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그때 그 사람들은 지금…

1년3개월 후…끝나지 않은 성폭로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지난해 1월 미국발 허리케인이 국내에 상륙했다. 이른바 미투운동의 등장이다. 미투운동은 한국 사회서 엄청난 파급력을 발휘했다. 각계각층 저명한 인사들의 과거 잘못된 행동이 쏟아져 나왔다. 단발성 폭로전에 그칠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지만 미투운동은 사회현상을 넘어 변화의 시발점이 됐다 . 그로부터 13개월이 지났다 .

▲ 서지현 검사

시작은 SNS 해시태그(#)였다. 201710월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나도 피해자’(Me Too)라는 단어에 해시태그를 달아 SNS에 공유했다. 미국서 시작된 미투운동은 유럽 등지로 광풍처럼 뻗어나갔다. 수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자신의 아픔을 알리고 타인의 슬픔에 공감했다.

해시태그 운동
사회 뒤집어

미국의 주간지 <타임>은 미투운동을 촉발한 불특정 다수의 여성을 2017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 <타임>은 이들을 가리켜 침묵을 깬 사람들 ’(The Silence Breakers)이라고 명명했다. 표지 사진에는 영화배우 애슐리 주드, 전 우버 엔지니어 수전 파울러,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 등이 포함됐다.

<타임> 이 운동, 심판은 위대한 사회적 변화가 그러했듯이 개인의 용기 있는 행동과 함께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 이러한 심판은 하룻밤 사이에 일어났지만 사실은 몇 해, 몇십년 , 몇 세기 동안 계속 끓어올랐다침묵을 깬 사람들은 하루 만에 힘을 모으고 거부 혁명을 시작했으며 그들의 집단적인 분노는 즉각적이고 충격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고 설명했다.

실제 배우인 알리사 밀라노의 트위터 글로 시작된 미투운동의 파급력은 엄청났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은 30 년간 영화 관계자들을 상대로 저지른 성추문이 드러나면서 몰락했다기네스 팰트로, 안젤리나 졸리 등 할리우드 유명 배우들뿐만 아니라 영화 관계자들도 하비 와인스타인에게 당한 성폭력 피해를 폭로했다 .


한국 사회에 불어닥친 미투 바람은 현직 검사의 고백으로 시작됐다. 서지현 수원지검 성남지청 부부장검사는 지난해 1 월, 한 방송에 출연해 성폭력 피해 사실을 밝혔다. 서 검사의 고백으로 미투운동은 각계각층에 들불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미투운동에 적극 지지입장을 밝히면서 핵폭탄급 이슈로 급부상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2우리 사회 전 분야로 미투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곪을 대로 곪아 언젠가는 터져나올 수밖에 없었던 문제가 이 시기에 터져나온 것이라 생각한다 고 말했다.

이어 미투운동을 무겁게 받아들인다. 피해 사실을 폭로한 피해자들의 용기에 경의를 표하며 미투운동을 적극 지지한다 고 덧붙였다.

서 검사의 폭로로 미투운동은 법조계를 비롯해 사회 각 분야로 퍼져나갔다. 먼저 문단 내 성폭력 해시태그(#문단_ _성폭력) 운동이 진행 중이던 문단을 중심으로 문화예술계가 들썩였다.

폭발적인 파괴력은 줄었지만
사회 전반에 영향 끼치고 있어

일각에서는 2016년 문화예술계서 촉발된 성추문 폭로 사건을 우리나라 미투운동의 시초로 보기도 한다. 이후 정치권 , 연예계, 종교계, 교육계 등에서 연이어 성폭력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폭로가 이어졌다 .

상대적으로 잠잠했던 체육계는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가 피해 경험을 고백하고 가해자로 지목한 코치에 대한 법적 조치를 취하면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인지도가 높은 국가대표 선수에 대한 성폭력 사실은 사회적 관심을 높였다 .


미투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과정서 2차 가해, 거짓 폭로 등의 부작용이 일어났다 . 미투운동은 조직 내에 만연하게 퍼져 있지만 위계 문제로 인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성폭력 사례를 고발한다는 취지로 진행됐다. 그러다 보니 피해자가 가해자와 비교해 낮은 지위에 있는 경우가 많았고 , 이는 2차 가해로 이어지기도 했다.

또 성폭력 피해 경험이 내밀하고 사적인 영역이기 때문에 증거 없이 피해자의 주장만 남은 사례도 있다. 피해자의 증언만을 판단 근거로 가해자가 지목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피해자가 악의를 가지고 거짓으로 폭로하거나 이를 보도하는 과정서 엉뚱한 사람이 가해자로 지목돼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보는 사례도 심심찮게 발생했다.

미투운동을 바라보는 시선은 긍정과 부정으로 엇갈렸다. 하지만 다수의 사람들이 미투운동이 한국 사회에 잠깐 부는 바람 수준을 넘어섰다는 데는 공감했다. 거짓 폭로, 자극적인 보도 등으로 단발성 이슈에 그칠 것이라 생각했던 미투운동은 한국 사회에 천천히 연착륙했다.

여성 인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부조리한 사실은 밖으로 꺼내 말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퍼지면서 미투운동은 일상으로 파고들었다.

문재인정부서 양성평등 정책을 내놓는 데 미투운동이 장작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빚투’( 채무에 대한 폭로),‘공투’(공무원 사회의 부조리를 폭로) 등 미투서 비롯된 신조어도 나왔다.

터지면 ‘끝’
유명인사 ‘훅’

이후 13개월이 흘렀고 미투운동 초기의 폭발적인 파괴력은 사그라졌다. 하지만 피해자의 폭로로 시작된 미투운동은 가해자에 대한 법적 조치 등의 방식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

피해자들도 언론 인터뷰나 시민단체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중이다. 실제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들에 대한 법적 조치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연극계 대부서 몰락한 이윤택 전 연희당거리패 예술감독은 항소심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1심보다 형량이 1년 추가됐다.

▲ 김기덕 감독

서울고등법원 형사9(부장판사 한규현)는 지난 9일 상습 강제추행 및 유사강간치상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돼 1 심서 징역 6년을 선고받은 이 전 감독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을 열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날 공판서 원심 중 일부 무죄로 판단한 선고를 각각 파기하고 피고인에게 징역 7 ,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80시간 이수, 아동 ·청소년 관련 기관 10년간 취업제한에 처한다고 판시했다 .

1심 재판부가 무죄로 판단했던 연극 단원 A씨 강제추행 혐의와 추가 기소 사건인 안무가 B 씨 사건에 대해 항소심 재판부가 유죄를 인정하면서 형량이 늘었다.


지난해 2월 극단 미인의 김수희 대표는 SNS를 통해 자신이 10 여년 전 지방 공연을 하던 당시 겪은 일을 공개했다. 김 대표는 지방 공연을 맡았던 연출가가 본인의 기를 푸는 방법이라며 연습 중이든 휴식 중이든 꼭 여자단원에게 안마를 시켰고, 자신도 여관방으로 호출당했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안 갈 수가 없었다. 당시 그는 내가 속한 세상의 왕이었다 . 문을 열고 들어가니 그가 누워 있었다. 예상대로 안마를 시켰다. 얼마쯤 지났을까 그가 갑자기 바지를 내렸다 고 주장했다.

이어 이제라도 이야기를 해서 용기를 낸 분들께 힘을 보태는 것이 이제 대학로 중간 선배쯤인 거 같은 내가 작업을 해나갈 많은 후배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선배가 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글을 맺었다.

1심·항소심
판결 바뀌어

당시 김 대표는 이 전 감독의 실명을 밝히지 않았다. 대신 글 곳곳에 이 전 감독을 암시하는 내용을 담았다. 김 대표의 폭로 이후 이 전 감독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피해자들이 속속 등장했다 .

이 전 감독은 기자회견을 통해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법적 처벌도 달게 받겠다”고 말했지만 기자회견 리허설 논란이 불거지면서 비판 수위는 높아졌다.


정치권에서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재판 중에 있다. 안 전 지사는 차기 대선후보로 지목될 만큼 정치적 미래가 밝았지만 성추문 문제가 불거지면서 나락으로 떨어졌다. 지난해 3월 안 전 지사의 공보비서를 지낸 김지은씨가 방송에 출연했다.

▲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김씨는 안 전 지사에게 8개월에 걸쳐 성폭행과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안 전 지사는 지난 2월 항소심서 유죄 판결을 받고 법정 구속됐다. 1심에선 무죄였다 . 서울고법 형사12(부장판사 홍동기 )는 피감독자 간음,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강제추행 등의 혐의로 기소된 안 전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을 깨고 징역 3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 40시간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와 5년간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취업 제한도 명령했다 .

재판부는 안 전 지사가 저지른 10차례의 범행 중 한 번의 강제추행 혐의를 제외하고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항소심 재판부가 피해자 김씨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하고 위력에 대해 폭넓게 해석한 점이 1심 판결과 달랐다.

또 항소심 재판부는 합의하에 이뤄진 성관계라는 안 전 지사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앞서 1심 재판부는 김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봤다 .

심석희 선수에 대한 폭행 혐의를 받고 있는 조재범 전 국가대표팀 코치는 항소심서 1심보다 무거운 형을 선고받았다. 수원지법 형사항소4(부장판사 문성관) 는 지난 1월 상습상해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 전 코치에 대해 징역 16개월을 선고했다. 심 선수는 조 전 코치에게 당한 성폭행 피해와 관련해 고소를 진행 중이다.

조 전 코치는 지난 20148월부터 201712월까지 태릉·진천 선수촌과 한체대 빙상장 등 7곳에서 심 선수를 수차례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심 선수의 구체적이고 일관된 피해 진술과 조 전 코치와 성폭행과 관련한 대화를 나눈 문자메시지, 심 선수의 동료·지인 등 참고인들의 진술 등을 토대로 성폭행 혐의가 인정된다고 보고 검찰에 송치했다.

가해자에 대한 법적 판결 나와
부정 여론에 방송서 사라지기도

경찰 관계자는 성범죄인 만큼 피해자에게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어 자세한 내용은 밝힐 수 없다 ”며 피해자 진술, 복원된 대화 내용 등 여러 증거가 조 전 코치가 (심 선수를)성폭행했다는 것을 뒷받침하고 있어 혐의 입증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고 전했다.

조 전 코치는 성폭행 관련 혐의에 대해 부인하고 있다.

김기덕 감독은 성폭력 의혹을 제기한 방송사와 여배우 C씨를 상대로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C씨는 2013년 개봉한 영화 <뫼비우스>의 촬영 당시 , 김 감독이 연기지도 명목으로 뺨을 때리고 사전 협의 없이 대본에 없던 베드신 촬영을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한겨레>에 따르면 김 감독은 여배우 C 씨와 <PD수첩>을 방영한 MBC 를 상대로 10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C씨와 MBC <PD 수첩> 제작진이 허위의 주장을 방송에 그대로 내보내 피해를 입었다는 주장이다.

▲ 배우 고 조민기씨 ⓒ사진공동취재단

하지만 김 감독이 여배우 C씨와 MBC <PD수첩 > 제작진을 상대로 각각 무고 혐의와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건에 대해서는 모두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

치열하게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는 사람이 있는 반면, 아예 자취를 감춘 이들도 있다. 방송에 모습을 드러내기 어려울 만큼 부정적인 여론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 실제 방송계서 미투운동이 불거졌을 무렵, 제작진들은 가해자로 지목된 출연진이 나온 장면을 편집하고 대체자를 찾느라 고생했다고 한다.

짠돌이’ ‘통장요정 콘셉트로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던 방송인 김생민은 지난해 4, 10년 전 성추행 사건이 알려지면서 모든 방송서 하차했다 . 10여개에 달하는 광고, 여러 프로그램에 메인으로 참여하던 김씨가 방송가서 자취를 감추는 데는 불과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이후 1년이 지났지만 김씨는 두문불출하고 있는 상태다.

학생 성추행 논란에 휘말렸던 배우 조민기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해 2월 온라인상에 조씨의 성추행 의혹을 제기하는 글이 올라왔다 . 조씨가 청주대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학생들을 성추행했다고 고발한 글이었다. 믿고 보는 배우, 연기파 배우로 불렸던 조씨는 가족과 함께 예능에 출연하는 등 친근한 이미지를 쌓고 있던 차였다.

차가운 
대중 시선

조씨는 이 같은 의혹에 대해 강하게 부인했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서 가슴으로 연기하라고 손으로 툭 친 걸 가슴을 만졌다고 진술한 아이들이 있다 고 말하는 등 적극적으로 해명했다. 하지만 누리꾼의 비난은 계속됐다. 이뿐만 아니라 조씨에게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학생들이 추가로 나왔다 . 또 조씨가 학생에게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가 공개됐다.

당시 조씨에게 성추행을 당한 것으로 알려진 피해자는 20여명에 달했다. 충북지방경찰청 여성청소년수사계는 조씨를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할 예정이었다 . 조씨는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 조사를 받는 대신 목숨을 끊었다. 조씨에 대한 미투 폭로가 나오고 불과 20 여일도 되지 않아 일어난 일이었다.

<jsjang@ilyosisa.co.kr>

 

<정정보도문> 영화감독 김기덕 미투 사건 관련 보도를 바로 잡습니다

해당 정정보도는 영화 <뫼비우스>에서 하차한 여배우 A씨측 요구에 따른 것입니다.

본지는 2019년 4월16일 <'미투' 그때 그 사람들은 지금…>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하여 "영화 <뫼비우스>에 출연했으나 중도에 하차한 여배우가 김기덕 감독으로부터 베드신 촬영을 강요당했다는 내용으로 김기덕을 형사 고소했다"는 취지의 보도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실 확인 결과 <뫼비우스> 영화에 출연하였다가 중도에 하차한 여배우는 '김기덕이 시나리오와 관계없이 배우 조재현의 신체 일부를 잡도록 강요하고 뺨을 3회 때렸다는 등'의 이유로 김기덕을 형사 고소하였을 뿐, 베드신 촬영을 강요하였다는 이유로 고소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밝혀져 이를 바로잡습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오는 31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APEC 정상회의(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이하 정상회의)가 경북 경주에서 열린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20개 나라 정상이 초청 대상으로, ‘외교 슈퍼 위크’가 시작된 셈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각국의 강경파들이 경주로 모이면서 서로 어떤 합을 보일지 관심이 쏠린다. 2025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한미 관세 문제가 급물살을 탔다. 지난 7월 협상 시한 하루를 앞두고 한미 간 무역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된 지 약 세 달 만이다. 정상회의를 계기로 관세 협상이 매끄럽게 마무리될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노브레이크 미국 관세 쟁점은 한국이 상호 관세를 15%로 낮추는 조건으로 미국에 투자하기로 한 3500억달러(약 500조원)에 대한 지불 방식이다. 한국은 직접 투자 비중을 줄이고 투자 기간을 늘리겠다는 방침이지만,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 최대한 현금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현금 선불 투자를 고집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는지가 협상 타결의 관건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상회의가 며칠 남지 않은 시점까지도 협상은 난항을 겪었다. 큰 틀에서는 합의가 이뤄졌지만, 세밀한 부분이나 주요 쟁점이 해결되지 않는 등 의견이 모이지 않은 탓이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22일(현지시각)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과 회담한 뒤 “진전이 있었다”면서도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날 김 실장은 ‘마지막 쟁점이 조율됐느냐’는 특파원들 질문에 “쟁점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두 개라고 했고, 아주 많지는 않다”며 “오늘 남아있는 쟁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고 진전이 있었다. 만나면 조금 더 상호 입장을 이해하게 된다”고 답했다. 양국의 대면 협의가 사실상 이날 종료되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두 사람의 결단만 남았다. 미중 간의 관세 협상 결과와 이번에 이뤄질 두 정상의 만남이 한국에 영향을 끼치지 않겠냐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중국과 미국은 지난 4월부터 보복 형식으로 서로를 향해 관세 허들을 높여갔다. 그러던 중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 카드를 꺼내면서 질주하는 미국에 제동을 걸었고,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산 제품에 100% 관세를 추가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관세 전쟁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추가 관세가 현실화하면 중국이 미국에 내야 할 관세는 157%에 달하는 만큼 미중 간의 팽팽한 대립이 이어졌다. 좁히지 못한 ‘디테일’ 막판 협상 난항 이 “우리는 동맹…상식과 합리성 공유” 중국이 밸브를 잠그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희토류와 핵심 광물 공급 협력에 관한 협정에 서명했다. 이는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기 전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일본도 일부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희토류 삼각 동맹이 이뤄진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 백악관 로즈가든 클럽에서 주재한 오찬 행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한국에서 만나 많은 것을 이야기할 것”이라며 대화의 여지를 열어뒀다. 이어 “우리가 협상에서 잘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나는 시 주석과 좋은 합의를 하고 싶고, 시 주석이 중국을 위해 좋은 합의를 하길 바란다. 하지만 그 합의는 공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중 간 무역 갈등이 장기화되면 한국 경제 성장률을 비롯해 수출입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 대통령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한미 관세 협상 타결 전망과 관련해 “조정·교정하는 데 상당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투자펀드를 둘러싼 이견에 대해서는 “결국 이성적으로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결과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며 “왜냐하면 우리는 동맹이며 서로 상식과 합리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중 갈등이 현재 진행형인 상황에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한국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11년 만에 이뤄진 시 주석의 방한도 눈여겨볼 만하다. 아직 한중 관계에 큰 잡음은 없지만 훈풍이 불지 않는 만큼 개선의 여지가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은 한중 관계의 안정적 관리에 대해 초점을 맞출 것으로 전망된다. 이재명정부의 첫 주중대사인 노재헌 신임 대사는 “(시 주석의) 국빈 방문이 계획됐기 때문에 한중 관계가 새로운 도약을 맞이할 수 있는 좋은 계기라고 생각한다”며 “양국 지도자 간에 우호와 신뢰 관계를 다시 굳건히 하고 그 초석 위에서 한중 관계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직 친하지?” 서먹해진 중국 이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시험대에 놓였다. 이 대통령은 지난 9월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열리는 ‘항일전쟁 및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전승절)’에 초청받았지만 의전 서열 2위인 우원식 국회의장이 대신 자리했다. 이 대통령의 전승절 참여 여부를 놓고 국민의힘이 친중 프레임을 굳히자 불필요한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앞서 백악관은 이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축사를 하던 중 뜬금없이 “중국의 간섭과 영향력 우려”라며 중국을 향해 견제구를 날렸다. 한국이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임을 강조할 경우 미국이 제동을 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해석이다. 이처럼 한중 관계 개선의 가장 큰 변수는 미국인 만큼 한국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외교 전략을 펼쳐야 한다. 김지수 한반도 미래경제 포럼 대표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단어가 나오던 때랑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안보와 경제가 같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런 점에서 미국이 더 중요해졌다”고 봤다. 이 대통령 역시 안미경중 노선에 대해 “과거처럼 그런 태도를 취할 수는 없는 상황이 됐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미국이 중국에 대한 강력한 견제, 나아가 봉쇄 정책을 본격 시작하기 전까지 한국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입장을 유지해 왔던 게 사실”이라면서도 “몇 년 사이 자유 진영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진영 간 공급망 재편이 본격적으로 벌어졌고 미국의 정책이 노골적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한국도 미국의 기본적인 정책에서 어긋나게 행동하거나 판단할 수 없는 상태”라며 “중국은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운 데서 생겨나는 불가피한 관계를 잘 관리하는 수준으로 유지하는 상황”이라 고 부연했다. ‘여자 아베’ 경주 데뷔 김 대표는 “미국의 최대 경쟁국은 중국”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은 중국을 제어하기 위해 한국을 향해 손짓하고 있다. 미중 패권 전쟁에서 유리한 전략을 모두 취하고 있는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중국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다. 미국과 가까이 지내기 위해 중국을 적대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중국인 무비자 입국으로 한국 전역에 퍼진 반중 혐오 시위도 고려 대상이다. 최근 국민의힘 등 보수 세력을 중심으로 반중 정서가 확대되면서 외교 갈등이 촉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노 대사는 중국 주상하이 총영사관에서 주중대사관을 상대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국 내 반중·혐중 시위를 묻는 말에 “당연히 우려되고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고 양국 국민의 우호 정서 함양·증진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며 “근거 없고 음모론에 기반한 행위에 대해서는 조치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시적 비자 면제 정책에 대한 자국민의 우려에 대해서도 “불법 체류 현황은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범죄 같은 부분은 입국자 등을 잘 지켜보면서 필요하면 단속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지난 21일 선출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신임 총리는 이번 정상회의를 시작으로 본격 대외 행보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보수 성향이 짙은 탓에 한일 관계가 틀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정권 초기인 만큼 우호적 태도를 유지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중의원 10선 의원으로 경제안보담당상, 총무상, 자민당 정무조사회장 등을 지낸 인물이다. 일본 정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비세습 여성 정치인으로 강경 보수 성향이라는 평가와 함께 입지를 다져왔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4일 치러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하며 당권 티켓을 거머쥐었지만 1999년부터 자민당과 협력해 온 중도 보수 성향인 공명당이 연정에서 이탈해 표가 분산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강경 보수 성향이자 제2야당인 일본유신회를 새롭게 끌어들이면서 극적으로 총리직에 당선됐다. 서로 싫다는 미·중, 사이에 낀 한국 일본까지 강경파 ‘폭풍 속 한반도’ 이 대통령은 신임 일본 총리가 선출된 것에 대해 “정상회의가 개최되는 경주에서 총리를 직접 뵙고, 건설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길 고대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같이 밝히며 “우리는 새로운 한일 관계의 60년을 열어가야 하는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높아진 국제 정세 속에서 한일 관계의 중요성 역시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중대한 시기에 총리와 함께 양국 간, 그리고 양 국민 간 미래지향적 상생 협력을 한층 강화해 나가길 기대한다. 아울러 셔틀 외교를 토대로 양국 정상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훈훈한 축하 인사와 달리 한일 관계는 다시 시험대에 놓였다. 온건하다고 평가받았던 이시바 시게루 내각 체제만큼 협력 기조가 이어질지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2021년 총재 선거 당시 고 아베 전 총리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신임 보수 전사로 떠올랐다. 이번 총리 선거에서 역시 아베 전 총리의 파벌로 형성된 아베파의 지지가 두터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 현지 신문은 자민당의 연정 상대가 공명당에서 유신회로 바뀌면서 다카이치 내각의 보수색이 선명해졌다고 해석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과거부터 야스쿠니 신사를 꾸준히 참배해온 만큼 한국 과거사와 독도 영토 문제 등 민감한 사안을 놓고 이정부와 충돌할 우려도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다카이치 총리가 이번에 보여준 강경 보수 행보는 우익 세력을 끌어들이기 위한 방법으로 한일 외교에 있어서는 이시바 내각과 마찬가지로 온건한 노선을 택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다카이치 총리는 취임 기자회견에서 한일 관계에 우호적인 뜻을 내비쳤으며 가을 예대제 기간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을 것으로도 전해진다. 한일 관계 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 다카이치 총리의 온건 행보가 일시적일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역대 총리들이 그랬듯 지지율이 떨어지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고 반한 감정을 부추겨 보수 지지층 결집을 유도할 것이란 점에서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 대통령이 국가 간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미, 한중, 미중 정상회담이 연쇄적으로 열릴 가능성이 크고 비핵화와 관련해 이 대통령이 남·북·미 간의 대화 물꼬를 튼다면 경주를 무대로 ‘평화 한반도’ 기조를 형성하는 일등 공신 역할을 노릴 수 있다. 눌리거나 손잡거나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관계자는 “이 대통령에게 가장 큰 변수는 아무래도 미국이다. 각 국가 정상마다 성향도 다르고 원하는 바도 다른 만큼 미국부터 삐끗하면 차후 일정도 줄줄이 꼬인다”면서 “조급하게 나서면 될 일도 안 되는 게 외교 문제다. 한국은 한국만의 강점이 있다. 우리 쪽에서도 몇 가지 카드가 있을 테니 지금으로서는 정부를 믿는 것이 최선”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하필 지금? 미사일 쏜 북한 속내 지난 22일 북한이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단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한미·한중 정상회담 등에서 북한 문제가 다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미국을 향한 시그널을 보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주한미군과 우리 군의 반응이 엇갈린 점 역시 주목된다. 주한미군은 미국의 한미 동맹에 대한 공약이 굳건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불법적이고 불안정을 초래하는 행위를 강력하게 비판한다. 북한에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 행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반면 우리 군은 통상 해오던 미사일 발사 규탄 성명을 내지 않았다. 정상회의를 앞두고 이정부가 남북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만큼 이를 의식해 톤 조절에 나선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