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행정의 달인’ 양승태 대법원장 후보자

갈길 멀고 넘어야 할 산 많다 “어여 가세~”

[일요시사=송응철 기자] 양승태 전 대법관이 대법원장 후보자에 지명됐다. 청문회를 앞두고 몇가지 쟁점이 떠오르긴 했지만 사실상 임명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과거 청문회를 무사통과한 전력 덕분이다. 도덕적인 흠결이나 신상과 관련된 의혹을 말끔히 털어냈다는 얘기다. 하지만 마냥 좋아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양 후보자가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가 산더미처럼 쌓여있기 때문이다.

호주제 최초 위헌제청…행정지원에도 세밀한 면모
타당성을 갖고 해결책 도출해 국민 권리 보호 앞장


9월에 임기가 끝나는 이용훈 대법원장의 후임에 양승태 전 대법관이 지명됐다. 이명박 대통령은 목영준 헌법재판관, 박일환 대법관 등을 대법원장 후보로 함께 검토했으나 이념과 판결 성향 등의 측면에서 양 후보자가 가장 안정적이라고 판단해 지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결정에 법원 관계자들은 고개를 끄덕이는 모양새다. 양 후보자는 풍부한 사법행정 경험으로 오래전부터 ‘대법원장 1순위’로 거론돼 온 인물이기 때문이다. 후배들 사이에서는 ‘사법행정의 달인’으로 통한다는 후문이다.

36년간 법관으로 재직하다 지난 2월 대법관에서 퇴임한 양 후보자는 주요 법원장과 법원행정처 송무국장 및 차장 등 법원행정처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양 후보자가 가장
안정적으로 판단

양 후보자가 두각을 드러낸 건 1998년 외환위기 직후 서울중앙지법 파산수석부장을 맡으면서다. 당시 양 후보자는 파산재판 절차를 간소화하고 신용불량자 구제제도를 정립했다. 이를 통해 수많은 도산 기업들을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법정관리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서울지법 북부지원장으로 재직할 당시인 2001년에는 남성 우위의 호주제도에 대해 최초로 위헌제청을 했다. 또 2002년 부산지법원장 시절에는 효율적 청사관리와 민원인 위주의 행정 등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등 행정지원에도 세밀한 면모를 보여줬다. 특히 2003년 법원행정처 차장 때는 형사소송법 개정과 국민참여재판 도입 등의 사법 현안을 매끄럽게 마무리하면서 법원 안팎의 찬사를 한 몸에 받았다.

개별 사건에 있어서도 눈에 띄는 모습을 보여줬다. 구체적 타당성을 갖고 해결책을 도출해 국민 권리 보호에 앞장섰다는 평가다. 집회 때 꽃마차 행렬을 하겠다고 신고 후 미신고 품목을 사용한 것을 두고 “집회 방법이 신고한 내용의 범위에서 현저히 일탈하지 않으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이 아니다”라는 판결을 내놓은 게 대표적인 사례다. 동생의 교통사고를 목격한 뒤 수면장애 등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을 보인 9세 아동에게도 질환과 교통사고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한 것도 유명한 판례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대법관 재직 시절에는 대부분 다수 의견에 동조하거나 보수적인 판결 성향을 보였다. 이른바 ‘남북공동실천연대’ 사건에서 양 후보자는 “남북 간 교류가 활성화되고 있으나, 적화통일을 목적으로 하는 북한에 어떠한 실체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반국가단체성을 종전의 대법원 판결과 달리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2009년 ‘삼성특검’ 사건과 관련해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 발행에 대해 무죄 의견을 냈다. 2009년 ‘용산참사’ 당시 화재를 일으켜 경찰관을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철거민 등에게 중형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 법질서 유지에 무게를 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대법관 퇴임 후에는 이례적으로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았다. 대신 히말라야와 로키 산맥 트레킹을 떠났다. 그리고 대법원장 후보자에 지명된 최근에서야 귀국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22일 양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며 현재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있다.

풍부한 사법행정 경험
‘대법원장 1순위’

9월6일에서 7일 사이 예정된 청문회의 주요쟁점은 ▲대법관 증원 ▲과거사 재심 ▲편향판결 논란 ▲국보법 폐지 ▲사형제 ▲간통죄 ▲사면권 등이다. 양 후보자는 앞서 두 차례 인사청문회를 통과했다. 도덕성 하자나 신상과 관련된 의혹은 모두 털어냈다는 얘기다. 따라서 이번 청문회에선 현안과 관련된 공방이 주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 각 쟁점 대한 양 후보자의 입장은 2005년 대법관 임명 당시 인사청문회와 대법관 재직 시절 표명했던 견해 등으로 미뤄 짐작할 수 있다.

가장 먼저 부각될 현안으로는 최근까지 정치권과 사법부가 공방을 벌여온 대법관 증원 등 사법개혁 문제를 들 수 있다. 양 후보자는 2005년 청문회 당시 사법개혁에 대해 “개혁이라는 게 기존 질서를 뒤엎고 전혀 새로운 걸 도입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현재 제도 중 무엇이 잘못됐는지 통찰력과 혜안으로 걸러 제도개선의 의지가 얼마나 강하느냐로 판단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대법관 증원 문제에 대해선 구체적인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다만 양 후보자는 “1년에 2만 건이 넘는 사건을 접수·처리하다 보면 정책법원의 역할을 다하기 힘들다”며 “일반 상고사건을 어떻게든 줄여 역할을 할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

대법관 증원·과거사 재심·편향 판결 등 7대 쟁점
법조일원화·로스쿨 안착 등 풀어야 할 숙제 산적


이용훈 대법원장이 역점을 두고 추진한 과거사 청산과 재심 문제에 대해서는 “재판 자체를 내부적으로 다시 점검·조사하는 것은 있을 수 없지만, 재판 절차 바깥에서 일어난 일을 재조사하고 그 결과 새 증거가 발견됐을 때 재심을 청구하는 것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원론적 입장을 전달했다.

사법부의 편향 판결에 대한 외부 비판에 대해 유 후보자는 “재판이 이뤄졌을 때 새로운 방향,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건전하게 비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너무 감정 섞인 것(대응)은 사법부가 입는 상처가 상당하다”는 태도를 취했다.

국가보안법 폐지 문제에 대해서는 “남북관계의 진전을 정확히 진단한 다음, 국민 여론을 수렴해 국회가 존폐와 개정 여부를 결정할 문제”라며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또 사형제 폐지와 관련해서는 “폐지됐으면 좋겠으나 국민 여론이 전체적으로 컨센서스를 이루지 않았다고 본다”며 시기상조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위헌 여부를 심판받게 되는 간통죄에 대해서는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이 아니라고 했지만 입법 정책적 측면을 묻는다면 지금으로서는 큰 타당성이 없는 법률인 것 같다”며 폐지에 찬성하는 입장을 지켰다.

대통령 사면권과 관련해서는 “사면권을 너무 자주 광범위하게 행사하는 것은 많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며 “사법부의 본질적 기능을 훼손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경계했다.

양 후보자의 대법원장 임명은 아직 결정 난 게 아니다. 하지만 법조계 안팎에서는 과거 두차례 청문회를 무사통과했다는 점에서 이번에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마냥 기뻐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풀어야 할 숙제가 산더미처럼 쌓여있기 때문이다.

양 후보자의 첫 번째 과제는 편향성을 극복하는 것이다. 현재 양 후보자의 보수적인 판결 성향으로 사법부 판결 전체의 보수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편향인사를 통해 사법부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에서다. 양 후보자의 편향성을 판단할 잣대는 오는 11월 바뀌는 2명의 대법관에 누구를 제청하느냐다. 능력이 떨어지지만 이념적 성향이 강한 인사를 대법관에 제청하면 우려가 현실이 될 심산이 크다. 반면 중도 성향을 가진 능력 있는 인물을 중심으로 제청하면 양 후보자의 보수적인 성향이 일선 법원 판사들에게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위상과 역할의 혼선으로 갈등을 빚는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관계 조정도 해묵은 숙제다. 현재 대법원과 헌재를 하나로 합쳐야 한다는 ‘통합론’을 두고 찬반양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상태다. 대법원에서는 통합론을 지지하지만 헌재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당연히 양 후보자가 내놓을 해법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현재로선 양 후보자가 통합론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잡음을 최소화하면서 양측의 관계를 봉합하는 게 양 후보자의 임무다.

헌법재판소·대법원
관계 조정해야

현안도 산적해있다. 선결과제는 사법제도 선진화의 도약대가 될 ‘법조일원화’의 안착이다. 법조일원화는 사법연수원생을 법관으로 뽑는 대신 변호사·검사 중 10년 이상 법조경력자를 신규 법관으로 100% 채용하는 새로운 법관임용제도로 2013년부터 단계적 시행에 들어가 2022년에 전면 실시된다. 정치권과의 힘겨운 협상 끝에 로드맵은 마련했지만 세부시행 방안은 아직 미비한 상태다. 따라서 양 후보자는 실행단계에 접어든 법조일원화의 초석을 깔아야 한다. 2009년 도입돼 내년이면 첫 졸업생이 배출되는 로스쿨도 기존 사법연수원생과의 관계가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탓에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아 시급한 대책이 필요하다.

법관의 고유 권한인 양형을 국회에서 법으로 정하는 양형기준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정치권의 요구도 있다. 사법부는 이를 법원의 권위와 독립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러나 무시할 수만은 없다. 따라서 양 후보자는 공감할 수 있는 계획과 비전으로 정치권을 설득함으로써 사법부 주도의 개혁을 끌고나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사법부에 대한 대통령과 정부의 입김이 세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원만한 대외관계를 유지하면서 마찰 없이 외압을 차단하고 사법부의 독립을 지켜나가는 게 차기 대법원장의 역할이라는 데는 별다른 이견이 없다.



<양승태 대법원장 후보자 프로필>


2009.02~2011.02 제16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2005.02~2011.02 대법원 대법관
2003.09 특허법원 법원장
2003.02 법원행정처 차장
2002.02 부산지방법원 법원장
2001.02 서울지방법원 북부지원장
2000.07 서울지방법원 민사수석부장판사
1999.03 서울지방법원 파산수석부장판사
1995.02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1994.07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연구실장
1993.10 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
1991.02 서울민사지방법원 부장판사
1989.09 사법연수원 교수
1986 제주지방법원 부장판사
1983.09 서울고등법원 판사
1982.09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 판사
1980.09 대구지방법원 판사
1979.09 서울지방법원 영등포지원 판사
1975.11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
1970.08 제12회 사법시험 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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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