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문 덮친’ 문화예술계 막전막후

양반만 있는 줄 알았더니…“조용한 날이 없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문화·예술계에 바람 잘 날이 없다. 2016년 SNS를 중심으로 ‘문단 내 성추행’ 폭로가 이어지면서 문학계가 쑥대밭이 됐다. 박근혜정부서 특정 문화·예술인에 대한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홍역을 앓았고, 그 여파는 현재진행형이다. 올해도 연초부터 영화계, 문단 할 것 없이 동시다발적으로 사건이 터져 나오고 있다.
 

지난해 12월12일 제18회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행사가 열렸다. 2000년 처음 시상을 시작한 이 상은 영화계 전반에서 활동 중인 여성 영화인들이 선정하고 수여하는 상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는 평을 받아왔다. 매년 최고상에 해당하는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연기상 등 각종 부문에서 주목할 만한 활약을 펼친 여성 영화인에게 준다.

빛바랜 수상
감독상 박탈

이날 감독상의 주인공은 이현주 감독이었다. 이 감독은 여성간의 사랑과 이별을 그린 영화 <연애담>으로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감독상을 수상했다. 지난해 11월 제38회 청룡영화상과 10월 제26회 부일영화상에서 역시 <연애담>으로 신인감독상을 수상하면서 대중에게 이름을 각인시켰다. 이 감독이 연출한 <연애담>은 성소수자의 사랑을 현실적으로 그려냈다는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이 감독이 연루된 성추문 사건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감독상의 의미가 퇴색됐다. 추문의 내용이 동성 성폭행으로 드러나면서 그 파장은 더욱 커졌다. 또 사건이 이미 대법원 선고까지 종결된 시점에 알려졌기 때문에 놀라움은 배가됐다.

이 사건은 ‘미투(Me too)’ 운동을 통해 알려졌다. 미투 운동은 SNS에 ‘나도 그렇다’는 뜻인 Me Too에 해시태그(#Me too)를 달아 자신이 겪었던 성범죄를 고백하면서 그 심각성을 알리는 캠페인이다. 


지난해 10월 미국 할리우드의 유명 영화제작자 하비 웨인스타인의 성추문 사건 이후 배우 알리사 밀라노가 처음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피해자인 여성 영화감독 A씨는 지난 1일 SNS를 통해 이 감독과의 일을 세상에 알렸다. 2015년 4월 이 감독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 
 

A감독은 “2015년 봄 동료이자 동기인 여자감독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 가해자가 재판을 수십 번 연기한 탓에 재판은 2년을 끌었고 지난해 12월 드디어 대법원 선고가 내려졌다”고 적었다. 

A감독에 따르면 이 감독은 술에 취해 의식을 잃은 A감독에게 유사 성행위를 했다.

사건 발생 한 달 뒤 A감독은 이 감독을 준유사강간 혐의로 고소했다. 2년간의 재판 끝에 대법원은 이 감독에게 징역 2년과 집행유예 3년, 성범죄예방교육 40시간 이수 명령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유사강간은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에 대해 구강, 항문 등 성기를 제외한 신체의 내부에 성기를 넣거나 성기, 항문에 손가락 등 성기를 제외한 신체의 일부 또는 도구를 넣는 행위를 말한다. 형법에는 유사강간죄를 저지르면 2년 이상의 유기 징역에 처한다고 돼있다.

또다시 불거진 성범죄로 ‘얼룩’
동성 성폭행·성추행 의혹·폭행


사태가 일파만파로 커지자 이 감독은 6일 보도자료를 통해 공식입장을 밝혔다. 그는 “지금까지 동성애자라는 성 정체성에 대해 피해자 등 몇몇 지인들 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떳떳하게 밝히지 못했다. 

동성애자임을 밝혔을 때 부모님께서 받으실 충격, 영화 시장서 저를 바라볼 곱지 않은 시선, 우리 사회에서 성소수자들이 처한 상황 등을 생각하면 당당히 커밍아웃할 용기가 없었다”고 전했다.

이어 “A감독은 내가 동성애자임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한 명일 정도로 나와 친분이 깊었고 많은 감정들을 공유하고 있었다”며 “당시 술자리서 피해자가 만취한 상태였기 때문에 일행들의 부탁을 받아 피해자와 함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성폭행 논란에 대해서는 “술에 취해 잠든 줄 알았던 피해자가 어느 새 울기 시작하더니 오열했다. 피해자가 자신의 고민을 얘기하고 내가 달래는 과정서 자연스럽게 성관계를 가지게 됐다”며 “당시 나로서는 피해자가 저와의 성관계를 원한다고 여길만한 여러 가지 사정들이 있었다”고 해명했다.

이 감독의 해명은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A감독은 같은 날 ‘가해자 이현주의 심경고백 글을 읽고 쓰는 글’이라는 제목으로 SNS에 글을 올려 이 감독의 공식입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A감독은 “다시 떠올리기 끔찍하지만 그날의 일을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가해자가 먼저 그날의 일을 말해버렸으니 말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해자는 심경고백 글에서 사건 이후 ‘밥 먹고 차 먹고 대화하고 잘 헤어졌는데 한 달 뒤에 갑자기 신고를 했다’고 하지만 이는 명백한 거짓말이다. 사과를 받기 위해 두 차례 더 먼저 전화를 했지만 사과는커녕 내 잘못이라고 탓하는 얘기만 들었다”고 당시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A감독은 1심 판결문을 일부 발췌해 공개하고 “끝으로 당신의 그 길고 치졸한 변명 속에 나에 대한 사죄는 어디에 있는가? 순수한 마음으로 응원한 영화팬들에 대한 사죄의 말은 어디에 있는가? 내가 몹쓸 짓을 당했던 그 여관이 당신의 영화에 나왔던 그곳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됐을 때 느낀 섬뜩함을 당신의 입장문을 읽으며 다시금 느꼈다”는 말로 글을 마무리했다.
 

사건에 대한 이 감독과 A감독의 입장, 법원의 판결 등이 알려지자 영화계는 발칵 뒤집혔다. 여성영화인모임은 이 감독의 감독상을 박탈했고, 한국영화감독조합은 그를 제명했다. 또 영화진흥위원회는 사건 관련 진상조사팀을 꾸렸다.

내부위원과 외부위원으로 팀을 구성해 1∼2주 안에 사건의 진상을 밝히겠다는 입장이다. 이 과정에서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한국영화아카데미 소속 교수 역시 조사하겠다는 계획이다.

영진위 관계자는 “이번 조사가 이현주 감독 개인의 이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향후 비슷한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며 “이와 같은 사건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매뉴얼을 만들 예정”이라고 밝혔다.

미투 운동
대대적 확산


영화계서 현재 진행 중인 성추문 사건은 또 있다. 배우 조덕제씨와 여배우 B씨 간의 진실공방이다. B씨는 지난 2015년 4월 저예산 영화를 촬영하던 중 상호 합의되지 않은 상황서 상대 남배우가 속옷을 찢고 바지에 손을 넣어 신체 부위를 만지는 등 성추행을 당했다며 조씨를 강제추행치상 혐의로 고소했다.

조씨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항소심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40시간 이수 명령이 내려졌다. 조씨는 2심 판결이 나온 이후 기자회견을 열어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는 “2년 6개월간 기나긴 송사를 벌여왔고 이제 대법원에 가게 됐다”며 “이렇게 힘들고 고달픈 송사 과정에서 억울함과 답답함에 무너지려 하는 마음을 다잡고 허위와 거짓 주장에 갈기갈기 찢긴 가슴을 추스르며 걸어가면 곧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 믿고 버텨왔다”고 말문을 열었다.
 

조씨는 1심과 2심에서 판결이 갈린 것은 재판부의 시각과 관점의 차이라고 주장했다. 1심에서는 조씨의 행위를 업무상의 정당행위로 판단하고 촬영 중의 연기로 판단한 반면, 2심은 감독의 지시에 따랐던 연기를 연기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회의 일반적인 성폭력 상황으로 받아들였다는 설명이다.

이어 “영화인에게 물어봐 달라. 20년 이상 연기한 조·단역 배우가 그 많은 스태프가 있는 현장에서 연기하면서 일시적으로 흥분할 수도 없을뿐더러 흥분 상태서 연기자임을 망각하고 성추행하는 것을 상상할 수도 없다는 점을 잘 알 것이다. 정신병자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토로했다.

법정 공방
입장 평행선


여배우 측도 기자회견을 열어 입장을 밝혔다. 여배우의 대리인인 이학주 변호사는 “조덕제는 자신의 주장과 달리 13번 신 처음 장면부터 감독의 연기지시를 제대로 따르지 않았다”며 조씨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또 항소심도 조씨의 행위가 감독의 연기지시에 충실히 따르거나 정당한 연기를 하는 과정에서 이뤄진 것이라 볼 수 없다는 취지로 판시했다고 덧붙였다. 공은 대법원으로 넘어가 있는 상태다.

조씨와 B씨의 입장 차이는 평행선을 그리고 있다. 이 과정서 B씨는 조씨에 대해 명예훼손, 모욕,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지난달 중순경 서울남부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또 B씨를 향해 악의적인 글을 지속적으로 올린 누리꾼 73명도 같은 혐의로 고소했다.

김기덕 감독이 연루된 폭행 사건도 아직 마무리 되지 않았다. 김 감독은 지난 2013년 영화 <뫼비우스> 촬영장에서 여배우 C씨에게 상대 남배우의 주요 부위를 만질 것을 주문하고 수시로 뺨을 때리는 등 폭행을 가한 혐의로 고소당했다. 

김 감독은 검찰 조사 과정서 “뺨을 때린 사실은 인정하지만 연기 지도를 위해서였을 뿐 고의는 없었다”고 진술했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형사6부는 촬영현장에서 김 감독이 고소인의 뺨을 세게 내리치며 폭행한 부분에 대해서는 혐의를 인정해 폭행죄로 500만원 약식기소했다. 나머지 고소사실에 대해서는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혐의없음’ 처분했다. 

김 감독에 대한 고소 결과가 나오자 일각에서는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유명 원로시인 의혹 폭로
문단은 찬반 갈려 격론중

C씨는 지난달 19일 ‘위키트리’와의 인터뷰에서 검찰에 항고 이유서를 접수했다고 전했다. 또 정신과 치료와 트라우마 치료센터 심리 상담을 함께 받고 있다는 근황을 밝혔다. 

C씨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 감독과 있었던 사건 경위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기덕씨만의 문제가 아니다. 영화계에 입문한 이후 폭력, 성폭력을 수도 없이 당했다. 내가 풀어야 할 숙제라는 걸 깨달았다. 물러서지 않을 거다. 물러서면 이자가 붙는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

2016년 연이어 터진 문인들의 성추행 의혹으로 몸살을 앓은 문단은 최근 거물급 문인에 대한 폭로글로 또 다시 혼란 상태에 빠졌다. 발단은 최영미 시인의 시 ‘괴물’이다. 최 시인의 시는 지난해 12월 계간지 <황해문화>에 실렸다. 

최근 미투 운동이 바람을 일으키면서 2개월이 지나 수면 위로 올라온 것.

시 ‘괴물’에는 ‘En선생’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해당 인물이 문단의 거물로 불리는 원로시인이라는 분석이 제기되면서 논란은 순식간에 불타올랐다. 

최 시인은 ‘괴물’서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 …(중략)… 몇 년 뒤, 어느 출판사 망년회에서/옆에 앉은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En을 보고/내가 소리쳤다/“이 교활한 늙은이야!”/감히 삼십년 선배를 들이박고 나는 도망쳤다 …(후략)…

최 시인은 지난 7일 SBS와의 인터뷰서 자신이 겪었던 또 다른 성추행에 대해 언급했다. 시에서 다룬 것보다 더한 성폭력을 휘둘러온 문단 권력자들이 있다며 그들의 진심어린 사과를 원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문단의 권력을 쥔 남자들이 어떤 자리에 부를 때 안 가면 소위 ‘찍혀요’, 그런데 대개 술자리에서 저는 늘 불쾌한 일을 당했어요. 이미 등단하고 시집을 낸 저 같은 사람보다는 더 약한 여자 문인들, 아직 등단하지 않고 원고만 투고한 상태의 그들이 가장 취약하죠”라고 설명했다.

최 시인의 폭로에 문인들은 찬반 의견을 내세우며 논란에 가담하고 있다. 이승철 시인은 최 시인이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지난 7일 최 시인이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진행한 인터뷰를 두고 “내내 심기가 불편했다. 문단에 만연한 성추행이라니, 최영미는 참으로 도발적인 발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잣대로 마치 성처녀처럼 쏟아냈다”며 “메이저 출판사와 무소불위의 평론가들의 묵계를 강조하면서 그녀는 피해자 코스프레를 남발했다”고 자신의 SNS에 적었다. 또 ‘싸가지 없다’ 등의 원색적인 표현을 사용, 최 시인의 최근 행보를 맹비난했다.

시인의 폭로
거장의 몰락?

반면 류근 시인은 지난 6일 자신의 SNS에 “몰랐다고? 고○ 시인의 성추행 문제가 드디어 수면 위로 드러난 모양”이라며 “놀랍고 지겹다. 1960∼1970년대부터 공공연했던 고○ 시인의 손버릇, 몸버릇을 이제야 마치 처음 듣는 일이라는 듯 소스라치는 척하는 문인과 언론의 반응이 놀랍고, 하필이면 이 와중에 연예인 대마초 사건 터뜨리듯 물타기에 이용당하는 듯한 정황 또한 지겹고도 지겹다”고 문단과 언론의 행태를 지적했다.

이어 “소위 문단 근처에라도 기웃거린 내 또래 이상의 문인 가운데 고○ 시인의 기행과 비행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얼마나 되나”라며 “심지어는 눈 앞에서 그의 만행을 지켜보고도 마치 그것을 한 대가의 천재성이 끼치는 성령의 손길인 듯 묵인하고 지지한 사람들조차 얼마나 되나. 심지어는 그의 손길을 자랑스러워해야 마땅하다고 키득거린 이들 또 얼마나 되나”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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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캄보디아 ‘셀허브’ 추적

[단독]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캄보디아 ‘셀허브’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민낯이 드러났다. 주로 수도인 프놈펜 인근과 시아누크빌 범죄 단지가 그들의 주둔지였다. 국내 조직폭력배가 중국 갱단과 결탁해 만든 ‘셀허브’의 경우 피해자만 수십명이다. 이들은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가장했다. 사이트에는 유명인의 사진이 수차례 도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는 사라진 셀허브 엔터테인먼트의 홈페이지. 지난해 7월 <일요시사>가 취재한 이후 대표이사의 이름과 사진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표창장을 받았다며 문서를 위조하기도 했다. 이 기업의 정체는 로맨스 스캠 조직이다. 확인된 피해액만 약 40억원, 피해자는 수십명이다. 한 언론사는 보도자료까지 작성하며 홍보하기도 했다. 조직적 준비 경찰 수사 중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지난 24일, 셀허브 조직원 3명을 각각 구속·불구속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송치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이들은 조건 만남 사이트를 운영한 로맨스 스캠 조직이다. 여성 관련 데이트 상품을 판매하거나 연애 빙자 사기를 일삼았다. 셀허브 조직원이던 A씨는 “연예인 지망생이나 모델과 연락하게 해 준다며 50만원에서 100만원까지 대포통장 계좌에 돈을 입금하게 한 뒤 텔래그램 아이디를 알려주고 연락하게 하는 시스템”이라며 “연결된 여자는 실제 남성이고 한국에서 조직폭력배로 활동하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이 조직은 지난해 3월 캄보디아 범죄 밀집 지역인 태자 단지에서 인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같은 해 5월 사이트를 개설해 조직원들에게 민간인 협박, 중국어 통역 등의 역할을 맡기고 수십명으로부터 약 40억원을 뜯어냈다. 같은 해 7월 <일요시사> 취재가 시작되자 이 조직은 셀허브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의 이름을 ‘김현숙’에서 ‘박소희’로 변경하고 유명인의 사진을 수차례 도용했다. 유 전 장관에게 표창장까지 수여받았다며 피해자들의 의심을 피하려는 꼼수도 서슴지 않았다. A씨는 “조직에서 탈출하려는 사람은 밤새 맞거나 강제로 마약을 투약당하기도 했다. 조직폭력배 출신 한국 사람들이 간부고 일반 조직원은 교민 사이트를 통해 ‘한 달에 500만~1000만원을 벌 수 있다’는 거짓말에 속아 일하게 된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건은 서울경찰청이 수사하기 이전인 지난해 7월부터 강서·영등포·구로경찰서 등에 여러 고소장이 접수됐었다. 하지만 수사는 원활하지 않았다. 주요 혐의자가 해외에 거주 중이거나 피의자 특정이 어려운 게 난관이었다. 수사를 담당했던 한 경찰 관계자는 “캄보디아 프놈펜에 주요 혐의자들이 거주한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지난해부터 공조를 요청했으나 캄보디아 당국이 비협조로 일관했다”며 “고소인분들이 ‘왜 안 잡냐’ ‘내 돈 어떻게 하냐’는 등 불만이 많으셨다. 매번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캄보디아가 협조하지 않으면 조치가 불가능했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3월부터 조직원 모집…태자 단지서 모의 ‘유인촌 표창장’ 걸어 놓고 ‘정상 기업’ 홍보 막막했던 수사는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면서 풀리기 시작했다. 이재명정부가 캄보디아를 압박했고 현지에 구금된 한국인 범죄자 겸 피해자 수십명을 국내로 송환했다. 송환된 인원 중 일부는 셀허브 사건과도 연관된 것으로 파악됐다. 정성학 충남경찰청 수사부장은 지난 20일 청내 프레스센터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들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사기) 및 범죄단체 가입 및 활동 혐의로 전원 구속했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부건(총책 가명, 40대 초반, 한국말을 쓰는 외국인 추정) 조직으로부터 확인된 피해 건수는 110건, 피해액은 93억여원에 달했다. 약 100명의 조직원을 거느린 부건은 지난해 중순부터 올해 7월까지 주로 프놈펜 웬치(범죄 단지) 및 태국 방콕 등지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범행을 벌여왔다. 부건 조직은 지난 2018년 중국에서부터 활동을 시작해 그동안 단속을 피하려 태국, 캄보디아 등지로 거주지를 옮겨가며 범행을 계속해 왔다. 이들은 데이터베이스, 입출금 등을 지원·관리하는 CS팀과 광고를 보고 접근한 피해자를 기망하는 로맨스팀, 검찰 사칭 보이스피싱팀, 코인투자리딩 사기팀, 공무원 사칭 노쇼 사기팀 등 총 5개 팀으로 이뤄진 조직체계를 갖췄다. 이들은 가구판매업을 하러 캄보디아에 갔다고 진술했으나 이후 지역 선·후배 권유, 고액 아르바이트 인터넷 광고 등을 접하고 범죄에 연루된다는 걸 알면서도 조직에 가입해 활동한 것으로 조사됐다. 속아서 조직에 들어갔다고 진술하지 않은 이들의 유입 경로는 ▲지인 포섭 29명 ▲인터넷 광고 등 포섭 8명 ▲현지 카지노 포섭 6명 ▲기타 2명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남성 42명과 여성 3명으로 연인도 있었다. 대부분은 20~30대 연령으로 최소 2개월부터 최대 16개월까지 범행에 가담해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조건 만남 사이트 경기북구경찰청 형사기동대도 전기통신금융사기특별법 위반 등 혐의로 피의자 15명 중 11명을 구속 송치했다. 이들은 지난해 8월부터 한 달간 캄보디아 범죄 단지에서 여성을 사칭, 조건 만남 등을 명목으로 피해자들로부터 돈을 가로챘다. 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성 만남 광고를 낸 후 이를 보고 연락해 온 피해자에게 여성인 척 채팅으로 유인했다. 여성을 소개받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개발한 조건 만남 사이트에 회원 가입과 인증을 받아야 한다고 속여 인증을 위한 돈을 요구했다. 3차례에 걸친 인증 절차 과정에서 여러 게임에 성공하면 가입비를 돌려준다고 속여 피해자로부터 1인당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을 받아 챙겼다. 피해자들이 믿을 수 있도록 별도의 만남 인증과 후기글을 남기는 ‘화력방’도 운영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 규모는 피해자 36명, 피해금 16억원 상당이며, 1인당 최대 피해 금액은 2억1000만원이다. 이들은 대부분 20~30대 남녀다. 최초 범죄집단을 구성한 캄보디아 프놈펜 지역 명칭 ‘툴콕’을 의미하는 ‘TK’파로 스스로를 부르며 총책을 정점으로 한 지휘·통솔 체계를 갖췄다. 조직 운영을 총괄하는 총책, 이를 보좌하며 실무 전반과 인력 공급 등을 담당하는 총관리자, 각 파트 팀원의 근태를 관리하고 지시하는 팀장으로 구성됐다. 또 자체적인 조건 만남 홈페이지를 제작하는 개발자, SNS에 광고 글을 게시하는 홍보팀과 광고를 보고 접근한 피해자를 기망하는 로맨스 2개팀으로 역할을 분담했다. ▲상호 가명 사용 ▲근무 중 휴대전화 금지 ▲사진 촬영 금지 ▲야간에는 커튼으로 외부 차단 ▲다른 부서와의 업무 내용 공유 금지 등의 규칙에 따라 생활하기도 했다. 중국 국적 100명 뒷배 이들은 총책이 마련한 건물에서 2인1조로 합숙했는데 프놈펜 툴콕 지역의 13층 건물을 사용하다가 지난 8월, 현지 단속을 피해 센소크 지역 7층 건물로 이전해 범행을 이어오던 중 현지 수사 당국에 의해 검거됐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SNS 구직 광고나 조직원을 통해 범죄단체에 가입했다고 진술했으며 사기임을 알고도 범행을 지속한 것으로 조사됐다. 피의자 대부분은 현지에서 구금된 중에도 총책이 이른바 관작업을 통해 자신들을 석방시켜 줄 것이라는 말만 믿고 대사관의 도움을 거절하고 귀국하지 않았다. 셀허브 사건 간부들은 타 사건에도 연루됐다. 지난 7일 캄보디아 바벳에 인접한 베트남 떠이닌 지역 국경 검문소 인근에서 30대 여성 B씨가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는데, 숨지기 직전까지 셀허브 간부와 같이 있었다. B씨의 사인은 마약 과다 투약이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B씨가 셀허브에서 한국인 명의의 대포통장을 공급해 왔다고 보고 있다. A씨는 “셀허브에서 일할 사람을 모집하는 역할을 했던 B씨인데 통장을 팔려고 캄보디아에 도착한 한국인들을 유인해 범죄 단지로 팔아넘기고 유인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정보·수사기관도 B씨에 의해 범죄 단지에 넘겨지는 피해를 입거나 유흥업소 일을 강요당한 사례를 확인하고 조사 중이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사실상 마약을 강제로 과다하게 투약당한 살인사건이라는 첩보는 아직 확인 중”이라며 “특정 조직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건 현지 경찰도 수사 중인 내용”이라고 말했다. 대개 조직폭력배 출신…지휘는 중국 조직이 맡아 40억 피해액 환수 불가능 “자금 세탁 끝났다” 첫 데이트하던 연인을 치어 여교사를 숨지게 했던 이른바 ‘대전 머스탱 교통사고’의 피의자도 셀허브 조직원으로 확인됐다. 피의자 전모씨는 2019년 2월10일 오전 10시14분 대전 중구 대흥동에서 면허도 없이 외제차를 운전하던 중 인도를 걷던 조모씨와 박모씨를 들이받아 박씨를 숨지게 하고, 조씨에게 중상을 입혔다. 전씨가 대여한 외제차는 불법 대여 차량이었다. 이 차량은 애초 대구에 사는 C씨가 자신 명의로 캐피털에서 월 115만원씩 주는 조건으로 60개월간 대여한 것이다. C씨는 사촌 안모씨와 함께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나모씨가 올린 ‘외제차 저렴하게 빌려줄 사람을 찾는다”는 글을 보고 접근, 한 달에 136만원씩 받기로 하고 대여한 머스탱 차량을 재임대했다. 나씨는 이렇게 빌린 머스탱 차량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활용해 “외제차를 빌려준다”고 광고하며 또다시 대여업을 했다. 전씨는 나씨가 올린 이 글을 보고 일주일에 90만원씩 주기로 약속하고 머스탱을 빌려 운전했다. 매년 확정되는 범죄수익 추징금은 30조원을 넘지만 환수 금액은 1%에도 미치지 않는다. 법무부가 캄보디아에서 보이스피싱과 로맨스 스캠 등의 범죄로 발생한 현지 범죄수익을 국내로 환수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선 법무부는 “캄보디아 내에서 벌어진 범죄 가운데 현재 국내에서 수사 중이거나 재판 중인 사건이 1차 현지 수사 의뢰 대상”이라며 “이후 국내에서 유죄 선고를 받으면 최종적으로 환수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국제형사사법공조 조약에 따르면 해외에서 발생한 범죄라 하더라도 피해자가 국내에 있고 피해액이 특정될 경우, 우리 정부가 해외에 범죄수익 환수를 요청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2019년 캄보디아와 국제형사사법공조 조약을 체결해 2021년 정식 발효됐다. 주요 간부들 타 사건 연루 정보기관 관계자는 “범죄자 개인이 아닌 조직을 대상으로 한 범죄수익 환수 사례는 거의 없다. 특히 국내에서 수사와 재판이 끝나야 한다”며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서는 건 좋지만 이미 늦었다. 범죄조직 특성상 이미 코인이나 대포 통장으로 제3국에 은닉하거나 세탁을 하고도 남았을 시간”이라고 지적했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도 “수사가 끝나고 유죄 판결이 나기까지 수년이 걸리는데 환수 절차는 이 모든 사법절차가 종료돼야 가능하다. 특히 조세회피처로 범죄수익을 옮겨놨다면 환수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봤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