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 소송 13년간의 기록

받을 걸 받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긴 시간이었다. 대법원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전범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서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 사이 10대에 일본으로 끌려갔던 소년들은 노인이 됐다. 몇몇 피해자들은 하늘 위에서 소식을 듣게 됐다. <일요시사>가 강제징용 재판의 이모저모를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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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조선인은 일제의 국가총동원법에 따라 강제로 토목공사장, 광산 등에 끌려갔다. 1937년 중일전쟁 이후 1945년까지 강제 동원된 조선인은 113만서 146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가혹한 노동 현장에 내던져졌다. 그러나 일본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그 어떤 보상도 외면했다.

1937∼1945년
끌려간 사람들

일본 전범기업이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민사상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한국 대법원서 나왔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1997년 일본서 처음 소송을 낸 이후로 21, 20051심 법원에 소송이 접수된 지 13년 만이다. 1945년 광복 이후로 계산하면 무려 7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는 지난달 30일, 이춘식(94) 할아버지 등 19411943년 일제강점기에 강제징용된 피해자 4명이 일본 전범기업인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 사건서 피고의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원심서 나온 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각각 1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확정했다. 그러면서 강제동원 위자료 청구권은 한일 청구권협정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또 단순 미지급 임금이나 보상금이 아니라 일본 정부와 기업의 불법 행위에 대한 위자료 청구권은 한일 청구권협정에 처음부터 포함되지 않는다고 해석했다.

대법원은 피해자들이 일본에서 제기한 동일한 소송에 대해 일본 최고재판소가 내린 패소 판결을 정면으로 뒤집은 것은 물론, 당시 판결의 근거가 됐던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 대한 해석도 전면으로 부정했다. 쟁점은 한일 청구권협정에 따라 일본으로부터 받은 무상 3억달러, 차관 2억달러 등의 돈에 강제징용 피해 배상금이 포함돼있는지 여부였다.

당시 협정문에는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고 적혀 있고, ‘모든 청구권에 대해 어떤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는 문구도 들어갔다. 이번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일본 정부는 물론 한국 정부와 학계서도 청구권협정에 강제징용으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권이 포함된다고 봐왔다.

해배상 청구 1명만 생존
재상고심 끝에 배상 판결

하지만 대법원서 한일 청구권협정이 일본의 불법적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샌프란시스코 조약 4조에 근거해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관계를 정치적 합의로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또 협상 과정서 일본 정부가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고 강제동원 피해의 법적 배상을 원천 부인하면서 한반도 지배 성격에 관해 양국이 합의에 이르지 못한 만큼 적용대상이 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김명수 대법원장 등 7명의 대법관은 다수의견을 냈다. 이기택 대법관은 별개의견을 통해 개인청구권 부분에 대해선 2012년 대법원 판결이 결론을 낸 상황서 이를 변경한 예외적인 상황이 없었기 때문에 기속력에 따라 추가 심리 자체가 필요 없이 상고 기각됐어야 한다고 밝혔다.
 

▲아베 일본 총리

김소영·이동원·노정희 대법관 역시 별개의견을 통해 다수의견과 같은 결론을 내리면서도 판단을 조금 달리했다. 이들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한일협정 적용대상에 포함돼야 한다면서도 피해자들의 개인 청구권이 한일협정만으로 소멸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권순일·조재연 대법관은 반대의견을 냈다. 두 사람개인청구권이 청구권협정에 의해 바로 소멸되거나 포기됐다고 할 수는 없지만 소송으로 이를 행사하는 것은 제한되게 됐다피해자들이 일본 국민인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국내서 강제동원으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권 소송을 제기하는 것 역시 제한된다고 설명했다.

청구협정권
해석 따라

대법원의 이번 판결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소송 제기 가능성이 높아졌다. 강제징용 문제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사람은 최소 14만명으로 추정된다. 또 이미 강제징용 관련 소송을 제기한 962명의 경우 승소 확률이 커졌다. 이 같은 결과를 얻기까지 여운택(사망), 신천수(사망), 김규식(사망), 이춘식 등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은 길고 긴 법정싸움을 벌여야 했다.

이춘식 할아버지는 1941년 당시 대전시장이 일본에 보내려 모은 보국대에 뽑혔다. 보국대는 일제가 조선인 학생, 여성 등을 동원하기 위해 조직한 단체다. 조선에서보다 좋은 조건일 것이라는 기대로 건너간 일본이었다.

하지만 일은 고됐고 식사는 부실했다. 죽어라 일했지만 월급은 받지 못했고 1945년 일본 패망 후에도 상황은 여전했다. 여운택 할아버지와 신천수 할아버지의 삶도 다르지 않았다. 이들은 제철소서 일하는 동안 식사를 제대로 제공받지 못하고, 월급을 받지 못하는 등 어느 것 하나 온전하게 얻지 못했다.

이후 1997년 여운택·신천수 할아버지는 일본 오사카 지방재판소에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강제징용 손해배상·미지급 임금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20013월 오사카 지방재판소는 구일본제철의 채무를 신일본제철이 승계했다고 볼 수 없다며 여운택 할아버지 등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200211월 오사카 고등재판소 역시 이들의 항소를 기각했200310월 일본 최고재판소도 원고의 상고를 기각했다.

20052월에는 여운택·신천수·김규식·이춘식 할아버지가 서울중앙지법에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강제징용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진행했다. 20058월 당시 한국 정부는 청구권협정과 관련해 일본 정부와 군대의 반인도적 불법 행위는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된 것이 없고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그대로 남아있다고 공식의견을 표명했다.
 

강경화 외교부장관

그러나 3년 뒤인 20084월 서울중앙지법은 일본 판결이 우리나라서 효력이 인정되고, 신일본제철이 구일본제철의 채무를 승계했다고 볼 수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듬해 7, 서울고등법원 역시 원고의 항소를 기각했다.

20125월 대법원서 반전이 일어났다. 대법원은 일본 판결은 헌법 취지에 어긋나고 신일본제철은 구일본제철을 승계한 기업이라고 판단,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당시 대법원은 일본의 확정판결은 강제동원 자체가 불법이라고 보는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가치와 정면충돌해 국내에서 효력이 인정되지 않으며,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개인 청구권까지 소멸됐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 같은 판단을 근거로 서울고법은 2013년 파기환송된 사건에 대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각 1억원씩 총 4억원의 위자료와 그에 따른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후 대법원은 올해 7월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 지난달 30일 신일본제철의 상고를 기각하며 최종 결론을 내렸다.


사법 농단
대표 사건?

그 사이 소송을 제기한 피해자 4명 가운데 이춘식 할아버지를 제외한 세 사람은 세상을 떠났다. 이춘식 할아버지는 대법원 승소 판결 이후 소감을 밝히는 자리서 처음 재판은 넷이 했는데 이제 혼자 남아서 마음이 슬프고 서운하다고 말했다. 이어 “(다른 원고들이) 같이 선고를 들었으면 엄청 기뻤을 텐데 나 혼자 들어 눈물이 난다고 흐느꼈다.

대법원 최종 판결에도 불구하고 실제 배상까지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신일본제철 측이 대법원 판결에 승복한다면 배상은 이뤄질 수 있다. 또 신일본제철 측이 한국에 재산을 갖고 있다면 강제 집행도 가능하다.

신일본제철 측이 지난 2012년 주주총회서 사법부의 판결을 수용할 의사를 밝힌 적이 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지난달 31일 일본 시민단체인 일본제철 전 징용공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에 따르면 당시 신일본제철의 사쿠마 소이치로 상무는 2012626일에 개최한 주주총회서 판결을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취지의 언급을 했다. 그의 발언은 한 주주가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배상금을 지불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만약 소송서 진다면 지불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하지만 일본은 대법원 판결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앞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대법원 판결 전 국제법에 비춰 있을 수 없는 판단이라고 말했다. 일본 NHK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아베 총리는 국회서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질의에 징용 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밝혔다.


고노 다로 외무상은 판결 이후 항의 담화를 발표한 데 이어 이수훈 주일대사를 외무성으로 불러 직접 강하게 항의했다. 고노 외무상은 담화서 이번 판결을 두고 매우 유감이라며결코 수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판결은 한일 우호관계의 법적 기반을 근본부터 뒤엎는 것이라며 한국에 국제법 위반상태를 시정하는 것을 포함해 적절한 조치를 즉시 강구하길 강하게 요구한다고 밝혔다.
 

▲강제 징용 피해 선고하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지난달 31일, 강경화 외교부장관은 고노 외무상과 전화통화를 갖고 대법원의 이번 판결에 대한 양국의 입장을 교환했다.

외교부에 따르면 고노 외무상은 전날 대법원 판결에 우려를 표시하는 등 일본 정부의 입장을 전달했다. 강 장관은 우리 정부는 사법부 판단을 존중하고, 이번 판결과 관련된 사항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토대로 제반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대응방안을 마련해나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대법원서 5년 허송세월
일본 반응 “매우 유감 ” 

이번 대법원 판결은 외교 문제뿐만 아니라 국내서도 논란의 중심에 있다. 강제징용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이 양승태 사법부 재판거래 의혹의 대표적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파기환송심 재판부의 판결 이후 5년 가까이 선고를 하지 않았다.

상고심서 파기환송된 사건이 재상고심에 올라가면 일반적으로 그대로 확정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서 대법원이 고의로 심리를 끌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이 같은 의혹은 지난 5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조사하던 특별조사단의 조사 결과가 발표된 이후 본격적으로 제기됐다.

당시 특별조사단은 법원행정처 컴퓨터 하드디스크서 청와대 관심사가 한일 우호관계의 복원이라며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청구 사건에 대한 청구 기각 취지의 파기환송 판결 기대할 것으로 예상이라고 쓰여 있는 문건을 발견했다.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하드디스크서 이를 뒷받침하는 문서가 추가로 속속 나오고 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손해배상에 부정적인 외교부 입장을 재판에 반영했으니 법관 해외 파견을 요구하자는 취지의 문건이 대표적이다.

검찰은 지난 7월 이 같은 의혹에 대해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소송을 대리한 법무법인 해마루의 김모 변호사는 당시 검찰 참고인 조사서 대법원이 두 번째 심리하는 사건인 데다 쟁점이 처음과 다르지 않아 심리불속행 기각 대상인데도 결론을 5년째 미루고 있다소송이 길어지면서 원고 중 일부가 이미 세상을 떠났고, 생존한 피해자들도 힘들어하고 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은 대법원 판결에 대해 여야를 막론하고 환영의 뜻을 나타내면서도 세부적으로 강조하는 부분은 미묘하게 달랐다.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판결 이후 일본 정부와 기업은 공식적인 사과와 법적 배상에 나서달라고 말했다.
 

▲영화 '군함도' 스틸컷

이어 재판이 길어진 배경에는 박근혜 청와대와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거래 의혹이 있다특별재판부를 통한 사법 농단 사태의 진실규명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강조하면서 사법 농단 사태를 부각했다.

민주평화당 김정현 대변인 역시 일본 정부는 역사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일제 치하 반인륜범죄에 대한 사과를 촉구한다”며 특히 이번 승소 판결은 박근혜 정권하에서 저질러진 사법 농단의 근인을 척결해야 한다는 점에서 지당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유한국당 윤영석 수석대변인은 일본이 말하는 양국의 미래지향적 관계 구축을 위해서는 더 이상 망언과 몰염치로 버틸 것이 아니라 일제강점기 반인권적 불법행위에 대해 유가족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와 반성이 선행돼야 한다고 논평했다.

정치권 환영
미묘한 차이

바른미래당 김삼화 수석대변인은 정부는 대법원 판결이 내려진 만큼 신속히 일본 정부, 해당 기업의 사과와 어르신의 피해 배상금을 받아내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며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정의당 최석 대변인은 일본은 이제야말로 일제강점기 당시 자신들이 저지른 모든 죄악을 참회하며, 피해자들에게 진솔한 사과를 해야 할 것이라고 논평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사법부-외교부-김앤장 시민단체 제기한 의혹은?

대법원의 선고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노동의 대가를 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승소 판결을 받기까지의 과정은 험난했다. 특히 신일본제철 소송대리인으로 참여한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의 벽은 높았다.

최근 김앤장이 사법부와 행정부를 쥐락펴락했다는 의혹이 속속 사실로 확인되는 모양새다.

KBS에 따르면 2014년 김앤장은 대법원에 신일본제철의 상고이유서를 제출했다. 그로부터 2년 뒤 김앤장은 대법원에 외교부 의견서를 빨리 받아달라고 하는데, 외교부에서 제출한 의견서는 상고이유서와 대부분 일치했다.

이는 지난 7월 여러 시민단체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폭로한 의혹과 비슷하다. 당시 그들은 강제동원 피해자의 목숨을 대가로 한 사법부와 외교부, 김앤장의 추악한 유착 의혹에 대해 충격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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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국방부 문건이 대규모로 파쇄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조치는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의 지시로 이뤄졌다. 오 전 기획관은 검찰 특수본과 재판서 정보사와 수사2단 인사안의 문제점을 증언했던 인물이다. 자신이 비상계엄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수사에 협조한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올해 초 신년맞이 대청소라면서 문서를 대량으로 파쇄했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국방부 직원들의 말이다. 파쇄된 문건들은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자료라고 한다. 지시자는 오영대 전 국방부 인사기획관이다. 검찰 수사에 협조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으나 실상은 다르다는 게 군 내부자들의 주장이다. 뭘 숨기나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말 취임하면서 시작한 첫 번째 군 개혁은 인사다. 신임 인사기획관에 일반 공무원 출신인 이인구 군사시설기획관을 임용한 건 안 장관이 강조해 왔던 ‘군 문민통제’와도 맞닿아 있다. 인사기획관은 본래 예비역 장성이 맡아왔다. 이 신임 기획관의 전임자였던 오 전 기획관도 예비역 준장 출신이다. 군 내부에서는 국방부에 여전히 12·3 내란 사태에 협조한 군인들이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핵심으로 인사기획관실의 총괄과이자 인사기획관의 일정, 예산 등을 모두 관리하는 인사기획관리과가 언급된다. 다수의 국방부 관계자들은 “오 전 기획관은 물러났지만 책임져야 할 다수의 인물이 아직 자리를 보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부서의 간부들은 전부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다. 과장 김모 대령은 오 전 기획관이 대령이었을 때 소령으로 근무했고, 총괄 이모 중령은 오 전 기획관이 특전사 여단장을 역임했던 1공수여단서 중대장과 707중대장을 거쳤다. 장군인사팀장 김모 대령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수도방위사령관으로 근무했던 시절 비서실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김 전 장관과 가깝거나 육사 출신인 이들이 국방부 인사의 핵심부서인 인사기획관리과에 포진하면서 계엄 실행을 위한 보직 이동이 이뤄진 셈이다. 김 전 장관은 실제 대통령경호처장일 때부터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과 군 인사에 대해 논의했다. 직무에서 배제되지 않은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장관이 모든 책임을 오 전 기획관에게 묻는 형식으로 퇴직을 시켰으니 우리는 지시를 받아 어쩔 수 없이 한 것처럼 조용히 지내면서 정부초기 개혁의 소나기만 피하면 진급 가능’이라며 서로서로 쉬쉬하고 있다고 한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내란 이후인 지난해 12월 중순 오 전 기획관의 지시에 따라 문건 파쇄를 계획했다. 김 전 장관이 물러난 이후 인사기획관리과장 김 대령 및 총괄인 이 중령 외에는 계획되지 않은 대면보고는 금지했고 내부 보안에 심혈을 기울였다. 인사과 간부들 계엄 실패 후 12월 계획···1월 파쇄 “지시자는 검찰 수사 응했던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 한 달여 뒤 이 중령은 모든 과에 ‘신년맞이 대청소’를 하라고 전파했다. TF 자리 배치와 오래된 문건을 정리한다며 유독 인사기획관리과만 복도로 책상을 빼고, 대량 세절이 가능한 세절실을 예약해 엄청난 양의 문서들을 파쇄했다. 여기엔 내란 핵심 파일도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안 장관은 이와 관련해 국회에서 오 전 기획관에게 여러 차례 질문한 바 있다. 당시 오 전 기획관이 당황해하며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퍼지기도 했다. 이 중령은 동영상을 보며 웃는 직원들의 명단과 안 장관에게 제보한 인물을 색출하기 위해 탐문 활동을 벌여 오 전 기획관에게 추정해 보고했다. 이들은 모두 오 전 기획관으로부터 승진추천, 성과상여금, 각종 포상 등 인사상 불이익을 본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이 문건을 파쇄한 이유는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내란 당일 오후 10시가 넘은 시각임에도 퇴근하지 않고 사무실에 있던 오 전 기획관의 지시를 받은 이 중령은 각 과의 총괄 담당자들을 소집해 ‘계엄 선포가 됐는데 선제적으로 인사 관련 조치를 왜 안 하냐’ ‘합참에는 계엄사령부가, 지작사령부에는 지역계엄사령부가 곧 창설될 텐데 각 군 본부 및 지작사와 인사 지침을 협의해 계엄령 취지에 맞게 배포하라’고 강조했다. 특히 오 전 기획관은 계엄 해제 결의안이 국회 본회의 테이블을 통과했음에도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서 이 중령에게 “(계엄이) 해제되긴 했는데 다시 시행될 수도 있으니 빨리 계엄사 창설 지원을 위한 인사 조치를 완성하고 지작사 병력에 대한 휴가 지침 및 통제 등 건의 사항을 받아보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 전 기획관은 내란 직전까지 김 전 장관의 의중에 따라 군 인사를 반영했다. 최근 내란 특검팀이 군 장성급 인사 자료 확보에 나선 것도 이에 관해 들여다보기 위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검팀은 최근 국방부 장군인사팀과 육군본부 장군인사실 등을 압수수색해 해당 부서 내 인사 관련 파일 등을 확보했다. 정치권에선 지난 2023년 11월과 지난해 4월 이례적인 인사가 이뤄졌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진급에 절박한 군 인사들을 계엄 실행 세력으로 활용했단 의혹이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윤석열정부 장군 인사는 특이하고, 이례적인 경우가 유독 많았다”며 “인사를 통해 군을 장악하고, 내란을 준비했다는 의혹 관련 특검의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3차 계엄 대비 문건 없애” 증거 인멸 국회서 해제 불구 지작사와 인사 논의?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은 지난 2023년 11월 인사에서 소장에서 중장으로 진급했다. 박안수 전 계엄사령관은 ‘75주년 국군의 날 행사기획단장 겸 제병지휘관’ 등 한직에서 2023년 10월 육군참모총장에 발탁됐다. 지난해 4월엔 지휘부에 이어 작전본부 인사가 이어졌다. 원천희 당시 육군 소장이 4차 진급으로 합참 정보본부장으로 승진했고, 이승오 소장은 군단장을 거치지 않고 합참 작전본부장으로 진급했다. 안찬명 당시 육군22사단장은 임명 5개월 만에 합참 작전부장으로 보직을 옮겼다. 통상 사단장은 1년 반~2년가량 보직을 맡는다. 군 안팎에서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왔던 이유다. 경질 위기이던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은 유임됐다. 그는 지난해 6월 정보사 군무원의 블랙요원 명단 국외 유출 사건 및 박민우 전 정보사 100여단장과의 갈등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신원식 전 안보실장은 지난해 8월 국회에서 “후속 조치를 강하게 할 생각”이라고 언급했지만, 다음 달 본인이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는 군 관계자에게서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이 장군들 인사에 대해 논의했고 오 전 기획관에게 전달됐다”는 진술을 확보한 바 있다. 위기감을 느낀 오 전 기획관은 특수본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기 시작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오 전 기획관의 특수본 진술조서를 보면 그는 “신원식 (전 국방부) 장관이 저와 원천희 국방부 정보본부장에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보직해임·정보사령관 교체 검토를 지시했으나 지난해 9월6일, 김 전 장관이 취임하면서 문 전 사령관에 대한 ‘현 보직 유지’를 지시했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이해하기 어려운 인사였다”고 했다. 앞뒤 달랐다 오 전 기획관은 “(문 전 사령관이 박 준장으로부터 고소당한 혐의가)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지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인사 조치는 없었다”며 “공론화된 문제고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는데도 이렇게 유야무야 넘어가는 일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