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대윤과 소윤의 빗나간 의리가 파장을 일으켰다. 검찰총장 청문회서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가 막역한 후배 윤대진 검찰국장의 친형의 사건을 위증했다가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였다.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가 윤대진 법무부 검찰국장의 친형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에게 변호사를 소개해줬다는 의혹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이 사건은 2013년 윤 전 세무서장이 육류 수입업자 등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던 중 해외로 도피, 몇 개국을 전전하다가 체포돼 강제 송환, 22개월 후 검찰이 무혐의 처분을 내린 사건이다. 윤 후보자가 사건 처리 과정에 개입했는지가 청문회의 핵심 쟁점이었다.
거짓말?
녹취록 공개
윤 후보자와 윤대진 법무부 검찰국장은 검찰 내에서 ‘대윤’과 ‘소윤’으로 불릴 정도로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으며 윤 전 서장은 윤대진 국장의 친형이다.
윤 후보자는 지난 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서 열린 인사청문회서 윤 국장의 친형인 윤우진 전 서울 용산세무서장에게 변호사를 소개해줬다는 의혹에 대해 “소개한 적이 없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이날 자정 가까이쯤 <뉴스타파>가 당시 윤 후보자가 2012년 12월 초 “윤 전 서장에게 변호사를 소개해줬다”고 기자에게 말한 녹음 파일이 공개돼 위증 논란이 불거졌다.
<뉴스타파>의 녹취록에 따르면 당시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이던 윤 후보자가 취재기자에게 “일단 이 사람(윤 전 세무서장)한테 변호사가 필요하겠다. 그리고 지금부터 내가 이 양반하고 사건 갖고 상담을 하면 안 되겠다 싶었다”며 “내가 중수부 연구관 하다가 막 나간 (이남석)변호사 보고 일단 네가 대진이한테 얘기하지 말고… 윤우진 서장 한번 만나보라고 했다”고 말한 것으로 드러나 상황이 반전됐다.
윤 후보자도 녹음 파일에 대해 본인의 목소리가 맞다고 인정했다. 다만 “법적으로 문제되는 건 변호사를 선임시켜주는 것”이라며 “제가 변호사를 선임시켜준 건 아니라는 말씀을 드렸던 것”이라고 항변했다.
변호사 소개한 적 없다더니…
청문회 ‘위증 논란’ 확산
그러자 윤 국장은 친형에게 변호사를 소개한 사람은 윤 후보자가 아닌 자신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윤 국장은 “형에게 변호사는 내가 소개한 것이고 윤 후보자는 관여한 바 없다”며 “윤 후보자가 (과거) 주간지에 (자신이 변호사를 소개했다고)인터뷰했다면 나를 보호하기 위해 그런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윤 후보자가 위증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정치권은 사퇴 공방으로 번졌다. 당장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을 중심으로 한 야권은 윤 후보자의 위증 논란을 집중 거론하며 후보 사퇴를 촉구했다.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윤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는 온종일 국민들이 우롱당한 거짓말 잔치였다”며 후보직 사퇴를 촉구했다. 바른미래당도 한국당과 보조를 맞췄다.
민주평화당과 정의당은 위증 논란의 부적절성을 지적하면서도 사퇴할 정도의 사안은 아니라며 신중론을 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낙마 사유가 될 만한 결정적 흠결이 없는 만큼 인사청문 경과보고서 채택에 협조할 것을 요구했다.
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는 “일부의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검찰 수장으로서 국민과 함께하는 검찰로 거듭나게 할 적임자임을 보여줬다”고 평가한 뒤 “보고서 채택을 거부하면 국민들이 납득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뒤늦게
실 인정
윤 후보자는 위증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인사청문회의 막판에 발목을 잡혔다. 왜 윤 후보자는 윤 국장의 방패막이를 자처했을까. 2012년 용산세무서장 뇌물 사건을 다시 살필 필요가 있다.
윤 전 서장 뇌물수수 의혹 사건은 2012년 상반기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가 내사에 착수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경찰은 윤 전 서장이 2010∼2011년 육류 수입업자 김모씨로부터 세무조사 무마 청탁과 함께 현금과 갈비세트, 골프 접대 등 수천만원 상당의 금품을 챙겼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그런데 윤 전 세무서장이 골프를 친 골프장을 대상으로 경찰이 신청한 압수수색 영장은 서울중앙지검서 번번이 기각됐다. 7차례 접수한 압수수색 영장 중 윤 전 서장 이름으로 예약된 부분을 제외한 6번의 영장이 보완수사 지시와 함께 경찰로 되돌아갔다.
검찰은 경찰의 수사 의도가 불순하다고 봤다. 그해 3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저축은행 비리 수사를 하면서 이철규 당시 경기지방경찰청장을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 기소했는데(2013년 10월 무죄 확정), 경찰의 윤 전 서장에 대한 내사 착수 시점이 그 한 달쯤 뒤였기 때문이다. 이 전 청장 사건의 주임검사는 바로 윤대진 국장이었으며, 윤 전 서장은 윤 국장의 친형이었다.
경찰이 골프장을 압수수색하려는 목적 역시 범죄 혐의 본류서 벗어나 “골프장에 드나드는 사람 전부를 들여다보겠다”는 식으로 윤 전 서장과 함께 골프를 쳤다는 검사들을 타깃으로 했다는 게 검찰의 인식이었다.
이에 경찰은 “검찰이 자기 치부를 감추기 위해 수사를 방해하고 있다”고 반발하면서 검경이 갈등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영장 6번 기각
진짜 이유는?
경찰은 같은 해 8월20일 윤 전 서장을 소환 조사했지만, 윤 전 서장은 건강상의 문제를 들어 조사에 제대로 응하지 않았다. 열흘 뒤 갑자기 홍콩으로 출국했다. 경찰은 윤 전 서장이 국내를 떠난 뒤에야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그해 9월10일 그의 세무서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해외에 체류 중인 윤 전 서장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고 동시에 인터폴을 통해 국제 수배 조치를 내렸다.
출국 이후 8개월간 홍콩, 캄보디아 등을 떠돌던 윤 전 서장은 2013년 4월 태국서 현지 경찰에 검거돼 국내로 송환됐다. 경찰은 윤 전 서장을 광역수사대로 압송해 조사한 뒤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그러나 검찰은 이번에도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검찰은 윤 전 서장에게 돈을 전달했다고 하는 육류업자 측 진술이 오락가락하는 등 범죄 사실에 대한 입증이 덜 됐다고 지적하며, 보완수사를 지시했다. 검찰은 동시에 윤 전 서장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가 있는 김씨에 대한 구속영장도 기각했다. 경찰은 3개월가량 보강수사를 벌여 2013년 7월 검찰에 윤 전 서장 구속영장을 다시 내밀었다. 검찰도 이번에는 경찰의 신청을 받아들여 서울중앙지법에 구속영장을 접수해줬다.
그런데 우여곡절 끝에 청구된 구속영장은 법원서 기각됐다. 당시 법원은 “범죄혐의에 관한 소명이 충분치 않고 수사 진행상황 등에 비춰 구속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기각 사유를 들었다. 결국 경찰은 그 다음 달 윤 전 서장 사건을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할 수밖에 없었다.
정치권 자진사퇴 공방
용두사미 된 뇌물 의혹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는 2015년 2월 윤 전 서장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경찰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지 1년6개월 만의 결정이었다. 검찰은 혐의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부족하고, 일부 금품 거래가 있었던 사실은 인정되지만 대가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윤 전 서장 사건은 경찰의 무리한 표적 수사였는지,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였는지에 대한 논란을 남긴 채 윤 후보자 인사청문회 때까지 수면 아래로 내려가 있었다.
윤 후보자는 경찰이 수사를 진행하던 2012년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으로 있었다. 사건이 종결된 2015년 2월에는 국가정보원 댓글사건 수사로 인한 ‘항명 파동’으로 좌천돼 대구고검서 근무했다. 윤 국장은 2012년 당시 대검 중수부 과장, 2015년에는 충남 서산지청장으로 재직했다.
두 사람 다 해당 사건에 대한 직접 지휘라인은 아니었던 셈이다.
다만 윤 후보자 본인도 윤 전 서장과 한두 차례 골프를 친 사실은 인정하고 있고, 윤 전 서장에게 변호사를 소개해주는 듯한 육성 녹음파일이 공개되는 등 사건과 전혀 무관하다고 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윤 전 서장 사건의 경찰 수사팀장이던 장우성 서울 성북경찰서장은 지난 8일 윤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수사 당시 영장이 잇따라 기각된 것이 윤 국장과 윤 후보자의 친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면서도 “(윤 후보자 등이 사건에 영향을 미쳤다는) 증거는 없다”고 말했다.
18개월 수사
무혐의 처분
윤 전 서장 사건은 한국당 주광덕 의원이 다시 고발장을 내면서 검찰 재수사를 앞두고 있다. 사건은 공무원 범죄 담당 부서인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로 배당돼있다. 한국당은 윤 후보자를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