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남북 냉전시대의 핵전쟁을 그럴듯한 상상으로 그려낸 영화 <강철비>의 속편 <강철비2: 정상회담>이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1편과 같은 감독이 연출하고, 주연 배우들이 그대로 등장하나, 전혀 다른 세계와 전혀 다른 이야기로 새로운 메시지를 전한다. 미국과 중국, 일본 등 열강에 둘러싸인, 전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인 남북이 평화로 가기 위해 나아갈 방향을 시뮬레이션으로 돌려본 <강철비2: 정상회담>은 그 자체로 용기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부림 사건’을 소재로 시나리오를 썼다가 우연한 계기로 영화 <변호인>으로 데뷔한 양우석 감독이 <강철비>에 이어 다시 한 번 남북관계를 정조준했다.
북한 내부 강경파가 북한 1호를 살해하면서 발생한 쿠데타로 인해 핵전쟁까지 이어지는 내용의 <강철비>는 판타지를 기저에 두었으나 굉장히 그럴듯한 현실감으로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유일하게 남북전쟁이 발발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을 그린 것.
평화 시뮬레이션
“우연찮게 데뷔하면서 감독으로서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가 할 때, 세상이 필요로 하는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는 양 감독이 쓴 이야기는 평화 시나리오다.
미국과 중국 간 갈등, 남북의 평화를 불편해하는 일본과, 일본을 뒤에서 돕는 미국의 동맹 관계 사이서 주변국 눈치만 보는 한반도의 현실을 냉철하게 바라본다. 중국과 일본이 한편이 됐을 때 한반도에 도래할 위기도 내다본다.
1편에 이어 정우성과 곽도원이 핵심 인물을 연기한다. 1편서 정우성이 북한 측 요원, 곽도원이 남한 측 요원이었는데, 이번에는 바뀌었다. 정우성이 한국의 대통령 한경재, 곽도원이 북한 강경파 박진우로 등장하며, 북 위원장 조선사는 유연석, 미 대통령 스무트 역에는 미국 배우 앵거스 맥페이든이 나온다.
감독은 조선사의 헤어스타일만으로 김정은 북한 위원장을 암시하고, 거침없는 자기애와 막말을 쏟아내는 스무트로 트럼프를 드러낸다. 현재의 각국 1호에 대해 노골적으로 이야기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평화협정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 한국 정부는 중국 자본이 일본을 돕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중국의 거대 자본의 칼끝이 한국을 향할지도 모르는 상황. 힘겹게 북한 원산서 미 대통령과 북 위원장, 한국의 대통령이 한자리에 모인다.
스무트는 독재자라는 표현도 거침없이 써가며, 자신의 정치적 이득을 위해 핵 사찰 후에 비핵화 협약을 맺게 해달라고 강하게 요구한다. 30년간 힘겹게 만든 핵을 단숨에 내주기로 한 마당에 납득하기 어려운 요구까지 하자, 북 위원장은 협상을 결렬시킨다. 한 대통령이 가운데서 수습을 위해 쩔쩔매던 가운데, 북한 내 강경파인 박진우가 쿠데타를 일으킨다. 그리고 단번에 성공, 세 명의 1호를 핵 잠수함 내에 인질로 감금한다.
이미 일본으로부터 5억달러를 받았고, 핵을 한국에 쏘면 매년 50억달러를 중국으로부터 받기로 했다는 박진우는 중국이 원하는 방향 대신 일본에 핵을 쏠 것이라고 말한다. 3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으로 치달은 가운데, 각국의 대통령은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어려운 도전에 뛰어든 양우석 감독의 강단
외교에 대한 유아적 설명 ‘기발한 상상력’
1편이 판타지로 출발해 현실로 들어가는 변화구라면, 속편은 현실로 출발해 판타지로 향하는 돌직구다. 평화와 통일로 가는 길이 얼마나 험난한지, 어떤 희생이 요구되는지, 무려 20여년간 한반도 전쟁 시나리오를 관심있게 찾아본 양 감독은 그 총체를 절묘하게 담아낸다. 북한 내 남한 강경파 세력이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국내 정부는 얼마나 대비하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은 감독은 영화적 상상을 가미해 만든 작품이 <강철비2:정상회담>이다.
최근 남한과 북한, 미국, 중국, 일본의 국제정세 현주소를 매력적으로 녹여냈다. 다소 어렵고 무거울 수 있는 외교라는 개념을, 어린아이들이 싸우듯 유아적으로 표현한 상징성은 이 영화의 백미다. 어느 순간 블랙코미디 형식을 띠며, 담배와 방구를 거래하는 각 대통령의 모습은 묘한 웃음을 유발한다.
외교라는 것이 특별한 것이 아닌 각국의 이득을 위한 협상이라는 것을 쉽게 설명한 대목은 양 감독이 얼마나 이 분야를 명확히 이해하고 있는가가 드러난다. 어느 누구도 손대지 않았던 외교적 문제를 마치 좁은 방 한 칸에서 벌어지는 상황으로, 은유하는 상상력이 기발하다.
메시지가 뚜렷한 이 영화는 핵 잠수함 교전을 넣어 재미도 살린다. 후반부 박진우가 일본에 핵을 쏠 것을 안 일본 정부가, 대통령을 납치한 잠수함을 공격하는 대목은 오락적인 요소를 갖춘다. 군 무기에 관심이 많은 관객이라면 흥미롭게 바라볼 대목이다.
다만 이를 풀어내는 데 있어 긴박감이 정점까지 찍지는 못한다. 잠수함을 향해 날아오는 어뢰를 막아내는 과정이 흥미롭기는 하나, 분위기로 관객을 압도하지는 않는다. 다소 투박한 편집과 음악 활용이 아쉽다. 손에 땀을 쥘만한 긴장감까지 부여하지는 못한다.
반대로 각 인물의 감정을 철저히 배제하고 총구를 겨누는 대목은 세련된 선택으로 보인다. 어줍잖은 감정 연기가 없다는 것 자체만으로 총격신은 진일보한 면이 있다.
배우들의 연기력은 전체적으로 준수하다.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앵거스 맥페이든이다. 현재의 트럼프 미 대통령의 뻔뻔하면서도 천박한 이미지를 리얼하게 그려낸다. <강철비2: 정상회담>의 발견이다.
한경재 역의 정우성은 이야기와 인물을 소개하는 인도자의 역할로 안정감을 주며, 신념이 악으로 변질된 박진우를 연기한 곽도원은 <변호인>의 그것과 같은 퍼포먼스를 보인다. 부드러운 이미지의 유연석은 완전히 새로운 얼굴로 카리스마를 선보인다. 유의미한 변신이다. 북 잠수함 부함장 역의 신정근은 북 위원장을 향한 투철한 충성을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좋은 이야기 위에서 훌륭한 배우들이 보기 좋게 뛰어논다.
메시지 과잉
양 감독은 쿠키 영상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메시지를 전한다. 주요 인물의 연설과 질문을 통해 관객에게 평화를 강요하는 느낌을 준다. 다만 이 표현이 너무 직설적이고 교훈적이라, 일부 관객들에게는 불편함을 줄 수도 있다. 다소 아쉬운 대목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영화는 고평가를 받기 충분하다. 민감한 부분을 정확히 짚는 용기도 가상하며, 풀어내는 수준도 준수하다. 어려울 수밖에 없는 도전에 이어 의미있는 결과물까지 만들어낸 감독의 강단과 실력만큼은 박수를 받기 충분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