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 소송 13년간의 기록

받을 걸 받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긴 시간이었다. 대법원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전범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서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 사이 10대에 일본으로 끌려갔던 소년들은 노인이 됐다. 몇몇 피해자들은 하늘 위에서 소식을 듣게 됐다. <일요시사>가 강제징용 재판의 이모저모를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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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조선인은 일제의 국가총동원법에 따라 강제로 토목공사장, 광산 등에 끌려갔다. 1937년 중일전쟁 이후 1945년까지 강제 동원된 조선인은 113만서 146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가혹한 노동 현장에 내던져졌다. 그러나 일본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그 어떤 보상도 외면했다.

1937∼1945년
끌려간 사람들

일본 전범기업이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민사상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한국 대법원서 나왔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1997년 일본서 처음 소송을 낸 이후로 21, 20051심 법원에 소송이 접수된 지 13년 만이다. 1945년 광복 이후로 계산하면 무려 7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는 지난달 30일, 이춘식(94) 할아버지 등 19411943년 일제강점기에 강제징용된 피해자 4명이 일본 전범기업인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 사건서 피고의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원심서 나온 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각각 1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확정했다. 그러면서 강제동원 위자료 청구권은 한일 청구권협정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또 단순 미지급 임금이나 보상금이 아니라 일본 정부와 기업의 불법 행위에 대한 위자료 청구권은 한일 청구권협정에 처음부터 포함되지 않는다고 해석했다.

대법원은 피해자들이 일본에서 제기한 동일한 소송에 대해 일본 최고재판소가 내린 패소 판결을 정면으로 뒤집은 것은 물론, 당시 판결의 근거가 됐던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 대한 해석도 전면으로 부정했다. 쟁점은 한일 청구권협정에 따라 일본으로부터 받은 무상 3억달러, 차관 2억달러 등의 돈에 강제징용 피해 배상금이 포함돼있는지 여부였다.

당시 협정문에는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고 적혀 있고, ‘모든 청구권에 대해 어떤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는 문구도 들어갔다. 이번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일본 정부는 물론 한국 정부와 학계서도 청구권협정에 강제징용으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권이 포함된다고 봐왔다.

해배상 청구 1명만 생존
재상고심 끝에 배상 판결

하지만 대법원서 한일 청구권협정이 일본의 불법적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샌프란시스코 조약 4조에 근거해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관계를 정치적 합의로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또 협상 과정서 일본 정부가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고 강제동원 피해의 법적 배상을 원천 부인하면서 한반도 지배 성격에 관해 양국이 합의에 이르지 못한 만큼 적용대상이 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김명수 대법원장 등 7명의 대법관은 다수의견을 냈다. 이기택 대법관은 별개의견을 통해 개인청구권 부분에 대해선 2012년 대법원 판결이 결론을 낸 상황서 이를 변경한 예외적인 상황이 없었기 때문에 기속력에 따라 추가 심리 자체가 필요 없이 상고 기각됐어야 한다고 밝혔다.
 

▲아베 일본 총리

김소영·이동원·노정희 대법관 역시 별개의견을 통해 다수의견과 같은 결론을 내리면서도 판단을 조금 달리했다. 이들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한일협정 적용대상에 포함돼야 한다면서도 피해자들의 개인 청구권이 한일협정만으로 소멸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권순일·조재연 대법관은 반대의견을 냈다. 두 사람개인청구권이 청구권협정에 의해 바로 소멸되거나 포기됐다고 할 수는 없지만 소송으로 이를 행사하는 것은 제한되게 됐다피해자들이 일본 국민인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국내서 강제동원으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권 소송을 제기하는 것 역시 제한된다고 설명했다.

청구협정권
해석 따라

대법원의 이번 판결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소송 제기 가능성이 높아졌다. 강제징용 문제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사람은 최소 14만명으로 추정된다. 또 이미 강제징용 관련 소송을 제기한 962명의 경우 승소 확률이 커졌다. 이 같은 결과를 얻기까지 여운택(사망), 신천수(사망), 김규식(사망), 이춘식 등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은 길고 긴 법정싸움을 벌여야 했다.

이춘식 할아버지는 1941년 당시 대전시장이 일본에 보내려 모은 보국대에 뽑혔다. 보국대는 일제가 조선인 학생, 여성 등을 동원하기 위해 조직한 단체다. 조선에서보다 좋은 조건일 것이라는 기대로 건너간 일본이었다.

하지만 일은 고됐고 식사는 부실했다. 죽어라 일했지만 월급은 받지 못했고 1945년 일본 패망 후에도 상황은 여전했다. 여운택 할아버지와 신천수 할아버지의 삶도 다르지 않았다. 이들은 제철소서 일하는 동안 식사를 제대로 제공받지 못하고, 월급을 받지 못하는 등 어느 것 하나 온전하게 얻지 못했다.

이후 1997년 여운택·신천수 할아버지는 일본 오사카 지방재판소에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강제징용 손해배상·미지급 임금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20013월 오사카 지방재판소는 구일본제철의 채무를 신일본제철이 승계했다고 볼 수 없다며 여운택 할아버지 등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200211월 오사카 고등재판소 역시 이들의 항소를 기각했200310월 일본 최고재판소도 원고의 상고를 기각했다.

20052월에는 여운택·신천수·김규식·이춘식 할아버지가 서울중앙지법에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강제징용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진행했다. 20058월 당시 한국 정부는 청구권협정과 관련해 일본 정부와 군대의 반인도적 불법 행위는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된 것이 없고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그대로 남아있다고 공식의견을 표명했다.
 

강경화 외교부장관

그러나 3년 뒤인 20084월 서울중앙지법은 일본 판결이 우리나라서 효력이 인정되고, 신일본제철이 구일본제철의 채무를 승계했다고 볼 수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듬해 7, 서울고등법원 역시 원고의 항소를 기각했다.

20125월 대법원서 반전이 일어났다. 대법원은 일본 판결은 헌법 취지에 어긋나고 신일본제철은 구일본제철을 승계한 기업이라고 판단,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당시 대법원은 일본의 확정판결은 강제동원 자체가 불법이라고 보는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가치와 정면충돌해 국내에서 효력이 인정되지 않으며,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개인 청구권까지 소멸됐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 같은 판단을 근거로 서울고법은 2013년 파기환송된 사건에 대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각 1억원씩 총 4억원의 위자료와 그에 따른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후 대법원은 올해 7월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 지난달 30일 신일본제철의 상고를 기각하며 최종 결론을 내렸다.


사법 농단
대표 사건?

그 사이 소송을 제기한 피해자 4명 가운데 이춘식 할아버지를 제외한 세 사람은 세상을 떠났다. 이춘식 할아버지는 대법원 승소 판결 이후 소감을 밝히는 자리서 처음 재판은 넷이 했는데 이제 혼자 남아서 마음이 슬프고 서운하다고 말했다. 이어 “(다른 원고들이) 같이 선고를 들었으면 엄청 기뻤을 텐데 나 혼자 들어 눈물이 난다고 흐느꼈다.

대법원 최종 판결에도 불구하고 실제 배상까지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신일본제철 측이 대법원 판결에 승복한다면 배상은 이뤄질 수 있다. 또 신일본제철 측이 한국에 재산을 갖고 있다면 강제 집행도 가능하다.

신일본제철 측이 지난 2012년 주주총회서 사법부의 판결을 수용할 의사를 밝힌 적이 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지난달 31일 일본 시민단체인 일본제철 전 징용공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에 따르면 당시 신일본제철의 사쿠마 소이치로 상무는 2012626일에 개최한 주주총회서 판결을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취지의 언급을 했다. 그의 발언은 한 주주가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배상금을 지불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만약 소송서 진다면 지불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하지만 일본은 대법원 판결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앞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대법원 판결 전 국제법에 비춰 있을 수 없는 판단이라고 말했다. 일본 NHK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아베 총리는 국회서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질의에 징용 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밝혔다.


고노 다로 외무상은 판결 이후 항의 담화를 발표한 데 이어 이수훈 주일대사를 외무성으로 불러 직접 강하게 항의했다. 고노 외무상은 담화서 이번 판결을 두고 매우 유감이라며결코 수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판결은 한일 우호관계의 법적 기반을 근본부터 뒤엎는 것이라며 한국에 국제법 위반상태를 시정하는 것을 포함해 적절한 조치를 즉시 강구하길 강하게 요구한다고 밝혔다.
 

▲강제 징용 피해 선고하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지난달 31일, 강경화 외교부장관은 고노 외무상과 전화통화를 갖고 대법원의 이번 판결에 대한 양국의 입장을 교환했다.

외교부에 따르면 고노 외무상은 전날 대법원 판결에 우려를 표시하는 등 일본 정부의 입장을 전달했다. 강 장관은 우리 정부는 사법부 판단을 존중하고, 이번 판결과 관련된 사항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토대로 제반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대응방안을 마련해나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대법원서 5년 허송세월
일본 반응 “매우 유감 ” 

이번 대법원 판결은 외교 문제뿐만 아니라 국내서도 논란의 중심에 있다. 강제징용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이 양승태 사법부 재판거래 의혹의 대표적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파기환송심 재판부의 판결 이후 5년 가까이 선고를 하지 않았다.

상고심서 파기환송된 사건이 재상고심에 올라가면 일반적으로 그대로 확정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서 대법원이 고의로 심리를 끌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이 같은 의혹은 지난 5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조사하던 특별조사단의 조사 결과가 발표된 이후 본격적으로 제기됐다.

당시 특별조사단은 법원행정처 컴퓨터 하드디스크서 청와대 관심사가 한일 우호관계의 복원이라며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청구 사건에 대한 청구 기각 취지의 파기환송 판결 기대할 것으로 예상이라고 쓰여 있는 문건을 발견했다.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하드디스크서 이를 뒷받침하는 문서가 추가로 속속 나오고 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손해배상에 부정적인 외교부 입장을 재판에 반영했으니 법관 해외 파견을 요구하자는 취지의 문건이 대표적이다.

검찰은 지난 7월 이 같은 의혹에 대해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소송을 대리한 법무법인 해마루의 김모 변호사는 당시 검찰 참고인 조사서 대법원이 두 번째 심리하는 사건인 데다 쟁점이 처음과 다르지 않아 심리불속행 기각 대상인데도 결론을 5년째 미루고 있다소송이 길어지면서 원고 중 일부가 이미 세상을 떠났고, 생존한 피해자들도 힘들어하고 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은 대법원 판결에 대해 여야를 막론하고 환영의 뜻을 나타내면서도 세부적으로 강조하는 부분은 미묘하게 달랐다.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판결 이후 일본 정부와 기업은 공식적인 사과와 법적 배상에 나서달라고 말했다.
 

▲영화 '군함도' 스틸컷

이어 재판이 길어진 배경에는 박근혜 청와대와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거래 의혹이 있다특별재판부를 통한 사법 농단 사태의 진실규명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강조하면서 사법 농단 사태를 부각했다.

민주평화당 김정현 대변인 역시 일본 정부는 역사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일제 치하 반인륜범죄에 대한 사과를 촉구한다”며 특히 이번 승소 판결은 박근혜 정권하에서 저질러진 사법 농단의 근인을 척결해야 한다는 점에서 지당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유한국당 윤영석 수석대변인은 일본이 말하는 양국의 미래지향적 관계 구축을 위해서는 더 이상 망언과 몰염치로 버틸 것이 아니라 일제강점기 반인권적 불법행위에 대해 유가족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와 반성이 선행돼야 한다고 논평했다.

정치권 환영
미묘한 차이

바른미래당 김삼화 수석대변인은 정부는 대법원 판결이 내려진 만큼 신속히 일본 정부, 해당 기업의 사과와 어르신의 피해 배상금을 받아내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며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정의당 최석 대변인은 일본은 이제야말로 일제강점기 당시 자신들이 저지른 모든 죄악을 참회하며, 피해자들에게 진솔한 사과를 해야 할 것이라고 논평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사법부-외교부-김앤장 시민단체 제기한 의혹은?

대법원의 선고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노동의 대가를 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승소 판결을 받기까지의 과정은 험난했다. 특히 신일본제철 소송대리인으로 참여한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의 벽은 높았다.

최근 김앤장이 사법부와 행정부를 쥐락펴락했다는 의혹이 속속 사실로 확인되는 모양새다.

KBS에 따르면 2014년 김앤장은 대법원에 신일본제철의 상고이유서를 제출했다. 그로부터 2년 뒤 김앤장은 대법원에 외교부 의견서를 빨리 받아달라고 하는데, 외교부에서 제출한 의견서는 상고이유서와 대부분 일치했다.

이는 지난 7월 여러 시민단체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폭로한 의혹과 비슷하다. 당시 그들은 강제동원 피해자의 목숨을 대가로 한 사법부와 외교부, 김앤장의 추악한 유착 의혹에 대해 충격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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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캄보디아 ‘셀허브’ 추적

[단독]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캄보디아 ‘셀허브’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민낯이 드러났다. 주로 수도인 프놈펜 인근과 시아누크빌 범죄 단지가 그들의 주둔지였다. 국내 조직폭력배가 중국 갱단과 결탁해 만든 ‘셀허브’의 경우 피해자만 수십명이다. 이들은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가장했다. 사이트에는 유명인의 사진이 수차례 도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는 사라진 셀허브 엔터테인먼트의 홈페이지. 지난해 7월 <일요시사>가 취재한 이후 대표이사의 이름과 사진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표창장을 받았다며 문서를 위조하기도 했다. 이 기업의 정체는 로맨스 스캠 조직이다. 확인된 피해액만 약 40억원, 피해자는 수십명이다. 한 언론사는 보도자료까지 작성하며 홍보하기도 했다. 조직적 준비 경찰 수사 중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지난 24일, 셀허브 조직원 3명을 각각 구속·불구속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송치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이들은 조건 만남 사이트를 운영한 로맨스 스캠 조직이다. 여성 관련 데이트 상품을 판매하거나 연애 빙자 사기를 일삼았다. 셀허브 조직원이던 A씨는 “연예인 지망생이나 모델과 연락하게 해 준다며 50만원에서 100만원까지 대포통장 계좌에 돈을 입금하게 한 뒤 텔래그램 아이디를 알려주고 연락하게 하는 시스템”이라며 “연결된 여자는 실제 남성이고 한국에서 조직폭력배로 활동하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이 조직은 지난해 3월 캄보디아 범죄 밀집 지역인 태자 단지에서 인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같은 해 5월 사이트를 개설해 조직원들에게 민간인 협박, 중국어 통역 등의 역할을 맡기고 수십명으로부터 약 40억원을 뜯어냈다. 같은 해 7월 <일요시사> 취재가 시작되자 이 조직은 셀허브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의 이름을 ‘김현숙’에서 ‘박소희’로 변경하고 유명인의 사진을 수차례 도용했다. 유 전 장관에게 표창장까지 수여받았다며 피해자들의 의심을 피하려는 꼼수도 서슴지 않았다. A씨는 “조직에서 탈출하려는 사람은 밤새 맞거나 강제로 마약을 투약당하기도 했다. 조직폭력배 출신 한국 사람들이 간부고 일반 조직원은 교민 사이트를 통해 ‘한 달에 500만~1000만원을 벌 수 있다’는 거짓말에 속아 일하게 된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건은 서울경찰청이 수사하기 이전인 지난해 7월부터 강서·영등포·구로경찰서 등에 여러 고소장이 접수됐었다. 하지만 수사는 원활하지 않았다. 주요 혐의자가 해외에 거주 중이거나 피의자 특정이 어려운 게 난관이었다. 수사를 담당했던 한 경찰 관계자는 “캄보디아 프놈펜에 주요 혐의자들이 거주한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지난해부터 공조를 요청했으나 캄보디아 당국이 비협조로 일관했다”며 “고소인분들이 ‘왜 안 잡냐’ ‘내 돈 어떻게 하냐’는 등 불만이 많으셨다. 매번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캄보디아가 협조하지 않으면 조치가 불가능했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3월부터 조직원 모집…태자 단지서 모의 ‘유인촌 표창장’ 걸어 놓고 ‘정상 기업’ 홍보 막막했던 수사는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면서 풀리기 시작했다. 이재명정부가 캄보디아를 압박했고 현지에 구금된 한국인 범죄자 겸 피해자 수십명을 국내로 송환했다. 송환된 인원 중 일부는 셀허브 사건과도 연관된 것으로 파악됐다. 정성학 충남경찰청 수사부장은 지난 20일 청내 프레스센터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들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사기) 및 범죄단체 가입 및 활동 혐의로 전원 구속했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부건(총책 가명, 40대 초반, 한국말을 쓰는 외국인 추정) 조직으로부터 확인된 피해 건수는 110건, 피해액은 93억여원에 달했다. 약 100명의 조직원을 거느린 부건은 지난해 중순부터 올해 7월까지 주로 프놈펜 웬치(범죄 단지) 및 태국 방콕 등지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범행을 벌여왔다. 부건 조직은 지난 2018년 중국에서부터 활동을 시작해 그동안 단속을 피하려 태국, 캄보디아 등지로 거주지를 옮겨가며 범행을 계속해 왔다. 이들은 데이터베이스, 입출금 등을 지원·관리하는 CS팀과 광고를 보고 접근한 피해자를 기망하는 로맨스팀, 검찰 사칭 보이스피싱팀, 코인투자리딩 사기팀, 공무원 사칭 노쇼 사기팀 등 총 5개 팀으로 이뤄진 조직체계를 갖췄다. 이들은 가구판매업을 하러 캄보디아에 갔다고 진술했으나 이후 지역 선·후배 권유, 고액 아르바이트 인터넷 광고 등을 접하고 범죄에 연루된다는 걸 알면서도 조직에 가입해 활동한 것으로 조사됐다. 속아서 조직에 들어갔다고 진술하지 않은 이들의 유입 경로는 ▲지인 포섭 29명 ▲인터넷 광고 등 포섭 8명 ▲현지 카지노 포섭 6명 ▲기타 2명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남성 42명과 여성 3명으로 연인도 있었다. 대부분은 20~30대 연령으로 최소 2개월부터 최대 16개월까지 범행에 가담해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조건 만남 사이트 경기북구경찰청 형사기동대도 전기통신금융사기특별법 위반 등 혐의로 피의자 15명 중 11명을 구속 송치했다. 이들은 지난해 8월부터 한 달간 캄보디아 범죄 단지에서 여성을 사칭, 조건 만남 등을 명목으로 피해자들로부터 돈을 가로챘다. 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성 만남 광고를 낸 후 이를 보고 연락해 온 피해자에게 여성인 척 채팅으로 유인했다. 여성을 소개받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개발한 조건 만남 사이트에 회원 가입과 인증을 받아야 한다고 속여 인증을 위한 돈을 요구했다. 3차례에 걸친 인증 절차 과정에서 여러 게임에 성공하면 가입비를 돌려준다고 속여 피해자로부터 1인당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을 받아 챙겼다. 피해자들이 믿을 수 있도록 별도의 만남 인증과 후기글을 남기는 ‘화력방’도 운영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 규모는 피해자 36명, 피해금 16억원 상당이며, 1인당 최대 피해 금액은 2억1000만원이다. 이들은 대부분 20~30대 남녀다. 최초 범죄집단을 구성한 캄보디아 프놈펜 지역 명칭 ‘툴콕’을 의미하는 ‘TK’파로 스스로를 부르며 총책을 정점으로 한 지휘·통솔 체계를 갖췄다. 조직 운영을 총괄하는 총책, 이를 보좌하며 실무 전반과 인력 공급 등을 담당하는 총관리자, 각 파트 팀원의 근태를 관리하고 지시하는 팀장으로 구성됐다. 또 자체적인 조건 만남 홈페이지를 제작하는 개발자, SNS에 광고 글을 게시하는 홍보팀과 광고를 보고 접근한 피해자를 기망하는 로맨스 2개팀으로 역할을 분담했다. ▲상호 가명 사용 ▲근무 중 휴대전화 금지 ▲사진 촬영 금지 ▲야간에는 커튼으로 외부 차단 ▲다른 부서와의 업무 내용 공유 금지 등의 규칙에 따라 생활하기도 했다. 중국 국적 100명 뒷배 이들은 총책이 마련한 건물에서 2인1조로 합숙했는데 프놈펜 툴콕 지역의 13층 건물을 사용하다가 지난 8월, 현지 단속을 피해 센소크 지역 7층 건물로 이전해 범행을 이어오던 중 현지 수사 당국에 의해 검거됐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SNS 구직 광고나 조직원을 통해 범죄단체에 가입했다고 진술했으며 사기임을 알고도 범행을 지속한 것으로 조사됐다. 피의자 대부분은 현지에서 구금된 중에도 총책이 이른바 관작업을 통해 자신들을 석방시켜 줄 것이라는 말만 믿고 대사관의 도움을 거절하고 귀국하지 않았다. 셀허브 사건 간부들은 타 사건에도 연루됐다. 지난 7일 캄보디아 바벳에 인접한 베트남 떠이닌 지역 국경 검문소 인근에서 30대 여성 B씨가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는데, 숨지기 직전까지 셀허브 간부와 같이 있었다. B씨의 사인은 마약 과다 투약이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B씨가 셀허브에서 한국인 명의의 대포통장을 공급해 왔다고 보고 있다. A씨는 “셀허브에서 일할 사람을 모집하는 역할을 했던 B씨인데 통장을 팔려고 캄보디아에 도착한 한국인들을 유인해 범죄 단지로 팔아넘기고 유인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정보·수사기관도 B씨에 의해 범죄 단지에 넘겨지는 피해를 입거나 유흥업소 일을 강요당한 사례를 확인하고 조사 중이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사실상 마약을 강제로 과다하게 투약당한 살인사건이라는 첩보는 아직 확인 중”이라며 “특정 조직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건 현지 경찰도 수사 중인 내용”이라고 말했다. 대개 조직폭력배 출신…지휘는 중국 조직이 맡아 40억 피해액 환수 불가능 “자금 세탁 끝났다” 첫 데이트하던 연인을 치어 여교사를 숨지게 했던 이른바 ‘대전 머스탱 교통사고’의 피의자도 셀허브 조직원으로 확인됐다. 피의자 전모씨는 2019년 2월10일 오전 10시14분 대전 중구 대흥동에서 면허도 없이 외제차를 운전하던 중 인도를 걷던 조모씨와 박모씨를 들이받아 박씨를 숨지게 하고, 조씨에게 중상을 입혔다. 전씨가 대여한 외제차는 불법 대여 차량이었다. 이 차량은 애초 대구에 사는 C씨가 자신 명의로 캐피털에서 월 115만원씩 주는 조건으로 60개월간 대여한 것이다. C씨는 사촌 안모씨와 함께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나모씨가 올린 ‘외제차 저렴하게 빌려줄 사람을 찾는다”는 글을 보고 접근, 한 달에 136만원씩 받기로 하고 대여한 머스탱 차량을 재임대했다. 나씨는 이렇게 빌린 머스탱 차량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활용해 “외제차를 빌려준다”고 광고하며 또다시 대여업을 했다. 전씨는 나씨가 올린 이 글을 보고 일주일에 90만원씩 주기로 약속하고 머스탱을 빌려 운전했다. 매년 확정되는 범죄수익 추징금은 30조원을 넘지만 환수 금액은 1%에도 미치지 않는다. 법무부가 캄보디아에서 보이스피싱과 로맨스 스캠 등의 범죄로 발생한 현지 범죄수익을 국내로 환수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선 법무부는 “캄보디아 내에서 벌어진 범죄 가운데 현재 국내에서 수사 중이거나 재판 중인 사건이 1차 현지 수사 의뢰 대상”이라며 “이후 국내에서 유죄 선고를 받으면 최종적으로 환수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국제형사사법공조 조약에 따르면 해외에서 발생한 범죄라 하더라도 피해자가 국내에 있고 피해액이 특정될 경우, 우리 정부가 해외에 범죄수익 환수를 요청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2019년 캄보디아와 국제형사사법공조 조약을 체결해 2021년 정식 발효됐다. 주요 간부들 타 사건 연루 정보기관 관계자는 “범죄자 개인이 아닌 조직을 대상으로 한 범죄수익 환수 사례는 거의 없다. 특히 국내에서 수사와 재판이 끝나야 한다”며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서는 건 좋지만 이미 늦었다. 범죄조직 특성상 이미 코인이나 대포 통장으로 제3국에 은닉하거나 세탁을 하고도 남았을 시간”이라고 지적했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도 “수사가 끝나고 유죄 판결이 나기까지 수년이 걸리는데 환수 절차는 이 모든 사법절차가 종료돼야 가능하다. 특히 조세회피처로 범죄수익을 옮겨놨다면 환수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봤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