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와신상담’ 김경준의 반격 내막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7.04.04 08:49:16
  • 호수 110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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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바뀌면 MB도 위험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BBK' 김경준씨가 세상 밖에 나왔다. 복역 8년 만에 출소했다. 향후 그의 입에서 BBK 주가조작 사건에 연루된 의혹이 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을 향한 폭로전이 시작될 조짐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에 이어 이 전 대통령에게까지 폭탄이 떨어질지 초미의 관심사다.

BBK 주가조작 사건으로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김경준씨가 최근 만기 출소했다. 법무부는 미국 국적인 김씨를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지난달 29일 강제 추방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BBK 사건 연루 의혹을 밝힐 핵심인물로 주목받고 있는 김씨는 출소 소감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적폐청산은 이뤄져야 하고, 여기에는 MB 정부도 포함된다. 일주일 이내에 진실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적폐청산…
진실 밝힐 것” 

이어 “내가 이미 한국서 추가로 소송을 제기해서 이긴 것도 많다. 누구나 BBK와 관련해서는 마치 내가 잘못한 것같이 얘기했지만, 실제로는 한나라당이 잘못한 것이다. 이권자는 박근혜정부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2007년 대선 직전 자신의 한국 송환을 둘러싼 기획 입국 의혹과 이후 검찰 수사결과 등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김씨는 그것으로 이명박정부가 혜택을 받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씨는 지난해 의뢰인 정보를 공개한 변호인을 상대로 낸 소송서 일부 승소했고 이른바 ‘BBK 가짜편지사건과 관련한 민사 소송서도 일부 승소한 바 있다.

공항 출국장을 나서면서 ‘BBK 사건에 MB가 관련된 결정적 증거가 있느냐는 질문에 김씨는 지금 상태서 얘기하긴 그렇지만 진실을 밝히겠다고만 답했다.


김씨는 지난 달 28일, 천안교도소서 출소했다. 김씨는 코스닥 상장기업인 옵셔널벤처스 주가를 조작해 319억원가량의 회삿돈을 횡령하고, 이 전 대통령에 대한 허위 사실을 퍼뜨린 혐의 등으로 20095월 대법원에서 징역 8년과 벌금 100억원이 확정됐다. 

BBK 주가조작 복역 8년 만에 출소
벌금 100억원없어서 500일 노역

201511월 징역형 복역을 마쳤지만 벌금 100억원을 내지 못해 일당 2000만원씩 500일 동안 노역장에 유치돼있었다. 법무부는 출소한 김씨를 청주외국인보호소로 옮겨 강제퇴거 심사를 했다. 출입국관리법상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석방된 외국인은 국외로 강제퇴거될 수 있어 미국 국적인 김씨는 강제퇴거 대상이다.

김씨는 심사에서 “29일에 자진 출국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이 전 대통령의 BBK 주가조작 사건 연루 의혹을 밝힐 핵심인물로 주목받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이날 청주외국인보호소에서 김씨를 특별면회한 뒤 취재진에 김씨가 이 전 대통령의 주가조작 사실을 유죄로 판단할 여러 근거가 있다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이어 김씨의 첫마디가 정권이 교체돼 진상이 밝혀졌으면 좋겠다였다여러 가지 이유를 들며 이 전 대통령도 주가조작 유죄라고 했다고 전했다.

박 의원은 정권교체 후 진상규명을 위해 한국에 올 수 있도록 법적 조치를 해달라는 요구도 했다고 밝혔다. 김씨가 출소함에 따라 이 전 대통령의 BBK 주가조작 연루 의혹이 다시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향후 김씨의 폭로전이 초미의 관심사가 될 전망이다.


만기 출소 미국행
이명박 떨고 있나

BBK 주가조작 사건은 2006년 대선 때 터졌다. 당시 주가조작 사건 자체보다 이 전 대통령이 개입되었는지 여부가 더 큰 논란이었다. 김씨는 이 전 대통령이 BBK의 실제 소유주이며 자신도 주가조작의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자신도 김씨에게 사기를 당했다며 입장이 갈렸다. 이 사건을 수사한 검찰과 특검은 김씨를 기소하고 이 전 대통령을 무혐의 처분했으나 주가조작에 이용된 자금의 실소유주 논란은 아직 해소되지 않았다.

김씨는 1999BBK 투자자문회사를 설립했다. 당시 자본금이 5000만원에 불과해 투자자문회사의 등록 자격요건을 충족하지 못했지만, 김씨가 30억원의 투자금을 끌어오면서 기업 투자자문을 시작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이 30억원의 출처가 아직까지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이후 BBK는 국내 중견기업들로부터 수백억원에 이르는 투자를 유치했다. 이 전 대통령의 형 이상은씨와 처남 김재정씨가 대주주로 있는 다스의 190억원을 비롯, 삼성생명서 100억원, 심텍서 50억원 등 총 600억원에 이르는 투자를 받았다.

한편 김씨는 20002월, 이 전 대통령과 함께 LKe뱅크라는 사이버 종합금융회사를 설립했다. 이 전 대통령과 김씨가 각각 30억원씩 투자하고, 둘이서 공동대표를 맡았다.

당시 김씨는 BBK를 운영하는 중이었는데, LKe뱅크를 소개하는 책자에는 ‘LKe뱅크는 이뱅크 증권 중개주식회사, BBK와 자매회사라고 소개했다. LKe뱅크는 BBK가 운용하던 MAF펀드에 1250만달러 (150억원)을 투자하는 등 BBK와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

20013월 금융감독원 조사에서 김씨가 LKe뱅크에 투자한 30억원이 BBK의 회사자금인 것으로 드러났다. 투자자에게 각종 위·변조 펀드운용보고서를 제공한 것으로 밝혀졌고, 이 때문에 BBK의 등록이 취소됐다. 이 전 대통령 측은 이 일로 김씨를 신뢰할 수 없게 됐고, 그해 418일에 이미 LKe뱅크 대표직을 사임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BBK 등록 취소 하루 전, 뉴비전벤처캐피탈을 인수해 옵셔널벤처코리아로 개명하고, 자신이 대표로 취임해 투자자문업을 계속했다. 이때 김씨는 옵셔널벤처스가 해외투자를 유치할 것이라는 소문을 냄으로써 옵셔널벤처스의 주가를 조작했다. 이를 통해 수백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겼으며, 옵셔널벤처스의 자금 384억원을 횡령해 위조여권을 이용, 미국으로 도주했다.

그런데 당시 언급된 해외투자자는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적을 둔 MAF펀드였다. MAF펀드의 주주는 LKe뱅크였고, 이 전 대통령은 LKe뱅크의 공동대표였다. 이 전 대통령이 MAF펀드를 통해 옵셔널벤처스의 주가조작에 기여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2004년 자신이 LKe뱅크에 투자한 30억원을 손해봤다며 김씨를 상대로 미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 전 대통령이 BBK 주가조작과 관여했다는 주장은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경선 후보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처음 주장했다. 그 내용은 “BBK의 실소유주는 이명박이며 다스와 서울 강남구 도곡동 땅도 이명박의 차명재산이라는 것이었다.

사업 관여 증거
나왔지만 덮어


더불어민주당(당시 열린우리당) 박영선 의원도 그해 6월 국회 대정부질문서 이 전 대통령의 주가조작 연루설을 추가로 제기했다.

윤증현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은 자체 조사 결과 이 후보의 주가조작 혐의가 없다고 밝혔지만 박 전 대통령 측과 야당은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BBK 주가조작 사건으로 주요 투자자는 물론이고 많은 소액 투자자들이 피해를 입었다. 5200여명의 소액투자자들이 도합 수백억원 정도의 피해를 봤으며, 자살한 사람들도 많이 발생하면서 사회적 큰 파장을 일으켰다.

아직까지 BBK사건은 미스터리로 남아 있으며, 핵심 쟁점을 정리하면 이렇다. 먼저 다스와 BBK의 실소유주의 문제다. 이 전 대통령은 BBK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주장한 반면, 김씨는 이 전 대통령이 실제 소유주라고 주장했다.

2000년 당시 이 전 대통령은 스스로 인터뷰서 자신이 BBK(옵셔널 벤처스)를 창업했다고 말한 것이 주요 언론 등에 보도됐다.

20001017일 광운대학교에서 열린 특강서 이 전 대통령은 제가 인터넷금융회사를 설립중이고, 이를 위해 금년(2000) 1월에 BBK라는 투자자문회사를 설립하고, 이제 그 투자자문회사가 필요한 업무를 위해 사이버금융회사를 설립하고 있다. 며칠 전 정부서 인터넷증권회사 예비허가가 났다고 말하는 동영상이 2007년 대선 직전 공개되기도 했다.

조만간 추가 폭로 예고
BBK 사건 전말 드러날까


김씨는 이 전 대통령이 실제 소유주였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증거로 이면계약서를 공개하기도 했다. 20076월 이 전 대통령이 BBK의 의결권을 행사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BBK 정관을 공개했다. 이 전 대통령은 이 서류들이 위조라고 주장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최재경)는 수사를 통해 이면계약서 작성 시점이 원본 종이의 재질과 글꼴 분석, 도장 사용 경위를 종합한 결과 계약서에 적힌 날짜보다 12년 뒤라는 문서감정 결과가 나온 것으로 보고 이 전 대통령의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

이 전 대통령의 개입 여부도 입장이 서로 갈린다. 2007년에는 이 전 대통령과 김씨의 공동명의로 돼있는 MAF펀드의 홍보 브로슈어가 공개되면서 개입 여부에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한나라당 박형준 대변인은 이명박이 김백준을 설득해 LKe뱅크 자본금을 MAF펀드에 가입시킨 것 뿐이고 “MAF펀드는 김경준이 단독으로 운용했으며, 이명박은 전혀 모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씨가 옵셔널벤처스의 횡령금을 빼돌릴 때 송금을 담당했던 담당자는 원래 이 전 대통령의 비서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이 담당자는 이 전 대통령의 비서로 다시 복귀한다.

BBK 사건 당시 김씨의 누나인 에리카 김과 이 전 대통령의 관계에 대해 구설이 오르기도 했다. 에리카 김은 1974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코넬대, UCLA 법학대학원을 나와 27세에 변호사 자격증을 땄으며 동생인 김씨를 이 전 대통령에게 소개한 장본인이다. LKe뱅크는의 L은 이 전 대통령을 뜻하고, K는 김씨, e는 에리카 김을 각각 뜻한 것으로 알려졌다.

에리카 김과 MB
관계도 드러나나

이 때문에 이 전 대통령과 에리카 김 사이에 부적절한 관계가 있지 않느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염문설은 사실이 아니다며 에리카 김과의 소문을 일축했다.

<cmp@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요즘 뭐하나MB 근황

이명박 전 대통령은 대선을 앞두고 여러 대권주자들을 만나는 데 여념이 없다. 지난달 30일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은 이 전 대통령을 예방했다. 이날 오후 이 전 대통령은 대치동 사무실에 방문한 유 의원에게 정치행보에 대한 조언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1월에는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과 만나기도 했다. 이 전 대통령은 지난해 측근을 통해 차기 정권, 내 손으로 창출한다며 차기 대권주자의 킹메이커 역할을 할 것이라는 말도 나왔다.

지난달 23일에는 서해수호의 날을 하루 앞두고 국립대전현충원을 찾아 천안함 46용사와 제2연평해전 전사자, 연평도 폭격 희생자 묘역을 참배했다. 이날 이 전 대통령은 천안함 46용사 묘역서 만난 고 장진선 중사의 유족을 위로하기도 했다. 참배에 앞서 현충탑 방명록에 말로 하는 애국이 아니라 목숨 바쳐 애국하신 여러분을 존경하고 사랑하고 감사합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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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