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질 끄는’ SK수사 노림수

‘빙빙 도는 검찰’…1년째 SK 목줄만 잡고 ‘슬렁슬렁’

[일요시사=김성수 기자] 검찰의 SK그룹에 대한 수사가 1년 이상 장기화 되면서 ‘SK 표적’ 논란이 일고 있다. 검찰은 2010년 하반기부터 내사하기 시작해 꼬박 해를 넘겼다. 최태원 회장을 타깃으로 강도 높게 조사했지만, 1년이 넘은 지금까지 특별한 물증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동생 최재원 부회장만 구속하는데 그쳤다. 이렇다 할 성과 없이 시간만 질질 끌고 있는 검찰에 하염없이 끌려가고 있는 SK그룹은 1953년 창립 이후 사상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해 넘긴 장기간 무리한 조사…‘표적수사’논란 일어
투자 등 경영계획 차질 “공백 심각…시무식도 못해”


SK그룹이 글로벌 사태 직후인 2004년 이후 처음으로 올해 경영계획에 손도 못 대고 있다. 지난해 8월 최재원 부회장에 대한 출국금지가 내려진 뒤부터 사실상 경영공백이 시작됐다. 당초 SK그룹은 새식구가 된 하이닉스 투자를 포함, 사상 최대인 15조원의 투자를 계획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태원 회장은 최 부회장에게 그룹 단위의 글로벌 성장 특명을 내려놓은 상태였다. 그러나 최 부회장의 발이 묶이면서 하나도 진행된 것이 없다. 신입사원 채용이 차질을 빚을 것이란 우려까지 나왔지만, 다행히 최 회장이 “SK의 미래인 신입사원 채용은 차질이 빚어져서는 절대 안 된다”고 강조해 겨우 채용 차질은 면하게 됐다.

“임진년 경영로드맵
손도 못 대고 있다”

검찰이 제기하고 있는 SK 의혹은 의외로 간단하다. SK그룹이 신성장 동력 확보 차원에서 조성한 펀드 자금을 최 회장 형제가 선물투자를 위해 유용했다는 혐의다.

검찰은 이를 캐기 위해 2010년 하반기부터 내사하기 시작했다. 1년을 훌쩍 넘긴 셈이다. 이 기간 동안 13시간에 걸친 방대한 압수수색과 임원 등 회사 관계자들을 수시로 불러들여 조사하는 등 고강도 수사를 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아직 최 회장의 혐의를 입증할 만한 증거나 물증을 찾아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은 물론 이미 구속된 최 부회장도 회삿돈을 횡령했다는 부분에 대해 전면 부인하고 있다. 최 회장은 1번, 최 부회장은 3번에 걸친 소환 조사를 받았는데 모두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SK그룹 측도 최 회장 형제의 혐의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SK 관계자는 최 부회장이 구속되긴 했지만 반드시 사필귀정으로 결론 날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 관계자는 “검찰에서 제기하고 있는 핵심 의혹은 펀드를 통해 조성된 계열사 돈 500억원을 횡령한 혐의다. 그런데 3조원 가까이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최 회장이 뭐 하러 회삿돈에 손을 대겠냐”며 “최 회장은 이미 글로벌 분식의 책임을 지고 어려움을 겪은 바 있고, 500억원을 조달하려면 몇 시간이면 할 수 있는 여력이 충분한데 그 복잡한 펀드를 만들고 이런저런 방법으로 돈을 빼돌리라고 지시하겠나”고 강변했다.

재계의 분위기도 다르지 않다. 검찰이 무리하게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의견이 대체적이다. 4대 그룹 한 고위 임원은 “최 회장은 투명경영과 윤리경영을 무기삼아 재계에서 신임이 두터운 인물인데, 그런 그가 적당히 돈 벌어 먹튀할 생각이 아니면 회삿돈을 횡령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이미 검찰이 제기한 혐의만 해도 최 회장은 굉장히 억울할 것”이라고 말했다.

‘SK 타깃설’ 의혹 급부상
정부 정책에 비협조해서?
재계 군기잡기용 본보기?


법조계에서도 검찰 수사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한마디로 횡령 동기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법조계 한 인사는 “검찰이 얼마나 무서운지, 또 기업 경영과 개인 생활을 구분하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지 이미 충분히 경험한 최 회장이 현실적으로 그럴 필요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다”며 “영원히 아무도 모르게 돈을 빼돌릴 수도 없는데 굳이 그럴 일을 했다는 것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또 다른 인사도 “펀드는 감독 당국의 관리와 감시를 받는 금융구조로 빼돌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전혀 가능성이 없다”며 “최 회장이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것이 아니라면 펀드를 통해 회삿돈을 빼돌렸다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했다.

실제 횡령됐다는 500억원은 2008년 당시 한달여 만에 9%의 이자까지 계산돼 고스란히 회수됐다. 이 인사는 “최 회장이 만약 횡령하려 했다면 다시 돌려 놓았을 리가 없다. 이자까지 쳐서 회수가 됐다는 것은 펀드운영자인 김준홍 전 베넥스인베스트먼트 대표가 자금을 유용한 것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일각에선 검찰의 SK그룹에 대한 수사가 장기화 되자 ‘SK 표적’의혹까지 나오고 있다. 검찰의 무리수로 SK그룹이 희생양이 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검찰은 SK 횡령 수사에서 나오는 것이 없자 비자금 조성 등 압수수색에서 나온 별건을 수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시간을 끌면서 먼지가 나올 때까지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며 “기업을 대상으로 먼지가 나올 때까지 조사하는 것은 표적수사로 오해를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SK그룹이 검찰의 타깃이 된 이유에 대해선 해석이 분분하다. 그중 가장 유력한 배경으로 ‘정부 비협조설’이 꼽힌다. ‘정부가 추진하는 물가관리의 핵심 대상인 유가와 통신료 인하에 비협조적이었던 SK그룹을 손보기 위해 검찰이 나섰다’는 시나리오다.

사실 2003년 SK글로벌 사태 때도 ‘재계 군기잡기용’이란 시각이 적지 않았다. 당시 총수가 구속되는 등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를 받았던 SK그룹을 두고 ‘본보기’로 당했다는 뒷말이 끊이지 않았다. ‘정부가 재계를 손보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대상을 찾다가 덩치가 있으면서 수출이 적은 기업, 즉 내수기업인 SK그룹을 찍었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내수기업설’이 있긴 있으나, SK그룹이 그동안 주력 사업의 수출 비중을 60%로 늘리는 등 글로벌 기업으로 변모한 상황이라 타깃 배경으로 ‘정부 비협조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재산 3조대 총수가 
500억 횡령했겠냐”

재계 관계자는 “경제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증거도 확실하지 않은 정황만 갖고 3대 그룹 회장에 대한 횡령 수사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구시대적인 재벌 압박”이라며 “1년 이상 조사해서 나오는 것이 없으면 깨끗이 정리해 경영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제단체 한 간부는 “대기업을 국가경제를 뒷받침하는 경제주체로 인정해야 하지만 검찰의 표적수사 관행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며 “문제가 있으면 당연히 수사해야겠지만 대기업의 국가경제 비중 등을 판단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검찰이 이렇다 할 성과 없이 시간만 질질 끌면서 사실상 SK는 ‘올스톱’됐다. 최 회장 등 임원들은 발이 묶여 지난해 내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SK그룹은 경영공백 탓에 인사를 비롯해 사상 최대인 15조원에 달하는 투자 등 경영계획조차 확정짓지 못한 채 새해를 맞았다.

SK그룹 전 계열사와 임직원들은 지난해 말 송년회는 물론 크고 작은 모임들까지 전혀 엄두를 내지 못했다. 심지어 1953년 창립 이래 처음으로 그룹 단위 시무식도 갖지 못했다.

SK그룹은 매년 1월 첫 번째 월요일 오전 워커힐호텔에서 최 회장과 주요 계열사 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한해 경영 화두와 비전을 공유하는 시무식으로 새해 경영을 시작했었다. 최 회장은 지난해 시무식에서 “세계 각 지역에 기업가치 100조원의 회사를 여러 게 만들어 나가자”는 비전을 발표하며 ‘붕정만리(鵬程萬里·붕새를 타고 만리를 난다는 뜻으로 원대한 계획을 비유) 경영’을 선포한 바 있다.

SK 측은 “검찰의 수사가 1년 이상 계속되고 있고 최 부회장이 구속되면서 그룹은 사상 최악의 국면을 맞고 있다”며 “글로벌 금융위기와 북한발 대형 이슈 등 경영 안팎의 이슈들이 산적해 있는 상황에서 당초 지난 2일 개최 예정이던 그룹 시무식마저 취소되면서 그룹 전체가 공황에 빠진 것 같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최 회장 ‘정공법’ 돌파 선택
그룹 전사적 경영정상화 노력


특히 SK그룹은 최근 몇 년 동안 최 회장까지 나서서 글로벌 성장을 위한 방안의 하나로 강력하게 추진해 온 대형 해외사업들에도 차질이 생기지 않을까 크게 우려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SK와 관련한 투자자나 협력업체 등 모든 이해관계자들의 불안감도 증폭되고 있다.

SK 한 협력업체 사장은 “검찰이 SK그룹을 왜 이렇게 물고 늘어지는지 모르겠다. 저러다 큰일 나는 거 아닌지 몰라 초초하고 불안하다”며 “만약 SK그룹이 잘못되거나 자포자기 하면 대한민국 경제가 휘청거릴 정도로 후폭풍이 거세게 불 것”이라고 걱정했다.

SK그룹은 재계 3위의 기업이다. 그만큼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얘기다. 또 하이닉스의 경영정상화까지 책임지게 됐기 때문에 세간의 관심은 당연하다.

최 회장은 최악의 상황에서 피해를 최소화시키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최 회장이 선택한 돌파구는 ‘정공법’. 최 회장은 최근 인수업체인 SK그룹에 대한 검찰 수사로 경영정상화의 우려가 제기되자 직접 하이닉스를 찾았다. 그가 하이닉스에서 던진 말은 “하이닉스의 경영정상화와 성장을 위해 먼저 뛰겠다”는 것이었다. 이 한마디로 우려가 완전히 불식된 것은 아니지만 시장은 다음날 주가 상승으로 반응했다.

그리고 최 회장은 그룹 CEO들을 대상으로 비상 경영회의를 소집했다. 최 회장은 이 자리에서 “여러 의혹이 제기되고 있지만 신뢰를 갖고 한마음 한뜻으로 위기에 대처해 달라”며 “경제가 어렵고 위기일수록 위축되지 말고 흔들림 없이 경영에 매진해 어려운 국가 경제를 위해 열심히 뛰어 달라”고 당부했다.

최 회장은 검찰청에서 북한발 이슈를 점검하기도 했다. 최 회장은 검찰의 소환 조사를 받다 잠시 휴식시간 도중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곧바로 변호인과 실무진을 통해 김영태 SK㈜ 사장에게 북한 변수에 따른 조치를 지시했다.

이날 20시간에 걸친 밤샘 조사를 받고 새벽에 귀가한 최 회장은 다음날 오전 일찍 회사로 출근해 SK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출근하자마자 CEO와 임원들을 불러 북한발 이슈로 인한 파장과 영향 등을 보고받고 만전을 기할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최 회장은 SK글로벌 사태 때도 ‘시장 신뢰 없이 불가능하다’는 판단 아래 정공법을 선택한 적이 있다. “아무리 좋은 방안도 시장에서 싫어하면 안하겠다”던 최 회장은 ‘시장 기대가 100이라면 130, 150을 하는 것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만약 SK 잘못되면 
한국 경제가 휘청”

실제로 당시 최 회장은 실무진들이 3년에 걸쳐 사외이사 비율을 70%(대표이사를 경질할 수 있는 비율)로 올리겠다는 안을 보고하자 “그럴 필요가 뭐가 있냐. 바로 70% 하라”고 지시했고, 결국 경영권을 지킬 수 있었다. 이를 두고 시장에선 최 회장의 벼랑끝 정공법이 먹혔다는 평가가 나왔다.

SK그룹은 ‘지루한 검풍’에서 헤어 나오기 위해 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으나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검찰 수사가 더 늘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더욱 그렇다. 이런 불투명한 상황에서 최 회장의 정공법도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검찰이 갈 길 바쁜 SK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다. 이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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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