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으나 마나’ 전경련 무용론 막전막후

답답한 ‘재계 청와대’…갑갑한 ‘재벌 대통령’

[일요시사=김성수 기자]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무용론이 또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재계의 본산’으로서의 위상이 크게 흔들리고 있는 것. 수장 인선 문제로 진통을 겪는 등 우여곡절 끝에 순항하는 듯 했으나 이도 잠시. 제대로 된 기능과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안일한 실무진들이 그동안 쌓아온 전경련 명성에 먹칠을 하고 있다.

기능·역할 미흡 지적…‘재계 본산’ 위상 흔들
‘정치권과 대립각’ 수세 몰리자 바로 꼬리 내려

올해로 창립 50주년을 맞은 전경련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작품이다. 5·16 직후인 1961년 7월 박 전 대통령의 지시로 일본의 경제단체연합회(경단련)를 모방해 조직됐다.

당시 전경련은 정부의 대형 국책공사 물량을 분배하고, 업체 간 과당경쟁을 방지하는 역할을 했다. 또 새로운 경제정책이 나올 때마다 재벌을 대신해 정부와 협상을 벌이기도 했다. 때문에 전경련을 방패삼아 ‘등에 업고 있는 짐’을 떨쳐버릴 심산으로 회장직을 맡은 경우도 있었다.

대기업 압박 정책
제대로 대응 못해

그러나 2000년대 들어 그 위상이 달라졌다. 전경련은 과거 같지 않다. 급변하는 경영환경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결과란 지적이 많다. 주요 현안에 대해 재계 의견을 수렴해 정부에 전달하는 역할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재계엔 전경련을 조용한 절에 비유한 ‘전경사’란 신조어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총수들이 전경련 회장을 맡는 것에 부담을 갖기 시작한 것이 이때부터다. 전경련 회장으로 나서는 게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인식이 퍼진 것. 이는 파워 있는 총수들의 손사래로 이어졌다.

전경련은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가 초대회장을 맡은 것을 비롯해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고 최종현 SK그룹 회장 등 당대 재계를 대표하는 그룹 총수들이 이끌어 왔다. 이후 1999년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물러나고 중견그룹에서 회장이 나오면서 전경련의 위상 추락이 가시화됐다.
김 전 회장을 마지막으로 국내 5대 그룹에서 회장을 맡은 적이 없다. 김각중 경방그룹 회장(26·27대), 강신호 동아제약 회장(29·30대),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31·32대) 등이 모두 재계 서열 30위권 밖의 기업 회장이었다.

재계 관계자는 “전경련의 위상은 누가 회장이 되느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그만큼 굵직한 인물이 전경련을 이끌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서 위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모 그룹 임원은 “과거 든든한 지지세력이었던 삼성, 현대차, LG, SK 등 주요 그룹 총수들이 전경련과 거리를 두면서 이제 더 이상 재계 중심점이 아니라는 부정적 견해가 적지 않다”며 “전경련이 대한상공회의소 등 다른 경제단체보다도 입지가 위축되자 ‘이럴 바엔 차라리 경제단체들을 통합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라고 귀띔했다.

허창수 GS그룹 회장이 전경련을 맡기까지도 상당한 진통을 겪었다. 조석래 회장은 2007년 3월 31대 전경련 회장에 취임, 32대 회장직 연임 중 2010년 7월 건강상의 이유로 돌연 사의했다. 당시 비실세 회장의 한계를 넘어 과거 막강한 전경련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선 ‘힘 있는’ 총수로 교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그러나 새 회장 인선 작업은 쉽지 않았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등 물망에 오르내린 총수들이 하나같이 고사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전경련 운영에 대한 강한 불만과 함께 개혁과 변화를 요구하는 내부 질타가 쏟아지기도 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허 회장이 2011년 2월 33대 회장에 올랐지만, 당초 기대와 달리 침묵으로 한동안 일관했다. 이 와중에 ▲초과이익공유제 추진 ▲기업별 동반성장지수 발표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연기금 주주권 행사 강화 ▲법인세 감세 철회 움직임 ▲공정거래법 개정안 처리 등 재계에 대한 정치권 압박이 거세졌지만, 정작 전경련은 대기업 입장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는 등 대응이 부실하다는 재계의 비난을 받았다. 전경련은 “정부와 정치권에 재계 입장을 밝히고 있다”고 설명했으나 주요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견기업들의 불만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재계와 정치권 사이에 암운이 짙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허 회장이 드디어 ‘마이크’를 든 것은 지난 6월 취임 후 처음 가진 기자간담회에서다. 허 회장은 이 자리에서 정부와 정치권을 향해 대놓고 노골적인 반기를 들었다.

허 회장은 우선 정치권의 포퓰리즘 정책을 비난했다. 이어 정치권의 감세 철회 논의에 대해 분명한 반대 입장도 내비쳤다. 또 휘발유 가격과 동반성장 등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도 다소 비판적인 태도를 취했다.

허 회장은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과 가진 간담회에서도 정부를 압박하는 발언을 했다. 그는 “오늘날 중요한 정책결정에서 국가의 장래를 걱정하는 순수하고 분명한 원칙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재계 단체 수장이 경제 문제가 아닌 국정 사안을 꼬집은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는 한마디로 “못 해 먹겠다”는 재계의 반발 심리를 어느 정도 대변했다는 분석이다.

재계는 전체적으로 허 회장의 쓴소리를 반색하는 분위기였다. 오랜만에 대기업들의 입장을 시원하게 대변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치권 잔뜩 벼르자
슬그머니 보조 맞춰

그러나 이도 잠시. 허 회장을 여의도로 호출하는 등 발끈한 정치권이 잔뜩 벼르자 전경련은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 모양새다. 이는 허 회장의 바짝 낮춘 자세에서 알 수 있다.

허 회장은 지난달 20일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 등과 함께 서울 수유시장을 방문해 “재래시장 육성을 위해 전경련 차원에서 적극 지원하겠다”며 정부·정치권과 보조를 맞추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지난달 27일 제주에서 열린 ‘전경련 하계 포럼’에선 눈치보기 기류마저 감지됐다. 당초 재계는 허 회장이 하계 포럼에서 정치권을 향해 강도 높은 발언을 할 것으로 내다봤다. 최근 양쪽 사이가 심상치 않아 허 회장 입에 더욱 시선이 쏠렸다.

하지만 더 이상 독설은 없었다. 허 회장은 갈등 국면을 의식한 듯 정부·정치권의 ‘정’자도 꺼내지 않았다. 허 회장은 개회사에서 “소비자와 파트너, 구성원과의 연결이 기업의 경쟁력이며, 이를 위해 CEO부터 변화해야 한다”며 포럼 주제에 국한된 ‘스마트 혁명’만 강조했다.

안일한 실무진들이 명성 먹칠
정병철 부회장 리더십 도마에


하계 포럼은 매년 7월 말 기업 CEO 등 경제계 인사들이 제주에 모여 그해의 경제·산업계 이슈를 논의하고 화합을 도모하는 재계의 축제다. 지난해의 경우 수장이었던 조 회장은 “정부와 정치권이 중심을 잡아 장차 국가가 어떻게 나아가야 될지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해야 한다”며 “세종시와 같은 국가 중대 사업이 당리당략에 밀려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고, 4대강 사업도 반대 세력의 여론몰이로 인해 혼선을 빚고 있다”고 정부와 정치권을 신랄하게 비판했었다. 하지만 당시에도 이 발언이 예상외로 큰 논란을 낳자 전경련은 즉시 해명자료를 통해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는 것은 아니다”라고 한발 물러선 바 있다.

재계 한 인사는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란 반응을 보였다. 그는 “전경련이 강경 기조를 유지할 것처럼 보이지만 과거에도 그랬듯이 오래가지 않을 것 같다”며 “말을 아끼다가 뒤늦게 소신 발언을 쏟아낸 허 회장도 재계의 전폭적인 지지에도 불구하고 다시 자세를 낮춘 신중한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재계 일각에선 안일한 실무진들이 그동안 쌓아온 전경련 명성에 먹칠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중에서도 전경련 실무진을 이끌고 있는 정병철 상근부회장의 리더십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정 부회장은 2008년 3월 상근부회장에 선임됐다. 당시 전경련은 “정 부회장이 재계 화합은 물론 정부와 경제계간 가교 역할에 적임자라”라며 “업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경제계 현안을 해결할 적임자"라고 선임 배경을 설명했다. 정 부회장은 “경제살리기를 최우선 과제로 삼은 새 정부가 들어선 후 기업에 대한 국민과 정부의 기대가 매우 크다”며 “이럴 때 열심히 일해 좋은 성과를 내면 국가경제발전과 국민에게도 좋은 일을 하는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정 부회장은 허 회장이 추대될 때 교체설이 돌았지만 그대로 연임에 성공했다. 전경련 상근부회장은 전경련 회장을 보좌하면서 사무국을 총괄한다. 인사와 재무 등 실권을 쥐고 있다. 동시에 500여개 대기업과 60여개 업종별 단체 등 회원사의 애로를 파악하고 국가경제 발전에 필요한 제언을 정부와 정치권에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전경련 무능 비판
모두 정병철 책임”

그러나 전경련이 무능한 모습을 보이는 상황에서 재계가 정 부회장을 곱게 볼 리 없다. 허 회장보다 오히려 더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다. 모 그룹 임원은 “전경련이 무능하다는 얘기를 듣는 것은 모두 정 부회장을 비롯한 사무국 임직원들의 책임”이라며 “구태의연한 권위주의 사고에 젖어 회장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런 가운데 정 부회장은 최근 언론들의 집중포화를 맞고 있다. 전경련 내 역할보다 ‘자리’에 연연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정 부회장은 지난해 5월 한국광고주협회장을 맡은데 이어 지난 5월 한국경제연구원에 신설된 부회장직까지 겸직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협회와 연구원은 사실상 전경련의 지배를 받게 됐다. 두 곳은 전경련에서 설립했으나 별다른 간섭 없이 자율 체제로 운영돼 왔다. 때문에 정 부회장이 장악하자 자율성과 독립성, 전문성 훼손 논란이 불거졌었다.

한경연 한 관계자는 “전경련은 김영용 전 원장을 사퇴시키고 대신 정 부회장을 밀어 넣은 구조조정을 단행했다”며 “이는 재계로부터 무능하다는 비난을 받자 그 화살을 한경연으로 돌려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전했다.

내년엔 나라에 큰 일이 많다. 총선이 있고, 대선도 있다. 모두 정치권 사안이지만 재계도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표심을 의식한 선심성 공약이 쏟아질 테고, 상대적으로 재계를 압박하는 수위가 높아질 게 뻔하다. 이런 상황에서 넋 놓고 있는 전경련을 바라보는 재계는 한숨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하루빨리 전열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어찌 보면 당연한 요구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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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