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술한’ 어린이집 병력기록 보니…

애 보내려다 애 잡겠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아이에 대한 부모의 욕심은 끝이 없다. 훌륭한 교육에 대한 열망은 물론 건강 문제도 세심하게 관심을 기울인다. 그러나 때론 그 욕심이 과해 아이를 위험에 빠뜨리는 경우가 있다. 최근 ‘안아키’(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 논란이 그랬고, 앞서 교육열이 과한 부모로 인해 아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사회 문제로 비화된 적도 있었다. 사각지대에 놓인 어린이집 병력기록 기재 논란도 그 사례다.
 

지난 6월 부산의 한 어린이집서 수업을 받던 4살 아이가 쓰러졌다. 아무 징조도 없이 바닥으로 고꾸라진 아이로 인해 담당교사와 원장 등 관계자들은 혼비백산했다. 아이는 호흡이 가빴고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 

담당교사는 119에 신고한 후 심폐소생술을 진행했다. 담당교사의 응급처치로 아이의 의식이 돌아왔고 곧바로 119를 통해 병원으로 이송됐다.

엄마들 ‘쉬쉬’

아이의 부모와 가족들이 소식을 듣고 어린이집으로 달려왔다. 담당교사는 병원으로 움직이면서 아이의 상태에 대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아이의 상태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어린이집 관계자와 가족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문제는 그 후였다. 아이가 쓰러진 것에 대한 책임 소재가 갈렸다. 아이의 엄마는 담당교사를 향해 ‘아이가 뭘 먹었는지, 밥을 먹고 뭘 했는지’에 대해 물었다. 담당교사는 어린이집 아이들이 모두 함께 먹은 점심 메뉴와 일정에 대해 답했다. 


아이의 엄마는 어린이집서 내놓은 식사와 일정 등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담당교사는 별다를 것 없던 일정을 재차 설명하며 평소와 다름없었다고 해명했다. 문제의 실마리는 엉뚱한 곳에서 풀렸다. 아이의 병력기록이었다. 쓰러진 아이는 간질(뇌전증)을 앓고 있었다. 문제는 아이의 엄마가 어린이집에 해당 사실을 숨겼다는 점이다.

선입견 생기고 허가 안 날까
의도적으로 기재 누락하기도

아이를 돌봤던 어린이집의 담당교사는 “아이가 간질을 앓고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며 “엄마가 왜 아이의 병력을 감췄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아이의 병력이 드러나자 엄마는 그제야 어린이집에 책임을 묻던 태도를 슬그머니 바꿨다. 그러면서 아이가 계속 어린이집에 다닐 수 있게 해달라고 담당 교사와 원장에게 부탁했다.

어린이집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보건복지부서 만든 생활기록부 양식과 어린이집서 자체적으로 제작한 입학원서를 제출해야 한다. 어린이집 자체 입학원서도 양식이 조금씩 다를 뿐 채워 넣어야 할 정보는 대부분 비슷하다. 

사고가 있었던 해당 어린이집의 입학원서를 보면 입소신청서, 개인정보·CCTV 촬영·응급처치·특별활동 프로그램 신청 등에 대한 동의서를 포함, 급식·간식에 대한 알레르기, 예방접종·병력기록·신체발달 상황 등 세세한 정보를 요구한다.


경력 10년차의 한 보육교사는 “정말 누구에게 어떤 사고가 언제 일어날 지는 아무도 모른다”며 “잘못 먹은 음식 하나, 놀이 하나로도 아이에게 큰 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어 “어린이집서 지나칠 정도로 세밀하게 아이에 대한 정보를 요구하는 것은 갑작스런 사고가 일어났을 때 대처하기 위해서”라며 “아이의 상태를 알고 있어야 응급 상황이 발생해도 빠른 처치가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어린이집 병력 기재 문제는 일종의 사각지대나 다름없다.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 관계자는 “국민건강보험공단서 어린이집에 다니는 영·유아의 검진 정보를 관련 기관에 전산으로 제공 중이기 때문에 아이의 병원 기록을 일부 볼 수 있다”면서도 “이전 기록에 대해서는 알 방법이 없고 지병이 있어도 병원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면 역시 어린이집에서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감추려고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숨길 수 있다는 뜻이다.

정확한 기록 꺼려진다면
선생님한테라도 말해야

실제 엄마들이 많이 모인 포털사이트 카페 등에서는 어린이집 병력 기재 문제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 엄마는 자신의 아이가 어릴 때 병원에서 특정 병명을 진단받아 치료했던 사실을 공개하며 이를 어린이집 입학원서에 써야할지 모르겠다고 질문했다. 

글쓴이의 고민에 다른 엄마들은 “입학원서에는 쓰지 말고 선생님에게만 알려라” “그래도 쓰는 게 좋다” “입학원서에도 쓰지 말고 선생님에게 말도 하지 마라” 등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엄마들은 자신의 아이가 갖고 있는 병력이 어린이집 교사들이나 주변 아이들에게 선입견을 심어줄 것을 두려워했다. 아이가 앓았던 병에 대해 너무 자세히 말하면 어린이집서 입학 허가가 나지 않거나 이후 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 소재를 떠안기는 게 아닐까 걱정하기도 했다.
 

과거 병을 앓았거나 지병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보는 사회의 시선이 날카롭기 때문에 생긴 고민이자 걱정이었다.

인천서 한 어린이집을 관리하는 부원장 박모씨는 “아이가 못 먹는 음식이나 알레르기 증상에 대해서는 엄마들이 정말 꼼꼼하게 적어주신다”며 “하지만 병력 기재란은 비워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박씨는 “아이가 앓고 있는 질환이나 지병이 없어서 적지 않았다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있는데도 감춘 상태서 사고가 발생하면 어린이집은 미칠 노릇”이라며 “여러 어린이집서 근무해봤지만 꼭 한 두 번은 그런 사례가 있었다”고 털어놨다.


갑작스런 사고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 관계자는 이 같은 상황에 대해 먼저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엄마들이 아이의 병력을 감추는 이유가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는 설명이었다. 

관계자는 “간질 같은 병력은 남에게 알리기 예민하지 않느냐”라고 반문하면서 “아이를 편견 없이 봐주길 바라는 엄마들의 생각이 과하게 나타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입학원서에 기재하는 게 꺼려진다면 상담 시간에 원장님한테라도 꼭 얘기를 하는 게 좋다”며 “잘못하면 아이의 생명에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끝나지 않은 ‘안아키’ 논란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 이른바 ‘안아키’ 논란이 현재 진행형이다. 안아키는 2013년 대구에서 한의원을 운영하는 한의사이자 4형제의 엄마인 A씨가 개설했다. 아이가 아플 때 약 처방을 자제하고 자연스럽게 회복하도록 면역력을 키우자는 취지였다.


‘아이 열이 39도인데 방치하는 아내랑 이혼하고 싶다’는 내용의 글이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퍼지면서 시작된 안아키 논란에 누리꾼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안아키 회원인 아내가 아픈 아이를 방치한다는 내용이었다.

해당 글 이후 관련 제보가 속출하면서 누리꾼들은 안아키서 아동학대를 하고 있다고 비판하기 시작했다. 관련 단체 역시 선 긋기에 나섰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자연치료를 할 수 있다면 약을 먹지 않는 게 좋지 않느냐는 의견도 여전히 나오고 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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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사면’ 군불 때는 사람들

‘조국 사면’ 군불 때는 사람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풀어주느냐, 마느냐, 이재명 대통령이 깊은 고심에 빠졌다. 8·15 특별사면·복권 명단에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의 이름이 올라오면서다. 한때 아군이었던 조 전 대표의 정치 생명이 용산의 선택에 달렸다. 조국혁신당은 물론 문재인 전 대통령과 친문계까지 사면론에 힘을 싣고 있다. 지난 7일 이재명정부의 첫 특별사면을 준비하기 위한 법무부 사면심사위원회가 열렸다. 이날 특별사면 명단에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치권의 관심이 급상승했다. 사면심사위원회가 사면·복권 건의 대상자를 검토하면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이를 이재명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오는 12일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을 거쳐 최종 확정된다. 설에 부채질 조 전 대표는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혐의로 지난해 12월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 실형을 확정받았다. 조 전 대표의 만기 출소 예정일은 내년 12월15일이다. 이번 광복절 특별사면이 이뤄질 경우 출소 시기는 앞당겨질 수 있다. 혁신당은 조 전 대표의 기소 자체가 검찰의 무리한 시도였다고 보는 만큼 이번 정권에서 검찰개혁을 이뤄내고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보고 있다. 혁신당 신장식 의원은 지난 대선 정국서 “조 전 대표가 보고 싶지 않느냐”며 “(이재명 후보가) 그냥 이기는 게 아니라 크게 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이재명 후보의 당선이 곧 조 전 대표의 사면이라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전달한 것이다. 조 전 대표의 부인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 또한 비슷한 시기에 ‘더1찍 다시 만날 조국’이라는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이 후보의 당선과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동일시했다. 이렇듯 혁신당은 지난 총선과 대선 등에서 일궈낸 업적을 청구서 삼아 은근한 눈치를 보냈고, 최근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롯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내 친문(친문재인)까지 목소리를 키우면서 이 대통령을 전방위로 둘러쌌다. 지난달 30일 친문계인 민주당 고민정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조 전 대표와의 접견 사실을 알리며 “특유의 미소가 여전하고 세상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이 많을 법도 한데 오히려 긍정 에너지가 가득하다. 그래서인지 자꾸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고 마음의 빚을 지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적었다. 이어 “조국의 사면을 많은 이들이 바라는 이유는 검찰개혁을 요구했던 우리가 틀리지 않았음을 그의 사면을 통해 확인받고 싶은 마음 아닐까”라며 “야수의 시간과 같았던 지난 겨울 우리가 함께 외쳤던 검찰개혁이 틀리지 않았음을, 서로 생각은 달라도 통합과 연대라는 깃발 아래 모두가 함께 있었음을 확인받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국민통합 일환? 이 결정만 남아 친문계에 문까지 팔 걷어붙여 친명(친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민주당 김영진 의원 역시 한 라디오를 통해 “국민통합을 위한 측면에서 넓게 사면 복권에 관한 판단을 할 때가 되지 않았나란 생각이 든다”면서도 “이 문제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 대통령께서 판단할 문제라 보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문 전 대통령이 용산 측에 조 전 대표의 사면 의견을 직접 전달한 것으로도 전해진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 5일 경남 양산 평산마을을 찾은 우상호 정무수석을 만난 자리에서 이 같은 의견을 전달했고, 우 수석은 “뜻을 전달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김원기·임채정·정세균·문희상·박병석·김진표 등 민주당 출신인 전 국회의장도 가세했다. 이들은 입장문을 통해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책임을 수용한 이들에 대한 절제된 관용”이라며 “대통령께서 국민 통합의 뜻을 담아 조 전 대표에 대한 특별사면을 단행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한 개인의 구제가 아니라 극한 대립과 갈등의 시기를 겪어내며 상처 입은 우리 사회 공동체에 건네는 ‘공정한 매듭과 위로’의 손길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방에서 사면 요청이 쇄도하자 대통령실은 막판 고심에 빠졌다. 앞서 지난 5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사면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며 “사회적 약자와 민생 관련 사면에 대해 일차적으로 검증 및 검토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정치인 사면에 관해 다양한 의견들을 수렴 중”이라며“아직 최종적인 검토 내지는 결정에는 이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혁신당 내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조 전 대표가 수감 된 지 8개월이 지났는데 혁신당은 아직도 권한대행 체제다. 전당대회를 통해 새 대표를 뽑을 만도 한데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가 뭐겠느냐”며 “이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조 전 대표가 사면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조 전 대표가 돌아와서 혁신당이 이전 같은 명성을 되찾길 기다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혁신당 당헌·당규에 따르면 ‘당대표가 궐위된 때에는 최고위원 가운데 가장 많은 득표로 선출된 최고위원이 남은 임기 동안 당대표의 권한을 대행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김선민 권한대행이 내년 7월까지 조 전 대표의 임기를 대신해 자리를 지킬 의무가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당초 조 전 대표가 자신의 수감 생활을 예측하고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이러한 당헌·당규를 개정한 게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8개월째 대행 체제 혁신당 “확신” 믿을 구석 있었나 내년 지방 선거를 위해서라도 혁신당은 조 전 대표의 사면이 필요하다. 구심점이 없고 ‘조국’혁신당이라는 이름만 존재하는 지금으로서는 지난 보궐선거만큼의 역량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다. 민주당은 딜레마에 빠졌다. 국정 초기부터 자녀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으로 법의 심판을 받고 복역 중인 인사를 사면했다가는 ‘범죄자 프레임’에 함께 걸려들 수 있다. ‘조국 사태’에 거부감을 느낀 지지자들의 이탈도 고려해야 하는 지점이다. 반면 사면 요청을 거절할 경우 오히려 조 전 장관의 정치력을 키우는 등 일종의 서사를 부여할 수 있다. 조 전 대표는 본인의 사면에 대해 큰 뜻을 밝히지 않아 오히려 지지층 결집에 도움이 될 것이란 해석이다. 민주당에 있어 조 전 대표는 내년 지방선거의 ‘변수’다. 지난 총선서 호남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킨 혁신당이기에 조 전 대표가 정치권에 돌아온다면 진보진영 텃밭을 둘러싼 두 정당 간의 경쟁과 그로 인한 잡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단정하기는 이르지만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그의 행보를 예측하고 나섰다. ‘자유의 몸’이 될 경우 이른 시일 안에 전당대회를 치러 다시 한번 당대표직을 거머쥐고 내년 지방 선거를 진두지휘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일각에서는 조 전 대표가 부산 시장 등으로 직접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도 보고 있다. 어디로 튈까 민주당은 최종 사면 명단이 공개되기 전까지 별다르 입장을 내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 7일 문 전 대통령을 예방했지만, 이날 조 전 대표의 사면 논의는 나오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이제 공은 이 대통령에게 넘어왔다. 단 한 사람의 정치 인생이 걸린 문제지만 그의 복권은 정치 진영을 흔들기에 충분하다. 여러 가지 변수와 상수가 존재하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최종 선택에 이목이 쏠린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