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공화국’의 민낯 고발

참았던 여성들 들고 일어나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미투’ 운동이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불과 한 달 새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각계각층의 인사 수가 30여명에 육박하고 있다.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유명인 이름이 뜨면 미투 운동과 관련된 경우가 대부분일 정도. 미투 운동은 그동안 수면 아래 감춰져 있던 권력형 성폭력의 본질을 들춰내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미투’ 운동은 자신의 성폭력 피해 사실을 SNS에 올려 심각성을 알리는 캠페인이다. ‘나도 그렇다’는 뜻의 Me Too에 해시태그(#Me Too)를 달아 자신의 경험담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미국 전역을 들썩이게 만들었던 할리우드 유명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추문 사건 당시 영화배우 알리사 밀라노가 처음 제안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당신이 성폭력 피해를 봤거나 성희롱을 당했다면 주저하지 말고 여기 트위터에 ‘미투’라고 써달라”고 호소했다.

할리우드 시작
전 세계에 파장

반향은 어마어마했다. 알리사 밀라노가 제안한지 24시간 만에 50만명이 넘는 이용자가 리트윗으로 지지를 표명했고, 8만여명이 해시태그를 달아 자신의 성폭력 피해 경험을 고백했다.

한국의 미투 운동은 지난 1월26일 서지현 창원지방검찰청 통영지청 검사의 폭로로 촉발됐다. 서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2010년 10월 한 장례식장서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또 사과를 요구한 자신에 대해 2014∼2015년 부당한 사무 감사를 진행하고, 통영지청으로 발령하는 과정서 부당하게 입김을 넣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서 검사는 이프로스 폭로 3일 만에 언론에 직접 출연해 피해 사실을 설명했다.

각계각층 30여명 지목
가해자 침묵 혹은 사과

현직 검사가 실명을 걸고 한 고백은 각계각층 성폭력 피해자들의 증언으로 이어졌다. 법조계서 시작된 미투 운동은 연극계, 문단, 연예계, 만화계, 영화계, 가요계를 넘어 종교계로까지 번졌다. 연극 연출가, 시인, 영화감독, 천주교 신부 등 미투 운동이 본격적으로 불거진 지 두 달도 되지 않아 30여명 가까운 인사들의 이름이 거론됐다.
 

고발된 이들의 공통점은 피해자와의 관계서 우위에 있었다는 점이다. 피해자들은 자신에게 돌아올 불이익이 두려워 상황이 발생한 당시 가해자를 고발하지 못했다.

▲문화·예술계= 문화·예술계는 미투 운동이 가장 광범위하게 번진 분야다. 특히 연극계는 미투 운동이 시작된 이후 가장 많은 가해자가 나왔다. 거장으로 불린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 오태석 극단 목화 대표, 조증윤 극단 번작이 대표, 김석만 연출가, 윤호진 연출가 등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은 모두 연출가이거나 극단 대표다.

지난달 14일 극단 미인의 김수희 대표는 자신의 SNS에 이윤택 전 감독으로부터 당한 성추행 사실에 대해 적었다. 

그는 “여관방 인터폰이 울렸다. 밤이었다. 내가 받았고 전화 건 이는 연출이었다. 왜 부르는지 단박에 알았다. 안마를 하러 오라는 것”이라며 “그는 연습 중이던 휴식 중이던 꼭 여자단원에게 안마를 시켰다. 그게 본인의 기를 푸는 방법이라고 했다”고 폭로했다. 


배우 김지현도 지난달 19일 자신의 SNS에 이 전 감독에게 성폭행 당한 후 임신과 낙태를 했다고 밝혀 충격을 더했다.

사태가 확산되자 이 전 감독은 지난달 19일 기자회견을 갖고 “저에게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에게 진심으로 사죄드린다. 정말 부끄럽고 참담하다”면서도 성폭행은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후 배우 오동식에 의해 이 전 감독의 기자회견이 리허설까지 진행된 연출된 사과였다는 내부 고발이 나오면서 진정성은 빛을 바랬다.

이 전 감독에 대한 폭로는 연극계 미투 운동의 시발점이었다. 지난달 15일에는 오태석 대표에 대한 고발이 나왔다. 

배우 A씨는 자신의 SNS에 ‘ㅇㅌㅅ’이라고 초성을 올린 뒤 성추행 피해 사실을 게재했다. 

그는 “대학로의 그 갈비 상 위에서는 핑크빛 삼겹살이 불판 위에 춤을 추고, 상 아래에서는 나와 당신의 허벅지, 사타구니를 움켜잡고 꼬집고 주무르던 축축한 선생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소리를 지를 수도 뿌리칠 수도 없었다”고 밝혔다.

오 대표에 대한 폭로는 또 다른 전직 배우에게서도 터져 나왔다. 연이은 폭로에도 오 대표는 침묵을 지켰다. 그는 지난달 20일 입장을 밝히기로 했지만 이날 오전 입장 정리가 되지 않았다며 돌연 발표를 연기한 후 1일 현재까지 묵묵부답 상태다.

권력형 성폭력
수직관계 위험

조증윤 대표는 가해자로 지목된 인사 가운데 처음 경찰에 구속됐다. 그는 2007년부터 2012년까지 당시 16∼18세였던 여자 단원 2명을 성폭행하거나 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달 18일 서울예대 익명 SNS에 처음 조 대표 관련 내용의 글이 올라왔고 추가 폭로가 이어졌다.

조 대표는 지난 1일 창원지방법원서 진행된 영장실질심사서 성관계는 인정했지만 당시 서로 호감을 갖고 있던 만큼 성폭행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미성년자였던 피해 단원들은 “나이가 20살 이상 많은 조 대표에게 호감 느끼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반박했다.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던 고은 시인의 몰락도 미투 운동서 비롯됐다. 고 시인에 대한 충격적인 폭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김석만 연출가에 대한 성추행 피해 주장도 불거졌다. 21년 전 연극 행사 뒤풀이서 김 연출가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내용이다. 
 


피해 여성은 “당신은 택시에 나를 태우고 북악스카이웨이로 향했다”며 “성추행 당하고 여관까지 갔다가 방이 다 찼다는 이유로 돌아섰다”며 당시 상황을 자세히 적었다. 김 연출가는 이날 오후 “어떠한 책임도 질 것이며 남은 일생 잘못을 빌며 용서를 구하고 반성하며 살아가겠다”며 입장문을 발표했다.

거장의 성추문
연극계 쑥대밭

뮤지컬 <명성황후> <영웅> 등 굵직한 작품을 연출한 윤호진 에이콤 대표 역시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됐다. 윤 대표는 창작 뮤지컬 제작 과정서 지속적으로 성추행을 당했다는 복수의 피해자들의 주장에 지난달 24일 이를 인정하고 사과했다. 

그는 사과문을 통해 “피해자들이 바라는 방식으로 사과하고 반성하겠다”며 “나 때문에 상처 입은 피해자들이 있다면 따로 연락을 달라”고 말했다.

인간문화재 하용부도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됐다. 연희단거리패 전직 단원이 하씨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한 것. 

이후 추가 폭로가 이어지면서 하씨를 공개적으로 지목한 여성단원은 3명으로 늘었다. 하씨는 처음에는 “추호의 변명의 여지도 없고 정말 잘못했다”며 사죄의 뜻을 밝혔지만 지난달 27일 오후 “성폭행한 적은 없는 것 같다”며 돌연 입장을 바꿨다.


지난달 26일 웹툰 작가 이태경은 주례를 부탁하러 간 자리서 유명 시사만화가 박재동 화백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이씨는 박 화백이 자신의 허벅지 등 신체를 만지고 ‘맛있다고 생각했다’는 발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앞서 박 화백은 지난해 대학 강의서도 “여자는 보통 비유하길 꽃이나 과일이랑 비슷한 면이 있다. 상큼하고 먹음직스럽고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씨를 얻을 수 있다”는 발언으로 학생들의 항의를 산 적이 있다. 

문제가 불거지자 박 화백은 자신의 SNS에 공개 사과문을 올려 성추행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연예계= 미투 운동은 연예계로 번졌다. 조민기, 조재현, 오달수 등 유명 배우들에 대한 폭로가 이어졌다. 

조민기는 한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온 “청주대학교 연극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연예인 ㅈㅁㄱ씨가 몇 년간 여학생을 성추행한 혐의로 교수직을 박탈당했다”며 “혐의가 인정돼 교수직을 박탈당했는데 기사가 나오지 않는 것이 의문”이라는 글이 시발점이었다. 

조민기는 수차례에 걸쳐 성추행 의혹에 대해 부인했지만 연이은 피해자들의 고백에 결국 고개를 숙였다.
 

조재현은 처음 댓글을 통해 이니셜로 거론됐다. 그러다 지난달 23일 배우 최율이 SNS를 통해 공개적으로 미투 운동에 동참하면서 사태가 커졌다. 조재현은 피해자에게 배역을 주겠다는 조건으로 성관계를 시도한 적도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조씨는 사과문을 통해 일부 혐의를 인정한 상태다.

아직 조용한 정·관·재계
다음 타깃은 과연 어디일까

‘천만 요정’으로 불렸던 배우 오달수는 처음 이름이 거론된 이후 상당 기간 입장 발표 없이 침묵으로 일관하다 자신의 실명을 걸고 공개 저격한 피해자가 나오자 그제야 일부 혐의를 인정했다. 

하지만 오씨는 사과문을 통해 “25년 전 잠시나마 연애감정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덫에 걸린 짐승처럼 팔도 잘렸고 정신도 많이 피폐해졌다”며 마치 자신을 피해자인 것처럼 표현해 진정성이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배우 최일화는 스스로 가해 사실을 공개한 경우다. 

그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서 과거 있었던 성추문을 고백했다. 그러면서 “사과와 함께 연극배우협회 이사장직과 현재 촬영 중인 드라마와 영화, 광고 등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진 고백 다음날 최씨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피해자가 등장했다. 최씨는 성폭행 의혹에 대해서는 침묵 중이다. 이어 이명행, 한명구, 최용민 등 배우들의 성추문이 연달아 불거졌다. 이들은 사과문을 내고 맡고 있던 배역, 교수직 등을 내려놓았다.

▲종교계= 천주교 신부가 성폭력 가해자로 밝혀지면서 종교계가 술렁였다. 수원교구 소속 한모 신부는 2011년 아프리카 남수단 선교 봉사활동 당시 봉사단의 일원이던 여성 신도를 추행하고 강간을 시도했다.

피해자는 7년여 동안 피해 사실을 밝히지 못하다가 최근 미투 운동에 힘을 얻어 언론에 사건을 폭로했다. 한 신부는 자신이 7년여에 걸쳐 피해자를 찾아가 용서를 구했지만 받아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져 비판은 더욱 거세졌다.

천주교 인권위원회 소속 간부 김덕진씨가 4년 전 여성 활동가를 성추행 했다는 주장이 나와 경찰이 사실 확인에 나섰다. 앞서 피해자는 자신의 SNS에 김씨에게 성추행 당했다는 내용의 글을 올리고, 김씨가 당시 사건이 합의하에 이뤄진 양 말하고 다녔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미투 운동이 당분간 활발하게 지속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미투 운동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75%(2월5일 리얼미터 조사)에 달하고, 어렵게 용기를 낸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연대와 지지를 보내는 위드유(#With you) 운동이 일어나는 등 사회적 시선이 점차 변화하면서 고발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현재 문화·예술계와 연예계에 편중된 폭로가 각계각층으로 퍼지는 건 시간문제일 것으로 보인다.

먼저 손꼽히는 분야는 정계다. 정계는 미투 운동이 아직 활발하게 전개되지 않았을 뿐 그간 성 관련 사건이 꾸준히 발생한 분야였다. 실제 지난달 7일 최윤희 전 경북도의원은 자신이 도의원으로 일했던 2006∼2010년 동료의원들에게 공공연히 성추행을 당했다고 고백했다.

가장 폐쇄적인 집단으로 분류되는 군대 역시 미투 운동이 필요한 분야라는 분석이 있다. 상명하복이 군대 문화의 가장 큰 특징인 만큼 수직 관계서 일어나기 쉬운 성폭력이 만연할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특히 군대서 미투 운동이 벌어지면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 피해자들도 등장할 수 있다.

이미 조금씩 피해자의 목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는 언론계는 물꼬가 트이면 엄청난 폭로가 이어질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지난 2009년 배우 장자연은 자살로 생을 마감하면서 언론계 등 유력인사 31명에게 성상납과 술 접대를 강요받았다는 내용을 고발했다.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다. 

유력 언론사 관계자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 장자연 리스트 사건은 미흡하게 처리됐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해 말 검찰과거사위원회가 장자연 리스트를 재조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군·체육계
벌벌 떠나?

체육계는 지난 1일 이경희 리듬체조 국가대표팀 코치의 최초 고백으로 물꼬가 트였다. 가해자는 이씨가 업무상 만났던 대한체조협회 전 고위 간부로, 이씨는 3년 동안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이씨가 3년여간 이어진 성추행을 견디다 못해 사표를 내러 갔던 날 그에게 성폭행 당할 뻔 했다는 충격적인 주장도 나왔다. 해당 간부는 당시 이씨의 탄원서로 감사가 시작되자 자진해서 사퇴했지만 2년 후 더 높은 자리의 간부 후보가 돼서 돌아온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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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캄보디아 ‘셀허브’ 추적

[단독]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캄보디아 ‘셀허브’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민낯이 드러났다. 주로 수도인 프놈펜 인근과 시아누크빌 범죄 단지가 그들의 주둔지였다. 국내 조직폭력배가 중국 갱단과 결탁해 만든 ‘셀허브’의 경우 피해자만 수십명이다. 이들은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가장했다. 사이트에는 유명인의 사진이 수차례 도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는 사라진 셀허브 엔터테인먼트의 홈페이지. 지난해 7월 <일요시사>가 취재한 이후 대표이사의 이름과 사진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표창장을 받았다며 문서를 위조하기도 했다. 이 기업의 정체는 로맨스 스캠 조직이다. 확인된 피해액만 약 40억원, 피해자는 수십명이다. 한 언론사는 보도자료까지 작성하며 홍보하기도 했다. 조직적 준비 경찰 수사 중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지난 24일, 셀허브 조직원 3명을 각각 구속·불구속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송치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이들은 조건 만남 사이트를 운영한 로맨스 스캠 조직이다. 여성 관련 데이트 상품을 판매하거나 연애 빙자 사기를 일삼았다. 셀허브 조직원이던 A씨는 “연예인 지망생이나 모델과 연락하게 해 준다며 50만원에서 100만원까지 대포통장 계좌에 돈을 입금하게 한 뒤 텔래그램 아이디를 알려주고 연락하게 하는 시스템”이라며 “연결된 여자는 실제 남성이고 한국에서 조직폭력배로 활동하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이 조직은 지난해 3월 캄보디아 범죄 밀집 지역인 태자 단지에서 인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같은 해 5월 사이트를 개설해 조직원들에게 민간인 협박, 중국어 통역 등의 역할을 맡기고 수십명으로부터 약 40억원을 뜯어냈다. 같은 해 7월 <일요시사> 취재가 시작되자 이 조직은 셀허브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의 이름을 ‘김현숙’에서 ‘박소희’로 변경하고 유명인의 사진을 수차례 도용했다. 유 전 장관에게 표창장까지 수여받았다며 피해자들의 의심을 피하려는 꼼수도 서슴지 않았다. A씨는 “조직에서 탈출하려는 사람은 밤새 맞거나 강제로 마약을 투약당하기도 했다. 조직폭력배 출신 한국 사람들이 간부고 일반 조직원은 교민 사이트를 통해 ‘한 달에 500만~1000만원을 벌 수 있다’는 거짓말에 속아 일하게 된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건은 서울경찰청이 수사하기 이전인 지난해 7월부터 강서·영등포·구로경찰서 등에 여러 고소장이 접수됐었다. 하지만 수사는 원활하지 않았다. 주요 혐의자가 해외에 거주 중이거나 피의자 특정이 어려운 게 난관이었다. 수사를 담당했던 한 경찰 관계자는 “캄보디아 프놈펜에 주요 혐의자들이 거주한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지난해부터 공조를 요청했으나 캄보디아 당국이 비협조로 일관했다”며 “고소인분들이 ‘왜 안 잡냐’ ‘내 돈 어떻게 하냐’는 등 불만이 많으셨다. 매번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캄보디아가 협조하지 않으면 조치가 불가능했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3월부터 조직원 모집…태자 단지서 모의 ‘유인촌 표창장’ 걸어 놓고 ‘정상 기업’ 홍보 막막했던 수사는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면서 풀리기 시작했다. 이재명정부가 캄보디아를 압박했고 현지에 구금된 한국인 범죄자 겸 피해자 수십명을 국내로 송환했다. 송환된 인원 중 일부는 셀허브 사건과도 연관된 것으로 파악됐다. 정성학 충남경찰청 수사부장은 지난 20일 청내 프레스센터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들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사기) 및 범죄단체 가입 및 활동 혐의로 전원 구속했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부건(총책 가명, 40대 초반, 한국말을 쓰는 외국인 추정) 조직으로부터 확인된 피해 건수는 110건, 피해액은 93억여원에 달했다. 약 100명의 조직원을 거느린 부건은 지난해 중순부터 올해 7월까지 주로 프놈펜 웬치(범죄 단지) 및 태국 방콕 등지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범행을 벌여왔다. 부건 조직은 지난 2018년 중국에서부터 활동을 시작해 그동안 단속을 피하려 태국, 캄보디아 등지로 거주지를 옮겨가며 범행을 계속해 왔다. 이들은 데이터베이스, 입출금 등을 지원·관리하는 CS팀과 광고를 보고 접근한 피해자를 기망하는 로맨스팀, 검찰 사칭 보이스피싱팀, 코인투자리딩 사기팀, 공무원 사칭 노쇼 사기팀 등 총 5개 팀으로 이뤄진 조직체계를 갖췄다. 이들은 가구판매업을 하러 캄보디아에 갔다고 진술했으나 이후 지역 선·후배 권유, 고액 아르바이트 인터넷 광고 등을 접하고 범죄에 연루된다는 걸 알면서도 조직에 가입해 활동한 것으로 조사됐다. 속아서 조직에 들어갔다고 진술하지 않은 이들의 유입 경로는 ▲지인 포섭 29명 ▲인터넷 광고 등 포섭 8명 ▲현지 카지노 포섭 6명 ▲기타 2명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남성 42명과 여성 3명으로 연인도 있었다. 대부분은 20~30대 연령으로 최소 2개월부터 최대 16개월까지 범행에 가담해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조건 만남 사이트 경기북구경찰청 형사기동대도 전기통신금융사기특별법 위반 등 혐의로 피의자 15명 중 11명을 구속 송치했다. 이들은 지난해 8월부터 한 달간 캄보디아 범죄 단지에서 여성을 사칭, 조건 만남 등을 명목으로 피해자들로부터 돈을 가로챘다. 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성 만남 광고를 낸 후 이를 보고 연락해 온 피해자에게 여성인 척 채팅으로 유인했다. 여성을 소개받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개발한 조건 만남 사이트에 회원 가입과 인증을 받아야 한다고 속여 인증을 위한 돈을 요구했다. 3차례에 걸친 인증 절차 과정에서 여러 게임에 성공하면 가입비를 돌려준다고 속여 피해자로부터 1인당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을 받아 챙겼다. 피해자들이 믿을 수 있도록 별도의 만남 인증과 후기글을 남기는 ‘화력방’도 운영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 규모는 피해자 36명, 피해금 16억원 상당이며, 1인당 최대 피해 금액은 2억1000만원이다. 이들은 대부분 20~30대 남녀다. 최초 범죄집단을 구성한 캄보디아 프놈펜 지역 명칭 ‘툴콕’을 의미하는 ‘TK’파로 스스로를 부르며 총책을 정점으로 한 지휘·통솔 체계를 갖췄다. 조직 운영을 총괄하는 총책, 이를 보좌하며 실무 전반과 인력 공급 등을 담당하는 총관리자, 각 파트 팀원의 근태를 관리하고 지시하는 팀장으로 구성됐다. 또 자체적인 조건 만남 홈페이지를 제작하는 개발자, SNS에 광고 글을 게시하는 홍보팀과 광고를 보고 접근한 피해자를 기망하는 로맨스 2개팀으로 역할을 분담했다. ▲상호 가명 사용 ▲근무 중 휴대전화 금지 ▲사진 촬영 금지 ▲야간에는 커튼으로 외부 차단 ▲다른 부서와의 업무 내용 공유 금지 등의 규칙에 따라 생활하기도 했다. 중국 국적 100명 뒷배 이들은 총책이 마련한 건물에서 2인1조로 합숙했는데 프놈펜 툴콕 지역의 13층 건물을 사용하다가 지난 8월, 현지 단속을 피해 센소크 지역 7층 건물로 이전해 범행을 이어오던 중 현지 수사 당국에 의해 검거됐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SNS 구직 광고나 조직원을 통해 범죄단체에 가입했다고 진술했으며 사기임을 알고도 범행을 지속한 것으로 조사됐다. 피의자 대부분은 현지에서 구금된 중에도 총책이 이른바 관작업을 통해 자신들을 석방시켜 줄 것이라는 말만 믿고 대사관의 도움을 거절하고 귀국하지 않았다. 셀허브 사건 간부들은 타 사건에도 연루됐다. 지난 7일 캄보디아 바벳에 인접한 베트남 떠이닌 지역 국경 검문소 인근에서 30대 여성 B씨가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는데, 숨지기 직전까지 셀허브 간부와 같이 있었다. B씨의 사인은 마약 과다 투약이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B씨가 셀허브에서 한국인 명의의 대포통장을 공급해 왔다고 보고 있다. A씨는 “셀허브에서 일할 사람을 모집하는 역할을 했던 B씨인데 통장을 팔려고 캄보디아에 도착한 한국인들을 유인해 범죄 단지로 팔아넘기고 유인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정보·수사기관도 B씨에 의해 범죄 단지에 넘겨지는 피해를 입거나 유흥업소 일을 강요당한 사례를 확인하고 조사 중이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사실상 마약을 강제로 과다하게 투약당한 살인사건이라는 첩보는 아직 확인 중”이라며 “특정 조직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건 현지 경찰도 수사 중인 내용”이라고 말했다. 대개 조직폭력배 출신…지휘는 중국 조직이 맡아 40억 피해액 환수 불가능 “자금 세탁 끝났다” 첫 데이트하던 연인을 치어 여교사를 숨지게 했던 이른바 ‘대전 머스탱 교통사고’의 피의자도 셀허브 조직원으로 확인됐다. 피의자 전모씨는 2019년 2월10일 오전 10시14분 대전 중구 대흥동에서 면허도 없이 외제차를 운전하던 중 인도를 걷던 조모씨와 박모씨를 들이받아 박씨를 숨지게 하고, 조씨에게 중상을 입혔다. 전씨가 대여한 외제차는 불법 대여 차량이었다. 이 차량은 애초 대구에 사는 C씨가 자신 명의로 캐피털에서 월 115만원씩 주는 조건으로 60개월간 대여한 것이다. C씨는 사촌 안모씨와 함께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나모씨가 올린 ‘외제차 저렴하게 빌려줄 사람을 찾는다”는 글을 보고 접근, 한 달에 136만원씩 받기로 하고 대여한 머스탱 차량을 재임대했다. 나씨는 이렇게 빌린 머스탱 차량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활용해 “외제차를 빌려준다”고 광고하며 또다시 대여업을 했다. 전씨는 나씨가 올린 이 글을 보고 일주일에 90만원씩 주기로 약속하고 머스탱을 빌려 운전했다. 매년 확정되는 범죄수익 추징금은 30조원을 넘지만 환수 금액은 1%에도 미치지 않는다. 법무부가 캄보디아에서 보이스피싱과 로맨스 스캠 등의 범죄로 발생한 현지 범죄수익을 국내로 환수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선 법무부는 “캄보디아 내에서 벌어진 범죄 가운데 현재 국내에서 수사 중이거나 재판 중인 사건이 1차 현지 수사 의뢰 대상”이라며 “이후 국내에서 유죄 선고를 받으면 최종적으로 환수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국제형사사법공조 조약에 따르면 해외에서 발생한 범죄라 하더라도 피해자가 국내에 있고 피해액이 특정될 경우, 우리 정부가 해외에 범죄수익 환수를 요청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2019년 캄보디아와 국제형사사법공조 조약을 체결해 2021년 정식 발효됐다. 주요 간부들 타 사건 연루 정보기관 관계자는 “범죄자 개인이 아닌 조직을 대상으로 한 범죄수익 환수 사례는 거의 없다. 특히 국내에서 수사와 재판이 끝나야 한다”며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서는 건 좋지만 이미 늦었다. 범죄조직 특성상 이미 코인이나 대포 통장으로 제3국에 은닉하거나 세탁을 하고도 남았을 시간”이라고 지적했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도 “수사가 끝나고 유죄 판결이 나기까지 수년이 걸리는데 환수 절차는 이 모든 사법절차가 종료돼야 가능하다. 특히 조세회피처로 범죄수익을 옮겨놨다면 환수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봤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