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재벌 뒷조사’ 충격의 CIA보고서 공개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7.01.31 12:03:29
  • 호수 10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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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후광으로 쑥쑥 컸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세상에 비밀은 없다. 최근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1980년대 초 3대 재벌 총수들의 동향을 파악했던 보고서가 드러났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한국 3대 그룹인 현대·삼성·대우의 초대 회장의 프로필과 보고 내용이 담겨있다. 이들 재벌 총수는 CIA에 어떻게 비쳤을까.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지난 23일, 온라인에 공개한 기밀해제 문서 중 ‘한국: 경제적 의사결정의 과도기’(South Korea: Economic Decision Making in Transition. 1983년 1월) 보고서를 공개했다. 이 보고서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경제 정책과 당시 고위 경제관료에 대한 분석이 담겨있다. 또 한국 3대 재벌인 현대·삼성·대우 총수의 프로필과 이들에 대한 보고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병철·정주영
김우중…그들은?

CIA 보고서는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을 ‘재계와 한국 사회서 존경받는 인물’(Chong is a well respected is South Korean business circles and in Korean society in general) ‘미국에 호의적’(He is well disposed toward th United States) ‘전두환 대통령 경제 정책에 비판적인 인사’(Chong has generally been critical of President Chun Doo Hwan's economic policies) 등으로 분류했다.

CIA 보고서에 따르면 정 회장은 현대그룹 창립자이며, 한국서 가장 부유한 인물이다. 또 한국에서 가장 다국적인 기업을 이끌고 있으며, 당시 13만명의 노동자가 현대그룹 각 계열사(조선, 선적, 알루미늄, 자동차 부문)에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CIA 보고서는 묘사했다.

이 보고서에는 “정 회장은 한국 언론이 ‘자수성가의 전형’으로 칭하는 백만장자”(Chong is a billionaire who has been described in Korean press as the 'archtype of the self man')이라고 평가했다.


80년대 국내 재벌 동향
미국 기밀문서 대방출

CIA는 정 회장이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의 경제정책에 비판적인 인물이었다고 보고 있다. CIA는 “정 회장은 정부가 직접적인 명령보다는 당근과 채찍으로 경제를 가이드하기를 선호하며 정부의 물가 통제에 대해서도 ‘실행 불가능’이라고 비판한 적 있다”(Chong favors government economic guidance through incentives and disincentives rather tan by direct fiat and has labeled direct government price controls as 'unworkable')고 말했다.
 

CIA는 이처럼 정 회장이 정부의 경제정책에 비판적이지만, 전 대통령 정부서 출범한 정부단체에 후원하고 있다고 파악했다. CIA보고서에 따르면 “정 회장은 전 대통령 취임 후 정부가 후원하는 여러 경제 단체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Chong's criticalsms of government's ecocomic policies, hs has been active in several government- sponsored organizations since Chun became President.)

정 회장은 1915년 강원도 통천군 송전리 아산마을서 6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30년 송전소학교를 졸업했으나 가난 때문에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아버지의 농사를 도왔다. 이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여러 차례 가출을 반복한 끝에 1937년 9월에 경일상회라는 미곡상을 시작했다.

1940년 서울서 가장 큰 경성서비스공장의 직공으로 일하다 아도서비스라는 자동차 수리공장을 인수하게 된다. 그 뒤 1946년 4월 현대자동차공업사를 설립, 이듬해 5월에는 현대토건사를 설립하면서 건설업을 시작했다.

1950년 1월 현대토건사와 현대자동차공업사를 합병, 현대그룹의 모체가 된 현대건설주식회사를 설립하였고 1971년 현대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한국경제 이끄는
재벌들 동향 왜?


CIA 보고서는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을 ‘한국 최대의 무역회사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대기업’(South korea's oldest and largest trading corporation and one of the country's largest conglomerates) ‘자본주의의 강력한 지지자’(Lee, in his seventies, is a strong proponent of capitalism) ‘삼성은 전통적으로 정부와 거리를 두는 편’(kept government at arm's length) 등으로 분석했다.

CIA 보고서에 따르면 이 회장은 삼성그룹의 창립자이며, 1980년대 삼성은 포춘이 선정한 세계 500대 기업 중 125위를 차지했다. 또 1981년에는 50억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는데 이는 한국 GNP의 8%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보고서에서는 이 회장을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사업가라고 언급했다. CIA는 “이 회장은 한국의 10년간 경제 성장은 자본주의 체제서 비롯됐다고 주장했다”(He cites the capitalist system as the reason for the country's rapid growth in recent decades)라고 언급했다.

CIA는 삼성이 당시 재벌들과 다른 행보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 회장은 민간기업에 대한 정부 개입을 반대한다”(Lee advocates the internal direction and modification of industries and opposes government interference in private business practices)며 “정부에 협력적인 자세를 취하는 현대나 대우와 극명하게 대비된다”(A marked contrast to the approach of cooperation and involvement Hyundai and Daewoo have taken)고 평가했다.
 

보고서에는 또 이 회장이 박정희정권 시절 구속됐다고 기술하고 있다. CIA는 “이 회장은 1960년대 박정희정권에 의해 체포됐지만 경제 발전을 돕겠다고 대통령을 설득해 풀려났다”(Lee was arrested in the early 1960s by the Park regime but convinced President Park to release him and let him assist in building the country's economy unde Park's leadership)고 언급했다.

실제로 이후 삼성은 박 대통령의 5개년 경제개발계획에 완전한 지지를 선언, 그의 주요 지지기반인 전경련도 이 회장이 주도적으로 설립했다. CIA는 또 이 회장이 박 대통령의 비공식 경제고문단 역할을 했으며, 울산산업단지를 설립하는 데 일조했다고 보고 있다.

이 회장은 1910년 경상남도 의령 출생으로 2남2녀 중 막내다. 중동중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 와세다대학교 전문부 정경과에 입학했지만, 1934년 중퇴했다. 1936년 경남 마산서 협동정미소를 세워 사업에 투신한 후, 1938년 3월 자본금 3만원으로 삼성그룹의 모체인 삼성상회를 설립했다.

1951년 부산서 삼성물산을 세워 무역업을 하면서 1953∼1954년 제일제당과 제일모직을 설립, 제조업에서 크게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사업영역을 크게 확대해갔으며, 1961년 한국경제인협회(전국경제인연합회의 전신) 초대 회장에 선출됐다.

숨겨진 비화도
문서에 담겼다

CIA 보고서는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을 ‘대우는 기적의 기업’(Daewoo has become known as a miracle company) ‘한국의 대표적인 기업가 중 한 명으로 부상’(Kim has emerged as one of the country's leading industrialist) ‘김 회장은 1년의 절반 정도를 해외서 보낸다’(As chairman. Kim spends about half of each year abroad)고 언급했다.

CIA 보고서에 따르면 김 회장의 대우그룹은 1981년 7만5000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있었으며, 20억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대우그룹은 1967년도 직물회사로 설립됐으며, 이후 사업군을 확장해나갔다.
 

당시 김 회장은 저개발국가를 중심으로 사업확장을 했다고 CIA는 보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대우는 김 회장이 가장 큰 기회가 있다고 믿는 저개발국가의 점유율 확대에 집중해왔다”(Daewoo has emphasized capturing markets in underdeveloped countries, where Kim believes the greatest opportunity for profit exits)고 언급하고 있다. 1982년에는 김 회장은 전 대통령과 함께 아프리카 4개국을 방문하며, 양국 간 경제 협력을 체결했다.


현대·삼성·대우 회장 분석 
신상과 배후·정치성향 담겨

CIA는 대우의 약점도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몇몇 전문가는 대우는 해외의 경제상황에 따라 시시각각 변한다는 점이 큰 약점이라고 주장했다”(Some observers have stated that Daewoo's major weakness is its dependency upon economic conditions abroad)고 설명했다.

또 CIA는 김 회장의 사업 성공이 박 대통령과 인연에서 비롯됐다고도 분석했다. 보고서는 “대우의 성공은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개인적인 도움의 결과일 수도 있다”(It's prosperity may also be the result of the personal support it received from the late President Park) 며 “박 대통령과 대우의 관계는 박 대통령이 학창시절 대구서 김 회장 아버지의 제자로 있을 때부터 시작됐을 수 있다”(Park's connection with Daewoo may date from his school days in Taegu, when he was a student of Kim's father)고 분석했다.

김 회장은 1936년 대구서 6남매 중 4남으로 태어났다. 6·25 전쟁으로 아버지가 납북되자 15세에 홀어머니 아래서 소년가장으로 가족들의 생계를 도맡게 된다. 휴전 후 상경해 경기중학교와 경기고등학교에 진학하고 1956년 연세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해 학창생활을 보냈다.

당시 경제관료
동향까지 파악

1960년 25세에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1966년까지 한성실업서 근무하다가 1967년 32세에 서울 충무로서 대우실업을 설립했다. 자본금은 500만원이었지만, 동남아시아, 미국시장서 성공해 1970년대 초반부터 대우건설, 대우증권, 대우전자, 대우조선 등을 창설하며 1974년에 1억불 수출탑 달성에 성공하며 신흥 재벌이 됐다.


CIA 보고서에는 전 대통령의 경제 정책과 김재익 경제수석비서관, 김준성 경제기획원 부총리 겸 장관, 강경식 재무부장관, 김동휘 상공부장관 등 당시 주요 경제관료들에 대한 분석도 포함됐다.


<cmp@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CIA 기밀문서 대방출, 왜?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기밀이 해제된 1300만 쪽 분량의 문서를 공개했다. 지난 18일(현지시간) 미 뉴욕포스트 등에 따르면 이 기밀문서에는 스타게이트(Stargate) 프로젝트의 심리실험과 미확인비행물체(UFO), 초능력 등 흥미로운 자료들이 공개돼 있다. 한국전과 베트남전쟁 등 냉전시대 전쟁 당시 해당기관들의 활동도 포함됐다.

이날 CIA는 약 93만건, 1300만 쪽에 달하는 기밀문서를 온라인상에 공개한다고 공지했다. 1995년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25년 이상 지난 CIA 문건들은 보안을 해제하고 공개해 ‘역사적 가치’를 공유하라는 시행령을 발효했기 때문이다.

특이한 기록중에는 정신능력과 텔레파시를 다루는 스타게이트 프로젝트 문서들이 포함돼 있는데, 이중 70∼80년대 초능력자로 이름을 날렸다가 사기와 조작 파문 등을 겪은 유리 갤러의 초능력에 대한 연구 기록도 들어있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유리 갤러는 다른 방에서 그려지는 그림을 부분적으로 복제 할 수 있었다. 복제한 정확도는 상황에 따라 차이가 있었으나 때로는 정확한 정확도를 보였다. 연구원은 “자신의 초자연적인 지각 능력을 설득력 있고 모호하지 않은 방식으로 보여 주었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한국전쟁 전후 한반도를 둘러싼 주요 열강들의 개입 가능성과 시나리오, 정치적 입장 등을 담은 보고서도 눈에 띄었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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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최대 변수 송영길, 왜?

여당 최대 변수 송영길, 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가 돌아왔다. 3년의 옥살이 끝에 무죄를 선고받은 만큼 명분과 서사를 모두 거머쥐었다. 두 팔 벌려 환영했지만 송 전 대표를 바라보는 정청래 지도부의 고심이 깊은 모양새다. 앞으로 치러질 각종 선거의 변수가 된 송 전 대표의 쓰임새는 무엇일까? 지난달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의 무죄가 확정됐다. ‘돈봉투 사건’을 주도하고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으나 검찰이 상고를 포기하면서다. 송 전 대표는 “돈봉투 의혹 사건, 2심 무죄에 이어 최종 무죄가 확정됐다”며 “긴 시간 함께 걱정해 주시고, 흔들림 없이 믿어주시며 끝까지 곁을 지켜주신 많은 분의 성원에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진실은 결국 가려지지 않았다. 이제 더 단단해진 마음으로, 책임 있게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강조했다. 돌아온 큰형님 송 전 대표는 지난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 경선을 앞두고 6000만원의 상당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지역 본부장에게 현금이 든 돈봉투를 건네고, 민주당 윤관석 의원을 통해 국회의원에게 나눠줄 돈봉투 6000만원을 제공하는 데 개입한 혐의 등을 받았다. 아울러 그의 외곽 후원 조직인 ‘사단법인 먹고사는문제 연구소(이하 먹사연)’를 통해 기업인 7명으로부터 후원금 명목의 불법 정치자금 총 7억6300만원을 챙긴 혐의 등도 있다. 당초 1심 재판부는 송 전 대표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으나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윤성식)는 이를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원심 판단이 돈봉투 사건과 먹사연 사건 범죄 사실의 관련성을 인정한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먹사연 사건 관련 공소 사실의 경우 압수물이 영장 없이 증거로 사용됐다”고 판단했다. 송 전 원내대표의 복귀는 화려했다. 무죄가 선고된 날 서울고등법원 현장에는 민주당 강득구·김교흥·김상욱·박선원·부승찬·전현희 의원 등 10여명이 모였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역시 자신의 SNS에 “송 대표의 무죄 판결을 축하한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다”며 “검찰 전횡을 바로잡는 검찰개혁에 더 매진하겠다”고 작성했다. 이 판결로 송 전 대표는 ‘정치 검찰의 희생양’이라는 강력한 명분을 얻었다.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정치 검찰의 서슬 퍼런 칼날을 이겨내고 돌아오신 송 전 대표를 환영한다”며 “이재명정부 성공을 향해 연대와 통합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송 전 대표는 이날 민주당 인천시당을 찾아 복당 신청서를 제출했고, 그달 27일 최종 의결됐다. 정 대표는 “송 전 대표의 복당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며 “앞으로 민주당 발전과 이정부의 성공을 위해 큰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또한 정 대표는 “탈당 후 당의 요청이 아니면 다른 경선에서 20% 감산되는 불이익을 받는데, 당 대표인 제가 요청해 (감산이 없도록) 처리하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인천시당에 복당을 신청한 것이 서울시당으로 이첩됐던 것을 중앙당 당원자격심사위원회로 보내라고 지시해 복당했다”고 말했다. “정치 검찰 피해자” “이재명의 은인” 정점 찍은 서사…‘송 사용법’ 고심 송 전 대표는 2021년 전당대회서 당의 주류였던 친문(친 문재인)계를 꺾으며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났다. 그런 그에게는 이재명 대통령과 끈끈한 연결고리가 있다. 같은 해 치러진 민주당 대선 경선 과정서 두 사람의 관계가 본격화됐고, 송 전 대표가 당시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밀어줬다는 이른바 ‘이심송심’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대선에서 패배한 이재명 후보를 국회로 이끈 인물 역시 송 전 대표다. 그는 2022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인천 계양을 지역구에서 사퇴했고, 그때 이 후보가 보궐선거를 통해 당내에 입성했다. 당시 그는 이 후보의 전략공천을 환영하는 입장을 밝히며 “당의 단단한 결정과 이재명 (당시) 상임고문의 결단이 당원과 지지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됐다. 이 상임고문은 우리 민주당과 현재 한국 정치에 큰 자산”이라고 치켜세우며 “이번 지방선거 승리의 큰 구심점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 후보가 국회 입성에 성공하고 당 대표직을 따내는 등 정치인으로서 성공가도를 걸었던 반면, 송 전 대표는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배하며 정치적 치명상을 입게 됐다. 이때부터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서는 송 전 대표가 ‘자신을 희생하고 후배에게 지역구를 물려준 정치인’이라는 인식으로 남았다. 2023년 두 사람에게 본격적인 위기가 찾아왔다. 돈봉투 의혹 수사가 송 전 대표를 덮쳤고, 이재명 대표는 거리를 두는 전략을 택했다. 민주당은 당 전체의 타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송 전 대표의 자진 탈당을 압박했고, 송 전 대표 역시 당에 부담을 주지 않겠다며 당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3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은 송 전 대표가 자신의 서사를 어떻게 활용할지 이목이 쏠린다. 과거의 영광을 누렸던 그가 복귀하자 현 수장인 정 대표의 셈법만 복잡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방선거, 전당대회, 나아가 다음 대선까지 송 전 대표가 차후 진행될 모든 선거의 변수가 됐다. 6월 치러지는 지방선거 및 재보궐선거가 첫 번째 관문이다. 복당 이후 송 전 대표는 자신의 지역구였던 계양을로 이사오면서 이곳에서 치러질 보선에 출사표를 던질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계양구는 송 대표의 정치적 고향으로, 지난 2000년 해당 지역에서 당선돼 16대 국회에 입성한 뒤 17·18·20·21대 총선까지 내리 승리했다. 이때 쌓은 조직력을 기반으로 2010 민선 5기 인천시장에도 당선됐다. 굴리는 주판알 인천 계양에 출마가 유력한 김남준 청와대 대변인과의 교통정리 여부가 변수다. 송 전 대표는 YTN과의 인터뷰서 김 전 대변인도 계양을 출마 의사를 밝힌 것에 대해 “당 지도부가 잘 판단하고 결정할 것”이라며 “지역구라는 게 정치인들이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고, 국민과 당원의 뜻이 중요하다. 당 지도부가 여러 가지를 검토해서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에게 지역구를 물려준 중진과 대통령의 최측근인 신인 정치인의 대결구도가 예상되는 만큼 시선은 지도부의 교통정리에 쏠렸다. 정 대표와의 신경전도 예상된다. 정 대표가 당 대표 연임에 도전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한 가운데 송 전 대표가 국회에 입성하면 차기 당권을 노릴 것이란 관측이 나오면서다. 송 전 대표가 실제 당권에 도전할 경우 정 대표를 비롯해 ‘차출설’이 제기되는 김민석 총리와 함께 3파전 구도를 형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여론조사에서는 벌써 송 전 대표의 이름이 거론된다. 지난달 26일 <뉴스토마토>가 23일부터 24일까지 이틀간 만 18세 이상 전국 성인남녀 1034명을 대상으로 ‘민주당 8월 전당대회에서 다음 세 사람이 맞붙는다면, 누가 민주당을 이끌 차기 당대표로 적합하다고 보는지’를 묻는 말에 답변은 ▲정청래 대표 21.6% ▲송영길 전 대표 19.4% ▲김민석 국무총리 18.8%로 집계됐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0%이며 ARS(RDD) 무선전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응답률은 1.8%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강경 개혁파로서 외연 확장성이 부족하다는 게 단점으로 지적돼 왔다. 정 대표의 강경 노선이 지지층 결집에는 효과적이지만, 중도층과 무당층을 포섭해야 하는 전국 단위 선거에서는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제기된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 대통령과 비슷한 중도·실용주의적 성향인 송 전 대표는 민주 당원의 또다른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이미 온라인 공간에서는 ‘뉴이재명’ 그룹이 송영길 역할론에 불을 지피면서 그의 존재감을 키워주는 상황이다. 거침없는 저격수 따라서 송 전 대표 본인이 나서지 않더라도 정 대표의 리더십에 불만을 가진 세력이 정청래 VS 송영길 구도를 만드는 등 당내 경선을 앞두고 판이 깔릴 가능성이 제기된다. 결국 모든 권력투쟁의 종착지가 그렇듯 그가 2027년 치러질 대통령 선거에까지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송 전 대표는 복귀와 동시에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최근 친청(친 정청래)·친문으로 분류되는 김어준씨의 유튜브 채널 ‘뉴스공장’을 정면으로 비판하는가 하면,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을 두고 ‘대국민 사기’라며 문재인 전 대통령의 책임을 거론하기도 했다. 그는 한 라디오를 통해 ‘이재명 대통령 공소 취소 거래설’의 근원지인 ‘뉴스공장’을 향해 “괴물과 싸우다가 괴물이 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라”고 충고했다. 송 전 대표는 “(‘뉴스공장’에) 섭외를 받아도 안 나가고 싶다”며 “특정 언론 유튜브에 국회의원들이 줄 서서 알현하듯이 있는 모습이 좋은 건 아니다. 우리가 국민의힘에 대해서 고성국이나 전한길 비판하듯이 우리 스스로도 돌이켜볼 면이 있다”고 꼬집었다. 여기에 친명인 강득구 의원도 김씨의 방송에 출연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그에게 힘을 실었다. 강 의원은 “큰 틀에서 송 전 대표의 문제 제기에 뜻을 같이 한다”며 “(최근) 김씨는 김 총리의 미국 출장을 두고 ‘차기 주자 육성 프로그램처럼 보인다’고 해석했다. 해석은 자유이지만 다소 자의적인 판단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비판했다. 8월 전대 ‘정·송·김’ 3파전? 6월 지선·재보선 첫 번째 관문 코로나 백신 논란에 대해서는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조국 대표가 참전하면서 사태를 키웠다. 조 대표는 “송 전 대표는 두 가지 음모론을 여전히 믿고 주장하고 있다. 첫째, 극우 변희재가 주장한 최순실 태블릿 PC 조작론. 둘째, 코로나 백신 국가적 사기론”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송 전 대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최순실 태블릿PC 조작설’을 주장해 온 변희재씨와 손을 잡은 이유를 묻는 질문에 “(JTBC와 검찰, 특검이 태블릿 PC 조작을 통해 박근혜 탄핵 수사에 활용했다는 의혹이) 법률가인 제가 보기에도 일리 있는 주장이라 공감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조 대표의 부산 출마’ 필요성을 언급한 송 전 대표를 비판했다. 조 대표는 “최근 송 전 대표께서 느닷없이 저와 혁신당을 향해 ‘호남 이삭줍기 말고 영남으로 가라’고 말씀하셨는데, 호남 출마자들이 어떻게 이삭이냐”며 “모욕과 폄훼”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혁신당 후보들은 지난 총선 시기에 송 전 대표가 손을 잡았던 극우 인사 변희재·최대집씨보다 훨씬 훌륭한 사람들”이라며 다시 한번 송 전 대표의 과거 행적을 거론했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송 전 대표는 ‘뉴이재명 바람’에 올라탔다. 지난 15일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이 개최한 ‘뉴이재명 토론회’ 현장에 나타나 지지자와 인사를 나눴다. 송 전 대표의 축사가 끝나자 지지자들은 연신 “송영길”을 외치기도 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송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이 쓸 수 있는 최고의 칼”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송 전 대표와 이 대통령, 두 사람은 혁신과 쇄신을 강조하는 등 성격이 비슷하다”며 “정부·여당에 타격을 입히는 ‘당정 갈등설’을 부인하는 것도, 논란을 만드는 것도 정 대표다. 이정부의 성공을 바라는 지지층이 봤을 때 이 대통령이 어떤 의중을 전달할 때 정 대표가 아닌 송 전 대표의 입을 빌리는 편이 쉬울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쏘리재명’ ‘쏘리영길’ 그러면서 “뉴이재명은 송 전 대표에 대한 부채 의식이 있다. 3년 동안 옥살이를 하게 했다는 미안함과 이 대통령에게 지역구를 물려준 일 등, 송 전 대표의 희생정신을 높게 평가할 것”이라며 “이런 여론이 확산하면 앞으로 치러질 모든 당내 선거에서 송 전 대표가 승산이 있다고 계산해 어떤 방식이든 (출마를) 결심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송영길 소나무당 어디로?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가 지난 2024년 옥중 창당했던 소나무당이 해체했다. 송 전 대표는 무죄를 선고받자 “소나무당을 해산하고 더불어민주당으로 복당하겠다”고 말했다. 소나무당 시도당위원장 협의회(이하 협의회)는 입장문을 내고 송 전 대표의 결정을 받아들였다. 협의회는 “송영길 대표의 소나무당 해산 및 더불어민주당 복당 천명은 바로 그 위임에 따른 책임 있는 정치적 결단”이라며 “이는 개인의 정치적 유불리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 소나무당이 존재했던 이유와 역할을 다른 방식으로 완성해 나가겠다는 결정이라 우리는 이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소나무당은 해산하지만,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정치적 신뢰와 연대의 경험은 각자의 자리에서 계속 이어질 것”이라며 “송 대표의 정치적 결단을 존중하며 그의 정치적 행보를 함께 지켜보고 응원하는 시민들과 새로운 방식의 역할을 모색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박>