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정병철 전경련 상근부회장 위기론 내막

대기업 돈 먹는 하마…고삐 놓은 ‘독일 병정’

[일요시사=김성수 기자 ] 한창 ‘잘 나가던’ 정병철 전경련 상근부회장이 갑자기 벼랑 끝에 몰렸다. 전경련 안팎에서 독선적인 조직 운영 논란이 일더니 급기야 교체설이 확산되는 등 위기론에 휩싸였다. 한마디로 앞날이 흐리다. 30여년간 성공가도를 달려온 정 부회장. 여기까지일까.

수해복구 한창 때 부인과 동반 라운딩 강행 ‘물의’
회원사 의견 수렴 없이 1조 사회공헌 추진 ‘논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지난달 27일부터 30일까지 제주 롯데호텔에서 ‘2011 전경련 제주 하계포럼’을 주최했다. 전경련이 매년 개최하는 하계포럼은 기업인들이 1년에 한 번 제주도에 모여 경제 현안과 산업계 이슈 등을 논의하고 화합을 도모하는 자리다. 올해는 전경련 사무국 임직원을 비롯해 기업인과 그 가족 등 400여명이 참석했다.

전경련은 ‘재계 축제’인 만큼 이 기간 요트 관광과 요가 강좌, 가수 콘서트, 클래식 공연, 한라산 등반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참석자들은 오전에 강연을 듣고 오후엔 프로그램을 즐겼다. 이를 두고 포럼 행사와 전혀 관계없는 ‘호화 일정’이란 지적이 나왔지만, 전경련은 당초 예정대로 진행했다.

‘재계축제’ 하계포럼
호화 프로그램 즐겨

문제는 28일 오후에 진행될 예정이었던 ‘골프대회’. 전경련은 엘리시안, 스카이힐, 타미우스, 레이크힐스 등 컨트리클럽 4곳에서 ‘전경련 회장배 친선골프대회’를 열 계획이었지만, 중부지방의 집중호우로 수해 피해가 확산되자 여론을 의식해 대회를 부랴부랴 취소했다.

전경련 측은 “수해로 피해를 입은 수재민의 고통을 분담한다는 차원과 국민정서를 감안해 골프대회를 취소하기로 했다”며 “전경련 임직원들은 골프를 치지 않는다. 다만 회원사 참가자들에겐 불참을 강요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전경련의 설명대로 일반 참석자 300여명은 85개 팀으로 나눠 이날 오후 1시부터 엘리시안CC에서 골프를 쳤다. 하지만 골프채를 잡은 기업인들 사이에 전경련 임원도 끼어있었다. 정병철 상근부회장이었다. 정 부회장은 부인과 함께 라운딩을 강행해 물의를 빚었다. 그 시간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 LG그룹, SK그룹 등 재계는 수해복구 지원에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지난 2일에도 전경련의 무책임한 행동이 또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전경련은 3일 삼성그룹, 현대차그룹, LG그룹, SK그룹 등 4대 그룹 임원들과 조찬간담회를 갖고 사회공헌재단 설립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전경련은 이 자리에서 주요 그룹별로 1조원의 사회공헌재단 자금을 조성한다는 계획을 전달할 방침이었다. 전경련 산하 회장단 20개 그룹과 비회장단 5개 그룹 등 25개 그룹이 내년부터 매년 1000억원씩 각출해 10년에 걸쳐 1조원 규모의 사회공헌재단을 설립하는 방안이다. 삼성그룹이 250억원, 현대차그룹·LG그룹·SK그룹이 각각 130억원씩 내는 밑그림이 그려졌다.

그러나 이 내용은 간담회 직전 언론 보도를 통해 먼저 알려졌고, 주요 그룹들은 전혀 모르는 사실이라며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전경련이 회원사들과 충분한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치지 않은 것이다. 전경련은 주요 그룹들이 반발 움직임을 보이자 예정됐던 간담회를 하루 전날 긴급히 취소했다.

전경련 측은 “3일로 예정됐던 조찬간담회는 경제 전반에 대한 의견을 청취하는 자리로 계획됐던 것”이라며 “사회공헌과 관련된 재계의 구체적인 실행방안이 결정되는 자리가 아니었는데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어 취소키로 했다”고 밝혔다.

전경련이 회원사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수백억원에 달하는 회비를 받으면서도 재계의 입장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전경련이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기는커녕 오히려 반기업 정서 등 재계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키우고 있다는 비판도 들린다.

언론들도 등을 돌렸다. 전경련이 삐딱하게 나가자 연일 비난 기사가 쏟아지는 등 집중포화를 맞고 있다. 언론들은 “전경련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기업들은 물론 비난 여론마저 조성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재계의 본산’으로서의 위상이 크게 흔들리자 ‘전경련 무용론’이 또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수장 인선 문제로 진통을 겪는 등 우여곡절 끝에 순항하는 듯 했으나 이도 잠시. 제대로 된 기능과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재계 한 인사는 “대기업 이미지를 관리해야 할 전경련이 각종 구설로 위신이 땅에 떨어져 오히려 재계 이미지에 먹칠을 하고 있다”며 “제 기능과 역할도 못한 채 재계를 대표하는 이름표만 덩그러니 달고 있다”고 꼬집었다.

모 그룹 관계자는 “전경련은 회비 내기 아까울 정도로 하는 일이 없다. 수백억원에 달하는 돈 먹는 하마와 다를 바 없다”며 “너무 배가 불러서인지 좀처럼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조용한 절에 비유한 ‘전경사’란 말이 딱 맞다”고 비꼬았다.

전경련에 빗발치는 화살들은 자연스레 사무국을 이끌고 있는 임원들에게 향하고 있다. 전경련이 암초에 걸려 좌초될 위기에 처하자 내부 조직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사무국 수장인 정병철 상근부회장의 리더십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전경련 안팎에서 독선적인 조직 운영 논란이 일더니 급기야 교체설이 확산되는 등 위기론에 휩싸였다.

정 부회장은 지난 2월 선임된 허창수 전경련 회장(GS그룹 회장)에게도 무거운 짐이 되고 있는 처지다. 훤칠한 용모에 온화한 성품으로 ‘영국신사’란 별명을 가진 허 회장과 달리 정 부회장은 작은 체구에 직선적인 성격 때문에 별명이 ‘독일 병정’이다.

기능·역할 미흡
‘본산’ 위상 흔들

올해 65세인 정 부회장은 관리형 CEO이자 재무통으로 30년 넘게 LG그룹에서 근무한 ‘LG맨’출신이다. 경복고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69년 LG화학에 입사해 LG반도체 관리본부 전무, LG전자 재경담당 부사장과 관리담당 사장 등을 지냈다. 이어 LG산전 사장, LG CNS 사장,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회장 등을 거쳐 2008년 3월 상근부회장에 선임되기 전까지 LG CNS 고문을 역임했다.

재계입장 제대로 대변 못해 오히려 반기업 정서 키운다
독선적인 조직 운영 지적 재계 안팎서 교체설 확산


정 부회장은 LG CNS 사장 재직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이 추진했던 서울시 신교통카드 서비스사업을 직접 구축하면서 이 대통령과 인연을 맺기도 했다. 인터넷 수능강의시스템인 ‘e-러닝’사업 인프라 구축 등 전자정부사업의 11대 과제 중 5대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해 경영능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전경련은 넓은 인맥과 역량을 갖춘 정 부회장이 재계와 MB정부간 가교역할을 잘해 낼 것으로 기대했다.

전경련은 정 부회장을 선임할 당시 “재계 화합은 물론 정부와 경제계간 가교 역할에 적임자라”라며 “업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경제계 현안을 해결할 적임자"라고 추대 배경을 설명했다. 정 부회장은 “경제살리기를 최우선 과제로 삼은 MB정부가 들어선 후 기업에 대한 국민과 정부의 기대가 매우 크다”며 “이럴 때 열심히 일해 좋은 성과를 내면 국가경제발전과 국민에게도 좋은 일을 하는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전경련 상근부회장은 전경련 회장을 보좌하면서 사무국을 총괄한다. 인사와 재무 등 실권을 쥐고 있다. 동시에 500여개 대기업과 60여개 업종별 단체 등 회원사의 애로를 파악하고 국가경제 발전에 필요한 제언을 정부와 정치권에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재계의 대변인’또는 ‘재계와 정부의 가교’로 불리는 이유다.

그러나 전경련이 무능한 모습을 보이는 상황에서 재계가 정 부회장을 곱게 볼 리 없다. 허 회장보다 오히려 더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다. 정 부회장은 ▲초과이익공유제 추진 ▲기업별 동반성장지수 발표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연기금 주주권 행사 강화 ▲법인세 감세 철회 움직임 ▲공정거래법 개정안 처리 등 재계에 대한 정치권 압박이 거세졌지만, 대기업 입장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해 대응이 부실하다는 재계의 비난을 받고 있다.

모 그룹 임원은 “전경련이 무능하다는 얘기를 듣는 것은 모두 정 부회장을 비롯한 사무국 임직원들의 책임”이라며 “구태의연한 권위주의 사고에 젖어 회장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실 정 부회장의 리더십·소통 부재 논란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가벼운 ‘입’이 신뢰성에 의문을 갖게 했다.
정 부회장은 지난해 11월 장기간 공석이었던 신임 회장을 영입하는 과정에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시간을 갖자고 했다”며 영입 가능성을 내비쳤다. 그러나 삼성그룹 측은 곧바로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해 진실공방이 펼쳐진 바 있다. 이에 정 부회장은 “(이 회장이 직접 언급한 것이 아니라) 염화시중의 미소를 지었다”고 말을 바꿨고, 결국 이 회장은 전경련 회장직을 수락하지 않았다.

앞서 지난해 7월에도 신중하지 못한 처신으로 뒷말이 적지 않았다. 정 부회장은 제주포럼에서 정부와 정치권을 신랄하게 비판한 인사말(회장 대독)이 논란이 되자 언론 탓으로 책임을 돌렸다.

때문일까. 정 부회장은 자리가 날 때마다 “기자들을 출입시키지 않고 싶다”등의 발언하는 등 언론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지난 5월엔 정 부회장이 회장으로 있는 한국광고주협회가 ‘광고주가 뽑은 나쁜 언론’을 선정 발표했는데, 해당사의 실명을 밝히면서도 입장이나 반론을 전혀 싣지 않는가 하면 구체적인 내용도 적시하지 않아 사실상 ‘언론 길들이기’란 비판이 일었다.

이 와중에 정 부회장은 전경련 내 역할보다 ‘자리’에 연연하는 행보까지 보였다. 정 부회장은 지난해 5월 한국광고주협회장을 맡은데 이어 지난 5월 한국경제연구원에 신설된 부회장직까지 겸직하기로 했다.

부적절 처신 뒷말
전열 재정비 시급

이에 따라 협회와 연구원은 사실상 전경련의 지배를 받게 됐다. 두 곳은 전경련에서 설립했으나 별다른 간섭 없이 자율 체제로 운영돼 왔다. 때문에 정 부회장이 장악하자 자율성과 독립성, 전문성 훼손 논란이 불거졌었다.

한경연 한 관계자는 “전경련은 김영용 전 원장을 사퇴시키고 대신 정 부회장을 밀어 넣은 구조조정을 단행했다”며 “이는 재계로부터 무능하다는 비난을 받자 그 화살을 한경연으로 돌려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귀띔했다.

내년엔 나라에 큰 일이 많다. 총선이 있고, 대선이 있다. 모두 정치권 사안이지만 재계도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표심을 의식한 선심성 공약이 쏟아질 테고, 상대적으로 재계를 압박하는 수위가 높아질 게 뻔하다. 이런 상황에서 넋 놓고 있는 전경련을 바라보는 재계는 한숨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오는 9월이 설립 50주년이라 한숨은 더욱 깊어진다. 하루빨리 전열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어찌 보면 당연한 요구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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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