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져 올린’ 세월호 가라앉은 의혹들

떠오른 ‘검은 역사’ 묻혀 있는 수수께끼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승객 304명과 함께 진도 앞바다에 가라앉았던 세월호가 떠올랐다. 세월호는 참사 1073일 만인 지난달 23일, 처음 수면 위로 떠오른 후 인양작업을 시작한 지 83시간 만인 25일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2014년 4월16일 참사 발생 후 약 3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세월호는 바닷물에 갈리고 깨진 상처가 가득한 상태였다. 세월호가 성공적으로 인양되면서 미수습자 수색과 진상 규명 작업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 국민의 가슴에 큰 상흔을 남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반드시 해소돼야 할 의혹을 <일요시사>가 짚어봤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냈다는 점에서 ‘대한민국의 검은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참사 당일 ‘전원 구조’ 보도가 오보로 드러나면서 언론의 민낯이 공개됐다. 정부의 부실한 대처와 무능한 후속 조치는 국민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겼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세월호 참사에 부채감을 안고 있다. 바다 속에서 스러져간 단원고 학생들과 일반 승객들, 이들을 위해 진도 팽목항으로 달려간 민간 잠수사들과 의인들을 잊지 못하는 이유다. 상황을 줄곧 지켜본 국민들은 ‘세월호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참사 이후 햇수로 3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진상은 수많은 억측과 의혹을 자아냈다. 억측과 의혹은 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고, 국민들은 촛불을 들었다.

3년 만 수면 위로
진짜 침몰 원인은?

세월호 참사 이후 3년째 진상 규명을 촉구하며 1인 시위를 이어온 ‘리멤버0416 인천지부’ 회원들은 “배가 올라왔으니 이제 시작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나를 비롯한 국민 모두에게는 ‘진실에 대한 기대감’이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유력 대선주자들 역시 세월호 참사의 확실한 진상 규명을 촉구하고 나섰다.


지난달 28일에는 ‘세월호 선체 조사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이 통과됐다. 국회는 이날 본회의를 열고 김창준 변호사(더불어민주당), 김영모 한국해양수산연구원 명예교수·이동곤 조선해양플랜트협회 기술협의회 의원(자유한국당), 김철승 목포해양대 국제해사수송과학부 교수(국민의당), 장범선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바른정당) 등 5명을 각각 선체조사위원으로 추천했다.

이들은 유가족 측이 추천한 공길영 한국해양대 항해학부 교수, 권영빈 변호사, 해양 선박 관련 민간업체 직원으로 알려진 이동권씨와 함께 최장 10개월간 활동한다.

위원장을 맡은 김창준 변호사는 “세월호 미수습자 수습에 우선을 두고 업무를 처리하겠다”며 “모든 국민이 만족할 수는 없으나 대다수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회의 이후 진도 팽목항으로 이동, 미수습자 가족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등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미수습자 수습과 함께 가장 우선시돼야 할 것은 세월호 사고원인을 두고 제기된 숱한 논란을 해소하는 일이다. 정부와 수사기관이 세월호 사고원인을 공식 발표했지만 당시에는 세월호가 바다에 가라앉은 상태라 국민들의 의혹 제기에 명쾌한 답을 주지 못했다.

참사 1073일 만에 모습 드러내
미수습자 수색·선체조사 속도

앞서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세월호 사고원인으로 ▲화물 과적, 고박 불량 ▲무리한 선체 증축 ▲조타수의 운전 미숙을 꼽았다. 세월호에 최대 적재량의 2배가 넘는 화물을 제대로 결박하지 않은 채 실어 선체 복원성이 약해졌고, 조타수가 우현으로 15도 이상 급하게 방향을 바꾼 게 문제였다고 발표했다.

이준석 세월호 선장은 재판서 “배가 기운 직후 조타실로 가 보니 타각지시기가 우현 쪽 15도 정도를 가리켰고, 배가 급격히 기운 것으로 봤을 때 조타수가 타를 돌릴 때 우현 쪽으로 15도 이상 돌린 것 같다”고 증언한 바 있다.


세월호에는 규정보다 많은 화물이 실려 있었고, 배의 균형을 잡아주는 평형수는 규정보다 적은 상황이었다. 세월호는 국내 취항 전 선실을 증축하면서 화물을 당초 설계보다 적게 싣고 운항해야 했다.
 

세월호 선박 검사를 담당한 한국선급은 화물량(2437톤→987톤)과 여객(88톤→83톤)을 줄이는 조건으로 운항을 허가했다. 또 평형수를 1023톤에서 2030톤으로 늘려야 복원성이 유지된다고 했지만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이후 검·경의 공식 발표가 법원서 일부 뒤집히면서 사고 원인은 미궁으로 빠져들었다. 2015년 11월 대법원은 선장 이씨 등 세월호 승무원 14명의 상고심서 “조타 미숙을 단정할 수 없다”며 조타수 조모씨의 업무상 과실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법원은 조타기(선박의 방향을 조정하는 장치) 오작동 등 기계결함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세월호 선체를 보면 의혹은 더욱 증폭된다. 반잠수선에 실린 세월호 선체는 방향타가 오른쪽으로 올라가 있다.

임남균 목포해양대학교 교수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방향타가 오른쪽으로 올라가 있는 것은 중력과 거스르는 방향”이라며 “조타기의 고장 여부를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당시에는 방향타가 중앙이나 좌현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다시 하늘을 보고 올라간 상황이 됐다”며 “어떤 알 수 없는 외력에 의해서 위로 올라갔거나 가라앉을 때 조류가 지속적으로 한 방향으로 흘러 움직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방향타의 기울기를 두고도 의혹이 제기됐다. 세월호 선미 부분의 방향타는 오른쪽으로 5∼10도 정도 기울어져 있다. 조타실의 타각지시기 기록이 일치할 경우에는 오른쪽 변침과 복원력 미달을 원인으로 지목한 공식 발표가 확인된다.

일각에선 방향타가 5도 정도 꺾인 상태면 급변침까지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어 추가 규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참사 발생 3주기가 다가왔지만 사고원인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자 수많은 ‘설’이 나왔다. ‘네티즌 수사대 자로’가 주장한 외부 충격설,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가 제기한 고의 침몰설, 핵폐기물을 싣고 가다가 폭발해 침몰했다는 폭발설도 있었다. 암초 충돌설, 폭침설 등도 사고 초기부터 언급된 의혹이었다.

외부 충격설
고의 침몰설

바른정당은 세월호 사고원인을 두고 나온 다양한 설에 대해 “무책임한 괴담의 유포로 세월호 침몰 사건이 우리 사회 적폐 청산의 계기가 되지 못한 채 소모적인 정치적 논쟁만을 유발시킨 바 있다”며 “세월호 침몰 이후 우리 사회는 잠수함 충돌, 고의 침몰 등 각종 근거 없는 세월호 괴담에 신음했다”고 밝혔다.


누리꾼들은 “세월호 참사 원인을 두고 다양한 설이 난무하는 것은 정부가 명확한 진상 규명을 미뤄왔기 때문”이라며 “지금이라도 국민들에게 정확한 진실을 알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경과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이하 세월호 특조위) 간 의견 차가 있는 철근에 대한 조사도 필요하다.

세월호 특조위가 활동기간 중 내놓은 첫 진상규명 보고서 ‘세월호 도입 후 침몰까지 모든 항해시 화물량 및 무게에 관한 조사의 건’에 따르면 세월호에는 최대 적재량인 987톤보다 1228톤이 많은 2215톤이 적재됐다. 특히 세월호에 실려 있던 철근은 당초 검·경의 수사기록에 기재된 286톤보다 124톤 많은 410톤이었다.

세월호 특조위는 세월호에 적재된 철근이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사용될 예정이었다고 주장했다. 당시 국방부는 “제주 해군기지를 건설하는 업체 간에 이뤄진 일이기 때문에 관련 사안을 확인하기 어렵다”고 해명했다. 화물 과적이 세월호 침몰 원인으로 지적되는 만큼 철근의 실체와 출처, 용도 등이 확실히 밝혀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철근 출처 용도
전수조사 필요해

기상 악화에도 불구하고 세월호가 참사 당일 인천항을 떠난 이유가 철근의 실체와 관계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세월호 변호사’로 유명한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지금까지는 민간업체의 무리한 과적과 탐욕에 초점이 맞춰졌는데 400톤 철근 의혹이 사실이라면 민간업체의 욕심을 넘어서 정부기관의 무리한 요구로 과적했을 가능성에 대해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본격적으로 선체 내부 조사가 이뤄지면 철근을 비롯, 화물 적재와 관련한 인과관계가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세월호 인양 과정을 둘러싼 의혹도 해명이 필요하다. 해양수산부(이하 해수부)는 지난달 18일 시험인양 결과에 따라 본인양에 들어갈 계획이라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기상악화로 한차례 연기한 후 지난달 22일 오전 10시 시험 인양이 시작됐다.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시험 인양에 성공하고 본인양이 결정됐다.
 

소조기가 끝나기 전 인양해야 하기 때문에 작업은 시간과의 전쟁을 방불케 했다. 열려있는 선미램프를 잘라내는 등 위기 순간도 있었지만 25일 오전 4시10분 반잠수선에 세월호 선체를 앉히는 데 성공했다.

같은 날 오후 9시15분 세월호가 완전한 모습을 드러냈다. 누리꾼들은 인양을 시작한 지 하루 만에 세월호 선체 일부가 수면 위로 떠오르자 “왜 3년이나 걸렸느냐”며 의문을 제기했다. 또 공교롭게 박 전 대통령이 인양 시기가 파면된 때와 맞아떨어져 정부가 고의로 인양 작업을 지연시킨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침몰 원인부터 숨은 책임자까지
베일에 싸인 의문들 밝혀질까

세월호는 참사 발생 이틀 만인 4월18일 완전히 침몰했다. 세월호 참사 발생 직후 선체 인양이 결정되기까지 1년이 걸렸다. 그 전까지 정부는 유가족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실종자 수색에 집중했다. 이후 찬반 논란 끝에 2015년 인양이 결정됐다. 이 과정서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은 “세월호 선체는 인양하지 맙시다. 사람만 또 다칩니다. 아이들은 가슴에 묻는 겁니다”고 말해 호된 비난을 받았다.

이후 인양업체 입찰 공고를 거쳐 중국 상하이샐비지가 선정됐다. 네덜란드 스미트와 스비처, 미국 타이탄 등 세계 선박 인양업계 빅3가 아닌 중국 상하이샐비지를 선택한 것을 두고 뒷말이 무성했다. 당시 연영진 세월호인양추진단장은 “상하이샐비지가 인양에 충분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확신했다”며 “계약조건도 원만하게 합의돼 인양업체를 확정지었다”고 밝혔다.

상하이샐비지는 인양 방식을 중간에 한차례 바꿔 기술력 논란에 시달렸다. 당초 상하이샐비지는 세월호 내부 탱크에 공기를 넣고 외부에 에어백 등을 설치해 부력을 확보, 해상 크레인으로 들어 올려 플로팅 도크에 싣는 방식으로 인양을 추진했다.

좀처럼 성과가 나지 않자 상하이샐비지 측은 지난해 11월 텐덤 리프팅 방식으로 바꿨다. 크레인 대신 선체 아래 설치된 리프팅 빔을 끌어 올려 반잠수식 선박에 얹는 방식이다.

텐덤 리프팅 방식은 국내외 인양 전문가들이 처음부터 제기한 것으로, 이 방식을 이용했다면 인양 시점을 더욱 앞당길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의 지연 의혹이 나오는 이유다.

윤학배 해수부 차관은 인양 시기 등과 관련한 의혹에 “일고의 가치도 없다”며 “세월호 인양과 관련된 문제에 있어서 지금 다른 요소나 생각이 끼어들 여지가 전혀 없다. 언급할 가치도 없다”고 일축했다.

박 전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의혹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세월호 참사 당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박 전 대통령의 행적은 속 시원히 밝혀진 바가 없다. 국회 청문회, 검찰, 특검, 심지어 헌재에서도 궁금증을 해결하지 못했다.

박 전 대통령의 변호인은 헌재의 탄핵심판 마지막 변론서 “박 전 대통령은 관저 집무실에서 세월호 참사에 대해 국가안보실과 정무수석실로부터 지속적으로 보고받고, 해경청장에게 인명피해가 없도록 최선을 다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 시간동안 박 전 대통령이 보톡스 등 미용 시술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행적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큰 만큼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되면 전면 재조사 요구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세월호 참사 당시 정부 관계자들의 행적도 전부 공개돼야 한다는 요구가 높다. 특히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세월호 수사에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은 당시 수사를 담당한 검찰 간부의 진술을 확보하는 등 의혹 확인에 나섰다.

검찰은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해양경찰의 대응에 문제가 있었는지 등을 수사한 윤대진 부산지검 2차장으로부터 세월호 수사 관련 진술서를 받았다.

우 전 수석은 해경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하지 못하도록 윤 차장검사에게 압력을 가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우 전 수석은 청문회서 2014년 6월5일 검찰 수사팀이 해경 압수수색을 시도하던 날 윤 차장검사와 통화했다고 증언했지만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한 것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국민 10명 중 6명
책임자 처벌이 우선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자체 여론조사에 따르면 세월호 선체조사위의 활동과 관련해 ‘철저한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이 우선돼야 한다’는 응답이 62.9%로 나타났다. 책임자 처벌보다는 재발방지 방안 마련이 우선돼야 한다는 응답은 32.6%였다.

국민들은 재발 방지 대책 마련보다 책임자 처벌이 선행돼야 한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세월호 참사의 숨은 책임자까지 밝혀내야 진정한 의미의 진상 규명”이라며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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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캄보디아 ‘셀허브’ 추적

[단독]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캄보디아 ‘셀허브’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민낯이 드러났다. 주로 수도인 프놈펜 인근과 시아누크빌 범죄 단지가 그들의 주둔지였다. 국내 조직폭력배가 중국 갱단과 결탁해 만든 ‘셀허브’의 경우 피해자만 수십명이다. 이들은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가장했다. 사이트에는 유명인의 사진이 수차례 도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는 사라진 셀허브 엔터테인먼트의 홈페이지. 지난해 7월 <일요시사>가 취재한 이후 대표이사의 이름과 사진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표창장을 받았다며 문서를 위조하기도 했다. 이 기업의 정체는 로맨스 스캠 조직이다. 확인된 피해액만 약 40억원, 피해자는 수십명이다. 한 언론사는 보도자료까지 작성하며 홍보하기도 했다. 조직적 준비 경찰 수사 중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지난 24일, 셀허브 조직원 3명을 각각 구속·불구속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송치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이들은 조건 만남 사이트를 운영한 로맨스 스캠 조직이다. 여성 관련 데이트 상품을 판매하거나 연애 빙자 사기를 일삼았다. 셀허브 조직원이던 A씨는 “연예인 지망생이나 모델과 연락하게 해 준다며 50만원에서 100만원까지 대포통장 계좌에 돈을 입금하게 한 뒤 텔래그램 아이디를 알려주고 연락하게 하는 시스템”이라며 “연결된 여자는 실제 남성이고 한국에서 조직폭력배로 활동하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이 조직은 지난해 3월 캄보디아 범죄 밀집 지역인 태자 단지에서 인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같은 해 5월 사이트를 개설해 조직원들에게 민간인 협박, 중국어 통역 등의 역할을 맡기고 수십명으로부터 약 40억원을 뜯어냈다. 같은 해 7월 <일요시사> 취재가 시작되자 이 조직은 셀허브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의 이름을 ‘김현숙’에서 ‘박소희’로 변경하고 유명인의 사진을 수차례 도용했다. 유 전 장관에게 표창장까지 수여받았다며 피해자들의 의심을 피하려는 꼼수도 서슴지 않았다. A씨는 “조직에서 탈출하려는 사람은 밤새 맞거나 강제로 마약을 투약당하기도 했다. 조직폭력배 출신 한국 사람들이 간부고 일반 조직원은 교민 사이트를 통해 ‘한 달에 500만~1000만원을 벌 수 있다’는 거짓말에 속아 일하게 된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건은 서울경찰청이 수사하기 이전인 지난해 7월부터 강서·영등포·구로경찰서 등에 여러 고소장이 접수됐었다. 하지만 수사는 원활하지 않았다. 주요 혐의자가 해외에 거주 중이거나 피의자 특정이 어려운 게 난관이었다. 수사를 담당했던 한 경찰 관계자는 “캄보디아 프놈펜에 주요 혐의자들이 거주한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지난해부터 공조를 요청했으나 캄보디아 당국이 비협조로 일관했다”며 “고소인분들이 ‘왜 안 잡냐’ ‘내 돈 어떻게 하냐’는 등 불만이 많으셨다. 매번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캄보디아가 협조하지 않으면 조치가 불가능했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3월부터 조직원 모집…태자 단지서 모의 ‘유인촌 표창장’ 걸어 놓고 ‘정상 기업’ 홍보 막막했던 수사는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면서 풀리기 시작했다. 이재명정부가 캄보디아를 압박했고 현지에 구금된 한국인 범죄자 겸 피해자 수십명을 국내로 송환했다. 송환된 인원 중 일부는 셀허브 사건과도 연관된 것으로 파악됐다. 정성학 충남경찰청 수사부장은 지난 20일 청내 프레스센터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들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사기) 및 범죄단체 가입 및 활동 혐의로 전원 구속했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부건(총책 가명, 40대 초반, 한국말을 쓰는 외국인 추정) 조직으로부터 확인된 피해 건수는 110건, 피해액은 93억여원에 달했다. 약 100명의 조직원을 거느린 부건은 지난해 중순부터 올해 7월까지 주로 프놈펜 웬치(범죄 단지) 및 태국 방콕 등지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범행을 벌여왔다. 부건 조직은 지난 2018년 중국에서부터 활동을 시작해 그동안 단속을 피하려 태국, 캄보디아 등지로 거주지를 옮겨가며 범행을 계속해 왔다. 이들은 데이터베이스, 입출금 등을 지원·관리하는 CS팀과 광고를 보고 접근한 피해자를 기망하는 로맨스팀, 검찰 사칭 보이스피싱팀, 코인투자리딩 사기팀, 공무원 사칭 노쇼 사기팀 등 총 5개 팀으로 이뤄진 조직체계를 갖췄다. 이들은 가구판매업을 하러 캄보디아에 갔다고 진술했으나 이후 지역 선·후배 권유, 고액 아르바이트 인터넷 광고 등을 접하고 범죄에 연루된다는 걸 알면서도 조직에 가입해 활동한 것으로 조사됐다. 속아서 조직에 들어갔다고 진술하지 않은 이들의 유입 경로는 ▲지인 포섭 29명 ▲인터넷 광고 등 포섭 8명 ▲현지 카지노 포섭 6명 ▲기타 2명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남성 42명과 여성 3명으로 연인도 있었다. 대부분은 20~30대 연령으로 최소 2개월부터 최대 16개월까지 범행에 가담해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조건 만남 사이트 경기북구경찰청 형사기동대도 전기통신금융사기특별법 위반 등 혐의로 피의자 15명 중 11명을 구속 송치했다. 이들은 지난해 8월부터 한 달간 캄보디아 범죄 단지에서 여성을 사칭, 조건 만남 등을 명목으로 피해자들로부터 돈을 가로챘다. 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성 만남 광고를 낸 후 이를 보고 연락해 온 피해자에게 여성인 척 채팅으로 유인했다. 여성을 소개받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개발한 조건 만남 사이트에 회원 가입과 인증을 받아야 한다고 속여 인증을 위한 돈을 요구했다. 3차례에 걸친 인증 절차 과정에서 여러 게임에 성공하면 가입비를 돌려준다고 속여 피해자로부터 1인당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을 받아 챙겼다. 피해자들이 믿을 수 있도록 별도의 만남 인증과 후기글을 남기는 ‘화력방’도 운영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 규모는 피해자 36명, 피해금 16억원 상당이며, 1인당 최대 피해 금액은 2억1000만원이다. 이들은 대부분 20~30대 남녀다. 최초 범죄집단을 구성한 캄보디아 프놈펜 지역 명칭 ‘툴콕’을 의미하는 ‘TK’파로 스스로를 부르며 총책을 정점으로 한 지휘·통솔 체계를 갖췄다. 조직 운영을 총괄하는 총책, 이를 보좌하며 실무 전반과 인력 공급 등을 담당하는 총관리자, 각 파트 팀원의 근태를 관리하고 지시하는 팀장으로 구성됐다. 또 자체적인 조건 만남 홈페이지를 제작하는 개발자, SNS에 광고 글을 게시하는 홍보팀과 광고를 보고 접근한 피해자를 기망하는 로맨스 2개팀으로 역할을 분담했다. ▲상호 가명 사용 ▲근무 중 휴대전화 금지 ▲사진 촬영 금지 ▲야간에는 커튼으로 외부 차단 ▲다른 부서와의 업무 내용 공유 금지 등의 규칙에 따라 생활하기도 했다. 중국 국적 100명 뒷배 이들은 총책이 마련한 건물에서 2인1조로 합숙했는데 프놈펜 툴콕 지역의 13층 건물을 사용하다가 지난 8월, 현지 단속을 피해 센소크 지역 7층 건물로 이전해 범행을 이어오던 중 현지 수사 당국에 의해 검거됐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SNS 구직 광고나 조직원을 통해 범죄단체에 가입했다고 진술했으며 사기임을 알고도 범행을 지속한 것으로 조사됐다. 피의자 대부분은 현지에서 구금된 중에도 총책이 이른바 관작업을 통해 자신들을 석방시켜 줄 것이라는 말만 믿고 대사관의 도움을 거절하고 귀국하지 않았다. 셀허브 사건 간부들은 타 사건에도 연루됐다. 지난 7일 캄보디아 바벳에 인접한 베트남 떠이닌 지역 국경 검문소 인근에서 30대 여성 B씨가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는데, 숨지기 직전까지 셀허브 간부와 같이 있었다. B씨의 사인은 마약 과다 투약이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B씨가 셀허브에서 한국인 명의의 대포통장을 공급해 왔다고 보고 있다. A씨는 “셀허브에서 일할 사람을 모집하는 역할을 했던 B씨인데 통장을 팔려고 캄보디아에 도착한 한국인들을 유인해 범죄 단지로 팔아넘기고 유인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정보·수사기관도 B씨에 의해 범죄 단지에 넘겨지는 피해를 입거나 유흥업소 일을 강요당한 사례를 확인하고 조사 중이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사실상 마약을 강제로 과다하게 투약당한 살인사건이라는 첩보는 아직 확인 중”이라며 “특정 조직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건 현지 경찰도 수사 중인 내용”이라고 말했다. 대개 조직폭력배 출신…지휘는 중국 조직이 맡아 40억 피해액 환수 불가능 “자금 세탁 끝났다” 첫 데이트하던 연인을 치어 여교사를 숨지게 했던 이른바 ‘대전 머스탱 교통사고’의 피의자도 셀허브 조직원으로 확인됐다. 피의자 전모씨는 2019년 2월10일 오전 10시14분 대전 중구 대흥동에서 면허도 없이 외제차를 운전하던 중 인도를 걷던 조모씨와 박모씨를 들이받아 박씨를 숨지게 하고, 조씨에게 중상을 입혔다. 전씨가 대여한 외제차는 불법 대여 차량이었다. 이 차량은 애초 대구에 사는 C씨가 자신 명의로 캐피털에서 월 115만원씩 주는 조건으로 60개월간 대여한 것이다. C씨는 사촌 안모씨와 함께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나모씨가 올린 ‘외제차 저렴하게 빌려줄 사람을 찾는다”는 글을 보고 접근, 한 달에 136만원씩 받기로 하고 대여한 머스탱 차량을 재임대했다. 나씨는 이렇게 빌린 머스탱 차량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활용해 “외제차를 빌려준다”고 광고하며 또다시 대여업을 했다. 전씨는 나씨가 올린 이 글을 보고 일주일에 90만원씩 주기로 약속하고 머스탱을 빌려 운전했다. 매년 확정되는 범죄수익 추징금은 30조원을 넘지만 환수 금액은 1%에도 미치지 않는다. 법무부가 캄보디아에서 보이스피싱과 로맨스 스캠 등의 범죄로 발생한 현지 범죄수익을 국내로 환수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선 법무부는 “캄보디아 내에서 벌어진 범죄 가운데 현재 국내에서 수사 중이거나 재판 중인 사건이 1차 현지 수사 의뢰 대상”이라며 “이후 국내에서 유죄 선고를 받으면 최종적으로 환수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국제형사사법공조 조약에 따르면 해외에서 발생한 범죄라 하더라도 피해자가 국내에 있고 피해액이 특정될 경우, 우리 정부가 해외에 범죄수익 환수를 요청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2019년 캄보디아와 국제형사사법공조 조약을 체결해 2021년 정식 발효됐다. 주요 간부들 타 사건 연루 정보기관 관계자는 “범죄자 개인이 아닌 조직을 대상으로 한 범죄수익 환수 사례는 거의 없다. 특히 국내에서 수사와 재판이 끝나야 한다”며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서는 건 좋지만 이미 늦었다. 범죄조직 특성상 이미 코인이나 대포 통장으로 제3국에 은닉하거나 세탁을 하고도 남았을 시간”이라고 지적했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도 “수사가 끝나고 유죄 판결이 나기까지 수년이 걸리는데 환수 절차는 이 모든 사법절차가 종료돼야 가능하다. 특히 조세회피처로 범죄수익을 옮겨놨다면 환수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봤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