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A구치소 마약파티설 ‘진상’

모두 잠든 시간 삼삼오오 투약?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치소 수감자들이 ‘마약파티’를 벌였다는 주장이 제기돼 파문이 일고 있다. 한 수감자가 구치소에 반입된 향정신성의약품을 교도관 모르게 숨겨뒀다가 다른 수감자들과 함께 투약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구치소 측에선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의혹을 일축했다. 구치소 마약파티설의 진상을 <일요시사>가 따라가 봤다.
 

최근 톱 아이돌 그룹의 멤버, 유명 밴드 출신 가수가 대마초 흡연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또 여성 보컬 그룹의 한 멤버는 지인이 자신에게 마약을 권유했다는 내용을 SNS에 폭로해 논란을 빚었다. 

연예계 마약 스캔들이 자주 보도되면서 초기에 비해 놀라움의 정도가 줄고 있다. 심지어 몇몇 연예인들은 예능 프로그램서 과거 마약 투약 혐의로 수감됐던 사실을 ‘셀프 언급’하며 웃음을 유발하기도 한다.

마약 스캔들↑
이제 별거 아냐?

일각에선 마약 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사라졌다고 지적한다. 대중에게 친숙한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가 마약 관련 범죄에 연루되는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하자 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무뎌졌다는 분석이다.

범죄를 저지르고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별다른 제재 없이 다시 방송이나 경기에 얼굴을 비추는 일이 잦아지면서 마약 범죄는 ‘눈 감아 줄 수 있는 수준’이 된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안일한 인식과는 달리 마약 범죄는 여전히 횡행 중이다. 특히 인터넷과 SNS가 폭발적으로 발달하면서 마약 구입경로가 이전보다 다양해졌다. 경찰청은 최근 인터넷과 SNS, 국제우편 등을 이용해 마약을 구입한 마약류 사범이 최근 5년 새 급증 추세를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또 환각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해피벌룬이 클럽과 술집을 넘어 일반 사회에까지 무차별로 유통되는 등 사각지대가 생기고 있다. 해피벌룬을 과다 흡입한 20대 남성이 사망하는 사고도 있었지만 대책은 전무한 상태다. 

환경부와 식품의약안전처(이하 식약처)가 시행령 개정을 통해 해피벌룬의 원료인 아산화질소를 환각 물질로 지정하겠다고 밝혔지만 본격적인 단속은 8월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그마저도 실효성 여부에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문제는 이처럼 사회 전반에 걸쳐 암암리에 퍼지고 있는 마약 관련 사건이 버젓이 구치소서 발생했다는 주장이 나온 점이다.

필로폰 투약 혐의로 구치소에 수감 중인 A씨는 담당 교도관들이 향정신성의약품(마약류, 이하 향정약품)으로 지정돼 있는 약품을 교부하는 과정서 투약 확인을 생략하는 등의 허술한 점을 악용해 한 수감자가 약품을 모아뒀다고 주장했다. 

“밤마다 시끄러워 못살겠다”
연루 의혹 수감자 5명 고소

또 모아둔 약품을 다른 수감자들에게 나눠줘 취침 시간 등에 함께 투약하며 마약 파티를 벌였다고 덧붙였다. A씨에 따르면 마약파티는 2월17일부터 3월19일까지 약 한 달 동안 수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A씨는 이 과정서 소음·소란이 지속돼 수면장애, 환청, 이명 등 정신적·육체적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고 했다. 또 사건을 미연에 방지했어야 할 구치소 측에서 담당 교도관을 관리·감독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A씨는 마약파티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수감자 5명과 구치소장 등 6명을 서울서부지검에 고소한 상태다.

향정약품은 인간의 중추신경계에 작용하는 약물이다. 다시 말해 환각·각성·습관성·중독성이 있는 의약품을 뜻한다. 환각을 유발·발동시키는 물질도 모두 여기에 속한다고 보면 된다. 특히 오용하거나 남용할 경우 인체에 현저한 위해가 있다고 인정되는 것을 말한다.

일반인은 향정약품을 사용하지 못하며 약국 역시 반드시 처방전서 따라서만 취급할 수 있다. 제조업자·의료기관·약국 등은 향정약품의 판매·수수에 관한 장부를 작성·비치하고 판매 또는 수수할 때마다 그 내용을 기재해야 한다. 여기에 매수인과 양수인의 서명과 날인도 필요하다. 또 향정약품은 잠금장치가 설치된 장소에 보관하도록 한다.

향정약품은 오·남용 가능성과 그에 따른 위험의 정도에 따라 가목서 마목까지 세분화돼있다. 가목은 오남용 우려가 심해 의료용으로도 쓰이지 않는다. 안전성이 결여돼있어 이를 오남용할 경우 심한 신체적 또는 정신적 의존성을 일으킨다. 성관계시 흥분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일종의 최음제인 ‘고메오’가 여기에 분류된다.

필로폰, 암페타민 등은 나목에 속한다. 오용하거나 남용할 우려가 심하고 의료용으로도 매우 제한적으로 사용된다. 다목은 가목과 나목에 규정된 것보다 오용하거나 남용할 우려가 상대적으로 적고 의료용으로 쓰이는 약물을 말한다. 데이트 강간 약물로 알려진 플루니트라제팜 등이다. 

라목은 다목보다도 오·남용 우려가 적은 약물로, 프로포폴이나 일명 물뽕이라고 불리는 GHB(Gamma Hydroxy Butrate) 등이 해당된다.

투약 확인 소홀
약 모아놨나?

교정시설 내 반입이 가능한 향정약품은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제2조 제3호 다목부터 라목까지로,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규정돼있다. A씨에 따르면 피고소인 가운데 한 명인 B씨가 다른 수감자들에게 교부한 향정약품은 졸피뎀 복제약, 디아제팜, 루나팜, 스틸록스 등이다. 졸피뎀과 디아제팜은 교정시설에 반입 가능한 향정약품 라목에 해당된다.

구치소 측에서는 A씨가 제기한 의혹이 ‘일방적인 주장’이라는 입장이다. 
 

구치소 관계자는 “수용자의 가족으로부터 향정약품 교부 신청이 있을 경우, 외부 의료시설서 발급한 의사의 진단서 및 처방전을 제출하도록 한다”며 “의무관과 약무관 또는 전문가의 의약품 감정을 받은 후 필요한 경우에만 허가해 반입하는 절차를 거치고 있다”고 했다.

이 과정을 거쳐 반입된 향정약품은 분류 후 자물쇠 등의 시건장치가 있는 2중 캐비닛에 넣어 잠금장치가 설치된 의약품 창고에 보관한다고 강조했다. 또 매일 수량과 보관상태 등을 확인하고 있으며 담당자 외 출입을 일체 통제해 엄격히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A씨가 언급한 사건이 일어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향정약품 투약 확인 과정이 허술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해명했다. 구치소는 “향정약품은 필요 최소량만 투약하고 있다. 투약일에 담당 근무자에게 교부해 투약수용자에게 1회분씩 지급하면서 동시에 복용여부도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향정약품의 경우 수용자의 복용여부를 입속까지 확인한다”고 덧붙였다.


자체 조사 결과
“절대 아니다”

또 A씨가 제기한 의혹에 대해 자체적으로 이미 조사를 마쳤다는 입장이다. 당시 담당 근무자는 투약 확인 과정을 확실히 이행했고 마약파티를 했다고 지목된 수감자들은 “처방받은 약을 나눠 먹지 않았다”고 일관되게 진술한 점을 근거로 들었다. 

그러면서 “마약파티에 사용됐다고 A씨가 주장한 약품의 종류는 처방되거나 반입된 사실이 없다”며 “거실 검사 결과 어떠한 향정약품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러나 A씨는 자신이 마약파티에 대해 제보했을 때 구치소 측이 사건을 은폐·축소하기 위해 마약파티 의혹 대상자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증거물 확보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도리어 사건의 피해자나 다름없는 자신을 소란행위로 징벌·경고 처분했다는 입장이다. 실제 A씨는 지난 3월 소란 혐의로 징벌위원회에 회부돼 ‘경고’ 처분을 받았다.

구치소 측 “일방적인 주장”
향정약품 관리에 문제없어

구치소에 따르면 A씨는 3월19일 오후 3시경 비상벨을 계속 누르고 고성으로 근무자에게 항의하며 거실에 있는 다른 수용자들과 다른 수용거실 수용자들의 수용 생활을 방해했다. A씨는 마약파티서 시작된 사건이 자신에 대한 경고 처분으로 끝난 것에 대해 구치소장의 직권 남용과 직무 유기라고 비판했다.
 


A씨는 “수감 전 진료나 처방 기록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다량의 향정약품을 처방해주는 병원들이 마약파티 등 사건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며 “해당 처방전을 받아오는 사람 역시 수감자의 보호자나 가족이 아니라 출소한 마약류 사범 동료가 부적절하게 발급받아 전달되는 게 더 큰 문제”라고 강조했다.

A씨가 지적한 문제점이 그대로 드러난 사건이 실제로 있었다. 2013년 부산·창원·통영·진주 지역 교도소 재소자들에게 진찰도 하지 않고 향정약품을 처방해준 혐의로 부산과 전북의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두 명이 불구속기소됐다. 

검찰 조사 결과 교도소에 수감된 마약사범들은 교도소와 진료 계약을 체결한 정신과 의사 장모씨와 신모씨의 도움으로 환각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향정약품을 상습적으로 복용해 왔다.

장씨는 재소자의 지인이나 가족이 찾아와 정신불안증세 등을 호소하면 1인당 최소 5일서 한 달간 복용할 수 있는 디아제팜, 라제팜, 졸피뎀 등의 향정약품을 처방한 것으로 검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장씨가 약을 처방해준 재소자 18명 가운데 17명은 마약 사범이었다. 신씨 역시 약 1년간 교도소 재소자 25명에게 진찰도 없이 42차례에 걸쳐 향정약품을 처방한 혐의를 받았다. 신씨로부터 처방받은 재소자 가운데 마약사범은 7명이었다.

수감자의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해 약품을 타낸 뒤 우편으로 교도소에 보낸 혐의를 받던 인물은 당시 수배령이 내려진 상태였다. 수배된 그는 수감자의 주민등록번호로 신분을 속이는 등 재소자 인적사항을 도용해 두 의사들로부터 처방전을 받고 처방전과 향정약품을 등기 우편으로 재소자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발표에 따르면 재소자들은 장씨와 신씨가 진찰을 하지 않고 향정약품을 처방해준다는 사실을 알고 지인과 가족 등을 보내 처방전을 받도록 했다. 복역 중인 마약사범들에게 향정약품을 제한 없이 복용하도록 한 의사들이 적발된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당시도 교정당국의 재소자 관리에 구멍이 뚫린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처방전 없이
약주다 적발

최근에는 향정약품을 처방받아 건네주는 등 재소자에게 편의를 제공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교도관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지난해 12월 인천지검 강력부는 인천구치소 교도관 C씨를 체포했다. 그는 마약성분이 함유된 다이어트 약을 수감자에게 수차례 전달해주는 등 편의를 제공하고 금품을 받았다.

인천지법 형사12부는 지난 2일 C씨에게 징역 3년6개월과 벌금 40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공직사회의 청렴성과 공무원이 처리하는 사무의 공정성에 대한 신뢰를 훼손했다”며 “피고인이 법정서 진술을 번복하고 있어 범행을 진정으로 뉘우친다고 보기 어렵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졸피뎀·디아제팜·루나팜·스틸록스는?
잠 안온다고 막 먹었다간…

구치소에 수감된 A씨는 자신이 고소한 피고소인들끼리 마약파티를 벌일 때 졸피뎀, 디아제팜, 루나팜, 스틸록스 등이 사용됐다고 주장했다.

졸피뎀은 불면증 치료용으로 쓰이는 수면 유도제로 잘 알려져 있다. 지난해 SBS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서 졸피뎀 부작용과 관련된 사건이 대대적으로 드러나면서 큰 논란을 빚었다. 졸피뎀은 복용 후 전날 한 행동을 기억 못하는 증상이 나타날 때가 있어 ‘제2의 프로포폴’ 이라 불리기도 한다.

디아제팜은 정신안정제나 골격근 이완제 등으로 쓰이는 약물이다. 약물 효과에 따라 임의로 용량을 증가시키면 안 된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습관성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10일 이상 꾸준히 사용한 경우에는 의사 지시 없이 갑자기 중단하면 좋지 않다.

의식 없이 운전하는 경우도

식품의약품안전처서 최면진정제로 분류한 루나팜은 수면 운전과 같은 복합 행동이 보고된 바 있다. 수면 운전은 수면진정제 복용 후 완전히 깨지 않은 상태서 운전하며 환자는 이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또 루나팜 복용 후 음식 준비, 음식 먹기, 전화하기, 성관계 등의 복합 행동을 한 환자의 사례가 알려지기도 했다. 환자는 기억이 전혀 없는 상태였다.

최면진정제인 스틸록스는 완전히 각성된 상태서 진행해야 하는 다른 행동에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취침 직전에 1회 복용하되 약물 복용 후 기상 전까지 최소 7∼8시간의 간격이 필요하다. 다른 수면제들과 마찬가지로 장기간 사용은 권장되지 않는다. <선>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캄보디아 ‘셀허브’ 추적

[단독]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캄보디아 ‘셀허브’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민낯이 드러났다. 주로 수도인 프놈펜 인근과 시아누크빌 범죄 단지가 그들의 주둔지였다. 국내 조직폭력배가 중국 갱단과 결탁해 만든 ‘셀허브’의 경우 피해자만 수십명이다. 이들은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가장했다. 사이트에는 유명인의 사진이 수차례 도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는 사라진 셀허브 엔터테인먼트의 홈페이지. 지난해 7월 <일요시사>가 취재한 이후 대표이사의 이름과 사진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표창장을 받았다며 문서를 위조하기도 했다. 이 기업의 정체는 로맨스 스캠 조직이다. 확인된 피해액만 약 40억원, 피해자는 수십명이다. 한 언론사는 보도자료까지 작성하며 홍보하기도 했다. 조직적 준비 경찰 수사 중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지난 24일, 셀허브 조직원 3명을 각각 구속·불구속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송치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이들은 조건 만남 사이트를 운영한 로맨스 스캠 조직이다. 여성 관련 데이트 상품을 판매하거나 연애 빙자 사기를 일삼았다. 셀허브 조직원이던 A씨는 “연예인 지망생이나 모델과 연락하게 해 준다며 50만원에서 100만원까지 대포통장 계좌에 돈을 입금하게 한 뒤 텔래그램 아이디를 알려주고 연락하게 하는 시스템”이라며 “연결된 여자는 실제 남성이고 한국에서 조직폭력배로 활동하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이 조직은 지난해 3월 캄보디아 범죄 밀집 지역인 태자 단지에서 인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같은 해 5월 사이트를 개설해 조직원들에게 민간인 협박, 중국어 통역 등의 역할을 맡기고 수십명으로부터 약 40억원을 뜯어냈다. 같은 해 7월 <일요시사> 취재가 시작되자 이 조직은 셀허브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의 이름을 ‘김현숙’에서 ‘박소희’로 변경하고 유명인의 사진을 수차례 도용했다. 유 전 장관에게 표창장까지 수여받았다며 피해자들의 의심을 피하려는 꼼수도 서슴지 않았다. A씨는 “조직에서 탈출하려는 사람은 밤새 맞거나 강제로 마약을 투약당하기도 했다. 조직폭력배 출신 한국 사람들이 간부고 일반 조직원은 교민 사이트를 통해 ‘한 달에 500만~1000만원을 벌 수 있다’는 거짓말에 속아 일하게 된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건은 서울경찰청이 수사하기 이전인 지난해 7월부터 강서·영등포·구로경찰서 등에 여러 고소장이 접수됐었다. 하지만 수사는 원활하지 않았다. 주요 혐의자가 해외에 거주 중이거나 피의자 특정이 어려운 게 난관이었다. 수사를 담당했던 한 경찰 관계자는 “캄보디아 프놈펜에 주요 혐의자들이 거주한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지난해부터 공조를 요청했으나 캄보디아 당국이 비협조로 일관했다”며 “고소인분들이 ‘왜 안 잡냐’ ‘내 돈 어떻게 하냐’는 등 불만이 많으셨다. 매번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캄보디아가 협조하지 않으면 조치가 불가능했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3월부터 조직원 모집…태자 단지서 모의 ‘유인촌 표창장’ 걸어 놓고 ‘정상 기업’ 홍보 막막했던 수사는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면서 풀리기 시작했다. 이재명정부가 캄보디아를 압박했고 현지에 구금된 한국인 범죄자 겸 피해자 수십명을 국내로 송환했다. 송환된 인원 중 일부는 셀허브 사건과도 연관된 것으로 파악됐다. 정성학 충남경찰청 수사부장은 지난 20일 청내 프레스센터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들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사기) 및 범죄단체 가입 및 활동 혐의로 전원 구속했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부건(총책 가명, 40대 초반, 한국말을 쓰는 외국인 추정) 조직으로부터 확인된 피해 건수는 110건, 피해액은 93억여원에 달했다. 약 100명의 조직원을 거느린 부건은 지난해 중순부터 올해 7월까지 주로 프놈펜 웬치(범죄 단지) 및 태국 방콕 등지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범행을 벌여왔다. 부건 조직은 지난 2018년 중국에서부터 활동을 시작해 그동안 단속을 피하려 태국, 캄보디아 등지로 거주지를 옮겨가며 범행을 계속해 왔다. 이들은 데이터베이스, 입출금 등을 지원·관리하는 CS팀과 광고를 보고 접근한 피해자를 기망하는 로맨스팀, 검찰 사칭 보이스피싱팀, 코인투자리딩 사기팀, 공무원 사칭 노쇼 사기팀 등 총 5개 팀으로 이뤄진 조직체계를 갖췄다. 이들은 가구판매업을 하러 캄보디아에 갔다고 진술했으나 이후 지역 선·후배 권유, 고액 아르바이트 인터넷 광고 등을 접하고 범죄에 연루된다는 걸 알면서도 조직에 가입해 활동한 것으로 조사됐다. 속아서 조직에 들어갔다고 진술하지 않은 이들의 유입 경로는 ▲지인 포섭 29명 ▲인터넷 광고 등 포섭 8명 ▲현지 카지노 포섭 6명 ▲기타 2명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남성 42명과 여성 3명으로 연인도 있었다. 대부분은 20~30대 연령으로 최소 2개월부터 최대 16개월까지 범행에 가담해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조건 만남 사이트 경기북구경찰청 형사기동대도 전기통신금융사기특별법 위반 등 혐의로 피의자 15명 중 11명을 구속 송치했다. 이들은 지난해 8월부터 한 달간 캄보디아 범죄 단지에서 여성을 사칭, 조건 만남 등을 명목으로 피해자들로부터 돈을 가로챘다. 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성 만남 광고를 낸 후 이를 보고 연락해 온 피해자에게 여성인 척 채팅으로 유인했다. 여성을 소개받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개발한 조건 만남 사이트에 회원 가입과 인증을 받아야 한다고 속여 인증을 위한 돈을 요구했다. 3차례에 걸친 인증 절차 과정에서 여러 게임에 성공하면 가입비를 돌려준다고 속여 피해자로부터 1인당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을 받아 챙겼다. 피해자들이 믿을 수 있도록 별도의 만남 인증과 후기글을 남기는 ‘화력방’도 운영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 규모는 피해자 36명, 피해금 16억원 상당이며, 1인당 최대 피해 금액은 2억1000만원이다. 이들은 대부분 20~30대 남녀다. 최초 범죄집단을 구성한 캄보디아 프놈펜 지역 명칭 ‘툴콕’을 의미하는 ‘TK’파로 스스로를 부르며 총책을 정점으로 한 지휘·통솔 체계를 갖췄다. 조직 운영을 총괄하는 총책, 이를 보좌하며 실무 전반과 인력 공급 등을 담당하는 총관리자, 각 파트 팀원의 근태를 관리하고 지시하는 팀장으로 구성됐다. 또 자체적인 조건 만남 홈페이지를 제작하는 개발자, SNS에 광고 글을 게시하는 홍보팀과 광고를 보고 접근한 피해자를 기망하는 로맨스 2개팀으로 역할을 분담했다. ▲상호 가명 사용 ▲근무 중 휴대전화 금지 ▲사진 촬영 금지 ▲야간에는 커튼으로 외부 차단 ▲다른 부서와의 업무 내용 공유 금지 등의 규칙에 따라 생활하기도 했다. 중국 국적 100명 뒷배 이들은 총책이 마련한 건물에서 2인1조로 합숙했는데 프놈펜 툴콕 지역의 13층 건물을 사용하다가 지난 8월, 현지 단속을 피해 센소크 지역 7층 건물로 이전해 범행을 이어오던 중 현지 수사 당국에 의해 검거됐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SNS 구직 광고나 조직원을 통해 범죄단체에 가입했다고 진술했으며 사기임을 알고도 범행을 지속한 것으로 조사됐다. 피의자 대부분은 현지에서 구금된 중에도 총책이 이른바 관작업을 통해 자신들을 석방시켜 줄 것이라는 말만 믿고 대사관의 도움을 거절하고 귀국하지 않았다. 셀허브 사건 간부들은 타 사건에도 연루됐다. 지난 7일 캄보디아 바벳에 인접한 베트남 떠이닌 지역 국경 검문소 인근에서 30대 여성 B씨가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는데, 숨지기 직전까지 셀허브 간부와 같이 있었다. B씨의 사인은 마약 과다 투약이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B씨가 셀허브에서 한국인 명의의 대포통장을 공급해 왔다고 보고 있다. A씨는 “셀허브에서 일할 사람을 모집하는 역할을 했던 B씨인데 통장을 팔려고 캄보디아에 도착한 한국인들을 유인해 범죄 단지로 팔아넘기고 유인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정보·수사기관도 B씨에 의해 범죄 단지에 넘겨지는 피해를 입거나 유흥업소 일을 강요당한 사례를 확인하고 조사 중이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사실상 마약을 강제로 과다하게 투약당한 살인사건이라는 첩보는 아직 확인 중”이라며 “특정 조직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건 현지 경찰도 수사 중인 내용”이라고 말했다. 대개 조직폭력배 출신…지휘는 중국 조직이 맡아 40억 피해액 환수 불가능 “자금 세탁 끝났다” 첫 데이트하던 연인을 치어 여교사를 숨지게 했던 이른바 ‘대전 머스탱 교통사고’의 피의자도 셀허브 조직원으로 확인됐다. 피의자 전모씨는 2019년 2월10일 오전 10시14분 대전 중구 대흥동에서 면허도 없이 외제차를 운전하던 중 인도를 걷던 조모씨와 박모씨를 들이받아 박씨를 숨지게 하고, 조씨에게 중상을 입혔다. 전씨가 대여한 외제차는 불법 대여 차량이었다. 이 차량은 애초 대구에 사는 C씨가 자신 명의로 캐피털에서 월 115만원씩 주는 조건으로 60개월간 대여한 것이다. C씨는 사촌 안모씨와 함께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나모씨가 올린 ‘외제차 저렴하게 빌려줄 사람을 찾는다”는 글을 보고 접근, 한 달에 136만원씩 받기로 하고 대여한 머스탱 차량을 재임대했다. 나씨는 이렇게 빌린 머스탱 차량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활용해 “외제차를 빌려준다”고 광고하며 또다시 대여업을 했다. 전씨는 나씨가 올린 이 글을 보고 일주일에 90만원씩 주기로 약속하고 머스탱을 빌려 운전했다. 매년 확정되는 범죄수익 추징금은 30조원을 넘지만 환수 금액은 1%에도 미치지 않는다. 법무부가 캄보디아에서 보이스피싱과 로맨스 스캠 등의 범죄로 발생한 현지 범죄수익을 국내로 환수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선 법무부는 “캄보디아 내에서 벌어진 범죄 가운데 현재 국내에서 수사 중이거나 재판 중인 사건이 1차 현지 수사 의뢰 대상”이라며 “이후 국내에서 유죄 선고를 받으면 최종적으로 환수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국제형사사법공조 조약에 따르면 해외에서 발생한 범죄라 하더라도 피해자가 국내에 있고 피해액이 특정될 경우, 우리 정부가 해외에 범죄수익 환수를 요청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2019년 캄보디아와 국제형사사법공조 조약을 체결해 2021년 정식 발효됐다. 주요 간부들 타 사건 연루 정보기관 관계자는 “범죄자 개인이 아닌 조직을 대상으로 한 범죄수익 환수 사례는 거의 없다. 특히 국내에서 수사와 재판이 끝나야 한다”며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서는 건 좋지만 이미 늦었다. 범죄조직 특성상 이미 코인이나 대포 통장으로 제3국에 은닉하거나 세탁을 하고도 남았을 시간”이라고 지적했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도 “수사가 끝나고 유죄 판결이 나기까지 수년이 걸리는데 환수 절차는 이 모든 사법절차가 종료돼야 가능하다. 특히 조세회피처로 범죄수익을 옮겨놨다면 환수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봤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