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판 ‘11월 괴담’ 총력 추적

11월에 떠난 기업총수 수두룩 ‘추도의 달’

[일요시사=송응철 기자] 연예계에서 11월은 ‘잔혹한 달’로 통한다. 이때만 되면 자살, 사망 등 각종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세간에서 ‘11월 괴담’이라는 얘기가 회자되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이에 따라 연예인들의 표정엔 올해 괴담의 주인공이 자신이 되진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런데, 11월 괴담은 비단 연예계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재계에도 11월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이달에 유독 많은 기업 총수들이 세상을 떠난 게 바로 그 이유다.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
‘맨땅에서 국내 1위 그룹’

삼성그룹 창업자인 고 이병철 회장은 1987년 11월19일 타계했다. 경상남도 의령에서 태어난 고 이병철 회장은 중동중학을 졸업한 후 일본 와세다대학 전문부 정경과에 입학했다 1934년 중퇴했다. 1936년 마산에서 협동정미소를 세워 사업에 첫발을 들였으며, 1938년 자본금 3만원으로 삼성그룹의 모체인 삼성상회를 설립했다.

1951년 부산에서 삼성물산을 세워 무역업을 하면서 1953∼1954년 제일제당과 제일모직을 설립, 제조업에서 크게 성공을 거뒀다. 이후 사업 영역을 크게 확대해갔으며, 1961년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전신인 한국경제인협회 초대 회장에 선출됐다.

1969년 삼성전자를 설립하면서 삼성그룹 육성의 발판을 만들었고 1974년 삼성석유화학·삼성중공업을 설립하여 중화학공업에 진출했다. 이후 용인자연농원·삼성정밀 등을 설립했으며 1982년 삼성반도체통신을 세웠다. 이 밖에도 문화재단·장학회 등을 설립했고, 백화점·호텔 등의 경영에도 참가, 사업의 다각화를 통해 국가경제 발전에도 크게 공헌했다.

#고 최종건 SK그룹 회장
‘5년만에 대기업 일으켜’

SK그룹의 창업자인 고 최종건 회장은 1973년 11월15일 48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경기도 수원 출신인 최종건 회장은 수원 신풍소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의 경성직업학교 기계과를 나와 선경직물주식회사 수원공장 공무부 견습기사로 입사했다.

6·25전쟁 중 정부로부터 폐허가 되다시피한 공장을 매수해 낡은 직기 4대를 조립, 선경직물주식회사를 재건했다. 1953년 직기 4대로 출범한 이 회사는 불과 5년 만에 1000대의 직기를 보유한 대기업으로 발전했다.

1950년대에 들어서도 이 회사는 계속 성장, 1950년대 후반에는 한국 최초로 합성직물인 나일론, 데드론을 생산한 데 이어 1960년대 들어서는 크레폰·앙고라·깔깔이·스카이론 등 각종 직물을 개발해 국민의류생활 개선에 기여했다. 특히 1962년에는 한국 직물 사상 최초로 레이온 태피터를 홍콩에 수출하면서 우리 섬유산업 발전의 신기원을 이룩했다.

선경이 오늘날 국내 유수 재벌기업으로 부상하기 시작한 건 1966년부터다. 당시 선경화섬주식회사를 설립한 데 이어 1969년 9월에는 선경합섬주식회사를 설립, 아세테이트원사공장과 폴리에스테르원사공장을 건설했다. 또 섬유산업의 계열화를 위해 석유산업으로 사업을 넓혀 1973년 5월 선경유화주식회사를, 같은 해 7월에는 선경석유주식회사를 설립했다.

#고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
‘수송보국·인재양성’

한진그룹 창업자인 고 조중훈 회장은 2002년 11월17일 영면에 들었다. 서울 서대문에서 태어난 조중훈 회장은 15세때 부친의 사업실패로 정규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진해 선원학교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가 조선소 직공생활을 했다. 해방 뒤 조중훈 회장은 귀국해 트럭 한대로 인천 해안동에서 수송업체인 한진상사를 차렸다. 이후 57년 동안 오로지 수송보국의 일념으로 외길만을 걸어왔다.

조중훈 회장은 베트남 파병 당시인 1966년 베트남 군수품 수송사업에 뛰어들면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룩했다. 이에 힘입어 한진관광, 동양화재, 대진해운등 많은 계열사들을 설립?인수하면서 재벌급 기업 반열에 들어섰다. 특히 1969년 정부의 강권과 내부의 강한 반대 속에서 인수한 국영 대한항공공사를 세계적 민간항공사로 키우는 데 성공함으로써 오늘날 재계 9위의 든든한 지위를 확보하게 됐다.

조중훈 회장은 항상 국가 이익이 기업 이익에 우선한다는 생각에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소명의식과 자부심으로 국익을 위한 민간 외교 활동에 적극 나서 우리나라를 비롯해 프랑스, 독일, 벨기에, 몽골 등 각 국으로부터 수많은 공로 훈장을 받았다.

또 기업 경영에서 인재 양성을 최우선시했고 육영사업에도 남다른 정열을 쏟았다. 인하대학교, 한국항공대학교의 인수는 물론, 평생교육, 평생직장 분위기 조성을 위해 우리나라 최초의 사내대학을 개설하기도 했다.

#고 조수호 한진해운 회장
‘선친 뜻 이어 받아’

조중훈 회장의 삼남인 고 조수호 회장은 2006년 11월26일에 세상을 떠났다. 고 조수호 회장은 인천에서 태어나 1979년 미국 남가주대(USC) 경영학과를 졸업했으며, 졸업과 동시에 대한항공에 입사해 경영수업을 시작했다.

1985년 한진해운 상무를 시작으로 한진해운과 인연을 맺은 조수호 회장은 1994년 대표이사 사장을 거쳐 2003년 대표이사 회장에 취임한 이래 국내외 해운산업 발전을 위해 왕성한 활동을 전개하는 한편 한진해운이 세계적인 선사로 성장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수행했다.

‘수송보국’이라는 조중훈 회장의 뜻을 이어 눈앞의 이익보다 장기적인 성장을 목표로, 어려운 판단을 할 때 ‘공동의 이익’을 기준으로 삼아 온 것으로 전해진다. 조 회장은 이 같은 믿음을 바탕으로 한진해운이 연간 1억톤 이상의 화물을 수송하는 국내 최대의 해운 기업이자 세계 7위권 규모의 선사로 성장시켰다.

인재양성과 육성사업을 중요시 한 선친의 뜻도 그대로 이어받았다. 1994년 제9대 한국해양소년단 연맹 총재에 선임되면서, 자라나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해양입국의 꿈을 키울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또 1997년 2월부터 2000년 초까지 한국선주협회장으로 활동하면서, 해운관련 금융 및 세제, 국제선박등록제도 등의 합리적인 개선 방안을 모색하는 한편, 대형선사와 중소선사의 공존?공영의 기틀 마련을 위해 노력하는 데 힘썼다.


#고 박용오 성지건설 회장
한국 프로야구 반석에

고 박용오 성지건설 회장은 2009년 11월4일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 회장의 6남1녀 중 2남으로 태어난 박용오 회장은 경기고등학교, 뉴욕 대학을 나와 1965년 두산산업에 입사했다.

이후 두산산업 사장과 동양맥주 사장, OB베어스 사장, 두산그룹 부회장, 두산산업 대표이사 회장 등을 거치며 착실히 경영수업을 받아왔다. 마침내 지난 1996년 두산그룹 회장으로 취임해 2004년까지 8년8개월 동안 두산을 이끌었다.

박용오 회장은 재계에서도 능력을 인정받아 왔다. 박 회장은 회장 취임 전인 1995년 당시 두산그룹의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또 2000년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를 전격 인수하는 등 공격경영의 기치를 올린 것에 대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두산중공업과 두산인프라코어는 현재 두산그룹의 알짜 계열사로 성장했다.

대외활동도 활발히 했다. 한-이집트 경협위원장과 국제상공회의소 국내위원회 부회장을 지냈고 1998년 이후 만 7년간 한국야구위원회(KBO)의 총재를 역임하기도 했다. 금탑산업훈장, 스페인 민간공로훈장, 벨기에 왕실훈장, 한국능률협회 ‘2003년 한국의 경영자상’ 등 수많은 수상경력도 그의 경영능력을 뒷받침하고 있다.

2008년 성지건설을 인수했으나, 차남 박중원씨가 횡령 혐의로 구속되고 경영실적이 곤두박질치는 등의 이유로 큰 스트레스를 받아오다 집안에서 목을 매 자살을 함으로써 향년 7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고 허영섭 녹십자그룹 회장
‘한국 의약품의 아버지’

고 허영섭 녹십자그룹 회장은 2009년 11월15일 작고했다. 한일시멘트의 창업주인 고 허채경 명예회장의 차남인 허영섭 회장은 1964년 서울대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1968년 독일 아헨공과대학을 졸업한 후 1970년 박사과정을 마쳤다. 같은 해 녹십자에 입사한 허영섭 회장은 1980년 대표이사 사장을 거쳐 1992년부터 대표이사 회장을 맡아 왔다. 같은 해 녹십자에 입사한 고인은 1980년 대표이사 사장을 거쳐 1992년부터 대표이사 회장을 맡아 왔다.

평생을 국내 필수의약품 분야를 개척해 수입에 의존하던 값비싼 의약품을 국산화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과거 세계에서 세 번째로 개발한 B형 간염백신, 세계 최초로 개발한 유행성출혈열 백신,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개발한 수두백신 등은 불모지나 다름없던 국내 바이오 의약품 분야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 올린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기업을 경영하면서 사회공헌 활동도 빼놓지 않았다. 허 회장은 선천성 유전질환인 혈우병 환자들의 치료와 재활을 돕는 사회복지법인 ‘한국혈우재단’을 설립해 진료비 지원, 환자 조사 및 등록, 재활, 재단부설 병원 운영 등 지원사업을 펼쳐 왔다. 또 민간연구재단인 ‘목암생명공학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국내 생명공학 연구기반 조성과 과학기술 발전에도 기여했다.

#고 현영원 현대상선 회장
‘해운업계의 거목’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부친인 고 현영원 현대상선 회장은 2006년 11월24일 명을 달리했다. 1948년 서울대 상대를 졸업한 현영원 회장은 1950년 한국은행에 입사해 5년간 도쿄지점 외국부에 근무했다.

현영원 회장은 이후 장인이 된 김용주 전방그룹 회장의 권유에 따라 1956년부터 신한제분과 근해상선의 전무로 자리를 옮겨 해운인의 길을 걷게 됐다. 그는 1960년부터 1964년까지 대한제철의 사장을 역임한 뒤 1964년 신한해운을 창업해 독자적으로 해운업체를 경영하게 됐다.

현영원 회장은 신한해운은 1984년 해운산업합리화 조치에 따라 현대상선에 합병될 때까지 해몽호, 해금호, 해정호, 해수호 등 7척의 선박과 203명의 임직원을 보유한 중견 해운업체로 키웠다. 그래서 ‘해운업계의 거목’ ‘영원한 해운인’으로 불렸다.

현영원 회장이 나중에 사돈이 된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의 인연으로 1984년 현대상선 회장으로 활동하게 됐다. 해운 실무에 해박했던 현 회장은 1995년까지 회장직에 있으면서 오너 경영자인 당시 정몽헌 사장을 잘 이끌어 현대상선을 세계적인 해운업체로 성장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996년 현대그룹의 경영이 정몽구 회장-정몽헌 부회장 체제로 전환되면서 창업 1세대 경영인들이 대거 경영일선에서 퇴진할 때 현영원 회장도 현대상선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이 대북사업에 전념할 때 조언자 역할을 해오다 현정은 회장이 현대그룹 회장에 취임한 뒤 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고 전낙원 파라다이스그룹 회장
‘한국 카지노의 대부’

‘한국 카지노의 대부’ 전락원 전 파라다이스그룹 회장은 2004년 11월3일 세상을 등졌다. 전락원 회장은 서울에서 태어나 1948년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한 뒤 학업을 마치지 못하다가 1997년 명예졸업을 했다.

1950∼1960년대 중반까지 미군부대 군속으로 일하며 사업기반을 닦았다. 이후 오림포스 관광호텔 대표이사로 관광업계에 뛰어든 뒤 1973년 관광공사로부터 워커힐 카지노를 인수하며 국내 카지노 사업의 대표주자로 활약했다. 워커힐 카지노를 통해 막대한 부와 인맥을 쌓았으며 이를 바탕으로 차례로 부산, 제주, 도고, 인천, 아프리카 케냐 등에 파라다이스 호텔을 설립하고 부산과 제주, 인천에도 카지노를 개장했다.

이후 면세점, 건설, 소방용스프링클러 제조, 미디어 분야로 사업영역을 확대하며 파라다이스, 파라다이스부산, 파라다이스건설, 파라다이스미디어아트 등 11개 영리법인과 학교법인 계원학원 등 5개 비영리법인을 거느린 파라다이스 그룹을 일궈냈다.

1993년 외화밀반출 혐의로 옥고를 치렀으나 이후 기업의 사회공헌을 강조하여 2000년 국세청 모범납세인으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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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