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비검찰 출신에 결단력 있는 조국 교수님이 어떻겠습니까.” 2011년 12월, 저서 <검찰을 생각한다> 출간 기념식서 대통령이 된다면 법무부장관에 누굴 임명하겠냐는 질문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대답이다. 그로부터 8년 후 문재인정부서 조국 전 민정수석의 법무부장관행(行)은 기정사실화됐다. 내년 총선이 있기까지 남은 시간은 8개월. 조 전 수석의 행보는 검찰개혁에 그칠까. 대망론에 불을 지필까.
‘정치 9단’이라 불리는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은 최근 <김현정의 뉴스쇼>서 “조 전 수석이 내년 1월 중 법무부장관직을 던지고 총선에 출마할 것”이라며 “총선서 당선되면 대선후보로 갈 수 있는 확률이 대단히 높다”고 말했다. 정계에선 조 전 수석의 법무부장관행이 조 전 수석의 정계입문의 디딤돌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회전문 인사
정계에 입문?
조 전 수석은 2017년 5월 문재인정부 출범 때부터 지난달까지 청와대를 지켰던 유일한 원년 수석 멤버로, 문재인 대통령의 각별한 애정을 받는 인물이다. ‘강남 좌파’이자 ‘영남 좌파’로 불리는 진보 지식인이자, 수려한 외모와 소신 있는 발언으로 국민적인 인기도 상당히 높다. 이는 조 전 수석의 법무부장관 내정 가능성이 제기된 이후 야당 측의 반발이 계속되는 이유기도 하다.
조 전 수석과 대학 동기기도 한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지난달 27일 SNS를 통해 “문재인정권의 신독재 밑그림을 그린 조국 수석이 이끌게 될 법무부는 무능과 무책임을 넘어 무차별 공포정치의 발주처가 될 것”이라며 정면 비판했다.
바른미래당(이하 바미당)도 같은 날 논평을 통해 “여당이 된 민주당은 중진이라 불리는 의원들마저 민정수석의 장관행을 옹호하고 있다”며 “청와대의 행동에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도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도 없다”며 청와대에 각을 세웠다.
야당 의원들이 조 전 수석을 벼르고 있는 만큼 법무부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는 조 전 수석에게 가시밭길이 될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우상호 의원은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조 전 수석이 법무부장관으로 발탁될 가능성이 크지만 안 되길 바라고 있다”며 “내년 총선서 부산에 출마하는 게 더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무부장관 대신 내년 총선에 출마해서 정부와 여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앞으로 8개월…장관→총선→대선?
법무부행 기정사실…그의 역할은?
우 의원은 “법무부장관을 하면 내년 총선에 출마하지 못한다. 총선 출마 및 승리가 여권에 더 큰 도움이 된다”고 부연했다.
하지만 우 의원의 의견과 달리 짧은 기간의 장관 경험 이후 대권을 거머쥔 인물이 있다.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노 전 대통령은 2000년 15대 총선서 부산 북·강서을서 낙마한 후 같은 해 해양수산부장관으로 임명됐다.
8개월의 짧은 행정 경험을 발판으로 노 전 대통령은 이후 당시 새천년민주당 이인제 후보와 혈전 끝에 대선 후보로 선출, 2002년 16대 대통령 선거서 강력한 대권 주자였던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꺾고 대통령이 됐다.
조 전 수석은 정치 경험이 없다는 점에서 노 전 대통령과 차이가 있지만, 장관으로 임명되면 내년 총선 전까지 6~7개월의 충분한 시간이 있다. 이 기간 동안 패스트트랙에 상정된 공수처 및 검경수사권과 관련된 검찰 개혁안이 빠르게 통과된다면,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승기를 잡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일각에선 조 전 수석과 문 대통령과의 평행이론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치와 거리를 뒀던 문 대통령은 2003년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으로 임명돼 노 전 대통령의 참모 역할을 독톡히 했다.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선거철마다 ‘차출론’이 일었지만 그때마다 문 대통령은 “정치와 맞지 않다”며 거부 의사를 밝혔다. 또 천정배 전 법무부장관의 후임으로 검찰개혁에 적합한 인물로 거론됐으나 당시 집권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의 반대로 무산되기도 했다.
문재인?
노무현?
조 전 수석은 이에 “후임으로 당시 문재인 비서실장이 거론될 때 속으로 적임자라는 생각을 했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비검찰 출신이었던 당시 문재인 비서실장이 뚝심 있게 검찰개혁을 이뤘을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정계를 잠시 떠났던 문 대통령은 2012년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고배를 마신 후 2016년 부산 사상구서 19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면서 행정 경험을 거친 ‘입법부형’ 인물로 거듭났다.
조 전 수석 역시 정치 입문에 지속적으로 거부의사를 표명하며 스스로를 ‘행정부형 인간’이라 밝혔다.
조 전 수석은 참여정부 때 참여연대 사법감시세터 소장으로 일한 바 있다. 당시 참여정부가 검찰개혁을 시도했지만, 검찰은 로비 등을 통해 결사항전(決死抗戰)했고 당정청서 검찰 의견에 동조하기 시작하면서 개혁은 유야무야됐다.
검경수사권 역시 ‘수사권조정자문위원회’서 장기간 논의를 진행할 때 조 전 수석이 조정안을 제출해 양측의 합의를 이끌어내려는 노력을 기울였지만 견고한 검찰권력에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조 전 수석은 2010년에 출간한 저서 <진보집권플랜>서 “참여정부가 칼을 휘두르려면 확실히 휘둘렀어야 하는데 어정쩡하게 하고 말았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검찰을 ‘보수적 세계관과 엘리트주의를 체현한 검찰권력’이라 칭하며 수사권과 공소권을 독점한 검찰에 대한 견제의 필요성을 피력했다.
검 내부 긴장
임무와 숙명
이어 “법무부장관에게는 법안제출권이 있다”며 검찰개혁이 몰고 올 검사들의 반발에 강경하게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조 전 수석이 앞으로 검찰개혁안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일 것으로 예상 가능한 대목이다.
검찰개혁의 성공은 국회에 계류 중인 검찰개혁안이 얼마나 빠르게 통과되느냐에 달려 있다. 조 전 수석이 패스트트랙에 반대하는 야당 의원들을 설득하기 위해서 국민적 영향력이 높은 자신의 ‘특성’을 적극 활용할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아울러 조 전 수석과 윤석열 검찰총장과의 조합 역시 관건이다. 윤 총장은 조 전 수석의 대학 선배로 개성이 뚜렷하고 소신이 강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조 전 수석과 마찬가지로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개혁에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검찰의 수사지휘권 폐지에 대해서는 다소 부정적 의견을 가지고 있어 구체적 안건에서는 조 전 수석과 불화가 생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치컨설팅그룹 ‘민’의 박성민 대표는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서 “‘석국’ 조합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박 대표는 “조국 수석이나 윤석열 총장 모두 굉장히 자존심이 세고, 개인적 야망인지 떠밀려나가는 건지 모르겠지만 정치적 야망도 있어 보인다. 그런 경우는 강대강이라 호흡이 잘 맞기보다는 충돌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고 덧붙였다.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은 <박지원의 점치는 정치>서 둘의 조합을 두고 “석국열차는 출발할 것이고 일각서 우려하는 충돌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격적으로 훌륭한 두 분이 충돌하진 않겠지만, 검경수사권 조정과 관련해서는 충돌이 있을 수 있다”며 “김오수 차관이 잘 조정해서 문재인정부, 검찰개혁, 사법개혁을 성공시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검찰 개혁해야 대망론 불 지핀다
문과 평행이론…유일한 친문주자
조 전 수석이 내년에 총선 출마를 선택하면 짧은 장관직으로 정치적 리스크가 커 2021년에 있을 재보궐선거에 출마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정치 신인인 그가 대권 행보를 밟으려면 여의도를 거쳐 의원들과의 스킨십을 거쳐야 한다는 분석이다.
조 전 수석이 만약 내년 1월에 법무부장관을 사퇴해, 총선에 출마하게 된다면 연고가 있는 부산 영도서 도전장을 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영도는 현재 한국당 김무성 의원의 지역구자, 무소속 이언주 의원이 미리 점찍어둔 곳으로 만약 조 전 수석이 출마하면 내년 총선의 빅매치 장소가 될 예정이다.
이 의원은 지난 4월 YTN과의 인터뷰서 “조 수석이 나오면 당연히 붙어야 한다”며 “자신 있다. 시대 자체가 그분이 나름대로 인기가 있겠지만 강남 좌파의 시대는 끝났다”고 단언한 바 있다.
정치·선거 컨설턴트들은 조 전 수석의 출마 여부를 낮게 점치며, 출마를 하더라도 부산이 아니라 비례대표로 나올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반면 조 전 수석의 정치력이 검증되지 않았고, 평소에 정치를 안 하겠다는 뜻을 밝혀온 만큼 총선에는 나가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평소 “임무를 마친 후엔 반드시 학교로 돌아간다”고 말한 것으로 보아 교수로 돌아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하지만 조 전 수석은 국민적인 인기 때문에 대권주자로서의 가치가 높은 인물이다. 게다가 현재 나온 대선주자 가운데 유일한 친문 주자다. 2022 대선서 진보집권을 연장하기 위해 그를 가만히 둘 리 없다는 분석이다.
서울서?
부산서?
문 대통령의 복심인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은 지난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 시민문화제서 “우리 당에서는 다음 대선에 잠재적으로 활약할 수 있는 분들이 차고 넘치지만, 유시민과 조국이 가세해서 열심히 경쟁하면 국민들 보기에 얼마나 안심이 되겠느냐”라며 조 전 수석의 대선 출마를 종용했다. 조 전 수석은 지난 1일 2년2개월의 청와대 생활을 정리하고, 서울대 교수로 복직했다. 법무부장관 유력 후보로 다시 휴직할 가능성이 높아 ‘폴리페서’ 비판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앞으로 조국(祖國)에 불 바람이 대학·국회·청와대 중 어디서 그칠 지 국민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sangm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조국은 누구?
1965년생, 부산서 태어나 서울대 법대와 동대학원 박사를 졸업했다. 대학 때 ‘육법당’이 되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사법시험을 공부하지 않고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캠퍼스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울산대, 동국대를 거쳐 서울대 로스쿨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부소장, 부운영위원장으로 시민운동에 참여했고, 국가인권위원으로도 활동했다.
문재인정부 출범 후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으로 발탁되면서 문정부에서 처음으로 공직을 시작하게 됐다. 소신이 뚜렷하고 화려한 이력과 준수한 외모에 국민적인 인기가 좋은 편이다.
부유한 환경서 자란 진보 지식인으로 ‘강남좌파’나 ‘캐비아 좌파’와 같은 비판도 따라다닌다. 최근엔 본인이 교수 재직 시절 비판했던 ‘폴리페서’의 길을 걷고 있어 학생들의 반발을 샀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성찰하는 진보> <진보집권플랜>이 있다. <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