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어깨 무거운 김창룡 경찰청장 내정자

첫째도 개혁 둘째도 개혁 셋째도 개혁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청와대가 김창룡 부산지방경찰청장을 차기 경찰청장으로 내정함에 따라 그의 이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치안비서관실 행정관으로 근무했던 만큼 현 정부의 국정 이해도가 높은 것이 이번 내정에 가장 크게 작용했다는 평이 나온다.
 

▲ 김창룡 경찰청장 내정자

오는 23일 임기가 끝나는 민갑룡 경찰청장의 후임으로 김창룡 부산지방경찰청장이 내정됐다. 김 내정자는 검경 수사권조정, 자치경찰제 도입 등 ‘경찰 개혁’을 완성해야 할 중책을 맡게 된다.

청장 내정
파격 발탁

청와대 강민석 대변인은 지난달 26일 브리핑을 통해 “김 내정자는 치안 업무 전반에 대한 경험이 풍부하고 현장 업무뿐 아니라 탁월한 정책기획 능력과 추진력으로 조직 내부로부터 신망받고 있다”며 “수사 구조 개혁 및 자치경찰제 도입 등 경찰개혁을 차질 없이 추진해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부산지방경찰청장이 경찰청장으로 내정되는 것은 박근혜정부였던 2013년 이성한 전 경찰청장 이후 7년 만이다. 지난 두 번의 경찰청장 모두 경찰청 차장이 내정된 것과 비교하면 ‘파격 발탁’으로 볼 수 있다. 

통상 경찰청 차장이나 서울경찰청장이 청장 자리에 오르는 경우가 많았지만 경찰청 본청과 지방청, 해외 주재관, 청와대까지 두루 거친 경력 등이 김 내정자 발탁에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분석된다.


김 내정자 지명에는 영남 출신이라는 지역적 안배가 일부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경남 합천군 출생인 만큼 ‘호남 편중인사’라는 비판서 벗어나 있다.

김 청장은 경남 합천 출신으로 부산 가야고와 경찰대 법학과(4기)를 졸업했다. 경찰청 본청서 생활안전국장, 정보국 정보1과장을 역임했으며 경남지방경찰청장, 서울 은평경찰서장 등도 맡아 정책과 현장을 두루 경험한 인물로 꼽힌다.

특히 미국 워싱턴DC 주재관, 브라질 상파울루 총영사관 영사를 경험하는 등 해외 경험도 풍부한 편이다. 이 때문에 다양한 부서에서 근무한 장점과 외국 근무를 토대로 외국 우수사례를 접목해 치안정책 수준도 올릴 수 있다는 평을 받는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근무…대통령과 인연
국정운영 이해도 높아…PK 지역 안배도 고려

김 청장은 문재인정부 이후 초고속 승진을 이어왔다. 워싱턴 주재관(경무관)으로 근무하던 2017년 12월, 경찰청 생활안전국장(치안감)으로 승진했다. 경찰 내부에선 외국서 근무하는 고위급 간부를 진급시키는 것을 매우 이례적으로 보고 있다. 

김 청장은 2018년 12월 경남지방경찰청장으로 자리를 옮긴 후 7개월 만인 지난해 7월 부산지방경찰청장(치안정감)으로 승진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으로 재직하던 당시 함께 청와대서 근무했다는 점에서 현 정부의 국정기조를 잘 실현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꼽힌다. 


하지만 이 때문에 현 정부에 치우친 수사 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우려도 제기된다.

김 청장은 전날 경찰청장 임명 제청 동의 안건을 심의한 경찰위원회 임시회의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나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일한 경력이 경찰청장 직무 수행에 영향을 미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물음에 “인사 대상자가 인사권자의 인사에 대해 말씀드리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답했다.

김 내정자는 일찌감치 이용표 서울경찰청장(56·경찰대 3기), 장하연 경찰청 차장(54·5기)과 함께 신임 경찰청장 하마평에 올랐다.
 

경찰 안팎에선 “이 청장과 장 차장의 ‘2파전’으로 좁혀지는 듯하다”는 말이 오간 만큼 청와대가 김 내정자를 낙점한 게 뜻밖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한 경찰 간부는 “최근 분위기를 감안하면 의외의 결과로도 보인다”고 말했다.

김 내정자는 청와대의 선택을 받은 만큼 국정철학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게 강점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 자치경찰제 등 경찰 개혁을 완성할 적임자란 평이 나오는 동시에 야당서 경찰의 중립성을 공격하는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상존한다. 

경찰 개혁… 
과제 산더미

경찰대 4기인 민갑룡 현 청장에 이어 또 한 번 ‘기수 역전’ 인사란 점도 경찰 조직에는 변수다.

경찰 내부엔 여전히 경찰대 1∼3기들이 주요 보직에 포진해 있다. 한 경찰 관계자는 “경찰대 4기가 연달아 낙점됐으니 윗기수 일부는 용퇴를 결정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창룡 신임 경찰청장 내정자는 12만명이 넘는 경찰 조직을 이끌면서 경찰 개혁을 완성해야 한다. 특히 국가 경찰의 근간을 유지하면서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비대해진 경찰 권력을 분산하는 ‘경찰 힘빼기’를 완수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게 됐다.

지난달 26일 경찰과 정치권에 따르면 문재인정부가 집권 후반기 주력하는 권력기관 개혁 중 경찰 개혁의 핵심은 검·경 수사권 조정 후속작업과 자치경찰제 도입, 국가수사본부 신설 등이다.

민갑룡 현 경찰청장이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 개혁을 위한 주춧돌을 쌓았다면 김창룡 내정자는 경찰 개혁 완성을 위한 기둥을 세우고 대들보와 기와도 올려야 한다.

경찰은 현재 수사권 조정 후속작업으로 하위법령 정비 등 수사 체계 및 절차 개편을 추진 중이다. 경찰과 검찰을 수직적 관계서 상호협력 관계로 재설정하고 검사의 수사지휘권 폐지 및 경찰 1차 수사종결권 부여의 내용 등이 담긴 수사권 조정 관련 법안은 이미 지난 1월 국회를 통과했다.
 


이에 대한 후속작업으로 경찰은 책임수사 강조, 수사역량 균질화, 전문성 강화 등의 방향이 반영된 4개 분야 80여개 과제를 다루고 있다.

비대해진 경찰 권한을 분산·통제하기 위한 작업도 김 내정자가 임기 내 해결해야 할 과제다. 무엇보다도 21대 국회에서는 자치경찰제 도입 방안이 본격 논의될 전망이다. 김 내정자는 국회서 여야 의원들과 관련 법 개정안을 논의해야 한다. 특히 법 통과 후에는 제도 안착까지 책임지고 관리해야 한다.

자치경찰제 도입은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권을 통제하는 핵심 방안으로 꼽힌다.

김 내정자도 자치경찰제 도입 및 안착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김 내정자는 지난해 7월 부산지방경찰청장으로 업무를 시작할 당시 취임 일성으로 “수사구조 개혁과 자치경찰제 도입 등을 위해 국민들의 믿음과 지지를 얻어야 할 시기”라고 강조했다.

국가수사본부 신설과 정보경찰 통제, 경찰대 개혁 등도 김 내정자가 풀어야 할 과제다. 국가수사본부의 경우 경찰청장으로부터 독립된 개방직 국가수사본부장을 두고, 본부장이 수사부서 소속 경찰을 지휘·감독하게 하는 내용이 골자다.

경찰 수사의 공정성과 중립성 제고라는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한편에선 이 같은 취지와 달리 경찰 권한의 비대화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있는 만큼 향후 추진 과정서 난항이 예상된다.


경찰 권력을 나눠주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과정서도 혼선과 잡음이 발생할 수 있다. 김 내정자는 국민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국가경찰이 흔들리지 않게 중심을 잡아주고 여러 기관과의 매끄러운 업무 공조도 이끌어내야 한다.

특히 자치경찰제는 경찰을 국가경찰과 자치경찰로 분리한 후 국가경찰 인력과 업무를 광역자치단체에 생기는 자치경찰에 넘기는 게 핵심이다. 자치경찰은 생활 안전 등 주민과 밀착된 민생 치안활동에 집중하고 국가경찰은 정보·보안·외사·경비, 수사, 전국 규모의 민생치안을 담당하게 된다. 

경찰은 전체 인력 12만명 중 4만명이 자치경찰로 넘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국가수사본부가 신설되면 수사경찰 2만명이 빠질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경찰 인력의 절반이 줄어드는 상황서 경찰 조직의 안정화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청문회 준비
증명 해내야

이에 김 내정자는 전날 열린 경찰위원회에 참석한 뒤 “국민 안전과 공정한 법 집행, 경찰개혁에 대한 국민 여러분들의 기대와 요구를 잘 알고 있다”며 “차분하게 잘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일선 경찰관들의 애로사항을 상부에 전달할 통로라고 환영을 받은 직장협의회(직협) 제도도 안착시켜야 한다. 김 내정자는 노사협의회인 직협에 대해 우호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부산경찰청장 취임 초부터 직협을 적극 지원한다는 자세를 보였다. 현재 부산경찰청 직협 출범이 임박했으며 부산경찰청 소속 일선 경찰서에서는 직협이 일부 설립됐다.

지난해 9월엔 부산경찰청 직원협의회(현장활력회의) 발대식에 참석해 “관행으로 정착됐던 수직적·계급적 문화를 수평적·민주적 문화로 전환해야만 하는 시기에 직면했다”며 “관리자들과 직원이 함께 소통하며 민주적인 조직문화를 조성하자”고 말한 바 있다.

김 청장은 국회 인사청문회에 대응하기 위한 절차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경찰청은 지난달 29일, 김학관 경찰대 교수부장(경무관)을 팀장으로 총 14명의 인사청문회 준비팀을 구성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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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 등에 따르면 통상적으로 경찰청장 내정자가 발표되면 내정자는 10명 안팎의 국회 인사청문회 준비팀을 꾸린다. 김 내정자가 부산지방경찰청장 역임 중 내정된 만큼 준비팀은 부산지방경찰청에 꾸려진다. 

준비팀을 누가 이끌어나갈지도 주목된다. 보통 준비팀은 경무관 직급서 맡는데, 차기 경찰청장이 가장 신임하는 인물 중 하나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향후 치안감 승진서도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8년 현 민갑룡 청장이 내정된 이후 준비팀을 맡았던 송민헌 당시 정보심의관은 이후 치안감으로 승진해 본청 요직인 기획조정관을 거쳐 현재 대구지방경찰청장으로 영전했다.

열린 사고 부드러운 리더십…조직 장악력은?
검경 수사권 조정, 경찰개혁 등 막중한 임무

이번 준비팀에는 류미진 경찰청 여성대상범죄수사과장 총경, 남제현 수사구조개혁팀 총경, 김원태 정보4과장 총경, 박순석 경찰개혁 테스크포스(TF) 경정, 박진우 직장협의회 TF 경정, 손광혁 국회계장 경정, 이용욱 범죄예방기획계장 경정, 주승은 법무계장 경정, 김완기 홍보협력계장 경정, 박경서 감찰조사계장 경정(이상 경찰청 소속), 소동현 서울 방배경찰서 여청과장 경정, 김나영 서울지방경찰청 정보1과 경감이 포함됐다.

준비팀은 각종 정책과 비전을 마련하는 파트와 개인신상 문제를 담당하는 기능으로 나뉘어 청문회를 준비하게 된다. 현재로선 김 내정자의 개인적 흠결은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재산도 4억4000여만원으로, 서울 강동구 암사동 아파트 한 채를 부인과 공동명의로 보유하고 있어 현 정부 고위직의 ‘아킬레스건’으로 꼽히는 다주택 논란서도 자유롭다.

다만 정책적으로는 검증해야 할 부분이 남아 있다.

현재 경찰의 최대 과제는 검경 수사권조정, 자치경찰제 등 ‘경찰 개혁’의 완성인데, 김 내정자의 경우 수사·기획 부서 경험이 적다는 점이다. 관련 기능 경력이 없더라도 경찰개혁을 추진할 ‘적임자’임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이다.
 

▲ 김창룡 경찰청장 내정자 ⓒ청와대

김 내정자와 문재인 대통령과의 과거 인연이 주목받으며 경찰의 ‘정치적 중립성’ 우려도 나오는 만큼 이를 불식시킬 필요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협상 실패
시간 지연

인사청문회법상 국회는 정부로부터 요청서를 받은 날부터 20일 이내에 청문회를 마쳐야 한다. 청문회가 종료되면 3일 이내에 심사경과보고서 또는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국회의장에 제출해야 하며 이후 대통령에게 경과보고서가 송부된다. 정부는 이번 주 안으로 김 내정자에 대한 인사청문 요청안을 국회로 보낼 것으로 예상된다. 경찰청장 인사청문회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가 맡는다. 다만 이날 여야가 국회 원 구성 협상에 실패하면서 인사청문회 일정이 확정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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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