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상소’ 올린 한나라당 정태근 의원

“MB정권 불신의 뿌리는 ‘낙하산 인사’에서 비롯”

[일요시사=서형숙 기자] 과거 국왕의 판단이 잘못됐으면 충신들은 목숨까지 내던지며 간언을 그치지 않았다. 국왕이 쓰디쓴 직언을 삼키면 기울어져가는 나라는 기사회생했고, 달콤한 아첨에 휘둘리면 나라는 기우는 것이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현재도 마찬가지. 최근 현정권에 민심 이반이 속출하는 가운데 직언을 담은 상소를 올린 사람이 있다. 바로 정태근 한나라당 의원이다. 정 의원은 MB정권의 개국공신이자 집권여당의 초선의원이라 매우 이례적이라는 평이다. 대통령 최측근 인사에서 ‘쓴소리맨’으로 변신한 정 의원을 <일요시사>가 만나봤다.

MB에 대국민 사과와 변화 요청한 친이직계들의 ‘일침’
당 대표의 쇄신안은 순서도 틀렸고, 내용 강도 떨어져

대한민국의 역사 가운데 가장 훌륭한 리더십을 선보인 왕을 꼽으라면 단연 세종대왕이 1순위로 꼽힌다. 세종은 백성의 마음을 얻는 것을 정치의 본질로 삼았음은 물론 신하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소통의 리더십’을 펼쳤다. 특히 세종실록에는 “모든 일은 위에 있는 사람이 비록 옳다고 말 할지라도, 아래 있는 사람이 마음속으로 그른 것을 알면, 진언(進言)하여 숨김이 없어야 마땅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최근 세종의 뜻을 이어 직언이 담긴 ‘현대판 상소’가 등장해 눈길을 끌고 있다.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와 더불어 청와대 참모진 교체와 747공약 폐기 등 강도 높은 변화를 요구하는 내용이 담긴 ‘쇄신 연판장’을 청와대에 전달한 것. 이러한 연판장의 내용은 야당 의원들의 주장이 아니다.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이다. 특히 정두언‧정태근‧임해규‧조전혁‧주광덕 의원 등 친이계가 주도하고 나서 이례적이라는 평이다.

이 중 친이직계로 분류되는 정태근 의원은 이 대통령의 서울시장 재임시절의 정무부시장을 역임했고, 친이계의 모임이라 할 수 있는 ‘안국포럼’에 소속돼 있다. 게다가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캠프 수행실장 등을 맡아 현 정부의 ‘개국공신’으로 꼽힌다. 이런 그가 그 어느 때보다 절박한 심정으로 대통령에 변화와 대국민 사과를 요구하고 나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는 임기말 선거정국이면 항상 정권심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대통령은 탈당해 집권여당의 부담을 덜고자 했지만 결코 탈당은 바람직하지 않고, 선거도 못 이긴다는 입장이다. 때문에 당이 MB정권의 공과를 짊어지는 자세로 반성과 변화가 필요하고 그런 점에서 대통령이 주도적으로 변화에 동참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 의원은 등 돌린 민심을 되돌리지 못할 경우 한나라당은 버림받는 정당이 될 것이며, MB정부는 실패한 정부로 귀결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는 또 당 지도부 역시 선거 패배를 가져올 만큼 변화에 부응하지 못한 점과 당 대표의 선거 패배에도 “사실상 승리다” “무승부다”라고 말해 국민에게 상처를 준 점에 대해서도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정 의원은 이어 당 대표의 쇄신안을 정면 비판하면서 진정한 쇄신은 국민 피부에 와 닿는 정책기조의 변화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 대통령의 사과와 쇄신을 요구하는 ‘쇄신 연판장’을 청와대에 전달했다. 청와대 참모 교체와 747공약 폐기 등 굉장히 강도가 높은데.

▲ 국민들은 지난 6‧2 지방선거부터 이번 10‧26 재보선까지 여당에게 매를 든 것이다. 특히 4‧27 재보선 당시 분당을 패배로 이전 지지자들까지 등을 돌렸음을 확인했다. 이러한 위기에 등 돌린 지지자와 성난 민심을 되돌리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이번에도 변화가 없으면 한나라당은 버림받는 정당이 되고, 이는 MB정부의 실패로 귀결된다. 때문에 다른 어떤 때보다 절박한 심정과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이전보다 변화의 요구 강도가 높았다.

- 선거에서 패배하면 항상 쇄신론이 나오지만 대부분 헛구호에 그친다. 이전에 비하면 쇄신 서명에 25명이라서 동력도 약해진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 그동안 4차례에 걸쳐 쇄신을 단행해 일정 변화는 있었지만 국민들 피부에 와닿는 변화를 못 보여줬다. 이에 우리는 쇄신파라는 허울 좋은 이름만 얻었고, 불철저 했다는 반성이 있었다. 이에 어떤 때보다 강도 높은 쇄신을 요구하는 수준이었기에 서명 참여자 25명 결코 적지 않다고 본다.

- 청와대에서는 쇄신 연판장에 유감을 표명했다.

▲ 청와대는 이전부터 타이밍을 못 맞추는 곳이다. 항상 인사도 느리고 국민적 요구도 시기에 맞추지 못했다. 때문에 이번의 문제제기에 대해서도 답변이 금방 나올 것이라고는 기대도 안했다. 그러한 가운데 청와대에서 형식과 시기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했다. 하지만 저는 이전 의원총회부터 청와대에 변화의 의지가 없다면 심각한 문제제기가 있을 것이라 누차 강조했고, 또 서한을 보낸 것도 대통령이 돌아온 6일이다. 기자들의 취재과정에서 일찍이 공개된 것일 뿐. 때문에 청와대는 오히려 왜 이런 문제제기가 되었는지에 대해 더 깊게 성찰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된다.

- 청와대 쇄신이 중도 좌초할 경우 대응 방안은?

▲ 먼저 당 지도부에 드리는 서한을 통해 지도부가 직접 대통령을 만나 변화와 사과의 약속을 받아내는 등 직접 쇄신의 주체로 나서주길 바란다고 얘기했다. 이것이 실천되지 못하면 지도부가 설자리 좁아질 것이다. 혁신에 공감하는 의원들이 문제제기를 하며 주도적으로 나설 것이다. 일단 지도부의 결과를 보고 앞으로의 상황을 논의를 해나갈 것이다.


- 홍준표 대표가 ‘중앙당사 없애고, 비례대표의 반은 국민경선인 슈퍼스타K 방식으로 하겠다’ 등의 쇄신안을 발표했다.

▲ 당의 쇄신 방향은 순서가 틀렸고, 본질적인 내용에 있어 강도가 떨어진다. 먼저 정책에 대한 쇄신이 가장 중요하다. 그 다음은 당청관계에 대한 혁신이다. 청와대에 무기력한 정당이 아니라 이끌어가는 여당의 모습이 필요하다. 마지막이 인물과 내부풍토를 바꾸는 순서로 진행돼야 한다. 지금껏 여당은 국민들의 고통을 해소해 줄 수 있는 적절한 방안마련이 미흡했고, 적극적으로 실천도 못했다. 이에 국민들은 여당에게 무책임한 느낌, 웰빙‧부자정당 이미지가 심어졌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이 급선무지 중앙당사 폐쇄 등은 그 후의 일이다. 

- 부자정당 이미지를 씻기 위한 노력은?

▲ 저는 MRO사업의 대기업 독식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다. 또 정두언 의원을 중심으로 추가감세 철회를 사실상 관철시켜 나가는 과정에 있다. 최근에는 부자증세 문제가 논의되고 있다. 소득 최고구간 8800만원 이상의 소득자가 대폭 늘었다. 또 작년 기준으로 상위 1% 소득은 2억4000만원 정도다. 이분들에 대해 좀 더 높은 소득세율 적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마련된 추가적인 재원은 복지에 투입하는 것이다. 대학생 등 미래세대를 위한 투자나 특히 3040세대를 위한 보육‧사교육‧주택문제에 예산을 투여하는 것이다. 또 대기업 규제‧비정규직 문제는 정부의 의지만 있으면 획기적 대책으로 비용이 없이 해결 가능한 사안이다. 이처럼 국민들의 피부에 와 닿는 획기적 정책으로 부자정당 오명을 씻어내야 한다.

- 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문제 때문에 시끄러웠다. 도덕불감증에 걸린 정부란 비판이 나온다.

▲ 사저문제는 대통령 퇴임 후 가장 중요한 사안인데 공식적으로 청와대 실장을 비롯한 수석비서관 사이에서 논의 되지 않은 것이 첫 번째 문제다. 또 경호처와 대통령 사저 땅 가격에 차이가 국민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 두 번째고, 세 번째는 왜 아들 명의인가다. 이에 대통령께서 원점에서 재검토를 지시한 것은 적절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대통령께서 지금껏 외쳤던 공정과 이 정권은 도덕적으로 완벽하다고 한 것이 정면 배치됐다. 때문에 대통령이 직접적 책임이 없다손 치더라도 국민들에게 사과 하는 것이 먼저다.

- 청와대의 인사방식에도 비판 여론이 강하다.

▲ 국민들한테 불신의 가장 큰 원인이 대통령의 인사문제다. 처음 조각부터 국민정서를 고려하지 않아 실망을 줬다. 대통령의 생각은 일만 잘하면 된다지만, 국민들은 일을 잘하는 것과 동시에 도덕성, 자질을 본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납득이 어려운 재산형성은 국민정서에 반하는 사안이다. 게다가 여러 차례 문제가 제기된 측근들을 반복적으로 다시 등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제는 남은 기간이라도 대통령께서 낙하산‧회전문 인사를 안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실천해 국민신뢰를 회복시켜야 한다.

- 10‧26 재보선은 내년 선거의 바로미터였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어떻게 전망하는지? 

▲ 총선이 대선의 길목이 아니라 대선만큼 중요하다. 총선에서 정권심판 형태로 가서 소수당으로 전락하면 대선으로 가는 과정에서 정상적인 국회 운영이 어렵고, 현 정부도 국회 지지를 받기 어려워 반쪽정부로 전락하게 된다. 현재 무상급식 투표나 서울시장 선거에서 보듯 수도권이 어려워졌다. 게다가 부산‧경남‧울산도 위기감이 팽배하다. 핵심적 이유는 40대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해서다. 과거부터 40대에 이기지 못하면 선거에서 이기는 정당이 없었다. 2030의 어려움과 소통도 주력해야 하지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할 점은 40대에 대한 보다 획기적인 대책과 설득이 필요하다. 그것을 해내지 못하면 2004년 탄핵 직후 역풍으로 인한 선거와 비슷할 양상으로 갈 수 있다.

- ‘안철수 신드롬’에 대한 견해는?

▲ 기존 정치인에 대한 불신에 비해 안철수 교수가 행보는 참신했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반성해야 한다. 정치에 참여할 생각이 있다면 본인이 갖고 있는 정치철학, 본인이 만들고자 하는 사회, 그것을 관철시킬 구체적 정책과 방법 등 이런 부분에 대해 구체적으로 국민들에게 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정치라는 것은 부단히 검증받는 것이다. 박원순 시장도 많은 검증들이 이뤄졌듯 검증을 피해서는 안 된다.

- 지난달 21일 국회 본회의에서 경제분야 대정부질문 대신 ‘18대 국회 반성문’을 읽어 눈길을 끌었다. 격식을 파괴했고, 긍정적 반응이 이어졌는데 당시를 회상하면?

▲ 18대 국회 내내 국민의 지탄을 받았고 심지어 불신이 더 커졌다. 정당정치의 위기는 본질적으로 의회정치가 정상적으로 가동되지 못했고, 국민들 보기에는 파당적 이해관계에 몰두해 싸움판으로 치닫는 것으로 비춰져서다. 이러한 관행을 끊어야 하기에 나와 다수당인 한나라당부터 반성하고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에 당시 선진국회로 가는 기틀을 만들자고 여야에 호소한 것이다. 여당 내의 ‘국회 바로 세우기’와 민주당 내의 ‘민주적 의회운영을 위한 모임’을 중심으로 물리력을 막는 규정, 어려워진 직권상정, 무리한 의사진행에 합법적 저지 방안을 마련해놨다. 이번 국회에서 통과만 시키면 된다. 이를 토대로 19대 국회가 선진화돼 국민적 요구에 부응한다면 18대 국회의 잘못들을 용서받을 수 있다고 본다. 이에 감히 한 개인이 요청한 것이고, 당시 15분간 준비해간 반성문을 읽었다. 당시에 야당 측에서도 감명 깊게 들었다고 격려를 받았다.

민심 되돌리지 못하면 한나라 2012 총대선 희망 없다! 
국감 시즌만 되면 ‘물 만난 정태근’ 단골 국감스타 등극


- ‘한미FTA 비준안’ 처리를 놓고 야당은 몸싸움도 불사하고 있는 상황인데 의회정치 복원관점에서 봤을 때 탈출구는?

▲ 원내대표단에서는 합의까지 나온 상황이다. 게다가 애초 야당이 99% 마련한 상태인데 물리력으로 막겠다는 것은 적절치 않다. 최소한의 합의를 깨버리고 물리력을 동원한다면 의회에 있으면 안 되고 거리로 나가 혁명해야 한다. 자신의 주장 전부를 얻지 않으면 의사진행에 협력할 수 없다는 것은 의회 정치인의 자세가 아니다. 여당 역시 야당에 있는 합리적 의원들 중심으로 대화와 설득을 더 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물리력 없이 한-EU FTA처럼 통과가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 국회 지식경제위원회에서 여야의 기라성 같은 의원들이 포진해있지만 국정감사 시즌만 되면 단골 국감스타가 된다. 소회를 밝히신다면?

▲ 공기업 및 산하기관이 많아 국회의원 혼자 하기 힘들다. 사실상 의정활동을 뒷받침한 보좌진의 역할이 컸다. 대기업의 MRO 문제도 사실은 보좌진들이 찾아낸 것이다. 보좌진의 내용을 충분히 숙지하고 내가 문제제기를 덧붙여 개선의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특히 저는 대정부질의나 예결위 상임위 때 원고를 안 본다. 그러다 보니깐 심각하고 설득력 있게 전달되는 점도 있었던 것 같다.

- 대기업 독식 구조를 폭로하며 삼성 등의 MRO사업 철수 등을 이끌어내 ‘중소기업 호민관’으로 불린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발전 어떻게 가능할까?

▲ 첫째는 대기업의 중소기업 시장에 대한 잠식을 제한해 중소기업 시장을 열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소모성 자제, 정보화 사업, 음식 캐터링 사업, 물류사업 이런 부분은 정부나 공공기관이 중소기업에 우선 배려를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대기업의 힘으로 인한 불공정 거래를 막아주는 것이 중요하다. 공공부문을 제외한 대기업의 독식구조는 과세의 형태로 규제할 수 있고, 중소기업자단체가 나서 원가가 오르면 납품단가가 반영될 수 있도록 대기업과 주도적 협상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지금은 이의신청만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정부가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정해서 키워주는 것도 필요하다.

- SNS가 정치권에 미치는 파급력이 커 보인다.

▲ 한나라당이나 보수 진영에서 트위터 공포증에 걸려있는데 저는 다르게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콘텐츠라는 것이다. 트위터 자체가 아무리 위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정당한데도 우리를 왜곡시키고 조작시켜 엎을 수 있는 위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현재 트위터의 조롱거리를 지금 우리가 제공하는 것이다. 분명 선거에서 졌는데 ‘진 것도 이긴 것도 아니다’고 하고 있다. 앞으로 트위터에 대해 힘 있는 접근 방법성도 중요하지만 젊은이들과의 진정성 있는 대화 창구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 2030세대는 진보적 성향이 강하다. 이들은 어떻게 한나라당 지지자로 껴안을 수 있을까? 

▲ 요즘 20대의 특성은 자존심, 창의성, 일자리, 사회적 참여 욕구 네 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때문에 보수적인 기성세대들이 젊은 계층의 삶의 양식을 존중해 자존심을 살려 줘야 한다. 또 젊은 사람과 소통하며 의사결정에 참여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요즘 젊은층은  힘들더라도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한다. 그러한 차원에서 1인창조기업을 활성화시켜 스스로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것, 그것만으로도 먹고 살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을 만들어 줘야 한다. 이러한 것들이 이뤄졌을 때 젊은 층의 지지가 돌아올 것으로 본다.
대담=서형숙 기자

<정태근 의원 프로필>

▲1989 연세대학교 경제학 학사 
▲2010 연세대학교 경제대학원 석사
▲2000 한나라당 성북갑 지구당 위원장
▲2001 한나라당 국가혁신위원회 정치분과위원
▲2005~2006 서울특별시 정무부시장
▲2007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조직분과 간사
▲2007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수행단 단장
▲2008 제18대 한나라당 국회의원
▲2008 이명박 대통령당선인 4강외교 특사단
▲2008 국회 지식경제‧예산결산‧운영위원회 위원
▲2010 제1호 발로 뛰는 국회의원 호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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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