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트랙 후폭풍 검찰발 정계개편설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9.06.17 10:07:24
  • 호수 12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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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 100명 볼모로 여의도 쥐락펴락?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국회 패스트트랙 갈등이 21대 총선을 앞두고 검찰에 칼자루를 쥐어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패스트트랙을 둘러싼 여야 고소·고발에 대한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수사 대상에 오른 국회의원만 100명에 달한다. 법조계에선 국회선진화법 첫 사건인 만큼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를 전망했다. 일명 ‘검찰발 정계개편설’이 나오는 배경이다.
 

선거제·개혁법안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을 둘러싼 국회 몸싸움 이후 고소·고발된 14건은 모두 서울남부지검 공안부서 수사한다. 남부지검에 따르면 기존에 형사부에 배당됐던 6건의 사건도 공안부로 재배당됐다.

국회선진화법 
첫 적용 사건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와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지난 4월29일 자정을 전후로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4당이 합의한 선거제 및 검경수사권 조정안 등 검찰개혁 관련 법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했다.

한국당은 패스트트랙에 거세게 반대하며 법안 제출부터 회의 진행까지 막아섰고 여야 간 고성에 막말, 몸싸움으로 극한 대치를 벌였다. 이 과정서 여야 의원들은 서로 “폭력 국회를 만들었다”며 수십명의 의원들을 검찰에 고발했다. 여기에는 보좌진과 당직자들도 포함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 정의당은 나경원 원내대표 등 한국당 의원들을 국회법 위반 등의 혐의로 고발했다. 한국당도 홍영표 원내대표 등 민주당 의원들을 공동상해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장을 제출했고, 민주당 이해찬 대표도 모욕죄로 고발했다. 


앞서 고발사건 6건은 서울중앙지검으로 접수됐으나 대검찰청은 국회의원들의 다툼이 발생한 곳인 국회가 서울 영등포구 소재인 만큼 해당 관할지인 서울남부지검으로 사건을 모두 보냈다.

칼자루 쥔 검…한국당 발목 잡나
고소·고발 97명 중 60명 넘어

검찰은 해당 사건을 다시 경찰에 맡겼다. 남부지검은 국회 패스트트랙 대치와 관련해 국회법선진화법위반, 공무집행방해, 재물손괴 등 고소·고발 사건을 영등포경찰서에 수사 지휘 중이다. 지난 10일 경찰은 나경원 원내대표 등 한국당 의원 42명을 국회법 위반 등의 혐의로 고발한 정의당 관계자를 조사하며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현재 관련 사건으로 고소·고발된 국회의원 수는 무려 97명에 달한다. 정당별로는 민주당 의원이 25명, 한국당 의원이 62명, 바른미래당(이하 바미당) 7명, 정의당 2명, 무소속 1명 등이다. 여야 의원 다수가 얽혀 있는 이번 사건은 내년 총선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정치권은 촉각을 세우고 있다. 
 

이번 사건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2014년 처음 시행된 국회선진화법을 위반했는지의 여부다. 국회선진화법 위반은 형이 무겁고 결과에 따라 내년 총선에 출마할 수 없게 된다. 이 법 위반 혐의에 관한 수사는 이번이 처음이며, 국회선진화법은 2012년 여야 합의로 개정된 국회법 165조(국회 회의 방해 금지)와 166조(국회 회의 방해죄)를 가리킨다. 

국회선진화법에서는 국회의 회의를 방해할 목적으로 회의장이나 그 부근서 폭행·감금하면 징역 5년 이하나 벌금 1000만원 이하, 그 과정서 사람이 다치거나 서류 등이 손상되면 7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선고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공직선거법상 국회의원은 500만원 이상 벌금형이 확정되면 의원직 상실과 함께 5년 동안 피선거권을 박탈당하고, 집행유예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10년 동안 선거에 출마할 수 없다.

공안부 배당
수사에 착수


법조계와 정치권에선 국회선진화법 위반 혐의로 고발된 한국당 의원들이 대거 처벌을 면치 못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국회선진화법은 ‘동물국회’를 방지하기 위해 2014년도부터 시행됐으며, 검찰은 최초로 국회선진화법 위반 혐의로 국회의원들을 수사하게 된 것이다. 

한국당 의원들이 패스트트랙 지정을 막기 위해 조직적으로 의사 진행을 방해한 정황은 언론 등을 통해 영상이 공개 바 있다. 이 과정서 한국당 의원들과 관계자들은 의안과 사무실 팩스기기로 접수된 법안 서류를 가로채고 팩스 기기를 부수는가 하면, 업무를 처리하기 위한 컴퓨터 모니터도 못 쓰게 하는 등 몸으로 법안 발의를 막고 나섰다.

법조계에선 당시 영상 등을 보며 이들의 처벌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경찰은 국회서 제출받은 CCTV 자료를 분석해 당시 의사 진행 방해에 대한 사실 관계를 파악 중이다. 증거로 제출된 CCTV 분량만 210GB(기가바이트) 분량으로 이는 영화 100편 분량에 해당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당시 국회의원들이 국회 의사 진행을 방해하는 영상은 아마 국회선진화법 위반 혐의에 대한 결정적인 영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표적인 예가 바미당 사법개혁특위 위원이었던 채이배 의원의 감금 사건이다. 지난 4월25일 오전 9시부터 약 6시간 동안 한국당 의원 11명은 채 의원의 사무실에 머물며 채 의원의 국회사개특위 전체 회의 출석을 막았다. 한국당 엄용수·이종배·김정재·민경욱·박성중·백승주·송언석·이양수·정갑윤·여상규 의원 등은 문 앞을 막아 채 의원의 의사 진행을 방해했다.

3명 중 1명꼴
유죄 확정되면?

정 의원과 여 의원은 의원실 소파를 문 앞으로 옮겨 막기까지 했다. 이은재 의원의 경우 국회 의안과에 팩스로 접수된 법안을 직원에게서 빼앗아 찢었다. 

실제로 2008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출입문을 망치로 부쉈던 당시 민주당 문학진 의원은 벌금 200만원, 2009년 국회 사무총장실서 집기를 부수며 물리력을 행사한 당시 민노당 강기갑 의원은 벌금 300만원의 처벌에 그쳐 의원직을 유지한 바 있다. 국회 본회의장서 최루탄을 터뜨린 김선동 전 의원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된 게 이제껏 가장 무거운 처벌이었다.

반면 국회선진화법은 일반 형법으로 처벌하던 행위들의 처벌 수위를 크게 높였다. 이번 국회선진화법 사건은 첫 사례인 만큼 피고발된 국회의원들의 강력한 처벌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 검찰 관계자는 “새로운 법을 적용한 첫 사건인 만큼 검찰은 강도 높은 수사를 할 것”이라며 “보통 검찰은 새로운 법에 대한 양형 기준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재판서 최고 형량을 구형해 첫 판례를 이끌어내려고 힘쓴다”고 설명했다. 

피고발된 한국당 의원들 입장에서는 이번 사건에 촉각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현실적으로 총선까지 1년도 남지 않은 상황서 내년 4월 이전에 법원서 최종적으로 형이 확정돼 피선거권을 박탈당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처벌 불가피할 것”
서초동 한목소리


다만 검찰이 수사 결과를 내놓거나 1·2심 재판 결과에 따라 각 당의 당헌·당규에 의해 공천에서 배제될 수는 있다. 더 나아가 피고발된 한국당 의원들이 21대 총선서 당선됐다고 할지라도, 결국 최종 형이 확정돼 유죄가 나올 경우 해당 국회의원들이 의원직을 잃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상호 고발전에 대해 엇갈린 전망을 내놓고 있다. 여권을 중심으로는 “기소와 유죄 확정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야권에서는 “여야가 고소·고발 취하 합의만 하면 검찰과 법원이 나서기 어렵다”는 의견이 다수다. 
 

민주당은 한국당이 국회 정상화를 위한 표면적인 조건으로 내걸었던 ‘검찰 고발 취하’에 ‘불가’ 방침을 명확히 했다. 국회 파행이 이어지더라도 패스트트랙 지정 과정서 발생한 폭력 사태를 없던 일로 되돌리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야권은 고소·고발에 대한 취하 합의에 기대를 걸고 있다.

한 야권 관계자는 “패스트트랙은 정치적인 영역이고 사법적인 영역과는 또 별개로 볼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지 않나. 한국당 의원들만을 상대로 처벌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고, 고발만 취하하면 어느 정도는 참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설사 여야가 국회 정상화를 위해 고소·고발을 취하하는 타협이 이뤄지더라도 반의사불벌죄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검찰 수사는 진행된다. 패스트트랙에 올린 사법제도 개혁 대상으로 지목된 검찰이 오히려 의원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 셈이다.


개혁 대상서…
이제는 역전?

이 때문에 정치권에선 ‘검찰발 정계개편이 이루어질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한국당 의원들 3분의 2가 국회선진화법으로 고발당한 상태다. 유죄가 확정될 경우 대거 의원직을 상실해 해당 지역구에선 재·보궐선거가 이루어지게 된다. 여권에선 이 경우 재·보궐선거 지역구서 후보를 낸다면 승산이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공백이 생긴 지역구에 좋은 후보를 영입해 선거에 출마시킨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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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구 친윤(친 윤석열)계 핵심으로 분류됐던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흔들리면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들의 공개 갈등엔 ‘옹립의 정치학’이 숨어 있다. 특정 세력이 정변을 일으키거나 지도자 교체를 시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지도자 옹립이다. 그 과정에서 정치적 정당성·생존 본능이 적절하게 조화해야 한다. 그래서 복잡한 조건이 가미된다. 지도자 옹립을 위한 조건으로는 대체로 ▲적절한 상징성 ▲새 기득권이 될 주도 세력과의 조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 등을 들 수 있다. 아무나 못 갖는 지도자 조건 이 중 가장 어려운 숙제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새 지도자가 자신의 정치적 의지를 강하게 밀어붙이면, 새 기득권 세력과의 충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새 지도자는 자신의 생존을 도모해야 한다. 생존 본능은 강한 권력 의지로 연결된다. 자신만의 새로운 비전을 실천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강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자신을 옹립한 주도 세력과 마찰한 사례는 역사적으로 빈번하다. 왕은 왕권을 강화하려고 했고, 귀족은 이를 막으려고 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왕과 귀족은 끊임없이 정치적 다툼을 벌였다. 이 때문에 많은 왕이 교체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옹립된 지도자는 대체로 권위가 약하다. 옹립된 지도자는 지배 질서가 규정한 정통성이 약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옹립되는 과정 자체가 지도자로선 주도 세력에게 빚을 진 격이 되는 사례도 많다. 조선 태종은 정변을 일으켜 아버지를 몰아낸 후 즉위했다. 태종은 태조의 다섯 번째 아들이었다. 적장자 승계를 중시하는 유교 질서에선 도저히 후계자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태조는 막내아들을 세자로 책봉하는 악수를 뒀고, 사병을 혁파하려고 했다. 새 질서를 왕이 직접 부정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기득권 세력의 기반을 침범하려고 한 것이다. 태종은 적장자 대접을 받던 형 정종을 세자·왕으로 옹립한 후 형의 양자로서 왕위를 승계해 질서를 지키는 모양새를 갖췄다. 제1차 왕자의 난에서 주축은 주도 세력이 동원한 사병이었는데, 태종은 이들에게 빚을 진 셈이다. 하지만 그는 주도 세력 중 상당수를 정계에서 일시 퇴출시킨 후 사병을 혁파했다. 자신과 왕조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안전판을 확실하게 확보한 것이다. 경제적 이권까지 거둬들이려고 해선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 태종은 공신들이 저지르는 각종 비행을 적당한 선에서 눈감아줬다. 태종의 킹메이커 하륜은 도성 안에 조성된 신덕왕후의 능이 이장되자, 주변의 좋은 땅을 선점하기 위해 사위들을 동원했다. 하륜에겐 지금도 유능한 신하·부정부패의 상징이란 평가가 함께 따라다닌다. 조선 중종도 형 연산군 폐위 이후 옹립된 임금이었다. 엉겁결에 왕위에 올라 큰 빚을 졌기 때문에 중종은 공신들을 통제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핵심 공신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했다. 이후 중종은 조광조·김안로 등 대리인을 내세웠다가 토사구팽하는 정치술을 반복했다. 너무 유능해도, 너무 무능해도 안 된다 출마설 도는 주호영·윤한홍의 장 직격 조광조 일파는 중종이 한밤중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숙청됐다. 김안로는 아들의 초례가 예정된 날 체포됐다. 주도 세력으로선 왕이 너무 유능하거나 정치에 밝으면 곤란하다. 그렇다고 너무 무능하거나 막 나가도 안 된다. 지나치게 막 나가서 폐위된 대표적인 왕은 고려 충혜왕이었다. 충혜왕은 아버지 충숙왕이 양위해서 즉위했다. 당시 고려 왕은 원나라 사신이 하루아침에 폐위해 귀양을 보낼 수 있을 정도로 권위가 없었다. 고려 친원파의 권력은 왕보다 더 강했다. 그리고 고려엔 원나라 제2황후 기황후의 오빠 기철이 있었다. 고려 왕은 정상적으로 즉위하더라도 원나라·친원파가 사실상 인준해야 왕 노릇을 할 수 있었다. 즉위하는 임금마다 옹립된 지도자나 다름없었다. 충혜왕은 즉위 후 아무나 성폭행하는 기행을 저질렀다. 성폭행 대상 중엔 서모 경화공주도 있었다. 이 사실은 원나라 사신에게도 알려졌다. 결국 충혜왕은 폐위돼 귀양 가던 중 사망했다. 한편으로 충혜왕은 폭력배들을 자신의 측근 세력으로 양성한 후 권문세족이 독점하던 유통구조 개선을 통해 재정을 확충하려고 했다. 아울러 권문세족의 사유지를 혁파하려 하는 등 이들의 경제기반을 뒤흔들려고 했다. 충혜왕이 폐위된 결정적인 계기는 기철의 건의였다. 원나라는 기철의 건의를 받아들여 충혜왕을 폐위했다. 충혜왕은 폐위되던 순간 사신으로부터 발길질을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주도했던 12·3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 대부분은 소장파 성향의 초·재선 의원들이었다. 이들은 지난 1년 동안 꾸준히 당에 비상계엄 관련 사과와 당의 혁신을 요구했기 때문에 딱히 특별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원조 친윤’ 중 1명으로 평가받는 국민의힘 3선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게 비상계엄 관련 사과를 요구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윤 의원은 지난 5일 진행된 국민의힘 ‘이재명정권 6개월 국정평가 회의’ 도중 장 대표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인연과 골수 지지층의 손가락질을 다 벗어던지고, 계엄 굴레에서 벗어나자”고 요구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비상계엄이 잘못됐단 인식을 아직도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계엄을 벗어던지고, 국민께 어이없는 판단의 부끄러움을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앞에서 사과 요구 이는 장 대표가 지난 3일 비상계엄에 대해 사과하지 않고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려던 계엄이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한 반박이었다. 장 대표는 이날 윤 의원의 비판을 들은 후 고개만 살짝 숙인 채 굳은 표정을 유지했다. 국민의힘 6선 주호영 국회부의장도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은 지난 8일 대구 지역 언론인과의 정책토론회 중 장 대표를 일컬어 “자기 편을 단결시키는 과정을 밟다가 중도가 도망간다면 잘못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장 대표는 ‘12월3일까진 지켜봐 달라’고 말했고, 그 이후엔 민심에 따르는 조치가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그런 말을 하지 않아서 당내 반발이 많다”고 강조했다. 주 부의장은 “윤 전 대통령은 폭정을 거듭하다가 탄핵당했다”며 “비상계엄도 김건희 여사 특검을 막으려던 것이 아닌가 짐작만 할 뿐”이라는 등 윤 전 대통령도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과 윤 의원은 광역자치단체장 선거 출마 가능성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주 부의장은 이날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 “준비는 많이 해왔고, 이른 시일 안에 의견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윤 의원은 지난 2021년 경남도지사 출마 의사를 내비쳤다가 입장을 선회했던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지난 2월 공개한 명태균씨의 전화 통화 녹취엔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윤 의원의 경남도지사 출마를 막았다”는 취지의 대화가 공개됐다. 지방선거를 약 6개월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다. 주 부의장처럼 출마 가능성을 암시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지방선거는 국회의원에게는 매우 중요한 정치적 이벤트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두는 방법엔 ▲지역구 내 지방선거 공천 ▲중앙정치에 지역 이해관계 반영 등이 있다. 지방선거에선 국회의원이 공천·조직 동원 등에 행사하는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민주당 이상헌 의원은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현재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박순자 전 의원도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지난 3월 징역형을 확정받았다. 힘 못 쓰는 2가지 이유 국민의힘 대표를 지냈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지난 2월 <일요시사>와 만나 “국민의힘은 김종인 선거대책위원장·이준석 대표 체제 외엔 선거에서 이겨본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실제로 국민의힘은 지난 2016년 이후 지난 2022년 대선·지방선거 외엔 참패를 거듭했다. 국민의힘이 선거에서 힘을 못 쓰는 이유로는 크게 2가지가 거론된다. 하나는 자체적으로 선거 후보를 양성하는 게 아니라, 선거가 임박해 외부 명망가를 데려와 주요 선거 후보로 옹립하는 특성이다. 다른 하나는 영남·강원 등 핵심 텃밭에 자리 잡아 중앙정치보다 지역구 기반 다지기에 집중하는 정치인 집단이다. 세간에선 이들을 일명 ‘언더 찐윤’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선거 참패가 이어지면, 중앙정치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도 줄어든다. 영향력이 줄면, 지역의 이익을 중앙정치에 반영하기 어렵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둘 방법·영향력을 모두 잃는다는 것은 언더 찐윤 의원들에게 매우 치명적이다. 아무리 중앙정치·전국 단위 선거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정당이 정권 획득 가능성이 아예 없는 수준으로 추락하는 것은 매우 곤란하다. 그 정당에 소속된 국회의원과 이해관계를 교환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21세기 이후 국민의힘에서 배출한 대선후보는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 ▲이명박·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 ▲홍준표 전 대구시장·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등이다. 이들의 대체적인 공통점은 ▲전국적 인지도 ▲정치적 상징성 ▲낮은 당 장악력 등이다. 대선 출마 당시 “당 장악력이 낮다”는 평가를 받지 않았던 대선후보는 이 전 총재·박 전 대통령밖에 없었다. “당 장악력이 낮다”는 명제는 국민의힘 친윤계 의원들에게 매우 중요했다. 당 장악력이 높은 대통령·대권주자는 의원들과 굳이 이익을 주고받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은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대표 등 수도권에 기반해 중도 공략 의지가 강한 정치인과의 불화가 잦다. 이들과 이해관계·성향·기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것이 많아서 당권을 다투거나 알력이 있을 가능성도 큰데, 결국 화합하기 어렵다. 살기 위해 충돌하는 장 VS 친윤 “우리끼리 총구 안 돼” 의견 고수 언더 찐윤 의원들이 언론 노출을 꺼리는 성향도 ‘당 장악력이 낮은 적절한 대권주자’를 선호하는 현상과 맞물린다. 언더 찐윤의 관점으로 보자면, 윤 전 대통령은 자멸해서 사라졌다. 한 전 대표·안 의원은 수도권 엘리트 성향이 강하다. 지난 8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했던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은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을 청산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런 상황에서 두드러진 사람이 바로 장 대표였다. 장 대표는 정치 경력이 짧으면서도 한 전 대표와 결별한 이력이 있다. 지난 2월엔 백봉신사상을 수상할 정도로 신사적 이미지도 강했다. 국민의힘 내 강성 보수 성향 당원들은 장 대표를 선택했다. 이후 장 대표는 범보수 대권주자로 주목받았다. 코리아정보리서치가 지난 6일부터 이틀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범보수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서도 21.3%의 지지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겐 정치적 기반이 없다. 대권주자에게 필요한 것은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다. 대선에 출마하지 않더라도,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 없으면 정치 생명을 길게 유지할 수 없다. 장 대표는 장외집회 개최 위주로 정치활동을 이어갔다. 장외집회에선 이재명 대통령을 강하게 비난하는 강성 발언을 주로 내놨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 장외집회에서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불법이었고, 국민의힘은 그 불법을 방치했다”고 주장했다가 강경 보수 성향 당원의 비난을 받았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을 강경 보수의 길로 이끄는 ‘투톱’이다. 그런데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둔 시점이기 때문에 둘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다. 지방선거는 이들의 정치적 삶과 죽음을 좌우할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의원들이 충돌하는 결정적인 지점은 살고자 하는 의지다. 윤 의원이 장 대표를 비판했다는 사실은 “국민의힘 구 친윤계가 장 대표를 통제불능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으로 연결된다. 강경 보수 성향이 짙어지면, 선거의 캐스팅보트로 인식되는 중도층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 친윤계 의원들에겐 당과 개인의 이익이 모두 줄어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조 의원은 지난 8월 <일요시사>와 만나 “강경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선택지는 어차피 국민의힘밖에 없다”면서 중도 공략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것이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친윤계 의원들이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한 이유와 맞물릴 가능성이 크다. 장 대표의 실질적 임기는 지방선거 결과에 달렸다. 따라서 장 대표에게 주어진 시간은 6개월 정도다. 장 대표는 이 안에 강경 보수 세력을 자신의 독자적인 기반으로 삼으려 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옹립하는 세력과 옹립되는 수장은 각자의 삶과 죽음이 걸려 있어 긴장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장 대표에 대해선 “국민의힘, 나아가 보수 진영의 진정한 1인자가 될 만한 기반이 부족하다”는 다수의 분석이 나온다. 장 대표와 친윤계의 이해관계는 여기서 엇갈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남은 6개월 빠듯한 시간 새누리당 정옥임 전 의원은 지난 9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신중한 사람이지만 현실감각이 굉장히 빠르다”며 “장 대표는 화장을 지운 여자의 얼굴처럼 다 보여줘서 장 대표 체제 종언은 이제 뚜껑만 열리면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게 남은 시간은 불과 6개월이다. 부족한 것은 결국 시간이다. 하지만 장 대표는 윤 의원·주 부의장의 비판에 “우리끼리 총구를 겨눠선 안 된다”며 “싸워야 할 대상은 이재명 독재정권”이라고 반박했다. 장 대표는 흔들리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흔들리지 않고 있다. 장 대표와 구 친윤계는 과연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