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영조 3년(1727) 7월1일 기록이다.
『도승지 유복명(柳復明)·우부승지(右副承旨) 임주국(林柱國)의 벼슬을 파면하였다. 하교(下敎)하기를, “자신이 후원(喉院)에 있으면서 오늘 삼사(三司)의 청대(請對, 급한 일로 임금께 뵙기를 청함)는 매우 간사한데도 태연히 입계(入啓, 임금에게 상주하는 글월을 올리거나 또는 직접 아뢰는 일)하였으니 매우 무엄하다. 사진(仕進, 규정 시간에 출근함)한 승지를 모두 파직하라” 하였다.』
후원은 지금의 청와대 비서실인 승정원으로 도승지는 비서실장 격이고, 우부승지는 현재 민정수석의 역할을 수행하는 직책이다. 삼사는 조선시대 언론을 담당한 기관인 사헌부·사간원·홍문관을 지칭한다.
임금이 도승지와 우부승지를 동시에 파면한 경우로 조선 역사를 살피면 상당히 이례적이다. 그런데 더욱 흥미로운 대목은 두 사람이 파면된 이유다. 이와 관련해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간략히 설명을 덧붙여보자.
영조 전의 임금인 경종 시절 신임사화가 발생한다. 신임사화는 경종의 왕통문제와 관련해 소론이 노론을 숙청한 사건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피면 노론이 경종의 건강을 빌미로 세제인 영조의 대리청정을 실현하자, 소론이 극력 반대해 결국 영조의 대리청정을 철회시키며 노론에 타격을 가한 사건이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보위에 오른 영조는 즉위하자마자 탕평책을 실시, 지난 일에 대해 함구하고 소론 사대신의 한 사람인 유봉휘를 우의정에 임명한다. 이어 영조가 다시 유봉휘에게 좌의정을 제수하자 노론 측에서 유봉휘가 신임사화의 주동자라는 이유로 지속적으로 탄핵을 시도하게 되고, 그 과정에 상기의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상기 내용은 경종 시절 영조의 대리청정을 극력 반대한 유봉휘를 벌하자는 노론의 주장에 대해 비서로서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비서인 주제에 건방지게 암묵적으로 노론을 옹호했다는 게 그 요지다.
이제 현대의 우부승지인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시선을 돌려보자.
민정수석은 말 그대로 공직기강, 법무, 반부패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직책이다. 그런데 최근 경계를 넘나드는 그의 활약상을 살피면 그가 비서인지, 대학교수인지, 혹은 청와대 대변인인지, 한걸음 더 나아가 대통령인지 모호하다.
그중에서 한 가지 사례만 실례로 들어본다. 그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 중 일부다.
“대한민국의 의사와 무관하게 경제전쟁이 발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경제전쟁의 최고 통수권자로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전쟁 속에서도 협상은 진행되기 마련이고 또 그래야 한다. 가능하면 빠른 시간 내 종전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상황서 중요한 것은 진보냐 보수냐, 좌냐 우냐가 아니라 애국이냐 이적(利敵)이냐다”라고 마무리 지었다.
상기 내용을 상세하게 관찰하면 첫 부분은 청와대 대변인, 두 번째 대목은 대통령, 그리고 마지막 대목은 대학교수의 글로 비친다. 아무리 양보해도 민정수석으로서는 합당하지 않다.
또 있다. 비서 특히 대통령을 보좌하는 비서진은 절대로 자기 목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 그런데 그는 쉬지 않고 또 경계를 가리지 않고 토해내고 있으니 정말로 가당치 않다. 이런 경우 영조라면 어떤 조처를 취했을까. 판단은 독자들에게 맡긴다.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