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사정라인 대협공 재벌 전면전 막전막후

이 가는 여의도…칼 빼든 서초동

[일요시사=김성수 기자] 폭풍전야다. 정치권과 재계 사이에 전운이 가득하다. 아직 본게임이 시작되지 않았지만 현 상황만 보면 누구 하나 무릎 꿇어야 끝날 판이다. 먼저 시비를 건 쪽은 재계다. 대놓고 노골적인 반기를 들었다. 이에 정치권은 살벌한 으름장으로 선전포고한 상황. 재계는 뒤늦게 수상한 낌새를 눈치 채고 서둘러 주워 담으려 하고 있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가뜩이나 사정라인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재계에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전경련 등 재계 노골적 반기…잇달아 쓴소리
여야 대기업 압박 거세질듯 “희생양만 불쌍”

2007년 12월28일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 회관. 이명박 대통령은 17대 대선 승리 열흘 만에 가진 국내 주요 대기업 총수들과의 간담회에서 ‘비즈니스 프렌들리(친기업주의)’정책을 선언했다. 당선인 신분의 첫 공식 일정이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정부는 ‘비즈니스 프렌들리’경제정책을 추진해 성장 중심 정책을 펼 것”이라며 법인세 인하 등 규제 완화와 감세를 약속했다.

“정치인 못 믿겠다”
수장들 연일 직격탄
 
재계는 술렁거렸다. 지난 10여년간 제대로 기를 펴지 못한 이유에서다. 이 대통령의 발언 직후 “역시 CEO 출신 대통령” “이제는 할 만하다”는 분위기가 조성된 재계에선 MB정부와 코드를 맞추기 위해 “투자와 고용을 늘리겠다”는 화답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그로부터 3년7개월이 흐른 지금, ‘비즈니스 프렌들리’는 자취를 감췄다. 당초 화기애애했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다. MB정부가 ‘친기업’에서 ‘민생’으로 경제 정책의 초점을 바꾸면서다. 이 대통령은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면서 대기업에 대한 비판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대기업들이 깜짝 실적에도 일자리와 투자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 화를 자초했다는 분석이다.

정부와 재계 사이에 암운이 짙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결국 일이 터졌다. 재계가 정부와 정치권을 향해 대놓고 노골적인 반기를 든 것이다. 국내 재계를 대표하는 전경련이 진원지다.

허창수 전경련 회장(GS그룹 회장)은 지난달 21일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취임 후 처음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작심한 듯 정부와 정치권에 쓴소리를 퍼부었다. 재계 단체 수장이 경제 문제가 아닌 국정 사안을 꼬집은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는 한마디로 “못 해먹겠다”는 재계의 반발 심리를 어느 정도 대변했다는 분석이다.

허 회장은 우선 정치권의 포퓰리즘 정책을 비난했다. 포퓰리즘이란 정책의 현실성이나 가치판단, 옳고 그름 등 본래의 목적을 외면하고 일반 대중의 인기에만 영합해 목적을 달성하려는 정치행태를 말한다. 그는 “반값 등록금과 같은 정책들은 포퓰리즘 하는 사람들이 잘 생각하고 내놓는 것이 아니라 즉흥적으로 만든 것”이라며 “내년 총선을 앞두고 쏟아져 나올 포퓰리즘성 정책에 대해 재계가 반드시 의견을 내겠다”고 밝혔다.

이어 정치권의 감세 철회 논의에 대해 분명한 반대 입장도 내비쳤다. 허 회장은 “(세금은) 선택의 문제”라며 “(기업들이) 재원이 많으면 고용창출과 투자를 많이 하게 되고, 그것이 세계적 추세”라고 강조했다.

또 휘발유 가격과 동반성장 등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도 다소 비판적인 태도를 취했다. 허 회장은 “기름값 인하는 기업이 고통 분담 차원에서 했던 것인데 그 정도 분담했으면 충분한 것 아니냐”며 “(중소기업을) 무조건 도와주기만 해서는 자생력이 안 생기고 성장하는 데도 보탬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허 회장은 지난달 24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과 가진 간담회에서 또 다시 정부를 압박하는 발언을 했다. 그는 “오늘날 중요한 정책결정에서 국가의 장래를 걱정하는 순수하고 분명한 원칙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허 회장의 바통을 이어받은 ‘지원군’들도 정부와 정치권을 향해 연달아 직격탄을 날렸다.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CJ그룹 회장)은 지난달 23일 경북 구미시 송정동 구미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전국상공회의소 회장 회의’에서 “감세는 세계적인 추세다. 법인세율과 소득세율 인하를 통해 기업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며 “학교 무상급식 전면 실시와 대학 반값 등록금 등은 선진국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사례”라고 꼬집었다.

이희범 STX에너지·중공업 회장이 수장으로 있는 한국경영자총협회는 한진중공업 사태와 관련해 정치권을 비꼬았다. 경총은 지난 8일 성명서를 내고 “외부인들이 대규모 개입하는 것은 한진중공업 문제를 빌미로 한 정치적 의도가 있음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며 “외부 인사들의 행위가 한진중공업 정상화를 위한 노사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치권은 발끈했다. 여야는 재계 수장 3인방을 여의도로 호출했다. 그러나 이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국회 지식경제위원회는 지난달 29일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공청회’에 허 회장과 손 회장, 이 회장을 불렀으나 모두 일정 등을 이유로 불참했다. 각 단체의 실무진이 대신 출석한 이 자리에선 “경제단체장이 국회를 무책임한 집단으로 내몰았다”, “경제단체장의 불출석은 오만불손한 작태다”, “경제단체장이 국민과의 대화를 거부했다”등 여야 의원들의 대기업 성토가 이어졌다.

"수습 안 하면
큰 불똥 튄다”

국회는 경제단체장들이 참석하지 않은 공청회를 청문회로 격상하고, 또 다시 출석을 거부하면 고발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특히 야당 의원들이 난리다. 지식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재계 대표 3인을 대상으로 한 청문회 개최를 추진하고 있다. 이들은 “경제단체장들이 공청회 출석을 거부한 것은 국민을 무시하는 처사인 동시에 동반성장 추진의지가 없다는 표시”라며 경제단체장들의 청문회 출석을 촉구했다.

경제단체들과 정치권의 멱살잡이가 쉽게 끝나지 않을 기미를 보이자 주요 대기업들은 “경제단체장들의 발언은 우리의 입장이 아니다”라고 선을 긋고 있다. 혹시 모를 후폭풍을 우려해서다.

“가뜩이나 분위기 삭막한데…”
검찰·국세청·공정위 ‘시동’

모 그룹 관계자는 “좋은 게 좋은 거 아닌가. 요즘 사정라인 분위기도 좋지 않은데 괜히 정치권 심기를 건드려 좋을 게 없다”며 “과거에도 그랬듯이 빨리 수습하지 않으면 큰 불똥이 재계로 튈 것”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그룹 한 임원도 “일은 경제단체들이 벌이고 화는 기업들이 당할 게 뻔하다. 분란을 자초한 꼴”이라며 “정치권은 어떤 식으로든 기업들을 압박할 것이고, 분명히 이번 대치의 희생양이 나올 것”이라고 걱정했다.

실제 최근 재계를 향한 사정라인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일단 국세청과 공정위가 선봉에 선 형국이다. 국세청은 이미 칼을 뽑아 들었다. 부당한 부의 세습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재산의 변칙·편법적인 상속 및 증여가 의심되는 대기업 오너일가가 주 타깃이다.

국세청은 지난 12일 본청 대회의실에서 이현동 청장 주재로 전국 조사국장회의를 열고 ▲세금 없는 부의 대물림 차단 ▲대기업에 대한 성실신고 검증 ▲역외탈세 근절의 중단 없는 추진 등을 하반기 세무조사의 역점과제로 선정했다. 사실상 국세청이 ‘대기업 손보기’에 본격 나선 것이란 분석이다.

이 청장은 “우리나라는 수출이 GDP(국내총생산)의 50%를 차지하고, 그 수출의 70%를 대기업이 담당하는 등 대기업으로의 경제력 집중은 매우 높은 수준”이라며 “대기업들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높아지고 있지만 그에 걸맞게 성실신고 여부가 제대로 검증되고 있는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세청의 대기업 압박과 맞물려 공정위 분위기도 예사롭지 않다. 대기업의 불공정 행위에 초점을 맞추고 조사를 본격화할 태세다. 공정위는 MRO(소모성자재 구매대행) 등 중소기업 업종 진출, 일감 몰아주기 등의 대기업 행위에 대해 감시를 강화할 뜻을 밝힌 바 있다.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은 “대기업이 동네 상권까지, 구멍가게 영역까지 위협해서 되겠냐”며 “대기업들이 특정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거나 변칙 증여·상속의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고 강력한 조사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검찰도 곧 가세할 모양새다. 조만간 정권 말기 ‘재계 군기잡기’에 나설 것이란 게 대체적 시각이다. 청와대는 지난 15일 한상대 서울중앙지검장을 새 검찰총장으로 내정했다. 서울 출신으로 보성고와 고려대 법대를 졸업한 한 내정자는 법무부 법무실장과 검찰국장, 서울고검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추진력과 조직 장악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 내정자는 이 대통령의 임기 말과 다음 정권 초반까지 검찰 수장을 맡게 된다.

검찰은 한화그룹, 태광그룹, C&그룹, 오리온그룹 수사 이후 잠시 숨을 고르는 와중에도 꾸준히 대기업 내사를 벌여왔다. 검찰 안팎에선 전국 각 지검 특수부 등이 주축으로 기업들의 비자금 조성, 횡령, 재산 국외도피 등 각종 비리 정보를 싹싹 긁어 모아놨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그중에서도 재벌 오너의 ‘검은돈’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그렇다면 검찰, 국세청, 공정위가 정조준한 타깃은 어딜까. 재계에선 여러 기업을 상대로 한 동시다발 수사가 아닌 각각 ‘본보기’를 내세울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알아서 기어라’하는 심산에서 릴레이식으로 한 기업씩 털어내지 않겠냐는 것.

이들 기관 안팎에서 거론되는 ‘첫 제물’로 유력한 대기업은 A그룹이다. 검찰엔 ‘오너가 거액을 횡령했다’, ‘정치권에 비자금을 제공했다’, ‘수상한 돈이 해외로 흘러나갔다’등 A그룹의 비리 첩보와 제보가 수북이 쌓여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공정위 선봉
검찰도 조만간 가세

‘오너가 탈루로 마련한 자금을 차명으로 관리하고 있다’, ‘옛 임원이 창업한 하청업체와 부당한 거래 중이다’란 정보를 입수한 것으로 전해진 국세청과 공정위도 A그룹을 잔뜩 벼르고 있다는 후문이다. 일각에선 사건이 다소 복잡하게 흘러갈 수 있는 대기업에 앞서 중견기업이 먼저 도마에 오를 것이란 전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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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