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추적] 베일 벗는 ‘MB 대선자금’ 비밀

  • 김성수 kimss@ilyosisa.co.kr
  • 등록 2012.05.03 09:3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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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 500억” 천신일-A그룹 털면 나온다

[일요시사=김성수 기자] ‘양재동 폭풍’이 세종로와 여의도에 몰아칠 조짐이다. 하이마트 사건에서 불거진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 수사가 대선자금 문제로 비화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게이트’는 최시중. ‘검은돈’ 수수를 시인한 그는 코너에 몰리자 대선에 사용했다고 털어놨다. 곧바로 말을 바꿨지만, 물은 이미 엎질러진 후였다. 모든 게 검찰에 달렸다. 과연 살아 있는 권력 속으로 파고들 수 있을까.

“이명박 대통령은 불법 대선자금을 단 한 푼도 받지 않았습니다.”

2009년 5월 당시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미국 워싱턴에서 현지 특파원들과 만나 털어놓은 얘기다. 그는 “선거운동 때 대기업으로부터 단돈 1만원도 받은 적이 없다”며 “그전에는 당선사례금 같은 것도 있었지만 이번엔 하나도 받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전제한 말이 “이 대통령이 완벽하게 합법적으로 선거운동을 했다고 하진 않겠지만…”이었다. 보기에 따라 불법이나 탈법이 있었음을 인정한 표현으로 비춰지는 대목이다.

“특별수사팀 구성
낱낱이 수사해야”

그랬던 그가 정권 핵심인사로선 금기어인 대선자금을 다시 언급한 것은 최근 양재동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와 관련 금품수수 의혹이 일면서다. 사업 시행사로부터 거액을 받았다고 시인한 최 전 위원장이 “받은 돈을 대선 때 여론조사 비용 등으로 사용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면서 ‘파이시티 불똥’이 이 대통령의 2007년 대선자금 문제로 튀었다.

청와대와 여당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최 전 위원장이 MB의 멘토이자 정권실세인데다 올 대선정국에 미칠 파급력이 불 보듯 훤하기 때문이다. 야당은 아예 불법 대선자금 사건으로 규정했다. 민주통합당은 “검찰은 2007년 대선자금 전체에 대해 낱낱이 수사해야 한다. 특별수사팀을 구성해 단호한 수사 의지를 보이라”고 촉구했다.


그동안 ‘MB 사람들’은 “역대 어느 대선보다 돈을 적게 썼다”고 입을 모아왔다. 이 대통령 본인도 “깨끗한 대선을 치렀다”고 자부했다.

대선이 끝난 후 이 대통령은 경선에서 21억8098만원, 대선에서 372억4900만원 등 총 394억2998만원(법정 선거비용 제한액 465억9300만원)을 선거비용으로 썼다고 선관위에 신고했다. 경선비용 내역은 후원회 모금액 18억888만원과 맏형인 이상은씨로부터 차입한 3억4200만원 등이다. 대선비용은 국고 선거보조금 112억원, 제2금융권 대출 250억원 등으로 충당했다. 이 돈은 선거자금을 100% 돌려주는 정치자금법에 따라 국고 보전을 받아 모두 상환됐다.

그러나 정치권에선 실제 들어간 비용은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어느 조직이든 마찬가지겠지만 대선 캠프 운영엔 영수증 없는 ‘가욋돈’이 적잖게 들어가기 때문이다. 특히 당시 박근혜 후보와 경쟁했던 경선의 경우 본선보다 치열했던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최시중 “검은돈 수수…대선 때 사용” 폭로
불법자금 수사 확대 불가피…특검 가능성도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내내 매머드급 캠프를 운영했다. 이 조직은 ‘돈 먹는 괴물’로 불렸다. 막대한 자금이 괴물의 ‘먹이’로 쓰였을 것이란 지적이다. 참고로 2003년 8월∼2004년 5월 진행된 2002년 대선자금 수사 결과 한나라당 이회창 캠프는 823억원, 민주당 노무현 캠프는 120억원의 불법자금을 모은 것으로 밝혀진 바 있다. 한나라당은 대기업들로부터 수백억원의 현금이 실린 차량을 통째로 넘겨받아 한동안 ‘차떼기당’이라 불리기도 했다.

정치권 인사는 “대선 직후 정치권에선 MB캠프가 법적 테두리 안에서 쓴 선관위 신고 금액보다 훨씬 많은 돈을 썼다는 분석이 적지 않았다”며 “경·본선 과정에서 최소 500억원 이상 쓰지 않았겠느냐는 추측이 나왔었다”고 귀띔했다.

한 정치 분석가는 “이명박-박근혜가 맞붙은 경선은 곧 대선과 같았다. 당내에선 본선 못지않은 돈이 경선에 뿌려졌을 것이란 뒷말이 무성했다”며 “박 후보에 비해 당내 지지층이 미약했던 이 후보 측은 조직관리, 여론조사 등을 통해 ‘당심잡기’에 공을 들였는데, 여기에 많은 돈을 투입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물론 MB 측이 역대 대선 후보들처럼 불법 대선자금을 받아 사용했다는 구체적인 물증이나 진술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다만 그동안 정황과 그 가능성은 꾸준히 제기됐었다.


17대 대선 직전 대선자금 문제를 처음 거론한 사람은 전군표 전 국세청장이다. 전 전 청장은 2007년 9월 한 방송에 출연해 “대선자금에 대해 감시활동을 강화하고 있다”며 “무슨 후보 포럼이니, 무슨 회 등 일부 대선 후보의 조직이 대기업들에 운영비조로 돈을 요구한다는 첩보가 있다”고 밝혔다. 공교롭게도 그로부터 두달 뒤 전 전 청장은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됐다.

불거졌다 흐지부지
제기됐다 유야무야

앞서 그해 5월엔 다소 충격적인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전국 1300개 회원사를 대상으로 ‘17대 대선에 바란다’는 제목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 기업의 4.2%가 ‘자금지원을 요청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아직 없지만 장차 있을 것으로 본다’고 답한 곳도 14.9%에 달해 혼탁선거를 예고한 바 있다.

대선 이후 불거진 불법자금 의혹이 흐지부지 묻힌 적도 있다. MB캠프 자금 출처와 흐름은 이 대통령의 최측근인 극소수만 안다. 최 전 위원장과 함께 MB캠프에 깊숙이 관여했던 천신일 전 세중나모 회장이 그중 한명이다.

천 전 회장은 고려대 상대 동기인 이 대통령과 ‘절친’으로, 정가에선 “MB 측 인사치고 천신일에게 밥 한번, 용돈 한 번 받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았었다. 그래서 천 전 회장은 MB 대선자금의 통로로 지목된다. 정치권 한 인사는 “천 전 회장의 자금흐름을 샅샅이 조사하면 검찰이 대선자금의 확실한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 2009년 천 전 회장은 금품수수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대선자금 조성 의혹까지 받았다. 경선에서 이 대통령의 특별당비 30억원을 대납했다는 의혹이 그것. 또 천 전 회장은 경선 직전인 2007년 4월 자신과 가족 명의의 주식을 매각해 49억원을, 대선 직전인 같은해 11월에도 같은 방법으로 171억원을 확보하는 등 대선 전후 200억원대 주식을 팔아 현금화했는데, 이 돈이 대선자금으로 쓰였다는 의혹이 제기됐었다.

‘천신일 의혹 진상조사특위’까지 꾸린 민주당은 “대선을 앞두고 천신일과 가족 등 특수관계인들이 주식을 팔아 현금화 한 금액이 200억원이 넘는다”며 “그 많은 자금을 어디서 조달했는지도 중요하지만 막대한 자금을 어디에 얼마가 사용했는지를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 물증·진술 나오지 않아
설·소문 등 정황은 꾸준히 제기

그러나 대선자금 의혹은 검찰 수사에서 제외됐다. 검찰은 “전혀 다른 사안”이란 이유로 수사하지 않았고, 결국 천 전 회장은 46억여원 상당의 금품수수 혐의로만 구속기소됐다. 이후 민주당은 천 전 회장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지만, 검찰은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정치권뿐만 아니라 재계에서도 대선자금은 지난 4년 내내 ‘뜨거운 감자’였다. 일부 대기업은 불법자금 제공설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A그룹이 대표적이다. 전 정권에서 막혔던 A그룹의 대형 프로젝트가 MB정부 들어 ‘OK 사인’이 떨어지자 유착 의혹이 부상했고, 급기야 대선자금을 제공한 대가란 ‘빅딜설’까지 돌았다. 게다가 그룹 경영진과 MB 측 인사들이 각별한 인연도 있어 소문을 부채질했다.

이 대통령을 밀었던 B그룹도 도마에 올랐다. B그룹은 대선 직전 MB 지지 사실이 외부에 알려져 진땀을 흘렸다. 회사 측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정치와는 거리를 두고 있다”고 발뺌했지만, 대선 주자와 관련된 내부 문건이 유출돼 발칵 뒤집힌 적이 있다.

정치권에서 대선자금 제공처로 지목한 기업도 있다. 모 의원은 C그룹의 비자금 조성 의혹이 일자 “이 비자금이 대선자금으로 흘러들어갔을 가능성이 있다”며 “매우 민감한 사안인 만큼 대검 중수부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법조계에선 10여개 기업이 직·간접적으로 거액의 자금을 대선후보 캠프에 후원했다는 얘기가 퍼지기도 했다. 사정당국이 대선 전후 정치권으로 유입된 것으로 보이는 몇몇 기업의 수상한 자금 흐름을 포착,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는 ‘대선자금 내사설’이 있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이내 쏙 들어가 버렸다.


재계에 제공설 난무
대기업 내사설 돌아

국민들의 시선은 검찰에 꽂혀 있다. 대선자금 수사에 나설지 주목하고 있다. 또 그 파장의 방향과 강도도 관심이다. 검찰은 “대선자금 수사가 아니다. 단순 인허가 비리 사건”이라고 선을 그었으나, 야당의 파상공세와 현 정권에 대한 불신 여론이 워낙 커 수사 확대가 불가피한 형국이다.

MB정부 들어 ‘정치검찰’이란 오명을 뒤집어 쓴 대한민국 검찰. 검찰로선 어찌 보면 불명예를 스스로 벗어 던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온 셈이다. 정권 실세의 개인 비리로 후다닥 해치울지, 외풍을 넘어 살아 있는 권력 속으로 파고들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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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