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The Path, 그가 가는 길’ 김창열

물방울과 문자의 만남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갤러리현대가 김창열의 개인전 ‘The Path(더 패스)’를 준비했다. 그의 작품을 더 패스라는 주제로 한자리에 모아 추상미술과 동행해 온 갤러리현대의 반세기 역사를 기념하고, 동시에 그의 작품 세계를 새로운 관점에서 조명하기 위한 자리다. 
 

▲ Recurrence, 1987, Oil on canvas, 195 × 330cm

김창열은 회화의 본질을 독창적으로 사유한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이다. 영롱하게 빛나는 물방울과 동양의 철학·정신이 담긴 천자문을 캔버스에 섬세하게 쓰고 그린다. 갤러리현대는 프랑스 파리에서 활약하던 김창열의 개인전을 1976년에 개최했다. 이 개인전을 계기로 파리에서 호평을 받은 김창열의 물방울 회화 작업이 국내에 처음 소개됐다. 

14번째 전시

그의 작품은 미술계 안팎으로 신선한 반향을 일으켰고 동시에 작가의 인지도를 크게 높였다. 이후에도 1993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회고전, 2004년 파리 쥬드폼므미술관 초대전, 2016년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 설립 등 대내외적 활동에서 갤러리현대와 김창열은 관계를 꾸준히 이어왔다. 

이번 개인전 더 패스는 갤러리현대와 김창열이 함께하는 14번째 개인전이다. 2013년 김창렬의 화업 50주년을 기념해 열었던 개인전 이후 7년 만이다. 전시는 물방울과 함께 거대한 맥을 형성하는 문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문자는 캔버스 표면에 맺힌 듯 맑고 투명하게 그려진 물방울과 더불어 강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김창열에게 문자는 이미지와 문자, 과정과 형식, 내용과 콘셉트, 동양과 서양, 추상과 구상의 세계를 연결하는 매우 중요한 미적 토대지만, 이에 대한 관심과 연구는 물방울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진했다. 


이번 더 패스전에서는 김창열의 작품에 등장하는 문자 속 심오하고 원대한 진리의 세계관이 생명과 순수, 정화를 상징하는 물방울과 결합해 우리에게 ‘인간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
새로운 관점에서 조명

이런 맥락에서 전시 제목 더 패스는 동양 철학의 핵심인 도리를 함축하고 있으며, 평생 물방울을 그리고 문자를 쓰는 수행과 같은 창작을 이어온 김창열이 도달한 진리 추구의 삶과 태도를 은유한다. 

더 패스전에는 김창열의 대표작 30여점이 전시된다. 물방울이 문자와 처음 만난 1975년 작품 ‘휘가로지’를 포함해, 한자의 획을 연상시키는 추상적 형상이 캔버스에 스민 듯 나타나는 1980년대 중반 ‘회귀’ 연작, 천자문의 일부가 물방울과 따로 또 같이 화면에 공존하며 긴장관계를 구축하는 1980년대 말부터 2010년대까지의 ‘회귀’ 연작 등을 감상할 수 있다. 

출품작의 양상은 층별 전시장에 따라 ‘문자와 물방울의 만남’ ‘수양과 회귀’ ‘성찰과 확장’이라는 세 가지 주제로 심화된다.
 

▲ Recurrence PA1991, 1991, Ink and oil on canvas, 194.5 × 162.5cm

1층 전시장의 주제는 ‘문자와 물방울의 만남’이다. 김창열은 초기 물방울 회화에서 물방울의 특징을 강조하는 빛의 반사효과를 주요 조형 요소로 삼았다. 바탕칠을 하지 않은 거친 마대나 모래, 나무판 등 물질성이 두드러지는 재료를 사용해 물방울 효과를 강조했다. 

‘휘가로지’는 프랑스 신문 <휘가로> 1면에 수채물감으로 물방울을 그린 작품이다. 1980년대 초반 김창열은 신문에 인쇄된 활자를 옮긴 것처럼 캔버스에 한자를 빼곡하게 적는 모색기를 거쳤고, 1980년대 중반에 이르러 ‘해체’ 연작을 통해 온전한 글자를 조각내 의미 없는 기본 획이나 캔버스에 스민 물감자국과 같은 문자의 흔적들을 화면에 등장시켰다. 


인간이 나야가야 할 길
진리 추구와 삶의 태도

지하 전시장에서는 ‘회귀’ 연작의 다채로운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집중된 회귀 연작에는 물방울과 함께 문자가 작품의 주인공으로 부각된다. 김창열의 1990년대 작업 양상을 대표하는 회귀 연작은 “문자와 이미지의 대비를 넘어 음양의 철리와 같은 동양적 원천에로의 회귀”(이일)이자 “글자라는 기억의 장치가 물방울이라는 곧 사라져버릴 형상과의 미묘한 만남”(오광수) 등의 평가를 받았다. 

그의 작품에서 문자는 기계로 인쇄한 것처럼 단정하고 규격화된 해서체와 서예의 자유로운 운필 및 회화적 요소가 강조되는 초서체로 등장한다. 해서체가 문자와 이미지의 대립과 긴장을 강조한다면, 초서체는 먹의 농도에 따라 화면에 그물망을 형성하듯 물방울의 배경 역할을 담당한다. 

회귀 연작에서 이러한 시각적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캔버스의 천자문은 단정한 해서체로 작품 오른쪽 귀퉁이부터 순서대로 꼼꼼하게 적혀있고 자간과 행간도 모두 균일하다. 반면 한자 위에 그린 무수한 물방울은 글자가 물에 녹아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을 선사한다. 2000년대 이후 회귀 연작의 또 다른 변화인 다채로운 색감의 도입도 전시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 Recurrence NSI91001-91, 1991, Ink and oil on canvas, 197 × 333.3cm

2층 전시장에서는 김창열이 198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제작한 회귀 연작 중 먹과 한지를 소재로 한 작업을 감상할 수 있다. 종이에 글자 쓰기를 연습하듯 한지를 캔버스에 부착하고 여기에 천자문을 반복적으로 쓰면서 문자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겹쳐 썼다. 

겹쳐 쓰기

기혜경은 그가 한문을 겹쳐 쓰는 작업 방식에 대해 “작가 스스로 동서양의 차별점으로 규정한 자신을 비워내는 작업 방식을 그대로 실현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붓글씨를 끊임없이 써내려가는 일은 작가가 자신을 비워내는 성찰과 수련의 과정이면서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무념무상의 상태로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여겼다. 전시는 11월29일까지.


<jsjang@ilyosisa.co.kr>
 

[김창열은?]

김창열은 1929년 12월24일 평안남도 맹산에서 출생, 16세에 월남했다.

1948년 서울대 미술대학에 입학했지만 곧 6·25가 발발해 학업을 중단했다.

1957년 작가들과 현대미술가협회를 결성해 창립회원으로 활동하며 한국의 앵포르멜 미술운동을 이끌었다. 


1976년 갤러리현대에서 연 첫 개인전에서 처음으로 ‘물방울 회화’를 한국에 공개했다.

이후 국립현대미술관, 선재현대미술관, 드라기낭미술관, 사마모토젠조미술관 등 국내외 주요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60여회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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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사면’ 군불 때는 사람들

‘조국 사면’ 군불 때는 사람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풀어주느냐, 마느냐, 이재명 대통령이 깊은 고심에 빠졌다. 8·15 특별사면·복권 명단에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의 이름이 올라오면서다. 한때 아군이었던 조 전 대표의 정치 생명이 용산의 선택에 달렸다. 조국혁신당은 물론 문재인 전 대통령과 친문계까지 사면론에 힘을 싣고 있다. 지난 7일 이재명정부의 첫 특별사면을 준비하기 위한 법무부 사면심사위원회가 열렸다. 이날 특별사면 명단에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치권의 관심이 급상승했다. 사면심사위원회가 사면·복권 건의 대상자를 검토하면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이를 이재명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오는 12일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을 거쳐 최종 확정된다. 설에 부채질 조 전 대표는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혐의로 지난해 12월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 실형을 확정받았다. 조 전 대표의 만기 출소 예정일은 내년 12월15일이다. 이번 광복절 특별사면이 이뤄질 경우 출소 시기는 앞당겨질 수 있다. 혁신당은 조 전 대표의 기소 자체가 검찰의 무리한 시도였다고 보는 만큼 이번 정권에서 검찰개혁을 이뤄내고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보고 있다. 혁신당 신장식 의원은 지난 대선 정국서 “조 전 대표가 보고 싶지 않느냐”며 “(이재명 후보가) 그냥 이기는 게 아니라 크게 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이재명 후보의 당선이 곧 조 전 대표의 사면이라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전달한 것이다. 조 전 대표의 부인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 또한 비슷한 시기에 ‘더1찍 다시 만날 조국’이라는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이 후보의 당선과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동일시했다. 이렇듯 혁신당은 지난 총선과 대선 등에서 일궈낸 업적을 청구서 삼아 은근한 눈치를 보냈고, 최근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롯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내 친문(친문재인)까지 목소리를 키우면서 이 대통령을 전방위로 둘러쌌다. 지난달 30일 친문계인 민주당 고민정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조 전 대표와의 접견 사실을 알리며 “특유의 미소가 여전하고 세상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이 많을 법도 한데 오히려 긍정 에너지가 가득하다. 그래서인지 자꾸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고 마음의 빚을 지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적었다. 이어 “조국의 사면을 많은 이들이 바라는 이유는 검찰개혁을 요구했던 우리가 틀리지 않았음을 그의 사면을 통해 확인받고 싶은 마음 아닐까”라며 “야수의 시간과 같았던 지난 겨울 우리가 함께 외쳤던 검찰개혁이 틀리지 않았음을, 서로 생각은 달라도 통합과 연대라는 깃발 아래 모두가 함께 있었음을 확인받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국민통합 일환? 이 결정만 남아 친문계에 문까지 팔 걷어붙여 친명(친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민주당 김영진 의원 역시 한 라디오를 통해 “국민통합을 위한 측면에서 넓게 사면 복권에 관한 판단을 할 때가 되지 않았나란 생각이 든다”면서도 “이 문제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 대통령께서 판단할 문제라 보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문 전 대통령이 용산 측에 조 전 대표의 사면 의견을 직접 전달한 것으로도 전해진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 5일 경남 양산 평산마을을 찾은 우상호 정무수석을 만난 자리에서 이 같은 의견을 전달했고, 우 수석은 “뜻을 전달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김원기·임채정·정세균·문희상·박병석·김진표 등 민주당 출신인 전 국회의장도 가세했다. 이들은 입장문을 통해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책임을 수용한 이들에 대한 절제된 관용”이라며 “대통령께서 국민 통합의 뜻을 담아 조 전 대표에 대한 특별사면을 단행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한 개인의 구제가 아니라 극한 대립과 갈등의 시기를 겪어내며 상처 입은 우리 사회 공동체에 건네는 ‘공정한 매듭과 위로’의 손길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방에서 사면 요청이 쇄도하자 대통령실은 막판 고심에 빠졌다. 앞서 지난 5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사면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며 “사회적 약자와 민생 관련 사면에 대해 일차적으로 검증 및 검토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정치인 사면에 관해 다양한 의견들을 수렴 중”이라며“아직 최종적인 검토 내지는 결정에는 이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혁신당 내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조 전 대표가 수감 된 지 8개월이 지났는데 혁신당은 아직도 권한대행 체제다. 전당대회를 통해 새 대표를 뽑을 만도 한데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가 뭐겠느냐”며 “이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조 전 대표가 사면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조 전 대표가 돌아와서 혁신당이 이전 같은 명성을 되찾길 기다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혁신당 당헌·당규에 따르면 ‘당대표가 궐위된 때에는 최고위원 가운데 가장 많은 득표로 선출된 최고위원이 남은 임기 동안 당대표의 권한을 대행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김선민 권한대행이 내년 7월까지 조 전 대표의 임기를 대신해 자리를 지킬 의무가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당초 조 전 대표가 자신의 수감 생활을 예측하고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이러한 당헌·당규를 개정한 게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8개월째 대행 체제 혁신당 “확신” 믿을 구석 있었나 내년 지방 선거를 위해서라도 혁신당은 조 전 대표의 사면이 필요하다. 구심점이 없고 ‘조국’혁신당이라는 이름만 존재하는 지금으로서는 지난 보궐선거만큼의 역량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다. 민주당은 딜레마에 빠졌다. 국정 초기부터 자녀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으로 법의 심판을 받고 복역 중인 인사를 사면했다가는 ‘범죄자 프레임’에 함께 걸려들 수 있다. ‘조국 사태’에 거부감을 느낀 지지자들의 이탈도 고려해야 하는 지점이다. 반면 사면 요청을 거절할 경우 오히려 조 전 장관의 정치력을 키우는 등 일종의 서사를 부여할 수 있다. 조 전 대표는 본인의 사면에 대해 큰 뜻을 밝히지 않아 오히려 지지층 결집에 도움이 될 것이란 해석이다. 민주당에 있어 조 전 대표는 내년 지방선거의 ‘변수’다. 지난 총선서 호남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킨 혁신당이기에 조 전 대표가 정치권에 돌아온다면 진보진영 텃밭을 둘러싼 두 정당 간의 경쟁과 그로 인한 잡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단정하기는 이르지만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그의 행보를 예측하고 나섰다. ‘자유의 몸’이 될 경우 이른 시일 안에 전당대회를 치러 다시 한번 당대표직을 거머쥐고 내년 지방 선거를 진두지휘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일각에서는 조 전 대표가 부산 시장 등으로 직접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도 보고 있다. 어디로 튈까 민주당은 최종 사면 명단이 공개되기 전까지 별다르 입장을 내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 7일 문 전 대통령을 예방했지만, 이날 조 전 대표의 사면 논의는 나오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이제 공은 이 대통령에게 넘어왔다. 단 한 사람의 정치 인생이 걸린 문제지만 그의 복권은 정치 진영을 흔들기에 충분하다. 여러 가지 변수와 상수가 존재하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최종 선택에 이목이 쏠린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