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우(杞憂)는 기인지우(杞人之憂)의 준말로 중국 춘추전국 시대에 기(杞)나라 사람이 하늘이 무너지면 자신의 몸이 의지할 데가 없을까 걱정해 침식을 전폐하고 근심했었다고 한 데서 유래된 말로 쓸데없는 공연한 근심을 지칭한다.
최근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국회 인준과 관련한 문재인 대통령의 행태가 기나라 사람의 근심과 조금도 오차 없이 일치하고 있다. 왜 그런지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이 대독한 내용을 들어보자.
“3권 분립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사법부 수장을 상대로 하는 인준절차에 예우와 품위가 지켜지는 것도 중요하다. 인준 권한을 가진 국회가 사정을 두루 살펴 사법부 수장 공백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지 않도록 해주시기 바란다.”
문 대통령의 발표 내용을 액면 그대로 살피면 대법원장 공백 상황에 처하게 되면 대한민국의 명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 암시하고 있다. 흡사 협박처럼 들리기도 하는 이 근심이 기우라는 말이다.
왜 그런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서 답을 찾아보자. 지난해 12월9일 국회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의결하고 당일 헌법재판소에 접수했다. 이어 헌재는 지난 3월10일 탄핵심판사건 선고기일을 열고 재판관 8명 전원일치 의견으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파면 결정을 내렸다.
헌재에 접수한 지 92일 만에 내린 결정으로 대한민국 헌정사 최초로 현직 대통령이 파면됐다. 이어 문 대통령은 지난 5월9일 실시된 제19대 대통령선거에 당선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우리 헌법 제65조 3항은 ‘탄핵소추의 의결을 받은 자는 탄핵심판이 있을 때까지 그 권한행사가 정지된다’고 규정돼있다. 즉 우리나라는 92일간 대통령 대신 국무총리 체제를 유지해왔고 대통령 탄핵으로 두 달 동안 역시 대통령 권한 대행체제를 유지해왔다.
합산하면 무려 5개월이란 기간 동안 대통령 부재 상태를 유지해왔다. 그런데 그 과정에 무슨 큰 일이 발생했는가. 가장 큰 일이라면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는 일일 게다.
그런데 대법원장의 공백이 이 나라가 유지되는 데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칠까. 하여 대법원장이 지니고 있는 권한을 살펴보자.
헌법에 의하면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와 ‘대법원장과 대법관이 아닌 법관은 대법관회의의 동의를 얻어 대법원장이 임명한다’로 규정돼있다.
이번엔 법원조직법을 살펴보자.
그에 의하면 대법원장은 대법원의 일반사무를 관장하며, 대법원의 직원과 각급 법원 및 그 소속 기관의 사법행정사무에 관해 직원을 지휘·감독한다고 했다. 또한 그 밖에도 헌법재판소 재판관 지명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지명권, 법원직원 임명권, 사법행정권 등이 있다.
대법원장의 권한을 살피면 외양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한마디로 ‘빛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는다. 국민들 역시 대법원장이란 직책이 삼권분립 제도 하에서 그저 구색만 갖추는 자리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은 자신이 지명한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해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다. 정말로 대법원장이 소중한 자리라면 박 전 대통령을 반면교사로 삼아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일이다.
※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