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져 올린’ 세월호 가라앉은 의혹들

떠오른 ‘검은 역사’ 묻혀 있는 수수께끼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승객 304명과 함께 진도 앞바다에 가라앉았던 세월호가 떠올랐다. 세월호는 참사 1073일 만인 지난달 23일, 처음 수면 위로 떠오른 후 인양작업을 시작한 지 83시간 만인 25일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2014년 4월16일 참사 발생 후 약 3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세월호는 바닷물에 갈리고 깨진 상처가 가득한 상태였다. 세월호가 성공적으로 인양되면서 미수습자 수색과 진상 규명 작업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 국민의 가슴에 큰 상흔을 남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반드시 해소돼야 할 의혹을 <일요시사>가 짚어봤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냈다는 점에서 ‘대한민국의 검은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참사 당일 ‘전원 구조’ 보도가 오보로 드러나면서 언론의 민낯이 공개됐다. 정부의 부실한 대처와 무능한 후속 조치는 국민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겼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세월호 참사에 부채감을 안고 있다. 바다 속에서 스러져간 단원고 학생들과 일반 승객들, 이들을 위해 진도 팽목항으로 달려간 민간 잠수사들과 의인들을 잊지 못하는 이유다. 상황을 줄곧 지켜본 국민들은 ‘세월호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참사 이후 햇수로 3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진상은 수많은 억측과 의혹을 자아냈다. 억측과 의혹은 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고, 국민들은 촛불을 들었다.

3년 만 수면 위로
진짜 침몰 원인은?

세월호 참사 이후 3년째 진상 규명을 촉구하며 1인 시위를 이어온 ‘리멤버0416 인천지부’ 회원들은 “배가 올라왔으니 이제 시작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나를 비롯한 국민 모두에게는 ‘진실에 대한 기대감’이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유력 대선주자들 역시 세월호 참사의 확실한 진상 규명을 촉구하고 나섰다.


지난달 28일에는 ‘세월호 선체 조사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이 통과됐다. 국회는 이날 본회의를 열고 김창준 변호사(더불어민주당), 김영모 한국해양수산연구원 명예교수·이동곤 조선해양플랜트협회 기술협의회 의원(자유한국당), 김철승 목포해양대 국제해사수송과학부 교수(국민의당), 장범선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바른정당) 등 5명을 각각 선체조사위원으로 추천했다.

이들은 유가족 측이 추천한 공길영 한국해양대 항해학부 교수, 권영빈 변호사, 해양 선박 관련 민간업체 직원으로 알려진 이동권씨와 함께 최장 10개월간 활동한다.

위원장을 맡은 김창준 변호사는 “세월호 미수습자 수습에 우선을 두고 업무를 처리하겠다”며 “모든 국민이 만족할 수는 없으나 대다수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회의 이후 진도 팽목항으로 이동, 미수습자 가족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등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미수습자 수습과 함께 가장 우선시돼야 할 것은 세월호 사고원인을 두고 제기된 숱한 논란을 해소하는 일이다. 정부와 수사기관이 세월호 사고원인을 공식 발표했지만 당시에는 세월호가 바다에 가라앉은 상태라 국민들의 의혹 제기에 명쾌한 답을 주지 못했다.

참사 1073일 만에 모습 드러내
미수습자 수색·선체조사 속도

앞서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세월호 사고원인으로 ▲화물 과적, 고박 불량 ▲무리한 선체 증축 ▲조타수의 운전 미숙을 꼽았다. 세월호에 최대 적재량의 2배가 넘는 화물을 제대로 결박하지 않은 채 실어 선체 복원성이 약해졌고, 조타수가 우현으로 15도 이상 급하게 방향을 바꾼 게 문제였다고 발표했다.

이준석 세월호 선장은 재판서 “배가 기운 직후 조타실로 가 보니 타각지시기가 우현 쪽 15도 정도를 가리켰고, 배가 급격히 기운 것으로 봤을 때 조타수가 타를 돌릴 때 우현 쪽으로 15도 이상 돌린 것 같다”고 증언한 바 있다.


세월호에는 규정보다 많은 화물이 실려 있었고, 배의 균형을 잡아주는 평형수는 규정보다 적은 상황이었다. 세월호는 국내 취항 전 선실을 증축하면서 화물을 당초 설계보다 적게 싣고 운항해야 했다.
 

세월호 선박 검사를 담당한 한국선급은 화물량(2437톤→987톤)과 여객(88톤→83톤)을 줄이는 조건으로 운항을 허가했다. 또 평형수를 1023톤에서 2030톤으로 늘려야 복원성이 유지된다고 했지만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이후 검·경의 공식 발표가 법원서 일부 뒤집히면서 사고 원인은 미궁으로 빠져들었다. 2015년 11월 대법원은 선장 이씨 등 세월호 승무원 14명의 상고심서 “조타 미숙을 단정할 수 없다”며 조타수 조모씨의 업무상 과실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법원은 조타기(선박의 방향을 조정하는 장치) 오작동 등 기계결함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세월호 선체를 보면 의혹은 더욱 증폭된다. 반잠수선에 실린 세월호 선체는 방향타가 오른쪽으로 올라가 있다.

임남균 목포해양대학교 교수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방향타가 오른쪽으로 올라가 있는 것은 중력과 거스르는 방향”이라며 “조타기의 고장 여부를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당시에는 방향타가 중앙이나 좌현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다시 하늘을 보고 올라간 상황이 됐다”며 “어떤 알 수 없는 외력에 의해서 위로 올라갔거나 가라앉을 때 조류가 지속적으로 한 방향으로 흘러 움직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방향타의 기울기를 두고도 의혹이 제기됐다. 세월호 선미 부분의 방향타는 오른쪽으로 5∼10도 정도 기울어져 있다. 조타실의 타각지시기 기록이 일치할 경우에는 오른쪽 변침과 복원력 미달을 원인으로 지목한 공식 발표가 확인된다.

일각에선 방향타가 5도 정도 꺾인 상태면 급변침까지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어 추가 규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참사 발생 3주기가 다가왔지만 사고원인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자 수많은 ‘설’이 나왔다. ‘네티즌 수사대 자로’가 주장한 외부 충격설,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가 제기한 고의 침몰설, 핵폐기물을 싣고 가다가 폭발해 침몰했다는 폭발설도 있었다. 암초 충돌설, 폭침설 등도 사고 초기부터 언급된 의혹이었다.

외부 충격설
고의 침몰설

바른정당은 세월호 사고원인을 두고 나온 다양한 설에 대해 “무책임한 괴담의 유포로 세월호 침몰 사건이 우리 사회 적폐 청산의 계기가 되지 못한 채 소모적인 정치적 논쟁만을 유발시킨 바 있다”며 “세월호 침몰 이후 우리 사회는 잠수함 충돌, 고의 침몰 등 각종 근거 없는 세월호 괴담에 신음했다”고 밝혔다.


누리꾼들은 “세월호 참사 원인을 두고 다양한 설이 난무하는 것은 정부가 명확한 진상 규명을 미뤄왔기 때문”이라며 “지금이라도 국민들에게 정확한 진실을 알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경과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이하 세월호 특조위) 간 의견 차가 있는 철근에 대한 조사도 필요하다.

세월호 특조위가 활동기간 중 내놓은 첫 진상규명 보고서 ‘세월호 도입 후 침몰까지 모든 항해시 화물량 및 무게에 관한 조사의 건’에 따르면 세월호에는 최대 적재량인 987톤보다 1228톤이 많은 2215톤이 적재됐다. 특히 세월호에 실려 있던 철근은 당초 검·경의 수사기록에 기재된 286톤보다 124톤 많은 410톤이었다.

세월호 특조위는 세월호에 적재된 철근이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사용될 예정이었다고 주장했다. 당시 국방부는 “제주 해군기지를 건설하는 업체 간에 이뤄진 일이기 때문에 관련 사안을 확인하기 어렵다”고 해명했다. 화물 과적이 세월호 침몰 원인으로 지적되는 만큼 철근의 실체와 출처, 용도 등이 확실히 밝혀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철근 출처 용도
전수조사 필요해

기상 악화에도 불구하고 세월호가 참사 당일 인천항을 떠난 이유가 철근의 실체와 관계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세월호 변호사’로 유명한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지금까지는 민간업체의 무리한 과적과 탐욕에 초점이 맞춰졌는데 400톤 철근 의혹이 사실이라면 민간업체의 욕심을 넘어서 정부기관의 무리한 요구로 과적했을 가능성에 대해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본격적으로 선체 내부 조사가 이뤄지면 철근을 비롯, 화물 적재와 관련한 인과관계가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세월호 인양 과정을 둘러싼 의혹도 해명이 필요하다. 해양수산부(이하 해수부)는 지난달 18일 시험인양 결과에 따라 본인양에 들어갈 계획이라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기상악화로 한차례 연기한 후 지난달 22일 오전 10시 시험 인양이 시작됐다.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시험 인양에 성공하고 본인양이 결정됐다.
 

소조기가 끝나기 전 인양해야 하기 때문에 작업은 시간과의 전쟁을 방불케 했다. 열려있는 선미램프를 잘라내는 등 위기 순간도 있었지만 25일 오전 4시10분 반잠수선에 세월호 선체를 앉히는 데 성공했다.

같은 날 오후 9시15분 세월호가 완전한 모습을 드러냈다. 누리꾼들은 인양을 시작한 지 하루 만에 세월호 선체 일부가 수면 위로 떠오르자 “왜 3년이나 걸렸느냐”며 의문을 제기했다. 또 공교롭게 박 전 대통령이 인양 시기가 파면된 때와 맞아떨어져 정부가 고의로 인양 작업을 지연시킨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침몰 원인부터 숨은 책임자까지
베일에 싸인 의문들 밝혀질까

세월호는 참사 발생 이틀 만인 4월18일 완전히 침몰했다. 세월호 참사 발생 직후 선체 인양이 결정되기까지 1년이 걸렸다. 그 전까지 정부는 유가족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실종자 수색에 집중했다. 이후 찬반 논란 끝에 2015년 인양이 결정됐다. 이 과정서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은 “세월호 선체는 인양하지 맙시다. 사람만 또 다칩니다. 아이들은 가슴에 묻는 겁니다”고 말해 호된 비난을 받았다.

이후 인양업체 입찰 공고를 거쳐 중국 상하이샐비지가 선정됐다. 네덜란드 스미트와 스비처, 미국 타이탄 등 세계 선박 인양업계 빅3가 아닌 중국 상하이샐비지를 선택한 것을 두고 뒷말이 무성했다. 당시 연영진 세월호인양추진단장은 “상하이샐비지가 인양에 충분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확신했다”며 “계약조건도 원만하게 합의돼 인양업체를 확정지었다”고 밝혔다.

상하이샐비지는 인양 방식을 중간에 한차례 바꿔 기술력 논란에 시달렸다. 당초 상하이샐비지는 세월호 내부 탱크에 공기를 넣고 외부에 에어백 등을 설치해 부력을 확보, 해상 크레인으로 들어 올려 플로팅 도크에 싣는 방식으로 인양을 추진했다.

좀처럼 성과가 나지 않자 상하이샐비지 측은 지난해 11월 텐덤 리프팅 방식으로 바꿨다. 크레인 대신 선체 아래 설치된 리프팅 빔을 끌어 올려 반잠수식 선박에 얹는 방식이다.

텐덤 리프팅 방식은 국내외 인양 전문가들이 처음부터 제기한 것으로, 이 방식을 이용했다면 인양 시점을 더욱 앞당길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의 지연 의혹이 나오는 이유다.

윤학배 해수부 차관은 인양 시기 등과 관련한 의혹에 “일고의 가치도 없다”며 “세월호 인양과 관련된 문제에 있어서 지금 다른 요소나 생각이 끼어들 여지가 전혀 없다. 언급할 가치도 없다”고 일축했다.

박 전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의혹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세월호 참사 당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박 전 대통령의 행적은 속 시원히 밝혀진 바가 없다. 국회 청문회, 검찰, 특검, 심지어 헌재에서도 궁금증을 해결하지 못했다.

박 전 대통령의 변호인은 헌재의 탄핵심판 마지막 변론서 “박 전 대통령은 관저 집무실에서 세월호 참사에 대해 국가안보실과 정무수석실로부터 지속적으로 보고받고, 해경청장에게 인명피해가 없도록 최선을 다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 시간동안 박 전 대통령이 보톡스 등 미용 시술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행적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큰 만큼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되면 전면 재조사 요구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세월호 참사 당시 정부 관계자들의 행적도 전부 공개돼야 한다는 요구가 높다. 특히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세월호 수사에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은 당시 수사를 담당한 검찰 간부의 진술을 확보하는 등 의혹 확인에 나섰다.

검찰은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해양경찰의 대응에 문제가 있었는지 등을 수사한 윤대진 부산지검 2차장으로부터 세월호 수사 관련 진술서를 받았다.

우 전 수석은 해경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하지 못하도록 윤 차장검사에게 압력을 가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우 전 수석은 청문회서 2014년 6월5일 검찰 수사팀이 해경 압수수색을 시도하던 날 윤 차장검사와 통화했다고 증언했지만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한 것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국민 10명 중 6명
책임자 처벌이 우선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자체 여론조사에 따르면 세월호 선체조사위의 활동과 관련해 ‘철저한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이 우선돼야 한다’는 응답이 62.9%로 나타났다. 책임자 처벌보다는 재발방지 방안 마련이 우선돼야 한다는 응답은 32.6%였다.

국민들은 재발 방지 대책 마련보다 책임자 처벌이 선행돼야 한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세월호 참사의 숨은 책임자까지 밝혀내야 진정한 의미의 진상 규명”이라며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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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국방부 문건이 대규모로 파쇄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조치는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의 지시로 이뤄졌다. 오 전 기획관은 검찰 특수본과 재판서 정보사와 수사2단 인사안의 문제점을 증언했던 인물이다. 자신이 비상계엄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수사에 협조한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올해 초 신년맞이 대청소라면서 문서를 대량으로 파쇄했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국방부 직원들의 말이다. 파쇄된 문건들은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자료라고 한다. 지시자는 오영대 전 국방부 인사기획관이다. 검찰 수사에 협조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으나 실상은 다르다는 게 군 내부자들의 주장이다. 뭘 숨기나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말 취임하면서 시작한 첫 번째 군 개혁은 인사다. 신임 인사기획관에 일반 공무원 출신인 이인구 군사시설기획관을 임용한 건 안 장관이 강조해 왔던 ‘군 문민통제’와도 맞닿아 있다. 인사기획관은 본래 예비역 장성이 맡아왔다. 이 신임 기획관의 전임자였던 오 전 기획관도 예비역 준장 출신이다. 군 내부에서는 국방부에 여전히 12·3 내란 사태에 협조한 군인들이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핵심으로 인사기획관실의 총괄과이자 인사기획관의 일정, 예산 등을 모두 관리하는 인사기획관리과가 언급된다. 다수의 국방부 관계자들은 “오 전 기획관은 물러났지만 책임져야 할 다수의 인물이 아직 자리를 보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부서의 간부들은 전부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다. 과장 김모 대령은 오 전 기획관이 대령이었을 때 소령으로 근무했고, 총괄 이모 중령은 오 전 기획관이 특전사 여단장을 역임했던 1공수여단서 중대장과 707중대장을 거쳤다. 장군인사팀장 김모 대령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수도방위사령관으로 근무했던 시절 비서실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김 전 장관과 가깝거나 육사 출신인 이들이 국방부 인사의 핵심부서인 인사기획관리과에 포진하면서 계엄 실행을 위한 보직 이동이 이뤄진 셈이다. 김 전 장관은 실제 대통령경호처장일 때부터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과 군 인사에 대해 논의했다. 직무에서 배제되지 않은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장관이 모든 책임을 오 전 기획관에게 묻는 형식으로 퇴직을 시켰으니 우리는 지시를 받아 어쩔 수 없이 한 것처럼 조용히 지내면서 정부초기 개혁의 소나기만 피하면 진급 가능’이라며 서로서로 쉬쉬하고 있다고 한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내란 이후인 지난해 12월 중순 오 전 기획관의 지시에 따라 문건 파쇄를 계획했다. 김 전 장관이 물러난 이후 인사기획관리과장 김 대령 및 총괄인 이 중령 외에는 계획되지 않은 대면보고는 금지했고 내부 보안에 심혈을 기울였다. 인사과 간부들 계엄 실패 후 12월 계획···1월 파쇄 “지시자는 검찰 수사 응했던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 한 달여 뒤 이 중령은 모든 과에 ‘신년맞이 대청소’를 하라고 전파했다. TF 자리 배치와 오래된 문건을 정리한다며 유독 인사기획관리과만 복도로 책상을 빼고, 대량 세절이 가능한 세절실을 예약해 엄청난 양의 문서들을 파쇄했다. 여기엔 내란 핵심 파일도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안 장관은 이와 관련해 국회에서 오 전 기획관에게 여러 차례 질문한 바 있다. 당시 오 전 기획관이 당황해하며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퍼지기도 했다. 이 중령은 동영상을 보며 웃는 직원들의 명단과 안 장관에게 제보한 인물을 색출하기 위해 탐문 활동을 벌여 오 전 기획관에게 추정해 보고했다. 이들은 모두 오 전 기획관으로부터 승진추천, 성과상여금, 각종 포상 등 인사상 불이익을 본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이 문건을 파쇄한 이유는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내란 당일 오후 10시가 넘은 시각임에도 퇴근하지 않고 사무실에 있던 오 전 기획관의 지시를 받은 이 중령은 각 과의 총괄 담당자들을 소집해 ‘계엄 선포가 됐는데 선제적으로 인사 관련 조치를 왜 안 하냐’ ‘합참에는 계엄사령부가, 지작사령부에는 지역계엄사령부가 곧 창설될 텐데 각 군 본부 및 지작사와 인사 지침을 협의해 계엄령 취지에 맞게 배포하라’고 강조했다. 특히 오 전 기획관은 계엄 해제 결의안이 국회 본회의 테이블을 통과했음에도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서 이 중령에게 “(계엄이) 해제되긴 했는데 다시 시행될 수도 있으니 빨리 계엄사 창설 지원을 위한 인사 조치를 완성하고 지작사 병력에 대한 휴가 지침 및 통제 등 건의 사항을 받아보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 전 기획관은 내란 직전까지 김 전 장관의 의중에 따라 군 인사를 반영했다. 최근 내란 특검팀이 군 장성급 인사 자료 확보에 나선 것도 이에 관해 들여다보기 위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검팀은 최근 국방부 장군인사팀과 육군본부 장군인사실 등을 압수수색해 해당 부서 내 인사 관련 파일 등을 확보했다. 정치권에선 지난 2023년 11월과 지난해 4월 이례적인 인사가 이뤄졌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진급에 절박한 군 인사들을 계엄 실행 세력으로 활용했단 의혹이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윤석열정부 장군 인사는 특이하고, 이례적인 경우가 유독 많았다”며 “인사를 통해 군을 장악하고, 내란을 준비했다는 의혹 관련 특검의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3차 계엄 대비 문건 없애” 증거 인멸 국회서 해제 불구 지작사와 인사 논의?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은 지난 2023년 11월 인사에서 소장에서 중장으로 진급했다. 박안수 전 계엄사령관은 ‘75주년 국군의 날 행사기획단장 겸 제병지휘관’ 등 한직에서 2023년 10월 육군참모총장에 발탁됐다. 지난해 4월엔 지휘부에 이어 작전본부 인사가 이어졌다. 원천희 당시 육군 소장이 4차 진급으로 합참 정보본부장으로 승진했고, 이승오 소장은 군단장을 거치지 않고 합참 작전본부장으로 진급했다. 안찬명 당시 육군22사단장은 임명 5개월 만에 합참 작전부장으로 보직을 옮겼다. 통상 사단장은 1년 반~2년가량 보직을 맡는다. 군 안팎에서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왔던 이유다. 경질 위기이던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은 유임됐다. 그는 지난해 6월 정보사 군무원의 블랙요원 명단 국외 유출 사건 및 박민우 전 정보사 100여단장과의 갈등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신원식 전 안보실장은 지난해 8월 국회에서 “후속 조치를 강하게 할 생각”이라고 언급했지만, 다음 달 본인이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는 군 관계자에게서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이 장군들 인사에 대해 논의했고 오 전 기획관에게 전달됐다”는 진술을 확보한 바 있다. 위기감을 느낀 오 전 기획관은 특수본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기 시작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오 전 기획관의 특수본 진술조서를 보면 그는 “신원식 (전 국방부) 장관이 저와 원천희 국방부 정보본부장에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보직해임·정보사령관 교체 검토를 지시했으나 지난해 9월6일, 김 전 장관이 취임하면서 문 전 사령관에 대한 ‘현 보직 유지’를 지시했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이해하기 어려운 인사였다”고 했다. 앞뒤 달랐다 오 전 기획관은 “(문 전 사령관이 박 준장으로부터 고소당한 혐의가)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지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인사 조치는 없었다”며 “공론화된 문제고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는데도 이렇게 유야무야 넘어가는 일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