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 미집행 20년> 사형수의 삶과 죽음 ‘풀스토리’

마지막 사형수를 아십니까?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사형제를 둘러싼 논쟁은 ‘해묵었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그 역사가 오래됐다. 우리나라는 20년간 사형을 집행하지 않은 실질적 사형 폐지국이지만 법률상으론 여전히 사형제 존치 국가다. 이 때문에 사형 집행과 폐지를 두고 ‘끝나지 않는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10일 제15회 ‘세계 사형 폐지의 날’ 행사가 있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천주교인권위원회 등 15개 단체로 구성된 ‘사형제 폐지 종교·인권·시민단체 연석회의’는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서 사형 폐지의 날 기념식을 열었다. 이들은 “사형집행 중단 20년을 앞둔 현재 우리나라가 실질적 사형 폐지국을 넘어 완전한 사형 폐지국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형 폐지의 날
특별법 나오나

연석회의는 성명을 통해 “제15대 국회를 시작으로 매 국회에 사형제도 폐지 특별법이 발의됐으나 단 한 차례도 법제사법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한 사실은 매우 안타깝다”며 “이번 20대 국회서 많은 의원들이 특별법 공동발의에 동참해줄 것을 희망한다”고 밝혔다.

유흑식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은 인사말서 “오늘 기념식은 우리나라가 사실상 사형 폐지국서 법률상 사형 폐지국으로 가는 자리로 생명의 가치가 존중될 때 인간의 잔인함도 치유된다”고 말했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이날 축사에서 “일각에선 흉포해지는 범죄에 대응해 사형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견해를 제기하지만 국제적으로는 범죄 종류를 떠나 한 사람의 생명을 국가가 앗아갈 수 있는가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우세하다”며 “국회는 헌법 개정과 법안 심의 과정서 사형제도 폐지에 힘을 기울이겠다”고 약속했다.


실질적 폐지국이지만 법률상 존치
김대중정부 이후 사형 집행 수 ‘0’

우리나라는 1997년 12월30일 이후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다. 올해 12월30일이면 사형을 집행하지 않은 지 꼭 20년이 된다. 일본이 2012년 아베 신조 2차 내각 출범 이후 19명의 사형을 집행한 것과 대조되는 대목이다. 일본은 지난 7월에도 사형수 2명에 대한 형을 집행했다.

국제사회에선 우리나라를 실질적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하지만 강력 사건이 터질 때마다 사형제 존치에 대한 여론은 치솟았다. 

2004년 연쇄살인범 유영철 사건이나 2010년 여중생을 납치·살인한 김길태 사건 이후 진행한 조사에서 사형제 유지 응답은 평소에 비해 높았다. 실제 여론은 사형제 폐지보다 존치 쪽으로 좀 더 기울어져 있다.

한국법제연구원이 발표한 2015년 국민 법의식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5%는 사형제 폐지에 반대했다. 최근에도 여러 매체를 통해 보도된 사형제 관련 여론조사를 보면 대중의 사형제 폐지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부정적인 걸 알 수 있다.
 

<중앙일보>가 지난달 17∼18일 양일간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서 ‘사형제 폐지에 반대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66.1%에 달했다. 지난 9일 <세계일보>의 여론조사에서도 ‘사형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응답이 79.4%로, 80%에 육박했다.

헌법재판소는 사형제 위헌 여부 심판서 두 차례에 걸쳐 합헌 결정을 내렸다. 1996년 사형을 최고형으로 규정한 형법에 대한 위헌 소원 심판서 7(합헌)대 2(위헌)로 합헌 판결이 나왔다. 


당시 김용준 헌재 소장 등 7명의 재판관은 “인간의 생명을 부정하는 범죄행위 등 지극히 한정적 경우에만 부과되는 사형은 죽음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 공포와 범죄에 대한 응보욕구가 서로 맞물려 고안된 필요악”이라고 다수 의견을 냈다.

그로부터 14년 후인 2010년 헌재는 또 다시 사형제에 대한 합헌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내용면에서 1996년과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먼저 7명이었던 다수 의견이 5명으로 줄었고 위헌 의견이 4명으로 늘었다. 또 일부 재판관들은 사형제 오·남용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혀 논란의 불씨를 살려뒀다.

당시 헌재는 “인간의 생명은 고귀하고 그 무엇과도 바꿀 수도 없는 권리”라며 “비상계엄에 대한 재판에선 그렇지 않지만 우리 형법은 적어도 아직 간접적으로나마 사형제를 인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사형제는 생명권 제한에 있어 형법 제37조에 의한 한계를 일탈했다고 할 수 없으며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규정한 헌법 10조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1996년과 2010년 헌재가 합헌 결정을 내릴 당시 소수 의견을 냈던 재판관들은 인권의 토대인 생명은 어떠한 경우에도 침해할 수 없다는 헌법 정신을 강조했다. 또 형벌로서 사형제가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대선 후보 시절부터 사형제 폐지에 대한 소신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4월 대선후보 TV토론회서 “사형이 흉악범죄 억제효과가 없다는 데 전 세계가 공감하기 때문에 160여 국가가 사형제를 폐지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생존 사형수 65명
70대부터 20대까지

국제앰네스티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 세계 198개국 중 104개국이 법률상 모든 범죄에 대해 사형을 폐지했다. 우리나라처럼 실질적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되는 나라는 37개국이다. 전 세계 국가 중 141개국(71%)이 법률상 또는 사실상 사형을 폐지한 셈이다.

사형 미집행 기간이 20년에 이르러 사형제 존폐 논란이 또 다시 불거지자 자연스럽게 사형수들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현재 생존해 있는 사형수는 65명으로 알려져 있다. 민간인이 61명, 군인이 4명이다. 
 

20년간 사형 집행이 이뤄지지 않다보니 사형수들의 고령화가 뚜렷해지는 추세다.

최고령 사형수는 2007년 8월 전남 보성군으로 여행 온 대학생들을 바다에 빠뜨려 살해한 오모씨로 추정된다. 이른바 ‘보성 어부 살인사건’이다. 그는 여행 온 남녀 두 사람을 자신의 배에 태운 뒤, 여성을 성추행하기 위해 남자를 먼저 바다로 밀어 살해하고 저항하는 여성까지 물에 빠뜨려 죽였다.

유영철·강호순
10명 이상 죽여


최연소 사형수는 2014년 총기난사 사건을 일으킨 임모(25) 병장으로 알려졌다. 범행 당시에는 21세의 어린 나이였다. 그는 동료병사에게 수류탄을 던지고 총기를 난사해 5명을 살해하고 7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범행 직후 무장한 채 탈영해 자살을 기도했으나 결국 체포됐다.

임 병장은 “부대 안에서 따돌림을 당했다”고 진술했지만 재판부는 1심과 2심서 모두 사형을 선고했다. 이후 2016년 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9대 4로 사형 확정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학창시절 따돌림을 당한 경험이 있고 인격 장애 증상이 있던 것도 사실이지만 부대 내 조직적 따돌림이나 폭행, 가혹행위 등 도저히 감내하기 어려울 정도로 괴로움을 겪었다고 볼만한 사정은 찾아볼 수 없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최장기 사형수는 원모씨로 올해로 25년째 복역 중이다. 원씨는 지난 1992년 10월 강원 원주에 위치한 여호와의 증인 왕국회관에 불을 질러 15명을 사망케 했다. 중화상을 입은 사람도 36명에 달했다. 사망자 중에는 10세 이하(2명), 10대(4명) 등 어린아이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1993년 대법원서 사형이 확정됐다.

원씨처럼 10명 이상을 살해한 사형수는 희대의 연쇄살인범인 유영철과 강호순 등 두 명이다. 유영철은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노인과 부녀자 등 21명을 살해했다. 유영철의 검거 이후 국내서 ‘사이코패스’(반사회적 인격 장애)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강호순은 2004년부터 5년여에 걸쳐 10명의 부녀자를 납치해 성폭행·살해한 혐의로 2009년 사형이 확정됐다. 강호순이 살해한 사람 중에는 그의 아내와 장모도 있었다. ‘제2의 유영철’로 불렸던 정남규도 부녀자 13명을 연쇄 살인하는 등 10명 이상을 죽이고 사형이 확정됐지만 2009년 자살로 목숨을 끊었다.


사형제 폐지 반대여론 여전히 높아
강력범죄 발생할 때마다 급격히↑

현재 복역 중인 사형수에 대한 형 집행은 기약이 없다. 마지막 사형 집행은 1997년 김영삼정부시절이다. 정부 말기인 1997년 12월30일, 20여명의 사형수가 한꺼번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당시 형이 집행된 사형수는 살인 15명, 강도·살인 4명, 상습 강도·강간 2명 등 23명이다.

이중에는 법정에 증인으로 섰던 사람을 살해한 변모씨, 여의도 광장서 ‘묻지마 질주’를 벌여 20여명을 죽거나 다치게 한 김용제, 고소 취하를 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권총을 난사해 4명을 살해한 경찰관 김모씨 등이 포함됐다.
 

1997년 사형 집행은 김영삼정부 출범 이후에만 1994년 15명, 1995년 19명 이후 세 번째였다. 또 긴급조치 시대인 1976년 27명에 대한 사형이 집행된 이후 최대 규모였다. 23명 가운데 4명은 사형 집행 이후 안구와 사체를 기증했다.

1997년 형이 집행된 이들 가운데 ‘마지막 사형수’로 알려진 인물은 시각장애인 김용제다. 그는 1991년 차를 몰고 여의도광장을 마구잡이로 질주했다. 이 과정서 초등학교 5학년 아이와 여섯 살 난 유치원생이 차에 치었고 그 둘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그럼에도 차를 멈추지 않은 김용제는 질주를 거듭, 어린이와 노인을 포함, 20여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당시 그의 나이는 21세였다.

그의 삶은 불행했다. 어머니는 김용제가 초등학교 때 가난을 견디지 못해 가출한 뒤 소식이 끊겼고 몇 년 후에는 아버지가 농약을 마시고 자살했다. 시각 장애를 앓아 눈이 잘 보이지 않고 체구도 작았던 그는 친구들로부터 잦은 따돌림을 당했다고 한다. 눈 때문에 책이나 칠판을 잘 볼 수 없어 성적도 좋지 않았다.

일자리를 구했지만 시력이 나쁜 탓에 실수가 잦았다. 실수로 인한 손실이 커지자 회사는 그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일자리를 찾아도 얼마 안 돼 해고 당하는 일이 반복되자 김용제는 체념했다. 

식당 일이나 막노동 자리에 기웃거렸지만 눈이 잘 안 보이는 그에겐 모두가 높은 벽이었다.

경제적·정신적으로 한계까지 몰린 그는 다니던 양말 공장 사장의 자동차 키를 훔쳤다. 김용제는 훔친 차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분노와 복수심으로 가득 찬 그는 1991년 10월19일 KBS 앞으로 차를 몰았고 광장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돌진했다. 여의도 광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든 그는 차가 멈추자 한 여중생을 잡아 인질극을 벌였다. 김용제는 몰려든 시민들과 여중생을 두고 대치했지만 금세 제압당했다.

‘사형수들의 대모’로 불리는 조성애 수녀는 그의 일기를 엮어 <마지막 사형수>라는 제목의 책을 펴냈다. 김용제는 사형 선고를 받은 날부터 일기를 썼다. 책은 그의 일기와 조성애 수녀의 편지로 완성됐다. 
 

<마지막 사형수>는 사형수가 남긴 최초의 기록 모음을 출간했다는 점에서 높은 관심을 받았다.

조성애 수녀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서 “사형이란 가해자에겐 참회의 기회를, 피해자에겐 용서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라며 “용서를 못 한 피해자들은 사형 집행 이후에도 행복하지 않더군요. 용서란 타인에게도 자신에게도 아름다운 사랑입니다”라고 말했다. 

김용제의 범행으로 손자를 잃은 서모 할머니는 그의 성장 배경을 알고 선처를 탄원하는 등 용서의 손길을 내밀기도 했다.

불우한 성장배경
책으로 나오기도

앞서 1995년 11월에는 전국을 경악에 빠뜨렸던 지존파 6명을 비롯, 19명의 사형이 집행됐다. 지존파는 두목 김기환을 중심으로 20대 청년과 10대 가출소년이 모여 만든 범죄 단체다. 

대부분 불우한 가정환경서 자란 이들은 부유층에 대한 극도의 증오심을 갖고 범행을 저질렀다. 지존파는 1993년 7월 20대 여성을 성폭행한 후 살해한 것을 시작으로 1994년 9월까지 4차례에 걸쳐 사람을 납치, 토막 살해하는 엽기적인 범행으로 대중을 공포에 떨게 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정세균 “사형제 폐지는 이성적 판단해야”

정세균 국회의장은 ‘세계 사형 폐지의 날’ 축사에서 “사형제도 폐지 여부는 감성적 판단이 아니라 이성적 판단에 근거해야 한다”며 “사형제도는 반정부 인사에 대한 탄압 수단으로 악용되거나 오판의 위험도 있다”고 말했다.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법살인’으로 불리는 1975년 인민혁명당(인혁당) 사건을 사례로 든다. 인혁당이라는 이름이 세상에 등장한 것은 1964년과 1975년 두 차례였다. 1964년 1차 인혁당 사건은 김형욱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기자회견을 통해 “북괴의 지령을 받고 대규모 지하조직으로 국가변란을 획책한 인민혁명당 사건을 적발했다”고 발표하면서 드러났다.

그로부터 10년 뒤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이 발생했다. 중앙정보부가 1974년 유신반대 투쟁을 벌였던 전국민주청년학생연맹(민청학련)을 수사하면서 배후·조종세력으로 인혁당 재건위를 지목, 이들이 북한의 지령을 받는 남한 내 지하조직이라고 규정한 사건이다.

주범으로 지목된 8명은 1975년 4월8일 사형을 선고 받았다. 그리고 확정 판결 후 불과 18시간 만인 4월9일 기습적으로 형이 집행됐다. 국제법학자회는 이날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꼽기도 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2002년 9월 인혁당 사건은 중앙정보부가 고문 등을 통해 조작한 사건이라고 밝혔다. 이후 법원은 2005년 재심을 수용, 2007년 1월 사형 당한 8명의 전원 무죄가 확정됐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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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최대 변수 송영길, 왜?

여당 최대 변수 송영길, 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가 돌아왔다. 3년의 옥살이 끝에 무죄를 선고받은 만큼 명분과 서사를 모두 거머쥐었다. 두 팔 벌려 환영했지만 송 전 대표를 바라보는 정청래 지도부의 고심이 깊은 모양새다. 앞으로 치러질 각종 선거의 변수가 된 송 전 대표의 쓰임새는 무엇일까? 지난달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의 무죄가 확정됐다. ‘돈봉투 사건’을 주도하고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으나 검찰이 상고를 포기하면서다. 송 전 대표는 “돈봉투 의혹 사건, 2심 무죄에 이어 최종 무죄가 확정됐다”며 “긴 시간 함께 걱정해 주시고, 흔들림 없이 믿어주시며 끝까지 곁을 지켜주신 많은 분의 성원에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진실은 결국 가려지지 않았다. 이제 더 단단해진 마음으로, 책임 있게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강조했다. 돌아온 큰형님 송 전 대표는 지난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 경선을 앞두고 6000만원의 상당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지역 본부장에게 현금이 든 돈봉투를 건네고, 민주당 윤관석 의원을 통해 국회의원에게 나눠줄 돈봉투 6000만원을 제공하는 데 개입한 혐의 등을 받았다. 아울러 그의 외곽 후원 조직인 ‘사단법인 먹고사는문제 연구소(이하 먹사연)’를 통해 기업인 7명으로부터 후원금 명목의 불법 정치자금 총 7억6300만원을 챙긴 혐의 등도 있다. 당초 1심 재판부는 송 전 대표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으나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윤성식)는 이를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원심 판단이 돈봉투 사건과 먹사연 사건 범죄 사실의 관련성을 인정한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먹사연 사건 관련 공소 사실의 경우 압수물이 영장 없이 증거로 사용됐다”고 판단했다. 송 전 원내대표의 복귀는 화려했다. 무죄가 선고된 날 서울고등법원 현장에는 민주당 강득구·김교흥·김상욱·박선원·부승찬·전현희 의원 등 10여명이 모였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역시 자신의 SNS에 “송 대표의 무죄 판결을 축하한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다”며 “검찰 전횡을 바로잡는 검찰개혁에 더 매진하겠다”고 작성했다. 이 판결로 송 전 대표는 ‘정치 검찰의 희생양’이라는 강력한 명분을 얻었다.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정치 검찰의 서슬 퍼런 칼날을 이겨내고 돌아오신 송 전 대표를 환영한다”며 “이재명정부 성공을 향해 연대와 통합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송 전 대표는 이날 민주당 인천시당을 찾아 복당 신청서를 제출했고, 그달 27일 최종 의결됐다. 정 대표는 “송 전 대표의 복당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며 “앞으로 민주당 발전과 이정부의 성공을 위해 큰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또한 정 대표는 “탈당 후 당의 요청이 아니면 다른 경선에서 20% 감산되는 불이익을 받는데, 당 대표인 제가 요청해 (감산이 없도록) 처리하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인천시당에 복당을 신청한 것이 서울시당으로 이첩됐던 것을 중앙당 당원자격심사위원회로 보내라고 지시해 복당했다”고 말했다. “정치 검찰 피해자” “이재명의 은인” 정점 찍은 서사…‘송 사용법’ 고심 송 전 대표는 2021년 전당대회서 당의 주류였던 친문(친 문재인)계를 꺾으며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났다. 그런 그에게는 이재명 대통령과 끈끈한 연결고리가 있다. 같은 해 치러진 민주당 대선 경선 과정서 두 사람의 관계가 본격화됐고, 송 전 대표가 당시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밀어줬다는 이른바 ‘이심송심’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대선에서 패배한 이재명 후보를 국회로 이끈 인물 역시 송 전 대표다. 그는 2022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인천 계양을 지역구에서 사퇴했고, 그때 이 후보가 보궐선거를 통해 당내에 입성했다. 당시 그는 이 후보의 전략공천을 환영하는 입장을 밝히며 “당의 단단한 결정과 이재명 (당시) 상임고문의 결단이 당원과 지지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됐다. 이 상임고문은 우리 민주당과 현재 한국 정치에 큰 자산”이라고 치켜세우며 “이번 지방선거 승리의 큰 구심점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 후보가 국회 입성에 성공하고 당 대표직을 따내는 등 정치인으로서 성공가도를 걸었던 반면, 송 전 대표는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배하며 정치적 치명상을 입게 됐다. 이때부터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서는 송 전 대표가 ‘자신을 희생하고 후배에게 지역구를 물려준 정치인’이라는 인식으로 남았다. 2023년 두 사람에게 본격적인 위기가 찾아왔다. 돈봉투 의혹 수사가 송 전 대표를 덮쳤고, 이재명 대표는 거리를 두는 전략을 택했다. 민주당은 당 전체의 타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송 전 대표의 자진 탈당을 압박했고, 송 전 대표 역시 당에 부담을 주지 않겠다며 당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3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은 송 전 대표가 자신의 서사를 어떻게 활용할지 이목이 쏠린다. 과거의 영광을 누렸던 그가 복귀하자 현 수장인 정 대표의 셈법만 복잡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방선거, 전당대회, 나아가 다음 대선까지 송 전 대표가 차후 진행될 모든 선거의 변수가 됐다. 6월 치러지는 지방선거 및 재보궐선거가 첫 번째 관문이다. 복당 이후 송 전 대표는 자신의 지역구였던 계양을로 이사오면서 이곳에서 치러질 보선에 출사표를 던질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계양구는 송 대표의 정치적 고향으로, 지난 2000년 해당 지역에서 당선돼 16대 국회에 입성한 뒤 17·18·20·21대 총선까지 내리 승리했다. 이때 쌓은 조직력을 기반으로 2010 민선 5기 인천시장에도 당선됐다. 굴리는 주판알 인천 계양에 출마가 유력한 김남준 청와대 대변인과의 교통정리 여부가 변수다. 송 전 대표는 YTN과의 인터뷰서 김 전 대변인도 계양을 출마 의사를 밝힌 것에 대해 “당 지도부가 잘 판단하고 결정할 것”이라며 “지역구라는 게 정치인들이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고, 국민과 당원의 뜻이 중요하다. 당 지도부가 여러 가지를 검토해서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에게 지역구를 물려준 중진과 대통령의 최측근인 신인 정치인의 대결구도가 예상되는 만큼 시선은 지도부의 교통정리에 쏠렸다. 정 대표와의 신경전도 예상된다. 정 대표가 당 대표 연임에 도전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한 가운데 송 전 대표가 국회에 입성하면 차기 당권을 노릴 것이란 관측이 나오면서다. 송 전 대표가 실제 당권에 도전할 경우 정 대표를 비롯해 ‘차출설’이 제기되는 김민석 총리와 함께 3파전 구도를 형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여론조사에서는 벌써 송 전 대표의 이름이 거론된다. 지난달 26일 <뉴스토마토>가 23일부터 24일까지 이틀간 만 18세 이상 전국 성인남녀 1034명을 대상으로 ‘민주당 8월 전당대회에서 다음 세 사람이 맞붙는다면, 누가 민주당을 이끌 차기 당대표로 적합하다고 보는지’를 묻는 말에 답변은 ▲정청래 대표 21.6% ▲송영길 전 대표 19.4% ▲김민석 국무총리 18.8%로 집계됐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0%이며 ARS(RDD) 무선전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응답률은 1.8%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강경 개혁파로서 외연 확장성이 부족하다는 게 단점으로 지적돼 왔다. 정 대표의 강경 노선이 지지층 결집에는 효과적이지만, 중도층과 무당층을 포섭해야 하는 전국 단위 선거에서는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제기된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 대통령과 비슷한 중도·실용주의적 성향인 송 전 대표는 민주 당원의 또다른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이미 온라인 공간에서는 ‘뉴이재명’ 그룹이 송영길 역할론에 불을 지피면서 그의 존재감을 키워주는 상황이다. 거침없는 저격수 따라서 송 전 대표 본인이 나서지 않더라도 정 대표의 리더십에 불만을 가진 세력이 정청래 VS 송영길 구도를 만드는 등 당내 경선을 앞두고 판이 깔릴 가능성이 제기된다. 결국 모든 권력투쟁의 종착지가 그렇듯 그가 2027년 치러질 대통령 선거에까지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송 전 대표는 복귀와 동시에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최근 친청(친 정청래)·친문으로 분류되는 김어준씨의 유튜브 채널 ‘뉴스공장’을 정면으로 비판하는가 하면,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을 두고 ‘대국민 사기’라며 문재인 전 대통령의 책임을 거론하기도 했다. 그는 한 라디오를 통해 ‘이재명 대통령 공소 취소 거래설’의 근원지인 ‘뉴스공장’을 향해 “괴물과 싸우다가 괴물이 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라”고 충고했다. 송 전 대표는 “(‘뉴스공장’에) 섭외를 받아도 안 나가고 싶다”며 “특정 언론 유튜브에 국회의원들이 줄 서서 알현하듯이 있는 모습이 좋은 건 아니다. 우리가 국민의힘에 대해서 고성국이나 전한길 비판하듯이 우리 스스로도 돌이켜볼 면이 있다”고 꼬집었다. 여기에 친명인 강득구 의원도 김씨의 방송에 출연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그에게 힘을 실었다. 강 의원은 “큰 틀에서 송 전 대표의 문제 제기에 뜻을 같이 한다”며 “(최근) 김씨는 김 총리의 미국 출장을 두고 ‘차기 주자 육성 프로그램처럼 보인다’고 해석했다. 해석은 자유이지만 다소 자의적인 판단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비판했다. 8월 전대 ‘정·송·김’ 3파전? 6월 지선·재보선 첫 번째 관문 코로나 백신 논란에 대해서는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조국 대표가 참전하면서 사태를 키웠다. 조 대표는 “송 전 대표는 두 가지 음모론을 여전히 믿고 주장하고 있다. 첫째, 극우 변희재가 주장한 최순실 태블릿 PC 조작론. 둘째, 코로나 백신 국가적 사기론”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송 전 대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최순실 태블릿PC 조작설’을 주장해 온 변희재씨와 손을 잡은 이유를 묻는 질문에 “(JTBC와 검찰, 특검이 태블릿 PC 조작을 통해 박근혜 탄핵 수사에 활용했다는 의혹이) 법률가인 제가 보기에도 일리 있는 주장이라 공감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조 대표의 부산 출마’ 필요성을 언급한 송 전 대표를 비판했다. 조 대표는 “최근 송 전 대표께서 느닷없이 저와 혁신당을 향해 ‘호남 이삭줍기 말고 영남으로 가라’고 말씀하셨는데, 호남 출마자들이 어떻게 이삭이냐”며 “모욕과 폄훼”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혁신당 후보들은 지난 총선 시기에 송 전 대표가 손을 잡았던 극우 인사 변희재·최대집씨보다 훨씬 훌륭한 사람들”이라며 다시 한번 송 전 대표의 과거 행적을 거론했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송 전 대표는 ‘뉴이재명 바람’에 올라탔다. 지난 15일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이 개최한 ‘뉴이재명 토론회’ 현장에 나타나 지지자와 인사를 나눴다. 송 전 대표의 축사가 끝나자 지지자들은 연신 “송영길”을 외치기도 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송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이 쓸 수 있는 최고의 칼”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송 전 대표와 이 대통령, 두 사람은 혁신과 쇄신을 강조하는 등 성격이 비슷하다”며 “정부·여당에 타격을 입히는 ‘당정 갈등설’을 부인하는 것도, 논란을 만드는 것도 정 대표다. 이정부의 성공을 바라는 지지층이 봤을 때 이 대통령이 어떤 의중을 전달할 때 정 대표가 아닌 송 전 대표의 입을 빌리는 편이 쉬울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쏘리재명’ ‘쏘리영길’ 그러면서 “뉴이재명은 송 전 대표에 대한 부채 의식이 있다. 3년 동안 옥살이를 하게 했다는 미안함과 이 대통령에게 지역구를 물려준 일 등, 송 전 대표의 희생정신을 높게 평가할 것”이라며 “이런 여론이 확산하면 앞으로 치러질 모든 당내 선거에서 송 전 대표가 승산이 있다고 계산해 어떤 방식이든 (출마를) 결심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송영길 소나무당 어디로?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가 지난 2024년 옥중 창당했던 소나무당이 해체했다. 송 전 대표는 무죄를 선고받자 “소나무당을 해산하고 더불어민주당으로 복당하겠다”고 말했다. 소나무당 시도당위원장 협의회(이하 협의회)는 입장문을 내고 송 전 대표의 결정을 받아들였다. 협의회는 “송영길 대표의 소나무당 해산 및 더불어민주당 복당 천명은 바로 그 위임에 따른 책임 있는 정치적 결단”이라며 “이는 개인의 정치적 유불리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 소나무당이 존재했던 이유와 역할을 다른 방식으로 완성해 나가겠다는 결정이라 우리는 이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소나무당은 해산하지만,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정치적 신뢰와 연대의 경험은 각자의 자리에서 계속 이어질 것”이라며 “송 대표의 정치적 결단을 존중하며 그의 정치적 행보를 함께 지켜보고 응원하는 시민들과 새로운 방식의 역할을 모색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