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인천빙상장 ‘황제 대관’ 의혹

‘인천의 전명규’ 황금시간대 독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국 빙상계는 수십 년간 전명규 전 대한빙상경기연맹 부회장이 만들어낸 ‘빙상강국’이라는 빛에 취했다. 그 이면에 갑질과 파벌 그리고 독점이 또아리를 틀고 있다는 사실은 ‘금메달’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어렵게 드러난 어둠은 그 근원을 알 수 없을 만큼 뿌리가 깊었다. 최근에는 인천 빙상계에도 ‘또 다른 전명규’가 존재해왔다는 소문이 불거졌다.

1988년 서울 하계올림픽을 치른지 꼭 30년 만에 강원도 평창 일대서 동계올림픽이 열렸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하 평창올림픽)은 개최 전부터 우여곡절이 많았다. 국정 농단 사태로 모두가 실패를 점쳤지만 평창올림픽은 예상 밖의 성공을 거뒀다. 금메달 8개, 종합순위 4위라는 당초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지만 질적 향상을 이뤄낸 대회였다는 평을 받았다.

성공한 대회?
어두운 진실

하지만 마냥 성공적이라고 하기엔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이하 대한빙상연맹)과 전명규 전 대한빙상연맹 부회장이 축제의 오점으로 남았다. 여타 대회와 마찬가지로 빙상 종목서 빼어난 성적을 거뒀지만 그 과정엔 논란이 가득했다. 진상조사 요구가 빗발쳤고 대한빙상연맹은 청산해야 할 적폐로 지목됐다.

지난 5월23일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가 합동으로 실시한 대한빙상연맹에 대한 특정감사 결과가 발표됐다. 평창올림픽 과정서의 여러 논란과 의혹을 밝히기 위해 실시한 감사였다. 감사 결과서 주목할 점은 ‘특정인물’로 지목된 전 전 부회장이 한국 빙상계에 끼친 막대한 영향력이다.

그는 권한도 없이 대한빙상연맹 업무에 개입했고 부회장으로 재임할 당시에는 권한을 남용해 국가대표 지도자의 징계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사임한 이후에도 대한빙상연맹 업무에 전 전 부회장의 입김이 미쳤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또 한국체육대학교(이하 한체대) 빙상장이 특정인들에게만 부당하게 대관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그 배후에 전 전 부회장이 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교육부의 추가 현장 조사 결과 의혹은 사실로 확인됐다. 

전 전 부회장은 빙상장 사용 허가 없이 전 한체대 조교가 자신이 지도하는 고등학생을 데리고 대학생들과 빙상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빙상계 관계자는 “전명규 전 부회장의 영향력은 한체대 빙상장서 나오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훈련하려는 사람에 비해 빙상장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서 대관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한은 엄청난 권력이라는 설명이다. 

최근 전 전 부회장의 빙상장 대관 전횡과 똑같은 사례가 인천 빙상계서 일어났다는 의혹이 나왔다.

빙상장 운영 과정서 전횡 의혹
“마치 개인 사유시설처럼 사용”

선학국제빙상경기장(이하 선학빙상장) 운영 과정서 조성만 인천빙상경기연맹(이하 인천빙상연맹) 부회장이 ‘갑질 대관’ ‘대관 장사’를 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것. 

2015년 3월 개장한 선학빙상장은 인천에 딱 하나뿐인 빙상경기장이다. 주경기장(지상)과 보조경기장(지하) 등 두 면의 빙판에 7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다. 관람석은 3200여석 규모다.


앞서 2015년 2월 말까지는 동남스포피아 아이스링크장이 인천 유일의 빙상장이었다. 1993년 개장한 동남스포피아는 2004년 재정난으로 폐장될 위기에 처했지만 박대성 인천빙상연맹 회장이 인수하면서 명맥을 이어갔다. 동남스포피아에는 박 회장 외에도 조 부회장, 정○○ 이사 등 인천빙상연맹 관계자들이 포진해 있었다.

선학빙상장의 개장과 맞물려 동남스포피아의 폐장이 결정됐다. 선학빙상장은 인천시체육회(이하 체육회)가 인천시의 수탁을 받아 관리하기로 했다. 이때 동남스포피아 소속 강사는 물론 정빙기 운전원까지 선학빙상장으로 옮겨왔다. 

선학빙상장 관계자 A씨는 “시청 공무원과 체육회 관계자들이 있긴 했지만 그들은 허수아비였다”며 “실질적인 운영은 동남스포피아 출신 관계자들이 다 했다”고 전했다.

실제 선학빙상장 별동에 위치한 사무실에는 ‘(주)동남스포피아, 인천광역시빙상경기연맹, 인천광역시장애인빙상경기연맹’이라고 쓰인 대형 스티커가 지난해 4월까지 붙어 있었다. A씨는 “인천빙상연맹은 동남스포피아와 동격으로 보면 된다”며 “강사, 정빙기 관리, 매점 운영까지 돈이 오고가는 자리에 모두 동남스포피아 관계자가 있었다”고 말했다.

독점한 대관
장사했나?

또 A씨는 선학빙상장으로 넘어온 동남스포피아 관계자들이 빙상장 대관에 있어 다른 사람들에게 전혀 틈을 내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조 부회장과 그의 측근들이 빙상장 대관을 독점했다고 강조했다. 

대관은 선학빙상장 매출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실제 ‘2017년 선학국제빙상경기장 수입 현황’에 따르면 매출 17억원 중 8억9000만원가량이 대관 수입이었다.

선학빙상장의 경우 지상에 위치한 주경기장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반인에게 개방돼있어 그 이후 시간대부터 대관이 가능하다. 지하의 보조경기장은 일반인에게 개방되지 않는 대관용이다. 지상은 쇼트트랙과 피겨 선수들이, 지하는 아이스하키팀이 주로 사용한다.

대관을 하려는 사람들은 오후 6∼8시 시간대를 가장 선호한다. 선수들이 학교 수업을 마치고 약간의 휴식을 취한 후 훈련하기에 좋은 시간대기 때문이다. 오후 8∼10시, 오후 10∼12시 시간대도 선호도가 높다. 

이보다 더 늦어지면 다음날 선수들의 학교 수업에 지장이 있어 피겨나 쇼트트랙 강사들은 오후 6∼12시 대관을 잡기 위해 혈안이 돼있다.

대관 업무에 밝은 빙상계 관계자 B씨는 “황금시간대 대관, 특히 지상의 주경기장을 독점한다는 것은 빙상 강습을 통한 수익 사업을 독점한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라며 “조 부회장과 그의 측근들이 오후 6∼12시 시간대를 차지하고 다른 강사들의 진입을 막았다”고 주장했다.

B씨는 2017년 2월 대관표를 예로 들었다. 오후 5∼6시에는 ‘인천빙상’과 ‘장애인꿈나무’가 대관했다. 장애인꿈나무는 인천장애인빙상경기연맹 박○○ 전무이사가 맡고 있다. 오후 6∼8시에는 ‘엘리트피겨’ ‘엘리트쇼트’ 등이 탄다.


B씨에 따르면 엘리트피겨는 인천시 소속 피겨선수팀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인천 등록 선수들과 타지역 선수 희망자, 개인 레슨생들로 이뤄진 사설 피겨클럽이다. 클럽 운영과 수업은 조 부회장의 제자이자 인천빙상연맹 이사로 활동해온 정OO씨가 맡고 있다. 오후 8∼10시는 ‘조성만’ ‘킬러웨일즈’ 등이 빌렸다.

B씨는 “조 부회장은 선학빙상장을 마치 개인 사유시설처럼 사용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조 부회장의 대관 독점 의혹이 인천 빙상계에서는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라고도 했다. 

선학빙상장서 대관 업무를 봤던 체육회 관계자 C씨도 조 부회장의 대관 독점 의혹에 대해 “소문을 들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달마다 다음달 대관 일정을 정하기 위해 회의를 하는데 매번 비슷한 사람들이 왔다”고 덧붙였다.

직접 피해를 당했다는 사례도 나왔다. 또 다른 빙상계 관계자 D씨는 “대관회의 날짜를 도통 알려주질 않았다”며 “25일에 자기들끼리 미리 대관회의를 해놓고 내게는 29일쯤 돼서야 남은 자리를 잡으라고 통보가 왔다”고 토로했다.

측근들에게
좋은 시간대

D씨는 지하의 보조 경기장이나 오전 6∼10시 시간대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오전에는 선수들이 학교에 가야 한다”며 “그래도 울며 겨자 먹기로 그 시간대라도 잡아놓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조 부회장은 이 같은 의혹에 대해 강하게 부인했다. 그는 <일요시사>와의 전화통화서 “선학빙상장 개장 초기에는 대관이 다 차지도 않았다. 쓰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관내 소속 선수들이 그 시간대에 타게 된 것”이라며 “일단 우리 지역 선수들이 먼저 사용하고 남는 시간을 따지는 게 맞지 않느냐고 시에 주장해왔다. 어느 시도를 가도 자기 지역 선수들이 먼저 쓴다”고 해명했다. 

이어 “인천빙상연맹 관계자로서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며 “기존에 타던 선수들을 우선으로 하다 보니 의혹이 생긴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조 부회장의 대관 관련 의혹은 이뿐만이 아니다. 조 부회장이 개인계좌로 대관비를 받아 횡령했다는 의혹이 추가로 떠올랐다. 일반적으로 회의를 통해 대관 스케줄이 결정되면 신청서를 제출한다. 그럼 체육회에서는 허가승인 공문을 내려 보낸다. 이 양식에 체육회 수익금 통장 계좌번호가 적혀있다.

대관비는 시간당 평일 10만원, 주말 13만원이다. 2014년 8월12일부터 2017년 12월31일까지 체육회서 선학빙상장을 수탁 운영한 기간 동안 발생한 모든 대관비는 체육회 통장으로 입금돼야 했다.

하지만 실제 대관비의 일부가 조 부회장의 개인계좌로 입금된 사실이 확인됐다. 이 과정서 ‘이중대관’이라는 표현도 등장했다. 조 부회장이 대관을 독점한 뒤 사용하지 않는 시간대를 다른 강사들에 팔아 그 수익을 챙긴다는 의혹과 함께 나온 표현이다.

조 부회장의 개인계좌로 대관비를 보낸 적이 있다는 관계자 E씨는 “대관을 잡을 수가 없어 전전긍긍하던 중에 조 부회장이 대회 참석차 해외로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조 부회장이 잡아둔 시간대가 비어 타면 안 되겠느냐고 물었더니 ‘자기한테 돈을 내고 타라’고 해서 개인계좌로 입금했다”고 언급했다.

수탁운영 동안 관리 엉망
인천시 “문제 없다” 답변

E씨가 조 부회장의 개인계좌로 돈을 넣은 시기는 2016년. E씨는 자신과 같은 일이 당시에는 많았다고 말했다. E씨에 따르면 조 부회장은 “(대관)빈 시간에 얘기해라, 타고 싶으면 얘기해라” 등의 말을 했고, 대관을 잡지 못한 강사들은 그의 개인계좌로 돈을 넣고 빙판을 사용했다.

조 부회장은 이 같은 의혹에 대해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전해왔다. 그는 개인계좌로 대관비를 받은 적이 있다고 시인하면서도 “2016년 당시 체육회서 단체 이름으로만 대관비를 받았기 때문에 학부모와 강사들의 돈을 모아서 낸 것”이라고 해명했다.

편의상 자신의 계좌를 사용했다는 주장이다. 이어 “(대관비를)횡령했다면 개인계좌로 받은 돈을 (체육회에)내지 말았어야 했는데 다 냈다”며 “그 돈을 개인적으로 유용했다는 의혹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체육회가 수탁 운영을 하던 무렵 선학빙상장 대관비 관리는 엉망이었다. 선학빙상장이 민간위탁 시설로 전환되기 불과 몇 개월 전까지도 미납된 대관비는 1억원에 달했다. 선학빙상장서 대관업무를 봤던 체육회 관계자 F씨는 인수인계를 받고 황당했다고 했다.

2017년 8월 기준 대관비 미납 금액은 1억원에 이르렀고 이 중 절반 정도인 4000만∼5000만원이 인천빙상연맹 몫이었다. 약 4∼5개월 정도의 대관비가 밀린 것이다.

또 2017년 8월 대관표를 기준으로 7월 대관비를 추산하면 6800여만원인데 반해, 실제 잡힌 수입은 3400여만원에 불과했다. 약 3000만원이 누락돼있던 것. 인천시 체육시설관리운영조례에 따르면 체육시설 사용료는 사용허가를 받음과 동시에 납부해야 한다.

원칙적으로 대관비를 내지 않으면 빙상장을 사용할 수 없다는 뜻이다. F씨의 말과 수입 내역으로 추정해보면 대관비를 내지 않고 빙상장을 이용한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던 것으로 보인다.

조 부회장은 “체육회서 청구서를 보내야 대관비를 내는데, (체육회서)공문을 몰아서 보내거나 누락된 일이 있었다”며 “또 청구서에 오차가 있어 이를 조율하는 과정서 대관비 납부가 늦어진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F씨는 “이전 담당자가 결재한 날짜와 대관표를 비교해봤다. 청구서가 늦게 들어갔다는 건 말도 안된다”고 반박했다.

이어 “조 부회장의 해명대로면 인수인계 직후 인천빙상연맹서 대관비를 납부했어야 했는데, 1차, 2차, 3차 독촉 공문까지 보낼 동안 받지 못했다”며 “4개월여 동안 인천빙상연맹, 조 부회장과 싸운 끝에야 (대관비를)다 받아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선학빙상장이 민간 위탁으로 전환되는 과정서 인천빙상연맹이 입찰에 참여하기 위해 마지 못해 미납금을 냈다는 소문도 돌았다.

돈 안 내고
마음대로?

당시 선학빙상장의 최종 관리주체였던 인천시청 체육진흥과는 이 같은 논란에 대해 “소문일 수도 있고…”라며 “별도의 행정조치나 징계가 이뤄지진 않았다. 보통 그런 일이 있었다면 보고가 진행되고 상응하는 조치가 이뤄지는데 결손 처리한 게 없고 대관비에 따른 세입조치도 끝난 부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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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캄보디아 ‘셀허브’ 추적

[단독]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캄보디아 ‘셀허브’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민낯이 드러났다. 주로 수도인 프놈펜 인근과 시아누크빌 범죄 단지가 그들의 주둔지였다. 국내 조직폭력배가 중국 갱단과 결탁해 만든 ‘셀허브’의 경우 피해자만 수십명이다. 이들은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가장했다. 사이트에는 유명인의 사진이 수차례 도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는 사라진 셀허브 엔터테인먼트의 홈페이지. 지난해 7월 <일요시사>가 취재한 이후 대표이사의 이름과 사진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표창장을 받았다며 문서를 위조하기도 했다. 이 기업의 정체는 로맨스 스캠 조직이다. 확인된 피해액만 약 40억원, 피해자는 수십명이다. 한 언론사는 보도자료까지 작성하며 홍보하기도 했다. 조직적 준비 경찰 수사 중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지난 24일, 셀허브 조직원 3명을 각각 구속·불구속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송치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이들은 조건 만남 사이트를 운영한 로맨스 스캠 조직이다. 여성 관련 데이트 상품을 판매하거나 연애 빙자 사기를 일삼았다. 셀허브 조직원이던 A씨는 “연예인 지망생이나 모델과 연락하게 해 준다며 50만원에서 100만원까지 대포통장 계좌에 돈을 입금하게 한 뒤 텔래그램 아이디를 알려주고 연락하게 하는 시스템”이라며 “연결된 여자는 실제 남성이고 한국에서 조직폭력배로 활동하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이 조직은 지난해 3월 캄보디아 범죄 밀집 지역인 태자 단지에서 인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같은 해 5월 사이트를 개설해 조직원들에게 민간인 협박, 중국어 통역 등의 역할을 맡기고 수십명으로부터 약 40억원을 뜯어냈다. 같은 해 7월 <일요시사> 취재가 시작되자 이 조직은 셀허브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의 이름을 ‘김현숙’에서 ‘박소희’로 변경하고 유명인의 사진을 수차례 도용했다. 유 전 장관에게 표창장까지 수여받았다며 피해자들의 의심을 피하려는 꼼수도 서슴지 않았다. A씨는 “조직에서 탈출하려는 사람은 밤새 맞거나 강제로 마약을 투약당하기도 했다. 조직폭력배 출신 한국 사람들이 간부고 일반 조직원은 교민 사이트를 통해 ‘한 달에 500만~1000만원을 벌 수 있다’는 거짓말에 속아 일하게 된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건은 서울경찰청이 수사하기 이전인 지난해 7월부터 강서·영등포·구로경찰서 등에 여러 고소장이 접수됐었다. 하지만 수사는 원활하지 않았다. 주요 혐의자가 해외에 거주 중이거나 피의자 특정이 어려운 게 난관이었다. 수사를 담당했던 한 경찰 관계자는 “캄보디아 프놈펜에 주요 혐의자들이 거주한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지난해부터 공조를 요청했으나 캄보디아 당국이 비협조로 일관했다”며 “고소인분들이 ‘왜 안 잡냐’ ‘내 돈 어떻게 하냐’는 등 불만이 많으셨다. 매번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캄보디아가 협조하지 않으면 조치가 불가능했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3월부터 조직원 모집…태자 단지서 모의 ‘유인촌 표창장’ 걸어 놓고 ‘정상 기업’ 홍보 막막했던 수사는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면서 풀리기 시작했다. 이재명정부가 캄보디아를 압박했고 현지에 구금된 한국인 범죄자 겸 피해자 수십명을 국내로 송환했다. 송환된 인원 중 일부는 셀허브 사건과도 연관된 것으로 파악됐다. 정성학 충남경찰청 수사부장은 지난 20일 청내 프레스센터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들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사기) 및 범죄단체 가입 및 활동 혐의로 전원 구속했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부건(총책 가명, 40대 초반, 한국말을 쓰는 외국인 추정) 조직으로부터 확인된 피해 건수는 110건, 피해액은 93억여원에 달했다. 약 100명의 조직원을 거느린 부건은 지난해 중순부터 올해 7월까지 주로 프놈펜 웬치(범죄 단지) 및 태국 방콕 등지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범행을 벌여왔다. 부건 조직은 지난 2018년 중국에서부터 활동을 시작해 그동안 단속을 피하려 태국, 캄보디아 등지로 거주지를 옮겨가며 범행을 계속해 왔다. 이들은 데이터베이스, 입출금 등을 지원·관리하는 CS팀과 광고를 보고 접근한 피해자를 기망하는 로맨스팀, 검찰 사칭 보이스피싱팀, 코인투자리딩 사기팀, 공무원 사칭 노쇼 사기팀 등 총 5개 팀으로 이뤄진 조직체계를 갖췄다. 이들은 가구판매업을 하러 캄보디아에 갔다고 진술했으나 이후 지역 선·후배 권유, 고액 아르바이트 인터넷 광고 등을 접하고 범죄에 연루된다는 걸 알면서도 조직에 가입해 활동한 것으로 조사됐다. 속아서 조직에 들어갔다고 진술하지 않은 이들의 유입 경로는 ▲지인 포섭 29명 ▲인터넷 광고 등 포섭 8명 ▲현지 카지노 포섭 6명 ▲기타 2명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남성 42명과 여성 3명으로 연인도 있었다. 대부분은 20~30대 연령으로 최소 2개월부터 최대 16개월까지 범행에 가담해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조건 만남 사이트 경기북구경찰청 형사기동대도 전기통신금융사기특별법 위반 등 혐의로 피의자 15명 중 11명을 구속 송치했다. 이들은 지난해 8월부터 한 달간 캄보디아 범죄 단지에서 여성을 사칭, 조건 만남 등을 명목으로 피해자들로부터 돈을 가로챘다. 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성 만남 광고를 낸 후 이를 보고 연락해 온 피해자에게 여성인 척 채팅으로 유인했다. 여성을 소개받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개발한 조건 만남 사이트에 회원 가입과 인증을 받아야 한다고 속여 인증을 위한 돈을 요구했다. 3차례에 걸친 인증 절차 과정에서 여러 게임에 성공하면 가입비를 돌려준다고 속여 피해자로부터 1인당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을 받아 챙겼다. 피해자들이 믿을 수 있도록 별도의 만남 인증과 후기글을 남기는 ‘화력방’도 운영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 규모는 피해자 36명, 피해금 16억원 상당이며, 1인당 최대 피해 금액은 2억1000만원이다. 이들은 대부분 20~30대 남녀다. 최초 범죄집단을 구성한 캄보디아 프놈펜 지역 명칭 ‘툴콕’을 의미하는 ‘TK’파로 스스로를 부르며 총책을 정점으로 한 지휘·통솔 체계를 갖췄다. 조직 운영을 총괄하는 총책, 이를 보좌하며 실무 전반과 인력 공급 등을 담당하는 총관리자, 각 파트 팀원의 근태를 관리하고 지시하는 팀장으로 구성됐다. 또 자체적인 조건 만남 홈페이지를 제작하는 개발자, SNS에 광고 글을 게시하는 홍보팀과 광고를 보고 접근한 피해자를 기망하는 로맨스 2개팀으로 역할을 분담했다. ▲상호 가명 사용 ▲근무 중 휴대전화 금지 ▲사진 촬영 금지 ▲야간에는 커튼으로 외부 차단 ▲다른 부서와의 업무 내용 공유 금지 등의 규칙에 따라 생활하기도 했다. 중국 국적 100명 뒷배 이들은 총책이 마련한 건물에서 2인1조로 합숙했는데 프놈펜 툴콕 지역의 13층 건물을 사용하다가 지난 8월, 현지 단속을 피해 센소크 지역 7층 건물로 이전해 범행을 이어오던 중 현지 수사 당국에 의해 검거됐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SNS 구직 광고나 조직원을 통해 범죄단체에 가입했다고 진술했으며 사기임을 알고도 범행을 지속한 것으로 조사됐다. 피의자 대부분은 현지에서 구금된 중에도 총책이 이른바 관작업을 통해 자신들을 석방시켜 줄 것이라는 말만 믿고 대사관의 도움을 거절하고 귀국하지 않았다. 셀허브 사건 간부들은 타 사건에도 연루됐다. 지난 7일 캄보디아 바벳에 인접한 베트남 떠이닌 지역 국경 검문소 인근에서 30대 여성 B씨가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는데, 숨지기 직전까지 셀허브 간부와 같이 있었다. B씨의 사인은 마약 과다 투약이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B씨가 셀허브에서 한국인 명의의 대포통장을 공급해 왔다고 보고 있다. A씨는 “셀허브에서 일할 사람을 모집하는 역할을 했던 B씨인데 통장을 팔려고 캄보디아에 도착한 한국인들을 유인해 범죄 단지로 팔아넘기고 유인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정보·수사기관도 B씨에 의해 범죄 단지에 넘겨지는 피해를 입거나 유흥업소 일을 강요당한 사례를 확인하고 조사 중이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사실상 마약을 강제로 과다하게 투약당한 살인사건이라는 첩보는 아직 확인 중”이라며 “특정 조직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건 현지 경찰도 수사 중인 내용”이라고 말했다. 대개 조직폭력배 출신…지휘는 중국 조직이 맡아 40억 피해액 환수 불가능 “자금 세탁 끝났다” 첫 데이트하던 연인을 치어 여교사를 숨지게 했던 이른바 ‘대전 머스탱 교통사고’의 피의자도 셀허브 조직원으로 확인됐다. 피의자 전모씨는 2019년 2월10일 오전 10시14분 대전 중구 대흥동에서 면허도 없이 외제차를 운전하던 중 인도를 걷던 조모씨와 박모씨를 들이받아 박씨를 숨지게 하고, 조씨에게 중상을 입혔다. 전씨가 대여한 외제차는 불법 대여 차량이었다. 이 차량은 애초 대구에 사는 C씨가 자신 명의로 캐피털에서 월 115만원씩 주는 조건으로 60개월간 대여한 것이다. C씨는 사촌 안모씨와 함께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나모씨가 올린 ‘외제차 저렴하게 빌려줄 사람을 찾는다”는 글을 보고 접근, 한 달에 136만원씩 받기로 하고 대여한 머스탱 차량을 재임대했다. 나씨는 이렇게 빌린 머스탱 차량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활용해 “외제차를 빌려준다”고 광고하며 또다시 대여업을 했다. 전씨는 나씨가 올린 이 글을 보고 일주일에 90만원씩 주기로 약속하고 머스탱을 빌려 운전했다. 매년 확정되는 범죄수익 추징금은 30조원을 넘지만 환수 금액은 1%에도 미치지 않는다. 법무부가 캄보디아에서 보이스피싱과 로맨스 스캠 등의 범죄로 발생한 현지 범죄수익을 국내로 환수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선 법무부는 “캄보디아 내에서 벌어진 범죄 가운데 현재 국내에서 수사 중이거나 재판 중인 사건이 1차 현지 수사 의뢰 대상”이라며 “이후 국내에서 유죄 선고를 받으면 최종적으로 환수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국제형사사법공조 조약에 따르면 해외에서 발생한 범죄라 하더라도 피해자가 국내에 있고 피해액이 특정될 경우, 우리 정부가 해외에 범죄수익 환수를 요청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2019년 캄보디아와 국제형사사법공조 조약을 체결해 2021년 정식 발효됐다. 주요 간부들 타 사건 연루 정보기관 관계자는 “범죄자 개인이 아닌 조직을 대상으로 한 범죄수익 환수 사례는 거의 없다. 특히 국내에서 수사와 재판이 끝나야 한다”며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서는 건 좋지만 이미 늦었다. 범죄조직 특성상 이미 코인이나 대포 통장으로 제3국에 은닉하거나 세탁을 하고도 남았을 시간”이라고 지적했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도 “수사가 끝나고 유죄 판결이 나기까지 수년이 걸리는데 환수 절차는 이 모든 사법절차가 종료돼야 가능하다. 특히 조세회피처로 범죄수익을 옮겨놨다면 환수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봤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