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청년 작가’ 오원배

인간과 기계의 공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오원배 작가의 17번째 개인전이 서울 OCI미술관에 상륙했다. 지난 2일부터 진행 중인 이번 전시에는 40여년 동안 매번 새로운 창작열을 불태워온 오 작가의 화업이 총망라돼있다. 그의 작품 속에서 자주 모습을 드러내는 인물은 바로 ‘청년’. ‘청년 작가’ 오원배의 전시를 <일요시사>가 들여다봤다.
 

화업에 매진한 40여년 동안 오원배 작가의 주된 관심사는 인간이었다. 탈을 쓴 모습이나 금수와 같은 형태 때로는 알몸만 겨우 면한 헐벗은 몸으로 등장하는 그의 작품 속 인간은, 단독자로서 세상에 대응하고 주어진 환경을 애써 견뎌냈다. 

오 작가는 전시 때마다 다른 실험을 시도하며 양식의 변화나 매체에 대한 연구를 꾀했다. 이번 전시에선 압도적 크기의 작품으로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진단하려 했다.

인간의 획일화

이번 전시서 관객들이 마주하는 작품은 오 작가가 최근 1∼2년 새 만든 신작이다. 그 중 무엇보다 시선을 끄는 건 전시장 1층 벽면을 가득 채운 폭 32m의 작품이다. 전시 공간 일부에 직접 안료를 흩뿌린 거친 현장 페인팅이 포함돼있어 생동감을 더하고 있다.

작품에는 전체주의 병영이나 산업 현장에 유폐된 듯한 군상이 담겼다. 거대한 파이프와 가스통, 담벼락 아래 위축된 인간의 모습은 기계보다 더 기계적인 몸짓으로 획일화돼있다. 그 맞은편으로는 매끈한 금속체의 인조인간이 환희에 찬 모습으로 화면을 가득 채운다.


집단화된 인간의 통제된 신체와 인조인간의 자율성이 강한 대비를 이룬다. 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휴머니티’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관심사는 인간 그리고 청년
금속체의 인조인간으로 대비

2층 전시장에선 인간 소외가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그 배경을 암시적으로 볼 수 있다. 사람의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고 출구가 보이지 않는 계단, 온기 하나 없는 공장의 철골 구조, 일거수일투족을 뒤쫓는 감시 시스템 등 그의 작품에는 적막한 사회의 모습이 들어있다. 

기계적 시스템과 인간의 도구화라는 하나의 주제를 향해 작품은 균질한 톤으로 꿰어진다.

3층에는 작가가 일상에서 꾸준히 그려온 드로잉이 전시돼있다. 1∼2층 전시장서 보여준 매크로한 스케일의 페인팅과는 달리 도심 속 일상생활 곳곳서 포착한 관찰력과 섬세한 감성이 돋보인다.
 

삶의 매 순간 떠오르는 생각과 상상을 특정한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이미지화했다. 선 몇 개로 단순하게 표현하거나 대상을 기호화하거나 재료 자체의 속성이 드러나게끔 한 작업으로, 드로잉은 오 작가에게 관찰의 기저이자 변화를 추동하는 원동력임이 여실히 드러난다.

최태만 미술평론가는 “미래는 불확실함이 아니라 예측했던 것보다 더 빠르게 시간을 단축하며 상상했던 것을 현실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불안한 것”이라며 “오원배의 작품은 바로 이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이 그림 속의 인간들은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경계에 놓여 있다”고 분석했다.


폭 32m의 대작 통해
휴머니티란 무엇인가

오 작가는 인간의 실존과 소외, 현대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에 천착해왔다. 이번 전시에선 기능적 효율을 극대화하는 사회 구조가 어떻게 인간을 도구화하고 집단 명령의 체계를 형성해 가는지, 그리고 과학과 기계 문명의 발달이 어떻게 치닫게 되는지에 대한 성찰을 보여준다.

또 ‘인간의 기계화’와 ‘기계의 인간화’라는 시대적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한다. 그러면서 기계 역시 인간의 기능과 사고를 물질화한 것이며 인간의 억압은 오로지 인간 행위의 결과일 뿐이기에 오히려 회복의 여지가 있다는 한 가닥 희망을 보여주기도 한다.

한 가닥 희망

OCI 미술관 관계자는 “오 작가가 5년 만에 선보이는 대규모 개인전인 이번 전시는 그의 회화가 우리 사회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또 향후 작업이 어디를 향하게 될 것인지를 가늠해 볼 중요한 기회가 될 것”이라며 기대를 드러냈다. 전시는 다음달 23일까지.


<jsjang@ilyosisa.co.kr>

 

[오원배는?]

1953년 인천 출생

▲학력

동국대학교 미술학과 졸업
파리국립미술학교 수료

▲개인전

OCI미술관, 서울(2017)
갤러리 밈, 서울(2016)
스페이스 문, 인천(2016)
아트사이드 갤러리, 서울(2014)
금호미술관, 서울(2012)


▲수상

제9회 이중섭 미술상(1997)
올해의 젊은 작가상(1992)
프랑스 예술원 회화 3등상(1985)
파리국립미술학교 회화 1등상(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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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국방부 문건이 대규모로 파쇄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조치는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의 지시로 이뤄졌다. 오 전 기획관은 검찰 특수본과 재판서 정보사와 수사2단 인사안의 문제점을 증언했던 인물이다. 자신이 비상계엄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수사에 협조한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올해 초 신년맞이 대청소라면서 문서를 대량으로 파쇄했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국방부 직원들의 말이다. 파쇄된 문건들은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자료라고 한다. 지시자는 오영대 전 국방부 인사기획관이다. 검찰 수사에 협조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으나 실상은 다르다는 게 군 내부자들의 주장이다. 뭘 숨기나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말 취임하면서 시작한 첫 번째 군 개혁은 인사다. 신임 인사기획관에 일반 공무원 출신인 이인구 군사시설기획관을 임용한 건 안 장관이 강조해 왔던 ‘군 문민통제’와도 맞닿아 있다. 인사기획관은 본래 예비역 장성이 맡아왔다. 이 신임 기획관의 전임자였던 오 전 기획관도 예비역 준장 출신이다. 군 내부에서는 국방부에 여전히 12·3 내란 사태에 협조한 군인들이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핵심으로 인사기획관실의 총괄과이자 인사기획관의 일정, 예산 등을 모두 관리하는 인사기획관리과가 언급된다. 다수의 국방부 관계자들은 “오 전 기획관은 물러났지만 책임져야 할 다수의 인물이 아직 자리를 보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부서의 간부들은 전부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다. 과장 김모 대령은 오 전 기획관이 대령이었을 때 소령으로 근무했고, 총괄 이모 중령은 오 전 기획관이 특전사 여단장을 역임했던 1공수여단서 중대장과 707중대장을 거쳤다. 장군인사팀장 김모 대령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수도방위사령관으로 근무했던 시절 비서실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김 전 장관과 가깝거나 육사 출신인 이들이 국방부 인사의 핵심부서인 인사기획관리과에 포진하면서 계엄 실행을 위한 보직 이동이 이뤄진 셈이다. 김 전 장관은 실제 대통령경호처장일 때부터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과 군 인사에 대해 논의했다. 직무에서 배제되지 않은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장관이 모든 책임을 오 전 기획관에게 묻는 형식으로 퇴직을 시켰으니 우리는 지시를 받아 어쩔 수 없이 한 것처럼 조용히 지내면서 정부초기 개혁의 소나기만 피하면 진급 가능’이라며 서로서로 쉬쉬하고 있다고 한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내란 이후인 지난해 12월 중순 오 전 기획관의 지시에 따라 문건 파쇄를 계획했다. 김 전 장관이 물러난 이후 인사기획관리과장 김 대령 및 총괄인 이 중령 외에는 계획되지 않은 대면보고는 금지했고 내부 보안에 심혈을 기울였다. 인사과 간부들 계엄 실패 후 12월 계획···1월 파쇄 “지시자는 검찰 수사 응했던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 한 달여 뒤 이 중령은 모든 과에 ‘신년맞이 대청소’를 하라고 전파했다. TF 자리 배치와 오래된 문건을 정리한다며 유독 인사기획관리과만 복도로 책상을 빼고, 대량 세절이 가능한 세절실을 예약해 엄청난 양의 문서들을 파쇄했다. 여기엔 내란 핵심 파일도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안 장관은 이와 관련해 국회에서 오 전 기획관에게 여러 차례 질문한 바 있다. 당시 오 전 기획관이 당황해하며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퍼지기도 했다. 이 중령은 동영상을 보며 웃는 직원들의 명단과 안 장관에게 제보한 인물을 색출하기 위해 탐문 활동을 벌여 오 전 기획관에게 추정해 보고했다. 이들은 모두 오 전 기획관으로부터 승진추천, 성과상여금, 각종 포상 등 인사상 불이익을 본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이 문건을 파쇄한 이유는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내란 당일 오후 10시가 넘은 시각임에도 퇴근하지 않고 사무실에 있던 오 전 기획관의 지시를 받은 이 중령은 각 과의 총괄 담당자들을 소집해 ‘계엄 선포가 됐는데 선제적으로 인사 관련 조치를 왜 안 하냐’ ‘합참에는 계엄사령부가, 지작사령부에는 지역계엄사령부가 곧 창설될 텐데 각 군 본부 및 지작사와 인사 지침을 협의해 계엄령 취지에 맞게 배포하라’고 강조했다. 특히 오 전 기획관은 계엄 해제 결의안이 국회 본회의 테이블을 통과했음에도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서 이 중령에게 “(계엄이) 해제되긴 했는데 다시 시행될 수도 있으니 빨리 계엄사 창설 지원을 위한 인사 조치를 완성하고 지작사 병력에 대한 휴가 지침 및 통제 등 건의 사항을 받아보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 전 기획관은 내란 직전까지 김 전 장관의 의중에 따라 군 인사를 반영했다. 최근 내란 특검팀이 군 장성급 인사 자료 확보에 나선 것도 이에 관해 들여다보기 위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검팀은 최근 국방부 장군인사팀과 육군본부 장군인사실 등을 압수수색해 해당 부서 내 인사 관련 파일 등을 확보했다. 정치권에선 지난 2023년 11월과 지난해 4월 이례적인 인사가 이뤄졌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진급에 절박한 군 인사들을 계엄 실행 세력으로 활용했단 의혹이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윤석열정부 장군 인사는 특이하고, 이례적인 경우가 유독 많았다”며 “인사를 통해 군을 장악하고, 내란을 준비했다는 의혹 관련 특검의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3차 계엄 대비 문건 없애” 증거 인멸 국회서 해제 불구 지작사와 인사 논의?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은 지난 2023년 11월 인사에서 소장에서 중장으로 진급했다. 박안수 전 계엄사령관은 ‘75주년 국군의 날 행사기획단장 겸 제병지휘관’ 등 한직에서 2023년 10월 육군참모총장에 발탁됐다. 지난해 4월엔 지휘부에 이어 작전본부 인사가 이어졌다. 원천희 당시 육군 소장이 4차 진급으로 합참 정보본부장으로 승진했고, 이승오 소장은 군단장을 거치지 않고 합참 작전본부장으로 진급했다. 안찬명 당시 육군22사단장은 임명 5개월 만에 합참 작전부장으로 보직을 옮겼다. 통상 사단장은 1년 반~2년가량 보직을 맡는다. 군 안팎에서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왔던 이유다. 경질 위기이던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은 유임됐다. 그는 지난해 6월 정보사 군무원의 블랙요원 명단 국외 유출 사건 및 박민우 전 정보사 100여단장과의 갈등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신원식 전 안보실장은 지난해 8월 국회에서 “후속 조치를 강하게 할 생각”이라고 언급했지만, 다음 달 본인이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는 군 관계자에게서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이 장군들 인사에 대해 논의했고 오 전 기획관에게 전달됐다”는 진술을 확보한 바 있다. 위기감을 느낀 오 전 기획관은 특수본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기 시작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오 전 기획관의 특수본 진술조서를 보면 그는 “신원식 (전 국방부) 장관이 저와 원천희 국방부 정보본부장에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보직해임·정보사령관 교체 검토를 지시했으나 지난해 9월6일, 김 전 장관이 취임하면서 문 전 사령관에 대한 ‘현 보직 유지’를 지시했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이해하기 어려운 인사였다”고 했다. 앞뒤 달랐다 오 전 기획관은 “(문 전 사령관이 박 준장으로부터 고소당한 혐의가)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지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인사 조치는 없었다”며 “공론화된 문제고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는데도 이렇게 유야무야 넘어가는 일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