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하면 꾸벅' 버티는 김창룡 경찰청장의 한계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1.12.20 14:56:36
  • 호수 1354호
  • 댓글 0개

이래저래 어차피 3월까지?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반복된 사과는 진실성을 떨어뜨린다. 김창룡 경찰청장은 선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사건이 터지고 난 뒤에야 고개를 숙이고 있다. 반복되는 김 청장의 사과에 경찰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

김창룡 경찰청장이 또 고개를 숙였다. 취임한 지 1년6개월이 지난 김 청장은 사과만 벌써 10번째다. 임기 동안 약 두 달에 한 번꼴로 사과를 한 셈이다. 사건이 터지고 난 뒤 뒤늦게 사과만 하는 김 청장 태도에 비판의 목소리도 거세지고 있다. 

휘청거리는 
민중 지팡이 

김 청장은 취임 초기 ‘선제적 예방활동’을 강조했지만 이를 지키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달 25일 경찰 내부망 게시판에 경위로 추정되는 글쓴이는 “청장님은 취임 후 뭘 했습니까. 변해야 하는 조직을 청장님은 5년, 10년 전으로 되돌려놨다”고 적었다.

지난 10일,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던 전 연인의 거주지를 찾아가 여성의 가족에게 흉기를 휘둘러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피의자 이석준은 해당 사건 4일 전인 6일, A씨를 감금·성폭행한 혐의로 경찰에 신고돼 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경찰은 임의동행과 휴대폰 임의제출에 동의한 점을 들어 이씨의 신병을 확보하지 않은 채 귀가 조치했다. 이어 경찰은 다음날 A씨에게 스마트워치 지급과 신변보호 대상자 지정 조치를 했지만, 가족의 참변을 막지는 못했다.


김 청장은 지난 13일 해당 사건과 관련해 “피해자 가족 등이 엄청나게 충격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며 “고인에 대해 진심으로 명복을 빌고 가족들에 대해서도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불과 한 달 전 경찰청의 부실 대응으로 김 청장은 고개를 숙였던 바 있다. 현장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인천 흉기 난동 사건 때문이었다. 인천 흉기 난동 사건은 흉기를 든 피의자를 앞에 두고 경찰관이 현장을 이탈하며 논란이 일었던 사건이다. 

김 청장은 지난달 21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은 경찰의 가장 중요한 사명이자 소명임에도 위험에 처한 국민을 지켜드리지 못했다”며 “이번 인천 논현경찰서 사건에 대해 피해자와 가족, 그리고 국민 여러분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23일 취임한 김 청장은 “책임 경찰로 거듭나야 한다”며 경찰개혁 배턴 터치를 받았다. 취임한 지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국민에게 사과를 해야 했다. 

앞서 탈북민 관련 업무를 하던 경찰 간부가 탈북 여성을 장기간 성폭행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김 청장은 더불어민주당 양기대 의원의 관련 질의에 “경찰 관련 성 비위가 반복된 것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다”며 “지금까지 발생했던 관련 사안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재발 대책과 교육 등 체계적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답했다.

이어 “종합 대책을 마련해 추진하고, 그 결과에 따라 참고해 대외적 발표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경찰 성 비위 문제는 최근에도 계속 이어진 문제로 지난해 성 비위로 징계받은 경찰관은 69명이었다. 2017년 83명이 성 비위로 징계를 받은 후 2018년 48명으로 줄었지만 2019년 54명을 기록한 후 2년 연속 증가했다. 올해도 지난 5개월 동안 17명의 경찰관들이 성 비위로 적발됐다.


흉악 범죄 반복…부실 대응 논란
1년6개월간 사과만 벌써 10번째

계급별로 살펴보면 2018년부터 올해 5월까지 188명 중 경위가 74명으로 가장 많았고 전체 25%를 차지했다. 경감 계급이 31명으로 그 뒤를 이었다. 일선 경찰서와 지구대에서 계장과 팀장 혹은 순찰팀장을 맡는 중간 관리자급에서 성 비위가 가장 많이 발생한 셈이다. 

경찰서 과장 등의 역할을 하는 경정과 경찰서장 등을 맡는 총경 계급에서 각각 10명, 4명이 성 비위를 저질렀다. 다만 상대적으로 낮은 계급에서도 성 비위가 발생했는데 순경 25명이 성 비위로 징계를 받았다. 경사와 경장 계급에서도 각각 22명이 적발됐다.

지난해 7월 김 청장은 취임사에서 “기회의 평등함과 과정의 공정함, 결과의 정의로움이 보장되기 위해서는 경찰관 한 사람, 한 사람의 역할이 누구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공정’이란 단어를 9차례 언급하기도 했다.

같은 해 9월19일 치러진 경찰 순경 채용 필기시험에서 문제 유출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지난해 순경 채용 2차 필기시험 선택과목 시험 문제가 시험 직전에 유출됐다는 것. 해당 문제는 경찰학개론 9번 문제로, 출제에 오류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가 공개된 시점에 해당 시험장에서는 휴대전화 등 소지품 제출 전이었으며, 일부 수험생은 카카오톡 등으로 문제를 공유하거나 수험서에서 해당 부분을 찾아보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청은 일부 지방청 시험장에서 정오표 내용을 정해진 시간보다 일찍 공지하는 등 시험 관리상 문제가 있었음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김 청장은 “경찰의 관리 잘못으로 많은 수험생께서 놀란 데 대해 사과드린다”며 “내부적으로 다양한 방안을 검토해 누구도 공정성에서 피해를 보지 않도록 방안을 도출했다”고 밝혔다.

나사 풀린
경찰 조직

내달 8일 열린 국회 국정감사에서 김 청장은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김 청장은 광주 의붓딸 보복 살해 사건과 전남 영광 여고생 사망 사건에 대해 경찰의 부실 대응을 공식 인정했다. 

광주 의붓딸 살해 사건은 2019년 4월 광주에서 한 여중생과 친아버지가 의붓아버지의 성폭행 사실을 경찰에 신고했다가 보복 살해당한 사건이다. 친아버지가 경찰에 피해자에 대한 신변보호를 요청했으나 담당 수사관은 요청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또 광주지방경찰청으로 이첩하려던 해당 사건을 전남지방경찰청에 보내는 등의 실수로 2주가량 지체했다. 


전남 여고생 사망 사건은 2018년 9월 여고생이 영광군의 한 모텔에서 10대 남성 2명에게 성폭행을 당한 뒤 방치됐다가 급성알코올중독으로 사망한 사건이다. 이 사건 역시 경찰이 현장에 출동했음에도 성폭행 정황을 의심하지 못해 일어난 참극이었다.

당시 경찰이 현장에 출동했음에도 성폭행 정황을 의심하지 못해 여고생을 단순 주취자로 처리했으며 여고생 신원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 청소년보호법 위반 조치도 하지 않았다. 경찰은 해당 출동 경찰관들에 대한 부실 조치에 대해 보고 확인을 거쳤으나 별도 감찰은 하지 않았다.

경찰이 일반인에게 누명을 씌우기도 했다. 경찰청이 화성연쇄살인 사건의 진범 이춘재 대신 윤성여씨를 붙잡으면서 헛다리만 짚었다. 

지난해 12월17일 경찰청은 ‘이춘재 연쇄살인’ 중 여덟 번째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20년 동안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던 윤씨에 대해 사과의 뜻을 전했다. 

대선 끝나면
자동으로…

경찰청은 윤씨의 무죄 선고 직후 “재심 청구인을 비롯한 피해자와 가족 등 모든 분께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며 “재수사를 통해 연쇄살인 사건의 진범을 검거하고 윤씨의 결백을 입증했지만 무고한 청년에게 살인범이라는 낙인을 찍어 20년 동안 옥살이를 겪게 해 큰 상처를 드린 점 깊이 반성한다”고 밝혔다.


경찰의 신뢰도 하락에는 부실수사 논란이 크다. 수사 구조 개혁으로 몸집과 권한이 커진 경찰에 대한 믿음이 무너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양부모에게 입양된 뒤 학대받아 숨진 16개월 정인이 사건이 다시 주목을 받으면서 경찰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졌다. 

경찰은 정인이가 사망할 때까지 3차례 신고를 받았으나,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내사종결하거나 검찰에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

사건을 담당하며 3차례 아동학대 의심 신고에도 불구하고 가해자와 피해아동 분리 등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서울 양천경찰서의 서장을 대기발령 조치했다고 밝혔다.

김 청장은 정인이 사건에 대해 “학대 피해를 당한 어린아이의 생명을 보호하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은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며 “초동대응과 수사 과정에서의 미흡했던 부분들에 대해 경찰의 최고책임자로서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고 사과했다.

이어 “먼저 국민의 생명과 안전, 특히 사회적 약자와 관련한 사건들에 대해서는 경찰서장에게 즉시 보고하는 체제를 갖추고 지휘관이 직접 관장하도록 해 책임성을 강화하겠다”며 “앞으로 아동 피해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반복 신고가 면밀히 모니터링되도록 아동학대 대응 시스템을 개선해 조기에 피해 아동을 보호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같은 달 25일, 김 청장은 이용구 법무부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영상을 은폐한 것에 대해 고개를 숙였다. 서초경찰서는 해당 사건을 처음 수사한 곳으로 이 차관이 택시기사를 폭행하는 블랙박스 영상을 확인하고도 사건을 내사 종결했다는 ‘은폐 수사’ 의혹을 받았다.

앞서 이 차관은 지난해 11월6일 밤 서울 서초구 자택 앞에서 술에 취한 자신을 깨우던 택시기사를 폭행했지만 형사 입건되지 않았다. 경찰은 택시기사가 처벌을 원하지 않았고 당시 택시 안 블랙박스 영상도 남아 있지 않아 ‘택시 정차 중’에 일어난 단순 폭행인지, 가중처벌되는 ‘주행 중 폭행’인지 명확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댔다.

수사구조 개혁 통해 몸집 커졌지만…
잇단 헛발질…국민적 신뢰도 바닥

그러나 검찰의 재수사 과정에서 택시기사가 폭행당하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긴 블랙박스 영상을 복원했고, 담당 경찰 수사관도 이 영상을 봤지만 “못 본 것으로 하겠다”며 사건을 종결한 사실이 드러났다.

다음 달 5일, 경찰은 또 사과했다. 낙동강변 살인 사건과 관련해 억울하게 옥살이했던 최모·장모씨 때문이었다. 낙동강변 살인 사건은 1990년 1월4일에 발생했다. 당시 낙동강변에서 차를 타고 데이트하던 남녀가 괴한들에게 납치돼 남성이 트렁크에 감금당한 상태에서 여성은 성폭행당한 뒤 살해됐다.

해당 사건이 발생한 지 약 1년10개월이 지난 뒤 경찰은 최씨와 장씨를 붙잡아 자백을 받아냈고, 법원은 이들에게 무기징역을 확정했다.

지난 4일 있었던 재심 과정에서는 경찰이 체포 및 수사 중에 저지른 각종 불법 행위가 드러났다. 부산고법 형사1부는 “경찰의 체포 과정이 영장 없이 불법으로 이뤄졌고,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일관된 진술, 당시 수감된 주변 사람들의 진술 등을 종합해 보면 고문 행위가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최씨와 장씨 진술에 따르면 두 사람은 당시 조사 과정에서 통닭구이, 물고문 등을 당했다. 둘의 진술이 정확히 일치하는 반면 당시 조사했던 경찰관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장씨와 최씨는 21년간 복역한 끝에 2013년 모범수로 출소했다. 이후 대검찰청 과거사위원회가 2019년 4월 ‘고문으로 범인이 조작됐다’고 발표하면서 재심 논의가 급물살을 탔고, 결국 무죄 판결로 억울한 옥살이를 했음이 밝혀졌다.

지난 4월에는 인천시 자치경찰위원 추천과 관련해 사과한 바 있다. 경찰관과 철거민 등 6명의 인명피해를 낸 용산참사 현장진압 책임자였던 신두호 전 인천경찰청장이 인천시 자치경찰위원으로 추천됐기 때문이다. 

경찰청 인권위는 입장문을 통해 “신 전 청장은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당시 서울지방경찰청 기동본부장을 지냈으며 2009년 용산참사 사건 때는 기동대 투입 등 현장 진압 작전을 총괄하는 책임자였다”고 밝혔다. 

결국 김 청장은 “국민들의 인식과 마음을 조금 더 세밀하게 살펴서 신중하게 검토하고 추천자를 결정했어야 했다.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있다”며 어깨를 낮췄다.

고개 숙이다
임기 끝날라

지난해 경찰 신뢰도는 5점 만점에 3.09점을 받는 데 그쳤다. 김 청장은 앞으로 7개월 남은 임기 동안 ‘경찰 신뢰도 회복’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김 청장은 앞으로 공정하고 정의로운 경찰, 청렴하고 정직한 경찰, 사명감이 높은 경찰의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9dong@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