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제보로 ‘망한’ 사람들

소송, 막노동…고통의 나날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처음부터 공익을 목적으로 내부 제보를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의 공익 제보자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알게 된 ‘검은 사실’서 눈을 돌리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 길에 들어서면 열에 아홉은 끝이 좋지 못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결국 발을 디딘 사람들. 
 

#1. LG전자 정국정 = LG전자 직원이던 정국정씨는 자재를 고가로 매입하고 그 과정서 리베이트가 오가는 비리를 1996년 11월 사내 감사팀에 제보했다. 그의 제보 후 구매 담당자 등이 징계를 받았고 약 8500만원이 회수됐다. 그러나 제보자의 신원이 드러나며 고초가 시작됐다. 

그는 2년 간 연거푸 승진에 누락된 후 구조조정 대상이 되어 퇴직을 강요받았다. 정씨가 퇴직원 제출을 거부하자 사측은 그를 대기발령 낸 후, 전자메일 ID 몰수, 사물함 회수 등으로 괴롭혔고 다른 직원들에게 그를 따돌릴 것을 지시하는 이메일을 발송했다.

정씨가 집단 따돌림 등의 스트레스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게 되자 사측은 상사의 업무지시 불이행, 복무규정 위반 등을 이유로 2000년 징계 해고했다. 정씨는 이후 12년간에 걸쳐 복직 투쟁을 전개했다. 

징계 해고에 대해 서울지노위는 부당해고라 결정했지만 중앙노동위는 재심서 결정을 취소했고 중앙노동위를 상대로 한 행정소송은 대법원까지 기각됐다.

정씨는 2005년 2월 LG전자를 상대로 ‘해고무효 확인’ 민사소송을 제기해 1심에 패소했으나 2년 8개월간의 심리 끝에 2심서 승소했다. LG전자는 대법원에 상고하며 대형로펌 소속 대법관 출신인 K 변호사를 선임했고 상고심에서 파기 환송돼 2012년 6월28일 대법원서 상고기각 되면서 정씨는 최종 패소했다. 


정씨와 참여연대는 정씨의 행정소송 사건 재판장이었던 K 변호사를 변호사법 위반으로 고소․고발했고 K 변호사는 벌금 300만원의 유죄가 확정됐다.

#2. 공군 대령 조주형 = F-X사업(차세대전투기 사업)의 시험평가를 책임지고 있는 공군시험평가단 부단장이던 조주형 대령은 “국방부 핵심인사가 미국 정부가 지원하는 특정기종(F-15K)의 선택을 기정사실화하고, 이를 위해 시험평가 과정과 그 결과의 보고에 대해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고 2002년 3월에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제보했다. 

조 대령의 제보는 F-X사업 기종 선정과정의 공정성에 대한 여러 의혹이 제기되는 계기가 됐고, 미국이 자국 내에서도 사실상 단종된 F-15K의 선정을 위해 부당한 압력을 넣은 사실과 국방부가 평가 기준을 조작하려 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참여연대 등은 ‘F-X공동시민행동’을 꾸려 국방부의 외압에 대한 진상규명과 조 대령 석방을 요구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시민행동은 김동신 당시 국방부장관을 직무유기로 고발하고 감사원 국민감사청구를 벌였다. 

한편 국방부는 조 대령을 2002년 4월 F-X 기종선정 발표 직전에 군사기밀 누설 등의 혐의로 기소했으며, 그는 1심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고, 대법원서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형이 확정되는 고초를 겪었다. 

그는 외압으로 특정업체에게 유리하게 추진되는 국방부의 차세대전투기 사업을 폭로하고 자주국방의 필요성을 제기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3. 국가정보원 황규한 = 이스라엘 주재 한국대사관에 근무하던 국가정보원 직원 황규한씨는 전임자가 외교부 예산에서 조성된 주택임차료를 횡령한 사실을 2007년 4월에 국정원 본부에 제보하고 같은 해 8월 국가청렴위원회에도 신고했다. 


황씨는 국정원 내부 선후배들로부터 배신자로 낙인찍혀 개인 신상에 관한 온갖 괴소문이 퍼져 나가는 고초를 겪었다. 심지어 하지도 않은 이혼 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또 국정원에 감시를 받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어 지옥 같은 나날을 보냈다.

두려움으로 외출조차도 어려웠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은 더 했다. 당장 중고생 딸아이 둘을 교육시키는 일이 막막했다. 황씨가 일단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일당 8만원의 일용직 건설노동자로 1년 가까이 버틸 무렵 해임취소 소송서 이겼다. 

복직에 희망을 걸었으나 원세훈 당시 국정원장은 황씨가 의원면직했다고 주장하며 복직시키지 않았다. 황씨는 다시 소송을 제기했고 소송비 등으로 생활이 더 어려워져 보험설계사, 자가용 기사, 마을버스 기사 등 닥치는 대로 일했다.

그 과정서 무효 확인 소송은 끝났다. 원세훈 당시 국정원장 낸 인사명령은 처분이 아니라는 취지에 대법원 판결이었다. 즉 법적으로 해임은 취소된 상태이고 의원면직도 아니기에 현직인 셈이다. 그러나 국정원은 현재까지 적법한 처분을 내리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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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사면’ 군불 때는 사람들

‘조국 사면’ 군불 때는 사람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풀어주느냐, 마느냐, 이재명 대통령이 깊은 고심에 빠졌다. 8·15 특별사면·복권 명단에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의 이름이 올라오면서다. 한때 아군이었던 조 전 대표의 정치 생명이 용산의 선택에 달렸다. 조국혁신당은 물론 문재인 전 대통령과 친문계까지 사면론에 힘을 싣고 있다. 지난 7일 이재명정부의 첫 특별사면을 준비하기 위한 법무부 사면심사위원회가 열렸다. 이날 특별사면 명단에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치권의 관심이 급상승했다. 사면심사위원회가 사면·복권 건의 대상자를 검토하면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이를 이재명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오는 12일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을 거쳐 최종 확정된다. 설에 부채질 조 전 대표는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혐의로 지난해 12월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 실형을 확정받았다. 조 전 대표의 만기 출소 예정일은 내년 12월15일이다. 이번 광복절 특별사면이 이뤄질 경우 출소 시기는 앞당겨질 수 있다. 혁신당은 조 전 대표의 기소 자체가 검찰의 무리한 시도였다고 보는 만큼 이번 정권에서 검찰개혁을 이뤄내고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보고 있다. 혁신당 신장식 의원은 지난 대선 정국서 “조 전 대표가 보고 싶지 않느냐”며 “(이재명 후보가) 그냥 이기는 게 아니라 크게 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이재명 후보의 당선이 곧 조 전 대표의 사면이라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전달한 것이다. 조 전 대표의 부인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 또한 비슷한 시기에 ‘더1찍 다시 만날 조국’이라는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이 후보의 당선과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동일시했다. 이렇듯 혁신당은 지난 총선과 대선 등에서 일궈낸 업적을 청구서 삼아 은근한 눈치를 보냈고, 최근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롯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내 친문(친문재인)까지 목소리를 키우면서 이 대통령을 전방위로 둘러쌌다. 지난달 30일 친문계인 민주당 고민정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조 전 대표와의 접견 사실을 알리며 “특유의 미소가 여전하고 세상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이 많을 법도 한데 오히려 긍정 에너지가 가득하다. 그래서인지 자꾸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고 마음의 빚을 지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적었다. 이어 “조국의 사면을 많은 이들이 바라는 이유는 검찰개혁을 요구했던 우리가 틀리지 않았음을 그의 사면을 통해 확인받고 싶은 마음 아닐까”라며 “야수의 시간과 같았던 지난 겨울 우리가 함께 외쳤던 검찰개혁이 틀리지 않았음을, 서로 생각은 달라도 통합과 연대라는 깃발 아래 모두가 함께 있었음을 확인받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국민통합 일환? 이 결정만 남아 친문계에 문까지 팔 걷어붙여 친명(친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민주당 김영진 의원 역시 한 라디오를 통해 “국민통합을 위한 측면에서 넓게 사면 복권에 관한 판단을 할 때가 되지 않았나란 생각이 든다”면서도 “이 문제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 대통령께서 판단할 문제라 보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문 전 대통령이 용산 측에 조 전 대표의 사면 의견을 직접 전달한 것으로도 전해진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 5일 경남 양산 평산마을을 찾은 우상호 정무수석을 만난 자리에서 이 같은 의견을 전달했고, 우 수석은 “뜻을 전달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김원기·임채정·정세균·문희상·박병석·김진표 등 민주당 출신인 전 국회의장도 가세했다. 이들은 입장문을 통해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책임을 수용한 이들에 대한 절제된 관용”이라며 “대통령께서 국민 통합의 뜻을 담아 조 전 대표에 대한 특별사면을 단행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한 개인의 구제가 아니라 극한 대립과 갈등의 시기를 겪어내며 상처 입은 우리 사회 공동체에 건네는 ‘공정한 매듭과 위로’의 손길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방에서 사면 요청이 쇄도하자 대통령실은 막판 고심에 빠졌다. 앞서 지난 5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사면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며 “사회적 약자와 민생 관련 사면에 대해 일차적으로 검증 및 검토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정치인 사면에 관해 다양한 의견들을 수렴 중”이라며“아직 최종적인 검토 내지는 결정에는 이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혁신당 내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조 전 대표가 수감 된 지 8개월이 지났는데 혁신당은 아직도 권한대행 체제다. 전당대회를 통해 새 대표를 뽑을 만도 한데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가 뭐겠느냐”며 “이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조 전 대표가 사면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조 전 대표가 돌아와서 혁신당이 이전 같은 명성을 되찾길 기다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혁신당 당헌·당규에 따르면 ‘당대표가 궐위된 때에는 최고위원 가운데 가장 많은 득표로 선출된 최고위원이 남은 임기 동안 당대표의 권한을 대행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김선민 권한대행이 내년 7월까지 조 전 대표의 임기를 대신해 자리를 지킬 의무가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당초 조 전 대표가 자신의 수감 생활을 예측하고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이러한 당헌·당규를 개정한 게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8개월째 대행 체제 혁신당 “확신” 믿을 구석 있었나 내년 지방 선거를 위해서라도 혁신당은 조 전 대표의 사면이 필요하다. 구심점이 없고 ‘조국’혁신당이라는 이름만 존재하는 지금으로서는 지난 보궐선거만큼의 역량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다. 민주당은 딜레마에 빠졌다. 국정 초기부터 자녀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으로 법의 심판을 받고 복역 중인 인사를 사면했다가는 ‘범죄자 프레임’에 함께 걸려들 수 있다. ‘조국 사태’에 거부감을 느낀 지지자들의 이탈도 고려해야 하는 지점이다. 반면 사면 요청을 거절할 경우 오히려 조 전 장관의 정치력을 키우는 등 일종의 서사를 부여할 수 있다. 조 전 대표는 본인의 사면에 대해 큰 뜻을 밝히지 않아 오히려 지지층 결집에 도움이 될 것이란 해석이다. 민주당에 있어 조 전 대표는 내년 지방선거의 ‘변수’다. 지난 총선서 호남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킨 혁신당이기에 조 전 대표가 정치권에 돌아온다면 진보진영 텃밭을 둘러싼 두 정당 간의 경쟁과 그로 인한 잡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단정하기는 이르지만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그의 행보를 예측하고 나섰다. ‘자유의 몸’이 될 경우 이른 시일 안에 전당대회를 치러 다시 한번 당대표직을 거머쥐고 내년 지방 선거를 진두지휘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일각에서는 조 전 대표가 부산 시장 등으로 직접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도 보고 있다. 어디로 튈까 민주당은 최종 사면 명단이 공개되기 전까지 별다르 입장을 내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 7일 문 전 대통령을 예방했지만, 이날 조 전 대표의 사면 논의는 나오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이제 공은 이 대통령에게 넘어왔다. 단 한 사람의 정치 인생이 걸린 문제지만 그의 복권은 정치 진영을 흔들기에 충분하다. 여러 가지 변수와 상수가 존재하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최종 선택에 이목이 쏠린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