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조 후반에 발생한 공민왕 시해사건 당시 일이다. 동 사건과 연좌되어 많은 사람들이 사형 당하는 과정에 사건 주범 중 한 사람의 동생으로 아홉 살 된 남자 어린이(해당 문중에 폐를 끼칠 우려가 있어 실명은 생략한다)가 죽임을 당한다.
대역죄에 연루된 죄인의 아비와 남자 형제들에 대해 사형에 처하라는 왕명이 있었지만, 그 어린이는 그 순간 사형을 면할 수 있었다. 대역죄 연좌의 법률에 따르면 16세 이상 남자만 사형에 처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울러 남자 어린이의 경우 16세가 되는 해에 형을 집행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어린이는 단지 “왕명을 어기지 않겠다”며 기꺼이 죽음의 길을 선택하고 형장의 이슬이 되어 사라진다. 채 10살도 되지 않은 어린 아이가 자신에게 남겨진 7년을 포기하고 자살과 조금도 진배없는 죽음을 선택했다.
이를 살피면 <일요시사>를 통해 언급했었던 소크라테스의 죽음이 문뜩 떠오른다. 소크라테스의 경우도 사형을 면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금까지 아테네 법률을 지키며 잘 살아왔는데 나에게 불리해졌다고 해서 법을 어기는 것은 비겁한 일이지 않는가”라며 선선히 독배를 받아든다.
왜 그 어린이와 소크라테스는 자살과 같은 죽음을 받아들였을까. 그 어린이의 말대로, 또 소크라테스의 말대로 법과 동일시되는 왕명과 아테네의 법을 지키기 위해서였을까. 물론 그리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는 단순히 법을 떠나 인간의, 한걸음 더 나아가 생명체의 본성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인간도 그러하지만 여타의 생명체에게 나타나는 자살 원인 중 가장 빈번한 경우는 바로 희망의 문제다. 희망의 부재가 자살로 이어진다는 말이다.
결국 그 어린이는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을 7년이란 시간, 그리고 72세 고령의 소크라테스는 자신에게 얼마간의 생이 남아있을 지 확정되지 않은 불확실한 시간을 살기보다는 남의 손을 빌린 명분 있는 자살을 선택한다.
이를 염두에 두고 최근 쟁점이 되고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에 대해 접근해보자.
이명박정권 시절 정무수석을 지낸 바 있는 자유한국당 정진석 의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씨와 아들이 박연차씨로부터 수백만달러의 금품 뇌물을 받은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은 뒤 부부싸움 끝에 권씨는 가출하고, 그날 밤 혼자 남은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글을 게재했다.
정 의원의 글을 살피면 노 전 대통령이 자살한 원인을 은연 중에 밝히고 있다. 노 전 대통령과 권씨 간 부부싸움 때문이라고 말이다. 참으로 해괴망측한 글이 아닐 수 없다. 일국의 대통령을 지낸 분이 부부싸움 때문에 자살하다니.
하여 다년간 정치판에 발을 담갔었고 또 현직 문학인의 입장서 노 전 대통령이 자살한 그 원인을 조심스럽게 풀어내보겠다. 일전에도 <일요시사>를 통해 잠시 언급했었지만 당시 상황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10년 만에 권력을 잡은 보수 정권은 노 전 대통령뿐 아니라 그 이전인 김대중정권까지 겨냥하고 있었다. 한편으론 노무현정권보다 김대중정권에 더욱 비중을 두고 있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그 사실을 노 전 대통령이 철저하게 간파하고 있었던 게다. 그리고 자신의 희생이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노 전 대통령은 명분 있는 자살을 선택한 게다.
※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