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만에 간첩 누명 벗은 재일교포 차풍길 <인터뷰>

잃어버린 내 청춘 되찾겠다!”

1970~1980년대 전후의 간첩조작 사건에 대한 진실이 조금씩 밝혀져 가고 있다. 그 일례가 조작간첩으로 12년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한 강희철(50)씨가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승소한 일이다. 이들은 잃어버린 세월을 보상받겠다며 ‘억울하다’는 말을 연일 성토하고 있다. 이 가운데 차풍길(64)씨도 최근 억울한 누명을 벗은 뒤 또다시 국가를 상대로 34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각종 고문에 시달려 어쩔 수 없이 허위진술을 했고, 억울한 누명으로 인해 잃어버린 청춘 등을 국가가 보상하라는 것. <일요시사>는 지난 20일 차씨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한 사연과 그동안 겪었던 역경들을 들어봤다.

“넘어지면 짓밟았고…볼펜 손가락 사이 끼워 관절마디 꺾기도”
“옥살이 시절 어머니 ‘화병’으로 돌아가셨다”며 목메이기도


재일교포인 차풍길씨는 1982년 반국가단체의 구성원인 조총련계 대남공작지도원의 지령을 받고 국가기밀을 탐지·수집했다는 혐의로 8년(1983~1991)간 억울하게 간첩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한 인물이다. 비록 수감생활 모범수로 지내면서 감형을 받아 3·1절 특사로 나오기도 했지만, 억울한 누명을 쉽게 벗을 수는 없었다.
이같은 차씨의 아픈 기억은 지난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차씨는 재일교포 출신으로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3살 때 한국에 왔지만,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해 일본으로 돌아갔다. 그러던 중 한국전쟁이 발발했던 것. 추씨는 이후 일본대사관에 비자를 신청해 동두천에서 조그마한 양복점을 운영해왔다. 그 생활도 넉넉지 않아 재일교포인 아버지의 초청으로 다시 관광 비자를 받고 일본에서 생활했다.

받침 하나 잘못 써도 폭행

그러나 불운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1976년부터 약 3년간 아버지의 친구 분이 운영하는 일본인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것이 큰 화를 불렀던 것. 이곳 회사 사장과 운전수 등이 어느날 갑자기 반국가단체의 구성원 조총련계 회사로 내몰렸다고 한다.
차씨에 따르면 1979년 동두천에서 양복점 사업을 할 당시 한·미 팀스프리트 훈련, YH여자근로자 농성, 1백억 수출 기념 환영식 등 신문 등에 대서특필된 내용을 봤다는 이유만으로 국가안전기획부(이하 안기부)에서 “군사기밀을 수집했다고 몰아세웠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추씨는 국가기밀을 수집, 조총련을 찬양고무 동조했다는 혐의로 지난 1982년 국가안전기획부(이하 안기부)에 연행됐다고 한다.

“잘못한 일도 없고, 아무런 증거도 혐의도 없는 나를 안기부 직원이 연행해 갔어요. 당시 안기부가 남산에 있는지도 몰랐죠. 남산에 도착하자마자 옷을 벗겨 7~8명의 수사관들에게 무자비하게 폭행을 당해 정신을 잃었어요. 무자비하게 폭행을 당하고 나니 잠을 제대로 못 잤고, 음식도 제대로 못 먹었을 정도에요. 심지어 5m 앞에 있는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갔을 정도였어요. 한마디로 반XX가 된거죠.”
그에 따르면 그 당시 수사관의 질문에 부인하면 하체를 책상 위에 올리게 하고 상체는 바닥에 엎드려뻗쳐를 시키고는 옆구리를 차서 넘어지면 짓밟았다고 한다. 또 볼펜을 손가락 사이에 끼워 관절마디를 꺾었을 정도라고.

특히 고문으로 심신이 지쳐있던 그에게 간첩누명을 씌우려던 안기부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물고문과 폭행 등으로 심신이 지쳐있었어요. 그런데 수사관들은 나에게 허위 진술서를 쓰게 하기 위해 수사관이 불러주는 대로 적지 않으면 강목 등으로 때렸어요. 받침 하나라도 틀리면 안 될 정도였죠.”

이같은 과정을 여러 차례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추씨가 가장 슬퍼한 것은 ‘물고문’, ‘폭행’이 아니었다고 한다. 서울구치소로 이동이 된 이후 검사에게 “일본 대사관에 연락하면 모든 진실을 다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얘기했지만, 검사가 “빨갱이 말을 어떻게 믿어”라는 말을 할 때 피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뿐만 아니다. 추씨는 66일 동안 지하에서 감금되는 동안 가족들과 면회도 하지 못했다. 단지 안기부 직원들이 “5일 만에 보내주겠다고 가족들을 안심시켰다”고 말했을 뿐이라고 한다.

“1982년 1차 공판과정에서 변호사가 피고인과 ‘말 한마디 한 적이 없다’고 말해줘 접견금지 해제신청을 하여 가족들과 겨우 만날 수 있었다.”
차씨는 가슴 한켠에서 떠오르는 과거 일을 회상하는 듯 깊은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비록 우여곡절 끝에 20여년 만인 2008년 7월 추씨의 죄가 무죄로 확정됐기는 했지만, 그 당시 기억을 회상할 때마다 눈시울을 적신다. 예순을 넘긴 나이 탓도 있겠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과거의 고통으로 인한 슬픔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간첩이라는 누명을 쓴 후 힘든 삶을 살아왔어요. 자식(2남3녀)들이 학교생활도 제대로 못했을 정도였어요. 주위 사람들로부터 간첩자식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아, 골목길에 사람들이 모두 다 사라진 다음 집으로 오기도 했습니다. 또 동네주민들이 ‘간첩집’이라며 돌을 던져 집 유리를 깨는 경우도 태반이었어요.” 

“명예회복만 할 수 있다면…”

그는 말문이 막힌 듯 잠시 말을 멈추기도 했다. 차씨는 이제라도 ‘무죄’라고 밝혀져 남한테 손가락질을 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행복하다고 한다. 또 그 당시 고문으로 인해 허리가 좋지 않지만, 부인이 운영하는 이불가게에서 함께 일을 하며 지극히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차씨는 하지만 억울하게 간첩누명을 쓰면서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고 토로했다.
“감옥에 있을 당시 어머니가 ‘화병’으로 돌아가셨어요. 또 한참 크고 있는 자식들을 교육시켜야 했지만 그러지도 못했습니다. 다행히 자식들이 잘 커줘서 고마울 뿐이죠.”

차씨는 이같은 심경을 털어놓으며 “간첩으로 몰린 후 가족들의 마음고생이 누구보다 심했기 때문에 어머니, 자식, 부인에게 항상 죄스러운 마음으로 살고 있다”고 말한다.

이에 차씨는 국가를 상대로 34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그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낸 것에 대해 “천억원을 받더라도 돈에 대해 욕심이 없다. 단지 나와 가족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가치로서의 액수다. 또 아까운 내 청춘을 감옥에서 생활했고, 병든 가슴을 금전적으로 따질 수는 없다”면서 “가까운 친구들은 나에 대한 진실을 알지만, 그러지 않은 분들도 여전히 많은 것이 가장 안타까워 소송을 하게 됐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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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 특검 ‘북풍 공작’ 수사 시나리오

내란 특검 ‘북풍 공작’ 수사 시나리오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내란 특검이 가장 수사 속도를 높이고 있는 건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외환 혐의’다. 윤 전 대통령의 지시로 군 수뇌부가 북한과의 전쟁을 유도하려 했는지를 밝혀내는 게 핵심이다. 일부는 사실로 드러나고 있는 분위기다. 실제 특검은 군이 평양에 무인기를 보낸 게 윤 전 대통령의 지시였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파악됐다. “김용대 드론작전사령관에게 ‘V(윤석열 전 대통령) 지시’라고 들었다.” 조은석 내란 특검팀이 확보한 군 장교 녹취록의 일부 내용이다. 조 특검팀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지시로 군 수뇌부가 북한과의 전쟁을 유도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조 특검팀은 이 녹취록 외에도 외환 혐의 입증이 가능한 다수의 물적 증거를 확보한 상황이다. 잃어버린 무인기 조 특검팀은 지난해 10월과 12월 소형 정찰 드론 2대가 사라졌다는 국방부 감사관실 조사 보고서를 확보했다. 조 특검팀이 확보한 국방부 감사관실 보고서는 지난달 말 작성됐다. 드론작전사령부가 지난해 10월15일과 12월19일 각각 백령도와 속초 대대에서 소형 정찰 드론 기체 2대를 잃어버려 찾지 못했다며 그 사유를 ‘원인 미상’이라고 기록한 게 핵심이다. 드론 소실 시점은 같은 해 10월 북한 외무성이 한국 무인기가 삐라(대북 전단)를 살포했다고 발표한 시기(10월 3·9·10일)와 11월 초 북한 함경남도 차호 잠수함 기지로 드론을 보냈다는 군 내부 제보 시점과 비슷하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부승찬 의원실은 “차호 잠수함 기지까지 (드론을) 간신히 보낼 수 있었다”며 “매뉴얼 제원상 (최대 항속거리가) 500㎞지만 그 이상도 가능하다”는 군 현역 장교 증언을 확보했다. 보고서에서 국방부 산하 국립과학연구소가 드론사에 무상 증여한 소형 정찰 드론 중 고장나거나 소실된 것은 총 8대다. 이 중 2대는 2023년 10월 ‘원인 미상 엔진 정지’ ‘공기 속도 센서 결함’ 등으로 고장 사유가 기록돼있다. 지난해 1월과 6월, 10월 무인기 파손 역시 구체적인 사유가 적혀있다. 11월7일 난기류와 강풍 때문에 추락한 드론은 속초·양양에서 발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10월15일, 12월19일 잃어버린 드론은 회수하지 못했고 사유 역시 ‘원인 미상’ 처리됐다. 군수품관리법에 따라 무인기가 소실되면 그 이유 등을 정확히 기록해 국방부에 신고해야 한다. 특검팀은 드론 2기 소실 경위와 사후 조사가 부실한 이유 등을 확인할 계획이다. 앞서 국방부 감사관실은 평양·연천 등에서 발견된 드론과 동일 기종을 지난 1월22일 전수조사했다. 백령도는 북한이 지난해 10월19일 평양에서 ‘추락한 드론’의 동체 사진을 공개하면서 이륙 지점이라고 발표한 곳이다. 윤 “평양에 무인기 보내라” 지시 의혹 특검 “V가 북 반응 좋아해” 녹취 확보 국방부는 드론사 예하 김포·백령도·연천·속초 가운데 백령도 대대는 방문 조사를 하지 않고 유선 조사만 했다고 한다. 장부에 기록된 내용과 재고 상황이 정확한지 현장에서 실물을 확인한 다른 부대와 달리 백령도는 보고받은 사진을 바탕으로 조사했다. 특검팀은 드론사 관계자를 소환해 ‘북풍 몰이’ 목적으로 평양 등에 드론을 보냈는지 여부와 소실 배경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경위 등을 조사하기로 했다. 특검팀은 앞서 ‘평양 드론 침투’ 의혹과 관련 “김용대 사령관이 V(윤 전 대통령) 지시다. 국방부와 합참 모르게 해야 된다(고 했다)” “삐라(전단) 살포도 해야 하고, 불안감 조성을 위해 일부러 (드론을) 노출할 필요가 있었다”는 내용의 현역 장교 녹취록을 확보했다. 녹취록엔 당시 북한의 위협적 반응에 “VIP와 장관이 박수치며 좋아했다. 너무 좋아해서 사령관이 ‘또 하라’고 그랬다” “11월에도 무인기를 추가로 보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 녹취록에는 “(무인기를) 의도적으로 (북한에) 노출할 생각이 있었지만 떨어뜨릴 생각은 없었다”면서도 “(무인기가 개조되면서) 기체 불안정성 때문에 추락에 대한 가능성은 항상 품고 있었다”는 내용도 담겼다. 또 “비행 자체에 대한 부담은 크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기체 성능 자체가 안 되어서 손실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도 했다. 군 측은 지금까지 평양 드론 침투에 대해 “사실관계를 확인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또 군은 작전에 사용된 드론 추락을 염려하기도 했다. 본래 설계와 다르게 자체 개조됐기 때문이라는 게 부 의원실의 판단이다. 외환 혐의 규명 필요 부 의원실이 지난 5월 국방과학연구소로부터 제출받은 ‘북 전단 무인기 비교 분석’ 자료는, 북한에 떨어진 무인기와 연구소가 드론작전사령부에 납품한 무인기와 유사하다고 평가하면서도 충격 방지를 위한 ‘랜딩폼’ 부품이 빠지고 전단 살포를 위한 전단통이 개조돼 붙어있었을 가능성에 주목했다. 애초 전단 살포 목적으로 설계되지 않은 무인기 구조를 변경하면서 기체가 불안정해져, 전단 살포 시 추락 위험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 무인기는 소음이 너무 커서 군사작전에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었다. 외환 혐의는 지금까지 검경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조사 단계에서 구체적으로 다뤄지지 않았다. 특검팀은 지난 1일 국방과학연구소 항공기술연구원 정모씨를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한 만큼 드론사 간부들이 줄소환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특검팀은 드론 평양 침투 외에도 외환 행위 고소·고발 사건과 북한의 공격을 유도해 전쟁 또는 무력충돌을 야기하려고 했다는 혐의에 대해 수사할 수 있다. 결국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수첩을 통해 꼬리가 잡힌 ‘북풍 공작’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경찰이 노 전 사령관의 주거지에서 압수한 수첩에는 비상계엄 당시 ‘수거(체포)’해야 할 명단이 적혔고 “NLL·북방한계선 인근에서 북의 공격을 유도하거나 아예 북에서 나포 직전 격침 시키는 방안” 등이 담겼다. 또 수첩에는 북한과의 접촉 방법도 “비공식 방법, 무엇을 내어줄 것인가, 접촉 시 보안 대책은?”이라고 구체적으로 적혔다. 북한이 날려 보낸 ‘오물 풍선 원점 타격’으로 전쟁 상황을 연출해 비상계엄을 정당화하려 했다는 의혹도 제기된 상태다.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은 지난 1월 국회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 증인으로 나와 “지난해 10월 정도로 기억하는데 김용현 전 장관이 ‘북한 오물 풍선 상황이 발생하면 원점을 강력하게 타격하겠다. 합동참모본부 지통실(지휘통제실)에 직접 내려가서 지휘하겠다’고 말했다”고 밝힌 바 있다. 급박한 계획 변경 비상계엄 선포 뒤 노 전 사령관이 지휘하는 수사2단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직원 조사 임무를 맡기로 했던 김봉규 정보사 대령도 지난해 11월2일 경기 안산시의 한 카페에서 노씨가 “비상계엄 관련해서 북한 오물 풍선 얘기를 시작”했고 “언론에 특별한 보도가 날 거라고 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1월 말, 당시 해외 출장 중이던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에게 북한의 오물 풍선 도발 하루 전날을 콕 집어 조기 귀국을 종용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두 인물의 검찰 수사 기록을 보면 계엄 9일 전이던 지난해 11월24일 일요일, 문 전 사령관은 노 전 사령관과 전화 통화를 했다. 이때 문 전 사령관은 노 전 사령관에게 자신이 곧 해외 출장을 간다는 사실을 알렸다. 문 전 사령관은 같은 해 11월25일부터 29일까지 대만 출장이 예정돼있던 상태였다. 그런데 노 전 사령관이 흥분하면서 화를 냈다. 그는 문 전 사령관에게 “이 중요한 시기에 무슨 해외 출장을 가느냐”며 “출장을 당장 취소하라”고 지시했다. 문 전 사령관은 황당해하며 “이미 약속된 일”이라고 맞섰다. 그러자 노 전 사령관은 “늦어도 수요일 밤까지는 귀국하라”고 말했다.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수요일 밤’은 11월27일이다. 하루 뒤인 28일은 북한이 33번째 오물 풍선을 부양한 날이었다. 문 전 사령관은 노 전 사령관의 지시에 따라 실제 귀국 비행기표를 11월27일 수요일로 변경했다. 하지만 기상 악화 등의 변수가 생기며 이날 귀국하지 못했다. 노 전 사령관은 계엄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북한 오물 풍선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 지난해 10월과 11월 무렵, 정보사 대령들에게 ‘오물 풍선 원점 타격’ 필요성을 언급한 사실도 확인된다. 김 대령은 검찰 조사에서 “노상원 전 사령관도 오물 풍선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며 “북한이 오물 풍선을 보내면 우리가 원점을 타격해야 할 수 있다, 그런 이야기를 한 것 같다”고 진술했다. 방첩사, 비상계엄 당일까지 위기감 고조 합참, 북 원점 타격·대응 김 지시 거부 지난해 11월 초, 노 전 사령관은 김 대령과 문 전 사령관을 안산 상록수역으로 불러 앞서 지시한 인원 선발이 다 됐는지를 확인했다. 그는 이때도 “북한이 오물 풍선을 날리면 우리가 원점을 타격하고 지원 세력을 타격할 수 있어서 너희가 임무 수행을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노 전 사령관의 이 같은 계획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도 공유된 것으로 보인다. 김 전 장관은 북한의 32번째 오물 풍선 부양이 있기 하루 전인 지난해 11월17일 지상작전사령부에 “오물 풍선이 군사분계선을 넘을 시 경고 사격을 하고, 북한이 화기 도발을 하면 지체 없이 원점을 타격하도록 대응 계획을 세우라”는 지시를 내렸다. 공수처는 박모 방첩사 대령의 진술로 이 같은 내용을 확인했다. 이재학 방첩사 대령의 검찰 진술에도 “상황이 위중하니 부대에 위치해 있으라”는 얘기를 사령부로부터 들었다. 그는 “그전까지 북한 오물 풍선이 30여회 정도 떴는데, 그날따라 이상했다. 오물 풍선이 국지전으로 확대될 수 있어서 사령관이 상황을 위중하게 보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고 했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지난달 군사 재판에서 북한 오물 풍선 대응과 연결된 ‘국지전 시나리오’를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그는 지난달 13일 법원에 출석해 “그때 상황을 다시 한번 말씀드리면, 12월 1~2일쯤 사령관 되는 군인들이 가장 걱정한 건 북한 쓰레기 풍선이었다”며 “방첩사령관으로서 쓰레기 풍선에서 삐라가 떨어지는데 그걸 수거해 분석하는 게 방첩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장군들은 북한 오물 풍선 때문에 뭔 일 터지는 거 아니냐 이런 걱정이 태반이었고, 걱정스러워서 (장군들과) 통화를 했다”고도 증언했다. 그러나 당시 합참은 김 전 장관이 내린 경고 사격 지시에 소극적인 입장이었고, 오히려 다른 방식을 김 전 장관에게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합참 내부의 이 같은 기류는 합참에 파견된 박 대령을 통해 여 전 사령관에게 보고됐다. 국지전 도발했다 반면 여 전 사령관은 북한 오물 풍선 대응 지침을 전파하는 방식으로 방첩사 내부의 위기감을 고조시켰던 것으로 전해졌다. 12·3 내란 사태 당일에는 “적 오물 풍선 도발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시기”라며 주요 간부들에게 준비 태세 확립을 강조하기도 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