역할도 달라진다”며 “나는 타고난 것이 없기에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는 배우다.

윤여정은 지금까지 출연했던 작품의 배역에 대해 “뒤돌아봐도 작품 선택이 좀 용감했던 것 같다. 남들이 다 하는 역할은 싫었다. 특히 비련의 여주인공 같은 건 질색했다”며 “평범할 수 있는 배역들을 끊임없이 나만의 캐릭터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윤여정은 “스스로를 연구해봤는데 싫증을 잘 낸다.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게 싫다. 그러면 하는 자신도 보는 사람도 지겨워한다”며 “매일 흔들리는 게 인생이기에 내일은 또 다르다”고 말했다. 윤여정이 오랜 시간 도전을 이어 나가는 이유다.
 

그가 연기하는 배역들은 근사하지도 않고 평범하지는 않다. 그는 맡은 역할이 크고 작음을 생각하지 않는다. 노력하는 자세를 보이고 변화를 추구하는 연기를 한다.


그는 “노배우인 난 현재 보너스 인생을 살고 있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감독과 작가면 반드시 한다. 주인공을 꼭 해야겠다는 욕심은 버린 지 오래다. 그저 노배우로서 앞으로 남은 인생,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고 싶다”며 “난 아직도 편견을 깨고 싶고, 도발도 하고 싶고, 늘 도전하는 자세로 살아가고 싶다”고 전했다.

진심과 믿음
솔직과 인정

윤여정은 한국 나이로 75세다. 지치고 힘들어서 일을 쉬려고 생각해 본 적도 있다. 그러나 그는 멈춘 적이 없다. 그는 국민 배우 타이틀이 싫다. 오로지 “나는 매 순간 변화를 위해 노력할 뿐”이라고 했다. 

이런 연기 내공들이 쌓여 윤여정은 <미나리>의 순자 역할을 더 잘 소화할 수 있었다. <미나리>는 80년대 아메리칸 드림을 쫓아 미국에 간 가족들의 이야기다. 윤여정이 연기한 순자는 평범한 할머니의 모습이 아니다.

요리는 하지 않지만, 나쁜 말은 한다. 몸에 좋은 것은 자기만 먹는다. 이는 미국에서 태어나서 영어를 구사하는 어린 데이빗과 한국 외할머니의 사소한 문화적 충돌로 이어진다. 한국식으로 아이를 돌보는 할머니의 방식은 뻔뻔해 보이지만 때론 아이들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불어넣기도 한다.

윤여정이기에 그의 방식으로 연기할 수 있었다.


윤여정의 연기로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미국 4대 비평가협회상으로 불리는 LA 비평가협회 상, 전미비평가협회상 등 총 27개의 트로피를 손에 쥐었다. 미국 배우조합상(SAG)에서도 한국 배우 최초로 여우조연상 후보에 지명됐다. 전 세계 수많은 언론은 윤여정이 오스카상을 받을 것이라고 예측을 했다.
 

▲ 영화 하녀 포스터

윤여정이 <미나리>를 하게 된 가장 큰 계기는 “나는 사람을 보고 일을 하지, 작품 같은 것은 아무것도 안 보게 됐다. 작품을 본다고 해서 갑자기 뭐 어떻게 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그냥 사람이 좋아서 했다”고 밝혔다.

윤여정은 함께하는 사람을 믿는다. 타인을 믿는 만큼 서로가 솔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나리>에서 그는 “내가 처음에 시작할 때 감독에게 물었다. 할머니 기억이 생생할 텐데 할머니하고 똑같이 해야 하느냐, 그랬더니 알아서 하라 그랬다. 그래서 감독에게 정말 믿음이 갔다”며 사람을 믿는 모습을 보였다.

매순간 노력하며 변화 추구
도전 멈추지 않는 노력파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 출연했을 때는 윤여정은 “역할이 탐나지는 않았다. 감독과는 개인적으로 안다. 무료로 출연했다”며 “60세가 넘어서부터는 사치하고 살기로 작정했다”고 했다. 이어 “좋아하는 사람의 작품은 하고, 싫어하는 사람의 작품은 하지 않는다”며 “출연료를 생각하지 않고 작품을 하는 것”이라고 출연 이유를 말했다.

tvN의 <윤식당> <윤스테이>에 출연하게 된 계기도 나영석 PD의 솔직한 말 덕분이다. 나 PD는 윤여정에게 항상 “아직 잘 모른다. 해봐야 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고 한다. 현실적인 솔직함은 나 PD가 윤여정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이유다.

윤여정에게 배역은 아무것도 아니다. 함께하는 사람과의 진심이 통하고 믿을 수 있다면 그것이 그의 출연 이유가 된다.

윤여정은 말을 거침없이 하기로 유명하다. 자신을 까다로운 성격이라고 했다. 그는 “세상은 서러움 그 자체고 인생은 불공정, 불공평이다. 언제나 서러움이 있다. 그 서러움은 내가 극복해야 하는 것 같다”며 데뷔 후 50여년간 배우 생활을 하며 힘든 순간을 잘 극복해 낸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윤여정은 언제나 모든 것에는 배울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윤여정은 자신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면 그 대상이 누구든지 인정할 줄 안다. 무려 스무 살이 어린 후배에게서도 배울 것을 찾는다.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에서 양동근의 연기를 본 윤여정은 “걔가 나보다 연기를 더 잘한다고 느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장면에 완전히 몰입한 양동근의 연기가 자신의 재능보다 위에 있다고 인정한 것이다. 진실을 떠나 어린 후배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태도가 지금의 윤여정을 만든 것은 아닐까.

이렇게 윤여정에게서는 사람 냄새가 난다. 까다롭고 깐깐하다고 스스로 표현하지만 부족한 부분은 고치고, 이야기해야 할 부분은 이야기한다. 그리고 언제나 모든 것에는 배울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결국에는 다 배울 것이 있다”며 경험의 소중함을 대중에게 알렸다.

오스카만 
남았다

윤여정은 더 많이 도전하고 싶다. 배우 윤여정의 도전은 인간 윤여정의 도전이다. 도전이 두렵지만, 윤여정은 깊숙하게 발을 넣고 본다. 배우는 연기를 잘해서 보여 주는 게 도전이라고, 윤여정은 생각한다. 윤여정이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의 보습을 보여주면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지 모두가 주목하고 있다.


<ckcjfd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미리 보는 오스카 시상식

배우 전도연은 봉준호 감독과 영화 <기생충>이 오스카 시상식에서 4관왕을 달성하는 것을 보고 새로운 꿈을 꿨다고 한다.

봉 감독은 윤여정에게 전화해 “선생님, 우리도 가요. 오스카”라는 말을 했다고.

전도연이 1년 전에 한 말이 현실이 되는 모양새다.

윤여정이 출연한 <미나리>가 오스카 진출의 목전에 있다.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비롯해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선셋필름, 서클어워즈 앙상블상 등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 영화계의 상이란 상은 모조리 휩쓸고 있다.

전 세계는 <미나리>를 통해 윤여정이 보여준 한국 할머니 캐릭터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우리에게는 익숙하지만, 해외에는 없는 할머니여서 더욱 더 그렇다고들 한다. 

오스카상은 아시아에 유난히 벽이 높았다.

아시아 여자배우가 오스카 시상식에서 상을 받은 것은 92년 역사상 단 한 차례뿐이다.

아만다 사이프리드 등 오스카상 후보로 언급되는 배우들도 절대 만만하지 않다.

하지만 이 기세라면 윤여정의 오스카상 수상도 무리가 아니라는게 다수의 전망이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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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