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고-억울한 사람들> (52)홀로 싸우는 김영일 할아버지

모두가 외면한 장애인의 말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일요시사>가 연속기획으로 ‘신문고’ 지면을 신설합니다. 매주 억울한 사람들을 찾아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담을 예정입니다. 어떤 이야기이든, 어느 누구든 좋습니다. <일요시사>는 작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쉰두 번째는 자신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18년간 홀로 싸움 중인 대전 서구의 김영일 할아버지 이야기입니다.
 

택시서 내린 김영일 할아버지는 목발을 짚고 있었다. 김 할아버지가 이동할 때마다 도움을 주고 있다는 택시기사는 자동차 트렁크서 묵직한 여행 가방을 꺼냈다. 가방 안에는 보기 좋고, 찾기 쉽게 끈으로 묶은 자료가 한가득이었다. 여행 가방 두 개 분량의 자료는 김 할아버지의 인생이자 투쟁의 역사서였다.

자료가 한가득

올해로 일흔네 살인 김 할아버지는 1944년 함경북도 청진서 태어나 8·15광복 때 남한으로 내려왔다. 김 할아버지는 6·25전쟁 당시 아버지가 좌익으로 몰려 총살당하면서 학교도 다니지 못한 채 충남 예산의 외가댁으로 떠나야 했다. 불행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중학생 시절 갑작스럽게 찾아온 뇌전증(간질)은 평생 그를 따라다니는 족쇄가 됐다. 김 할아버지가 보여준 혓바닥에는 발작 증상으로 정신을 잃을 때마다 혀를 깨물어 생긴 상처가 가득했다. 

“멀쩡하다가 정신이 뚝 떨어지고, 뚝 떨어지고 하는데 어디에 발붙일 수 있겠나.” 발작이 끊임없이 이어지자 다니고 있던 신학교서도 쫓겨났다.


어딜 가나 환영받지 못하던 김 할아버지는 서울에서 돌로 외벽을 만드는 일을 하게 됐다. 군대에 다녀온 이후 석수공으로 자리를 좀 잡나 싶더니 이번에도 운명은 김 할아버지의 편이 아니었다. 신내림, 일종의 무병이 그를 덮친 것이다.

머릿속에서 소리가 들리고 본인도 모르는 새 정신을 잃는 등 무병 증세를 보이는 사이 아내는 결혼 100일 만에 김 할아버지의 곁을 떠났다. 

“어머니가 대구서 과일 가게를 크게 하셨는데 그때 번 돈이 전부 나한테 쓰였다”며 “집에 혼자 있는 동안 발작이 찾아와 혀를 깨무는 바람에 방바닥이 피로 흥건했던 적도 있다”고 회상했다.

결국 신내림을 받은 그는 충남 예산과 홍성의 경계선인 닭재산으로 들어갔다. 김 할아버지는 정신병을 앓고 있던 산 주인의 딸을 치료해주면서 두 번째 인연을 맺었다. 그 사이에 아들과 딸도 한 명씩 얻었다. 

“그 때 산을 살 정도로 돈을 많이 벌었다. 방이 20칸인 기도원을 운영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가족이 생기고 돈을 벌었어도 그의 마음에는 안정이 깃들지 못했다. 

자신의 상황에 회의감을 가진 할아버지는 법당을 부수고 싸움을 하는 등 오랜 시간 방황했다. 이마 한가운데 선명하게 남은 흉터는 그 기간 동안 자해를 하면서 생긴 상처였다. “모든 걸 믿을 수 없었고 두려웠다”고 고백했다.

어릴 때 간질 판정 받아
정착 못 하고 늘 쫓겨나


또 다른 고초의 시발점이 된 대전행은 순전히 자녀들의 교육 문제 때문이었다. 1999년 1월 대전 서구에 위치한 한 상가에 철학관을 차린 김 할아버지는 처음부터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배척과 멸시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 발작 과정서 크게 넘어지면서 허리를 다치는 바람에 장애 3급 판정을 받았다.

상가는 가게마다 개별적으로 전기와 수도요금이 부과되는 체계가 아니라 공동요금을 사용량에 따라 나눠 걷는 방식을 사용했다. 문제는 김 할아버지에게 부과되는 요금만 터무니없이 높았다는 점이다. 
 

2003년 7월 수도요금 장부를 보면 10평 내외인 철학관의 수도요금이 7만원인 데 반해 150평에 달하는 찜질방에선 5만원이 나왔다. 철학관과 비슷한 크기의 정육점에서는 1000원 남짓한 요금만 나왔을 뿐이다.

“장부가 하도 이상해 찾아가 항의했더니 다른 장부를 보여주면서 내가 돈을 내지 않았다고 추궁했다”며 “나는 지금까지 영수증 한 장 버린 적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김 할아버지는 14년 전 관리비 영수증을 전부 갖고 있었다.

그가 소송전에 휘말린 것도 상가 문제서 비롯됐다. 당시 상가서 찜질방을 하던 A씨는 약 3년에 걸쳐 관리비를 내지 않았는데 그 액수가 무려 1350만원에 달했다. 

A씨가 관리비를 내지 않은 만큼 부담을 떠안게 된 상인들은 김 할아버지에게 번영회장을 맡아 달라 요청했다. 번영회장이 된 김 할아버지는 A씨를 상대로 관리비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A씨는 소송이 시작된 지 한 달 만에 밀린 관리비를 전부 내놨다.

김 할아버지는 관리비 청구 소송 외에도 소방 안전시설과 관련해 대전 서부 소방서에 행정 조치를 요청한 상태였다. A씨가 찜질방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건물을 무단으로 개조하고 주차장에 기름 탱크를 두는 등 화재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상황은 김 할아버지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현장 조사를 나온 소방서에서 그에게 과태료 200만원을 부과한 것이다.

결국 소송까지 간 김 할아버지는 법원서 과태료를 낼 필요가 없다는 판결을 받았다. 그는 법원서 “번영회장으로서 기름 탱크 같은 위험물질이 주차장에 있고, 소방시설이 훼손돼서 생명과 재산에 위험이 발생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신고했을 뿐”이라며 “신고자에게 과태료를 물리는 것은 법조문 어느 조항에 따른 것인지 가르쳐 달라”고 외쳤다.

상가 번영회장 맡아 노력했지만…
가족 떠나고 친구 배신 ‘외톨이’

김 할아버지가 번영회장을 하는 동안 A씨에게 받아낸 관리비도 문제가 됐다. 그가 번영회장을 그만두고 뒤이어 구성된 번영회에서 돈을 인수인계받지 않았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김 할아버지가 그동안 모은 자료에는 통장 기록뿐 아니라 후임자에게 넘어간 돈의 흐름이 전부 남은 상태다. 

“자료를 다 보여줘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며 “처음에는 위임장을 써준 상가 주민들이 뒤에서는 나를 모함하거나, 믿었던 친구가 배신한 경우도 있다”고 허탈해했다.

소송전을 치르는 사이 철학관의 전기가 끊기고, 누군가 그에게 해코지하려 가게에 쳐들어오는 사건도 발생했다. 그 때마다 고소를 진행하고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누구 하나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상가 관계자는 전기 공사를 하다가 누전이 발생해 전기가 끊겼다고 말했지만 공사 관계자한테 물어보니 거짓말로 들통났다. 의도적으로 끊었던 것”이라며 “2층인 가게 좁은 문 틈새로 들어와 고래고래 욕을 하던 남자도 잡아서 신고했지만, 술 먹어서 실수한 거라고 경찰에선 훈방 조치로 끝냈다”고 주장했다.

외로운 시간

그사이 아내와 자식들은 전부 그의 곁을 떠났다. 소송에 매달리느라 기도원이 있던 산까지 헐값에 넘겼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발작 증세가 심해져 병원 신세를 진 것도 여러 번이다. 


국회의원부터 장애인 단체, 법률구조공단, 아름다운 재단 등 안 찾아가본 곳이 없다. 

“시간이 있으면 도와주겠다, 돈이 생기면 도와주겠다는 말만 무수하게 들었다”며 “도움을 받는 데도 조건이 필요했다”고 한탄했다. 18년간 홀로 싸웠지만 그에게 남은 건 여전히 쏟아지는 차가운 시선뿐이다.

김 할아버지가 원하는 건 소송에서 이기거나 피해 보상을 받는 게 아니다. 그는 “장애인이 억울한 게 있어 판사·검사·경찰관에게 증거를 내밀어도 확인조차 해주지 않는다”며 “증거 서류가 확실하다면 법적 근거를 확인해 잘잘못을 가려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 할아버지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래도 나같이 뛰는 사람이 있으니 세상이 조금은 바뀌지 않겠나”며 “내 삶은 늘 슬펐기 때문에 더 이상 아무도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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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계엄 선포’발 윤석열 탄핵 시계

‘비상계엄 선포’발 윤석열 탄핵 시계

[일요시사 정치팀] 강주모 기자 =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 6당이 4일, ‘비상계엄령 선포’를 선언했던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을 처리하기로 했다. 이날 탄핵안에 포함된 인사는 윤 대통령 외에도 김용현 국방부 장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도 포함됐으며 내란죄가 적용됐다. 국방부에 따르면, 이번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김 장관의 건의로 이뤄졌다. 이날 국방부 관계자는 ‘김용현 장관이 계엄을 건의한 게 맞느냐’는 질의에 “맞다”고 답변했다. 탄핵소추안이 국회에 제출됨에 따라 헌법 및 국회법에 따라 본회의 보고 및 표결 절차를 밟을 것으로 전망된다. 국회법상 탄핵소추안은 본회의 보고 후 24시간 이후부터 72시간 이내에 의결 처리하도록 하고 있다. 이날 오전 민주당은 서울 여의도 국회서 긴급 의원총회 직후 결의문을 발표하면서 “윤 대통령이 사퇴하지 않을 시 즉시 탄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박성준 원내부대표는 “오늘 자정이 지난 시점에 국회 본회의를 개의해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을 보고할 예정”이라고 의원들에게 공지했다. 박 원내부대표는 “24시간 이후 72시간 이내에 의결해야 하니 토요일(7일)까지는 비상 대기해야 한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탄핵소추안의 의결 정족수는 재적 의원 300명 중 200명 이상으로, 민주당 및 범야권 의석(192석)만으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정가에선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 소수 야당들도 윤 대통령 탄핵을 주장하고 있는 데다 국민의힘 내부서도 이탈표가 나올 수 있는 만큼 가결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예상하는 분위기다. 만약 국민의힘서 8명 이상의 이탈표가 발생할 경우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게 되며, 대통령의 직무도 즉시 정지된다. 물론,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고 해서 탄핵이 이뤄지는 건 아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론이 나올 때까지 정지되며,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된다. 헌재 탄핵은 재판관 9인 중 6인이 찬성할 경우 인용되나 현재 6인 체제인 만큼 즉시 탄핵 심리는 어려울 것이라고 법조계는 보고 있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는 박근혜정부 당시 ‘국정 농단’이 화두가 되면서 인용됐다. 박 전 대통령의 경우 헌재의 탄핵 결정이 나오기까지 3개월1일이 소요됐지만, 윤 대통령의 경우는 더 오래 걸릴 수도 있다는 얘기다. 앞서 지난 3일, 윤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의 예산 폭거는 대한민국 국가재정을 농락했다. 예산까지도 오로지 정쟁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이런 민주당의 입법독재는 예산 탄핵까지도 서슴지 않았다”며 긴급 대국민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이후 우원식 국회의장이 국회의원 전원을 긴급 소집해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상정한 후 본회의 표결에 부쳐 190명 만장일치로 통과시키면서 선포 6시간 만인 오전 4시30분께 전격 해제됐다. 이날 계엄작전은 미리 계획돼있었다는 듯 신속하고 정확하게 이뤄졌다. 계엄령 선포와 함께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이 계염사령관으로 임명됐으며 11시께 포고령 1호를 발령했다. 포고령엔 국회, 지방의회 등의 정당‧정치 활동은 물론, 파업, 태업, 집회 행위 등을 금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언론 출판은 계염사의 통제를 받을 것도 명했다. 이날 현장을 찾았다는 시민 등에 따르면, 국회에 투입됐던 경찰 병력 및 특전사 등 계엄군은 더불어민주당 당직자 및 시민들의 경내 진입을 막아섰으나 자리를 지키는 정도로 격렬하게 대응하진 않았던 것으로 확인된다. 간혹 큰소리를 내며 국회 안으로 진입을 시도하는 시민을 향해선 ‘지금은 출입이 통제된 상태니 자제해달라’고 고지하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의아스러운 부분은 ‘전공의를 비롯해 파업 중이거나 의료 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은 48시간 내 본업에 복귀해 충실히 근무하고 위반 시엔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는 내용이었다. 윤 대통령은 10시20분경 긴급 대국민 담화를 통해 “더불어민주당의 예산 폭거는 대한민국 국가재정을 농락했다. 예산까지도 오로지 정쟁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이런 민주당의 입법독재는 예산 탄핵까지도 서슴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이는 자유 대한민국 헌정질서를 짓밟고 헌법과 법에 의해 세워진 정당한 국가기관을 교란시키는 것으로서 내란을 획책하는 명백한 반국가 행위”라고 지적하면서 “국민의 삶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탄핵과 특검, 야당 대표 방탄으로 국정은 마비 상태에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 국회는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 됐고, 입법 족대를 통해 국가의 사법행정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전복을 기도하고 있다”며 “자유민주주의 기반이 돼야 할 국회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붕괴시키는 괴물이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저는 북한 공산 세력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비상계엄을 통해 망국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낼 것이며, 이를 위해 지금까지 패악질을 일삼은 망국의 원흉, 반국가 세력을 반드시 척결하겠다”며 “체제 전복을 노리는 반국가 세력의 준동으로부터 국민의 자유와 안전, 그리고 국가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며 미래 세대에게 제대로 된 나라를 물려주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계엄선포로 인해 자유 대한민국 의 헌법 가치를 믿고 따라주신 선량한 국민들게 다소 불편이 있겠지만, 자유 대한민국의 영속성을 위해 부득이한 것이며 대통령으로서 오로지 국민 여러분만 믿고 신념을 바쳐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낼 것”이라고 약속했다. 워딩 어디서도 의료나 전공의라는 단어는 물론 관련된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이날 비상계엄 후폭풍의 영향으로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들은 일괄 사의를 표명했다. 한편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에 대한 탈당 요구, 내각 총사퇴 입장을 청와대에 전달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한 대표는 서울 여의도 국회서 열린 비공개 의원총회서 “내각 총사퇴, 국방부 장관 해임, 대통령 탈당을 요청해야 한다”며 “최고위원들도 이 의견에 공감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위기를 통과하지 못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kangjoomo@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