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법정 최고형> ‘사형 구형’ 사건들 막전막후

사람 죽여도 죽이진 않는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국은 1997년 이후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다. 이웃나라 일본이 1998년부터 지난해까지 102명에 달하는 사형을 집행한 것과 대조된다. 20년 넘게 사형을 집행하지 않은 한국은 사실상 사형제도 폐지국으로 분류된다. 그렇지만 사형을 구형하는 사건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일요시사>가 검찰이 피고인에게 사형을 구형한 사건을 들여다봤다.
 

▲ 어금니 아빠 이영학

대한민국은 형법 제41조에서 사형을 법정 최고형으로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19971230일 사형수 23명에 대한 형이 집행된 이후 현재까지 단 한 건의 사형도 집행되지 않았다. 국제 엠네스티는 한국을 10년 이상 기결수 사형 집행이 이뤄지지 않은 국가, 즉 실질적 사형제도 폐지국가로 분류하고 있다.

집행 안 해도
구형은 나와

지난 8일, 검찰은 춘천 연인 살해사건 피고인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피고인 A씨는 상견례를 앞두고 연인을 목 졸라 살해한 후 흉기로 시신을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다. 춘천지법 형사 2(박이규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결심공판서 검찰은 살인 등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법정 최고형을 내려달라고 요청했다.

경찰은 무기징역 선고 시 20년이 지나면 가석방이 가능하다. 이렇게 되면 피고인은 만 47세에 출소할 수도 있다”며 피고인의 반사회성, 폭력성, 집착성이 사회에 나가 재발했을 때는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우려된다고 구형 이유를 밝혔다. A씨에게는 30년간 위치추적 장치 부착과 5년간 보호관찰 명령을 내려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피해자의 유가족은 지난해 1031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제발 도와주세요. 너무나 사랑하는 23살 예쁜 딸이 잔인한 두 번의 살인행위로 차디찬 주검으로 돌아왔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청원을 올렸다.


청원에 따르면 피해자는 사건 당일 저녁 A씨를 만나러 춘천에 갔다가 변을 당했다. A씨는 피해자를 목 졸라 살해한 후 식칼로 가슴과 목 부분을 여러 차례 깊숙이 찌르는 등 잔혹한 행위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가족은 이런 끔찍한 사건이 우리 가족에게 일어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가족들과 아주 가까운 곳에서 발생되고 있다잔인하고 중대한 범죄에 대해 살인 피의자의 얼굴 등 신상을 공개한다면 저같이 피눈물 흘리는 엄마가 나오는 것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종로 고시원 화재 용의자 ⓒ사진공동취재단

그러면서 이러한 살인마(A)는 이 사회와 영원히 격리될 수 있게 강력한 처벌이 이뤄지도록 국민 여러분께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글을 마무리했다. 해당 청원에는 21만명이 넘는 국민이 동의를 표했다.

사형제도 존폐 논란은 한국 사회서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는 지난해 10월 일반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사형제 폐지 관련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 결과 사형제를 당장 혹은 향후에 폐지하는 데 동의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20.3%가 찬성 의견을 냈다. 반대는 79.7%에 달했다.

사형제 존폐 논란은 살인 등 강력범죄가 일어날 때마다 불거진다. 또 사형제를 존치해야 한다는 입장은 강력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그 수치가 높아진다.

하지만 세계적 흐름은 물론 한국 사회서도 사형제도는 역사의 뒤안길로 조금씩 물러나는 모양새다. 1996년과 2010, 헌법재판소는 사형제도가 합헌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결정은 같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형제도 폐지를 찬성하는 의견에 무게중심이 실렸다. 1996년에 72로 합헌 결정이 내려진 반면, 2010년에는 54로 위헌 의견이 늘어난 것.

1997년 이후 사형 집행 전무
실질적 사형제도 폐지국 분류


반면 검찰은 사형 구형에 있어 적극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지난해 1월 살인범죄에 대한 구형량을 대폭 높이겠다고 발표했다. 성폭행이나 미성년자 납치 등 강력범죄와 함께 살인죄를 저질렀을 경우 무기징역 구형을 기본으로, 최대 사형까지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대검찰청은 지난해 초 살인범죄 사건처리기준 합리화 방안을 전국 검찰청서 시행한다고 밝혔다. 특히 아동이나 노인,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나 여성을 상대로 범죄가 이뤄질 경우 가중처벌 요소로 본다는 입장을 정했다.

검찰이 2018년 처음으로 사형을 구형한 피고인은 어금니 아빠로 불리는 이영학이다. 지난해 130일 서울북부지법 형사합의 11(이성호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결심공판서 검찰은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상 강간 등 살인, 추행유인, 사체유기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영학에게 사형을 선고해달라고 요청했다.

영학은 2017930일 당시 14세였던 딸의 친구를 서울 중랑구 망우동 자신의 집으로 유인해 수면제를 먹여 재운 뒤 추행하고 다음날 낮 목졸라 살해했다.

거대 백악종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딸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으로 여러 차례 방송에 나왔던 그였기에 충격은 더 컸다.

검찰은 “(이영학이) 여중생의 귀에 대고 속삭였을 목소리를 생각하면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다분노의 감정으로 처벌할 수 없지만, 더 큰 피해를 막고 우리 사회의 믿음과 정의를 세우기 위해서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사형을 구형한 이유를 밝혔다.
 

▲ 법정 의사봉

이후 이영학의 항소로 진행된 항소심서도 사형을 구형했다. 검찰 측은 이영학이 극도로 잔혹한 범행을 저질렀고 시체를 유기했으며 사후 처리 방식 등을 보면 이영학이 주장하는 정신병의 근거는 없다고 일축했다.

또 개선의 여지도 없다면서 항소를 기각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을 파기하고 무기징역으로 감형했다. 그리고 지난해 1129일 대법원서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사형제 논란
뜨거운 감자

아내에게 수면제를 먹여 잠들게 한 뒤 약물을 주입해 숨지게 한 의사에게는 1심과 항소심서 모두 사형이 구형됐다. 2017920일 대전지법 서산지원 제1형사부(부장판사 한경환) 심리로 열린 결심공판서 검찰은 재혼한 아내의 도움으로 성형외과를 개업한 피고인이 아내 명의로 된 수억원의 재산을 가로채기 위해 아내를 살해하는 극단적인 범죄를 저질렀다고 판시했다.

이어 자신의 처방으로 수면제를 사고 외국서 사형을 집행할 때 사용하는 독극물을 함께 구매하는 등 치밀하게 계획한 범죄라며피고인의 죄질이 아주 불량하고 살해의 동기와 조사 과정의 태도 등 유족에게 씻을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 데 대해 법정 최고형이 불가피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원심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징역 35년을 선고했고 검찰은 항소했다.


지난해 316일 열린 항소심서도 검찰은 피고인은 결혼한 지 7개월 만에 아내 살해를 시도하고 미수에 그치자 4개월 만에 아내를 결국 살해했다극악무도한 범행을 한 피고인을 영원히 우리 사회서 격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수사 기관이 물증을 찾아내자 처벌을 덜 받으려 어쩔 수 없이 자백한 것이라며 의학지식을 악용해 잔인하게 살해하는 등 돈을 노린 계획적 범행이 명백하다고 엄벌을 요구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 역시 피고인에게 징역 35년을 선고했다.

지난해 4월에는 성매매를 거절당했다는 이유로 여관에 불을 질러 투숙객 7명을 숨지게 한 혐의(현주건조물방화치사)로 재판에 넘겨진 50대 남성 유모씨가 사형을 구형받았다.

지난해 42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2(재판장 성창호 판사) 심리로 열린 공판서 욕정을 채우지 못한 피고인이 분풀이를 위해 치밀하게 방화 계획을 세우고 불특정 다수가 숙박하는 여관에 불을 질렀다며 구형 이유를 밝혔다.

이어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생전에 느꼈을 공포와 고통, 가족들이 느낀 슬픔과 비통함을 고려한다면 죄책에 상응하는 선고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며 인간 존엄의 근간인 생명권을 침해한 점, 자기 책임을 줄이는 데 급급해 졸렬한 주장을 하며 반성하지 않는 점 등을 고려해달라고 구형 이유를 밝혔다.

검찰은 1심 재판부가 유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자 항소, 항소심서도 사형을 구형했다. 항소심서 재판부는 유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잔혹한 범죄
유가족 슬픔

20171025일 오후 730분께 경기 양평군 윤모씨의 자택 주차장서 윤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하고 지갑, 휴대전화, 승용차를 빼앗아 달아난 혐의로 구속 기소됐던 허씨에게도 사형이 구형됐다.

숨진 윤씨가 엔씨소프트 윤송이 사장의 부친이자 김택진 대표의 장인으로 알려지면서 관심을 끌었다. 허씨는 1심 결심공판서 금품과 차를 훔친 것은 인정하면서도 살인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하지만 검찰은 지난해 424피고인의 옷과 벨트 등에서 피해자의 혈흔과 DNA가 검출됐다피고인이 범행 후 살인’ ‘살인 사건’ ‘사건 사고등을 집중적으로 검색한 정황 등을 종합하면 피해자를 살해했다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피고인은 교화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사람으로 우리 사회서 영원히 격리할 필요가 있다하루아침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가족의 슬픔을 헤아려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1심 재판부는 검찰이 제기한 공소 사실을 토대로 허씨의 유죄를 인정하면서도 검찰의 사형 구형은 받아들이지 않고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검찰은 항소심서도 사형을 구형하면서 피고인이 죄를 뉘우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 본 사진은 해당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허씨는 항소심 최후진술서 검찰이 제출한 증거와 수사과정 등을 문제 삼으면서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무죄를 주장한 허씨와 사형을 선고해달라는 검찰의 항소 모두를 기각하면서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지난해 430일에는 재가한 어머니의 일가족을 살해하고 계좌서 돈을 빼내 뉴질랜드로 달아났다가 붙잡힌 김성관씨가 사형을 구형받았다.

그는 20171021일 오후 모친과 이부동생을 용인의 집에서 찔러 살해하고 체크카드 등을 강탈한 데 이어 계부도 흉기와 둔기를 사용해 살해한 뒤 차량 트렁크에 사체를 유기한 혐의를 받았다. 김씨는 범행 이후 계좌서 돈을 빼 아내와 두 딸을 데리고 뉴질랜드로 달아났다가 현지서 붙잡혀 한국으로 송환됐다.

피고인 극형 내려달라 요청해도
2017 년 이후 사형 확정선고 ‘0’

검찰은 1심서 피고인은 매우 잔혹한 방법으로 범행을 하고도 지금까지 괴로워하거나 죄책감을 느끼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고, 평소 자신에게 서운하게 했다는 등 피해자 탓만 하고 있다어떤 이유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범행을 했다는 것을 피고인이 알게 해야 한다고 구형 이유를 밝혔다. 1심 재판부는 김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고 검찰은 항소했지만, 결국 항소심서도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승강기를 타려고 기다리던 이웃 여성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30대 남성 강씨와 가요주점 여성 동업자를 둔기로 때리고 성폭행한 뒤 잔혹하게 살해한 50대 남성도 각각 지난해 11월과 12월 사형을 구형받았다.

강씨는 지난해 5월 부산시 연제구 연산동에 있는 다세대 주택 7층서 같은 층 주민 여성을 자신의 집으로 끌고 들어가 성폭행한 뒤 목 졸라 살해한 혐의를 받았다. 검찰은 단지 같은 건물에 산다는 점 말고는 어떠한 관련도 없는 피해자를 아무런 이유도 없이 납치해 잔인하고 포악한 방법으로 살해했다이는 아주 중대한 범죄이며 소위 말하는 묻지마 살인”이라고 말했다. 강씨는 1심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지난해 1221일 청주지법 형사 11(소병진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결심공판서 검찰은 가요주점 살인사건의 피고인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피해자가 실신한 상태서 불을 지르는 등 범행 수법이 매우 잔혹하다는 이유였다.
 

▲ 김성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 피해자는 둔기로 맞아 실신한 상태서 방화에 의해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 조사 과정서 성폭행 사실도 추가로 제기됐다. 피고인에 대한 선고 공판은 오는 25일 열릴 예정이다.

지난해 검찰이 사형을 구형한 사건에 대해 재판부는 대부분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검찰이 1심서 피고인에게 사형을 구형하면 재판부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그보다 낮은 형량을 선고하는 패턴을 보였다.

검찰은 법원의 판결에 불복, 항소심서도 사형을 내려달라고 요청했지만 사형이 확정 선고된 사건은 단 한 건도 없었다. 이영학만이 2015년부터 현재까지 1심서 사형 선고를 받은 유일한 피고인이다. 이영학 역시 항소심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1990년대 이후 법원 최종심서 단 한 건의 사형 선고도 나오지 않았던 해는 일곱 해로 1994, 2008, 2011, 2012, 2014, 2017, 2018년이다.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20175월 이후에도 역시 사형 확정 선고는 나지 않았다.

재판부 고민
무기징역 많아

이 같은 사례로 볼 때 사형 선고에 대한 재판부의 고민을 읽을 수 있다. 종로여관 방화 사건서 검찰은 1·2심서 모두 사형을 구형했지만 재판부는 무기징역을 선고하면서 문명사회를 지향하는 우리 사회가 사형 선고를 내릴 수 있는가라고 반문하며 대법원 판례를 봤을 때 사형에 처할 만한 사안에 이르지 않았다고 판단되고 사형 선고를 내린다 해서 피해자나 유족에게 완전히 위로가 되는지 알 수 없다고 양형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양평 살인사건의 경우에도 재판부는 피고인의 범행을 충분히 인정하면서도 사형은 인간의 생명을 영원히 박탈하는 극히 예외적인 형벌이라며 이 사건이 누구라도 사형을 인정할 만한 특별하고 객관적인 사정이 분명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양형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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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갈수록 증폭되는 평택 논란 이제야 공개된 소소한 흔적 쉽게 거두지 못하는 의심 의미심장 세력 교체 과정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소문이 어느덧 사실처럼 인식되고 있다. 명확한 물증이 없는 가운데 파편적인 의혹이 덧씌워진 양상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으며, 흐름을 파악할 만한 유의미한 흔적이 이제야 겨우 나왔을 뿐이다. 증폭된 의혹 뒤편에서 여전히 진실은 빼꼼히 잘 보이지 않는다. 2010년 9월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황해경제자유구역에 자리 잡은 유일한 농산물 가공 업체로, 그간 심심치 않게 밀수 의혹을 받아왔다. 가공 목적으로 수입한 농산물을 가공 없이 시중에 유통시켜 엄청난 차익을 봤다는 꼬리표가 뒤따랐다. 의혹하는 눈초리 선라이즈에프앤티가 취급했던 대다수 농산물이 고관세 품목이라는 점은 이 같은 의혹을 부채질했다. 그간 선라이즈에프앤티는 ▲녹두 ▲콩나물콩 ▲다대기(혼합양념) ▲생강 ▲마늘 ▲참깨 ▲팥 ▲서리태 등 높은 세율이 붙는 고관세 품목을 주로 수입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 예로 콩나물콩의 경우 그대로 들여와 국내에 유통하면 487% 관세가 부과되지만, 콩나물 재배 목적으로 수입하면 27%만 반영된다. 평택세관에 몸담았던 다수의 전직 세관공무원이 기업 출범 및 운영에 관여했다는 점도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었다. 심지어 선라이즈에프앤티 이사진에 포함됐던 특정 세관 출신 임원이 한때 다이아몬드 밀수 사건에 이름이 오르내린 사례도 존재한다. 수년 전부터는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동일선상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해졌다. 선라이즈에프앤티의 밀수 의혹을 수차례에 걸쳐 제기했던 공익 제보자 이성열씨가 재판에 연루되는 과정에서 김건희씨의 모친인 최은순씨가 거론됐던 게 이 같은 흐름에 불을 지핀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정치평론가인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이 최근 ‘평택항’을 언급하자,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은 사실처럼 받아들여질 정도가 됐다. 장 소장은 SBS라디오 <김태현의 뉴스쇼>가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김건희씨 일가의 수상한 물건 수입 의혹과 관련한 이야기를 전했다. 장 소장은 “최은순씨가 주인으로 있는 농수산물 수입업체에서 이상한 것을 들고 오려고 하다가 걸려서 (김건희) 오빠와 김건희씨가 그것을 무마시키려고 여러 가지 이상한 (일들을 했다고 한다)”며 “어떤 물건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부적절한 물건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급기야 선라이즈에프앤티의 폐업이 알려지자, 의혹은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양상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국세청 사업자 과세 유형 조회 결과 지난 10일자로 폐업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폐업자로 조회된 지난 10일은 김건희 특검법이 공포된 시기와 맞물린다. 물론 꾸준히 의혹이 제기된 것과 별개로,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을 입증할 만한 확실한 단서는 없는 상황이다. 특히 주주명부가 지금껏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는 게 의혹과 진실을 구분 짓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일요시사>가 최초 입수한 주주명부는 간접적으로나마 의문을 풀 수 있는 열쇠로 작용할 여지를 남긴다. 의문 해소 첫 단추 2022년 10월 작성된 ‘카리나에프앤티(선라이즈에프앤티에서 2020년 9월 상호 변경) 주주명부’를 검토한 결과 주주는 총 17명, 발행주식은 91만8400주(1주당 5000원)로 확인됐다. 2010년 9월 자본금 5억원으로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수차례 증자를 거쳤고, 해당 시기에 자본금을 45억9200만원으로 늘린 상태였다. 일단 주주명부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대신 경영권 교체 과정이나마 엿볼 수 있을 뿐이다. 법인 등기와 주주명부를 교차 검증한 결과를 토대로 추정하면, 표면상 선라이즈에프앤티 지배 세력은 ‘전직 세관공무원(설립~2018년 중순)→지엔티에이치(~2020년 중순)→킴스에O엔O(~2022년 초순)→동OO앤에스(~2025년 6월)’ 순으로 변경된 흐름이다. 첫 번째 경영권 교체는 ‘펀딩하이 연체 사건’과 함께 발생했다. 펀딩하이는 중국·동남아시아에서 농산물을 수입하는 업체에 돈을 빌려 주고, 투자자들에게 15% 이상 수익을 보장하는 펀딩 상품으로 인기를 끌던 P2P 업체였다. 그러나 펀딩하이는 2018년 6월20일 ‘마늘 시즌2-17차(모집 금액 3억원, 차주 승리산업)’ 펀딩 상품의 연체를 시작으로 ▲세척 당근 시즌2-18차(모집금액 5억원, 차주 지엔티에이치) ▲김치 펀딩 2차(모집금액 1억2000만원, 차주 상아농산) ▲번데기 펀딩 1차(모집금액 1억8000만원, 차주 월량완코리아) 등에서 차주의 투자금 상환 실패를 알렸다. 연체 금액은 ▲지엔티에이치 29억원 ▲승리산업 33억원 ▲상아농산 11억8000만원 ▲월량완코리아 1억8000만원 등 총 75억6000만원에 달했다. 급기야 펀딩하이는 연체율 100%를 찍은 채 영업을 중단했다. 상환 실패 이후 차주 사이에 관련성이 드러났다. 지엔티에이치와 승리산업에서 대표이사였던 윤석호씨는 두 회사 지분을 각각 60%, 100% 보유 중이었다. 또한 월량완코리아 사내이사로도 등재돼있었다. 연체가 발생한 직접적인 사유는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대상으로 한 지분 투자였다. 지엔티에이치는 펀딩받은 금액을 농산물을 들여오는 데 쓰지 않고,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매입하는 데 활용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이를 계기로 지엔티에이치는 2018년 6월경 주식 16만1400주를 확보한 선라이즈에프앤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확보한 이후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명단에 변화가 목격됐다. 선라이즈에프앤티 초창기부터 함께했던 사내이사와 부친에 이어 회사에 몸담았던 대표이사를 대신해 지엔티에이치가 끌어들인 얼굴들이 등기임원 자리를 꿰찼다. 정작 지엔티에이치는 연체 발생 넉 달 후인 2018년 10월 보유 중이던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에 넘겼다. 펀딩하이 투자자들과의 소송전이 불거지자 중국에 본거지를 둔 우군에 주식을 양도한 모양새였다. 거듭되는 교체 수순 두 번째 경영권 교체는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의 주체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충청권에 본적을 둔 킴스에O엔O는 2022년 10월 기준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10만8200주를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의 친인척이 보유한 주식 13만2800주를 합산하면 우호 주식은 24만주 안팎이다. 기존 지엔티에이치 측 우호 세력(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 16만1400주+마송재 3만주)과 비교해 5만주 가까이 격차를 벌린 셈이다.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대량 매입한 시기는 2020년 중후반으로 추정된다. 이 무렵 선라이즈에프앤티 등기임원 구성이 크게 요동쳤다는 점을 통해 짐작 가능한 사안이다. 실제로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발휘하던 2018년 7월 대표이사에 선임됐던 김정일 대표는 2020년 3월 해임됐다. 2018년 9월 취임했던 또 다른 대표이사 역시 당해 10월을 넘기지 못한 채 사임했다. 공석이 된 주요 등기임원 자리는 킴스에O엔O 측 인물로 채워졌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가 2020년 10월 선라이즈에프앤티 대표이사로 취임했고, 해당 시기에 사외이사, 감사 등 등기임원 전원이 새 얼굴로 교체됐다. 킴스에O엔O에 이어 지배 세력으로 등장한 곳은 식료품 제조업을 영위하는 동OO앤에스였다. 이 회사는 2022년 10월 기준 주주명부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지분율 44.64%)를 보유한 단일 최대주주로 등재돼있다. 여기에 우호 세력(글로O포O 1만주+김성수 2만주+김종봉 788주)의 주식을 합산하면 지분율은 50%에 육박한다. 동OO앤에스는 사실상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인수하고자 만든 업체로 비쳐질 여지를 남긴다. 2022년 2월 출범 당시 자본금 10억원짜리였던 동OO앤에스는 불과 두 달 만인 2022년 4월14일 자본금을 21억원으로 두 배 이상 키웠다. 공교롭게도 동OO앤에스가 설립 이후 8개월 사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투입한 금액은 총 20억5000만원이었다. 이는 동OO앤에스 자본금 21억원이 선라이즈 주식 41만주를 매입하는 데 쓰였을 가능성에 주목하게 만든다. 게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기존 61만8400주였던 발행주식을 2022년 4월22일 91만8400주로 30만주 확대했다. 동OO앤에스가 자본금을 21억원으로 확충한 지 8일 만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가 발행주식을 30만주 늘린 덕분에 동OO앤에스는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주식 41만주를 확보한 형국이다. 동OO앤에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지배하는 위치로 올라설 무렵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구성은 또 한 번 바뀌었다. 동OO앤에스 대표이사가 사내이사, 글로O포O 대표이사가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렸고, 김성수 대표이사가 신규 선임됐다. 이후 김성수 대표는 선라이즈에프앤티 폐업 전까지 자리를 지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되짚어보는 연결고리 한편 일각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는 지엔티에이치 측이 지배력을 상실한 이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나마 킴스에O엔O 혹은 동OO앤에스와의 연관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관여한 직접적인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만약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를 2021년 이후로 특정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항간에 떠도는 마약 적발 여부는 2022년 근방으로 얘기가 오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heaty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