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A구치소 마약파티설 ‘진상’

모두 잠든 시간 삼삼오오 투약?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치소 수감자들이 ‘마약파티’를 벌였다는 주장이 제기돼 파문이 일고 있다. 한 수감자가 구치소에 반입된 향정신성의약품을 교도관 모르게 숨겨뒀다가 다른 수감자들과 함께 투약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구치소 측에선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의혹을 일축했다. 구치소 마약파티설의 진상을 <일요시사>가 따라가 봤다.
 

최근 톱 아이돌 그룹의 멤버, 유명 밴드 출신 가수가 대마초 흡연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또 여성 보컬 그룹의 한 멤버는 지인이 자신에게 마약을 권유했다는 내용을 SNS에 폭로해 논란을 빚었다. 

연예계 마약 스캔들이 자주 보도되면서 초기에 비해 놀라움의 정도가 줄고 있다. 심지어 몇몇 연예인들은 예능 프로그램서 과거 마약 투약 혐의로 수감됐던 사실을 ‘셀프 언급’하며 웃음을 유발하기도 한다.

마약 스캔들↑
이제 별거 아냐?

일각에선 마약 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사라졌다고 지적한다. 대중에게 친숙한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가 마약 관련 범죄에 연루되는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하자 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무뎌졌다는 분석이다.

범죄를 저지르고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별다른 제재 없이 다시 방송이나 경기에 얼굴을 비추는 일이 잦아지면서 마약 범죄는 ‘눈 감아 줄 수 있는 수준’이 된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안일한 인식과는 달리 마약 범죄는 여전히 횡행 중이다. 특히 인터넷과 SNS가 폭발적으로 발달하면서 마약 구입경로가 이전보다 다양해졌다. 경찰청은 최근 인터넷과 SNS, 국제우편 등을 이용해 마약을 구입한 마약류 사범이 최근 5년 새 급증 추세를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또 환각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해피벌룬이 클럽과 술집을 넘어 일반 사회에까지 무차별로 유통되는 등 사각지대가 생기고 있다. 해피벌룬을 과다 흡입한 20대 남성이 사망하는 사고도 있었지만 대책은 전무한 상태다. 

환경부와 식품의약안전처(이하 식약처)가 시행령 개정을 통해 해피벌룬의 원료인 아산화질소를 환각 물질로 지정하겠다고 밝혔지만 본격적인 단속은 8월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그마저도 실효성 여부에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문제는 이처럼 사회 전반에 걸쳐 암암리에 퍼지고 있는 마약 관련 사건이 버젓이 구치소서 발생했다는 주장이 나온 점이다.

필로폰 투약 혐의로 구치소에 수감 중인 A씨는 담당 교도관들이 향정신성의약품(마약류, 이하 향정약품)으로 지정돼 있는 약품을 교부하는 과정서 투약 확인을 생략하는 등의 허술한 점을 악용해 한 수감자가 약품을 모아뒀다고 주장했다. 

“밤마다 시끄러워 못살겠다”
연루 의혹 수감자 5명 고소

또 모아둔 약품을 다른 수감자들에게 나눠줘 취침 시간 등에 함께 투약하며 마약 파티를 벌였다고 덧붙였다. A씨에 따르면 마약파티는 2월17일부터 3월19일까지 약 한 달 동안 수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A씨는 이 과정서 소음·소란이 지속돼 수면장애, 환청, 이명 등 정신적·육체적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고 했다. 또 사건을 미연에 방지했어야 할 구치소 측에서 담당 교도관을 관리·감독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A씨는 마약파티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수감자 5명과 구치소장 등 6명을 서울서부지검에 고소한 상태다.

향정약품은 인간의 중추신경계에 작용하는 약물이다. 다시 말해 환각·각성·습관성·중독성이 있는 의약품을 뜻한다. 환각을 유발·발동시키는 물질도 모두 여기에 속한다고 보면 된다. 특히 오용하거나 남용할 경우 인체에 현저한 위해가 있다고 인정되는 것을 말한다.

일반인은 향정약품을 사용하지 못하며 약국 역시 반드시 처방전서 따라서만 취급할 수 있다. 제조업자·의료기관·약국 등은 향정약품의 판매·수수에 관한 장부를 작성·비치하고 판매 또는 수수할 때마다 그 내용을 기재해야 한다. 여기에 매수인과 양수인의 서명과 날인도 필요하다. 또 향정약품은 잠금장치가 설치된 장소에 보관하도록 한다.

향정약품은 오·남용 가능성과 그에 따른 위험의 정도에 따라 가목서 마목까지 세분화돼있다. 가목은 오남용 우려가 심해 의료용으로도 쓰이지 않는다. 안전성이 결여돼있어 이를 오남용할 경우 심한 신체적 또는 정신적 의존성을 일으킨다. 성관계시 흥분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일종의 최음제인 ‘고메오’가 여기에 분류된다.

필로폰, 암페타민 등은 나목에 속한다. 오용하거나 남용할 우려가 심하고 의료용으로도 매우 제한적으로 사용된다. 다목은 가목과 나목에 규정된 것보다 오용하거나 남용할 우려가 상대적으로 적고 의료용으로 쓰이는 약물을 말한다. 데이트 강간 약물로 알려진 플루니트라제팜 등이다. 

라목은 다목보다도 오·남용 우려가 적은 약물로, 프로포폴이나 일명 물뽕이라고 불리는 GHB(Gamma Hydroxy Butrate) 등이 해당된다.

투약 확인 소홀
약 모아놨나?

교정시설 내 반입이 가능한 향정약품은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제2조 제3호 다목부터 라목까지로,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규정돼있다. A씨에 따르면 피고소인 가운데 한 명인 B씨가 다른 수감자들에게 교부한 향정약품은 졸피뎀 복제약, 디아제팜, 루나팜, 스틸록스 등이다. 졸피뎀과 디아제팜은 교정시설에 반입 가능한 향정약품 라목에 해당된다.

구치소 측에서는 A씨가 제기한 의혹이 ‘일방적인 주장’이라는 입장이다. 
 

구치소 관계자는 “수용자의 가족으로부터 향정약품 교부 신청이 있을 경우, 외부 의료시설서 발급한 의사의 진단서 및 처방전을 제출하도록 한다”며 “의무관과 약무관 또는 전문가의 의약품 감정을 받은 후 필요한 경우에만 허가해 반입하는 절차를 거치고 있다”고 했다.

이 과정을 거쳐 반입된 향정약품은 분류 후 자물쇠 등의 시건장치가 있는 2중 캐비닛에 넣어 잠금장치가 설치된 의약품 창고에 보관한다고 강조했다. 또 매일 수량과 보관상태 등을 확인하고 있으며 담당자 외 출입을 일체 통제해 엄격히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A씨가 언급한 사건이 일어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향정약품 투약 확인 과정이 허술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해명했다. 구치소는 “향정약품은 필요 최소량만 투약하고 있다. 투약일에 담당 근무자에게 교부해 투약수용자에게 1회분씩 지급하면서 동시에 복용여부도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향정약품의 경우 수용자의 복용여부를 입속까지 확인한다”고 덧붙였다.


자체 조사 결과
“절대 아니다”

또 A씨가 제기한 의혹에 대해 자체적으로 이미 조사를 마쳤다는 입장이다. 당시 담당 근무자는 투약 확인 과정을 확실히 이행했고 마약파티를 했다고 지목된 수감자들은 “처방받은 약을 나눠 먹지 않았다”고 일관되게 진술한 점을 근거로 들었다. 

그러면서 “마약파티에 사용됐다고 A씨가 주장한 약품의 종류는 처방되거나 반입된 사실이 없다”며 “거실 검사 결과 어떠한 향정약품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러나 A씨는 자신이 마약파티에 대해 제보했을 때 구치소 측이 사건을 은폐·축소하기 위해 마약파티 의혹 대상자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증거물 확보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도리어 사건의 피해자나 다름없는 자신을 소란행위로 징벌·경고 처분했다는 입장이다. 실제 A씨는 지난 3월 소란 혐의로 징벌위원회에 회부돼 ‘경고’ 처분을 받았다.

구치소 측 “일방적인 주장”
향정약품 관리에 문제없어

구치소에 따르면 A씨는 3월19일 오후 3시경 비상벨을 계속 누르고 고성으로 근무자에게 항의하며 거실에 있는 다른 수용자들과 다른 수용거실 수용자들의 수용 생활을 방해했다. A씨는 마약파티서 시작된 사건이 자신에 대한 경고 처분으로 끝난 것에 대해 구치소장의 직권 남용과 직무 유기라고 비판했다.
 


A씨는 “수감 전 진료나 처방 기록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다량의 향정약품을 처방해주는 병원들이 마약파티 등 사건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며 “해당 처방전을 받아오는 사람 역시 수감자의 보호자나 가족이 아니라 출소한 마약류 사범 동료가 부적절하게 발급받아 전달되는 게 더 큰 문제”라고 강조했다.

A씨가 지적한 문제점이 그대로 드러난 사건이 실제로 있었다. 2013년 부산·창원·통영·진주 지역 교도소 재소자들에게 진찰도 하지 않고 향정약품을 처방해준 혐의로 부산과 전북의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두 명이 불구속기소됐다. 

검찰 조사 결과 교도소에 수감된 마약사범들은 교도소와 진료 계약을 체결한 정신과 의사 장모씨와 신모씨의 도움으로 환각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향정약품을 상습적으로 복용해 왔다.

장씨는 재소자의 지인이나 가족이 찾아와 정신불안증세 등을 호소하면 1인당 최소 5일서 한 달간 복용할 수 있는 디아제팜, 라제팜, 졸피뎀 등의 향정약품을 처방한 것으로 검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장씨가 약을 처방해준 재소자 18명 가운데 17명은 마약 사범이었다. 신씨 역시 약 1년간 교도소 재소자 25명에게 진찰도 없이 42차례에 걸쳐 향정약품을 처방한 혐의를 받았다. 신씨로부터 처방받은 재소자 가운데 마약사범은 7명이었다.

수감자의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해 약품을 타낸 뒤 우편으로 교도소에 보낸 혐의를 받던 인물은 당시 수배령이 내려진 상태였다. 수배된 그는 수감자의 주민등록번호로 신분을 속이는 등 재소자 인적사항을 도용해 두 의사들로부터 처방전을 받고 처방전과 향정약품을 등기 우편으로 재소자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발표에 따르면 재소자들은 장씨와 신씨가 진찰을 하지 않고 향정약품을 처방해준다는 사실을 알고 지인과 가족 등을 보내 처방전을 받도록 했다. 복역 중인 마약사범들에게 향정약품을 제한 없이 복용하도록 한 의사들이 적발된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당시도 교정당국의 재소자 관리에 구멍이 뚫린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처방전 없이
약주다 적발

최근에는 향정약품을 처방받아 건네주는 등 재소자에게 편의를 제공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교도관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지난해 12월 인천지검 강력부는 인천구치소 교도관 C씨를 체포했다. 그는 마약성분이 함유된 다이어트 약을 수감자에게 수차례 전달해주는 등 편의를 제공하고 금품을 받았다.

인천지법 형사12부는 지난 2일 C씨에게 징역 3년6개월과 벌금 40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공직사회의 청렴성과 공무원이 처리하는 사무의 공정성에 대한 신뢰를 훼손했다”며 “피고인이 법정서 진술을 번복하고 있어 범행을 진정으로 뉘우친다고 보기 어렵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졸피뎀·디아제팜·루나팜·스틸록스는?
잠 안온다고 막 먹었다간…

구치소에 수감된 A씨는 자신이 고소한 피고소인들끼리 마약파티를 벌일 때 졸피뎀, 디아제팜, 루나팜, 스틸록스 등이 사용됐다고 주장했다.

졸피뎀은 불면증 치료용으로 쓰이는 수면 유도제로 잘 알려져 있다. 지난해 SBS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서 졸피뎀 부작용과 관련된 사건이 대대적으로 드러나면서 큰 논란을 빚었다. 졸피뎀은 복용 후 전날 한 행동을 기억 못하는 증상이 나타날 때가 있어 ‘제2의 프로포폴’ 이라 불리기도 한다.

디아제팜은 정신안정제나 골격근 이완제 등으로 쓰이는 약물이다. 약물 효과에 따라 임의로 용량을 증가시키면 안 된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습관성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10일 이상 꾸준히 사용한 경우에는 의사 지시 없이 갑자기 중단하면 좋지 않다.

의식 없이 운전하는 경우도

식품의약품안전처서 최면진정제로 분류한 루나팜은 수면 운전과 같은 복합 행동이 보고된 바 있다. 수면 운전은 수면진정제 복용 후 완전히 깨지 않은 상태서 운전하며 환자는 이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또 루나팜 복용 후 음식 준비, 음식 먹기, 전화하기, 성관계 등의 복합 행동을 한 환자의 사례가 알려지기도 했다. 환자는 기억이 전혀 없는 상태였다.

최면진정제인 스틸록스는 완전히 각성된 상태서 진행해야 하는 다른 행동에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취침 직전에 1회 복용하되 약물 복용 후 기상 전까지 최소 7∼8시간의 간격이 필요하다. 다른 수면제들과 마찬가지로 장기간 사용은 권장되지 않는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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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트럼프발’ 통상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앞서 못 박은 시한은 끝났다. 우리나라는 유예 기간이 끝나기 전날 타결했다. 이제 협상 결과를 두고 계산기를 두드려야 할 때다. 일본과 유럽연합(EU), 그리고 한국. <일요시사>가 세부 내용을 들여다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각국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미국을 상대로 돈을 번, 즉 대미 무역 흑자를 거둔 나라들이 표적이 됐다.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부터 전 세계는 ‘트럼프발’ 통상 전쟁에 휘말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숫자를 외칠 때마다 세계 경제가 요동쳤다. 하루 전 극적 타결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다소 늦게 통상 협상을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지난 6월 조기 대선이 치러질 때까지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탄핵심판 등 대형 정치 이슈가 거듭되면서 미국과 협상을 하고 싶어도 테이블에 앉을 사람이 마땅치 않은 상태였다. 실제 한덕수 전 국무총리나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등이 협상에 나섰지만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제동을 걸었다. 또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 선언, 최 전 부총리 탄핵안 상정 등의 상황이 겹치면서 미국과의 협상은 큰 진전 없이 시간만 흘렀다. 이후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우리나라는 좀처럼 미국 실무진과 접점을 찾지 못했다. 그 사이 트럼프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모든 한국산 제품에 대해 산업별 관세와는 별도로 25%의 일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시한은 지난 1일로 못 박았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FTA 체결로 사실상 무관세 수준이었기에 관세 부과가 현실화하면 경제 전반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자동차나 반도체 등 핵심 수출 품목에 붙는 관세 외에도 비관세 장벽(관세 이외의 수단으로 무역을 제한하는 조치)을 허물라는 압박도 가해졌다. 쌀이나 소고기 등 농·축산물 시장 개방, 정밀 지도 반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이 협상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예상됐다. 국내 상황과 맞물려 쉽게 내주기 어려운 조건들이었다. 일·EU와 같은 15%로 막아 대미 투자는 3500억달러로 협상도 난항을 겪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 통상 협상을 하루 앞두고 출국하려다 미국 측의 취소로 불발하는 일이 일어났다. 앞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이 방한을 닷새 앞두고 일정을 취소하기도 했다. 미국 고위급 인사들과의 만남이 잇따라 무산되면서 ‘한미 관계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일본과 유럽연합(EU)이 차례로 미국과 협상을 타결하면서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특히 일본의 협상 결과가 공개되면서 우리나라가 최소한으로 맞춰야 할 기준이 생겨버렸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자동차 등 수출 품목이 일부 겹치기에 일본보다 관세가 높아지면 수출 경쟁력이 망가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일본과 무역 협상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일본산 수입품에 부과하는 상호관세는 15%다. 기존 25%에서 10%포인트 줄어들었다. 일본이 미국에 5500억달러(약 759조원)를 투자할 것이고 이 중 90%의 수익을 미국이 받게 된다고도 했다. 동시에 자동차와 농산물을 일부 개방한다는 조건도 달렸다. 지난달 27일에는 미국과 EU가 관세 협상을 타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EU로부터 수입되는 모든 품목에 대해 일괄적으로 1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산 에너지 7500억달러(약 1030조원) 구매 및 대미 투자 6000억달러(약 820조원) 확대 방안을 담은 ‘무역협정 틀’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일본과 EU의 협상 타결로 미국의 협상 전략이 윤곽을 드러냈다. 관세를 낮추는 조건으로 무엇을, 얼마나 내놓느냐가 관건이 된 것이다. 관심이 집중된 부분은 대미 투자액이었다. 애당초 통상 전쟁 자체가 타국이 얻는 대미 무역 흑자를 줄이겠다는 명목으로 시작된 터라 트럼프 대통령은 상대국에 대미 투자라는 일종의 ‘청구서’를 요구한 셈이다. 일본이 5500억달러, EU가 6000억달러를 미국에 각각 투자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리나라에 날아올 청구액에 관심이 쏠렸다. 협상 시한이 다가오면서 언론보도 등을 통해 3000억달러, 4000억달러 등의 추측이 난무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제멋대로’ 외교에 우리나라 협상팀이 휘둘리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 쌀 소고기 지켰다는데 우리나라는 협상 시한을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 한국산 제품에 대한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을 골자로 협상을 타결했다. 일단 일본, EU와 동일한 수준으로 관세 인하를 이끌어낸 것이다. 관심을 모았던 자동차 관세율은 15%, 철강·알루미늄·구리는 기존 관세율(50%)을 유지하기로 했다. 또 반도체와 의약품 관세 부과 시 최혜국 대우도 약속받았다. 다른 나라보다 불리한 관세를 적용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부분도 일본, EU와 같은 합의 내용이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민감한 품목으로 분류됐던 쌀과 쇠고기 등의 개방은 하지 않는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농산물 전면 개방을 언급해 향후 변동 가능성을 지켜봐야 한다. 대미 투자액은 3500억달러(약 490조원)로 결정됐고 1000억달러(약 140조원) 상당의 액화천연가스(LNG) 또는 기타 에너지 제품을 수입하기로 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한국과 일본의 대미 무역 상황은 지난해 기준 각각 660억달러 흑자, 685억달러 흑자로 규모가 유사한 상황에서 일본보다 작은 규모인 3500억 달러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며 “기업이 주도하는 조선펀드 1500억달러를 제외하면 우리 펀드 규모는 2000억달러로 일본의 36%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합의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미국과 조선업 분야 협력을 확대하기로 한 것”이라며 “한미 조선협력펀드 1500억달러는 선박 건조, MRO(유지·보수·정비), 조선 기자재 등 조선업 생태계 전반을 포괄한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협상팀은 조선 협력을 내세운 게 협상 타결의 ‘키’였다고 자평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브리핑을 하며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가 협상 타결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밝혔다.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구호인 ‘매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에서 따온 표현이다. 자동차는 관철 못 해 아쉬운 부분으로는 자동차 관세를 꼽았다. 이전까지 우리나라 자동차는 관세가 0%였다. 2.5%였던 일본과 비교해 근소하게 가격 경쟁력을 가졌다. 하지만 이번 협상 타결로 일본과 똑같은 15% 관세가 결정되면서 자동차 업계는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됐다. 우리나라 협상팀이 끝까지 자동차 관세 12.5%를 요구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 15%’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큰 고비를 하나 넘었다”며 “이번 협상으로 정부는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을 없애고 미국 관세를 주요 대미 수출 경쟁국보다 낮거나 같은 수준으로 맞춤으로써 주요국들과 동등하거나 우월한 조건으로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고 평했다. 협상 결과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 일단 ‘최악은 면했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협상 타결이 이뤄지기 전까지 유예 기간을 놓쳐 관세 25%를 맞을 수도 있다고 우려한 것에 비하면 나름 ‘선방했다’는 의견이다. 동시에 미국이 내민 청구서의 구체적인 부분을 더 살펴야 한다는 신중론도 존재한다. 일본 등은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타결 발표와 실제 합의 내용이 다르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결정된 사항을 즉흥적으로 바꾸는 등 외교 과정에서 ‘오락가락’하는 면모를 보인 적이 여러 차례 있다.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불확실성을 극대화하는 협상 기술을 사용한다는 평이다. 정밀 지도·국방비 등 안보 이슈 백악관서 만나 대통령끼리 담판?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나라와의 협상 타결 내용을 발표하면서 언급한 정상회담이 ‘진짜’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는 “한국이 투자 목적으로 상당한 금액을 추가 투자하기로 합의했다”면서 2주 내로 이재명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투자액이 발표될 것이라고 했다. 추가 청구서가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 통상 협상에서 논의되지 않은 정밀 지도 반출 문제가 협상 테이블에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지도 반출 등 안보 사안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별도로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지도 반출과 관련해) 우리가 계속 방어해왔다. 추가 양보는 없다”고 말했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3월 <2025 국가별 무역 장벽 보고서>에서 정밀 지도 반출 제한을 한국과의 디지털 무역 장벽 중 하나로 지목했다. 우리나라 정부는 군사기밀 유출을 우려해 정밀 지도의 국외 반출을 막아왔다. 정밀 지도에 해외 기업이 가진 위성사진을 결합하면 국가 안보와 직결된 지도 정보로 완성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정계와 IT업계는 정밀 지도를 반출해야 한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협상에서는 다뤄지지 않았지만 정상회담의 의제로 오를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주한미군 주둔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문제도 거론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들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5% 이상을 국방비 예산으로 잡으라고 압박했다. 우리나라에도 대선 후보 시절부터 방위비 분담금으로 100억달러를 내야 한다고 여러 차례 말하는 등 전방위로 요구한 바 있다. 추가 청구 나올까? 한미 정상회담은 이 대통령의 ‘외교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 G7 정상회의에 참석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다. 나토 회의에는 이 대통령 대신 위성락 안보실장이 참석했다. 이번 정상회담이 ‘안보’ 회담이 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딜을 벌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