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산업부 직원’ 의문의 청와대 파견 내막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7.04.10 09:50:41
  • 호수 1109호
  • 댓글 0개

에너지 전문가가 민정수석실에 왜?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MB(이명박)정부 해외자원개발사업은 실패했다. 자유한국당 최경환 의원은 당시 지식경제부장관을 지내며, 자원외교 ‘몸통’으로 지목됐다. 하지만 그는 빠져나갔다. <일요시사> 취재결과 최 의원이 감사원의 해외자원개발사업 감사 내용을 민정수석 고위관계자 A씨를 통해 알아봤으며, 민정수석실로 파견 간 산업통상자원부 직원들을 통해 이를 ‘크로스 체크’했다는 의혹이 안팎서 제기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뇌물 혐의로 구속됐다. 이 와중에 박근혜정권 2인자로 불렸던 최경환 의원도 중소기업진흥공단(이하 중진공) 특혜 채용 압력 의혹으로 불구속 기소됐다. 그는 박근혜정권서 기획재정부장관 겸 경제부총리를 지낸 실세 중 실세였다. 현 정권서 최 의원의 손길은 정·재계 전방위로 미쳤다는 시각이 다분하다.

두 정권서 실세
민정실에 입김?

특히 사정기관까지 그의 손길이 닿았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최 의원의 발목을 잡고 있는 중진공 특혜 채용 감사 무마다. 중진공 측은 최 의원의 전 인턴직원인 황모씨의 신입사원 채용 문제에 대한 감사원 감사를 무마하기 위해 최 의원(당시 부총리) 측과 긴밀히 협의했다.

또 이영애 중진공 감사(전 새누리당 의원)가 김영호 당시 감사원 사무총장을 노래방서 만나 ‘봐주기 감사’를 약속한 정황도 드러난 바 있다.

실제로 감사원은 최 의원의 채용비리를 적발하고도 감사 보고서에는 그의 이름을 적시하지 않고 ‘외부’라고만 표현했다. 이 때문에 감사원이 정권 실세인 최 의원을 감싸려 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지기도 했다.


황찬현 감사원 원장은 당시 “진술이 엇갈리는 상황서 단정적으로 (최 의원) 실명을 밝히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외부라고 한 것”라고 해명했다.

그런데 <일요시사> 취재결과 최 의원이 청와대 민정수석실과도 유착됐다는 정황을 포착했다. 민정수석실은 사정권력(검찰·국정원·국세청·감사원·금융감독원·공정거래위원회)의 정점에 있는 무소불위 권력이다.

복수의 사정기관과 정치권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최 의원이 민정수석 고위 관계자 A씨에게 자신과 관련된 민원을 알아봤다. 이와 관련된 민정수석실 관계자의 전언도 있다.

이 관계자는 “민정수석실 핵심 관계자 A씨는 청와대로 파견 나온 감사원 직원을 통해 해외자원개발사업 감사 내용을 보고받았으며, 진행 상황을 최 의원과 공유했다”고 말했다. 덧붙여 이 관계자는 “감사원 수뇌부도 인지하고 있었으며 협조했다”고 귀띔했다.

또 이 시기 해외자원개발사업 업무와 밀접한 관계가 있던 산업통상자원부 인사를 청와대 민정수석실로 파견 보내며 감사 내용을 ‘크로스 체크했다’는 말도 나왔다.
 

실제로 <일요시사> 취재결과 최태현 청와대 민정수석실 민원비서관은 산업부 출신으로 MB정부 시절 ‘에너지 통’이었던 것으로 확인했으며, 현재 청와대 민원비서관으로 파견 중이다. 최 비서관은 지경부 시절 최 의원이 장관으로 같이 근무한 바 있다.

자원부 소속 2명 ‘우병우 민정실’ 합류
업무와 전혀 관련 없는데 파견 이유는?


그는 해외자원개발사업이 한창이던 시절 에너지 부서의 핵심 요직을 거쳤다. 최 비서관은 ▲산업자원부 에너지자원정책본부 원자력산업팀 팀장(2007년2월~2008년2월) ▲지식경제부 에너지자원정책과 석유산업과장(2008년3월~2008년9월) ▲지식경제부 에너지자원정책과 과장(2008년9월 ~ 2009년11월) ▲국무총리실 산업정책관(2010년2월 ~ 2011년6월) ▲지식경제부 에너지자원실 원전산업정책관(2011년6월~2013년4월) 등을 지냈다.

이 부서들은 하나 같이 에너지 공기업 부채감축, 해외자원개발사업, 신재생에너지정책 수립 및 확산 보급을 맡고 있다. 국무총리실 산업정책관 역시 에너지자원 및 공무부문 에너지 절약 정책의 기획·관리를 한다. 산업부 내·외부에선 최 비서관울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 기본 계획을 세운 에너지 전문가로 평가하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최 비서관이 거친 보직이 해외자원개발사업과 관련이 없다”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취재결과 최 비서관은 2008년 7월 ‘기업 에너지절감 생존 전략 세미나’서 해외자원개발사업에 관련된 강의를 했으며, 2012년 2월에는 국가 자원개발사업에 대한 협력 조율을 위해 동남아 국가들을 대상으로 출장도 갔다.

최 비서관의 민정수석실 파견도 상당히 이례적인 인사였다. 통상 민정수석실은 법조계나 정치권, 사정기관 출신들이 근무한다. 또 중앙부처 공무원을 기용한 사례가 극히 드문 일인 것으로 전해진다. 청와대는 이 인사에 대해 “규제개혁 차원의 민원 해결을 위해 정부부처의 업무 프로세스를 잘 이해하면서 공무원과 소통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아무도 못믿어
크로스 체크?

하지만 사정기관과 정치권 관계자들의 시각은 달랐다. 한 검찰 관계자는 “민정수석실은 업무의 특수성 때문에 법조계나 사정기관 출신이 대부분”이라며 “산업부 출신이 민정수석실에 파견 갔다는 얘기는 처음 들었으며,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법사위 출신 보좌관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산업부 내부서도 이 인사에 대한 잡음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심지어 이런 내용은 국무조정실서도 회자됐을 정도라고 한다.

 

최 비서관이 민정수석실로 파견 간 시점도 예사롭지 않다. 그는 2015년 2월 민원비서관으로 임명됐다. 그런데 이 때는 감사원서 해외자원개발사업과 관련된 대대적인 감사를 앞둔 시기였다. 감사원의 감사는 2015년 3월25일 시작됐으며, 그 해 11월6일 감사결과가 최종 확정됐다.

이 기간 동안 최 의원이 A씨를 통해 알아본 내용을 해외자원개발사업과 밀접한 관계가 있던 최 비서관에게 크로스 체크했다는 시각이 다분하다. 해외자원개발사업은 전문가가 아니면 접근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 양이 방대하고 복잡한 것으로 전해진다. 최 의원 입장서 해외자원개발사업을 잘 알 만한 ‘아군’이 바로 최 비서관인 셈이다.

청와대로 들어오는 해외자원개발사업 민원을 사전에 통제할 포석으로 최 비서관을 파견했다는 해석도 있다. 실제로 당시 청와대에는 에너지와 원전 사업 관련 민원이 끊이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막후에 최경환 존재설 부상
MB정권 자원외교 주도 찔려
감사원 감사 등 수시 체크?

왜 최 의원이 ‘해외자원개발사업에 대한 감사 내용을 민정수석실을 통해 알아봤을까’라는 의혹이 안팎에서 나올까. 당시는 박근혜정권의 국정 지지율이 정윤회 문건으로 집권 이례 최저치를 기록했던 시기. 반등의 계기를 삼기 위해 MB시절 문제 많던 사업들을 수사했다.


2015년 2월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적폐청산’을 외치며 포스코 비리, 4대강 비리, 해외자원개발사업 실패 수사 등에 사활을 걸었던 것도 이 맥락서 나왔다. 이 때문에 사실상 ‘MB수사’였으며, 이것을 주도한 곳이 청와대 민정수석실이었다는 게 정설이다.

그런데 코너에 몰린 사람은 정권 실세였던 최 의원이었다. 그는 MB정부 시절 지식경제부장관을 지냈으며, 수십조원의 손실을 빚은 해외자원개발사업 몸통으로 지목됐다. 감사원조차 ‘이명박정부가 해외자원개발사업에 실패했다’고 못 박았다.

정치권서도 해외자원개발사업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를 출범했다. 야당은 최 의원을 국정조사 청문회 증인으로 채택했지만 여당의 반대로 무산됐다. 또 감사원의 감사 보고에서도 최 의원을 비롯한 4인방(이명박 전 대통령, 이상득 전 의원,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윤상직 전 산업통상부장관)의 이름이 빠지면서 책임론에서 빠져 나갔다.

이런 정황들에 대해 감사원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최 의원은 해외자원개발사업 책임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정권 실세였던 그는 모든 책임을 피해갔다. 결과적으로 본인의 민원들이 성공적으로 처리됐기 때문이 아니겠느냐”라고 반문했다.
 

이어 “검찰 수사와 감사원 감사는 다르다. 전산을 돌리다가 무엇이 ‘툭’ 걸려나올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한 번 대대적으로 시작된 감사는 중간에 조용히 덮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라며 “그렇기 때문에 중진공 감사와 마찬가지로 해외자원개발 감사에서도 최 의원의 ‘이름’ 정도는 가려줄 수 있지 않았겠는가 하는 의혹을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원외교 감사
보고 받았나?


반면 의혹의 당사자들은 하나같이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산업부 측은 최 비서관 인사에 대해 최 의원과 “연관성 없다”며 선을 그었다. 최 의원에게 이 같은 해명을 듣기 위해 전화와 문자메시지를 남겼지만, 끝내 답변은 없었다. 다만 최 의원실 보좌관은 “의원님이 감사원 감사에 개입했으면 중진공 특혜 채용으로 고발당했겠느냐”며 “A씨가 누구한테 보고할 사람이 아니다. 말도 안 되는 의혹”이라고 일축했다.


<cmp@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산업부장관 비서관도 민정수석실 파견, 왜?

최우석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비서관도 민정수석실에 파견 근무한 것으로 확인된다. 그는 2014년 7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근무했다. 최 비서관은 민정비서관실 행정관으로 A씨와 함께 근무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민정비서관실은 고위 공직자 및 대통령 친인척에 대한 사정을 책임지는 자리다.

공교롭게도 최 비서관과 최경환 자유한국당 의원은 공통분모가 상당하다. 먼저 최 비서관 역시 자원외교와 인연이 있다. 그는 노무현정부 때 해외자원개발사업 실무자였다. 노무현정부 때부터 시작된 해외자원개발사업의 기틀을 닦은 인사 중 한 명인 것으로 보인다.

반면 MB정부 때는 자원외교와 무관한 부서에서 근무했다. 또 최 비서관은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출신으로 최 의원과 동문이다. 이 외에도 부산 동천고등학교 출신으로 최 의원과 같은 경상도 출신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 때문에 산업부 내부에서는 최 비서관이 ‘최 라인’이라는 말도 나왔다. <창>
 

<기사 속 기사> 산업부 인사과 관계자 일문일답
“직원 3명 더 나갔었다”

산업통상자원부 인사과 관계자는 최태현 청와대 민원비서관이 청와대 민정수석실 파견된 것에 대해 이례적인 인사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다음은 산업부 인사과 관계자와 일문일답이다.

- 산업부 출신들이 민정수석실에 간 이유는?
▲그동안 산업부에서 계속 민정수석실에 파견을 나갔다. 이번 정권에서는 이들 말고도 산업부 출신 세 사람이 민정수석실에서 근무한 전례가 있다. 최 비서관 밑으로 산업부 직원이 행정관으로 파견 가기도 했다. 이례적인 게 아니다.

- 정치권이나 사정기관에선 이례적인 인사라고 보는데?
▲민정수석실 업무는 다양하다. 주로 사정과 인사를 검증한다. 최 비서관은 민원업무를 담당하기 때문에 사정과 검증 업무는 하지 않는다. 최 비서관은 청와대로 들어오는 각종 민원을 담당했다. 당시 청와대 민원을 담당할 비서관을 뽑는다고 해서 여러 부처에서 파견 대상을 추천받아 뽑은 것이다.

-최 비서관은 해외자원개발 업무와 연관된 일을 한 것 같은데?
▲최 비서관은 해외자원개발 업무를 한 게 아니라 에너지 전문가다. 특히 오랫동안 원자력 쪽에 근무했다. 해외자원개발과는 관련 없는 것으로 안다. 일반 법 감정으로 어려운 분야가 에너지다. 그런 점을 감안해서 최 비서관이 민정수석실에 파견 간 것으로 알고 있다.

- 해외자원개발 때문에 갔나?
▲그렇게 볼 수는 없다. 해외자원개발 업무 한 사람이 민원 업무 부서에 갈 이유가 없다. <창>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