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대학 졸업 후 정치판에 들어왔을 때 정치를 하는 사람은 국민에게 밝은 미래를 제시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차원서 정치는 봉사의 개념이 아니라 이끌어가는, 즉 사회 구성원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영역으로 보였다.
그런데 지금은 정치를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졌다. 이 시대의 정치는 각기 이해관계가 다른 사회 구성원들이 조화를 이뤄 함께 보듬으며 세상을 살아가도록 유도하는 일련의 종합예술로 보여진다.
물론 두 관점의 목적은 동일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선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바로 지도와 조화의 측면이다. 지난 시절 지도가 정치의 핵심이었다면, 오늘날은 조화에 그 주안점을 둬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제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황교안 대표에게 시선을 돌려보자. 황 대표가 지금까지 보인 행보를 살피면 오래전 구시대의 유물로 용도 폐기된, 이른바 ‘각 세우기식 정치’에 올인하여 그 반사이득을 챙기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존재하지도 않는 진보에 각을 세워 역시 유명무실한 보수의 지도자로 부상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바라보면 안타까울 정도다. 그가 생각하고 있는 정치의 실체가 무엇인지, 혹은 사상이나 철학을 지니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이와 관련해 세 가지만 예로 들어보자. 먼저 황 대표가 전국 민생투어 명목으로 광주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황 대표는 당시 광주 방문에 앞서 한국당 의원들의 5·18 관련 발언에 대해 명확하게 입장을 정리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광주에 대한 명확한 입장 정리 없이 그곳을 방문했다. 그런 상태서 그의 광주 방문은 다분히 의도적이라 할 수 있다. 삼척동자도 예견할 수 있는, 반드시 발생할 불상사를 자의적으로 유발시켰다는 말이다.
물론 이를 통해 광주, 즉 호남과 각을 세워 지역감정을 촉발시키고자 하는 다분한 꼼수가 숨겨져 있었다. 호남을 고립시켜 ‘호남 대 비호남’의 구도를 형성하겠다는 아주 오래된 적폐였다. 그러나 그의 시도는 그저 한낱 해프닝으로 막을 내린다.
다음은 지난 사월초파일에 보인 그의 행태다. 경북의 한 사찰서 진행된 석가탄신일 봉축 법요식에 참석한 그는 합장 등 불교의식을 따르지 않았다. 이에 대해 불교계 일각서 반발이 일어나자 “저는 크리스천으로 계속 생활했고 절에는 잘 가지 않아 절에서 행해야 할 절차나 의식에 있어 부족한 부분이 많았을 것”이라며 “앞으로 잘 배우고 익히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사찰의 합장 행위가 배워야 알 일이라는 변명은 참으로 치졸하기 짝이 없다. 남의 잔칫집에 방문한 그의 행태를 살피면 축하하기 위해 방문한 게 아니라 어깃장을 놓으려 했음을, 불교계와 각을 세워 반사이득을 취하려 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지난주 <일요시사>를 통해 언급했던 외국인 노동자 비하 발언에 대해서다. 이에 대한 비판이 일자 그는 “중소기업이 급격히 오른 최저임금을 감당하기 힘든데, 외국인 노동자에게는 숙식비 등 다른 비용까지 들어가니 힘든 사정을 하소연하는 게 당연하다”고 해명했다. 그의 말을 빌면 중소기업이 외국인 노동자를 차별하도록 요청했다고 비쳐지는데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세 가지 사례를 들었지만 모두에서 필자가 언급한 조화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이간’(離間)이라 표현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구태를 보이고 있는 그에게 정치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