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질 끄는’ SK수사 노림수

‘빙빙 도는 검찰’…1년째 SK 목줄만 잡고 ‘슬렁슬렁’

[일요시사=김성수 기자] 검찰의 SK그룹에 대한 수사가 1년 이상 장기화 되면서 ‘SK 표적’ 논란이 일고 있다. 검찰은 2010년 하반기부터 내사하기 시작해 꼬박 해를 넘겼다. 최태원 회장을 타깃으로 강도 높게 조사했지만, 1년이 넘은 지금까지 특별한 물증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동생 최재원 부회장만 구속하는데 그쳤다. 이렇다 할 성과 없이 시간만 질질 끌고 있는 검찰에 하염없이 끌려가고 있는 SK그룹은 1953년 창립 이후 사상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해 넘긴 장기간 무리한 조사…‘표적수사’논란 일어
투자 등 경영계획 차질 “공백 심각…시무식도 못해”


SK그룹이 글로벌 사태 직후인 2004년 이후 처음으로 올해 경영계획에 손도 못 대고 있다. 지난해 8월 최재원 부회장에 대한 출국금지가 내려진 뒤부터 사실상 경영공백이 시작됐다. 당초 SK그룹은 새식구가 된 하이닉스 투자를 포함, 사상 최대인 15조원의 투자를 계획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태원 회장은 최 부회장에게 그룹 단위의 글로벌 성장 특명을 내려놓은 상태였다. 그러나 최 부회장의 발이 묶이면서 하나도 진행된 것이 없다. 신입사원 채용이 차질을 빚을 것이란 우려까지 나왔지만, 다행히 최 회장이 “SK의 미래인 신입사원 채용은 차질이 빚어져서는 절대 안 된다”고 강조해 겨우 채용 차질은 면하게 됐다.

“임진년 경영로드맵
손도 못 대고 있다”

검찰이 제기하고 있는 SK 의혹은 의외로 간단하다. SK그룹이 신성장 동력 확보 차원에서 조성한 펀드 자금을 최 회장 형제가 선물투자를 위해 유용했다는 혐의다.

검찰은 이를 캐기 위해 2010년 하반기부터 내사하기 시작했다. 1년을 훌쩍 넘긴 셈이다. 이 기간 동안 13시간에 걸친 방대한 압수수색과 임원 등 회사 관계자들을 수시로 불러들여 조사하는 등 고강도 수사를 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아직 최 회장의 혐의를 입증할 만한 증거나 물증을 찾아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은 물론 이미 구속된 최 부회장도 회삿돈을 횡령했다는 부분에 대해 전면 부인하고 있다. 최 회장은 1번, 최 부회장은 3번에 걸친 소환 조사를 받았는데 모두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SK그룹 측도 최 회장 형제의 혐의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SK 관계자는 최 부회장이 구속되긴 했지만 반드시 사필귀정으로 결론 날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 관계자는 “검찰에서 제기하고 있는 핵심 의혹은 펀드를 통해 조성된 계열사 돈 500억원을 횡령한 혐의다. 그런데 3조원 가까이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최 회장이 뭐 하러 회삿돈에 손을 대겠냐”며 “최 회장은 이미 글로벌 분식의 책임을 지고 어려움을 겪은 바 있고, 500억원을 조달하려면 몇 시간이면 할 수 있는 여력이 충분한데 그 복잡한 펀드를 만들고 이런저런 방법으로 돈을 빼돌리라고 지시하겠나”고 강변했다.

재계의 분위기도 다르지 않다. 검찰이 무리하게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의견이 대체적이다. 4대 그룹 한 고위 임원은 “최 회장은 투명경영과 윤리경영을 무기삼아 재계에서 신임이 두터운 인물인데, 그런 그가 적당히 돈 벌어 먹튀할 생각이 아니면 회삿돈을 횡령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이미 검찰이 제기한 혐의만 해도 최 회장은 굉장히 억울할 것”이라고 말했다.

‘SK 타깃설’ 의혹 급부상
정부 정책에 비협조해서?
재계 군기잡기용 본보기?


법조계에서도 검찰 수사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한마디로 횡령 동기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법조계 한 인사는 “검찰이 얼마나 무서운지, 또 기업 경영과 개인 생활을 구분하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지 이미 충분히 경험한 최 회장이 현실적으로 그럴 필요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다”며 “영원히 아무도 모르게 돈을 빼돌릴 수도 없는데 굳이 그럴 일을 했다는 것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또 다른 인사도 “펀드는 감독 당국의 관리와 감시를 받는 금융구조로 빼돌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전혀 가능성이 없다”며 “최 회장이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것이 아니라면 펀드를 통해 회삿돈을 빼돌렸다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했다.

실제 횡령됐다는 500억원은 2008년 당시 한달여 만에 9%의 이자까지 계산돼 고스란히 회수됐다. 이 인사는 “최 회장이 만약 횡령하려 했다면 다시 돌려 놓았을 리가 없다. 이자까지 쳐서 회수가 됐다는 것은 펀드운영자인 김준홍 전 베넥스인베스트먼트 대표가 자금을 유용한 것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일각에선 검찰의 SK그룹에 대한 수사가 장기화 되자 ‘SK 표적’의혹까지 나오고 있다. 검찰의 무리수로 SK그룹이 희생양이 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검찰은 SK 횡령 수사에서 나오는 것이 없자 비자금 조성 등 압수수색에서 나온 별건을 수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시간을 끌면서 먼지가 나올 때까지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며 “기업을 대상으로 먼지가 나올 때까지 조사하는 것은 표적수사로 오해를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SK그룹이 검찰의 타깃이 된 이유에 대해선 해석이 분분하다. 그중 가장 유력한 배경으로 ‘정부 비협조설’이 꼽힌다. ‘정부가 추진하는 물가관리의 핵심 대상인 유가와 통신료 인하에 비협조적이었던 SK그룹을 손보기 위해 검찰이 나섰다’는 시나리오다.

사실 2003년 SK글로벌 사태 때도 ‘재계 군기잡기용’이란 시각이 적지 않았다. 당시 총수가 구속되는 등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를 받았던 SK그룹을 두고 ‘본보기’로 당했다는 뒷말이 끊이지 않았다. ‘정부가 재계를 손보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대상을 찾다가 덩치가 있으면서 수출이 적은 기업, 즉 내수기업인 SK그룹을 찍었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내수기업설’이 있긴 있으나, SK그룹이 그동안 주력 사업의 수출 비중을 60%로 늘리는 등 글로벌 기업으로 변모한 상황이라 타깃 배경으로 ‘정부 비협조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재산 3조대 총수가 
500억 횡령했겠냐”

재계 관계자는 “경제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증거도 확실하지 않은 정황만 갖고 3대 그룹 회장에 대한 횡령 수사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구시대적인 재벌 압박”이라며 “1년 이상 조사해서 나오는 것이 없으면 깨끗이 정리해 경영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제단체 한 간부는 “대기업을 국가경제를 뒷받침하는 경제주체로 인정해야 하지만 검찰의 표적수사 관행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며 “문제가 있으면 당연히 수사해야겠지만 대기업의 국가경제 비중 등을 판단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검찰이 이렇다 할 성과 없이 시간만 질질 끌면서 사실상 SK는 ‘올스톱’됐다. 최 회장 등 임원들은 발이 묶여 지난해 내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SK그룹은 경영공백 탓에 인사를 비롯해 사상 최대인 15조원에 달하는 투자 등 경영계획조차 확정짓지 못한 채 새해를 맞았다.

SK그룹 전 계열사와 임직원들은 지난해 말 송년회는 물론 크고 작은 모임들까지 전혀 엄두를 내지 못했다. 심지어 1953년 창립 이래 처음으로 그룹 단위 시무식도 갖지 못했다.

SK그룹은 매년 1월 첫 번째 월요일 오전 워커힐호텔에서 최 회장과 주요 계열사 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한해 경영 화두와 비전을 공유하는 시무식으로 새해 경영을 시작했었다. 최 회장은 지난해 시무식에서 “세계 각 지역에 기업가치 100조원의 회사를 여러 게 만들어 나가자”는 비전을 발표하며 ‘붕정만리(鵬程萬里·붕새를 타고 만리를 난다는 뜻으로 원대한 계획을 비유) 경영’을 선포한 바 있다.

SK 측은 “검찰의 수사가 1년 이상 계속되고 있고 최 부회장이 구속되면서 그룹은 사상 최악의 국면을 맞고 있다”며 “글로벌 금융위기와 북한발 대형 이슈 등 경영 안팎의 이슈들이 산적해 있는 상황에서 당초 지난 2일 개최 예정이던 그룹 시무식마저 취소되면서 그룹 전체가 공황에 빠진 것 같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최 회장 ‘정공법’ 돌파 선택
그룹 전사적 경영정상화 노력


특히 SK그룹은 최근 몇 년 동안 최 회장까지 나서서 글로벌 성장을 위한 방안의 하나로 강력하게 추진해 온 대형 해외사업들에도 차질이 생기지 않을까 크게 우려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SK와 관련한 투자자나 협력업체 등 모든 이해관계자들의 불안감도 증폭되고 있다.

SK 한 협력업체 사장은 “검찰이 SK그룹을 왜 이렇게 물고 늘어지는지 모르겠다. 저러다 큰일 나는 거 아닌지 몰라 초초하고 불안하다”며 “만약 SK그룹이 잘못되거나 자포자기 하면 대한민국 경제가 휘청거릴 정도로 후폭풍이 거세게 불 것”이라고 걱정했다.

SK그룹은 재계 3위의 기업이다. 그만큼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얘기다. 또 하이닉스의 경영정상화까지 책임지게 됐기 때문에 세간의 관심은 당연하다.

최 회장은 최악의 상황에서 피해를 최소화시키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최 회장이 선택한 돌파구는 ‘정공법’. 최 회장은 최근 인수업체인 SK그룹에 대한 검찰 수사로 경영정상화의 우려가 제기되자 직접 하이닉스를 찾았다. 그가 하이닉스에서 던진 말은 “하이닉스의 경영정상화와 성장을 위해 먼저 뛰겠다”는 것이었다. 이 한마디로 우려가 완전히 불식된 것은 아니지만 시장은 다음날 주가 상승으로 반응했다.

그리고 최 회장은 그룹 CEO들을 대상으로 비상 경영회의를 소집했다. 최 회장은 이 자리에서 “여러 의혹이 제기되고 있지만 신뢰를 갖고 한마음 한뜻으로 위기에 대처해 달라”며 “경제가 어렵고 위기일수록 위축되지 말고 흔들림 없이 경영에 매진해 어려운 국가 경제를 위해 열심히 뛰어 달라”고 당부했다.

최 회장은 검찰청에서 북한발 이슈를 점검하기도 했다. 최 회장은 검찰의 소환 조사를 받다 잠시 휴식시간 도중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곧바로 변호인과 실무진을 통해 김영태 SK㈜ 사장에게 북한 변수에 따른 조치를 지시했다.

이날 20시간에 걸친 밤샘 조사를 받고 새벽에 귀가한 최 회장은 다음날 오전 일찍 회사로 출근해 SK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출근하자마자 CEO와 임원들을 불러 북한발 이슈로 인한 파장과 영향 등을 보고받고 만전을 기할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최 회장은 SK글로벌 사태 때도 ‘시장 신뢰 없이 불가능하다’는 판단 아래 정공법을 선택한 적이 있다. “아무리 좋은 방안도 시장에서 싫어하면 안하겠다”던 최 회장은 ‘시장 기대가 100이라면 130, 150을 하는 것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만약 SK 잘못되면 
한국 경제가 휘청”

실제로 당시 최 회장은 실무진들이 3년에 걸쳐 사외이사 비율을 70%(대표이사를 경질할 수 있는 비율)로 올리겠다는 안을 보고하자 “그럴 필요가 뭐가 있냐. 바로 70% 하라”고 지시했고, 결국 경영권을 지킬 수 있었다. 이를 두고 시장에선 최 회장의 벼랑끝 정공법이 먹혔다는 평가가 나왔다.

SK그룹은 ‘지루한 검풍’에서 헤어 나오기 위해 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으나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검찰 수사가 더 늘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더욱 그렇다. 이런 불투명한 상황에서 최 회장의 정공법도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검찰이 갈 길 바쁜 SK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다. 이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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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