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캐나다서 한국으로’ 캐스퍼 강

한지를 비우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981년 캐나다 토론토서 태어난 캐스퍼 강은 2004년 한국으로 돌아와 건축사무소서 디자이너로 활동했다. 이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는 이후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에 뛰어들어 현재까지 10회의 개인전과 30회의 단체전을 진행했다. 이번 전시 ‘별의별의별의별’은 소피스 갤러리서 선보이는 두 번째 개인전. 그의 감각적인 작품 세계를 들여다보자.
 

서울 역삼동에 위치한 소피스 갤러리가 지난달 28일부터 캐스퍼 강의 개인전 ‘별의별의별의별’을 진행 중이다. 이번 전시는 소피스 갤러리서 열리는 캐스퍼 강의 두 번째 개인전. 한지의 물성을 활용한 추상적 회화 총 40여점을 선보인다.

추상 회화

캐스퍼 강은 한국 전통 민화를 정밀한 선, 건축설계도 같은 구성으로 재해석한 작품을 초기작으로 내세웠다. 그의 작품은 독창적이라는 평을 들어왔다. 2016년 소피스 갤러리서 진행한 개인전에선 동양의 산수화를 바탕으로 대리석 가루와 아크릴을 섞은 후 물감을 올려 두터운 마티에르적 표현을 통해 추상적인 형태를 탐구했다.

당시 개인전서 그는 작품 형태적 전환점을 맞이했다. 캐스퍼 강은 이번 전시서 그때보다 더 나아가 민화의 바탕인 한지를 다채롭게 실험한 추상회화를 들고 나타났다. 한지의 물성과 일시성, 형상과 비어있음을 고찰한 끝에 나온 작품이다.

2004년 한국 돌아와
건축사무소서 일해


캐나다서 건축학을 전공한 캐스퍼 강은 2004년 한국으로 돌아와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캐나다 교포로서 그가 느끼고 탐구한 한국의 전통 시각문화는 작업적 영감의 원천으로 작용했다. 초기작은 민화의 형태를 분해하고 재구성하면서 점점 간결하고 절제된 형상으로 나아갔다. 이 과정서 캐스퍼 강은 추상적 영역에 관심을 보였다.

이후 민화의 밑바탕인 한지의 물성을 다양한 방식으로 고찰하면서 일부 남아있던 형상이 사라지고 완전한 추상적 회화에 이르렀다. 그는 이번 신작서 한지를 그을리거나 색이 있는 한지를 표백해 번지는 듯한 효과를 냈다. 또 한지를 잘게 찢어서 접착제나 회분 등 다양한 재료를 활용해 겹겹이 쌓아 입체적인 추상회화를 완성했다.
 

캐스퍼 강은 한지와 접착제를 섞은 덩어리를 팔레트 나이프로 떠서 화폭에 옮겼다. 반복적인 작업을 통해 나타난 새로운 형상은 자유롭고 간결하다. 한지를 표백하거나 조심스럽게 태워 캔버스에 섬세하게 붙인 작품은 마치 한지가 소멸하기 전 순간을 그대로 포착한 듯 생생하고 즉각적이다.

한국 전통 민화에 관심
한지 이용한 작품 선보여

캐스퍼 강은 한지가 사라지기 전 순간의 형상을 붙잡아 화폭에 일시성을 부여했다. 이런 일련의 작품 제작 과정은 명상을 하듯 반복적인 작업을 통해 점점 형상이 비워지고 작품에 깊이를 더한다. 그가 제작한 작품들은 한지라는 물질 그 자체의 특성을 버리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형태로 창조되고 그와 동시에 독특한 구조적 가치를 획득한다.

캐스퍼 강의 작품은 경험적인 것이 아니라 경험에 앞선 것, 즉 선험적인 접근법을 통해 완성된다. 전통 민화를 향한 작가의 관심이 민화의 바탕이었던 한지의 탐구로 이어진 매우 자연스러운 결과다.
 

그의 역량은 다양한 기업과의 협업을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캐스퍼 강은 2014년 아모레퍼시픽 설화수 10주년 기념, 2015년 아디다스 코리아 오리지널 슈퍼스타 마케팅 등의 협업을 통해 감각적인 작품 세계를 인정받고 있다.


기업과 협업

소피스 갤러리 관계자는 “이번 캐스퍼 강의 개인전을 통해 그가 형상을 비워내고 완전한 추상적 영역으로 나아간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며 “그의 회화가 전달하는 간결하고 자유로운 형상을 함께 사유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전시는 오는 18일까지.
 

<jsjang@ilyosisa.co.kr>

 

[캐스퍼 강은?]

1981년 출생

▲학력

캐나다 오타와 칼튼대학 건축학과 졸업(2004)

▲개인전

‘별의별의별의별’ 소피스 갤러리, 서울(2018)
‘瑤 池 鏡’ 소피스 갤러리, 서울(2016)
‘Flowers & Fortresses’ 스튜디오 콘크리트, 서울(2015)
‘기획초대전’ 갤러리이즈 서울(2015)
‘Casper Kang’ 헬리오아트 스페이스, 서울(2014)
‘新羅 Z’ 153 갤러리, 서울(2013)
‘MMXII’ 갤러리 AI1, 서울(2012)
‘Self Dynasty’ 갤러리 이마주, 서울(2011)
‘C.R.E.A.M.’ 갤러리 CHA, 서울(2010)
‘Phantasmagoria III’ 데일리프로젝트, 서울(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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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국방부 문건이 대규모로 파쇄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조치는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의 지시로 이뤄졌다. 오 전 기획관은 검찰 특수본과 재판서 정보사와 수사2단 인사안의 문제점을 증언했던 인물이다. 자신이 비상계엄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수사에 협조한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올해 초 신년맞이 대청소라면서 문서를 대량으로 파쇄했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국방부 직원들의 말이다. 파쇄된 문건들은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자료라고 한다. 지시자는 오영대 전 국방부 인사기획관이다. 검찰 수사에 협조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으나 실상은 다르다는 게 군 내부자들의 주장이다. 뭘 숨기나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말 취임하면서 시작한 첫 번째 군 개혁은 인사다. 신임 인사기획관에 일반 공무원 출신인 이인구 군사시설기획관을 임용한 건 안 장관이 강조해 왔던 ‘군 문민통제’와도 맞닿아 있다. 인사기획관은 본래 예비역 장성이 맡아왔다. 이 신임 기획관의 전임자였던 오 전 기획관도 예비역 준장 출신이다. 군 내부에서는 국방부에 여전히 12·3 내란 사태에 협조한 군인들이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핵심으로 인사기획관실의 총괄과이자 인사기획관의 일정, 예산 등을 모두 관리하는 인사기획관리과가 언급된다. 다수의 국방부 관계자들은 “오 전 기획관은 물러났지만 책임져야 할 다수의 인물이 아직 자리를 보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부서의 간부들은 전부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다. 과장 김모 대령은 오 전 기획관이 대령이었을 때 소령으로 근무했고, 총괄 이모 중령은 오 전 기획관이 특전사 여단장을 역임했던 1공수여단서 중대장과 707중대장을 거쳤다. 장군인사팀장 김모 대령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수도방위사령관으로 근무했던 시절 비서실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김 전 장관과 가깝거나 육사 출신인 이들이 국방부 인사의 핵심부서인 인사기획관리과에 포진하면서 계엄 실행을 위한 보직 이동이 이뤄진 셈이다. 김 전 장관은 실제 대통령경호처장일 때부터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과 군 인사에 대해 논의했다. 직무에서 배제되지 않은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장관이 모든 책임을 오 전 기획관에게 묻는 형식으로 퇴직을 시켰으니 우리는 지시를 받아 어쩔 수 없이 한 것처럼 조용히 지내면서 정부초기 개혁의 소나기만 피하면 진급 가능’이라며 서로서로 쉬쉬하고 있다고 한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내란 이후인 지난해 12월 중순 오 전 기획관의 지시에 따라 문건 파쇄를 계획했다. 김 전 장관이 물러난 이후 인사기획관리과장 김 대령 및 총괄인 이 중령 외에는 계획되지 않은 대면보고는 금지했고 내부 보안에 심혈을 기울였다. 인사과 간부들 계엄 실패 후 12월 계획···1월 파쇄 “지시자는 검찰 수사 응했던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 한 달여 뒤 이 중령은 모든 과에 ‘신년맞이 대청소’를 하라고 전파했다. TF 자리 배치와 오래된 문건을 정리한다며 유독 인사기획관리과만 복도로 책상을 빼고, 대량 세절이 가능한 세절실을 예약해 엄청난 양의 문서들을 파쇄했다. 여기엔 내란 핵심 파일도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안 장관은 이와 관련해 국회에서 오 전 기획관에게 여러 차례 질문한 바 있다. 당시 오 전 기획관이 당황해하며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퍼지기도 했다. 이 중령은 동영상을 보며 웃는 직원들의 명단과 안 장관에게 제보한 인물을 색출하기 위해 탐문 활동을 벌여 오 전 기획관에게 추정해 보고했다. 이들은 모두 오 전 기획관으로부터 승진추천, 성과상여금, 각종 포상 등 인사상 불이익을 본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이 문건을 파쇄한 이유는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내란 당일 오후 10시가 넘은 시각임에도 퇴근하지 않고 사무실에 있던 오 전 기획관의 지시를 받은 이 중령은 각 과의 총괄 담당자들을 소집해 ‘계엄 선포가 됐는데 선제적으로 인사 관련 조치를 왜 안 하냐’ ‘합참에는 계엄사령부가, 지작사령부에는 지역계엄사령부가 곧 창설될 텐데 각 군 본부 및 지작사와 인사 지침을 협의해 계엄령 취지에 맞게 배포하라’고 강조했다. 특히 오 전 기획관은 계엄 해제 결의안이 국회 본회의 테이블을 통과했음에도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서 이 중령에게 “(계엄이) 해제되긴 했는데 다시 시행될 수도 있으니 빨리 계엄사 창설 지원을 위한 인사 조치를 완성하고 지작사 병력에 대한 휴가 지침 및 통제 등 건의 사항을 받아보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 전 기획관은 내란 직전까지 김 전 장관의 의중에 따라 군 인사를 반영했다. 최근 내란 특검팀이 군 장성급 인사 자료 확보에 나선 것도 이에 관해 들여다보기 위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검팀은 최근 국방부 장군인사팀과 육군본부 장군인사실 등을 압수수색해 해당 부서 내 인사 관련 파일 등을 확보했다. 정치권에선 지난 2023년 11월과 지난해 4월 이례적인 인사가 이뤄졌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진급에 절박한 군 인사들을 계엄 실행 세력으로 활용했단 의혹이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윤석열정부 장군 인사는 특이하고, 이례적인 경우가 유독 많았다”며 “인사를 통해 군을 장악하고, 내란을 준비했다는 의혹 관련 특검의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3차 계엄 대비 문건 없애” 증거 인멸 국회서 해제 불구 지작사와 인사 논의?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은 지난 2023년 11월 인사에서 소장에서 중장으로 진급했다. 박안수 전 계엄사령관은 ‘75주년 국군의 날 행사기획단장 겸 제병지휘관’ 등 한직에서 2023년 10월 육군참모총장에 발탁됐다. 지난해 4월엔 지휘부에 이어 작전본부 인사가 이어졌다. 원천희 당시 육군 소장이 4차 진급으로 합참 정보본부장으로 승진했고, 이승오 소장은 군단장을 거치지 않고 합참 작전본부장으로 진급했다. 안찬명 당시 육군22사단장은 임명 5개월 만에 합참 작전부장으로 보직을 옮겼다. 통상 사단장은 1년 반~2년가량 보직을 맡는다. 군 안팎에서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왔던 이유다. 경질 위기이던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은 유임됐다. 그는 지난해 6월 정보사 군무원의 블랙요원 명단 국외 유출 사건 및 박민우 전 정보사 100여단장과의 갈등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신원식 전 안보실장은 지난해 8월 국회에서 “후속 조치를 강하게 할 생각”이라고 언급했지만, 다음 달 본인이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는 군 관계자에게서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이 장군들 인사에 대해 논의했고 오 전 기획관에게 전달됐다”는 진술을 확보한 바 있다. 위기감을 느낀 오 전 기획관은 특수본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기 시작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오 전 기획관의 특수본 진술조서를 보면 그는 “신원식 (전 국방부) 장관이 저와 원천희 국방부 정보본부장에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보직해임·정보사령관 교체 검토를 지시했으나 지난해 9월6일, 김 전 장관이 취임하면서 문 전 사령관에 대한 ‘현 보직 유지’를 지시했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이해하기 어려운 인사였다”고 했다. 앞뒤 달랐다 오 전 기획관은 “(문 전 사령관이 박 준장으로부터 고소당한 혐의가)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지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인사 조치는 없었다”며 “공론화된 문제고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는데도 이렇게 유야무야 넘어가는 일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