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말 못하는’ 미투 운동 사각지대

“나도!” 외치고 싶지만…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시작된 ‘미투(#MeToo)’ 운동이 두 달째로 접어들었다. 법조계서 타오른 불길은 문화·예술계를 넘어 사회 곳곳에 침투했다. 미투는 권력형 성폭력 피해자를 수면 위로 끌어 올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각지대는 존재한다. 아직 “나도 그렇다”고 외치지 못하는 피해자들을 <일요시사>가 조명해봤다.
 

미투 운동은 두 달 만에 한국 사회를 뒤흔드는 강력한 태풍으로 발달했다. 지난해 10월 미국 할리우드서 처음 시작됐을 때만 해도 미투가 한국 사회에 끼칠 영향을 예측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미투의 필수 요소가 성폭력 피해자의 고백과 연대였기 때문이다.

감춰진 성폭력

성범죄는 신고율이 2% 미만에 머무를 정도로 암수율(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숫자의 비율)이 매우 높은 범죄다. 면식범에 의한 범죄도 많아 피해자들은 자신이 어떤 단초를 제공한 게 아닌지 자책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성폭력 피해자를 바라보는 싸늘한 주변 시선도 신고나 상담의 장애물로 작용한다. 미투를 통해 피해 사실을 공개적으로 알리는 사람들이 지지 받는 이유다.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인사들은 철저한 사회적 단죄를 받고 있다. 대다수의 인사가 평생 쌓아온 명성과 명예를 잃었고 직책이나 지위를 내려놨다. 문화·예술계서 폭발적으로 터진 미투에 관객들은 보이콧 등의 방법으로 피해자에게 지지를 보내고 있다.


영화 전문 웹사이트 맥스무비가 영화 관객 1271명을 대상으로 지난달 23일부터 2일까지 미투에 대한 인식 조사를 펼쳤다. 

그 결과 관객의 82%는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영화인이 출연하거나 연출한 작품을 관람하지 않겠다고 했다. 평소 호감을 갖고 있던 영화인이라도 성폭력 가해자로 확인되면 영화를 관람하지 않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87%였다. 전체 평균보다 더 엄격한 태도다.

국민들 지지 받지만
소외되는 부분 있어

미투에 대한 지지가 확고한 만큼 반작용이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성추문을 아예 차단하기 위해 여성과의 관계를 단절하는 ‘펜스 룰’이 등장했고, 일부 피해자의 폭로가 진실게임 양상으로 흐르는 상황도 나왔다. 

한 번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되면 이미지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 만큼 무고죄에 대한 처벌이 강화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시장조사기관 두잇서베이와 함께 국내 성인남녀 3914명을 대상으로 미투에 대해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5.5%가 미투 취지에 공감한다고 답했다. 또 미투가 성폭력 피해 예방에 효과적일 것이라고 응답도 68.8%에 이르렀다.

그러나 확고한 지지만큼 미투의 악용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과반(53.4%)에 달했다. 
 


사회에 만연한 위계에 의한 성폭력을 뿌리 뽑아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거짓 폭로나 2차 폭력 등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미투가 진행돼야 한다는 여론이 드러난 셈이다.

문제는 미투가 모든 이슈를 빨아들일 만큼 영향력을 발휘하는 동안 아예 중심서 동떨어진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는 성범죄에 있어 가장 취약하다고 지적 받아왔던 곳과 일치한다. 남성, 동성, 외국인 이주여성, 친족 사이서 발생하는 성폭력이다.

폭력성이 존재하는 조직 문화가 팽배한 곳에서는 남성 역시 성폭력 피해자가 될 수 있다. 특히 군대는 계급이 존재하고 상명하복 문화가 강하기 때문에 위계에 의한 폭력이나 성폭력이 일어나기 쉽다. 

군대 내에서 일어나는 선임에 의한 성폭력이 이미 고질적인 문제라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돼 왔을 정도다.

하지만 군대 내 성폭력은 ‘장난’이나 ‘남자끼리 그 정도 가지고’라며 가볍게 여기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이 때문에 실제 피해자들은 성적 가혹행위를 당하더라도 신고하지 못하고 혼자 앓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신고를 하면 선임의 장난도 못 견디는 사람이 되는 것 같고, 가만히 있으면 수치심과 좌절감에 고통 받는다는 것.

다행인 점은 미투를 계기로 군대 내 성폭력을 들여다보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점이다. 

군인권센터는 지난 12일 ‘군 성희롱·성폭력 피해 신고 전화’ 운영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국방부 역시 ‘성범죄 특별대책 TF’를 꾸려 3개월간 운영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신고 접수부터 피해자 보호, 사건 처리까지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도록 신고 여건을 보장하는 게 목적이다.

동성간 성폭력 역시 외부로 알리기 힘들다. 영화 <연애담>의 이현주 감독이 동료 여성 감독에 대한 유사 성행위 혐의로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이 감독은 영화계를 은퇴하는 등 철퇴를 맞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무려 2년의 법적 공방이 있었다.

외국인 이주 여성들의 현실도 참혹하긴 마찬가지다. 결혼을 통해 한국에 들어온 이주 여성은 가족이 해체되면 지원과 보호가 불가능해진다. 남편의 신원보증이 있어야 체류 기간을 연장할 수 있고 체류 기간이 만료되면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남편과의 관계에 따라 신분이 바뀔 수 있기에 이들은 성폭력 피해를 당해도 소리 한 번 내기가 어렵다.

침묵 강요받는 사람들
전문적인 접근 필요해


직장이 있는 이주 여성은 사업주가 왕이다. 2004년 외국인의 국내 고용을 지원하고 이주 노동자들의 노동 환경을 개선해 불법 체류자를 줄인다는 취지로 고용허가제가 시작됐다. 이주 노동자는 국내에 체류하는 3년 동안 사업장을 3번만 바꿀 수 있는데, 이때 사업주의 동의가 필요하다. 

만일 이주 여성이 성폭력 피해를 당해 사업장을 이탈하는 과정서 사업주의 동의가 없었다면 불법 체류자 신세가 된다.

또 성폭력 피해를 당해 사업장을 옮기고 싶다면 스스로 피해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한국어가 서툴고 법을 잘 알지 못하는 상태서 피해 증거를 모으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이 때문에 성폭력 피해를 입고도 가해자가 있는 사업장에 계속 머무를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이들에 대한 대책이 절실하다고 지적하지만 현재 이주 여성들에 대한 성폭력 지원 체계는 전무한 수준이다.

가족 등 친족간 일어나는 성폭력도 미투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가족 관계가 망가질 수 있다는 점을 들어 피해자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친족간 성폭력 피해자의 상당수는 미성년자다. 

미성년자 피해자에게는 가족의 말이 절대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너만 아무 말 않으면 조용히 넘어간다”는 강요는 피해자에게 상처로 남는다.


지난 5년간 매년 3만명에 육박하는 성폭력 범죄가 일어나고 있다. 전체 성폭력 피해자 10명 중 1명 정도가 친족이나 친인척에게 피해를 입지만 법적 대응에 나서는 경우는 100명 중 4명에 그친다. 실제 은폐된 건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친족간 성폭력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분리되기 어려운 구조라는 점이다. 피해를 입은 후에도 가해자와 한 집 생활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친족간 성폭력은 상습성을 띨 가능성이 높다. 

사회가 보호해야

하지만 친족 성폭력 피해자 보호를 위한 시설이나 지원은 열악한 편이다. 전문가들은 “믿고 의지해야 할 대상에게 지속적으로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는 신체·정신적으로 엄청난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전문적인 도움이 절실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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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국방부 문건이 대규모로 파쇄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조치는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의 지시로 이뤄졌다. 오 전 기획관은 검찰 특수본과 재판서 정보사와 수사2단 인사안의 문제점을 증언했던 인물이다. 자신이 비상계엄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수사에 협조한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올해 초 신년맞이 대청소라면서 문서를 대량으로 파쇄했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국방부 직원들의 말이다. 파쇄된 문건들은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자료라고 한다. 지시자는 오영대 전 국방부 인사기획관이다. 검찰 수사에 협조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으나 실상은 다르다는 게 군 내부자들의 주장이다. 뭘 숨기나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말 취임하면서 시작한 첫 번째 군 개혁은 인사다. 신임 인사기획관에 일반 공무원 출신인 이인구 군사시설기획관을 임용한 건 안 장관이 강조해 왔던 ‘군 문민통제’와도 맞닿아 있다. 인사기획관은 본래 예비역 장성이 맡아왔다. 이 신임 기획관의 전임자였던 오 전 기획관도 예비역 준장 출신이다. 군 내부에서는 국방부에 여전히 12·3 내란 사태에 협조한 군인들이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핵심으로 인사기획관실의 총괄과이자 인사기획관의 일정, 예산 등을 모두 관리하는 인사기획관리과가 언급된다. 다수의 국방부 관계자들은 “오 전 기획관은 물러났지만 책임져야 할 다수의 인물이 아직 자리를 보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부서의 간부들은 전부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다. 과장 김모 대령은 오 전 기획관이 대령이었을 때 소령으로 근무했고, 총괄 이모 중령은 오 전 기획관이 특전사 여단장을 역임했던 1공수여단서 중대장과 707중대장을 거쳤다. 장군인사팀장 김모 대령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수도방위사령관으로 근무했던 시절 비서실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김 전 장관과 가깝거나 육사 출신인 이들이 국방부 인사의 핵심부서인 인사기획관리과에 포진하면서 계엄 실행을 위한 보직 이동이 이뤄진 셈이다. 김 전 장관은 실제 대통령경호처장일 때부터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과 군 인사에 대해 논의했다. 직무에서 배제되지 않은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장관이 모든 책임을 오 전 기획관에게 묻는 형식으로 퇴직을 시켰으니 우리는 지시를 받아 어쩔 수 없이 한 것처럼 조용히 지내면서 정부초기 개혁의 소나기만 피하면 진급 가능’이라며 서로서로 쉬쉬하고 있다고 한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내란 이후인 지난해 12월 중순 오 전 기획관의 지시에 따라 문건 파쇄를 계획했다. 김 전 장관이 물러난 이후 인사기획관리과장 김 대령 및 총괄인 이 중령 외에는 계획되지 않은 대면보고는 금지했고 내부 보안에 심혈을 기울였다. 인사과 간부들 계엄 실패 후 12월 계획···1월 파쇄 “지시자는 검찰 수사 응했던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 한 달여 뒤 이 중령은 모든 과에 ‘신년맞이 대청소’를 하라고 전파했다. TF 자리 배치와 오래된 문건을 정리한다며 유독 인사기획관리과만 복도로 책상을 빼고, 대량 세절이 가능한 세절실을 예약해 엄청난 양의 문서들을 파쇄했다. 여기엔 내란 핵심 파일도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안 장관은 이와 관련해 국회에서 오 전 기획관에게 여러 차례 질문한 바 있다. 당시 오 전 기획관이 당황해하며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퍼지기도 했다. 이 중령은 동영상을 보며 웃는 직원들의 명단과 안 장관에게 제보한 인물을 색출하기 위해 탐문 활동을 벌여 오 전 기획관에게 추정해 보고했다. 이들은 모두 오 전 기획관으로부터 승진추천, 성과상여금, 각종 포상 등 인사상 불이익을 본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이 문건을 파쇄한 이유는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내란 당일 오후 10시가 넘은 시각임에도 퇴근하지 않고 사무실에 있던 오 전 기획관의 지시를 받은 이 중령은 각 과의 총괄 담당자들을 소집해 ‘계엄 선포가 됐는데 선제적으로 인사 관련 조치를 왜 안 하냐’ ‘합참에는 계엄사령부가, 지작사령부에는 지역계엄사령부가 곧 창설될 텐데 각 군 본부 및 지작사와 인사 지침을 협의해 계엄령 취지에 맞게 배포하라’고 강조했다. 특히 오 전 기획관은 계엄 해제 결의안이 국회 본회의 테이블을 통과했음에도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서 이 중령에게 “(계엄이) 해제되긴 했는데 다시 시행될 수도 있으니 빨리 계엄사 창설 지원을 위한 인사 조치를 완성하고 지작사 병력에 대한 휴가 지침 및 통제 등 건의 사항을 받아보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 전 기획관은 내란 직전까지 김 전 장관의 의중에 따라 군 인사를 반영했다. 최근 내란 특검팀이 군 장성급 인사 자료 확보에 나선 것도 이에 관해 들여다보기 위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검팀은 최근 국방부 장군인사팀과 육군본부 장군인사실 등을 압수수색해 해당 부서 내 인사 관련 파일 등을 확보했다. 정치권에선 지난 2023년 11월과 지난해 4월 이례적인 인사가 이뤄졌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진급에 절박한 군 인사들을 계엄 실행 세력으로 활용했단 의혹이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윤석열정부 장군 인사는 특이하고, 이례적인 경우가 유독 많았다”며 “인사를 통해 군을 장악하고, 내란을 준비했다는 의혹 관련 특검의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3차 계엄 대비 문건 없애” 증거 인멸 국회서 해제 불구 지작사와 인사 논의?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은 지난 2023년 11월 인사에서 소장에서 중장으로 진급했다. 박안수 전 계엄사령관은 ‘75주년 국군의 날 행사기획단장 겸 제병지휘관’ 등 한직에서 2023년 10월 육군참모총장에 발탁됐다. 지난해 4월엔 지휘부에 이어 작전본부 인사가 이어졌다. 원천희 당시 육군 소장이 4차 진급으로 합참 정보본부장으로 승진했고, 이승오 소장은 군단장을 거치지 않고 합참 작전본부장으로 진급했다. 안찬명 당시 육군22사단장은 임명 5개월 만에 합참 작전부장으로 보직을 옮겼다. 통상 사단장은 1년 반~2년가량 보직을 맡는다. 군 안팎에서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왔던 이유다. 경질 위기이던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은 유임됐다. 그는 지난해 6월 정보사 군무원의 블랙요원 명단 국외 유출 사건 및 박민우 전 정보사 100여단장과의 갈등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신원식 전 안보실장은 지난해 8월 국회에서 “후속 조치를 강하게 할 생각”이라고 언급했지만, 다음 달 본인이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는 군 관계자에게서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이 장군들 인사에 대해 논의했고 오 전 기획관에게 전달됐다”는 진술을 확보한 바 있다. 위기감을 느낀 오 전 기획관은 특수본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기 시작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오 전 기획관의 특수본 진술조서를 보면 그는 “신원식 (전 국방부) 장관이 저와 원천희 국방부 정보본부장에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보직해임·정보사령관 교체 검토를 지시했으나 지난해 9월6일, 김 전 장관이 취임하면서 문 전 사령관에 대한 ‘현 보직 유지’를 지시했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이해하기 어려운 인사였다”고 했다. 앞뒤 달랐다 오 전 기획관은 “(문 전 사령관이 박 준장으로부터 고소당한 혐의가)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지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인사 조치는 없었다”며 “공론화된 문제고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는데도 이렇게 유야무야 넘어가는 일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