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입수> KT&G 내부 괴문서 공개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8.10.29 10:44:22
  • 호수 11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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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K 카르텔’이 꽉 잡고 있다?

[일요시사 취재 1팀] 박창민 기자 = KT&G의 ‘내부 사장 승진 원칙은 철옹성 같다. 역대 모든 정부의 외풍을 견딜 만큼 견고했다. 하지만 철옹성 같은 원칙에 이면이 있었다. 이 때문에 조직이 휘청거리는 갈등에 치달았다. <일요시사>가 내부 관계자로부터 입수한 ‘KT&G 경영실태 보고서’는 전임 사장들로부터 이어지는 특정 인맥이 경영진을 장악해 패거리식 기업으로 전락했다고 지적했다.

공기업 민영화의 성공모델 KT&G. 민영화 이후 20여년간 내부 인사가 최고경영자에 올랐다. 역대 모든 정권서 KT&G에 낙하산 인사를 투입하려고 했지만, 실패로 끝났다. 

이명박정부 때 임명된 민영진 전 KT&G 사장은 KT&G가 민영화되기 전인 전매청 시절부터 근무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촌 처남인 김재홍 전 KT&G 사장의 최측근이었기 때문에 ‘친이(친 이명박)’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그래도 내부 출신이었다. 

누가?
무슨 이유로?

박근혜정부는 KT&G 사장 자리에 노골적으로 눈독을 들였다. ‘최순실 국정 농단’ 수사 과정서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KT&G 사장 후보자를 인사 검증한 문건이 발견됐다. 2015년 대대적인 검찰 수사로 민 전 사장을 끌어내렸다. 

하지만 민 전 사장은 측근인 백복인 당시 전무를 후임으로 정하면서 사실상 KT&G 사장 자리를 물려줬다. 박근혜정부의 낙하산 투입은 실패했다. 


문재인정부도 KT&G 사장 인사에 관여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기획재정부는 KT&G의 2대주주인 기업은행을 통해 백 사장의 연임에 공식적으로 반대하면서 판을 흔들었다. 그런데도 백 사장은 정부의 외풍을 뚫고 연임에 성공했다.  

KT&G는 ‘사장은 내부 출신’이라는 철옹성 같은 원칙 덕분에 민영화 기업인 포스코, KT에 비해 정치권 입김에 자유롭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이 원칙에 또 다른 속사정이 있다. 이 속사정 때문에 KT&G가 흔들리고 있다. 

KT&G 내부가 전임 사장들로부터 이어지는 ‘TK 카르텔’로 오랜 반목이 이어지고 있다는 문건을 <일요시사>가 입수했다. ‘KT&G 경영실태와 올바른 방향’이라는 제목의 문건을 보면 ‘10여년 걸친 TK 고향의 TK대학 출신자 중심 핵심경영층 독점’이라고 지적했다.

해당 문건은 KT&G 고위 관계자들이 내부 자료를 취합해 만든 문건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KT&G 내부 관계자들이 기획실 등 주요 부서의 자료를 토대로 작성했다. 회사 내부가 어떤 문제가 있는지 정리한 자료”라고 귀띔했다. 

문건에 따르면 경영진 행태에 대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행태 반복’이라고 지적했다. 김·민 전 사장과 백 사장에 이어지는 특정 인맥이 경영층 독점 및 지배세력을 구축하고 있다. 

철옹성 같은 내부 승진 원칙    
‘경영실태 보고서’ 보니 ‘헉’

지난 7월1일자로 민 전 사장이 KT&G복지재단 이사장에 올랐다. 


KT&G 내부 관계자는 “백 사장 승인 없이 민 전 사장이 KT&G에 복귀하는 건 불가능하다. 민 전 사장은 비리로 검찰 수사 때 사임한 전 사장이기 때문에 다시 돌아오는 건 악수”라고 말했다. 이어 “백 사장은 민 전 사장의 최측근이다. 이들은 KT&G ‘TK 카르텔’의 정점”이라고 설명했다.

문건은 또 KT&G복지재단 이사 중 일부가 민 전 사장의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일간지 기자 출신인 이모씨는 민 전 이사장이 추천, 탤런트 이모씨는 고모 전 KT&G 사외이사의 추천으로 선임된 것으로 전해진다. 

문건에 따르면 고 전 이사는 민 전 사장과 두터운 친분 관계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백 사장의 추천으로 고 전 이사는 2016년 2월 KT&G 사외이사에 올랐다.  

KT&G의 주요 지배 세력은 TK 출신인 것으로 보인다. 문건에 따르면 출신 지역(대구·경북), 출신대학(영남대, 경북대, 계명대, 대구대)이 모두 TK 지역인 특수한 형태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견고함이 강화됐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역량 있고, 의식 있는 임직원의 성장 기회가 박탈됐다. 인사적 소외와 퇴출이 반복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문건은 전했다.

백 사장이 회사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연임과 임기유지에만 몰두한 것으로 전해진다. 백 사장은 연임을 위해 정부와의 협의 내용도 폭로하겠다고 이사회를 협박했다고 한다.

지난 5월16일 MBC가 보도한 ‘기획재정부의 KT&G 사장 인사개입 정황 문건 입수’ 보도가 KT&G의 기획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해당 보도는 기재부가 기업은행을 통해 백 사장 연임에 반대했다는 내용으로 당시 파문이 일었다.

문건에 따르면 백 사장이 지난 1월 해당 기재부 문건을 입수했다. 청와대 민수석실의 지인으로부터 입수했다는 설이 파다하다. 이후 지난 1월26일 이사회서 관련 내용을 설파한 것으로 전해진다.

10년간 KT&G 사장
특정 인맥이 장악?

문건에는 또 현재 백 사장이 금융감독원의 정밀감리 대응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써있다. 지난 3월부터 금감원은 KT&G 인도네시아 트리삭티 인수 의혹에 대해 정밀감리에 착수했다. KT&G는 2011년 인도네시아 담배회사인 트리삭티를 인수했다. 

이후 이중장부로 인한 분식회계, 자산 과다계상, 에스크로 자금 지급, 베트남 수출선 무상 양도 등 불법을 저질렀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백 사장은 당시 전략기획본부 본부장으로서 해외 신사업을 주도한 인물이다. 전 임직원들은 지난 1월 백 사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문건에 따르면 백 사장은 금감원 감리가 시작되자, 김앤장을 로펌으로 선정했다. 금감원의 요구 자료 제출을 최대한 늦추는 방법 등으로 현재까지 대응하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문건에는 KT&G 현 경영진에 대한 평가도 있다. 신뢰가 낮고, 미래에 대한 비전 상실로 전반적인 분위기가 침체돼있다고 전했다.


올해 2월 회사는 임직원 30∼50명에 대해 휴대폰 압수조사로 공포분위기를 조성했다. 인권침해소지가 다분했지만, 임직원들은 생존을 위해 어떠한 저항도 못했다고 문건은 전했다. 지난 7월에는 KT&G가 대대적으로 임직원 컴퓨터를 교체했다. 문건에는 ‘노후 PC교체 명분이었지만 규모·前例(전례)·시기로 볼 때 향후 검찰 수사 대비 일환’이라고 기재돼있다. 

특정 인사들 쥐락펴락…
임직원 성장 기회 박탈?

최근 KT&G 관련 내부고발성 글에 등장한 A사외이사와 관련된 내용도 해당 문건에 자세히 나와 있다. A이사는 도를 넘는 경영·인사 개입으로 도마에 올랐다. 심지어 지난 16일 오후 5시경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왜 우리 KT&G는 A사외이사의 놀이터가 돼야 하나요?’라는 글까지 올라왔다. 

A이사는 충남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로 국내서 손꼽히는 회계 전문가다. KT&G 이사회 8명(사내이사 2명·사외이사 6명) 중 3명이 A 이사의 지인인 것으로 전해진다. 사외이사 구성을 보면 회계 전문 3명, 정관계 2명, 기타 1명으로 채워졌다. 회계 전문 이사들은 모두 A이사와 관련된 것으로 전해진다.

KT&G가 재선임한 이모 이사는 한국세무학회 이사장이다. A이사와 함께 KT&G 사외이사였던 이모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의 사단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신규 선임된 이모씨는 외국계 의류기업의 재무, 운영 담당 전무로 근무 중이다. 

A이사의 대학 동문의 부인인 것으로 전해진다. 문건에 따르면 A이사가 이씨를 KT&G 사외이사로 추천했다고 평했다. 


사내 인사개입, 과도한 경영개입 등 전횡을 일으키고 있다고 문건은 전했다. 

KT&G 내부 관계자는 “A이사가 이처럼 KT&G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이유는 백 사장의 약점을 쥐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A이사는 앞서 KT&G 인도네시아 트리삭티 인수 의혹을 조사했던 당사자다. 

앞서 관계자는 “A이사는 아직 드러나지 않은 백 사장의 비리를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인사”라고 설명했다.

직원들 휴대폰 압수 조사 왜?
경영·인사 개입 사외이사도

문건에는 전임 사외이사의 실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앞서 KT&G복지재단에 탤런트 출신 이사를 추천한 고 이사는 2016년 3월 BH(청와대)내정 주장으로 KT&G 사외이사에 입성했다. 또 BH 추천 사칭 등 문제로 그해 8월경 비밀리 사임각서 제출 후 식물이사로 전락했다고 한다. 그 다음해 3월 주총서 사임했다.

단국대 교수인 손모 전 KT&G 사외이사는 2015년 2월 선임됐다. 2016년 7∼8월 조교 성추행혐의, KT&G 중국 개발 사업 강요와 이권개입 등 문제로 그해 12월 사임했다. 대전국세청장이었던 박모 KT&G 사외이사는 2014년 3월 선임됐다. 세무조사 무마 등 개인 비리 의혹으로 사임했다. 

비리 혐의 사임
전 사장의 컴백

KT&G 측은 이 문건에 대해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KT&G 관계자는 “해당 문건은 회사 차원서 만들어진 게 아니다.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cmp@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KT&G 입장은? “사실과 다른 부분 많다”

KT&G 측은 ‘KT&G 경영실태와 올바른 방향’문건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회사 관계자는 “관련 문건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다. 다만 당사의 성장과 발전을 바라는 의도로 여겨진다”고 답했다. 다음은 회사 관계자와의 일문일답.

-해당 문건에 대해 사측은 알고 있었나?
▲당사는 관련 문건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다. 다만, 추측건대 아마도 당사의 성장과 발전을 바라는 의도라고 여겨진다. 

-문건에서는 10여년 간 KT&G 경영진이 TK 출신 중심이 독점했다고 한다. 
▲사실과 다르다. 우선 역대 KT&G 사장의 출신은 특정 지역과 학교에 한정돼있지 않다.(백복인 사장: 경북/영남대, 민영진 전 사장: 경북/건국대, 곽영균 전 사장: 인천/서울대, 곽주영 전 사장: 전남/부산대) 당사의 사장은 사외이사들로 독립적으로 구성된 사장후보추천위원회 엄정한 심사에 거쳐 추천되고 이사회 및 주주총회 의결을 통해서 선임된다. 60여명인 임원들의 출신 또한 특정 지역과 학교에 편중되지 않고 다양하게 분포돼있다.

-특정 인맥이 인사를 독점해서 임직원이 기회를 박탈당하고 소외됐다고 문건은 전했다. 
▲사실과 다르다. 조직 내의 경쟁구도 속에서 탈락하게 되면 일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고, 이는 비단 당사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검찰 수사를 받고 사임한 민영진 전 KT&G 사장의 KT&G복지재단 이사장 복귀가 부적절하다는 시각이 있다.
▲사실과 다른 점이 있다. KT&G복지재단은 동 재단의 이사회에서 당사의 사회공헌 철학을 가장 잘 이해하고 실천할 적임자로 민영진 전 사장을 추천, 선임한 것으로 알고 있다.

-최근에 불거졌던 A사외이사 문제에 대해서 회사 차원 입장은?
▲최근 국민청원의 A이사 관련 내용은 당사 직원이라고 밝힌 청원자의 개인적인 의견 내지 주장이다. 이러한 의견은 존중하지만, 내용 중에는 당사가 알지 못하는 개인적인 부분, 소문 내지 추정 등이 포함돼있어 사실관계 확인이 필요하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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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검찰의 문제는 지금까지 권력자가 검찰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때문에 검찰도 못된 버릇이 들어 이렇게 됐다. 개혁보다 “검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진짜 문제다.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 -이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를 주중대사로 임명했다. 노 대사가 어떤 역할을 할 것 같은가? ▲노 전 대통령은 한중 수교를 이끌었다. 노 대사는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으로서 한중 문화 교류와 관련된 많은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이 이를 참작해 중국 대사로 임명하는 신선한 인사를 한 것 같다. 이 대통령도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니 노 대사를 임명했을 것이다. -최근 민주당의 내부 구도를 놓고 ‘김어준 상왕설’이 불거지고 있다. 이 주장은 정국을 강경하게 이끄는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대응과 맞물리고 있는데… ▲김어준씨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일정 부류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런데 대중에게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진 않는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상왕설’은 너무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관련해 정 대표와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충돌했다. ▲내부 의견 충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내가 보기엔 김 원내대표가 독단적으로 합의한 것 같진 않다. 합의 후 강성 지지층이 반발해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합의를 파기하려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는 과거에 갈등이 많았고, 최근 민주당에 대해선 “친명과 구 친문이 갈등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건 다 괜히 하는 소리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는데, 당 대표가 대통령을 상대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가 쉽진 않다. -민주당 일각에선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 합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혁신당 조국 비대위원장은 목표가 정해진 사람이다. 합당이 그 목표 실현에 유리할지 많이 생각할 것이다. 아울러 조 비대위원장으로선 혁신당만으로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 고민할 텐데, 상황에 직면하면 합당 여부를 정하지 않겠나? 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