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엄마의 기억 쫓는’ 박진영

‘엄마의 병’에 렌즈를 맞추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중견 사진작가 박진영이 오랜만에 개인전으로 돌아왔다.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일본 후쿠시마 시리즈를 통해 타인의 재난을 기록해 왔던 박진영은 ‘엄마의 병’이라는 개인의 재난으로 렌즈를 돌렸다. 개인전 ‘엄마의 창’ 전시 준비가 한창인 아트스페이스 J서 박진영을 만났다.

기자가 질문을 던지면 잠시 침묵이 흘렀다. 곰곰이 생각한 끝에 나온 작가의 답은 생각보다 길었다. ‘사진’에 대한 대화가 주를 이뤘지만 그사이 작가가 흘리듯 들려준 가정사나 과거에서 사진작가이자 아들로서의 박진영을 엿볼 수 있었다.

작가의 엄마는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어가고 있다. 엄마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작가가 선택한 방식은 ‘이야기’. 병실 침대에 엄마와 나란히 앉아 족발을 먹으며 한 대화는 작가의 카메라를 거쳐 사진으로 형상화됐다.

사진에 담긴 장소들은 엄마가 대화에서 언급한 곳이다. 엄마가 몇 번이나 읊조렸던 ‘후로리다’는 아마 미국의 플로리다였을 터, 작가는 그곳을 찾아 길에서 먹고 자며 사진을 찍었다.

엄마를 위해

박진영은 1987년 최루탄에 맞아 머리에서 피를 흘리던 이한열 열사가 담긴 사진을 보고 길을 정했다. 1987년 6월9일 정태원 전 로이터통신 기자가 찍은 이한열 열사의 사진은 6월 항쟁의 도화선이자 박진영의 인생 방향을 결정한 ‘큰 기로’가 됐다.


엄마는 ‘사진만 알던’ 아들을 위해 보험 설계사 일에 뛰어들었다. 필름값과 대학원 등록금은 모두 엄마의 손끝서 나왔다. 엄마의 든든한 지원을 배경으로 작가는 사진만을 위해 종횡무진 세상을 누볐다.

작가는 한때 기자를 꿈꿨다. 한 언론사 공채시험 최종 단계에서 떨어진 경험이 있다는 그는 “만약 기자가 됐다면 지금쯤 현장을 누비면서 사진을 찍고 있었을 것”이라며 “당시의 일은 내 인생의 작은 에피소드일 뿐”이라고 소개했다.

그가 생각한 인생의 큰 기로는 일본인 아내와 결혼하면서 일본에서 생활하게 된 것, 에르메스 아틀리에, 고은사진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등 큰 미술관에서 전시를 하게 된 것 등이다.

알츠하이머 앓고 있는 모친
병실서 나눈 대화 사진으로

처음 일본에 갔을 땐 말이 통하지 않아 애를 먹었다고 한다.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사진도 찍을 수 없었다”며 “초기 3년 정도는 알코올중독과 우울증으로 고생했다”고 털어놨다. 그런 그의 인생을 또 한 번 바꾼 큰 기로는 후쿠시마에서 발생한 지진이다.
 

2011년 3월11일 일본 후쿠시마에 규모 9.0의 지진이 덮쳤을 때 작가와 그의 아내는 도쿄에 있었다. 도쿄에도 진도 5약 이상의 지진이 발생해 서 있을 수조차 없었지만 그는 차를 달려 후쿠시마로 향했다. 1박2일 동안 차에 기름이 다 떨어지도록 달렸던 작가는 일본 히타치 수출항에 값비싼 벤츠가 다 뒤집혀 널브러진 모습을 보고 사진을 찍겠다고 결심했다.

벌써 3년째 후쿠시마를 방문하고 있는 그는 6개월 전에도 폐허가 된 그곳을 렌즈에 담았다. “처음 후쿠시마에 갔을 땐 냄새가 정말 심했고, 시체가 많았다”며 “전쟁보다 참혹한 현실을 마주하면서 처음에는 카메라를 들 엄두도 내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작가의 카메라에 담긴 참상은 지난 2015년 5월 강홍구 작가와 함께 개최한 2인전 ‘우리가 알던 도시’를 통해 세상에 공개됐다. 아내뿐 아니라 지인들은 매년 후쿠시마를 찾는 그가 피폭이라도 당할까 봐 걱정한다. 그럼에도 왜 사진을 찍느냐는 질문에 작가는 일본의 축구선수 미우라 가즈요시의 말을 인용했다.

1967년생인 미우라 선수는 만50세가 된 지금도 현역 축구선수로 뛰고 있다. 기자들이 그에게 왜 계속 현역으로 뛰느냐고 묻자 “나는 축구를 더 잘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박진영은 “미우라 선수의 대답에 큰 감명을 받았다. 나도 사진을 더 잘 찍고 싶다”고 이유를 밝혔다.

1987년 사진 한 장에 작가로
매년 후쿠시마 찾아 참상 담아

박진영은 디지털이 범람하고 있는 시대에 여전히 필름카메라를 고집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이다. 20㎏이 넘는 무거운 장비를 들고 사진을 찍지만, 눈앞에 보고 있는 풍경이 제대로 카메라에 담겼는지 조차 확인할 수 없다.

“올해로 사진을 찍은 지 30년째지만 필름카메라는 조금만 실수해도 사진이 제대로 나오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조마조마한 마음이 있다”고 전했다.

최근 작가가 골몰하고 있는 건 ‘빛의 축’이다. 작가에 따르면 사진은 공간과 빛, 시간의 축으로 구성돼 있다. 광화문에 가면 촛불집회를, 목포에 가면 1091일 만에 인양된 세월호를 찍을 수 있다. 바로 ‘공간의 축’이다. 빛의 축은 보통 태양을 가리킨다. 이번에 전시된 작품 ‘플로리다’와 ‘이즈반도’에는 마치 점찍은 듯한 빨간 태양이 잡혀 있다.

몇 단으로 구성된 사진은 태양을 어디에 두고 찍었는가에 따라 선명성에서 차이를 보인다. 역광으로 찍은 부분은 약간 흐릿하다. “보통 태양을 마주하고 찍으면 사진이 잘 안 나온다. 하지만 시간이 없을 때는 역광이어도 사진을 찍어야 할 때가 있다”며 “그때 자신만의 궁극의 기술과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빛을 담다

박진영에게 전시는 작가가 만든 작품의 최종 단계다. 이번 전시가 마무리되면 그는 작품으로 엄마의 병실을 가득 채울 예정이다. “엄마를 전시장에 모시고 싶다”면서도 “엄마가 사진을 보고 어떤 느낌을 가질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그래서 전시 날짜를 5월로 잡았다”며 “가족마다 남들은 모르는 아픔을 안고 있을 것이다. 그 아픔을 돌아보면서 효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봤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전시는 5월25일까지.
 

<jsjang@ilyosisa.co.kr>

 

[박진영은?]

부산 출생


▲학력

중앙대학교 대학원 사진학과 중퇴
경일대학교 사진영상학과 졸업

▲전시

‘우리가 알던 도시 강홍구 박진영 2인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2015)
‘방랑기 1989-2013’ 고은사진미술관, 부산(2013)
‘사진의 길 : 미야기현에서 앨범을 줍다’ 에르메스 아틀리에, 서울(2012)
‘ひだまり’ 토요타 아트스페이스, 부산(2011)
‘ひだまり’ 갤러리 S, 서울(2008)
‘The Game 분단풍경 다시보기’ 금호미술관, 서울(2006)
‘Boys in the City’ 금호미술관, 서울(2005)
‘서울…간격의 사회’ 조흥갤러리, 서울(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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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국방부 문건이 대규모로 파쇄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조치는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의 지시로 이뤄졌다. 오 전 기획관은 검찰 특수본과 재판서 정보사와 수사2단 인사안의 문제점을 증언했던 인물이다. 자신이 비상계엄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수사에 협조한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올해 초 신년맞이 대청소라면서 문서를 대량으로 파쇄했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국방부 직원들의 말이다. 파쇄된 문건들은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자료라고 한다. 지시자는 오영대 전 국방부 인사기획관이다. 검찰 수사에 협조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으나 실상은 다르다는 게 군 내부자들의 주장이다. 뭘 숨기나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말 취임하면서 시작한 첫 번째 군 개혁은 인사다. 신임 인사기획관에 일반 공무원 출신인 이인구 군사시설기획관을 임용한 건 안 장관이 강조해 왔던 ‘군 문민통제’와도 맞닿아 있다. 인사기획관은 본래 예비역 장성이 맡아왔다. 이 신임 기획관의 전임자였던 오 전 기획관도 예비역 준장 출신이다. 군 내부에서는 국방부에 여전히 12·3 내란 사태에 협조한 군인들이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핵심으로 인사기획관실의 총괄과이자 인사기획관의 일정, 예산 등을 모두 관리하는 인사기획관리과가 언급된다. 다수의 국방부 관계자들은 “오 전 기획관은 물러났지만 책임져야 할 다수의 인물이 아직 자리를 보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부서의 간부들은 전부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다. 과장 김모 대령은 오 전 기획관이 대령이었을 때 소령으로 근무했고, 총괄 이모 중령은 오 전 기획관이 특전사 여단장을 역임했던 1공수여단서 중대장과 707중대장을 거쳤다. 장군인사팀장 김모 대령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수도방위사령관으로 근무했던 시절 비서실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김 전 장관과 가깝거나 육사 출신인 이들이 국방부 인사의 핵심부서인 인사기획관리과에 포진하면서 계엄 실행을 위한 보직 이동이 이뤄진 셈이다. 김 전 장관은 실제 대통령경호처장일 때부터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과 군 인사에 대해 논의했다. 직무에서 배제되지 않은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장관이 모든 책임을 오 전 기획관에게 묻는 형식으로 퇴직을 시켰으니 우리는 지시를 받아 어쩔 수 없이 한 것처럼 조용히 지내면서 정부초기 개혁의 소나기만 피하면 진급 가능’이라며 서로서로 쉬쉬하고 있다고 한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내란 이후인 지난해 12월 중순 오 전 기획관의 지시에 따라 문건 파쇄를 계획했다. 김 전 장관이 물러난 이후 인사기획관리과장 김 대령 및 총괄인 이 중령 외에는 계획되지 않은 대면보고는 금지했고 내부 보안에 심혈을 기울였다. 인사과 간부들 계엄 실패 후 12월 계획···1월 파쇄 “지시자는 검찰 수사 응했던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 한 달여 뒤 이 중령은 모든 과에 ‘신년맞이 대청소’를 하라고 전파했다. TF 자리 배치와 오래된 문건을 정리한다며 유독 인사기획관리과만 복도로 책상을 빼고, 대량 세절이 가능한 세절실을 예약해 엄청난 양의 문서들을 파쇄했다. 여기엔 내란 핵심 파일도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안 장관은 이와 관련해 국회에서 오 전 기획관에게 여러 차례 질문한 바 있다. 당시 오 전 기획관이 당황해하며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퍼지기도 했다. 이 중령은 동영상을 보며 웃는 직원들의 명단과 안 장관에게 제보한 인물을 색출하기 위해 탐문 활동을 벌여 오 전 기획관에게 추정해 보고했다. 이들은 모두 오 전 기획관으로부터 승진추천, 성과상여금, 각종 포상 등 인사상 불이익을 본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이 문건을 파쇄한 이유는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내란 당일 오후 10시가 넘은 시각임에도 퇴근하지 않고 사무실에 있던 오 전 기획관의 지시를 받은 이 중령은 각 과의 총괄 담당자들을 소집해 ‘계엄 선포가 됐는데 선제적으로 인사 관련 조치를 왜 안 하냐’ ‘합참에는 계엄사령부가, 지작사령부에는 지역계엄사령부가 곧 창설될 텐데 각 군 본부 및 지작사와 인사 지침을 협의해 계엄령 취지에 맞게 배포하라’고 강조했다. 특히 오 전 기획관은 계엄 해제 결의안이 국회 본회의 테이블을 통과했음에도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서 이 중령에게 “(계엄이) 해제되긴 했는데 다시 시행될 수도 있으니 빨리 계엄사 창설 지원을 위한 인사 조치를 완성하고 지작사 병력에 대한 휴가 지침 및 통제 등 건의 사항을 받아보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 전 기획관은 내란 직전까지 김 전 장관의 의중에 따라 군 인사를 반영했다. 최근 내란 특검팀이 군 장성급 인사 자료 확보에 나선 것도 이에 관해 들여다보기 위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검팀은 최근 국방부 장군인사팀과 육군본부 장군인사실 등을 압수수색해 해당 부서 내 인사 관련 파일 등을 확보했다. 정치권에선 지난 2023년 11월과 지난해 4월 이례적인 인사가 이뤄졌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진급에 절박한 군 인사들을 계엄 실행 세력으로 활용했단 의혹이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윤석열정부 장군 인사는 특이하고, 이례적인 경우가 유독 많았다”며 “인사를 통해 군을 장악하고, 내란을 준비했다는 의혹 관련 특검의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3차 계엄 대비 문건 없애” 증거 인멸 국회서 해제 불구 지작사와 인사 논의?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은 지난 2023년 11월 인사에서 소장에서 중장으로 진급했다. 박안수 전 계엄사령관은 ‘75주년 국군의 날 행사기획단장 겸 제병지휘관’ 등 한직에서 2023년 10월 육군참모총장에 발탁됐다. 지난해 4월엔 지휘부에 이어 작전본부 인사가 이어졌다. 원천희 당시 육군 소장이 4차 진급으로 합참 정보본부장으로 승진했고, 이승오 소장은 군단장을 거치지 않고 합참 작전본부장으로 진급했다. 안찬명 당시 육군22사단장은 임명 5개월 만에 합참 작전부장으로 보직을 옮겼다. 통상 사단장은 1년 반~2년가량 보직을 맡는다. 군 안팎에서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왔던 이유다. 경질 위기이던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은 유임됐다. 그는 지난해 6월 정보사 군무원의 블랙요원 명단 국외 유출 사건 및 박민우 전 정보사 100여단장과의 갈등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신원식 전 안보실장은 지난해 8월 국회에서 “후속 조치를 강하게 할 생각”이라고 언급했지만, 다음 달 본인이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는 군 관계자에게서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이 장군들 인사에 대해 논의했고 오 전 기획관에게 전달됐다”는 진술을 확보한 바 있다. 위기감을 느낀 오 전 기획관은 특수본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기 시작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오 전 기획관의 특수본 진술조서를 보면 그는 “신원식 (전 국방부) 장관이 저와 원천희 국방부 정보본부장에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보직해임·정보사령관 교체 검토를 지시했으나 지난해 9월6일, 김 전 장관이 취임하면서 문 전 사령관에 대한 ‘현 보직 유지’를 지시했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이해하기 어려운 인사였다”고 했다. 앞뒤 달랐다 오 전 기획관은 “(문 전 사령관이 박 준장으로부터 고소당한 혐의가)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지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인사 조치는 없었다”며 “공론화된 문제고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는데도 이렇게 유야무야 넘어가는 일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